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er Mike의 버니 샌더스 지지 연설 with korean translate

https://www.youtube.com/watch?v=Kywpo-XmFYg

 

번역이 좀 늦었습니다. 잠시 피곤에 젖어 잠에 들던 중 친구가 이 영상을 플레이 하면서 완전히 피로가 사라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곧 누군가 한국어 번역을 올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직 아무도 하지 않았더군요. 제가 조금더 서두를걸 그랬다는 생각과 함께 지금이나마 나누어 봅니다.

 

랩퍼 킬러 마이크의 버니 샌더스 지지연설, 저는 미국시민이 아니며, 그 곳에서 멀리 떨어진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국인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연설에 깊은 감명을 받으며, 버니 샌더스가 대통령이기 되길 바랍니다. 미국인들이 그와 함께 역사를 바꾸어나가길 바랍니다, 힐러리가 아니라 말이죠.

 

 

I am… I am honored to be here.
나는… 나는 영광스럽게도 이 곳에 자리했습니다.
Oh, I am truly, truly honored to be here.
오, 나는 진정으로, 진정으로 영광스럽게도 이 곳에 자리했습니다.
I am from Atlanta, Georgia,  and I say that proudly.
나는 애틀란타, 죠지아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말합니다.
I repeat, I am from Atlanta, Georgia,  and I say that proudly.
내가 다시 말합니다, 나는 애틀란타, 죠지아에서 왔으며, 그리고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말합니다.
If you’re… if you’re from Atlanta, Georgia you may be familiar with a young man who grew up not far from here.
His name was Martin King.
만약 당신이… 만약 당신이 애틀란타, 죠지아에서 왔다면, 당신은 이 곳과 멀지않은 곳에서 자랐던 젊은 청년을 아주 잘 알 것입니다.
Now, now I know this is the part where usually it’s a black minister in front of you, and usually you get all warm and cozy inside, and usually you hear about ‘I Have a Dream’ and us holding hands and going for ice cream.
지금, 지금 나는 당신 앞에 있는 어느 흑인 목사가 늘상 어디선가 하던 일의 일 부분이며, 그리고 당신을 따뜻하게, 안쪽에 머물수 있게 했던 것과 ‘나는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를 들으며, 아이스크림을 사러 우리의 손을 잡고 가는 사람에 대하여 당신이 평소 들어왔을 것이란 것을 압니다.
That’s not why I’m here today.
그것은 내가 오늘 여기에 있는 이유가 아닙니다.

