정보공개의 중요성, 대학도서관

슬로우뉴스의 기사 ‘애런 스워츠와 그가 보지 못한 미래’ 를 먼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대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차별을 통해서 좌절감과 패배감을 느꼈던 것들 중 하나가 나는 대학생이 아니라 논문 검색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검색은 가능한데, 본문을 읽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 대개 적게는 몇 백원에서 2000원 가량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혹은 대학 도서관이나 대학 논문보관실에 잠들어있고, 나는 대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출입조차할 수 없다.

 

여기서 또 하나의 애석한 것은 국립대는 물론이고, 사립대 도서관 또한 지역 공공시설물로서 국고, 기부금 등 사회적 비용으로 운영비의 절반을 넘게 충당하면서도 일반시민의 도서관 이용에는 출입 자체를 불허하거나 일부 제약을 두어 논문은 물론이고 도서 검색까지 막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도서관 운영비가 절반도 안 되는데, 대학도서관 측에서는 시민개방의 반대 근거로 ‘학생 등록금으로 운영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시민의 대학 도서관 이용에는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 앞서 말했다시피 공공시설물로서 국고와 기부금 등 사회적 비용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당지역 지방정부로부터 도서구입비로 공공도서관보다 대학도서관들이 더 많은 예산을 배정받기도 한다.

 

물론 모든 대학들이 도서관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관련 조사에 따르면 열람실 개방율이 30퍼센트에 불과하고, 스터디실의 경우는 25퍼센트에 불과할 정도로 저조하다. 그나마도 기간별로 제약을 두고 있다. 또한 서울대같은 국립대에서 마저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시민개방을 막자와 기존대로 개방하여야 한다는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또한 대학 웹사이트에서 공식적으로 개방을 한다고 하여, 실제로 방문 해보면 대학 경비 아저씨들이 출입을 자의적으로 제한하고 있고, “나의 출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신분증도 지참했다. 무엇이 문제냐?”라고 물으면, 해당 대학본부측에서 임의로 출입을 제한할 것을 지시한다고 한다.

 

두어 차례 대학 교수님들을 통해 대학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부탁을 드렸던 일이 있다. 아무래도 교수라는 대학 내의 위치와 학자로서의 책임으로서 모든 시민은 아니더라도 목적이 분명한 일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대학본부측에 의사 타진을 부탁 드렸었는데, 교수님들조차 일반시민들의 출입이 불허된지 모르고 계셨었다.

 

때문에 교수님들은 흔쾌히 도서관 이용에 대해 대학본부에 건의하겠다고 가셨으나, 어처구니 없게도 해당 대학본부들로부터 돌아온 대답들은 “대학본부의 이해관계 때문에 일반시민의 출입이 불허 되어있다” 것으로 함께 좌절하시고, 내게 미안해 하셨다.

 

대신 원하는 논문이나 서적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 하셨고, 이 후로 몇 차례 도서, 논문 조회를 해주시며, 감사하게도 내가 읽고자 하는 부분들을 직접 스캔해서 보내주시는 수고도 해주셨다. (분명히 말하건데 이 교수 님들은 조교나 학생들을 괴롭힌 것이 아니셨다.)

 

왜 국회도서관을 이용해보지는 않았느냐고? 국회도서관의 경우는 대학 도서관에 비해 도서및 논문 검색이 보다 좀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대학 도서관에 비치된 도서, 논문들을 함께 검색하기 때문에 종종 당해 도서관으로 링크를 하고, 결국 결제를 해야하는 상황에 이른다. 혹은 직접 방문해야지만, 열람이 가능한 경우가 있기도 하다.

 

도서의 경우는 시립도서관 등 지역 도서관들에 비치되지 않은 경우 따로 비치 요청을 하면 대개 몇 주내로 읽을 수 있기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학도서관들이 보관하고 있는 논문들에 대해서는 일반 시민들이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RISS 같은 것도 이용해보았지만, RISS는 결국 검색 엔진에 불과할 뿐이지, 열람 자체를 도와주지 않는다.

 

독일의 경우는 어떨까? 독일에는 1만4천여 개가 넘는 도서관이 있고, 공공도서관은 당연히 제약이 없어 왠만한 관광지를 방불케할 정도로 이용객이 많다. 베를린 주립 도서관의 경우 연간 이용객이 150만명에 이를 정도.

