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 got from yesterday: Tons of hugs and kisses with old friends, Tons of beer and hangover, tear up lips, teeth ache, few bruise, left ankle sprain, back bone sprain, ridden lung from tabaco, beer washed my soul, and Earth Crust Displacement, Sex Dwarf and Scumraid, and Dance Violence of Arryam.
Thank you all, and I love you all guys so mu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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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로부터 얻은 것들: 오랜 친구들과의 백만번이 넘는 포옹과 키스들, 수백병의 맥주와 숙취, 찢어진 입술, 시린 이, 몇개의 멍들, 왼쪽 발목 염좌, 요통, 타박에 찌든 폐, 맥주로 씻겨진 영혼, ECD, 섹스 드워프, 그리고 스컴레이드, 그리고 아얌의 댄스 바이올런스.
언젠간 가겠지(갈테면 가라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영가)가 구슬퍼
가고없는 날들을 잡으려 또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청 춘 예~
1 2 3 4
날 두고 가는 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동산 찾는가
예이예 예이아 예이예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예이예 예이예 예예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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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gh.. this song was banned in the 80’s, when second military dictator controlled South Korea to fascism. Banned reason was just too sad, because of just too sad. (in the round bracket, that sentences was original lyrics. But they changed for release legal record, while dictator government pressured to them to change lyr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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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I guess my green,
youthful days will go away
(Go, just go away, if that would to go
this green youth)
just like a flower that
blooms then withers!
Oh nights when the moon shines
so brights, my young love song(my young spiritual song)
that flow by my window
makes me sorrowful.
While trying to grab those days
that are gone and no longer here,
this vain attempt
makes me sad
so I think I’d rather let
it go and turn my back
for that’s the
way time goes.
Someday, I guess my green,
youthful days will go away
(Go, just go away, if that would to go
this green youth)
just like a flower that
blooms then withers!
Oh nights when the moon shines
so brights, my young love song(my young spiritual song)
that flow by my window
makes me sorrowful.
While trying to grab those days
that are gone and no longer here,
this vain attempt
makes me sad.
I think I could forgive
my dearest love who left me
but (I could not forgive)
time that’s deserting me.
There’s no place I’d rather
anchor and I wonder this is why
my empty heart comes to
see the friendly old hill.
Someday, I guess my green,
youthful days will go away
(Go, just go away, if that would to go
this green youth)
just like a flower that
blooms then withers!
Oh nights when the moon shines
so brights, my young love song(my young spiritual song)
that flow by my window
makes me sorrowful.
While trying to grab those days
that are gone and no longer here,
this vain attempt
makes me sad
so I think I’d rather let
it go and turn my back
for that’s the
way time goes.
분노에 이글거리는 ‘페이스북-혁명가’들이 너무 많아서 오랜만에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 혹은 시차적 관점에 대해서 가벼운 잡글을 적어볼까 한다.
