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uzone – Ich lieb Sie with korean translate

 

Ich lebte hinter Gitterstäben,
나는 바 뒤편에 살았어요,
dann kam sie, ich begann zu leben.
그녀가 오고나서부터 나는 살아가기 시작했죠.
ich träumte in der Dunkelheit,
나는 어두운 곳에서 꿈을 꾸었고,
auch von diesem Übel hat sie mich befreit.
또한 이 악으로부터 그들이 나를 자유롭게 했죠.

 

Oh, ich lieb sie,
오, 당신을 사랑해요,
Oh-oh-ohah, ich lieb sie!
오-오-오아, 당신을 사랑해요!
Oh-oh-ohah, ich lieb sie!
오-오-오아, 당신을 사랑해요!
Oh-oh-oh, ah, ich lieb nur sie,
오-오-오아, 난 당신을 사랑할 뿐이고,
nur sie, nur dich!
단지 당신을, 단지 너만을!

 

Ich lebte hinter Masken,
나는 가면 뒤에 살았어요,
sie hat sie mir zerrissen,
그것이 날 염세적으로 만들었고,
das war sehr nett von ihr,
그건 그녀로부터의 크나큰 친절이었어요,
mein ganzes Herz schenkte ich nur ihr.
나는 내 가슴 속의 모드 마음을 그녀에게 주었죠.

 

Oh, ich lieb sie,
오, 당신을 사랑해요,
Oh-oh-ohah, ich lieb sie!
오-오-오아, 당신을 사랑해요!
Oh-oh-ohah, ich lieb sie!
오-오-오아, 당신을 사랑해요!
Oh-oh-oh, ah, ich lieb nur sie,
오-오-오아, 난 당신을 사랑할 뿐이고,
nur sie, nur dich!
단지 당신을, 단지 너만을!

 

 

Dann sagte sie ein Wort
그녀는 단 한마디를 나기고,
und schon war sie fort.
이미 떠났어요.
ich stürzte und ich fiel
나는 파멸되고, 파멸을 느꼈고,
und ich schrie:
나는 소리쳤죠:
ich begreif das nie,
납득 할 수 없다고,
ich begreif das nie
난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Ich lieb sie)…
(난 그녀를 사랑해요) …
Komm gib mir deine Hand
이리와, 내게 손을 내밀어 주세요
Wir gehen zusammen ins Wunderland
우리 원더랜드에 같이 가는거에요
Da gibt es nur Honigbäume und Marmelade
그 곳엔 단지 꿀나무와 말메이드 잼만이 있을거에요
Komm gib mir deine Hand
이리와, 내게 손을 내밀어 주세요

메갈리아4 페이지 답변에 대한 답변

메갈리아 4페이지의 답변: 링크

 

 

메갈리아4 휴, 제가 댓글을 두어개 달면, 저를 향한 댓글 열 몇개가 달리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던 찰나에 댓글 감사합니다. 성적 대상화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국정교과서에서 핵심은 한국극우가 일본극우에게 지령을 받아 충성을 하거나 무릎을 꿇는게 아니라, 한국극우가 자신이 저지르거나 가담한 과오를 국론 통합이란 명목하에 단일화 하여 덮는게 핵심입니다. 현재 나오는 기사들 대부분이 그 지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여성의 남성에 대한 블로우잡만으로 성적 대상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헤테로섹슈얼의 작가가 남성새마을이 여성일본제국주의에 커닐링거스하는 포즈를 취했어야 올바른 정치적 풍자였나요?

 

1950년 대 당시 미국사회는 백인과 흑인의 구분이 뚜렷하여, 버스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벤치 같은 공공시설물의 이용조차 백인과 흑인의 전용칸이 따로 존재했습니다. 흑인들을 백인으로부터 격리하기 위해서 말이죠. 1955년 12월,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버스 안의 흑인칸이 만석이되어 백인 전용 칸에 앉을 때, 버스 기사는 그녀에게 ‘흑백 인종분리법’ 의거해, 흑인 전용 칸으로 옮겨가라고 합니다. 이 사건이 민권운동의 시작이 됩니다.

 

말콤X 당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블랙파워운동 내부에서도 흑인들의 백인들, 다시말해 무고한, 다시말해 흑인차별에 가담하지도 않은 불특정 대상의 백인들을 향한 일부 블랙파워들의 테러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그 맥락을 제외하시고 제 역사적 이해가 부족하다고 하시면, 제가 무슨 말을 드려야 할까요?

