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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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년간 배우고 있는 수 많은 것들 중 가장 어려운 것, 그리고 가장 이상한 것. 나 자전거 타고, 그리고 또 병날 때까지 걷는 사람인 것 알고 계실까, 아님 모르고 주셨을까.

김민주씨 물웅덩이 위를 걷던 달은 집에 갔구요, 너는 왜 그 진흙탕 위를 지날 비구름을 기다리나요.

 

ㅡ 2016년 9월 3일 오전 6시 38분, Griessmuhle 앞에 혼자 앉아서.

 

시사인 사태를 지켜보며

시사인 기사 포스트: “당장의 위기는 허리띠를 졸라매 극복할 수 있지만 당장 후배들이 기획안을 낼 때 자기검열을 할까봐, 그것이 가장 안타깝다” (고제규 시사IN 편집국장)

 

시사인 사태를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에게는 더 많은 썅년(bitch)들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의 ‘절독운동?!’을 보는 마음도 안타깝지만, 시사인이 과연 반응을 예상하고 쓴 기사 맞긴한가 싶다. 이정도 위기 알고도 강행해놓고, 억울하다고 절독만은 하지말아달라 부탁하는데 수긍할만한 근거가 있을까 싶다. 적어도 시사인은 첨예한 논쟁 속에서 기사를 조금 더 미루더라도 여성혐오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으며, 페미니즘을 말하기 위해 남녀간 대결구도를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양측 의견의 타당함과 별개로 절독에 대한 고제규 편집장의 볼멘소리는 스스로 자격을 박탈했다. 그가 밝혔듯 ‘절독 3선’이란 단어까지 써가며, 예상했음에도 강행했기 때문. 이미 알았다면, 본인들의 논지를 견지하는 기사를 내더라도 다른 각도에서, 이를테면 도발적인 접근만은 자제했어야 하는게 맞다. 그게 ‘언론사 편집장’이 할 일이고.

추측컨대, ‘분노/한남/자들’은 도발을 의도한 것이 맞을 것이다. 이미 ‘절독 3선’까지 고려하면서 상쇄를 하려고 했던 것이 이 라임으로 메갤로부터 구독지원, 소위 ‘화력지원’을 받으려고 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분노를 사는데 성공은 했지만, 화력지원을 받는데는 실패했다. 그것은 시사인이 아직 메갤의 성격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사인이 너무 순수하게?! 혹은 유아적으로 손가락 계산을 했다. 계획한 분노를 사는데 성공은 했으니 자업자득이라 할 수 밖에..

안타깝게도 시사인의 메갤 기획 기사는 일베, 메갤, 워마드나 정의당, 시사인, 그리고 그에 분노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성혐오 프레임에 완벽하게 말려 들어가버렸다. 이 곳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공동선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커녕,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 논쟁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일베는 말할 것도 없고, 평등을 말한다는 범진보진영 내에서조차 메갤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메갤을 반대하는 사람들 간의 ‘배제의 정치’만이 정확히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다루어야겠지만, 시사인이 페미니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자 기사를 썼다기보다는 메갤이란 논쟁적인 현상에 서둘러 기사를 내려다 자신까지 그 현상에 그대로 말려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전자도 쉽진 않겠지만, 후자는 결과가 뻔하다. 후자의 경우, 어느 쪽으로 논지가 흘러가더라도 특정 성향의 구독자만 남게 되는 것은 자명한 것이고, 지금 시사인이 곤란해하는 것 또한 후자를 택했기 때문이다. (메갤을 옹호하거나, 메갤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양측 의견 모두 후자에 해당된다)

이것이 만약 무규칙 격투기라면, 시사인의 문제는 링 위의 경기에 대해 속기를 하고, 기사를 써야할 기자가 난데없이 링 위로 뛰어들어 심판을 자처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여기서 미디어오늘이 신중해져야 하는 일은 시사인이 했던 것처럼 심판이 되려 자처하지 않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이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이 현상에 대해 다양한 필자를 섭외해 논의의 장을 만들고, 차차 논쟁적인 사안의 폭을 좁혀 포커싱 하는 것이다. (현재 말하고 있는 필자들의 글은 계속 반복되어 재생산 되기 일쑤고, 논의 진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양측을 대변하며, 대결구도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건데, 나는 페미니즘이 이 사회의 기본 아이디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썅년(bitch)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특정 계층, 성별,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부당한 일에 항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야한다.