얼마 전, 독일 유학생 그룹에 룸메이트를 구하는 독일인에 대한 분노의 글이 올라왔다. 이유인 즉, 룸메이트를 구하는 독일인이 한국인 유학생분께 메일을 보내왔는데 그 메일 내용은 대략, 자신의 이름, 나이 등을 소개하고, 한국인 유학생분이 월세는 부담하지 않되, 잠자리를 같이하는 그의 섹스 파트너가 되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몇 분들은 성희롱, 혹은 명예훼손을 이야기 하셨는데, 실제로 독일에서는 이런 일들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일이고, 법적으로도 아무 하자가 없다. 계약 이전에 이야기를 했으니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 동거조건일 뿐이고, 아무런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소 사유조차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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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보편적인, 그리고 주류문화에 익숙하게 살았다면, 이러한 것들을 문화라고 이해하지 않고, 범죄라고 단정짓기 쉬우리라 생각한다. 왜냐면 한국사회는 집단의 이해가치에 따른 보편적 정서에 동화되지 않으면, 나쁜 것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국사회는 다양성이 없는 집단주의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서 다양성은 집단주의의 위계질서를 해치는 나쁜 것으로 오인되기 쉽다. (최근에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문제들이 신자유주의 때문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독일에는 공개적으로 스윙어클럽, 스와핑클럽, 섹스 혹은 페티쉬 클럽들이 있다. 베를린에서는 특히나 더더욱 흔하게 볼 수 있다. 베를린이나 함부르크는 유명한 섹스 관광지이기도 한데, 이런 조건으로 동거자를 찾는 남녀가 많다. 유럽 헤도니스트들의 성지라고 불리우는 베를린에서는 아주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라는 말로 베를린을 경제난으로부터 구한 그 유명한 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도 게이였고, 그는 베를린의 그 악명 높은 섹스 프렌들리, 페티쉬 클럽인 벨카인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때문에 나는 오픈릴레이션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벨카인이나 킷캣같은 곳을 권하지 않는다. 헤도니즘과 오픈릴레이션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공간에 있다면, 서로를 존중하는 암묵적인 약속들이 파괴되어 공간 자체가 무너질 수 있고, 나아가서는 해당 공간에서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클럽들은 도어에서 세큐리티들이 거절해서 돌려보내는 경우가 클럽마다 하루에도 수백명씩 된다. 거짓말 안보태고, 벨카인에서 하루에 돌려보내는 관객만 적어도 500명은 될거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클럽들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공간 자체가 가져오는 안락함, 그리고 그 말없는 약속들이 지켜지기 때문이고, 무례한 관객이나 투어리스트들이 없기 때문이다. 베를린 클럽에 간다면서 가장 멍청한 놈들은 섹스프렌들리 클럽이라고 해서 섹스만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이런 곳을 찾으면, 섹스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와서는 춤도 추지 않고, 그저 등대처럼 두리번거리며 섹스 상대만 찾는 사람들이다. (사진 찍는 놈들은 말할 것도 없이 무조건 쫒겨난다)
그런 곳이 베를린이다. 테크노의 도시, 베를린의 클럽에서 진짜 즐긴다는 것은 그러한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다. 모든 클럽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베를린의 악명 높은 유명 클럽들은 이러한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다른 도시의 클럽들과 차별된 베를린 클럽의 가치를 표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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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인데, 서구문화 전반으로 신문지면상이나 온라인데이트 상에서 단기, 장기, 데이트 상대를 구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다. 혹여 어학원을 다닌다면, 어학원 선생에게 물어봐도 같은 답을 받을 것이다. 이런 문화는 한국에서 돈을 주고 성을 거래하는 것처럼 절대 이상한게 아닐뿐 아니라, 취향이 맞는 사람들 간의 합의된 건전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 유명한 줄리안 어샌지도 오케이큐피트 같은 웹사이트에서 자신을 ‘위험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할정도. 이런 웹사이트들은 자신의 정치성도 반영하는데, 베를린을 예로 들자면, 그 특성상 성적 기호에 대해서 이를테면 판섹슈얼, 바이섹슈얼, 오픈릴레이션쉽이라던가, 채식, 혹은 페미니즘과 같은 정치적 조건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만나는 일들이 흔하게 벌어진다.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길 거부하면서도 페미니스트 남성만을 찾겠다는 메갤의 그 이율배반적인 글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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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정리해보자면, 룸메를 구할 때, 자기와 기호, 취향, 라이프 스타일 등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독일에 와서 룸메를 구하기 위해 인터뷰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학업이라던가 삶의 태도라던가 자기와 성향이 맞는 사람을 찾는게 일반적이다. 아니 함께 사는데 서로 자주 마주치지 않길 원하는 사람도 드물게 있지만, 일단 룸메이트라는 정서가 함께 살아가며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동반자적 관계를 의미하고, 따라서 같이 자주 식사하고, 같이 놀러다니고, 이런 것들이 일반적이다. 이런 것들을 싫어하는 사람을 비사교적이라고도 하기도 하지만, 반사회적 a-social로 보기도 한다. 관심사에 대해서 서로 이해가 맞아야하기 때문에 독일인, 혹은 유럽 사람들과 룸메이트가 되기는 한국인들에게 쉬운 일은 아닐 수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 룸메이트를 구하면, 이게 얼마나 힘들고 까다로운지 알게 될 것이다. (룸메이트 하나 구하는데 10명 인터뷰는 흔한 일이다. 그들 조건과 마음에 들어야 가능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룸메가 되는 일도 드물지만, 집 하나 구하려고 이런 수고를 해야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해당 유학생의 이야기 같은 일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해야할까. 매우 간단하다. 메일 받고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답을 안하던가 그냥 거절하면 된다. 그 분께서는 처음이라서 놀라셨을거라는 생각한다만, 너무 기분 나빠 말았으면 좋겠다. 지구는 둥글고 나와 다른 사람들도 많다. 그 중에서 자신과 맞는 누군가를 찾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큰 기쁨중 하나 아닐까 싶다.
