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t: 1월 31일, 해방촌 빈가게, 아나키스트 모임

해방촌 아나키

1월 31일 서울, 해방촌, 빈가게, 저녁 7시 30분부터 아나키스트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조약골씨는 올해 열릴 에코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하고, 여러분도 참석해 여러 이야기들을 하고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하는 계획들을 이야기 하실 수 있습니다. 공연 또한 준비 되어있으니 참석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평소 아나키즘에 대해 관심만 있었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 망설이며 글만 읽었던 분들께서도 이 기회에 다른 아나키스트들을 만나 아나키즘을 어떻게 삶에서 실천하고 있는지,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함께 이야기 해보면 좋겠습니다.
해방촌 빈가게 주소는 서울시 용산동2가 19번지 1층입니다.

 

Direct action gets satisfaction!

Exhibition Review: Bartleby, Jason Honea, Modern Shamanism

Saturday 24th January // 19:30 // THE SHITTY LISTENER live + KRAPOOLA MANOSLIGERAS at Bartleby & Co.

 

어제 노이쾰른의 작은 서점 Bartleby에서 Jason Honea의 퍼포먼스를 봤다. 그는 엊그제 마흔 일곱살 생일 선물로 Circle jerks 티셔츠를 받았다며,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얼큰히 취한 그는 여러차례 자신의 벨이 어디로 사라졌냐며 관객들 앞에서 자기 친구들을 향해 호통을 쳤었는데, 결국 벨을 찾지 못해 키체인으로 종소리를 대체했다.

 

제이슨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출신이고, 80년 대 펑크 씬을 향유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살던 동네에는 온갖 갱들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아시안 갱, 치노 갱, 러시안 갱, 아일리쉬 갱… 그런데 이 빌어먹을 갱들은 하나 같이 ‘화이트 스키니 어메리칸’을 싫어한다는 것. 제이슨의 친구들은 줄곧 이 갱들에게 얻어터지기 일쑤였고, 그 중 몇몇은 그 갱들의 총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그는 “대체 우리는 어딜 향해 가야 하는걸까?” 하고 물었다. 키체인을 흔들기 시작했고, 스케잇 펑크 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또 가슴을 세차게 치며, 자그마한 원 모양으로 서점 내부를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한을 달래기 위해 주술을 외는 ‘모던 샤머니스트’ 처럼 보였다. 물론 아무도 그를 샤머니스트라고 보지 않았고, 그는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은 헐렁한 청바지를 입은 마흔 일곱살의 펑크였다. 조금은 외로워 보였던 그는 그 빌어먹을 캘리포니아가 그립다고 하였다. 디아스포라, 우리 모두 유목민이며 또 난민이다.

 

방금 자다 일어난 듯한 헝클어진 머리에도 반짝거렸던 그와 한잔 하고 싶었지만, 그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 차 트렁크를 부여잡고, 토하고 있었다. 기회가 있다면 언제 한잔 할 수 있겠지.

 

 

 

An american artist Jason Honea’s performance was over there, and celebrated his 47th Birthday with few wine bottles.
 
He started talk from his birthday gift ‘Circle Jerks’ t-shirt. He was very drunken, and yelled to audience more than 10 times about his Bell, even though no one understood what’s mean the Bell in this moment. So he used his key chain instead of the Bell.
 
He raised up in San Francisco, California, enjoyed well 80’s punk scene. In his town, there was so many different gangsters. Asian gang, Chino gang, Russian gang, Irlish gang.. btw all the gangs hate ‘white skinny american guy’. So often, he and his friends beaten up by all of them, some friends died by gun shot. And he asked to audience: “Where should we go?” Then he shook his key chain like a Bell, and sung tone of Skate punk, and beat his Chest. He did that, while he walked round in the Bartleby. Yes, in that moment we could understand why he looked for the Bell.
 
I was very impressed. For me.. all that performance seems like a ritual by ‘Modern Shamanist’ for comfort sorrows. Of course, no one thought he is a Shaman. He was just 47 years old punk, who wore big old jean. He missed so much “God damn California”. Kinda nomad, cultural refugee and diaspora.
 
