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잠시라 한다.
강한 사람이 되라 한다.
참고 이겨내라 한다.
패배하지 말라한다.
“미숙했던 당신의 과거가 지금의 나를 짖누르고 있다!”
참 편하다.
“미안하다” 한마디면 되니까.
아픔은 잠시라 한다.
강한 사람이 되라 한다.
참고 이겨내라 한다.
패배하지 말라한다.
“미숙했던 당신의 과거가 지금의 나를 짖누르고 있다!”
참 편하다.
“미안하다” 한마디면 되니까.
ㅡ 막 되먹은 긴 글 ㅡ
x. 몇 달 전에 지루가 Julian Assange 도 가입했다며 알려준 OkCupid 사이트를 보고 있다. 가입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추가 정보를 기입해달라고 스팸이 자꾸 날아온다. 귀찮아서 차단하거나 탈퇴할까 하다가, 어차피 한번 들여다보기로 한 사이트니 둘러보기로 했다. 왜냐면 한국에서는 온라인에서 데이트 상대를 찾는 것이 사실상 불법 성매매로 이어지는 것이 절대적인 반면에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재미로 혹은 상당히 진지하게 온라인데이트 사이트나 오프라인 신문지면 광고를 통해 서로 만나고, 사랑을 나누기 때문이다. 나도 사실 별로 믿겨지진 않았지만, 진짜로 그렇다 하니.. 섹스 파트너가 생기건 술 친구가 생기건, 아무렴 어때, 일단 해보는 것이다.
보다 정확한 데이트 매칭을 위해 사이트에서 질문 대답하는 부분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주제의 질문들을 담고 있다는 것. 공산주의, 권력의 집중 등을 다룬 정치, 철학이나 다중연애, 동성애, 항문섹스나 결박 등의 좋아하는 체위와 가학 혹은 피가학 성향 등을 다루는 연애, 섹스, 동물권리라던가 출산계획 그 연장 선상에 있는 아동학대, 교육 등의 복지제도에 대한 자신의 이상향과 상대의 이상향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다. 심지어 술, 담배부터 시작해 대마나 하드드럭을 어느정도 허용하고 엄격하게 다루는지 마약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질문들이 있었다.
그런데…… 180개쯤 했을 때부터 98퍼센트 완료라더니 260개나 대답했는데도 99.6퍼센트 완료라고 한다. 뭔가 데이트 매칭이 아니라 영어시험 보는 기분. 그래서 더이상 대답하는 것은 포기하기로 하였다.
내 프로필에 기본 정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올려놓은 것이 없었는데, 1주일의 한명 꼴로 사람들이 방문하여 읽었다길래 어떻게 된 것일까 했더니 나 또한 프로필에 추가 정보를 기입하고 10명에게 평점을 주면 더 좋은 매칭을 할 수 있다는 창이 뜬다. 따라서 나도 적당한 드립을 쳐보기로 하였다.
– 내가 잘 하는 것:
첫째, 저녁 8시 이후에 마트 가기(독일은 8시면 모든 마트가 닫는다)
둘째, 치해서 사람들한테 키스하고 안아주기
셋째, 간밤에 얼마나 마셨는지 깨닫기. 왜냐면 나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에서 왔기 때문에.
– 만약 당신이 ____ 라고 생각한다면 메세지를 주세요:
“나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고, 단지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닐 뿐이야!”
대충 이정도로 하고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의 프로필을 찬찬히 읽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 것이 내가 원하던 것 아닌가!
스스로 작성한 따끈한 프로필을 읽는 것이다.
맥 빠지는 이야기부터 해볼까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내겐 실망감과 함께 좀 식상하게 느껴진 것은 ‘무엇을 생각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나요?’ 라는 질문에 의외로 섹스라고 대답한 여성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스스로 소개 해놓은 내용들 너무 매력 없어서인지 몰라도 몇 문장에서 호소력 말고, 허세력 짙음을 느꼈다. 캬아… “섹스는 원래 다들 좋아해! 임마, 네가 님포가 아니라면, 이딴거 안 적어도 돼!” 라고 해주고 싶다.
– 편견을 갖고 싶지 않지만 이상하게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것:
여성들의 나이가 많을수록 ‘섹시한 패션’ 이나 매력적인 문장에 더욱 신경을 쓰고, 섹스에 대한 언급이 더 디테일하다. 보통의 젊은 여성들이 섹스라는 단어를 쓸 때에는 “섹스 좋아함ㅇㅇ” 정도의 문장인데, 나이가 많을수록 대체로 “파트너의 키스없이 살 수 없음. 포옹 좋아함. 모닝 섹스 후 커피를 사랑함.” 같은 단서를 붙인다. 편견이라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자꾸 눈에 들어와요.
그리고 ‘이 여섯가지가 없으면 나는 무기력하다’ 라는 질문에는 꽤 흥미로운 것들이 있었는데 아나키즘, 페미니즘과 같은 정치적 성향을 정확히 명시하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너무 마음에 들어 메세지를 보내고 싶은 충동도 들었지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것 같아 메세지를 보내지 않았다. 만날 인연이면 알아서 다 만나게 된다.) 또한 유럽 여자들에게 은근히 광대뼈 페티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라? 나 광대뼈가…? 북방계 아시안들에게 흔한 광대뼈, 그런데 아시안들은 연애에 있어 굉장히 소극적이기 때문에 안 될거야… 이 글 읽고 희망 갖지 마세요. 여러분은 안 생길거에요. 이 글은 당신을 구원하지 않을거야. 이미 여자친구 있다고? 버림 받을거야. 이미 결혼까지 했다고? 당신 부부의 권태기와 섹스리스의 결말에 대해서 가타부타 하지 않겠소!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시오! 우린 안 될거야…
중간에 종종 빵 터졌던 것은 ‘이 여섯가지가 없으면 나는 무기력하다’ 라는 질문의 대답으로 “땅, 불, 바람, 물, 마음, 캡틴 플래닛!” 을 외친 귀여운 여성. 그녀는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를 좋아하는 체인 스모커라고 소개했다.