좋은 친구를 찾고, 진탕 마시며, “널 너무 찾아다녔어!”라고 말하는게 진짜 재미지! (내가 사는 하우스는 방이 스무개가 넘는 각자의 방에서 서로 다른 친구들이 살아가고, 매주 회의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회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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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점이나 누군가의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때로 유효한 결론과 거리가 먼 곳으로 귀결된다. 내가 어떤 곳에 서있냐에 따라 나무 그림자 방향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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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8ecLZtPssQ
베를린의 디제이 Adana Twins가 The Doors의 ‘People are strange’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 ‘Strange’.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베를린의 아주 유명한 테크노 그랜드파 두분 중 한 분, 올해 67세의 Bernhard Enste. 아주 와일드한 파티를 즐기시는데, 진짜 왠만한 젊은 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매력 터짐 때문에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으시다. 실제로 만나보면 왜 그런지 단번에 이해하게 됨!
ㅡ 2016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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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리 – 51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낄 때, 낯선이가 된다. 거울로 다가서 당신의 얼굴을 보라. 당신은 단지 그들이 낯설다고하여 누군가를 혐오할 수 없다. 낯선이가 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거울이 대답한다, 당신이 무언갈 알고 싶을 때.
세르히오 오르테가는 언젠가 다가올지 모르는 군사 쿠데타를 예감하고 이 노래를 작곡했으며, 1973년 피노체트의 1973년 쿠데타 이후 칠레 민중의 저항가요로 널리 불렸다.
남미의 민중가요인 칠레의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on)’의 곡 중 대표격으로, 칠레뿐 아니라 남미 지역에서는 시민 저항운동의 상징곡처럼 불리웠고, 현재도 시위 현장에서 불리고 있는 곡. 1973년 6월 작곡되었다.
세르히오 오르테가(Sergio Ortega)에 의해 작곡되었으며, 노래의 제목은 콜롬비아의 정치인 호르헤 가이탄이 주창한 구호에서 따 온것. 가사는 누에바 칸시온의 대표적 그룹 중 하나인 ‘낄라빠윤(Quilapayún)’에 의해 작사되었다. 이 노래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칠레에서 1973년 9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 의한 군사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의 민선 정부가 무너지고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살해당한 이후이다. 이후 투쟁가요로 남미에서 애창되었으며, 벤세레모스와 함께 칠레의 시민 운동 및 시위 현장에서 자주 불려지는 곡이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도 퍼져나가 다양한 언어로 번안되기도 했다.
미국의 폴란드계 작곡가인 프레데릭 제프스키(Frederic Rzewski)가 이 주제를 가지고 피아노 독주를 위한 1시간짜리(!) 크고 아름다운 변주곡들을 작곡했다. 한국에서는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인 지오반니 미라바시의 내한 공연 때 연주된 것으로도 조금은 알려져 있다.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De pie, cantar que vamos a triunfar.
일어나, 노래하라, 민중은 승리하리라.