I’m not here  to talk about benevolent politician who are gonna come and save the day for you.
나는 당신을 구하기 위해온 어떤 자애로운 정치인에 대해 말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I’m not here  to talk about a dream that we think is unattainable, so we settle for less.
나는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꿈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작은것에 안주하자고 말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I’m not here  to talk about a Utopian society, where everyone is forgiven and no one has to pay for past debts.
나는 모두가 용서받고, 아무도 지난 빚에 대해 댓가를 치루지 않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사회에 대해 말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I’m talking about… what I’m talking about today, is the Martin King post-the Washington March, Martin King present (?) the War on Poverty, Martin King against the War Machine that uses YOUR sons and YOUR nephews to go to other lands and murder.
내가 말하려는 것은, 내가 말하는 것은 오늘, 마틴킹의 후기 워싱톤 행진, 마틴 킹이 말하던 현재의 가난과의 전쟁,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조카들을 다른 나라로 보내 사용하려는 전쟁광들에게 반대한 마틴 킹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I’m talking about… a Revolutionary.
나는 혁명적인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I have no time  in my short forty years on this Earth to relive the Reagan years.
나는 내 짧은 40년의 생애 동안 이 지구에 Reagan 대통령을 되살릴 시간이 없습니다.
I have no time,  I have… I have no, no desire to see us elect our own Margaret Thatcher.
나는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나는 없습니다, 나는 미국의 마가렛 대처(힐러리를 비꼬는)를 선출할 마음이 없습니다.
I am here as a proponent for a political Revolution that says Healthcare is a RIGHT of every citizen.
나는 건강보험이 모든 시민의 권리라고 말하는 정치적 혁명을 위한 제안자로서 여기에 있습니다.
I’m HERE, because working class and poor people deserve a chance at economic freedom. And yes, if you work 40 hours a week you should not be in poverty.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동 계급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의 기회를 마땅히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맞습니다, 만약 당신이 1주일에 40시간을 일한다면, 당신은 가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That’s why I’m here.
그것이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입니다.
I didn’t come here to lolly gag, cause I rap, this could be y’all last time seeing me, caused I got tours to go, I got jets to fly on and I ain’t Lie-on.
나는 랩을 하므로 여기에 빈둥거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니며, 내가 제트비행기를 타고, 투어에 오르기위해 당신들 모두가 나를 보는 마지막 시간일 것이며,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But while I’m here, I have to tell you, that in my heart of hearts… In my heart of hearts, I truly believe that Senator Bernie Sanders is the right man to lead this country.
하지만 내가 여기 있는동안, 나는 당신에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에 대해 말해야겠습니다. 내 마음 속 깊이, 나는 버니샌더스 상원의원이 이 나라를 이끌 올바른 사람이라고 진정으로 믿고 있습니다.
And I believe it because he…  I believe it, because HE, unlike any other candidate, said, “I would like to restore the Voting Rights Act.”
그리고 내가 그것을 믿는 이유는, 그는…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나는 연방 투표권법을 이전처럼 회복시키고 싶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HE, unlike any other candidate, said, “I wish to end this illegal War on Drugs, that disproportionally targets minorities and poor.”
그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나는 소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불균형한 타겟으로 삼은 불법적인 마약과의 전쟁을 종식시키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Unlike any other candidate IN MY LIFE, he says that Education should be free for EVERY citizen of this country.
내 인생의 다른 후보들과 달리, 그는 이 나라에서 모든 시민들이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한다고 말합니다.
Now, now I only have a few minutes, but as I read the Atlanta Journal & Constitution’s comments about me speaking tonight, one jumped out at me and it broke my heart.
지금, 지금 나는 몇 분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Atlanta Journal & Constitution(미 동남부 최대 신문사)가 오늘 밤 나의 연설에 대해 펄쩍뛰며,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읽고 싶습니다.
It says, “I don’t listen to rap and I will no longer be listening to Bernie Sanders.”
Atlanta Journal & Constitution가 말하길, “나는 랩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버니 샌더스를 더이상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And I just want to say that, whoever wrote that, before I was a rapper, I was a son of Atlanta.
그리고, 나는 누군가 내가 랩퍼였으며, 애틀란타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기 바랍니다.
Before I ever wrote one rhyming word on paper, before that, I was a black man in America.
내가 종이 위에 라임을 써내리기 전에, 내가 미국에서 흑인이기 전에.
And… and before I ever learned how to dance a G, I gave a damn about American politics.
그리고… 내가 어떻게 G 댄스를 추는지 배우기 전에, 나는 미국 정치에 빌어먹을 것들을 주었습니다.
I gave a damn about the people of America, and I took to the streets and I advocated.
나는 미국의 사람들에게 염병할 것들을 주었고, 나는 길을 선택했고, 나는 지지했습니다.
So… I know I’m preaching to the choir tonight.
그리고 나는 오늘밤 합창단에게 설교했다는 것을 압니다.
I know that there are not a lot of voices of dissension out there.
나는 거기에 반대의 목소리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I know I’m preaching to the choir, but I’m here to tell you — stay encouraged, stay invigorated, stay bold, stay confronting bullshit at every turn.
나는 합창단에게 설교했다는 것을 압니다만, 나는 여기에 당신에게 말하기 위해 있습니다 — 격려하십시요, 활기를 북돋우십시요, 용감하게 서서, 모두에게 닥쳐오는 빌어먹을 것들에 맞서십시요.
Make sure that wherever you go… make sure that wherever you go, you take the name, the ideas, the philosophy and the ideology of Bernie Sanders there.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확실히 하십시요…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확실히 하십시요, 이름과 아이디어와 철학, 버니 샌더스의 사상이 있는 그곳으로.
And you make sure when you leave they are on fire, because they have Felt the Burn!
그리고, 당신이 떠날 때, 그들이 불길에 휩싸였다는 것을 확실히 하십시요, 왜냐하면 그들이 불타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I have… I have a line from one of my raps and I’m gonna get out of your way.
나는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내 랩들 중 하나로부터 온 문장 한개를 가지고 있고, 당신 앞에서 치워내려고 합니다.
I have said in many a rap I don’t trust a church or the government, a Democrat,  Republican, a Pope or a Bishop or those other men.
나는 많은 것들을 랩을 통해서 이야기 했왔습니다. 나는 교회나 정부, 민주당원, 공화당원, 교황이나 주교, 또는 그런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But after spending five hours tonight, after spending five hours with someone who has spent the last 50 years radically fighting for your Rights and mine?
하지만, 오늘 밤 이 다섯시간이 지난 후에, 다섯시간이 지난 후에, 다음 50년 동안 당신과 나의 권리를 위해 급진적으로 싸워줄 누군가와 함께.
I can tell you that I am very proud tonight to announce the next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Senator Bernie Sanders!
나는 오늘 밤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가 미연방의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발표함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당신에게 말 할 수 있습니다.
Everyone give him a round of applause!
모두들 그에게 박수를!

2015, 캐나다 내각

오 캐나다…….이런 내각이:
건강부 장관은 의사.
운수송부 장관은 우주비행사.
국방부 장관은 시크교 베테랑.
청년부 장관은 45세 이하.
농업부 장관은 전직 농부.
공공안전및 긴급대책부 장관은 정찰병.
혁신, 과학, 경제발전부장관은 경제분석가.
재정부 장관은 성공한 사업가.
법무부 장관은 검사이자 국가리더.
체육, 장애부 장관은 시각장애 올림픽 선수.
해양수산및 해안경비부 장관은 이누이트.
과학의학지리부 장관은 PhD, 박사.
 
이 타이틀들과 포함해, 이민, 시민, 난민부 장관은 이민전문 비평가.
과학자들이며, 내각의 50%는 여자.

정어리 – 91

https://www.youtube.com/watch?v=VmO_0tIGo-4

 

x. 요 며칠동안 끄적여 파편화된 것들을 나열하는 일, Nina Simone의 Feelings를 들으며 적어내려가는 오랫만의 잡글. 혼자가 되는 일이 그리 낯설진 않지만, 익숙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혼자가 되는 일을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하지만 커다랗게 열린 캄캄한 그 곳에서, 그 유대감,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곳에서 같은 방향을 향해 걷기위해 두리번 거리고 있다는 그 유대감. 그것이 나의 고립을 해체한다.

 

x. 해가 질 무렵까지 허우적거릴 정도 알싸한 독주. 요즘에는 저녁을 압생트로 시작하는 취미가 생겼다. 취미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언제부턴가 꾸준히 하게 되었으니 습관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x.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열리는 가능성들.

 

x. 요즘 친구들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늘면서, 사람들이 몇 가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 페미니스트 여성이라고 해서 페미니스트 남성만을 만나야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런 사고는 단지 사람을 믿지 않겠다며, 페미니즘을 고립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 페미니즘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기 위해 하나의 공동 선을 제시하는 것이다.