우리는 여성을 전통적인 성역할에 따라 나약한 존재로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해 전통적인 성역할(gender roll)을 방해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는 과거에 매몰되지 않기위해 “우리가 사는 모습이 곧 우리가 바꾸려는 세상의 모습이다” 라는 말과 함께 여성을 남성과 함께 나란히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위치 시키는 상(image)을 그려 제시해야한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썅년(bitch)들이 필요하다”

 

 

ㅡ 2016년 8월 31일 오전 2시 23분, vision으로..

주체의식, 권리

“한국 이민자들은 스스로가 자신들이 소수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시해야 합니다. 그들은 평생 대다수의 일부로 살아왔기 때문에 소수라는 그 개념조차 없습니다.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봤을 뿐 자신들이 소수민족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ㅡ 인구통계학자, Leo Estrada

 
독일 유학생들의 네트워크나 내 최근 글에 대한 반응들을 지켜보면서 한국인들 스스로의 인식을 생각해보면, 일련의 일들이 다 설명되기는 한다. 그 중 확실한 것 한가지는 한국인들은 대개 우리가 서로 동등하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동등하지도 같은 위치에 서있지도 않다. 때문에 우리는 서로 차별 받지도, 행하지도 않는, 폭력의 고리를 끊는 일에 대해 말하고, 함께 고민해야만 한다. 평등이나 권리는 권력자가 어느날 갑자기 피권력자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 스스로가 주체의식을 갖고, 자신의 권리만큼 다른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것 또한 함께 생각해야만 한다.

한국은 공동체 사회라고들 한다. 하지만 여기에 공동체란 없다. 이들의 사회는 특정 권력이나 계층이 집단을 통제하고, 개인이 집단에 속하기 위해 개인을 희생하고 헌신해야만 하는 사회고,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 집단들이 형성되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희생시키는 사회다. 이러한 사회에서 홀롭티시즘은 권력에 동화되어 특정 권력을 위한 복종의 임무를 ‘대의’라는 이름으로 매우 성실히 수행한다. 이 곳에 개인의 주체는 없다.

유럽에서는 나, 개인의 권리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규범, 규약, 또는 관습의 형태로 남았다. 하지만, 이 것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또는 통제하는데에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 전자의 예가 바로 ‘얀테의 규범’이며, 후자는 ‘독일의 관료주의’이다. 후자로 인해 좌절되는 개인들을 보면서 프란츠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비판하였는데, 그 말이 현재에는 ‘Kafkaesk’라는 단어로 남았다.

“프라하의 한 엔지니어가 런던의 학술 토론에 초청되었다. 그는 런던으로 가 학회에 참석한 후 프라하로 돌아온다. 돌아온 지 몇 시간 후 그는 사무실에서 당 기관지 <루데 프라보>를 읽는다. 거기에는 런던의 학술 대회에 파견되었던 한 체코인 엔지니어가 서방 신문들에 사회당을 비방하는 성명을 발표하고는 서방 세계에 남기로 결정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러한 성명과 결부된 비합법적 망명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이십여 년의 감옥 살이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그 엔지니어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기사에서 문제가 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비서가 사무실로 들어오다가 그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녀가 말한다. 맙소사, 당신이 돌아오시다니! 현명하지 못한 처사예요. 당신에 대한 글을 읽었죠?

엔지니어는 비서의 겁에 질린 눈을 보았따. 그는 <루데 프라보>편집장을 찾아간다. 편집장은 미안해하지만, 기사 내용은 내무성에서 보내왔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엔지니어는 내무성을 찾아간다. 그들은 런던 주재 대사관 비밀 정보원으로부터 이 보고서를 받았다고 말하며 정정 기사를 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엔지니어의 생활은 이제 조용해질 수가 없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엄중하게 감시당하며, 전화를 도청당하고 길에서는 미행당한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된다. 이제 그는 잠조차 잘 수 없다. 그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더 견딜 수 없어 불법적으로 자신의 조국을 떠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리하여 그는 진짜 망명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ㅡ 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중에서..