Avanzan ya banderas de unidad.
연대의 깃발은 이미 전진한다,
Y tú vendrás marchando junto a mí
너 또한 내 곁에서 함께 행진하리라.
y así verás tu canto y tu bandera florecer,
또한 너는 너의 노래와 깃발을 보게 되리라.
la luz de un rojo amanecer
붉게 피어오르는 새벽빛은 이미
anuncia ya la vida que vendrá.
새로운 세상을 말해주고 있다.
De pie, luchar el pueblo va a triunfar.
일어나, 노래하라, 민중은 승리하리라.
Será mejor la vida que vendrá
우리의 행복을 쟁취함으로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다.
A conquistar nuestra felicidad
그리고 투쟁하는 수천 수만의 함성은
y en un clamor mil voces de combate se alzarán
dirán canción de libertad
일어나, 외치며, 해방을 노래하리라.
con decisión la patria vencerá.
그것으로 조국은 승리하리라.
Y ahora el pueblo que se alza en la lucha
지금은 민중들이 투쟁으로 일어 설 때
con voz de gigante gritando: ¡adelante!
거대한 함성으로 외친다. ‘전진!’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La patria está forjando la unidad
북에서 남까지 모여들어,
de norte a sur se movilizará
조국은 단결되고 있다.
desde el salar ardiente y mineral
불타는 소금광산에서 남쪽의 숲까지,
al bosque austral unidos en la lucha y el trabajo
irán la patria cubrirán,
투쟁과 노동의 연대는 조국을 뒤덮을 것이다.
su paso ya anuncia el porvenir.
너의 발걸음은 이미 미래를 예고한다.
De pie, cantar el pueblo va a triunfar
일어나, 노래하라. 민중은 승리할 것이다.
millones ya, imponen la verdad,
수백만 민중은 진실을 완성하고 있다.
de acero son ardiente batallón
그들은 불타는 강철 대오.
sus manos van llevando la justicia y la razón
그들의 손에서 정의와 이성을 쟁취할 것이다.
mujer con fuego y con valor
정열과 용기를 가진 여성,
ya estás aquí junto al trabajador.
너는 이미 여기 노동자와 함께 서 있다
Y ahora el pueblo que se alza en la lucha
지금은 민중들이 투쟁으로 일어 설 때
con voz de gigante gritando: ¡adelante!
거대한 함성으로 외친다. ‘전진!’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어둡고 공허한 내 가슴에
I thought
난 생각했어요
the sun rose in your eyes
태양처럼 아름다운 장미가 당신 눈에 떠오르고 있다고
And the moon and the stars
그리고 달과 별들은
were the gifts you gave
당신이 준 선물들이었어요
To the dark and the endless skies
어둠으로부터 끝나지 않는 하늘까지
The first time ever I kissed your mouth
처음 내가 당신의 입을 훔쳐 키쓰할 때,
I felt the earth move in my hand
나는 온 대지가 내 손에 담긴 것을 느꼈죠
Like a trembling heart of a captive bird
손에 잡힌 새의 떨리는 심장처럼
That was there at my command,
그것은 내 마음대로 움직였어요
my love
내 사랑아
The first time ever I laid with you
당신과 처음 나란히 누워 있을 때,
I felt your heart so close to mine
나는 당신의 마음이 나와 정말 가깝다 느꼈어요
And I knew our joy would fill the earth
그리고 나는 우리의 기쁨이 온 대지를 채울 것이란 것을 알았죠
And last till the end of time,
그리고 언제까지나 계속 되리란 걸
my love
내 사랑아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당신을 처음 본 그 순간에
Your face
당신을
Your face
당신의 얼굴을
문화운동을 하려면, 서퍼(surfer)들이 파도에서 떨어져 다시 다음 파도에 기어오르고, 보더(boarder)들이 다시 널판지에 올라 바퀴를 굴리고, 소음민원신고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보란듯이 다시 쿵쾅거리고, 윽박지르며 무대를 구르는 펑크들처럼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하였는데.. 끼니걸러 새로 넣은지 고작 4일 밖에 안 된 타이어가 또 찢어졌다.