또 달리 흥미로운 것은 이 매칭 사이트가 자신의 프로필은 물론, 나이, 이름, 사진까지 공개하는 상당히 오픈된 사이트임에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오픈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매칭 시스템 매카니즘은 잘 모르지만, 내게 추천된 사람들 상당 수는 바이섹슈얼 여성이고, 페미니스트들이었다. 이렇게 오픈된 데이트 매칭 사이트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하는 것은 한국과 같은 성차별이 만연한 국가에선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 이 글을 끝 맺어야할지 딱히 좋은 생각이 들지 않던 차에 “I’m really good at…. forget punchlines” 라 소개하던 처자의 말을 빌리며 최근 공개된 2014년 국가별 남녀차별지수 통계로 이 글을 잘라야겠다. 다소 선민의식처럼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이번 남녀차별지수는 여성부까지 있는 한국 사회가 어떤가에 대해 단편적으로나마 잘 보여주는 유의미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론: 아이고- 의미 없다…
World Economic Forum에서 보기: http://reports.weforum.org/global-gender-gap-report-2014/rankings/
1위, 아이슬란드
2위, 핀란드
3위, 노르웨이
4위, 스웨덴
5위, 덴마크
(빨갱이 사민주의 복지국가 북유럽이 휩쓸었다)
7위, 르완다
8위, 아일랜드
9위, 필리핀
10위, 벨기에
11위, 스위스
12위, 독일
…
18위, 남아프리카 공화국
19위, 캐나다
20위, 미국
21위, 에콰도르
22위, 불가리아
23위, 슬로베니아
24위, 호주
25위, 몰도바
26위, 영국
27위, 모잠비크
28위, 룩셈부르크
29위, 스페인
30위, 쿠바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상위)
73위, 온두라스
74위, 몽테네그로 (구유고슬라비아연방, 신유고연방에서 독립)
75위, 러시아 연방
76위, 베트남
77위, 세네갈
78위, 도미니카 공화국
79위, 스리랑크
80위, 멕시코
…
87위, 중국
88위, 우간다
89위, 과테말라
(여러 동남 아시아 국가와 동유럽 몇 국가들은 대부분 이 안에 있다)
103위, 아르메니아
104위, 일본
105위, 몰디브
106위, 모리셔스(마다가스카르 옆 섬국가)
107위, 말레이시아
108위, 캄보디아
109위, 수리남
110위, 부르키나 파소 (아프리카 가나 옆에 있는 국가)
111위, 라이베리아
112위, 네팔
113위, 쿠웨이트
114위, 인도
115위, 아랍 에미리트 연합
116위, 카타르
117위, 한국(남한, 북한은 아예 순위에 없다)
118위, 나이지리아
119위, 잠비아
120위, 부탄
121위, 앙골라
…
125위, 터키(역시 형제의 나라….)
(이후 142위까지는 대부분 내전을 겪으며 민주주의가 들어서지 않은 국가들이거나 아랍 이슬람권 국가들로 142위에는 예멘)
I don’t eat, I don’t sleep,
나는 안 먹고, 안자
I do nothing but think of you.
나 아무 것도 안하고 너 생각만 해
I don’t eat, I don’t sleep,
나는 먹지도 않고, 잠도 안자
I do nothing but think of you.
나 아무 것도 안하고 너 생각만한다구
You keep me under your spell,
너 아직도 나를 마법에 걸어두었구나
You keep me under your spell,
나 아직도 네 마법에 걸려있네
You keep me under your spell.
너 아직도 나를 마법에 걸어두었구나
I don’t eat, I don’t sleep,
나는 안 먹고, 안자
I do nothing but think of you.
나 아무 것도 안하고 너만 생각해
I don’t eat, I don’t sleep,
나는 먹지도 않고, 잠도 안자
I do nothing but think of you.
나 아무 것도 안하고 너만 생각한다구
You keep me under your spell,
너 아직도 나를 마법에 걸어두었구나
You keep me under your spell,
나 아직도 네 마법에 걸려있네
You keep me under your spell.
너 아직도 나를 마법에 걸어두었구나
You keep me under your spell,
너 아직도 나를 마법에 걸어두었구나
You keep me under your spell,
나 아직도 네 마법에 걸려있네
You keep me under your spell.
너 아직도 나를 마법에 걸어두었구나
“리버풀에는 비틀즈의 백 비트와 축구의 박력, 그 밑바탕에는 리버풀 시민들의 땀에 대한 사랑과 투철한 반역 정신이 깔려 있었다. 2011년 새로운 박물관(The New Museum of Liverpool)으로 변신하게 될 ‘리버풀 생활 박물관(The Museum of Liverpool Life)’이 간판으로 내세운 전시는 ‘목소리를 요구한다(Demanding a Voice)’였다. 리버풀 극장 동맹, 여성 참정권 운동, 항만 노동자의 파업과 같은 역사적인 정치 투쟁의 모습이 바로 리버풀 시민들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짐 라킨도 리버풀에서 태어나 이곳 항만노조의 파업 운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한다.