This time was first moment on me, to think what is Shamanism. Few month later-, May day, when we hang out to Göli with Mattias.. that time I thought ‘Urban Shamanism’. Thousand people in the park without ruling, and Mattias tried help unknown guy, I impressed whole thing.
 
However when this performance finished, he ran out to the street. His hands holding a car trunk, and puking several times.

샤를리 엡도, 표현의 자유

fucking hell, in korea who speak out “je suis charlie”, someone of them saying ‘nazism has also freedom of speech’. what can i do with this idiot?

 

“나도 샤를리다”를 외치는 사람 중에 ‘나치즘’과 같은 범죄를 찬양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는 사람과 마주쳤다. 이런 범죄 옹호자들과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불관용은 관용주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차별에 대해서는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

 

 

지난 글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짧게나마 이야기 해보겠다.

 

교황의 의견이 별 의미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상당하겠지만, 얼마 전까지 교황의 행보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교황조차 “샤를리 엡도의 인종차별적 만평을 비판하며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 받아들여지지 않아야 한다” 라고 한 것에 대해서 가벼이 넘기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외면하기가 더 편리하겠지. 샤를리에 대한 비판적 관점 없이 “나도 샤를리다” 를 일단 외치고 보자 했던 사람들은 벙찐 기분까지 들것이다.

 

내가 테러 직후 말을 아낀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 문제를 단순히 ‘표현의 자유’와 ‘테러’ 간의 구도로 볼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러 직후, 프랑스 언론을 중심으로, 그리고 한국에서는 프랑스의 한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나도 샤를리다”에 대한 기사를 상당량 내보내었다. 나는 단정적으로 샤를리 엡도에게는 무비판적인 접근을 했던 것이 좀 성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여가 지난 지금 유럽에서는 일방적으로 “나도 샤를리다”라고 외칠 수 없다는 반대의견들이 이제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샤를리 엡도 테러 직후, “나도 샤를리다” 라고 구호를 외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은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아흐메드다” (샤를리 테러에서 테러범들이 살해한 무슬림 경관) 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테러 직후, “나도 샤를리다” 를 외친 사람들은 무슬림 경관이었던 아흐메드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럴 기회가 없었던 이유에는 당시 언론들은 희생자 수와 샤를리 엡도와 경관의 죽음만 다뤘을 뿐 그들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테러범들이 누구의 아이들인가 하는 배경에 이야기도 실리지 않았다. 테러범들은 그저 잔악무도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로만 그려졌었는데, 사실 프랑스 사회에서 좌절된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는 이야기들이 이제서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오늘 베를린에서는 샤를리 테러 이후 드레스덴에서 살해 당한 20살 청년 ‘바래이’를 추모하며, 반무슬림 운동을 부추기는 세력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살해당한 ‘바래이’ 이외에 테러 이후 반이슬람 범죄가 못해도 스무건 이상이 된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이런 것들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는 살해당한 청년 ‘바래이’ 대한 기사가 연합뉴스를 통한 단 한건에 불과하다.

 

“나도 샤를리다” 는 내게 명령처럼 보인다. 아마 이것을 외치는 사람들에게도 시대의 요구이자 시대의 명령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이 명령이 어딘지 불편하다. 네오나치들이 샤를리 엡도 지지자들처럼 “나도 샤를리다”, “표현의 자유!” 하고 외치는 현상에 대해서 제대로 대답하고 있지 못한 부분이 계속 우리 곁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계적으로 “네오나치의 경우는 다르다”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는 충분한 ‘왜’가 따라야한다. 네오나치의 인종차별의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그렇다면 샤를리 엡도는 인종차별의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냐는 질문을 다시 할 수 있겠다.

 

세계 정상들이 “나도 샤를리다”를 외치면서 행진했다. 사람들은 이 세계정상들의 연대에 환호를 질렀지만, 사실상 이 정상들의 행진은 독일 중심의 유럽 경제체제 논리로 진행 된 것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아래 링크의 사진에서 그들의 위치를 보자면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까지 한다. 또한 가자에서 수천명을 살해한 네타냐후가 무슨 자격으로 “나도 샤를리다”를 외칠 수 있냐는 것이다. “사진보기

 