 

또한 대학 도서관이용에는 학생들 편의 위주로 되어 있지만, 1년에 10~ 20유로 가량을 운영비로 지출하면, 해당 지역의 모든 대학 도서관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별개로 인터넷을 통한 논문 검색은 유료학술지를 제외하면, 독일 국립 도서관의 웹사이트를 통해 검색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흐지부지한 결론을 당신에게 선물하겠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박사들을 배출하면서도 동시에 논문 인용율은 세계 최하위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석박사라고 해서 자랑하지마. 나는 당신이 석박사라고 거드름 피울 때, 인정욕구에 갈증을 느끼는 네 자의식 과잉, 열등감과 권위의식을 느낀다. 당신이 한낱 권위들에서 한발짝 물러서면서 좋은 가치들을 나누려고할 때, 나 또한 당신의 한걸음을 지지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고 할테니.

샤를리 엡도, 테러, 종교, 인종 갈등

어떠한 이유에서든 우리는 테러에 동의할 수 없고, 희생자들에게는 매우 유감이다. 하지만, 약자를 희화화하고, 낄낄거리며, 차별적인 태도를 취했던 그것들이 이 사건의 배경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한다.

 

또한 일련에서 떠도는 유령같은 언어 ‘유럽의 이슬람화’는 사실 네오나치들이 뒤에서 선동하고 있는 것으로서 극우들과 함께 ‘유럽의 이슬람화’라는 언어를 통해 정치적으로 무딘 사람들에게 공포를 전파하고 있다. 특정 의도를 갖고 이슬람에 관련된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내며, 이러한 것들을 이슈화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독일 보수 우파의 선봉장이라는 메르켈 총리마저도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한다는 ‘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 PEGIDA’ 이라는 이름의 단체가 벌이는 일각의 인종차별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포하기까지 한 상태이다.

 

독일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 상당수가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그들의 불안한 위치 때문에 독일인으로 구성된 ‘PEGIDA’의 말을 그대로 믿고, 그들이 단지 독일을 걱정하는 독일인의 건전한 모임인줄로 오해하는 일이 생기고 있는데, PEGIDA는 네오나치의 일부라고 해도 모자를만큼 운동 자체부터 네오나치들이 뒤에서 조직한 것이다. PEGIDA가 스스로 자신들은 나치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의도된 기만 전술에 불과한 것이다.

 

‘유럽의 이슬람화’라는 실체없는 언어가 무엇인지 한번만 생각해보자.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 중 한가지인 ‘부르카착용금지법’. 부르카 같은 것은 이슬람의 전통문화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 해본적 있는가? 자발적으로 벗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강제하여 부르카를 착용하면 고발조치 당하고, 부당한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내고, 감옥에 가야한다면 말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유럽 국가에 거주권을 갖고, 일을 하며, 세금을 내고, 가족과 함께 시민으로서 살고 있는데, 갑자기 ‘유럽의 한국화’가 걱정된다면서 김치 먹는 것을 문제 삼고, 명절에 제사 지내는 것을 이성을 잃은 사이비 종교에 빗대며, 한국의 오랜 전통문화중 하나인 단군신화에 대해 잡신 취급하는 만평을 내놓는다면, 이런 식으로 한국 관련 허위사실과 부정적인 내용들을 비약해서 유포한다면 당신은 이것을 무엇이라고 규정할텐가?

 

‘유럽의 이슬람화’라는 언어 자체가 가져오는 이슈가 바로 그러한 네오나치들이 조장하는 증오에 불과하며, 인종 차별 그 자체일뿐이다.

 

‘부르카착용금지법’ 이외에도 유럽에는 무슬림들에 대한 종교탄압이 계속해서 있었다. 수 십명을 학살한 브레이빅이 자신의 선언서 ‘유럽독립선언문’에서 밝힌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유럽에서 네오나치들은 무슬림과 어울려지낸다는 이유만으로도 유럽원주민들을 납치해 린치하고 숲에 버리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 전혀 고려치 않고, 지금의 테러 자체만으로 이슬람 종교 자체가 문제라는 식으로 몰고가는 것이 네오나치들이 원하는 것이다. 반대로 앞으로 다가올 평범한 무슬림에 대한 차별적 시선들이 이 평범한 무슬림들을 부당함에 빠트리고, 이로 인해 극단주의자가 되도록 것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네오나치들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해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고 전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왜 무슬림들이 유럽에서 살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거기에는 여러 복잡한 정치적, 역사적 배경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일단 독일의 경우를 소개하겠다.