 

x. 최근 들어 메갤에서의 어떤 의견, 이를테면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라던가 더 나아가서 ‘남성은 모두 잠재적 가해자’, 심지어 ‘남성은 전부 적’ 같은 것들이 오래된 것들을 상기 시킨다. 캐나다 친구에게 “양키 고 홈”이라고 외치던 사람들, 그리고 반자본주의, 민중메탈을 자처하던 이스크라 같은 밴드를 두고, 미제의 음악이라며 멸시하던 NL들이 생각난다. 퇴행.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벽을 만들고선 그 벽을 향해 왜 무너지지 않느냐며 구원을 구하며, 무릎 꿇고, 눈물을 쏟으며 기도 하는 사람들. 아무도 당신을 구원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x. Urban Shamanism, 5년 만에 새로운 전시를 결정했다. 지난 작업 ‘앞, 뒤 없는 세계’를 확장시키기도 하겠지만, 나는 정치, 예술, 문화, 철학이 현대 사회의 주술과 종교적 제의라는 관점으로 이번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이를테면 베를린, 노동절에는 크로이쯔베르그, 노이쾰른, 그리고 프리드리히샤인 지역에 수 십개의 펑크, 힙합, 테크노 오픈 에어 스테이지가 열린다. 그리고 수 만명의 사람들이 이 음악들을 중심으로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약에 취해 환각에 빠지기도 하며, 불과 1~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시위대가 화염병과 투석전으로 경찰들과 격렬한 대치를 하며 쟁의를 벌인다. 단지 하루동안의 사육제에 불과해보일지 모르는 이 일들을 나는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빠질 수 없는 종교적 제의라고 생각한다. 은행에 벽돌이 던져지고, 유리창이 파손된다 한들 군대가 투입되지 않고, 경찰들이 어느 정도 수준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도 이 모든 것이 종교적 제의이기 때문이다.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시위대의 목적도 실제 은행-자본의 붕괴가 아니며, 시위대를 진압하려는 경찰의 목적도 은행-자본을 붕괴시키려는 범죄자 검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밤, 베를린의 수 많은 클럽에서 열리는 테크노, 락, 메탈, 재즈, 블루스 공연들도 마찬가지의 종교적 제의이다. 이 제의들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열린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 선’을 제시한다.

 

x.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절대 정의 또한 없다. 나의 정의가 어떤 이에게는 악일 수 있으면, 그 어떤이의 진실된 정의가 나에게 악일 수 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규정하길 지양하고, 우리 ‘공동체의 공동 선(the common good)’을 향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를 악으로 규정하고, 몰아내려고 해서는 이 싸움을 끝낼 수 없어, 끝없는 전쟁만이 우릴 기다릴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한다. 전쟁은 언제나 정의를 찾아 시작 되었고, 희생은 언제나 약자의 몫이었다. 독일 아나키스트들이 말하던 ’War starts here, Let’s stop it here’가 같은 맥락에 읽힐 수 있다. 전쟁을 종식시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병역을 거부하는 것 또한 폭력에 참여하지 않는 방법으로서 어떤 관점에서 ‘만들어진 정의’를 추구하기 하지않고, 공동 선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체제의 폭력에 저항하는 방법이 된다.

 

x. Gesture와 Act를 구분하지 못하고, 진담과 농담의 경계를 가리기 어렵다면, 이토록 어렵게 사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x. 뭔가를 시작하면, 당장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진다.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외롭다는 느낌이 멀어지면서 사소한 발걸음조차 힘차진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찾아오는 고립감이 도리어 스스로를 냉소적으로 만든다. 그 가운데 우리가 해야할 것은 동요하지 않고, 꾸준히 그 가치를 지켜가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만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얻는 것은 작은 신문의 기사뿐이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너 없이 세상은 돌아간다. 최고의 복수는 살아 남아서 증명 하는 것이다.”는 에디 베더의 말에 매번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을 희생시켜, 순교시켜 얻을 수 있는 세상은 없다.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스스로부터 행복해져야한다. 질투하지 않아야한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도 도울 수 없다. 당신의 지금이 미래가 될 것이다. 비젼, 네가 슬퍼하면, 미래 또한 슬퍼진다. 그러니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x. 그래, 나도 어제와 같이 매일 요리하는 것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그저 같은 낡고 오래된 일이라 할지라도, 내가 어떻게 감히 생각에 잠기는 가장 고전적인 이 방법을 그만둘 수 있단 말인가?

요리를 하다보면,
모든 것들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만약 네가 누구인가 사람들에게 알리려 한다면,
이내 곧 잘못된 느낌을 갖겠지.

만약 네 마음 속에 올바른 것을 두고 있다면,
분명 크게 기뻐하게 될거야.

 

x.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듣기 좋은 겨울밤이다. 비록 추울지라도.

 

ㅡ 2015년 11월 29일, 아침이라 말하기엔 너무도 이른 아침.

성소수자를 때리며, 분열된, 혹은 붕괴된 매갤이 할 수 있는 일

몇 달 내내 매갤을 비판적 지지한다며, 꾸준히 보아왔다. 그리고 많은 분들과 대립을 했는데, 그 분들 중 일부는 의견이 다르더라도 지속적으로 여성권리를 도모하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로 했으나 대부분의 분들은 ‘여성은 약자,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깨지 못하면서 대화가 단절 되었고, 나는 어느새 맨스플레이너가 되었고, 가해자가 되었다. 메갈리안 현상 이후에 너도 나도 페미니스트를 선언하며, 페미니즘은 실제로 쿨하게 소비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없이 ‘여성의 권력화’와 ‘여성권리신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고, 심지어 ‘나는 가해자 남성입니다’ 라는 식의 엉터리 페미니즘 신앙간증이 유행이 되기도 했다. 정희진 선생님 말씀처럼 이러한 이야기들은 오히려 페미니즘의 독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메갤의 입장은 앞으로 메갤이 페미니즘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혹은 인터넷 놀이문화중 하나가 되는지에 대한 마지노선이 될 것이다. 이것이 정리되지 못하면 메갤 자체가 내부에서 붕괴되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남자는 모두 적이다”,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같은 글들이 수 백개의 메념을 받고, 반대가 없는걸 보면, 이미 붕괴가 시작된 것 같긴 하다.
* 3세대 페미니즘에 대한 주요 비판이 2세대 페미니즘이 ‘여성만의 운동’이 되어버린 것을 반복되지 않도록 남성, 여성,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등 모든 성을 아울러 연대의 운동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성약자화’라는 관점에서 메갤은 2세대 페미니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지만, 3세대 페미니즘에는 완벽하게 반대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이 자기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른체 ‘쟁의 없이 구원을 구하고 있을 뿐’이니까.. (…)