 

여성전용공간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한 메갈리아4에 깊은 유감을 느낍니다. 다시 이야기 드리자면, 여성전용공간은 헌법과 인권선언문에 명시된 “누구나 어디에서나 안전할 자유” 역설적으로 제약하고, 여성들은 ‘여성전용’공간에서만 안전할 자유가 있음을 말합니다. 또한 범죄자들에게 범죄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저희가 아무리 주차장에서 여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말라고 운동을 해도 그러한 운동이 효과가 보일때 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이 시간 내에서 잠재적 피해자들의 안전을 보장을 할 수 있는 노력은 필요하고 그러한 최소한의 노력이 여성주차장 같은 결과들 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매우 이상한 답변입니다. 지금 메갤에서 경찰서나 관할관청을 상대로 안전권보장에 대한 요구를 하고 있나요? 전용공간은 아니지만, 경찰은 이미 요청하는 여성들에 한하여 안심귀가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주차장내 치안 시설 확충및 기준 강화를 요구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여성전용시설을 요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는 역차별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고, 역차별을 떠나 여성이 전용공간이 아닌 곳에서 안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언하는 꼴이 됩니다.

 

이는 헌법이나 인권선언문은 물론이고, 페미니즘의 이론에서도 매우 동떨어진 논리며, 내재된 기제는 마초이즘과 젠더롤에서 “여성은 약하고, 피해자다. 보호의 대상이다”와 같은 논리가 됩니다. 또한 이는 3세대 페미니즘의 기폭제였던 Riot Grrrl 무브먼트의 선언문에서도 선언된 “BECAUSE we are angry at a society that tells us Girl = Dumb, Girl = Bad, Girl = Weak. 왜냐하면,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소녀는 멍청하고, 소녀는 질이 떨어지며, 소녀는 약하다’ 라고 규정하는 편견에 맞서 사회에 분노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를 완전히 뒤집는 행동입니다. 오히려 반여성주의적인 요구라는 말입니다. 2세대, 3세대 페미니즘 투쟁사만 보셔도 ‘여성전용’이라는 이것을 넘으려고 얼마나 많은 투쟁들이 있었는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특수성을 이야기하신다면, 결국 그 논리는 아랍여성은 아랍의 문화적 특수성으로 아랍여성은 서구여성, 혹은 아시아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기본권을 보장받는, 이를테면 아랍남성에 의한 아랍여성의 구타가 온당하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같은 말로, 한국여성은 서구여성보다 상대적으로 제약된 기본권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하는 셈입니다.

 

한국에서의 여성혐오, 여성차별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고착화된 사회의 병폐입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하지만, 오늘에도 심각한 사회의 한 축입니다. 이것을 현상으로 접근하여 투쟁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1871년 보불전쟁 이후부터 2차대전까지의 1세대 페미니즘 투쟁사를 통해 실질적으로 여권신장이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독일에서는 바이마르에서 남녀임금에 대해 동일임금, 동일노동 시도가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의회에서 여성참정권이 통과되었습니다. 2차대전 직후의 2세대 페미니즘부터는 여성도 남성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한 이들이 학생운동과 68혁명과 만나면서 실질적인 현대국가의 여성권리신장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70년대에는 차별을 조장하는 단체, 정치인들에 대한 테러그룹까지 결성되었습니다. 3세대 페미니즘, 80년대부터는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와 녹색정치운동이 연대하고,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면서 그리고, 3세대 페미니즘의 기폭제라고 할 수 있는 Riot Grrrl 무브먼트가 91년 선언되면서 전방위로 오늘 날의 여권신장이 이루어졌습니다.

 

약 150년 간의 이야기를 다 아시리라 생각함에도 다시 이야기 드리는 이유는 메갤에서 여성혐오사례뿐만 아니라 학습과 조직운동을 해야한다 이야기 드린 겁니다. 심각한 성차별이 뿌리 깊은 한국에서 페미니즘운동이 시작된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부의 외국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면서도 앞선 페미니즘 투쟁사에 대해서는 한국만의 특수성이라 페미니즘 일반론에서 다뤄지는 투쟁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착한 남성’이 여성에게 선물하는 배려나 동정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이것은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흑인들이 차별을 받으면서도 미국사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동시에 ‘착한 백인’들이 주는 배려나 동정이 아닌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은 차별금지법을 이끌어내고, 참정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도 일어나는 흑인에 대한 차별에 대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메갤이 지금 theory와 praxis 간의 괴리라고 하는 것은 페미니즘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투쟁은 쉬워보이는 것을 하는게 아니라, 원래 주어지지 않았지만 당연히 받아야할 것들을 싸워서 쟁취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메갤의 포스팅에서 전체 남성에 대해 일반화 시켜 만드는 사례들이 보입니다. 또한 여성전용이라던가의 논리는 여성을 약자화 시키고 페미니즘을 무력화 시키는 대표적인 젠더롤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나 자기반성이 없다면, 메갤을 누가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Riot Grrrl 선언문에서도 다루어졌듯이 우리는 언제나 비판적 지지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하여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거 아닐까요.