샤를리 엡도가 마이클 잭슨의 부고에 인종차별적 만평을 내고,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아랍의 봄’ 혁명에 대해 조롱했던 만평들이 차별이라는 것들은 이제는 조금 더 명확해 보인다. 샤를리 엡도 창간 멤버조차 말하길, 샤를리 엡도의 차별적 만평 수위가 높다는 이야기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 왔었고, 샤를리 엡도가 모든 종교에 대해 동등히 비판하는 만평을 내보냈다는 것은 유대주의를 비판하는 만평을 그린 만화가를 해고 하기도 하는 등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이미 형평성 논란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 나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마주친다. “무슬림이 원래 미개하고, 야만스럽다”는 말들이 나를 아프게 만든다. 피터 스피어가 자신의 저작 <온 세상 사람들>에서 “우리는 역사에서 배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라고 했던 말이 내 머리 속을 맴돈다.

 

ㅡ 아직 결론 내리지 않은 글입니다. 제 글은 참고만 하시고, 판단은 각자의 책임입니다. ㅡ

 

 

쌍용자동차, 마힌드라, 이효리, 노동운동

 

 

나는 이 사진에서 참담함이 보인다. 마치 노예가 주인에게 온정을, 자비를 호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한국 운동의 비참한 현실을 생각했다. 마힌드라가 초국적기업이기에 ‘인도의 가치와 온정을 보여달라’가 가져오는 아이러니 또한 존재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트윗은 내게 불편하다. 과연 인도인에게 무엇인가 호소하기 위해 굳이 요가 사진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이효리가 노동자들에게 연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도의 순수함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유럽에서 非아시아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내게 “North or South?”라는 질문을 늘 던져왔다. 이 질문이 지겨워질즈음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한참 모든 이의 귓가를 맴돌았다. 덕분에 나는 “South”라는 대답을 함과 동시에 “Wow, Gangnam style!”이라는 말을 항상 들어야 했다.

 

이효리의 트윗 이야기 하다 말고 갑자기 풀어놓는 나의 경험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해도 된다. 이에 대해 ‘무엇이 옳다 그르다’라며 정의 내리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고이즈미에 대한 한 일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스파게티! 마카로니! 소피아 로렌!(スパゲティ、マカロニ、ソフィア・ローレン!)

 

2005년, 미국, 조지아 주, 씨-아일랜드에서 개최된 제 30회 G8 회담에 참가한 고이즈미 총리는 6월 9일 기념 촬영 당시, 이탈리아 수상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게 “스파게티! 마카로니! 소피아 로렌!”이라고 외치는 기행을 벌였다고 한다.

 

이에 베를루스코니는 기가 막혀했고, 기자단으로부터는 “Shame on You! (부끄러운줄 알아라)”라는 항의까지 나왔는데, 고이즈미 그는 이에 대해 “땡큐! (サンキュ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한 非한국인들이 강남스타일을 소비하는 지점과 非인도인들이 요가를 소비하는 지점은 정말로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타 문화를 배척하지 않는다’라는 도덕적 우월의식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유행에 뒤지지 않는 쿨한 소비재이기 때문.

 

‘유스 오브 투데이’의 보컬이 뉴욕에서 요가 마스터를 하고 있는 것도 북미 백인 중산층의 가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 본의가 어땠든 말이다. 베를린도 뉴욕과 같은 분위기인데, 베를린에서는 ㅡ 백인 중산층의 가치만이 철저히 투영된 ㅡ Weinmeisterstr. 같이 힙스터들이 판치는 곳들에서 인도 이미지를 심어 광고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미로 “Fuck Yoga”라 그래피티 하는 운동이 생겼을 정도. 솔직히 내게는 그 이상으로 요가 자체가 쿨하다는 느낌이 없다. 서구 관점에서의 오리엔탈리즘 중 하나일뿐. 요가가 건강한 신체를 갖게 하는 것이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2015년 1월, 지금 요가가 소비되는 지점은 거기에 있다.

 

최근에는 서구 백인 중산층의 문화 중 피클 문화가 김치로 전이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김치 쪼가리 몇개 집어 먹으면서 마치 문화적 우월의식을 느끼는데는 답이 없다. 물론 김치는 맛있고, 친구들과 종종 ‘덤스터 다이빙’한 채소들로 담가 먹고 있다.