 

물론 메갤의 문제는 실제로 페미니스트가 되기는 절대 원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위치가 개선되기 바라는 여성의 이율배반성에 대한 비판은 내부에서 조금도 언급할 수 없다는 점이다. 메갤은 남성우월주의를 비판하면서 정작 본인의 이율배반성은 성찰하지 않는 여성을 향한 분노을 무조건 여혐, 또는 반여성주의라며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성소수자 혐오 문제에서 약자와의 연대를 끊은건 게이 남성들이 아니라, 메갤 여성 유저들이다. 내가 메갤이 서둘러 학습, 조직운동을 해야한다고 이야기를 꺼낸지 몇 달은 되었지만, 소라넷, 여성차별 광고근절과 같은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사실 메갤에서 여성이 주체가되는 운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는 동안 내가 비판하고, 예상했던 일은 조만간 정리할 글에서 드러나겠지만, 어림잡아 생각해보더라도 거의 다 일어난거 같다.

 

이게 끝이면 좋겠지만, 아직 일어날 일이 남았다는걸 아직 모르시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지금 제일 멘붕인건은 메갤이후 너도나도 페미니스트 선언하고, 미러링을 무한 지지한 사람들이 아니라, 젠더학 연구하시는 분들일 것이다. 가슴 아파하시겠지만, 진작에 고민했어야하는 부분을 ‘피해자-여성’ 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용인했기 때문이다.

 

메갤이 여기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방법은 내 생각에 딱 두가지 밖에 없어 보인다.
1. 메갤에서 구심점이 되는 분들이 구제할 문화담론으로 학습, 조직운동, 자기비판 그리고 여성이 주체가 되는 운동으로 간다.
2. 구심점이 되는 분들이 지금의 메갤을 떠나, 이름조차 버리고, 지금까지의 문제를 모두 비판적으로 연대기를 정리해 운동과 맞닿게 하는 것이다.

 

1과 2에서 비판이 꼭 필요한 이유는 메갤이 ‘피해자-여성’ 이라는 것을 전제로 모든 것을 무비판 적으로 용인하면서 반페미니즘의 가치(여성권리신장이 아닌, 여성의 권력화)가 메갤의 주요 여론이 되는데도 자정작용을 전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비판적으로 연대기를 정리해 운동과 맞닿게 하라는 이야기는 메갤이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메갤을 특정 목적을 가진 ‘정치결사체’로 보면서 메갤에 비판적 지지를 하였는데, 나의 비판에 메갤은 페미니즘 운동이 아니라며 메갤의 모든 행동을 옹호하시며, 메갤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으신 분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과 2,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현 상황을 타계할 문화담론을 짜내지 못하면, 방법이 없어보인다. 비판에 대한 수용및 자기 비판은 필수이다. (비판적 지지는 3세대 페미니즘의 기폭제였던 ‘폭동소녀 선언문’에서 강조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메갤의 방향성을 만드는 것이다. 오랫동안 이야기 해왔지만, 메갤은 페미니즘이 그렇게 오랫동안 싸워왔던 ‘여성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방향성이 없어 그저 인터넷 놀이문화로 전락하기 쉽고, 문화담론도 짜기 어렵다.

 

나는 이것들이 유일한 답일거라 생각한다. 늦어질수록 대중운동으로서의 그 가능성은 낮아지고, 2015년판 ‘여성의 전화’가 될뿐이다. 여성의 전화가 성폭력 피해여성을 구제하는데는 매우 큰 역할을 했지만, 여성의 전화활동들 다수가 여성의 피해에만 한정되어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권리가 특별히 신장된 것은 아니다. 여성들만 모아놓고, 여성주의를 외칠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 무성애와 헤도니스트, 그 모두를 아우르는 ‘젠더의 평등’ 관점이 되지 않는다면, 여성의 권리는 아직도 멀어보인다.

 

* 3세대 페미니즘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2세대 페미니즘의 막바지, 80년대 초반부터 이미 페미니즘은 전쟁반대, 인종차별반대, 시민의 권리, 녹색운동, 성소수자들과 함께 약자와의 연대를 시작해왔다.

청년진보논객 데이트폭력에 부쳐..

아마 내가 이 이슈에 대해 내 의견을 피력코자하는 일은 처음일 것이다. 곧 지금까지의 메갤리안, 페미니즘의 이슈와 함께 총 정리해서 어느 곳에 글을 싣게되는데, 그 중 청년진보논객의 이슈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번 글에서 나는 ‘한국과 같이 다양성이 없는 사회가 소수자를 대하는 일’을 이야기 하면서 “그러한 일은 집단주의 문화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일로는 가치비판을 하는 개인에 대한 집단의 인격살인이다. 이런 일들은 작은 사회일수록 더욱 심각해지는데, 운동가, 좌파, 혹은 진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는 더욱 작기 때문에 마이너 집단 안에서의 린치는 보다 강도가 높다. 집단 내의 공공 선을 반영하는 규율이 권력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그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 했다.