 

저는 메갤이 아직도 페미니즘 운동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68이후, 독일에서 전설적인 좌파, 아나코 밴드이자 국민밴드가 된 Ton Steine Scherben의 노래 Der Traum Ist Aus는 경찰들과 대치하는 바리케이트 최전선 앞에서 많은 젊은이들의 목청을 통해 소리 높여 불리어졌습니다.

 

“꿈은 끝나고 말았네. 꿈은 끝나고 말았어. 하지만 그 꿈이 확실해질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것이라네. 하지만 그 꿈이 확실해질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것이야.”

 

꿈을 현실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 꿈은 영원히 갖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말테니까요.

 

말이 길었습니다. 성의있는 답변 감사하고, 앞으로도 서명이라던가 혐오게시글에 대한 신고 같은 포스팅은 함께 하는 것이 더 실력행사에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한혜연 제 글을 읽고, 링크를 보내주신건가요? 판단이고 자시고, 글을 읽고 대답해야 기본적으로 대화가 될거 아닙니까.

 

Jiyeon Woo 완충지대라는 말 흥미로운데요.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이란 아이디어에 역행하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그런데 여성전용은 여성주의에 반하는 아이디어고, 여성주의가 그동안 오랫동안 철폐하려고 해온 것입니다. 이를 테면 “난 남자니까 축구를 할테니, 넌 여자니까 응원을 해.” 같은 것 말입니다.

 

저는 할당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독일의 경우는 아직 여성의 사회진출이 남성에 비해 어려워 여성할당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 같은 경우는 정부에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많이 일하고 있어 시행하고 있지 않기도 합니다. 제가 함께 일하는 쪽에서는 굳이 정확한 인원을 5:5로 맞추지는 않지만, 새로운 인원이 들어올 때, 균형을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여자가, 가끔은 남자가 더 많기도 하죠.

 

저도 댓글 중 일부를 보고 부아가 치밀었고, 작가의 허술한 답변에 실망을 했습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 비판은 모르겠지만, 블로우잡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처럼 다루는 것은 여성주의와 상관없고, 오히려 성에 있어 여성을 하대하는 원인이 되죠.

 

독일은 포르노 박람회가 있고, 매춘부들이 보험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위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섹시즘에 있어서도 통일된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에 천하다 말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노동자로서 기본적으로 누릴 권리를 말합니다. 구강성교는 ‘남자 아랫 것들’ 이란 인식은 지금 지연씨께서도 갖고 계신 것 같군요.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당당히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라고 가르쳐야하는게 올바른 성인식 아닌가요?

 

미러링은 안된다고 이야기 한 적 없습니다. 하지만, 미러링이 전술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와 부작용에 대해서 생각도 안해보고, “미러링이 전술이다”라고 택하시면 저는 대체 페미니즘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는건가 의문이 생깁니다.

 

한국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뒤쳐지니, 한국의 여성은 페미니즘이 말하는 기본권을 부분적으로 제약 받아도 되나요? 그게 한국여성은 서구여성만큼 존중 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과 뭐가 다르죠?

 

제 글을 잘 안 읽어보신 것 같은데, 저는 우범지역에 치안강화, 이를테면 cctv나 안전요원 추가 배치를 요구해야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미 요구하는 여성들에 한해 안심귀가서비스를 경찰이 하고 있고, 때문에 치안을 확대시켜달라고 해야지, 여성전용 시설을 만들어서, 마치 그 외 시설에서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덜 안전해도 된다는 관념을 심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페미니즘의 기본 아이디어인데 대체 몇번째 반복해서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cctv 반대를 한적도 없는데, 글을 다시 한번 읽고 답변 주시면 좋겠습니다.

 

문화에 따라 맞춰야 한다는 말은 아프리카 소녀들은 전통에 따라 강제로 할례를 하고, 이슬람여성은 이슬람남성에게 맞아도 된다고 하는 것이며, 이슬람여성이 자동차 운전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씨를 갖을 수 없었지만, 여성은 더욱이 이름조차 가질 수 없었습니다. 문화적 차이가 크니 지금에 만족해야 하나요? 오히려 헌법과 인권선언문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보장해달라 해야 합니다. 지금 이슬람의 여성작가들이 페미니즘이란 화두로 어떤 작업을 하는지 아시나요? 이슬람여성을 조금이라도 배려하자는게 아니라, 이슬람여성에게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달라 접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원에 접근하면 위험한 상황이 될지도 모르는데, 기본권은 단계별로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보장받아야하는 기본권리니까요.