“카프카적이라는 것은
첫째, 보이지 않는 미로의 성격을 가진 권력과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카프카의 <성>에서 측량기사 K는 관료들의 착오로, 십 년 전의 초청장을 받고 성에 도착한다. 그의 실존 전체가 하나의 착오이다. 카프카적 세계에서 서류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흡사하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서류상 착오의 그림자.

셋째, 벌 받는 자는 자기가 왜 벌을 받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 부조리를 감당할 수 없어서 벌 받는 사람은 자기의 고통을 합리화한다. 벌이 잘못을 만드는 것이다. 벌은 죄를 찾아낸다. 카프카의 <심판>에서 자기가 무엇 때문에 고발당했는지 모르는 K는 자신의 생애와 과거를 ‘아주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모두’면밀히 검토해보기로 결심한다. 피고가 자신의 죄를 찾는 것이다. <성>에서 아밀리아는 성의 고관으로부터 음란한 편지를 받고 그것을 찢어버린다. 성은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밀리아의 가족을 피한다. 아말리아의 아버지는 자기 가족을 변호하고자 하지만 누가 선고를 내린지 알 수 없거니와 사실상 선고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는 성에다가 딸의 죄를 선고해달라고 청한다. 자비를 구하기 위하여는 먼저 죄인이 되어야 하므로 벌받는 자가 사람들에게 죄를 청하는 것이다. 이렇게 벌은 죄를 찾아낸다.

넷째, 프라하의 엔지니어 이야기나, 카프카의 이야기는 농담 같은 성격을 띤다. 카프카적인 것은 우리를 코믹한 것의 무서움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것은 비극적인 것을 견딜만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인 것을 알의 상태에서 깨뜨려버린다. 엔지니어는 조국을 잃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모두 웃는다.”

“무서운 것은 카프카적인 것이 전체주의나 관료적인 상황 아래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늦잠을 잔 아들로 인해 지나치게 상심하고 화가난 어머니를 대신해 그녀의 아들이 말한다.

“어머니가 심한게 아니에요. 그래요. 제가 늦잠을 잤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저를 나무라시는 것은 더 깊은 이유 때문이에요. 저의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꾸짖으시는 겁니다.”

커다란 역사적 사건의 내부에서 움직이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매우 일상적이고 더할 수 없이 인간적이며 친숙한 상황을 지배하는 메커니즘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많이 봤는데, 사람들은 싫어하기로 한 사람에게서는 싫은 이유를 찾아내고야 만다. 그것은 괜찮다.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싫다는 것과 그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가, 꼭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싫어하는 사람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는 대신 상대에게서 기어코 어떤 원인을 발견해내고야 만다. 정말로 벌은 죄를 찾아내고야 만다. 일상적이고 친숙한 상황에서 매우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가정 안에서 친구 사이에서 직장 동료에게서 흔한 일이다. 아이를 실수로 혼내놓고, 아이로부터 잘못을 고백하도록 했던 일이 나만해도 몇 번 있었으니까. 이런 일은 정말 무서운 일인 것 같다.” ㅡ 출처: http://blog.naver.com/snowclose/220421352392

 

ㅡ 2016년 8월 29일 오후 4시 57분, 권리로의 투쟁..

정어리 – 129

berlin-hauptbahnhof

Fuck, I was drunken. But why I’m here now?

 

ㅡ 2016년 8월 26일 아침 8시 26분, ZK/U 이벤트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Berlin Hauptbahnhof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정어리 – 128

쓰다만 기사가 몇개 된다. 지난 슬로우뉴스 기사에 정식반론은 없었고, 논점과 관계없는 인신공격성의 비난만 받았다. 반론과 보론을 통해 차근차근 말해주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말이 갈 길을 못 찾고 주저 앉았다. 그래서 요즘은 할 말을 꾹꾹 누르며 지낸다. 이러면 다치게 되는 줄 알면서도 그 한마디의 무게가 크다는걸 잊어서는 안 되니까, 속으로 되내이고, 또 되내인다. 기사를 쓰고, 비판도 아닌 비난을 한아름 받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아직 송고조차 하지 않은 기사를 벌써부터 가로 막는 사람들이 있다. 글을 쓰지 말라고 하니 그럼 무엇을 해야할까.