그와 동시에 이번 데이트폭력 폭로는 굉장히 위험한 수준까지 갔다. 폭로자가 피해자로서 보호받을 권리가 지켜져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사건과 아무 하등 관계없는 사생활을 아무렇지도 않게 공공에게 알리는 폭력을 행사한 점이나, 폭로내용이 사실로 밝혀지지도 않았음에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깬 것과 경찰과 검찰도 할 수 없는 ‘피의사실공표’를 하였다는 사실이다.

혐의 사실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피해로 인해 기어코 혐의당사자들이 폭로당사자와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피의사실 유포자에 대해 고소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안타깝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조차 개인 사생활까지 폭로한 폭로당사자가 고소 취하를 요구하는 것은 폭로 내용이 사실이라면 요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명백하다. 물론 허위사실에 현혹된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책임질 수 없는 말, 특히나 이번처럼 최소한의 확인절차도 거치지 않고, 개인에 대해 집단의 린치, 인격살인이 이루어진 경우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The Feminists – SWEET LITTLE GIRL official pop music video

 

x. The Feminists – SWEET LITTLE GIRL official pop music video!

사랑하는 친구들이자, 베를린의 언더그라운드 씬을 뒤흔들고 있는 ‘The Feminists’의 팝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뭔갈 찍는데 함께 하겠냐는 케서방의 말에 “안 될거 없지 뭐..”라고 했다가 며칠 뒤, 자던 중 얼떨결에 촬영에 합류했다. 꽤 긴 시간동안 촬영한 것 같은데, 편집하고 보니 다 잘리고 남은건 거의 없지만, 잠에 덜 깬채 맥주를 털어넣으며 유쾌하게 촬영했다. (찾지는 마라..)
영상에서는 한 친구가 빠졌지만, ‘The Feminists’는 Iggy Pop이 여장을 한채, “I’m not ashamed to dress ‘Like a woman’. Because I don’t think it’s shameful to be a woman. 나는 여자처럼 입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면 여자가 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며 ‘FCKH8(혐오ㅈ까)’의 ‘혐오에 반대하는 Gay, Str8(게이, 이성애자) 평등 캠페인’에서 말할 때처럼 여장을 한 여섯 사나이. (최근 베를린 주요 음악 매거진중 한 곳에서는 Iggy pop의 새 앨범 리뷰보다 The Feminists의 새 앨범에 무려 8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중요하게 다루기도 했다)

쓰라린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올 여름 서울-베를린 도시교류 페스티발에서 꼭 데려가려고 했던 밴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은 아직 이르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이번 메갈리안 현상을 보더라도 영화, 음악 등을 위시로한 여성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영향은 앞으로 급속도로 커질 것이고, 더불어 한국의 문화, 예술씬의 다양성도 보다 넓어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문화담론을 타고, 정치운동이 벌어지게 될 것을 기대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아니라, 꿈꾸어왔던 일들을 현실로 바꾸는 일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잠시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일시적일 뿐, 반드시 오게될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삶을 위시로한 문화, 예술, 정치, 철학, 사상의 가치를 욕망하는 것이 어떠한 위험, 이를테면 경제위기의 요인의 보다 크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페미니스츠는 당신이 베를린에 방문할 때, 꼭 놓치지 말아야하는 밴드!

영화 리뷰, Gaspar Noé의 LOVE

 

내용을 스토리, 비쥬얼, 음악 모두 스포일링 하고 싶지않은 영화라 엉터리 리뷰지만, 그래도 나누어 봅니다.

 

 

x. Gaspar Noé의 <LOVE>
(독일 트레일러: https://www.youtube.com/watch?v=PrgGTQNOB6Q)

며칠 전, 논란이 되고 있는 가스파 노에의 영화 <LOVE>를 보았다. 자랑할게 좀 있다면, 한국에서는 절대 상영될 수 없는 수준의 영화. 왜냐면 2시간 20분 내내 대부분이 섹스 씬인데, 실제 정사이며, 성기의 디테일이 굉장히 살아있다. 한국은 물론, 북미 정서로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운, 유럽에서나 이해가될 수준. 한국에서 개봉한다면 19금은 물론이거니와 모조리 삭제되어 1시간 정도 밖에 상영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독일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 처음으로 본 3D영화였는데, 빌어먹을 3D안경이 작아서 보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자막이 없는 독어 더빙이었는데, 섹스 씬이 하도 많아서일까, 아니면 대화가 쉬워서일까, 90퍼센트 이상 무리 없이 이해가 가능했다.

쓰리썸으로 시작하는 초반부의 섹스 씬들, 그리고 특히나 세 남녀의 혀가 닿는 씬은 굉장히 좋았는데, 뒤로 가면서 늘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갈수록 섹스 씬들이 지루해진다.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면서 내용 전개는 단조로워서 영상미와 음악에만 치중한.. 아쉬운 느낌.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ㅇㅇ화 섹스 씬들이 고루하므로 나는 섹스 씬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인데, LOVE의 초반부의 섹스 씬은 결코 상업 포르노처럼 같은 저렴한 느낌이 아니면서 동시에 포르노보다 훨씬 디테일있고, 자극적이다. 지금까지 본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섹스 씬이랄까. 헤도니스트에게 추천하는 영화.

며칠 전, 논란이 되고 있는 가스파 노에의 영화 <LOVE>를 보았다. 자랑할게 좀 있다면, 한국에서는 절대 상영될 수 없는 수준의 영화. 왜냐면 2시간 20분 내내 대부분이 섹스 씬인데, 실제 정사이며, 성기의 디테일이 굉장히 살아있다. 한국은 물론, 북미 정서로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운, 유럽에서나 이해가될 수준. 한국에서 개봉한다면 19금은 물론이거니와 모조리 삭제되어 1시간 정도 밖에 상영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독일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 처음으로 본 3D영화였는데, 빌어먹을 3D안경이 작아서 보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자막이 없는 독어 더빙이었는데, 섹스 씬이 하도 많아서일까, 아니면 대화가 쉬워서일까, 90퍼센트 이상 무리 없이 이해가 가능했다.