 

한국은 아직 미개해서 한국여성의 기본권은 단계적으로 보장 받아야한다고 말씀하시면서 페미니즘을 동시에 요구하는게 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런 생각이 인종차별적이란 생각까진 안 해보셨나요?

 

싸워서 쟁취하지 않는 이에게 갑자기 그걸 선물처럼 주어지는 권리는 없습니다. 페미니즘 투쟁사 뿐만 아니라 흑인들의 민권 운동이 그랬구요.

 

긴 답변 감사합니다만, 제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답변 주셨으면 합니다. 메갤에 제가 댓글 두세개를 적으면, 절더러 여혐이라며 열개의 공격적인 댓글이 달리는데, 최소한 댓글을 읽고 답변을 주시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저는 베를린에서 페미니스트로써 활동할 뿐이지, 모든 질문에 24시간 대기해서 대답을 하는 상담원 같은게 아닙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저는 이제 제 일을 하러 가야겠습니다.

정어리 – 91

“나는 진실되니 아무 말 말고, 믿고, 지지 해달라”는 식의 ‘감정에 호소하는 아마츄어리즘’은 체제가 휘두르는 폭력과 다를 바 없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게도 진실된 동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가려내는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이 갈등이 어디서 시작되는 지를 바라보고 이야기 해야한다.

 

 

ㅡ 2015년 10월 14일 이른 새벽, 폭력에 대하여..

메갤저장소의 역사적 오류, 그리고 전쟁과 페미니즘

 

메르스 갤러리가 스스로 학습하고 조직해야한다고 이야기 했던 이유가 여기 또 있다.

 

 

문제의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글: 링크

EBS 이다지 강사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

Posted by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on 2015년 10월 12일 월요일

 

이 강사의 내용은 조금도 헛소리 아니다. 굉장히 역사적인 사실이고, 현재에도 페미니스트들이 여성권리를 위해 포기하지 않는 내용이다. 이것은 군수산업과 궤를 같이하는 내용 또한 아니다. 당신이 만약 유럽 페미니스트 친구가 있고, 세계 페미니즘 투쟁사, 아니 그 중 유럽 페미니즘 투쟁에 대한 관련 역사사실부터 찾아본다면 저 강사를 비난할 수 없다. 내가 거주하는 독일에서는 여성이 먼저 자원입대하고, 육체노동으로 하는 산업분야에 진출해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요구한게 사실이다. 한번 확인 해보지도 않고, 유럽에서 혹은 서구에서 굉장히 차별적인 발언으로 간주되고 문제 될거라고? 지금 역사 책 안 들여다보고 사실 왜곡하는게 메갤의 이 포스팅인데. 페미니즘 역사 깡그리 무시하고, 여성은 보호 받을 권리만 있다고 외치면, 누가 한국의 페미니즘을 지원할까?

 

당신이 만약 반전주의자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며, 남성들의 강제징병에 의한 병역복무를 반대한다면, 여성들이 입대하지 않고도 권리를 보장 받아야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들의 강제징병은 찬성하거나 방관하면서도 여성들은 병역복무할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반전뿐만 아니라 노동의 영역에서도 직업의 귀천없이 독일의 여성들처럼 굴뚝청소부, 배관공, 전기공 등이 되길 거부하질 않거나, 오히려 권리를 주장했다면 모를까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이유에서 권리가 아니라 특권을 보장 받고자 하는 것은 페미니즘에 역행하는 논리적 오류이다. 참고로 여성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육체적 차이가 아닌 이상, 유럽의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이 육체적 노동을 한다.
* 참고로 나는 겨울 난로에 땔, 우드블럭 10톤을 지하에 넣을 때, 여자친구들에게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가 여성을 약자화 시키지 말라며 오히려 여자친구들에게 핀잔을 들었다. 가장 화냈던 친구는 키가 160도 안 되는 작은 체구임에도 늘 항상 스스로 동기부여를 잘하며,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는 친구이다.

 

+ 추가: 문제의 짤방에서 경계해야하는 것은 ‘여성이 지금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어 권리를 누리지 못 하는 것’과 같이 곡해되어 여성혐오 논리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를 올바로 잡아야 한다. 여성이 군대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실 전투비효율로 하여금 여성을 차별하는 한국 남성과 국방부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 <리버타리아스, Libertarias>, 1996의 한 장면.
“왜 우리들이 싸우길 원하는가!”

해당 영화의 한글 위키페이지나 한국 웹에서 소개된 바 없는 점이 아쉽지만 해당 위키(https://en.wikipedia.org/wiki/Libertarias)를 보면, 스페인 내전은 아나키스트들만의 투쟁이 아니었고, 군사파시즘에 저항하고, 여성권리를 위한 것이었다. 또한 3만명이 넘는 여성노동자 그룹, ‘자유여성’이 이 전쟁, 혹은 투쟁에 전면적으로 참전, 혹은 참여하였다.