‘베를린 정당별 선거 공약’, ‘백인에 의한 중국인사 “니 하오”가 인종차별이 될 수 있는가’, ‘존슨즈 베이비 오일 사태를 지켜보면서 소개하고 싶은 스웨덴의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Konstnären Carolina Falkholt의 중등학교 외벽 보지페인팅과 올림픽 이란 중계방송, 그리고 아방가르드’, ‘다자간연애’, ‘Octave One Live’, ‘CSD Klubnacht’, ‘OSTGUT TON NACHT’, ‘Fur Friend’, ‘Cure에서 2Pac을 지나 Solomun까지’, ‘Love Parade, Fuck Parade’, ‘Zug der Liebe’ 따위의 이야기들.

그런 일이 왕왕 생기다보니 요즘은 외출 후, 집에 도착해 자기 방서조차 어리둥절 못 올 곳이라도 온 마냥 갸웃거리곤 쇼파에 겨우 몸을 뉘인다. 이러고 지내면 안 되는줄 알면서도.

뭐든지 편리하게 소진하고, 편리하게 잊는 우리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 인스턴트 세대여, 빌어먹을 등가교환이여..! 우리는 우리 없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지.

아무튼 여러분들 편리한대로 하세요. 비록 그 방향 잃은 분노들을 보며 속상해야 하는 일은 제 몫이지만.

+ 아, 깜박했는데, 내년 6월 Full Moon에 맞춰 베를린 근교에서 열리는 500명 규모의 언더그라운드 페스티발 기획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871년 프로이센-독일의 빌헬름 프리드리히 루드빅이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고 1873년에 지은 요새에서 열릴 계획이고, 작은 길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물길로 막혀있는 곳이죠. 참여를 희망하시는 작가, 뮤지션들은 제게 메세지를 주시면, 함께 할 수 있도록 일을 만들어볼게요.

++ 그리고 요즘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AUxaiaVGNFdEyvxgJANTNg

 

 

ㅡ 2016년 8월 25일 오후 3시 38분,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 Kein Platz für nazi in der koreanischen Punk und Hardcore Szene! Auch! ♥♥♥♥

Kein Platz für nazi in der koreanischen Punk und Hardcore Szene! Auch!

코리안 펑크 하드코어 포스트: 링크

 