 

독일의 인구 10분의 1이 터키계인 이유로서 2차대전 당시 히틀러를 피해 독일인들이 터키로 망명을 떠났고, 터키가 그 독일인들을 도왔다. 종전 이후에는 독일인 교수들이 이스탄불에 영구거주하는 등 터키의 대학에서 학문을 나눌 정도로 교류가 많았기도 했다. 또한 지금은 터키의 사회주의자들이 터키 정부의 정치탄압을 피해 독일로 넘어오고 있다.

 

그보다 터키인들이 독일에 정착하게 된 중요한 역사적 배경으로는 2차대전 패전 이후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독일 경제 부흥기에 ‘Gastarbeiter’라는 이름으로 해외 노동력 수입을 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가 독일로 파견된 것과도 관련 있는 것이다. 1960년대~ 1970년대에 엄청난 숫자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독일에 유입되었고, 그중 인접국이면서도 값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었던 터키 노동자가 집중적으로 유입되었다. 1973년의 오일쇼크로 독일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모집을 정지했으나 터키인 이주자들은 노동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독일을 떠나지 않았고, 정착을 선택했다. 특히나 이민 3세대에서 4세대로 넘어가고 있는 현 터키 이민자들의 사고방식은 점차 독일에 젖어가고 있으며,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더 이상 터키인과 독일인의 구별이 무의미한 정도로 그 과정이 진행되었다.

 

이 밖에도 여러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들이 있는데, 이 사실들을 모두 재껴놓고 지금 ‘유럽의 이슬람화’가 문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론인 혹은 예술가들이 종교에 대한 풍자를 하는 것은 문제의 지점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비하로서 타문화를 배척하고 차별하는 수단이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단지 비하와 차별, 배척 이외에도 유럽의 네오나치들이 무슬림들을 테러하고, 살해하여 희생된 사람들이 수 백명이 넘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유럽에서의 이슬람 극단주의는 이슬람 자체만의 문제로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러한 이유들로 하여금 독일의 대표적인 보수 우파인 메르켈 총리마저 ‘유럽의 이슬람화’라는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인종차별적 요소들을 엄단하겠다고 공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 PEGIDA가 하는 말을 다시 상기해보자.
그들은 ‘유럽의 이슬람화’로부터 유럽을 구해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유럽의 이슬람화’는 실재하는 것이 침략적인 형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유럽 사회의 한 모습일 뿐이다.

 

PEGIDA는 자신들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망명자를 더이상 받을 수 없다면서 망명자 추방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 나토군을 통해 아랍과 아프리카 정치에 개입해 전쟁을 일으키고, 폭격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선, 되돌아가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망명자들의 삶을 모른척 하는 것은 침략을 정당화 하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정당하게 국적을 취득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슬람 사람들이 그들 고유의 문화를 영위 하는 것을 위협으로 여기고, 비아냥 거리는 것이 비하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들이 당신에게 무슬림이 되길, 정상적인 포교이상의 강권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현재 유럽의 다문화 정책은 유럽의 우파들이 고안한 것으로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맞물려 고급 외국인 인력만을 받아들여 자국 하층계급과 타국의 하층계급 모두를 차별하는 정책이라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브레이빅의 학살극 이후로는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때문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중심으로 만들어진 다문화 정책을 수정하고, ‘동화주의(Assimilation)’가 아닌 사회통합(Intergration)’의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PEGIDA와 네오나치를 비롯해 외국인을 주로 혐오하는 주계층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빈곤을 겪고 있는 계층인데, 네오나치들은 이들에게 외국인들이 자국인들의 일자리와 자국인 여자들을 뺏아가고, 문화를 무너트리고 있다고 선동하고 있다.

 

재작년 베를린에서는 네오나치 정당 NPD가 이슬람 비하 상영회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자 제 1 보수여당인 CDU가 나서서 ‘인종차별’과 ‘종교박해’를 근거로 상영회금지가처분신청을 했고, 이에 제 1 좌파 야당인 사민당(SPD)가 상영회 내용이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표현의 자유 그 자체는 존중 되어야 한다며 상영금지가처분신청 취소를 요구했다. 뭐랄까, 한국에서는 좀처럼 상상도 할 수 없는 묘한 그림이었다.