 

더군다나 스페인 내전 역사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저 강사를 비난할 수 없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남성 아나키스트들은 “신체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 여성 아나키스트들을 후방에 배치하자”고 하자, 여성 아나키스트들이 자신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파시스트 프랑코군과 싸우기 위해 전장에 나섰는데, 겁장이 남성 아나키스트들은 자지를 떼고 후방에 가라”고 외친다. 그리고 이 여성 아나키스트들은 모두의 권리를 위해 함께 최전선에서 같이 싸우다 전사한다.

 

당신이 만약 반전주의자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며, 남성들의 강제징병에 의한 병역복무를 반대한다면, 여성들이 입대하지 않고도 권리를 보장 받아야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들의 강제징병은 찬성하거나 방관하면서도 여성들은 병역복무할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한국의 징병제는 널리 알려진대로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 성은 의무에서는 자유로워지고, 권리만을 요구하며, 특정 성만이 어떤 의무를 책임질 수 는 없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주장은 권리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특권이기 때문이다.

 

1871년부터 ‘자유, 박애, 평등’을 내걸고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의 프랑스 제 3공화국, 그리고 프랑스의 페미니스트들 대부분은 반전주의자가 아니었고, 참전을 기피하기는 커녕 남성들과 함께 참전하며, 동등한 권리를 외쳤다. 이로인해 1919년 여성의 참정권이 의회를 처음으로 통과하지만, 실제 여성권리 향상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고, 2차대전이 끝나가면서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기 시작했다.

 

독일의 경우 전쟁에서 패전하면서 안타깝게도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이 다시 명확히 되는 불운한 시기를 맞았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여성도 남성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한 독일 패전 직후 세대들은 60년대에 드러서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학생운동과 함께 모멘텀을 회복했다. 70년대 들어서는 낙태합법화, 피임 등을 주장하며 페미니스트들의 테러조직을 결성하기도 했으며, 80년대는 독일의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 태동기와 80년대 디스코 씬의 LGBT들과 함께 연대를 했다. 그리고 90년초 통독 이후 독일은 동성혼을 사실상 합법화 시키며 여성의 권리는 물론, 성소수자들의 권리까지를 법적으로 보장했다. 특히나 80년대 독일의 페미니스트들은 당시 체르노빌 사고 이후, 더욱 격렬해진 유럽의 녹색운동과 만나 연대 투쟁을 했다. 유럽의 페미니스트들은 계속 투쟁해왔으며, 또한 노동자, 환경, 교육 등 다양한 이슈에 연대투쟁 해왔다. 30~ 40년 전, 점거운동이 격렬히 일어났던 함부르크의 하펜슈트라쎄에는 독일의 좌파운동조직인 안티파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 바로 같은 동네에 함부르크의 명물인 성매매촌이 있으며, 독일의 좌파와 페미니스트, 성노동자들은 서로의 권리를 위해 연대하는 관계이다. 참고로 함부르크는 중산층 좌파의 도시로서 항구도시로서의 무역 이외에도 섹스관광이 도시의 주요 산업이기도 하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숱한 전쟁들과 함께 어떻게 페미니즘이 성장했는지를 보면, 거의 모두 좌파-노동운동과 전쟁에 남녀가 함께 참전하면서 성장했다. 이에 대한 책과 논문들은 너무 많아서 구글링을 살짝만 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 것이 1세대 페미니즘 운동과 결을 같이하고 있으며, 또한 68혁명 이후를 기점으로 유럽에서 오늘날 민주사회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국가의 모습과 함께 여성참정권, 여성인권이 향상 되었다. 이것이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이다. 마지막으로 3세대 페미니즘 운동이 80년부터 시작되어 아나키즘 같은 급진사상과 펑크와 코믹, 비상업영화 등의 하위문화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3세대 페미니즘 운동이 퍼져나갔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3세대 페미니즘 운동으로서, 주디스 버틀러와 같은 페미니즘, 퀴어, 성담론 학자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요즘 메갤에서 뿌려지는 이상한 것들을 보면 누가 대체 페미니즘 역사를 뒤트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페미니즘을 뒤집고, “여성은 약하다”라며 젠더롤을 하면서 어떻게 여권신장을 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에 국외 페미니스트 단체들과 연결되어 대화를 나누며 연대를 하는 곳이 있긴 한지 궁금하다. 이러니까 국제연대 투쟁에서 한국은 맨날 바보 취급 받는 것 같기도 한 좌괴감 마저든다. 평소 여성운동, 좌파운동하신다는 분들이 어떻게 기본적인 투쟁사마저도 왜곡해서 읽고, 오히려 투쟁사를 거꾸로 돌리는 일을 한단 말인가? 이들의 반지성주의나 패거리주의, 소영웅주의에 질려버릴 것 같다.