(한국어 번역 밑에) Many people took notice of the anti-Nazi picture that accompanied last week’s list of shows. Others also noticed that one of the bigger shows from last weekend was missing from the list. We would like to take a moment to explain both. For years, there has been a very small group of bands and individuals in the Korean punk and hardcore scene who have used racist/Nazi symbolism and ideas in their music and live performances. At best, these things have been done for shock value. At worst, these are things that these bands actually believe. In the past, it has been argued that these groups are merely nationalistic and not racist or supporters of Nazism, and their actions have been largely ignored. Recent events have led to a larger discussion throughout the scene about how to respond to these things. There have been incidents of bands doing the “sieg heil” Nazi salute on stage, creating merchandise with obviously racist slogans, and intimidation towards bands refusing to appear on a bill with these bands. The moderators of this page had a long discussion about how to address this situation. A vote was taken, and we have decided that we will no longer list shows that include these few, specific bands. We will also no longer list shows sponsored by record labels who support these bands and try to defend their unacceptable actions. This was not an easy decision and not one that was reached unanimously. We are not here to promote censorship or tell people what they can or cannot do. However, we have decided that we will no longer aid in promoting shows that expose people to the glorification of some of the worst ideology the world has ever seen. Feel free to further the conversation by sharing your thoughts and opinions in the comments section of this post. -Korean Punk & Hardcore Facebook page moderators
많은 분들이 지난주 공연 소식 포스팅에 함께 올린 “안티 나치”사진을 보셨을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주 공연 소식중 한개의 공연이 저희 리스트에서 누락되어 포스팅되었습니다. 이 두가지의 이유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몇년동안 이 씬에서 몇몇의 소수 밴드들과 소수의 사람들이 인종차별과 나치를 상징하는 행동과 언행을 그들의 음악과 무대위에서 공연중 표출하곤 했습니다. 그 행동들은 의도했던 아니던간에 그것을 보고 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으며 또한 그들이 나치와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에 대하여 알리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저희 코리안 펑크앤 하드코어 페이지 운영자들사이에서 많은 의견이 오가며 이들이 과연 왜 이러는 것일까에 대하여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혹자는 이들은 단순히 지극한 국수주의자들이다,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 혹자는 나치지지자들이다 등 이야기가 오갔으나 일단은 결론을 낼 수 없어 상황을 무시하고 큰 목소리를 내지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심각하게 다시한번 이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지않을 수 없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무대위에서 “Sieg Heil(어깨위로 한쪽팔을 들어 경례하는 나치의 전형적인 행동)을 한다거나, 너무나도 뻔한 인종차별발언이 담긴 머천다이즈를 발매한다거나, 나치성향의 밴드와 함께 공연하지 못하겠다는 밴드를 오히려 역차별한다거나 하는 등의 말도안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본 페이지의 운영자들은 이 현상과 사건들에 대하여 어떠한 행동과 태도를 취해야하는지에 대하여 오랜시간의 토론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의견을 취합하여 결정을 하게 되었으며, 그 결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몇몇 나치성향의 특정 밴드들과 그들의 파시즘을 지지하고 동조하며 그 밴드들을 옹호하는 레이블의 공연정보는 더이상 저희 페이지에 리스트하지않으며 그들의 공연을 지지하지않기로 하였습니다.
여기까지의 결정을 내리는 일이 확실하게 말씀드리지만 분명히 쉬운일이 아니었으며, 운영자 모두가 만장일치 합의하에 결정된사항도 아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펑크록는 모두의 의사와 자유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정신임을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이 페이지의 운영자들로서 어떠한 특정한 것에 치우쳐 검열하는 자세로 여러분들께 이건 하고 이건 하지말라고 할 권리도 없으며 그럴 의사도 절대로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분명히 밝히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전세계를 상대로 끔찍한 일을 자행하던 존재와 사상들이 멋지고 쿨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옳지않다고 판단하였고” 저희는 더이상 이에 관련한 공연포스팅을 하지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이 논제와 결정사항에 대하여 이 글 밑에 코멘트로 토론하거나 의견을 나누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코리안 펑크 앤 하드코어 페이지 운영자들 올림.

니 하오는 인종차별이 아니야

베를린소개서 포스트:

서양 사회 그리고 차별에 민감하다고 널리 알려진 독일 사회에서도 동아시아인의 외모를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일상적인 인종차별과 성희롱, 성추행은 만연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시아권 이민자가 많았던 미국 등의 영어권 국가에서는 이 문제가 그나마 수면 위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지만, 유럽 대륙 내에서의 동양인 인종차별은 악의가 없이 발생하는 심각하지 않은 사소한 문제 정도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악의 없는 행동 자체도 분명한 인종차별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일상의 인종차별부터 심각한 인종차별 범죄에 대한 경험을 누군가 작업을 하고 공론화를 해주었으면 싶었는데, 얼마 전 구글 문서를 통해서 해외 생활 도중 인종차별 경험을 겪은 사연을 수집하고, 내년에는 이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출판하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업은 독일에는 차별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그 현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계기이자, 일상적으로 차별을 느꼈던 이들에겐 아픔을 공유하고, 동시에 동아시아인의 외모를 지녔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일상의 인종차별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의미있고, 좋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시아인에게 백인들에게 당신들이 하는 중국인사 “니 하오”는 인종차별이라고 문제제기 하는 이들을 보면서 무엇이 인종차별인가 하고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나 또한 수 없이 겪었고, 이런 것을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왔다. 하지만 정말 백인에 의한 중국인사 “니 하오”를 인종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주장을 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분명 몇가지 이유와 오류가 함께 있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유럽 45개국과 아프라카 53개국, 아시아 53개국, 남미 12개국, 오세아니아 14개국, 아랍 22개국 등의 사람들을 외모만으로 인지하고, 해당 국가의 인사정도는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한다.