속상하다, 속상해.
지멋대로 구르는 타이어에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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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it makes you happy
그게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It can’t be that bad
그건 그렇게 나쁘진 않아요.
If it makes you happy
그게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Then why the hell are you so sad
그런데 왜 슬퍼하나요?
강남역 살인사건에 5명의 범죄심리전문가들이 2차례 심리한 결과나 사건을 지켜보던 범죄심리학자, 프로파일러들이 정신분열이라는데 입을 모으고, 오히려 여성혐오에 기인한 살인이라는 근거없는 주장이 쏟아져나오게 된 것에 경찰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 (정신분열이 아니라 신경증이나 도착증, 또는 분노조절장애였다면, 정신질환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과 여성혐오는 다른 것인데도 여성을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혐오범죄라고 단정짓고 시작하던 사람들은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할텐가. 정신분열증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 사회를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한국사회에 여성차별이나 혐오가 만연하다고 해서 뭐든지 이런 식으로 가져다 붙이면,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바로 잡히기는 커녕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시선들만 가져오게된다. 경희대 서정범교수 명예살인사건이 생각나는건 나뿐인가. 그 때도 운동에 누가 될 수 있다면서 끝까지 사과를 안 했었다. 앞뒤를 따져보지도 않고, 결과를 정해놓고 감정적으로 다가서는 이런 주장들이 대체 무슨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별개로 지금 정신보건의 구조적 폐해로 법을 개정하려는데, 정신질환자를 구속하는 대책만을 내세우는 경찰서장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순간만 모면하려는 작자들이 법을 집행하고 있다는게 이런 사건을 더욱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성혐오와 차별을 막기 위해 차별금지법으로 가야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나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서 혐오론자들과 같은 논리로 상대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행동들이 분노를 일으키지만, 나는 혐오론자가 아니고, 그들의 베푸는 배려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야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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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 때문에 내가 평소와 너무도 다른 주장을 하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는 친구들 때문에 나 또한 마음이 아팠다. 며칠 고민을 하며 친구들에게 마음이 아플 때는 무엇이 좋을까 조언을 구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페미니즘이 당연히 사회의 기본 가치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위해 없는 사실을 그렇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목적에 동의하고, 함께 연대한다는 이유만으로 논리적으로 결함있는 방법론을 지지할 수는 없다. 한국과 멀리 있다고 당신이 뭘 아냐며, 또 남자인 당신이 무엇을 아냐며 논점과 무관한 말들로 질타하는 것을 듣고만 있어야했다. (내가 여성보호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고, LGBT운동에 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는데도 빌어먹을 매번 똑같다) 베를린의 친구들은 오히려 내게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격려해주었지만, 이렇게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실망이 큰 것도 사실이다.
여성혐오를 끝장내기 위해 얼마든지 언제든지 싸워야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여성을 ‘소수자’라고 말하는 엉터리 여성주의 신문에 신물이 난다. (소수자가 무슨 뜻인지, 한국어도 모른단 말인가) 여성을 약자화 시키지 않고, 남성과 동등한 주체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페미니즘 운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이 얼마나 웃지 못할 촌극인가.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사람들 중 다수가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학습하려기보다 감정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비위나 맞춰가며, 그저 관심이나 끄는 것에 만족하고, 욕설이나 지껄이는 것이 운동으로 생각한다니 이런 언어도단이 또 있으랴. 페미니즘은 여성의 편익을 추구하거나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주체로 동등하게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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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는 베를린의 로컬들만을 위한 유명한 클럽 about blank가 난민들을 위한 베네핏 파티의 포스터.
+ 물론 정신분열증자를 구속하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 하지만 정신분열병이 어떤 병인지, 사람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는 정신보건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다. 신경정신과에 가는 일만해도, 그런 병력만 있어도 그들을 하대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일상다반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