1980년대 대처 정부가 광산 노조들을 거의 함락시키고 항만 노조를 차례대로 손들게 하였지만, 오직 리버풀의 항만 노조만이 끝까지 저항했다. 1990년대 중반 항만 노조의 파업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1998년 영국을 대표하는 대중음악상인 브릿 어워즈(BRIT Awards)의 시상식에서 첨바왐바(Chumbawamba)는 자신들의 히트곡 ‘텁섬핑(Tubthumping)’의 가사를 바꾸어 “새로운 노동당은 항구를 팔아먹었다. 마치 우리들 모두를 팔아먹은 것처럼”이라고 노래했다. 그리고 보컬 댄버트 노바콘은 당시 관중석에 있던 노조운동가 출신 부수상 존 프레스콧의 머리에 얼음물을 부어버렸다. “이건 리버풀 항만 노동자의 몫이다.”라고 외치며. 파업은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의 배신으로 결국 깃발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ㅡ 귀찮아서 네이버 캐스트를 복사함…
귀찮아서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아래 영상은 BRIT Award 라이브.
https://www.youtube.com/watch?v=21eOXIbaSQc
We’ll be singing
우린 노래를 부를거야
When we’re winning
우리가 승리할 때
We’ll be singing
우린 노래할거야
I get knocked down
내가 쓰러지더라도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nna keep me down
당신들은는 결코 날 무너트릴 수 없어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But I get up again
반드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nna keep me down
당신들은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I get knocked down
내가 쓰러지더라도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nna keep me down
당신들은는 결코 날 무너트릴 수 없어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But I get up again
반드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nna keep me down
당신들은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Pissing the night away
진탕 마시며 이 밤을 보내자
Pissing the night away
신나게 마셔대며 이 밤을 보내자
He drinks a whiskey drink
저 남자는 위스키 따윌 마시고,
He drinks a vodka drink
저 남자는 보드카 따윌 마시고,
He drinks a lager drink
저 남자는 맥주 따윌 마시고,
He drinks a cider drink
저 남자는 사이다를 마시고 있고,
He sings the songs that remind him of the good times
저 남자는 좋았던 옛 시절을 떠올리는 노래를 부르네
He sings the songs that remind him of the better times
그는 지금보다 더 좋았던 옛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노래를 부르네
Oh, Danny Boy
어린 소년이여
Danny Boy
어린 소년이여
Danny Boy
어린 소년이여
I get knocked down
내가 쓰러지더라도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nna keep me down
당신들은는 결코 날 무너트릴 수 없어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But I get up again
반드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nna keep me down
당신들은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I get knocked down
내가 쓰러지더라도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nna keep me down
당신들은는 결코 날 무너트릴 수 없어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But I get up again
반드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nna keep me down
당신들은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Pissing the night away
진탕 마시며 이 밤을 보내자
Pissing the night away
신나게 마셔대며 이 밤을 보내자
He drinks a whiskey drink
저 남자는 위스키 따윌 마시고,
He drinks a vodka drink
저 남자는 보드카 따윌 마시고,
He drinks a lager drink
저 남자는 맥주 따윌 마시고,
He drinks a cider drink
저 남자는 사이다를 마시고 있고,
He sings the songs that remind him of the good times
저 남자는 좋았던 옛 시절을 떠올리는 노래를 부르네
He sings the songs that remind him of the better times
그는 지금보다 더 좋았던 옛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노래를 부르네
Don’t cry for me
날 봐서라도 위해 울지 말아요
Next door neighbor
나의 다정한 이웃이여
I get knocked down
내가 쓰러지더라도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nna keep me down
당신들은는 결코 날 무너트릴 수 없어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But I get up again
반드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nna keep me down
당신들은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I get knocked down
내가 쓰러지더라도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nna keep me down
당신들은는 결코 날 무너트릴 수 없어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But I get up again
반드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nna keep me down
당신들은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When we’re winning)
(우리가 굳건히 승리할 때)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신나게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Ooh, ooh, ooh)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When we’re winning)
(우리가 굳건히 승리할 때)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신나게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Ooh, ooh, ooh)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When we’re winning)
(우리가 굳건히 승리할 때)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신나게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Ooh, ooh, ooh)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When we’re winning)
(우리가 굳건히 승리할 때)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신나게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Ooh, ooh, ooh)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When we’re winning)
(우리가 굳건히 승리할 때)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신나게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Ooh, ooh, ooh)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When we’re winning)
(우리가 굳건히 승리할 때)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신나게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Ooh, ooh, ooh)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When we’re winning)
(우리가 굳건히 승리할 때)
I get knocked down
시련에 꺾일지라도
(We’ll be singing)
(우린 신나게 노래를 부를거야)
But I get up again
난 다시 일어설거야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너희는 결코 날 무너뜨릴 수 없어
(Ooh, ooh, ooh)
x. 일 안하고, 남이 흘린 빵부스러기나 주워먹으며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난 이 노래가 이별타령이나 하는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x. i hope so that thousand young people don’t work, eat bread crumbs by riches dropped and live only for their lives. (i don’t think so this is just farewell song to ex-lover)
ㅡ
This ain’t appropriate now
이젠 적절하지 않아
Push my hand off your side
네 쪽으로 향한 내 손을 떨쳐내
There’s no one else around
주위엔 아무도 없어
I just wanna tease your eyes
난 그냥 네가 바라본 곳을 조롱하고 싶어
Maybe we can check these locks
아마도 우린 이 단절을 알 수 있겠지
I just wanna go inside
단지 안 쪽으로 향하고 싶을 뿐이야
Why’s it so dead on a Friday night?
왜 이 금요일 밤, 마냥 숨죽이고 있어야하지?
I guess the morning’s here if you wake by five
5시 네가 일어날 때 쯤이면 아침이 올거야
You send my life, into somewhere
너는 어딘가로 내 마음을 보냈지
I can’t describe
설명 못하겠다
So many details
더 자세히는
What has happened to the time we had
우리 함께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I thought you said you won’t ever
난 네가 다시는 안 할거라 생각했어
(I know I promised to wait…but its been so much longer… I really did try)
(내가 기다리기로한거 기억해…하지만 그건 너무 오래 전이고…난 정말 시도했어)
Won’t e-ever leave me
절대 날 떠나지 않겠지
What happened to us?