쓰리썸으로 시작하는 초반부의 섹스 씬들, 그리고 특히나 세 남녀의 혀가 닿는 씬은 굉장히 좋았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단조로운 전개의 느낌과 함께하는 섹스 씬들, 때문에 영상미와 음악이 이를 커버.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ㅇㅇ화 섹스 씬들이 고루하므로 나는 섹스 씬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인데, LOVE의 섹스 씬, 특히나 초반부의 섹스 씬은 상업 포르노의 저렴함은 찾아볼 수 없고, 동시에 포르노 보다 더 디테일하며, 자극적이다. 막판 전개의 지리멸렬함에 아쉽지만, 헤도니스트들에게 추천하는 영화.

확증편향, 다양성, 소수자, 시위, 좌파, 문화담론, 마이페스트

x. 확증편향

한국에서는 사람의 한 단면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어떤 면과 대치되면, 그 사람의 모든 면을 적대시한다. 갈등을 통해 서로 다름을 인식하고 공존의 방법을 찾기보다 파괴해버리는데 능하다. 누구나 작은 부조리를 갖을 수 있고, 그 부조리의 주체는 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부조리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다. 그러는 순간 자신 또한 부조리의 주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x. 한국과 같이 다양성이 없는 사회가 소수자를 대하는 일.

그러한 일은 집단주의 문화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일로는 가치비판을 하는 개인에 대한 집단의 인격살인이다. 이런 일들은 작은 사회일수록 더욱 심각해지는데, 운동가, 좌파, 혹은 진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는 더욱 작기 때문에 마이너 집단 안에서의 린치는 보다 강도가 높다. 집단 내의 공공 선을 반영하는 규율이 권력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그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비단 정치로 하여금 박근혜 대통령에게 성적인 모욕과 이쟈스민 의원에게 인종차별적 모욕을 쏟아내는 좌파 아재들 뿐만 아니라 바로 며칠 전의 메갤 내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다름을 인정하자고 수시로 말하는 좌파 커뮤니티들에서조차 수시로 행해지는 일이다.

한국사회와 같이 다양성이 없는 곳에서 마이너, 펑크로 살아가면, 외모, 취향, 정치성향은 물론 반집단주의적 삶의 태도 등의 이유로 하여금 집단주의의 폭력과 차별은 일상적으로 만나게 된다. 반면 독일에 와서 가장 편한 것은 교수라던가 관공서를 찾는다고해서 나의 정체성을 숨길 필요가 다는 것, 아니 심지어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에 대해 존중을 받기까지도.

x. 메갤의 성소수자 때리기.

짧게 잘라 이야기 하자면, 지금까지의 엉터리같은 일들을 차치하더라도 이번과 같은 메갤의 성소수자에 대한 조롱을 보면, 미국의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트랜스젠더들의 여자화장실 사용을 반대할 것이 뻔하다. 페미니즘이 80년대 들어 녹색운동, 성소수자운동과 함께 약자와 연대한 것을 모조리 부정하고, ‘권리투쟁’이 아닌 본인들의 ‘권력투쟁’이 되고 있다. 그것이 종전에 메갤에서 심심찮게 보였던, 남성페미니스트 부정, 남성혐오 등과 맥락을 같이한다.

x. 시위, 좌파 문화 담론.

며칠 전, 시위 문화를 꼬집는 목소리가 나왔다. 누구는 동의했고, 누구는 힐난하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투쟁방식이 경직되고, 오래된건 사실이다. 독일처럼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을 이야기 해보자하면, 독일 시위대가 브레히트 작사, 한스 아이슬러 노래의 ‘Der heimliche Aufmarsch’ 같은걸 부르지 않은지는 오래됐다. (가사및 비디오:http://goo.gl/KGaThQ)

지금 독일의 시위들은 투석전과 화염병도 등장하지만, 한편에서는 테크노, 힙합, 펑크, 포크 등의 음악이 울려퍼지며 행진하기도 한다. 반면에 한국의 좌파운동이 아직도 오래된 텍스트, 경직된 구호에 집착하는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오늘, ‘민중’이란 말이 딱딱하고, 후지게 들리는 것도, 우리에게는 민중 말고는 다른 이름으로 각자를 호명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철의 노동자, 민중의 노래, 비정규직철폐가, 농민가 등등을 좋아한다고 해서 지금 젊은이들이 ‘오직 민중가요’만을 시위에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의 취향과 관계 없이 후지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민중 부르짖으면서도 화염병이나 벽돌을 던지지 못하는데, 또 다시 독일을 이야기 해볼까하면, 종종 경찰차를 불태우기도하고, 2009년 등록금 투쟁에서는 25만명의 대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철도조차 점거를 했다. 노동절에는 으레 은행유리창도 까부수는데, 그러면서도 바로 근처에서는 펑크, 힙합 공연 등과 테크노 등이 펼쳐진다.

나는 사실 쥐벽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왜냐면, 쥐벽서가 G20에 대한 조롱을 담고는 있지만, 외모에 대한 비하가 예술로 둔갑되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노무현 시절의 반전 시위의 행진에서 나와 친구들은 스텐실을 하다 제지당했다. 처음에는 사복경찰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더 깜짝 놀란 것은 경찰이 아니라 시위대였다. 순간 욱했는데, 참았다. 그러다가 쥐벽서가 이슈화 되면서 한국의 좌파운동이 얼마나 문화담론과 거리가 먼지 알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자”고 한다. 민중의 노래를 부르면서. 대체 그 민중에는 내가 있을 수 없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에서 여러 시위를 보고, 또 참여하면서 생각을 달리갖게 되었다.