백인들이 아시아 사람들을 상대로 “니 하오” 혹은 “곤니찌와”를 말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국제사회에 알려지고, 영향력이 있는 국가들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베트남, 태국, 인도 등이기 때문.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앞서 말한 유럽 45개국과 아프라카 53개국, 아시아 53개국, 남미 12개국, 오세아니아 14개국 등의 사람들을 외모만으로 인지할 능력은 고사하고, 과연 몇 개국의 이름과 인사들을 알고 있을까? 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북한 독재자 ‘Kim Jong Un’과 함께 한국인 중 약 21퍼센트가 성씨 ‘Kim’을 갖고 있는 것을 흥미롭게, 혹은 기묘하게 느끼는 것만큼 우리는 해당 국가들의 이름관계들은 잘 알고 있을까?

The Columbia Encyclopedia, 2000년 판에 의하면, ‘Muhammad’라는 이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름으로 현재 150만명 정도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검색을 해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까? 그리고 ‘Muhammad’라는 아랍식 이름이 ‘Mohamed’, ‘Mohammed’, ‘Mihemed’, ‘Muhameti’, ‘Мұхаммед (Mukhammed)’, ‘Mamadou’, ‘Mahometus’, ‘Maometto’, ‘Μωάμεθ (Moameth)’, ‘Mahoma’, ‘Maomé’, ‘Mamede’, ‘Mahomet’, ‘Муха́ммед (Mukhammed)’, ‘Магоме́д (Magomed)’, ‘Магоме́т (Magomet)’, ‘Моха́ммед (Mokhammed)’, ‘Муха́ммад (Mukhammad)’, ‘מוחמד (Mukhammad)’ 등으로 불리우고, 중국어권에서는 성자는 ‘穆罕默德 (Mù hǎn mò dé)’으로, 일반 사람들은 ‘买买提 (Mǎi mǎi tí)’으로 불러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을까. 한국보다 더 많은 영향력은 갖고 있는 아랍권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렇게 알고 있는 것이 없다.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이 이름 마호메트 또는 모하메드는 무함마드를 영어로 쓴 것을 번역한 표현한 것이라는 정도, 그리고 이슬람의 예언자였다는 것이며, 아브라함, 노아, 모세, 다윗과 같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선지자이다.

다시 “니 하오”, 차별 논란으로 돌아와서.. 칭챙총도 아니고, “니 하오” 같은 중국인사마저 아시아인에 대한 타자화나 차별이라고 규정한다면, 한국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 방송에 등장하는 외국인들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동화주의로 하여금 김치와 같이 매운 음식부터 시작해서 한국인들 일부도 꺼려하는 청국장이나 삭힌 홍어와 같은 발효 음식을 반강제로 먹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은 한국이 세계에서 알려지거나, 영향력 있는 국가라고 여기는 것인데, 지금의 사드, THAAD 논란과 맥을 같이하여, 한국은 미국에 의해 식민지와 전쟁에서 겨우 벗어나 한국전쟁을 통해 분단을 겪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세번의 독재, 그리고 네번의 IMF(1차 : 1964 2차: 1974 3차: 1982 4차: 1998)를 겪고, 해외여행자유화가 된지는 고작 만 27년 밖에 안 된 아시아 끝의 작은 나라이다. 최근에서야 ‘유튜브’와 같은 미국 인터넷 미디어 서비스를 통해 ‘싸이’와 같은 스타와 삼성의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이 한국이 국제사회에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이 한국인인지 아닌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많은 한국인들이 코피 아난 전-유엔사무총장이 가나인인지 모르는 것과 더불어 유엔사무총장은 특정 국가를 대표하는 직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위원장 레지 드 구테)는 ‘한국 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고, 한국이 실제와는 다른 `단일 민족 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짜로 ‘교육, 문화, 정보 등의 분야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특히 한국내에 사는 모든 인종.민족.국가 그룹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의 증진을 위한 인권 인식 프로그램 뿐 아니라 서로 다른 민족.국가 그룹들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정보들을 초.중등 학교의 교과목에 포함시킬 것’을 한국정부에 권고했다. 보고서에서 위원회는 “당사국(한국)이 민족 단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 영토내에 사는 서로 다른 민족.국가 그룹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의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한 뒤, `순수혈통’과 `혼혈’과 같은 용어와 그에 담겨 있을 수 있는 인종적 우월성의 관념이 “한국 사회에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는 데 유의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위원회는 “조약 관련 규정에 따라 인종적인 동기에서 저질러진 형사 범죄를 금지.처벌하는 특별한 법적 조치들을 도입할 것을 권고한다”면서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차별금지법’의 신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이와 관련, 위원회는 “인종 차별 행위들을 처벌하는데 활용 가능한 현 형법 조항들이 한국의 법정에서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는 것에 우려를 갖고 주목한다”고 말하고, 한국내에서 인종 차별 관련 진정이 없는 배경과 관련해 ▲관련 법제의 미비 ▲법적 구제 가능성에 대한 인식 부족 ▲기소 당국의 의지 부족 등이 문제일 수 있다고 지적및 이를 위해 경찰관, 변호사, 검사, 판사를 포함해 형사 사법 체제내에서 일하는 관계 공무원들에 대한 특별 교육을 제공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한겨례 기사, ‘유엔, 한국 ‘단일 민족국가’ 이미지 극복 권고’
인용: http://www.hani.co.kr/a…/society/society_general/229825.html) ([국문]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최종견해 (2007): http://upr2012.tistory.com/29)