우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I never….I…I really did try…)
난 절대….나는…나는 진짜 시도 했어…)
Okay I’ll take you back
그래 내가 네 뒤를 봐줄게
Alright let’s pick up where we started
좋아 우리가 시작한 곳으로 데려다 줄게
Don’t think that’s in my head
내 머리 속에 뭐가 있는지 생각하지마
I’m not a bit cold-hearted
난 그렇게 차가운 사람이 아니야
Save yourself tonight
오늘 밤은 네 스스로 구원해
Tomorrow I’ll get you back
내일은 내가 널 지켜봐줄게
I don’t think I have your problem
네 문제는 네 문제일 뿐이지
(I don’t think I have your problem)
(네 문제는 나랑 상관 없어)
I don’t think I have a problem
난 아무 문제 없어
I don’t think I need to fuss
소란 떨 필요 없잖아
I don’t wanna bother you
널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And there is no reason to rush
서두를 이유도 없고 말이야
You send my life, into somewhere
너는 어딘가로 내 마음을 보냈지
I can’t describe
설명 못하겠다
So many details
더 자세히는
What has happened to the time we had
우리 함께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I thought you said you won’t ever
네가 다신 안 할거라 생각했어
Won’t e-ever leave me
절대 날 떠나지 않겠지
What happened to us?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What happened to us?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거지?
What happened to us?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You send my life, into somewhere
너는 어딘가로 내 마음을 보냈지
I can’t describe
설명 못하겠다
So many details
더 자세히는
You send my life, into somewhere
너는 어딘가로 내 마음을 보냈지
I can’t describe
설명 못하겠다
So many details
더 자세히는
You send my life, into somewhere
너는 어딘가로 내 마음을 보냈지
I can’t describe
설명 못하겠다
So many details
더 자세히는
You send my life, into somewhere
너는 어딘가로 내 마음을 보냈지
I can’t describe
설명 못하겠다
So many details
더 자세히는
Government hired Thugs flip over food stalls in Gangnam, police do nothing.
This isn’t a strange business in Korea. This is same stuff when korean construction companies want to evict residents, government and companies hire gangster to beat down people and crash their house. Obviously this is the cozy relations between government and business. Even Perry Sewol case verified also the cozy relations between Korea Coast Guard and Chonghaejin Marine Co., Ltd. President Park promised herself about ‘Sewol’ special law and inquiry will set up to determine the cause of the accident. But she didn’t do anything until now and just disappear on media about this criminal case.
So now you understand why I hate korean government. I really want to take ’em all into history book.
ㅡ
강남구청이 깡패들을 고용해 거리의 노점상들을 뒤엎는데, 경찰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
이건 한국에서 이상할 일이 아니다. 이 것 역시 한국건설사들이 원주민들을 쫒아낼 때, 정부와 기업이 용역 깡패들을 고용해 사람들을 두들겨 패고, 원주민들의 집을 부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 것은 확실히 정경유착이다. 더욱이 세월호 사건에서는 해경과 청해진 해운이 유착 되었다는 사실이 확인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세월호 특별법’ 을 만들고, 특별조사위를 꾸려 이 사고의 원인에 대해 조사할 것이라 약속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까지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며, 이 범죄 사실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제 당신은 내가 왜 한국 정부를 싫어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난 정말로 저 놈들을 역사책에 쳐 넣고 싶다.
ㅡ
Original article from: Korean Observer(http://www.koreaobserver.com/open-letter-to-gangnam-city-hall-and-mayor-shin-24193)
My name is Adam and I’ve lived in Korea for close to three years. I love this country and have traveled to nearly every corner of it. I love the people here, and I’ve been nothing short of taken with the friendliness I’ve received in my time here. It’s been a great place for me to call home.I make it a point not to get involved in politics in Korea. I know that living in a place that has a different structure than I grew up in necessitates my deference to the way things are here. I get it.
However, as to your actions towards the street vendors in this country, you are messing it up… Badly.
Here’s your reasoning, if I’m to understand correctly. These people were not paying rent, or didn’t have proper permits. They also were, in turn, not paying taxes on their earnings. They were also, in your laughable terms “threaten(ing) public safety”, by taking up sidewalk space. Right, let’s only lightly bring up that calling these bustling street food stands a “threat” makes me question how you get around in an average day without a series of panic attacks.
As for permits and taxes: Sure. However… You could have gone a number of more diplomatic ways, like having them removed within 30 days if they failed to produce a permit and/or a tax registration number. This also would have given you opportunity to reduce the number of permits and places you issued them. I’m sorry to tell you that this is slightly more time-consuming, but it’s effective and humane. But I’m sure that wasn’t your objective. Nope. Instead.. you did this:
You also wanted to get the area “cleaned up” to make it more “foreigner-friendly”. Let me tell you, street food is one of the most endearing parts of your culture. Every single foreigner I know has cravings for at least one of the cheap and endearing foods at these welcoming stalls. It’s a great foray into understanding Korea and its people, and I personally have some of the best conversations with the friendly older people running the stalls.
Seriously, look at this lady! One of my favourite people I’ve met here.
The entire respect I have for this country, wrapped up in every permed, flower-print pants wearing woman doing everything they can to make it by. Every one of them has seen this country in and out of a war, a financial crisis, and probably lost nearly everything they had…twice. And there they are, smiling and getting by. I have a great deal of respect for this country and its people, and their ability to march on, without complaint, to better things.
Here’s the thing: You’re politicians, and you have your priorities. These people are about, as a wild guess, 90% elderly people, using the stands as their primary source of income. I’m sure that there are considerations of gentrification and taxes, but these are also your constituents. As you are aware, the amount of elderly Koreans living below the poverty line is around 50%. HALF, with only a third receiving a pension. With those numbers, it’s hard to escape the notion that you, as their government, have failed them…big time.
In fact, you’ve failed your elderly population as a nation for a long time now. These people may not have been forthcoming with permits or tax revenue, but they certainly are a lot less upset with the lack of care you all have shown to your older citizens than they should be. I don’t see a bunch of tax-evading hustlers threatening public safety when I take that mighty walk up from exit 11. I see people, old enough to deserve better treatment, hustling and selling food proudly and with a passion for doing themselves and their family proud.
But those people, those mandoo-slinging should-be retirees, were such a ‘threat’ that you hired goons to dismantle and throw their shops into the street on some lazy Monday. Well, you sure showed them.