 

다시 테러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테러에 희생당한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게는 어떠한 말로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를정도로 비극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사건의 전부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다른 기사들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풍자전문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는 신간에서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화 수 컷이 실린다고 미리 밝혔다. 표지에는 ‘앵투샤블(iNTOUCHABLES, 건드릴 수 없는)이란 제목으로 프랑스 영화에 빗대어 무슬림과 정통 유대교도가 “비웃지 말라”고 말하는 컷을 표지로 발행했다. 신성비판에 불관용적인 두 종교를 두고서 말이다. 스테판 샤르보니에 편집장은 “충격을 받고 싶은 이들에게 충격을 줄 것” 이라며, 이 만화가 무슬림을 자극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의도된 것이라 말했다. 또한 이를 두고 ‘언론의 자유’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샤를리 엡도는 수 차례에 걸쳐 자극적인 삽화를 넣어 발행했다.

 

프랑스 최고 이슬람 성직자인 달릴 부바퀘르는 400만 신도에게 자중을 호소하면서도 “이슬람권에서 고조된 분노를 확대시킬 수 있다” 고 샤를리 엡도 측에 경고 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염두해 이슬람권 20여개국 재외공관에 이슬람 예배일 21일 하루 휴업을 지시하였고, 같은 날 예정된 전국의 모든 무슬림 시위를 불허했다. 하지만 잡지 발간은 방관했다. 장 마르크 애로 총리는 “프랑스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면서도 “다만 만화로 권리를 침해받은 개인들이 법원에 제소하는 것은 가능하다”라며 모호하게 나마 샤를리 엡도가 무슬림에 차별적 풍자를 했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결국 프랑스 최고 이슬람 성직자 달릴 부바퀘르의 의도와 달리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인해 이 문제는 PEGIDA와 결부되어 악재가 될거라는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중들 사이에서 경계해야할 이슬람 극단주의와 이슬라모포비아의 간극이 모호해질 것이기 때문에, 불행히도 PEGIDA는 더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크게는 이 문제가 앞으로 유럽의 10년을 뒤흔들어놓게 될 것이라는 분석들도 있다.

 

어떤 의도에서든 이번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다. 왜인지는 지금 일어난 테러의 잔혹함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모두 설명할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희생자들과 희생자들의 가족들에게 삼가조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는 유약함에 절망하는 것일뿐일까? 이 잔혹한 테러는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시위 현장서 정보과 경찰 직원의 범죄행위 발각

미디어오늘의 기사 ‘[단독] 경찰 정보과 직원 ‘기자 사칭’ 불법 채증하다 딱 걸려’ 를 먼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x. A police the information division, detective founded at discharged worker’s demonstration, when he doing illegal collect evidence. Even he impersonated a journalist. It’s also criminal act. At least, he did 3 wrong acts as abuse of authority, Break the Act on the Performance of Duties by Police Officers, Impersonate. Of course, his act is include illegal investigation.
How do you think about when police break the law like gangster?

x. 구로경찰서 정보과 최현규 형사가 기자를 사칭하며, 불법채증, 직권남용을 하다 시민들에게 발각되었다. 최 형사는 불법사찰을 제외하더라도 최소한 직권남용, 경찰관직무집행법을 위반했으며, 기자를 사칭한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경찰이 시민에게 준법정신을 강변하며, 동시에 불법을 자행한다. 정부가, 경찰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대체 우리는 누구에게 이것이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 해야하는걸까.

“경찰이 자신의 소속과 성명을 밝히지 않고 불심검문을 하거나 범죄자가 아닌 시민을 상대로 동의 없이 촬영하는 것은 형법상 직권남용과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에 해당한다. 최씨는 이 날 사복을 입고 입었으나 옷과 카메라 어디에서 경찰임을 알 수 있는 표식은 없었다.”

뜨거운 월요일밤, 스웨덴

 

과연 瑞典, 서전국인가. 스웨덴에서는 평범한 여성들도 블랙메탈을 듣는다고 한다. 어젯밤 80’s 디스코에 아름다움을 발산하던 그녀 또한 블랙메탈 LP 콜렉션을 갖고 있다고 했다. 스피커에서 터져나오는 블랙메탈을 들으며 사랑을 받고 말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뜨거움을 식히려는 의도의 만트라를 틀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차가워지지 않았다. 몇 시간 전 한 친구는 내게 “You break the cold” 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겨울을 끝장내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스웨덴 국가, ‘Du gamla, Du fria, 그대의 조상, 그대의 자유’ 검색해보고 잠깐 혼란스러웠다. 생각해보니 스웨덴은 사민주의 국가이면서도 동시에 아직까지도 입헌군주국이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서 날아온 베를린 빈민청년 하루는 오늘도 격렬하다.