이러한 유엔의 권고는 한번에 그치지 않았다. 2012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인종차별철폐협약 이행상황을 심의하는 회의에서 공익인권법재단의 변호사들로 이루어진 NGO ‘공감’의 보고서를 참가토록 하였고, ‘인종차별적 외국인 혐오발언이 공개적이고 조직적으로 표출되고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과 ‘위원회에서 수차례 권고를 하였음에도 인종차별철폐협약에서 정의하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정의가 한국법에 없고,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이나, 인종차별이나 혐오에 기반을 둔 범죄에 가중처벌이 없는 법 제도가 이행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한국 정부 심의에서 “차별 별로 없다”는 정부 발표에 위원회는 조목조목 지적했다. (“인종차별 별로 없다”는 정부에 유엔이 내린 권고는? – 인종차별철폐위원회 2012 대한민국 심의 관련 NGO 대응활동: http://withgonggam.tistory.com/922)

다시 “니 하오”의 문제로 돌아와서 흥미로운 것은 브리즈번의 한 한식 레스토랑 이름이 ‘니 하오’이며, 오너의 국적을 알 수는 없지만, 짜장면을 비롯한 메뉴들을 미루어볼 때, 한국식으로 조리된 중국음식을 파는 한국식 레스토랑이란 것이다. 만약 “니 하오~”같은 중국인사가 차별이라면, 이런 것도 차별금지법에 의거해 처벌해야 하는 것일까? https://www.yelp.com.au/biz/ni-hao-brisbane

2009년 7월부터는 인도네시아에서 인구 6만의 소수민족 찌아찌아 족에 한글 수출을 시작했고, 2010년 7월부터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찌아찌아족 한글 사용을 공식 승인, 같은 달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다바오시와 볼리비아에서 인구 200만의 아이마라 족이 시범 교육이 시작되고, 2012년 10월부터는 호주의 동북쪽 태평양의 섬나라 솔로몬제도의 콰달카날주에서 인구 5만의 토착민족인 카리족에게 시범 교육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언어에 대한 ‘한글 수출’이라는 단어로 ‘국위선양’을 말하는 한국인들을 볼 때면 이 사람들이 1000년쯤 후에도 “우리가 너흴 도와준거야”라고 말할 한국인들이 떠오른다.