However, here’s what it showed a great number of people. You have the capacity to treat the most vulnerable people in your society without a shred of respect. You have continually shown the capacity to maliciously overreact to what could have been an administrative issue. You’ve shown me that a gutless, reactionary, and pitiful way to deal with this situation befitting of a junta. As you gentrify your city to show your face to the world, I hope you can do better by the people you claim to represent. After all, you do work for them.
– Adam R Carr
Q: You don’t understand , these people are not paying rent/not declaring taxes.
A: Oh, but I do. I clearly said that this, although sometimes the case, is no reason to hire thugs to knock over carts. Also, clearly this is ineffective (as well as thuggish).
Q/S: You have obviously never run a business. They are taking revenue away from people who pay rent!
A: Umm, I have owned a business. Also, none of the merchants on that main drag sell this kind of food. Why? Because the rent on that main road street would be quite the struggle when you’re hawking mandoo. In fact, there are very few restaurants on that main street at all unless they are high grossing, bigger brand restaurants (restaurants which don’t sell the same thing at all).
Q/S: They are run by the mafia, trust me.
A: Yeah, no. Trust me is not necessary and sufficient grounds to refute my opinion.
Q/S: They are a safety hazard/menace.
A: Do you mean safety hazard as in tripping? I’ll give you that maybe it is not good for congestion on the main sidewalk, sure. However, I’ve never spent any time standing in place on that street. I have spent time waiting to get up exit 11, but I don’t see either of us complaining about that.
Feel free to add your comment to the bottom. I would love to address your opinion. I’m not perfect, but I sure would appreciate a good counterpoint.
You can find more of the author’s articles on his blog, Chase the Dot.
Adam posted the letter on his blog in March this year. Nevertheless, Gangnam continues to hire thugs to evict street vendors. The first three of the following photos were taken by Calum Woodward on Oct 23, while the others were taken on Oct. 17, the International Day for the Eradication of Poverty and
x. when i was half smaller than now, i learned the world from the movie. i believed there is equality, but peaple told me that’s not real. then i realized what is life and reality. i miss when my father slapt on my face, because that time i only afraid my father and my fault. but now i afraid myself, ’cause i know what is beyond of there. i grew up with this <토요명화, Saturday Night Movies> in korea. just i remember in this moment, and i still love so much films. and this signal music makes me close my eyes. there was no loud, only loud was in my mind.
x. 지금보다 제 키의 반만 하던 때에 저는 영화들을 통해 세계를 배웠습니다. 저는 거기에 평등 따위가 있을거라고 믿었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건 진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삶과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제 따귀를 때리던 날들이 그리워요. 왜냐면 그 때 두려웠던건 오로지 아버지와 제 실수였거든요. 하지만 지금 나는 내가 두렵습니다. 왜냐면 이제 나는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거든요. 나는 한국에서 ‘토요명화’ 와 ‘주말의 명화’ 들을 보고 자랐습니다. 지금 그 때를 기억해요, 나는 영화들을 너무 사랑했고, 이 시그널 음악을 들을 때면 조용히 눈을 감았다는걸.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전쟁이 제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언제든 후회의 눈물과 전화 한통이면 모든걸 해결할 수 있는 당신이 어떻게 나의 삶을 알 수 있겠습니까?”
ㅡ 2014년 5월 16일, 새벽
맥주, 보드카, 위스키, 페피.. 숙취와 함께 일어나
낯설게, 내 방을 낯설게 두리번 거리니
간밤에 친구가 들어보라며 손 등에 적어준 ‘Der Traum ist aus’ 가 있어.
부스스한 머리로 조용히 노래를 듣는다.
우린 뜨거웠지, 뜨거웠고, 내일도 뜨거울 것이라네.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Ton Steine Scherben 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서베를린에서 포크, 블루스, 프로토-펑크, 싸이키델릭 락을 하던 아나키스트 밴드입니다. 70년대 말부터는 게이 운동을 시작했고, 독일은 통일하면서 90년대 초반에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되었죠. 보수 기독교에서도 이를 지지했습니다. 아무튼 81년에 불기 시작한 뉴웨이브에 합류하다가 NDW(Neue Deutsche Welle, 새로운 독일의 웨이브)앨범을 적극적으로 내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ㅠ 좋은 녹음을 할 수 없는 것에는 불만이 있어 앨범을 많이 내진 않았습니다. 82년부터는 녹색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는 80년대 유럽에 확산되는 녹색물결에 밑거름이 되었고, 86년 체르노빌 사고와 함께 유럽에서의 녹색에 대한 갈망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다시 197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서 보자면, 이들은 매우 급진적인 아나키스트 프롤레타리아 청년운동에 불을 지폈고, “투쟁은 계속”, “이 마지막 전투에서 우리가 승리한다”, “인간 사냥꾼” 같은 혁명적 텍스트로 무장했으며, 이후에는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에도 불을 지폈으며, 많은 시위들 최전선 바리케이트 앞에서 이들의 노래가 울려퍼지게 되었습니다. 뮤지션으로서 음반 작업만 한 것이 아니라 이외에도 여러 간행물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Ton Seine Scherben 은 독일운동에서 매우 상징적인 존재로서 Mantus , Beatsteaks , Freygang , Totenmond , Cochise , Klaus Lage , Marianne Rosenberg , Misha Schoeneberg , Rocko Schamoni , Echt , Bruder&Kronstädta , Slime , Knochenfabrik , Alan Woerner , Freundeskreis , Xavier Naidoo , shin-en , Wir sind Helden , Britta , ZSK , Die Sterne , Terrorgruppe , Die Ärzte , Samsas Traum , Rawside , WIZO , Grantig , Die Prinzen , Joachim Witt , Clueso , den Dödelhaien , den Toten Hosen 그리고 Dritte Wahl 같은 독일의 국민 밴드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밴드들이 그들의 음악을 재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다수의 영화와 문학작품에서도 여러 차례 인용되었습니다.