아, 참! 나는 어제 저녁 두부버거를 만들었고, 스웨덴 그녀가 좋아했다. 또한 친구들이 하루종일 오븐에 구운 터키를 먹었다. 채식하는 친구들이 많은 하우스에서 오븐에 터키를 넣는 일은 1년에 한번도 없는 좀처럼 찾기 힘든 일이다. 우리가 뜨거웠던 탓일까, 친구 하나는 옷을 훌렁 벗어버렸고, 우리는 서로를 부등켜 안았다. 그 시각, 잠자던 친구 한명은 두번이나 내려와 음악 소리가 너무 크다고 고함을 질렀는데, 우리는 그것을 ‘너무 신나게 논다’로 착각했다. 그리고 나는 의심이 든다. 과연 Pillow Talk이 언어를 늘게 만드는 것일까. 대화는 커녕 숨쉬기도 힘들었다.

스웨덴 국가는 다음과 같다:
1절
그대의 조상, 그대의 자유, 그대의 북녘의 산은
가장 조용하고도 기쁜 아름다움이라!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하리니
그 곳은 태양, 하늘, 푸른 초원이라.

2절
그대는 세상 위에 그대의 이름이 명예로울 때
오랜 옛날의 기억 위에 올라서리라.
그대의 현재와 과거같은 미래를 알지니,
그렇도다! 북녘 땅에서 살아가고 죽으리라.

3절
나는 영원히, 나의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믿음은 죽음까지 내가 맹세하리라!
그대는 바로 나, 마음과 손으로 보호하리라.
위엄 있는 그대의 깃발을 높이 들거라!

4절
하나님과 나는 집을 위해 서로 싸워야 한다면,
사랑하는 스웨덴을 위해,
나는 세계와 협력을 하며,
아니다! 북녘 땅에서 살아가고 죽으리라.

아니다! 북녘 땅에서 살아가고 죽으리라.

리뷰: 독일 시트콤 ‘Knallerfrauen’

 

시사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본 독일 tv 프로그램 중에 가장 유쾌하다! 누가 그랬던가, 독일식 유머는 관념적이고, 너무 어렵다고! ‘Knallerfrauen, 크날러프라우엔’에서 사용되는 독일어도 굉장히 쉬운 까닭도 있겠지만, 이 시리즈는 대체로 독일어를 모르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독일 저작권 때문에 토렌트로 받는 것은 불가능해보이지만, 유튜브에서 몇 에피소드들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조카에게 자장가로 프로디지의 ‘Firestarter, 방화범’ 을 불러주는 이모, 어딘가 엉뚱해도 왠지 뜨거운 night out, 데이트 신청하고 싶지 않은가?

“I’m the trouble starter, punking instigator.
나는 문제를 일으키는 놈이야, 불타는 선동꾼이지.
I’m the fear addicted, danger illustrated.
나는 공포 도착증자야, 위험한 광경, 그 자체지.
I’m a firestarter, twisted firestarter,
나는 방화범이야, 뒤틀린 방화범이지,
you’re the firestarter, twisted firestarter.
너 또한 방화범이야, 뒤틀린 방화범이지.

I’m the bitch you hated, filth infatuated.
나는 네가 싫어하는 년이야, 발정나 미쳐있는 년이지.
Yeah, I’m the pain you tasted, fell intoxicated
그래, 나는 네가 느낀 고통이야, 약에 도취되어 있는 놈이지.
I’m a firestarter, twisted firestarter,
나는 방화범이야, 뒤틀린 방화범이지,
you’re the firestarter, twisted firestarter.
너 또한 방화범이야, 뒤틀린 방화범이지.

I’m the self-inflicted, punk detonator.
나는 자학하는 사람이야, 펑크 기폭장치이지.
Yeah, I’m the one invented, twisted animator.
나는 유일한 허구야, 뒤틀린 이야기꾼이지.
I’m a firestarter, twisted firestarter,
나는 방화범이야, 뒤틀린 방화범이지.
you’re the firestarter, twisted firestarter.
너 또한 방화범이야, 뒤틀린 방화범이지.
starter… starter… starter…
일으키는… 불러내는… 시작하는 사람…”

담배세 인상에 이은 주류세 인상

기사 먼저 읽기: “정부, 담뱃값 인상 이어 술값 인상 논의中 ‘소주 1병에 5천원?’”