샤를리 엡도 테러 이후, 독일의 극우 정당 AfD 선거 최고 후보자의 발언

 

 

샤를리 엡도 테러 이후, 순간 내 귀를 의심하고, 혼미하게 만들었던 독일의 극우 정당 AfD 선거 최고 후보자의 발언. 더 빨리 번역해 올리고 싶었지만,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내 귀를 의심했다. 때문에 나는 AfD 선거 최고 후보자의 발언 의도에 대해 세 차례의 서로 다른 독일 친구로부터 확인 절차를 거쳐 이렇게 알려본다. (영상을 보자마자 바로 번역해 나누고 싶었지만, 지난 28시간 동안 내 귀를 계속 의심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때문에 번역이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영상을 아마 스무번은 본 것 같다.)

 

* 제 독어 번역이 어색하거나 오역이 있다면, 더 정확한 표현을 위해 제게 메세지 주세요. 바로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잠시동안은 dx3 페이지 등을 통해 널리 공유하기보다 제 담벼락에서만 공유하겠습니다. 개인적인 공유는 얼마든지 상관 없지만, 만약 기사에 인용하시려거든 정확한 판단을 위해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담벼락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기사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요.

 

x. AfD 선거 최고 후보자의 발언:
독일어: “Aber ich habe das große Gefuehl schon immer gehabt, dass etwas furchtbares irgendwo bei uns hier, und Paris ist fuer mich wie Hamburg, gehoert zur gleichen Wertegemeinschaft, passieren wird, leider ist es viel frueher passiert, als ich gehofft habe.”
한국어: “저는 어떤 끔찍한 일이 바로 여기 우리 곁에서 어디서나 일어날 것이라는 느낌을 이미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함부르크는 제게는 파리와 비슷하고, 같은 가치공동체에 포함되니까요. 유감스럽게도 이 사건은 제가 희망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일어났습니다.” ㅡ @Sangwon Han 님 번역으로 대체 했습니다.
x. AfD 선거 최고 후보자의 발언이 의미하는 바: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AfD 선거 최고 후보자의 이 발언 이후, 당원들은 박수를 치며 대변인의 발언에 열광적인 반응을 한다.

 

이 발언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함부르크의 AfD 선거 최고 후보자는 선거운동에서 파리의 샤를리 엡도 테러가 ‘이 곳(함부르크)’에서 먼저 일어나길 희망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반무슬림 운동의 동력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이는 AfD의 우익 포퓰리즘이 아주 대담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시에 전술적으로 굉장히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통해 함부르크의 AfD가 함부르크 의회의 의석을 확보하고, 반무슬림 정책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매우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다. 이 영상이 굉장히 위험하고 불쾌한 것은 AfD 당원들이 비인간적인 환호를 지르며 응원하고 있다는 것.

 

샤를리 엡도가 프랑스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나는 조금 더 생각해보기 위해 판단을 유보하겠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이미 우익 포퓰리즘과 인종차별을 선동하는 네오나치가 만나는 지점이 되었고, 그 동력이 되고 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이 인종차별적 극우, 네오나치 운동의 이상향이 되어가고 있다.

 

이 영상은 독일에서도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기 때문에 미처 영상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서로 다른 독일 친구들에게 의중을 묻고 정보를 나누기 위해 보여주었다. 단지 내 감정만으로 이 것을 판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친구들 대부분은 이 영상을 보고나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서너차례 다시 돌려 보고나서는 잠시동안 내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이 인종차별적 운동에 대해 분노 표출은 커녕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한결같이 말했다. “믿을 수 없지만, 너무 위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고.

 

이 포스팅에 대한 최종 판단은 여러분께 맡긴다. 나는 이 포스팅을 읽는 여러분이 스스로 생각해볼 시간을 갖고, 샤를리 엡도의 표현의 자유와 그 빌어먹을 테러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 최근 몇 주간 독일의 네오나치와 안티파의 反나치운동에 대해서 몇몇 베를린 안티파 그룹과의 인터뷰와 기획 기사를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지만, 혼자 하기엔 방대한 내용들과 참고할 한국어 자료도 거의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한 샤를리 엡도 사건 이후로 급변하는 상황에 먼저 귀기울이기 위해, 일단 독일의 네오나치와 안티파의 反나치운동에 대한 인터뷰와 기획 기사는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