71년에 TV 토크쇼에 출현해 토론 도중 사람들을 위해 청소년처벌기관에 대해 말할 마이크가 필요하다며, 토론 테이블을 도끼로 찍은 사건은 매우 유명합니다. (아래 영상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sa0rpCgVLs4
(음악은 본 페이지 최상단의 유튜브를 재생)
Ich hab geträumt, der Winter wär’ vorbei
나는 겨울이 끝나는 것을 꿈 꾸었다네
Du warst hier – und wir war’n frei
너는 여기 있고 – 그리고 우리는 자유로웠지
Und die Morgensonne schien
그리고 아침 태양이 빛났지
Es gab keine Angst und nichts zu verlieren
근심도 없고,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았어
Es war Friede bei den Menschen und unter den Tieren
사람들과 동물들 모두 자유로웠지
Das war das Paradies
그건 낙원이었어
Der Traum ist aus
꿈은 끝나고 말았네
Der Traum ist – aus
꿈은 끝나고 말았어
Aber ich werde alles geben, dass er Wirklichkeit wird
하지만 그 꿈이 확실해질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것이라네
Aber ich werde alles geben, dass er Wirklichkeit wird
하지만 그 꿈이 확실해질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것이야
Ich hab geträumt, der Krieg wär vorbei
나는 전쟁이 끝나는 것을 꿈 꾸었다네
Du warst hier – und wir war’n frei
너는 여기 있었고, 우리 모두 자유로웠어
Und die Morgensonne schien
그리고 아침 태양이 빛나
Alle Türen waren offen, die Gefängnisse leer
모든 문은 열려 있었고, 감옥들은 비어 있었지
Es gab keine Waffen und keine Kriege mehr
어떤 무기도 없었고, 전쟁도 더이상 없었지
Das war das Paradies
그건 낙원이었다네
Der Traum ist aus
꿈은 끝나고 말았네
Der Traum ist – aus
꿈은 끝나고 말았어
Aber ich werde alles geben, dass er Wirklichkeit wird
하지만 그 꿈이 확실해질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것이라네
Aber ich werde alles geben, dass er Wirklichkeit wird
하지만 그 꿈이 확실해질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것이야
Gibt es ein Land auf der Erde, wo der Traum Wirklichkeit ist?
그 꿈이 실제 하는 곳이 이 땅위 어딘가에 있을까?
Ich weiß es wirklich nicht
나는 확신하진 못하겠어
Ich weiß nur eins, und da bin ich sicher:
나는 단지 한가지를 알고 있지, 거기선 내가 안전할 것이라고:
Dieses Land ist es nicht
그리고 이 나라는 그런 곳이 아니야
Dieses Land ist es nicht
이 나라는 그런 곳이 아니야
Dieses Land ist es nicht
이 나라는 그런 곳이 아니야
Dieses Land ist es nicht
이 나라는 그런 곳이 아니야
Der Traum ist aus, zu dieser Zeit
그 꿈은 이 순간에 끝나고 말았네
Doch nicht mehr lange – mach dich bereit
하지만 오래진 않을거야 – 너도 준비해
Für den Kampf ums Paradies
낙원으로 향하는 투쟁을 위하여
Wir haben nichts zu verlieren, außer uns’rer Angst
우리는 두려움 말고는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네
Es ist uns’re Zukunft, unser Land
그것이 우리의 미래고, 우리의 나라가 될 것이야
Gib mir deine Liebe, gib mir deine Hand
네 사랑을 내게 줘, 네 손을 내밀어줘
Der Traum ist aus
꿈은 끝나고 말았네
Der Traum ist – aus
꿈은 끝나고 말았어
Aber ich werde alles geben, dass er Wirklichkeit wird
하지만 그 꿈이 확실해질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것이라네
Aber ich werde alles geben, dass er Wirklichkeit wird
하지만 그 꿈이 확실해질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것이야
Dass er Wirklichkeit wird
그 꿈이 확실해질 것이기에
Wirklichkeit
확실해질 것이기에
* 경고: 술 마시러 가기 위해 프린트 중인 프린터의 전원 코드를 뽑아 버리듯 글을 마쳐버렸습니다.
x. 며칠 간의 영화 이야기와 <정어리>
– <Dragnet, 드라그넷>, 1987: 80년대 여피들을 상대로한 코미디 범죄물, 80년대의 향수는 언제든 좋다.
– <Lucy, 루시>, 2014: 최민식의 연기가 생각보다 돋보이지 않았다. 중반부터 노골적 중2병 스타일. 결말로 향할수록 아이디어 부족이 눈에 보인다. 매트릭스, 맨 프롬 어스, 스페이스 오딧세이 + 뻔하디 뻔한 아시안 갱스터 클리쉐를 섞어다가 황급히 “손님! dvd 대여기간 만료요!” 하며 영화를 끝냄. 뤽 베송 개새끼야.
– <22 Jump Street, 22 점프 스트리트>, 2014: 전편인 <21 점프 스트리트> 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다소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요새 나오는 어지간한 코메디보다는 나은 편. 후속편에 대한 엔딩이 깨알 같은 재미로 요즘 헐리웃 영화들의 후속편에 대한 세태를 조롱했다.
–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2006: 박광정, 정보석 같은 괜찮은 배우들을 캐스팅 하고서도 실망시킨 영화. 어딘가 홍상수의 느낌이 베어있는데, 시도 자체를 조롱하고 싶진 않다.
– <The Devil’s Path, 흉악 – 어느 사형수의 고발>, 2013: 흉악하게 못 만든 영화.
– <족구왕>, 2013: ㅈ같은 사랑아, 빌어먹을 청춘아!!!!!!! 근데 나는 한국의 대학 문화를 모른다는게 함정.
– <Tamako in Moratorium,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2013: 이런 류의 일본 영화들 이제 그만 나올 때 되지 않았나. 아.. 내 시간. 왠만한 중2병 영화들조차도 영상미는 갖추는데, 이건 아무 것도 없다. 고민 같지도 않은 고민들.