 

담배값 인상 됨과 동시에 금연을 노력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께 저는 “주류세가 오르면 그대들은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된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원수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ㅡ 갈라티아서 4장 16절

정어리 – 48

내가 한국 사회를 지나치게 격하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내가 보았던, 경험했던 것들을 그대로 말할 뿐이다. 다른 무언가를 괴롭히는데 가담하지 않는 이유만으로 발가벗긴채, 쫒기고, 낙인 찍히는 실한오라기가 되어보라. 그럼 어떤 말이 남게되는지. 그 때부터 감상에만 젖어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Brian Jonestown Massacre가 다음 곡 ‘You look great, when I’m fucked up’에서 모두 말하고 있다.

 

Mankind? – Find your future with korean translate

Won’t You Join The Army Now,
당장 군대에 입대하지 않을래?
So You Can Fight And You Can Die? (x4)
그러면 너는 당장 싸우다 죽을 수 있을텐데?

 

Join the army for a way of life
인생의 길을 위해 군대에 입대해
you’ll learn respect and discipline
너는 존경과 훈육을 배우게 될거야
they’ll train you hard to be a man
그들은 널 힘들게 남자가 되도록 훈련시킬거고,
and even to live free of sin
심지어 죄로부터 자유롭게 살게 할거야
in just two years you’ll be a machine
2년 안에 너는 기계가 될테지
that destroys anything within its path
결국 네 길 위에 놓인 모든 것을 파괴할거고,
and after all that brainwashing
그 모든 것은 세뇌 되겠지
you’ll legally be a psychopath
너는 합법적인 싸이코패스가 될거야

 

Fuck the army and its way of life
ㅈ까 군대따위, 그건 인생의 길이야
The patriotic way to fight
싸우기 위한 애국적인 길
with blood and guts and endless screams
피와 자만심과 끝없는 비명들과 함께
how can you say it’s built on dreams?
어떻게 넌 그게 꿈 위에 지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지?
dreams of death and a horrid nation
죽음의 꿈들과 공포스런 국가
prisoners in camps of concentration
집중된 캠프들 안의 수감자들
is this your fucking way of life?
그게 진짜 인생의 길이야?
a pathetic holocaustic strife!
한심한 학살극!

 

Won’t You Join The Army Now,
당장 군대에 입대하지 않을래?
So You Can Fight And You Can Die? (x4)
그러면 너는 당장 싸우다 죽을 수 있을텐데?

 

Travel the world, see foreign nations
세계 여행을 하고, 외국의 국가들을 봐
boost your ego in public relations
홍보 문구 속에 네 자아를 밀쳐넣어
learn of cultures and different races
다른 문화와 인종들을 배우고,
that soon you’ll be tearing to pieces
그게 곧 널 찢어놓게 될거야
see the famine and poverty
기근과 빈곤을 봐
that’s destroying third world countries
그것들이 제 3세계 국가들을 파괴하고 있어
to help a country, you’ll start a war
그 나라들을 돕기 위해 너는 전쟁을 시작해
relentless U.S. corporate whore
냉혹한 미국 기업의 창녀로서

 

Fuck your building industrialization
ㅈ까 너의 산업화된 건물들
in a country not meant for civilization
국가라는 것은 문명만을 의미하지 않아
making them work in shit hole cages
그들을 똥같은 철장 속에서 일하게 하고,
exploiting them with lower wages
최저 임금으로 그들을 착취해
they don’t want your aid or sympathy
그들은 네 도움이나 동정을 원하지 않아
with your establishing a false democracy
당신의 거짓된 민주주의 확립과 함께 말이지
stuff your fascist vision of farce
네 광대 같은 파시스트의 미래상을 채워 넣어
as you shit their pride out of your arse!
네 엉덩이에 쳐박힌 똥과 같은 자부심으로!

 

Attention, about face, forward, march! } sung but not printed
차렷, 뒤로 돌아, 전진, 행진!
Hut two three four (x4) } in record sleeve foldout
헛 둘 셋 넷!