 

링크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아나키스트들을 다룬 영화 리버타리아스다. 간단한 영어자막이 있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씬이다. 여성 아나키스트들이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지 말라며 남성 아나키스트들에게 큰 소리를 높였던 그것 말이다.

 

한국에서 자칭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사람들 유럽와서 페미니즘 운동하는 활동가들이랑 만나서 조금만이라도 대화해보면 다 멘붕빠지고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과 별개로 익명이니까, 책임의 주체가 없다는 식의 말 돌리기는 일베랑 메갤을 같은 급으로 만드는 것 뿐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조직화해서 여성인권에 대해 소리 높여야 연대도 강화될 것인데, 본인들도 이해는 커녕, 이미 활자화된 페미니즘 투쟁 기본이론 마저도 이해 못하고 ‘보호만 하면’ 여성권리가 신장 될거라고 생각하니 화가 난다. 이젠 메갤 정 떨어지는게 아니라, 이들 때문에 여성권리가 제약 받을까 화가 나는 마음을 짧게나마 적어보았다.

 

“나는 진실되니 아무 말 말고, 믿고, 지지 해달라”는 식의 ‘감정에 호소하는 아마츄어리즘’은 체제가 휘두르는 폭력과 다를 바 없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게도 진실된 동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가려내는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이 갈등이 어디서 시작되는 지를 바라보고 이야기 해야한다.

 

지금 매겔에게 우리 모두의 평등과 권리를 위해 스스로 학습하고, 조직하자고 하는 것이 왜 어려운 일이고 금기가 되어야 하는 일일까. 모두가 평등과 권리를 보장 받아야한다며, 페미니즘에 연대하려는 이들의 손을 내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다시 한번 말하건데, 본인은 페미니스트이며, “아몰랑~”이라던가 ‘김치녀’ 같은 단어로 여성을 혐오로서 조롱하는 멍청이들에 조금도 동의 하지 않는다. 어디 숨어서 여성혐오를 흩뿌리며, 서구세계를 동경 하는데, 그와 같은 여성혐오는 서구세계에서 그나마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

+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한 글이지, 여성혐오에 동의하는 글이 아닙니다. 해당 포스팅에서 여성을 혐오하고, 비하하는 댓글들이 보이는데, 그런 여성혐오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dx3 페이지는 페미니즘에 연대합니다.

정두리, 아이유-장기하 커플에 대한 매질에 붙여

 

아 물론 ㅆㅅㅌㅊ 단어사용은 미러링인거 다들 아시겠죠? ^^ 사실 아이유가 한국에서 독보적인 미소녀이자 음악가라고 생각하는건 맞아요.@durimimi

 

아이유-장기하 커플에 매질을 한 정두리, 그리고 메갤에 관련해 정리해봤습니다.

 

나는 애초에 젖은잡지부터 일본의 낡은 것을 그대로 모사한 촌스러운 것이라 했다. 정두리씨가 조금도 페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그는 남성팬과 페미들 사이에서 묘한 접점을 두고 소비되길 바랐다. 그런 그를 페미로 여겼던 사람들이 멍청한 것일뿐.

 

하지만, 미러링이라느니 이따위 변명은 그런 그를 더 낡고, 촌스러운 것으로 스스로를 소환한다.

 

메갤 이후에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청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왜 메갤이 스스로 학습하고, 조직해야하는지 이런 기회를 통해 스스로의 위치를 파악이라도 해야할 것이다. ‘무조건 여성을 보호만 하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엉터리 페미니스트들이 너무 많다.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면서 스스로를 젠더롤에 끼워 맞추는 멍청이들 또한 너무 많다.

 

권리는 누가 선물처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왜 주지 않냐고 불평, 불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권리의 주체로 두어 쟁취해낼 때 갖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두리, 혹은 메갤의 어떤 이들은 페미니즘 운동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미국에서 민권운동, 흑인인권운동을 하던 이들이 그랬다. 그들은 ‘착한 백인’들이 그들의 권리를 선물처럼 가져다주길 원하지도 않았고, 불평, 불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권리의 주체로 두어 쟁취해나갔다. 이들이 원한 것은 착한 백인들의 호의나 배려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든 갖고 있는 기본권리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1950년 대 당시 미국사회는 백인과 흑인의 구분이 뚜렷하여, 버스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벤치 같은 공공시설물의 이용조차 백인과 흑인의 전용칸이 따로 존재했다. 1955년 12월,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버스 안의 흑인칸이 만석이되어 백인 전용 칸에 앉아 있었다. 버스 기사는 그녀에게 흑인 전용 칸으로 옮겨가라고 하였으나 흑인 전용칸은 만석이었기에 그녀는 옮겨갈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흑백 인종분리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1964년 미국의회는 인종주의 성향의 남부 출신 보수우파 상원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권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교육,주택, 접객업소, 직장등에서 흑인차별을 금하는 것이었다. 민권운동가들은 투표권에 주목했고 1964년 6월 미시시피 자유여름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에는 무려 천여명의 백인 대학생들이 흑인의 유권자 등록을 돕기 위해 미시시피로 내려왔다.