– <Haywire, 헤이와이어>, 2011: 좋은 배우들로 계속 잠이 오게 만드는 쓰레기 영화.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말로리 케인’은 미국 정부에 고용된 고도로 훈련된 여성 첩보요원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그녀는 억류되어있던….”.
– <Black Angel, 블랙 엔젤>, 2002: 틴토 브라스, 이 놈의 영감탱이ㅋㅋㅋㅋㅋㅋ 에로의 거장이 아니라, 코메디의 거장ㅋㅋㅋㅋㅋㅋㅋ
– <Into the White, 대공습>, 2012: 실화 영화들이 대개 노골적으로 눈물을 쥐여짜는데 초점을 두는 반면, Into the white는 그렇지 않아 보기 편했다. 각국 언어로 연기를 해 더욱 몰입감이 있었다. 한국제작사들의 한국어 타이틀 작명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제외하고는 괜찮은 전쟁영화.
– <스톤>, 2013: 화려한 캐스팅이 아니더라도, 정우성이 출연한 <신의 한수> 와 비교해도 아깝지 않은 영화다. <신의 한수> 가 2014년 작품임에도 말이다. 다소 낮은 예산의 영화들에서 완성도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썩 괜찮은 완성도도 보여주었다.
– <해적: 바다로 간 산적>, 2014: 호화캐스팅에 이케아 같은 영화다. 물론 이케아 같다는 의미는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망가졌다는 것을 뜻한다. 액션 영화임에도 계속 졸았기 때문에 두번이나 봐야만 했다.
– <Grudge Match, 그루지 매치>, 2013: 드 니로와 스탤론의 만남에서 중후한 무엇인가를 기대했지만, 70’s, 80’s 스타들을 인스턴트식으로 재활용한 영화. 뻔하디 뻔한 서사. ‘환전 해달라는 할아버지에게 은행 여직원이 “애나(엔화) 드릴까요? 딸나(달러) 드릴까요?” 하는 식’ 의 개그가 생각난다.
– <청아>, 2010: 제발 이런 영화 만들고 예술 영화라고 둘러대지 마라. 기본적인 전개의 개연성도 없어 딱히 악평을 주기도 어려울정도.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으면 꼭 함께 볼 것.
– <All Things Fair, 아름다운 청춘>, 1995: 크흑, 2시간 8분의 크흑…. 사랑이란 누구의 이름인가. 감히 별 다섯개를 드린다.
– <Falling Down, 폴링다운>, 1993: 조엘 슈마허는 반자본주의적 작품을 다루는 감독이 아니다. 허나 공교롭게도 마이클 더글라스의 <폴링 다운> 은 올리 에델 감독의 <Last Exit to Brooklyn, 부르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1989 처럼 자본주의 민살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모두 낙원에 대한 생각이 달라요.” 감히 별 네개 반을 드린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2005: 별 반개 준다.
– <원 나잇 스탠드>, 2010: 형편 없다는 말 밖에 못하겠다. 시나리오부터 연기까지.
– <Borgman, 보그만>, 2013: 개봉부터 기괴한 영화 열 손가락에 든다고 악평이 자자했던 영화. 욕하지 마라, 나는 종종 웃으며 재미있게만 봤다.
– <On The Road, 온 더 로드>, 2012: 영화 <컨트롤> 에서 불후의 밴드 ‘조이 디비젼’ 의 싱어 이안 커티스를 연기한 ‘샘 라일리’, 영화 <프라이데이 나잇 라이트> 의 ‘가렛 헤드룬드’, 영화 <락앤롤 보트> 의 톰 스터리지, 영화 <인 투더 와일드> 의 ‘크리스틴 스튜어트’, 영화 <멜랑콜리아> 의 ‘커스틴 던스트’, 영화 <Her, 그녀> 의 에이미 애덤스,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 의 ‘비고 모텐슨’, 영화 <레이> 의 ‘테렌스 하워드’, 영화 <아임 낫 데어> 의 ‘래리 데이’, 영화 <염소들> 의 ‘리카도 안드레스’, 영화 <커피와 담배>, <위대한 레보스키>, <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 <망각의 삶>, <아트 스쿨 컨피덴셜>, <뉴욕 스토리>, <판타스틱 소녀 백> 의 ‘스티브 부세미’, 그리고, ‘킴 붑스’. 이런 캐스팅만 보더라도 이 전에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나 <그들 각자의 영화관> 같은 영화를 감독한 월터 셀러스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만든다. (배우 ‘킴 붑스’의 이름은 ‘Kim Bubbs’ 인데, 왠지 ‘Boobs’ 드립을 치고 싶어 캐스팅한 느낌이 들 정도)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세 작가.
이 영화 <온 더 로드> 는 잭 케루악의 자전적 소설 <길 위에서> 영화화한 것이다. 사실 대개 이런 영화들은 좋은 평을 받기 어려운데, 썩 나쁘지 않게 만들었다. 원작의 힘이랄까. 이 모든 것들이 잭 케루악의 진짜 이야기라서 그럴까.