 

Won’t You Join The Army Now,
당장 군대에 입대하지 않을래?
So You Can Fight And You Can Die? (x4)
그러면 너는 당장 싸우다 죽을 수 있을텐데?

 

Well now the army sounds good to you,
그래 지금 군대는 네게 좋게 들릴거야,
they’ll even give you an education too
더욱이 그들은 네게 교육까지 주겠지
but the future looks grim with talk of nuclear war
하지만 미래는 핵전쟁의 이야기와 함께 냉혹해 보여
how will we survive past 1994
어떻게 우리는 1994년을 지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it seems the issue is world domination
그건 세계 지배의 문제처럼 보여
your apathetic greed will lead to termination
네 무관심한 탐욕이 모두를 끝장내게 할거야
fucking around with deadly toys
죽음의 장난감들이 사방에 펼쳐져있는 것은
is not a game for grown up boys!
성장하는 소년들을 위한 게임이 아니야!

 

Fuck your nuclear submarine base
ㅈ까 너의 핵잠수함 기지
that’ll destroy what’s left of the human race
그건 인류가 이루어낸 모든걸 박살내겠찌
all this talk of nuclear power
핵에너지에 대한 모든 이야기
a deadly rain, atomic shower
치명적인 비, 방사능 샤워
pandemonium, insanity and fear
대혼란, 광기와 공포
this talk of death I don’t want to hear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죽음의 이야기
I think it’s time to stop this war
내 생각엔 지금이 바로 이 전쟁을 멈출 때야
your ignorant rivalry will be a deadly score
네 무지한 경쟁은 치명적인 것들이 되버리겠지

 

So now you’ve joined the army,
그래 지금 넌 군대에 입대했어,
Indulged the lies they’ve fed, and now you’re dead!
그들이 네게 준 거짓말들을 탐닉하고, 이젠 네가 죽을 차례야!

기괴한 커피 할인 이벤트

경향 신문 기사 ‘“OO씨,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정중하게 주문하면 50% 할인‘를 먼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이벤트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은 “기괴한 일이다.” 밖에 없다.
정말 이 이벤트가 일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일일까? 오히려 ‘정중한 연기’를 통해 일상적으로 노동자를 배척해도 된다고 확인시키는 일이다. 엔젤리너스 ‘커피숍, coffee shop’은 이 이벤트를 통해 소비자에게 의도된 자본주의적 연기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일전에는 착한 소비, 나쁜 소비에 대해서 한참 말들이 많았는데, 사실 그 또한 자본주의적 연기에 불과하다. 공정무역의 커피 콩을 이야기하던 그것들도 사실 소비자에게 의도된 연기를 요구하는 연출에 불과하다. 일종의 도착증적 연출로서 소비자에게는 죄책감과 공포를 심어주며, 소비자 개인을 무능하고 불안한 존재로 인지하게 한다. 결국 이것은 의도를 은폐하는 기술이며, 또다른 소비를 부추기는 기만이다. 그러한 점에서 구좌파의 흔히 알려진 반자본주의 대중운동 전술은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념적 소비는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도덕적 소비는 발생할 수 없다. 소비는 도덕의 지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비를 거부하는 것’은 도덕의 지표가 될 수 있다.

Nausea – Godhood with korean translate

Take your religious chains
네 종교의 사슬을 택해
you don’t own my soul
너는 내 영혼을 지배할 수 없어
you’ve tried to soak our brains to waste
너는 내가 버려지도록 흡수하려 했지
with holy water in a silver bowl
빛나는 은색 그릇에 담긴 성수와 함께
beware of your godhood
네 신의 신성함을 조심해
for soon they shall rebel
곧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테니
you’ve stabbed us with your sacred cross
너는 네 성스러운 십자가로 우리를 찔렀지
and blessed us with this living hell
그리고선 이 지옥에서 우리를 축복했어
lord, god, father and son
주여, 신이시여, 아버지여 그리고 아들이여
your pious solve their problems with their guns
그들의 총과 함께 네 경건함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해
lord, god, father and son
주여, 신이여, 아버지여, 그리고 아들이여
why must I hang upon a cross for the sins I’ve never done
왜 내가 한번도 동의한 적 없는 그 죄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는가
beware of your godhood
네 신의 신성함을 조심해
for soon they will rebel
곧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테니
we’ll break your chains
우리는 네 사슬을 끊을 것이야
I’ll not burn in your living hell.
나는 네 지옥에서 불타지 않을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