노동절 경찰 폭력에 반대하기 위해 시작된 베를린의 마이페스트(비디오:https://www.youtube.com/watch?v=SaXSJ6xk8Fc)는 공식적으론 십여개의 스테이지이지만, 주변의 운동 거점 지역들이 만드는 자발적인 스테이지까지 합하면 어림잡아 생각해봐도 40~ 50여개는 족히된다. 이런 스테이지들에서는 Fat Wreck Chords 같이 세계적인 레이블의 밴드들이나 디제이들이 와서 무료로 공연을 한다.

물론 놀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이페스트가 투쟁을 가볍게 만든다는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불과 1~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화염병과 투석전이 난무하고, 으레 은행 유리창이 파손되곤 한다. 바로 옆에서 테크노 파티가 벌어지면서, 또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기도 한다. (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I-2CPLZCxDo)

하지만, 마이페스트 이후, 경찰의 진압 방식이 언론에 뭇매를 맞아온게 사실이다. 이러한 문화 이벤트가 경찰폭력진압을 저지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라는건 베를린 시 전체가 증명한다.

10년 전쯤 되었을까, 이런 기획을 친구들과 하고 싶어 이야기중이었는데, 시위를 진중치 못하게 한다고 비난에 휩싸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서울에서 다시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있다.

마이페스트에 동기를 부여한 99년, Atari Teenage Riot이 99년 WTO반대 공연(https://www.youtube.com/watch?v=Y2NY5bGBFKg)을 한 것도 유명하다. 공연 중에 폭력적인 진압이 자행되었으며, 멤버 전원이 연행되었지만, 이후로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다며 언론의 뭇매를 맞고,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진압 방식으로 선회하게 된다. ATR은 이에 그치지 않고, 확장하여 1년에 한번씩 드레스덴에서 있는 네오나치 결집 데모 건너편에서 카운터 데모및 공연을 조직하기도 한다. 네오나치랑 안티파가 뒤엉켜 싸우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이 개입하는데, 결국 네오나치들의 행진을 저지하는데 성공해왔다.

작년 나도 참여했던 시위의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u8ZdYIEx5hs)에서 보이는 것처럼 80여명의 네오나치들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결집하는 것을 경찰이 막지 못했기 때문에 6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고, 영상에는 충돌하는 장면뿐이지만, 사실 이 날 나는 네오나치를 구경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안티파-아나키스트들이 주도해 디제잉 하는 차량들을 중심으로 수 천명의 시민들이 다양하고 폭넓게 참여한 무척 평화로운 카운터 데모였다. 이러한 하위문화들을 통해 수 만명이 모여 저항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젊은 청년 좌파 문화가 없다는 것이 상당히 안타깝다. 모든 주류문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좌파 청년들이 대체로 성상품화된 아이돌 음악을 듣는다는게 나로서는 실망이 크다. 또한 기성패션과 같은 주류문화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으면서 ‘반자본주의’ 같은 구호를 외치고, 다양성을 요구하는 것은 공허하게만 보인다.

노동당 당수 코빈이 당선 직후, 적기가를 불러도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영국엔 공산주의-, 아나키즘을 위시로한 펑크, 하드코어, 테크노 등의 하위문화가 넘치고 넘친다는 것 아닐까.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불과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직된 좌파운동을 한두번 경험한게 아니다. 한번은 The Explode의 곡이 Deadly Taekwondo Boy와 함께 plsong.com에 올랐을 때, 웹사이트 생긴 이래로 유래가 없을 정도의 시끌한 토론 게시판이 생기더니, 펑크음악이 너무 폭력적이라면서 결국 음악은 삭제 되었다. 이게 10년 전쯤 일이다.

하위문화를 위시로한 문화담론이 마치 어린 아이들의 놀이감 정도로 취급되는 것을 보면, 사실 그 문화담론이 없었으면, 브레히트도 없었고, 한스아이슬러도 없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좌파운동이 문화적으로 후지다는데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이건 내가 최도은의 곡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시위에서 전농아저씨들이랑 막걸리 마시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랑은 별개의 이야기다. 물론 지금은 별 미친놈들이 시위에서 술 마시지 말라며, 술병을 강제로 채가기도 하는데.. 그거 다 별개로 후지긴 진짜 후졌다. 명박 산성을 넘겠다는 사람들에게 “비폭력”을 외치면서, 멱살 잡고 강제로 끌어내리는 사람들이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람들이 외치는 다양성은 대체 무얼까?

영화감독, 윤성호가 그랬다. “이런 사람들이랑 어떻게 혁명을 해!”

메갤에 대한 단상, 퇴행, 공동 선

x. 요즘 친구들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늘면서, 사람들이 몇 가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 페미니스트 여성이라고 해서 페미니스트 남성만을 만나야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런 사고는 단지 사람을 믿지 않겠다며, 페미니즘을 고립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 페미니즘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기 위해 하나의 공동 선을 제시하는 것이다.