 

1965년에 이르서야 연방 투표권법이 통과되었다. 존슨 대통령의 법 서명식에 마틴 루터 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 법의 주요 골자는 미국 수정 헌법 제15조에 반향하여 이 법안은 주와 지방 정부로부터 선거 자격을 한정하거나, 투표에 필요한 요건, 표준, 관행, 또는 절차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시킨 법안으로 인종이나 얼굴색 때문에 미국의 시민의 권리로 선거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정하거나, 줄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 법의 중요한 집행 수단으로는 역사적으로 흑인 참정권을 방해했던 주들이나 군들이 선거법이나 정책을 변경하려 할 경우 연방 법무부나 연방법원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게 되었다.

 

메갤을 긍정적으로 봐오다 결국 돌아서게 되었다. ‘페미니스트 남자를 만나는 방법‘이란 글 때문이다. 이 글은 마치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착한 백인을 만나는 방법’과 같은 글과 다를바 없어 무척 화가 났다.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대한 풍자나 조롱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 글은 진심으로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착한 백인을 만나는 방법’과 다를 바가 없다.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조건에 부합하면서 더더욱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글쓴이가 비열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풍자가 아닌 이상, 이 글의 구조는 젠더롤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쓴이는 무어라 변명할텐가? 우리는 “우리는 단지 가련한 피해자이기 때문이에요.”라고 스스로를 약자화 시킬텐가? 페미니스트 남성의 보호를 받고 싶어하는 여성으로? 아마 글쓴이는 스스로를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기고 있겠지. 이 글이 페미니즘이 가려는 길을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한가지만 묻고 싶다.
“남의 섹스, 남의 연애사에 관심 좀 끄고 사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 나무위키 ‘흑인인권운동’ 참조

 

+ 함께 읽기를 권하는 글

1: 여성권리: 매갤과 데이트 폭력 사태를 목도하면서

2: 페미니즘 논쟁과 메갤, 디스라이크

페미니즘 논쟁과 메갤, 디스라이크

오늘 아침 읽은 두 글로 하여금 앞으로 메갤과 디스라이크는 구독 대상에서 뒤로 밀쳐지게 될 것이다. 두 매체?! 모두 결과가 뻔히 보이는, 지금까지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진부한 이야기를 반복하기 때문인 요인이 가장 크다.

1. 링크된 메갤의 ‘페미니스트 남자를 만나는 방법
– 읽으면서 본인이 글에 완전히 부합될 때마다 메갤이 더욱 역겨웠다. 일전에 손이상이 ‘메갤은 걸펑크’라는 포스팅을 하였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메갤의 등장을 반겼는데, 이후의 메갤 행동들을 보면서 조금도 걸펑크, 라이엇걸 등은 물론이고, 페미니즘 운동으로서의 꿈도 꾸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결국 일베가 여성이 혐오 대상이 될만한 사례를 수집하고 낄낄대고 여성을 증오하는 것을 미러링해, 메갤은 남성이 혐오 대상이 될만한 사례를 수집하고 낄낄대고 남성을 증오할 뿐이다. 서로를 증오하다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다른 배경을 가진.. 배다른 형제, 자매라고 해야할까.

내가 계속해서 여성이 피해자, 약자 프레임으로 들어가면 안된다고 하였던 이유 중 일부가 여기에 있다. 아무튼 메갤에 몆몇 페미니스트가 있을지 모르지만, 메갤의 행동은 페미니즘과 전혀 상관없다.

또한 본 글쓴이가 정말 페미니스트 남성만을 만나기 위해 페미니스트 남성을 일반화 시키고, 유형화해 도구로 다룬지를 생각해보면, 글쓴이가 정말 페미니스트인지도 의심이 든다. 이 글의 내용은 마치 10대 소녀 잡지에 나오는 전형적인 남성에 대한 판타지, 혹은 젠더롤과 다를 것이 무엇일까 싶다. 혹여라도 반박을 하고 싶다면, 왜 저 글이 성평등을 요구하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이어야하는지 설명을 해달라. 저 글쓴이가 자신이 한국의 스탠다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을 굳히고 있을걸 생각하니 정말 머리 끝까지 화가 난다.