영화 속, 한 대사가 나를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함께 해온 누군가가 떠나며, “I’m on way for me, 나는 길 위에서 나가려구요” 라고 남겼다. 왜 번역이 이따위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저 씬의 앞뒤 문맥을 함께 읽으면 되려 괜찮은 의역이라 생각한다. 그 절망감을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이 말을 들었던 잭 케루악의 나이는 딱 내 나이쯤이었고, 정처없이 목적도 없이 글을 쓰며 3년 째 여행 중이었으며, 여행이 시작된지 4~ 5년 가량 지난 뒤에 그의 책 ‘길 위에서’ 를 출판했다. 더구나 1951년 4월 2일에서 4월 22일 사이에 일종의 암페타민인 벤제드린에 취한 삼 주 동안, 단 하나의 구두점 없이 타자기에 끼운 36미터 길이의 두루마리 종이띠에 이 소설을 썼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36 미터 길이의 두루마리 종이띠는 마치 그가 말하던 길과 같다. 이 압도적인 비트 세대 작가들의 글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단숨에 읽어 버리는 것이다. 며칠이나 굶다 겨우 음식을 맞이했던 잭 케루악의 친구들이 저녁 만찬에서 예의따위 생각할 겨를 없이 게걸스럽게 요리들을 먹어치웠듯이 이 책들에 담긴 문장을 게걸스럽게 읽어 치우는 것이다. 마치 스피드를 할 때처럼 생각 같은 건 나중으로 미루어야만 한다. 생각하는 동안, 새로운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 가 출판 된 이후, 이 책은 마치 페이지 마다 LSD를 잔뜩 적셔놓은 것처럼 팔려나갔고, 서점에서 가장 자주 도둑 맞는 책 중 하나가 되었으며, 잭 케루악은 이 소설 하나로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 모두를 길 밖으로 내몰았다. 잭 케루악은 ‘비트, Beat’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고선, 음악의 박자가 아니라 단지 ‘세상의 모든 관습에 대한 지겨움의 표현일 뿐’이라고 말했고, 젊은이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고, 비트닉(Beatnik, 비트족)이 되었다. 밥 딜런부터 짐 모리슨, 커트 코베인 같은 뮤지션은 물론, <이지라이더>, <델마와 루이스>, <브로큰 플라워> 같은 로드 무비들도 다 잭 케루악이 길 위에 뿌린 씨앗(크, 정액이라고 표현하려다 참았다)에서 태어났다.
길 위에서 그들은 모두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었다. 차를 운전하다 기름이 떨어지거나 여비가 떨어지면, 같으 길을 지나는 여행자에게서 기름값을 받고 태웠다. <길 위에서> 에 담긴 내용처럼 종종 몸을 팔기도 했고, 먹을 것과 술, 담배들을 훔치기도 일쑤였다. ‘히치하이킹’ 이란 것도 이 시절에 생겨난 문화라 할 수 있고, 몰래 화물열차에 올라타 미 대륙을 횡단하거나 중간 중간 일하던 공장 혹은 농장에 있던 사람과 눈이 맞아 사랑을 나누고,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1950년대 한국은 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전쟁의 혜택을 받은 미국은 모든 것이 풍족했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1959년 한 해에 미국 여자들이 립스틱에 쓴 돈이 당시 돈으로 무려 20만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국은 권태로울 만큼의 안락함을 영위하면서도, 젊은이들은 이러한 소비지상주의에 환멸을 느꼈다. 이들에게는 어디론가 폭발할 것이 필요했지만, 그런 구실이 없었다. 매카시즘의 광풍만이 불고 있었다. 당시 <길 위에서> 의 책 광고 문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밤새 거친 파티를 열고, 앉아서 정열적인 비밥재즈를 듣고, 항상 어딘가로 움직이며 마시며 사랑을 나눈다. 그 어떤 새로운 경험에도 그들은 무조건 예스다!” 그리고 그들은 잭 케루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소설 <길 위에서> 같이 폭발했다.
다시,
“나는 길 위에서 나가려구요”.
그래서 나는 결국 와인을 열었다.
그들을 향한 나의 애정도 좀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삶과 열정을 잊지 않겠다’ 맹세를 서슴치 않던 이들이
포기하고 떠나는 것을 볼 때마다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나는 여행중이진 않지만, 혹은 여행이라고 해도 상관 없지만, 지금 시점에서 베를린에 있는 내게 저 말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떠날 때 남기는 말이다. 아직 내 인생은 그리 길지 않은데, 내게 남겨진 저 한마디를 마주할 일이 꽤나 많았다. 올해에만도 두 번이나 들어야만 했다. ‘이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하고 궁금해하기도 했으나, 그 답은 언젠가 그 모든 사람들을 다시 만나 알게될 것이라며 더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내가 <정어리> 를 쓰기로 한 것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나 비트 세대들 때문이 아니었다. 20대의 절반 이상을 병원에 매여있어야 했는데, 나는 그 처방약들에 의해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어떤 날은 약이 너무 세서 내가 무엇을 한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고, 나는 기록을 남기는 것을 택했다. 내가 나를 잊지 않도록 그래야만 했다. 두 차례에 걸친 병원 생활은 가혹했다. 혼자서 눈물, 콧물을 흘리고 토해가며 좌절했다. ‘내 인생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는 것일까’ 하고 자책하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미안했다. 퇴원 이후에도 1년이 넘도록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입원 당시, 약물 때문에 책 읽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던 나는 슬라보예 지젝의 <What’s up totalitarianism?> 과 <Organs without Bodies: Deleuze and Consequences> 를 독본하기에 위해 노트에 배껴써가며 읽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복용하는 약물과 종종 맞는 주사의 양과 이름을 기록했으며, 그에 대한 효과, 부작용들과 내 기분을 비롯한 상태, 하루종일 무엇을 했는지 기록을 했다. 복용하는 약물의 양이 늘어갈 수록 일기는 짧아져 갔으며, 퇴원하고 나서 다시 읽은 일기를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퇴원 직전에는 단 한줄도 적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 세 권으로 엮인 이 노트들은 서울에서 베를린으로 오기 직전 모두 불태웠다. 그 시간들을 기억하기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 노트들은 불탔음에도 기억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차려입고, 젊잖게 무엇인가 대하는 것은 나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보다 공격적인, 화염병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나는 보다 불편한 글을 쓰고 싶다. 갈등을 드러내고 싶다. 미로 같은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글 <정어리> 는 전혀 그런 글이 아니다. 오히려 내게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차분한 것이다. 지진이 났다면 테이블 밑에 웅크려 머리를 쳐박지 말고, 집 밖으로 나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황망한 결론:
비트 세대 작품들을 보다 보면, 괜스레 생각이 많아진다.
친구 녀석이 생일이다. 나가서 싸구려 위스키라도 한 병 사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