x. 최근 들어 메갤에서의 어떤 의견, 이를테면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라던가 더 나아가서 ‘남성은 모두 잠재적 가해자’, 심지어 ‘남성은 전부 적’ 같은 것들이 오래된 것들을 상기 시킨다. 캐나다 친구에게 “양키 고 홈”이라고 외치던 사람들, 그리고 반자본주의, 민중메탈을 자처하던 이스크라 같은 밴드를 두고, 미제의 음악이라며 멸시하던 NL들이 생각난다. 퇴행.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벽을 만들고선 그 벽을 향해 왜 무너지지 않느냐며 구원을 구하며, 무릎 꿇고, 눈물을 쏟으며 기도 하는 사람들. 아무도 당신을 구원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x. Urban Shamanism, 5년 만에 새로운 전시를 결정했다. 지난 작업 ‘앞, 뒤 없는 세계’를 확장시키기도 하겠지만, 나는 정치, 예술, 문화, 철학이 현대 사회의 주술과 종교적 제의라는 관점으로 이번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이를테면 베를린, 노동절에는 크로이쯔베르그, 노이쾰른, 그리고 프리드리히샤인 지역에 수 십개의 펑크, 힙합, 테크노 오픈 에어 스테이지가 열린다. 그리고 수 만명의 사람들이 이 음악들을 중심으로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약에 취해 환각에 빠지기도 하며, 불과 1~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시위대가 화염병과 투석전으로 경찰들과 격렬한 대치를 하며 쟁의를 벌인다. 단지 하루동안의 사육제에 불과해보일지 모르는 이 일들을 나는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빠질 수 없는 종교적 제의라고 생각한다. 은행에 벽돌이 던져지고, 유리창이 파손된다 한들 군대가 투입되지 않고, 경찰들이 어느 정도 수준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도 이 모든 것이 종교적 제의이기 때문이다.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시위대의 목적도 실제 은행-자본의 붕괴가 아니며, 시위대를 진압하려는 경찰의 목적도 은행-자본을 붕괴시키려는 범죄자 검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밤, 베를린의 수 많은 클럽에서 열리는 테크노, 락, 메탈, 재즈, 블루스 공연들도 마찬가지의 종교적 제의이다. 이 제의들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열린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 선’을 제시한다.

x.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절대 정의 또한 없다. 나의 정의가 어떤 이에게는 악일 수 있으면, 그 어떤이의 진실된 정의가 나에게 악일 수 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규정하길 지양하고, 우리 ‘공동체의 공동 선(the common good)’을 향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를 악으로 규정하고, 몰아내려고 해서는 이 싸움을 끝낼 수 없어, 끝없는 전쟁만이 우릴 기다릴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한다. 전쟁은 언제나 정의를 찾아 시작 되었고, 희생은 언제나 약자의 몫이었다. 독일 아나키스트들이 말하던 ’War starts here, Let’s stop it here’가 같은 맥락에 읽힐 수 있다. 전쟁을 종식시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병역을 거부하는 것 또한 폭력에 참여하지 않는 방법으로서 어떤 관점에서 ‘만들어진 정의’를 추구하기 하지않고, 공동 선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체제의 폭력에 저항하는 방법이 된다.

x. Gesture와 Act를 구분하지 못하고, 진담과 농담의 경계를 가리기 어렵다면, 이토록 어렵게 사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x. 뭔가를 시작하면, 당장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진다.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외롭다는 느낌이 멀어지면서 사소한 발걸음조차 힘차진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찾아오는 고립감이 도리어 스스로를 냉소적으로 만든다. 그 가운데 우리가 해야할 것은 동요하지 않고, 꾸준히 그 가치를 지켜가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만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얻는 것은 작은 신문의 기사뿐이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너 없이 세상은 돌아간다. 최고의 복수는 살아 남아서 증명 하는 것이다.”는 에디 베더의 말에 매번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을 희생시켜, 순교시켜 얻을 수 있는 세상은 없다.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스스로부터 행복해져야한다. 질투하지 않아야한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도 도울 수 없다. 당신의 지금이 미래가 될 것이다. 비젼, 네가 슬퍼하면, 미래 또한 슬퍼진다. 그러니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최근 베를린 소식

x. 그제 프리드리히샤인의 리가어슈트라쎄, 리빅슈트라쎄 전체가 경찰들의 과잉대응으로 난리였다. 리가우어슈트라쎄는 2000년대 초반까지 전부 스쾃이었지만, 재개발 때문에 이제 몇 채의 스쾃만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가어슈트라쎄는 명실공히 프리드리히샤인의 펑크-아나키스트-안티파들의 주요 거점이다. 그걸 경찰이 노리고 고립 시키기위해 길 전체를 통제해 모든 사람들을 검문했으며, 이에 항의하는 사람들과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는 가운데 화염병과 투석전이 있었다. 경찰들은 본인들의 무리한 단속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에, 어처구니 없게도 이 충돌과 무관한 사람이 체포되었다. 설사 그가 잘못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무리한 단속으로 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덮기위해 사건과 이해가 다른 사람을 부당한 방법으로 검문하고 연관지으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 되었기 때문에 많은 지역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심지어 베를린 메트로, BVG가 런던의 한 회사에게 잘못된 투자로 큰 돈을 잃은 것을 충당하기 위해 내년 1월 1일부터 요금을 올릴 계획에 이제는 무리한 표검사, 심지어 며칠 전에는 헤르만플랏쯔에서 수십명의 검표원들이 모든 승객을 내리게 해서 검사하는 일이 있었던 것을 상기해볼 때, 지금 치안당국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매우 분명해진다. 법이란 것은 사회의 기본규약으로 작동하기도 하지만, 목적은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공동체가 불안해할만큼 법을 강제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x. 집 근처 1889년 건설되었다가 버려진 유리공장이 곧 철거 된다고 한다. 법정분쟁으로 한동안 비어져 있어, 언더그라운드 클럽 역할을 하던 이 공장은 칼 맑스가 종종 슈프레 강을 산책할 때 들렀던 곳이기도 하며, 공장주가 노동자들의 집 임대료를 70퍼센트까지 지원하기도 했던 곳이다. 그런 역사가 곧 사라진다. 때문에 프리드리히샤인 지역의 친구들 사, 오백명이 모여 파티를 만들었다. 낮부터 2개의 스테이지에서 재즈밴드가 연주, 퍼포먼스 아트,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오픈 마이크, 스윙, 서프 펑크, 그리고 밤에는 딥테크하우스와 해피 하드테크노가 공장을 전체를 뒤흔들었다. 입장료는 내고 싶은 만큼이지만, 다들 동전을 한꾸러미씩 내놓았다. 수익은 당연히 지역 난민운동에 사용될 것이다. 역사가 기록으로, 그리고 기억의 저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이 격정적이었던 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ㅡ 2015년 11월 29일 작성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