만약 이 글이 여성혐오자들을 비꼬기 위해서 작성되었다 하더라도 여성혐오를 풍자하는 부분이 분명히 드러나야 함에도 여성혐오를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페미니스트 남성(심지어 자신들이 롤을 쥐여준)을 유형화, 혹은 분류해내 교제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명료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 10월 9일 추가: 이 글은 마치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착한 백인을 만나는 방법’과 같은 글과 다를바 없어 무척 화가 났다.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대한 풍자나 조롱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 글은 진심으로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착한 백인을 만나는 방법’과 다를 바가 없다.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조건에 부합하면서 더더욱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글쓴이가 비열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풍자가 아닌 이상, 이 글의 구조는 젠더롤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쓴이는 무어라 변명할텐가? 우리는 “우리는 단지 가련한 피해자이기 때문이에요.”라고 스스로를 약자화 시킬텐가? 페미니스트 남성의 보호를 받고 싶어하는 여성으로? 아마 글쓴이는 스스로를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기고 있겠지. 이 글이 페미니즘이 가려는 길을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2. 디스라이크, 이진호씨의 글 ‘‘군대폭력’ ‘발 끝’에서 쭈뼛 선 ‘머리 끝’까지
– 진호씨는 이 글을 스스로 소개하면서 “첫번째로 기본적인 대우도 받지 못하는 병사들의 처우개선을 주장할 계획이고, 둘째로 솔직히 제대로 갔다오지도 않은 새끼들이, 혹은 안가려고 발악한 것들이 쌉쳐대는 꼬라지에 꽤나 큰 엿같음을 풀고 있었었음’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짧게 정리된다.

병사들의 처우개선이라면, 당연히 숙고 되어야 하는 문제이나 결국 글 내용에서 자신의 병영생활이 이야기 되는, 한국 남성들의 술자리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자신의 병영생활기’가 나열 되었고, ‘어떻게’라는 내용이 결여된채 ‘국방부의 개혁’ 이야기가 나왔다. 이 이야기는 군대 내 폭력사건만 터지면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국방부가 하는 이야기와 꼭 같다. 개혁 디테일을 짜기에 앞서 ‘어떻게’라는 구조적 내용이 전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일본인들은 한국의 징병제도를 노동착취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진호씨의 두번째 이유는 모든 디스라이크의 관점, 적어도 군문제에 대한 디스라이크의 신뢰를 떨어트렸다. 결국 군문제는 현실의 문제, 존엄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여러 매체와 인터넷 공론장에서 다뤄진 감정싸움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최근 두 매체의 글들을 계속 읽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두 글을 통해 더이상 신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읽기를 그만둘 생각은 아니다. 소설 또한,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구조를 갖추고 있듯 모든 이의 서사가 결말에 이르러 마지막장을 만들 때까지는 책을 덮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과로 탓에 계속 빈혈증세, 비강출혈이 반복되고, 심지어 실신 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오히려 쓰고 싶은 글이 억지로 옷을 밀어넣은 여행가방만큼 많다. 그런데 랩탑이 아직도 수리중이니, 머리를 식히면서 뒤로 미루는 수 밖에.
책상 위 한가득 메모만 수북히 쌓여간다.

 

 

ㅡ 이 글은 2015년 9월 4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정어리 – 90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 가서 펑크로 살 수 없다면, 너는 펑크라 불리우는 그따위거 하지마. 너한테는 그런거 필요 없어. 친구들끼고 펑크왕 놀이 하지마. 너 혼자서 할 수 없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거야. 그건 운명을 거스르는 일도 아니고, 그냥 네가 네 자신을 속이며 시간 낭비하는거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시간 낭비하지마.

 

부탁인데, 내가 없는 곳에서 날 비난을 할 때는 지금까지 하던 것보다 좀 더 크게, 최선을 다 해서 날 폄훼 해줘. 그렇게 없는 말을 지어서라도 말이지.

 

ㅡ 2013년 10월 5일, 오후 1시 40분

정어리 – 88

내가 널 오해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날 오해한 것은 아닐까.

 

ㅡ 2015년 9월 15일, 오후 5시 46분, 카페에서 맥주 따위를 축내며..

정어리 – 87

이제 그 때의 어두운 기억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ㅡ 2012년 9월 23일, 오후 5시 반

 

Let me see who you are
Don’t try to hide the world that you belong
Let me see who you are
You’re better off where you started from
I know it’s where you want to go this time
I see you where you are

 

Don’t fight
You’re about to figure out it’s fine

ㅡ Washed Out – Bel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