내가 베를린 처음 왔을 때, 참 고맙게 느껴졌던 것은 “나 아직 독일어 잘 못해”라고 이야기 했을 때, “괜찮아, 나는 한국어 아예 못해”라고 미소를 화답했던 친구들이다. 그런 경험을 가진 입장에서 언어 능력 때문에 상대를 불쾌한 존재로 보는 것, 또한 도덕적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니 하오”가 인종차별이라면, 영어를 우선시 하는 풍조 또한 영어제국주의, 사대주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 (https://en.wikipedia.org/wiki/Linguistic_imperialism…)

한편으론 일본기업으로 인식되고 싶어했던 이건희 회장이 또 다시 상기된다. 한국이 중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중진국이라는 것은 모호한 개념이고 엄밀히 말하면, 한국은 국제적 영향력이 낮은 제 3세계 국가 맞다. 그런 한국이 예전보다 돈 조금 벌었다고,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되길 거부하거나 하대하고, 타자화하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같은 것들을 보면, 아니 헤겔이 말한 인정투쟁, Anerkennungskampf가 바로 여기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주체의식은 아직 어려운 이야기 일까.

2015년 통계에 의하면, 독일 인구는 약 8천만인데, 그 중에 한국인은 약 3만명 정도 밖에 안 된다. 반면 터키이민자는 벌써 3세대, 4세대가 나왔고, 인구가 800만명이 넘는다. 단순한 인구통계만 보더라도 독일에서의 한국 영향력은 작을 수 밖에 없고, 한국인에 대한 인식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독일에는 스페인 디아스포라, 그리고 히스패닉계나 폴란드, 이탈리아, 로마니아, 그리스계 등이 북미, 영국처럼 영어권 거주자 보다 많으며, 참고로 특히나 독일의 남부, 그리고 이탈리아의 사우스 티롤은 오랜 독일지역이었기 때문에 독일어-이탈리아 구사자가 많다. 베를린 인구에서도 이탈리아 인구는 물론 이탈리아 식당 비율이 상당히 높은 이유가 그런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반면 정치적인 이유로 하여금 북한은 남한보다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두 유 노 싸이/김연아/박지성/김치?” 등의 질문들을 던지는 이유는 일종의 열패감이기도 하다. ‘한국을 알려야한다’ 내지는 ‘한국을 알아야한다’는 오히려 국가주의, 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100여년 전, 조선을 식민지화 시키던 일본이 탈아입구를 열망하던 것과 같은 기제에 불과하다. 한국이 좋은 국가라면, 묻지 않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들 알겁니다. BBC에서 한국인들이 자조적으로 자국을 부르는 헬조선을 보도 하지도 않았지 않을까.

한국인으로써 겪는 차별에 대해 아카이브 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은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의미있고, 좋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프로젝트라 생각되어 응원한다. 하지만 차별에 대한 정의조차 이해가 부족한 사례들이 인종차별 사례로 소개가되어 독일어로 출판된다면, 독일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수의 아시안을 중국인으로 인식하고, 한국인에게 “니 하오”라고 하는 것은 ‘문화적 무지’라고 할 수 있다. 이 ‘문화적 무지’가 불쾌감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무지’를 ‘차별’이라고 규정지으려고 한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타인들을 향한 편견을 먼저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세상에는 지혜로운 사람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의 바르고 정직하고 친절하고 착해요. 하지만 못된 사람도 있어요. 시끄러운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끄러운 것을 못 참는 사람도 있어요. (…) 똑같은 일에도 어떤 사람은 웃고 어떤 사람은 울어요. (…)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모두 달라요. 어떤 곳에서는 맛있게 먹는 요리를 다른 곳에서는 먹기는 커녕 만지지도 않아요. 어떤 나라에서는 맛있게 먹는 음식이 다른 나라에서는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기도 하지요. (…) 사람들은 아주 복잡하고 이상한 계급과 지위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계급과 지위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모두 지구에 살면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햇살을 받지요. 그리고 언젠가는 모두 죽어요.” ㅡ 피터 스피어의 <온 세상 사람들> 중에서..

+ 의문점: 해당 구글독스에 실린 사람들의 사례들을 보면, 대부분 인과관계를 알 수 있는 자세한 서술은 없고, 막연히 “나(우리)를 조롱했다”라는 식으로 소위 말하는 ‘(인터넷의) 카더라’식 증언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사실상 증언으로서 효력이 인정 될 수 없거니와 이렇게 인과관계를 따질 수 없는 이런 사례들마저 차별로 규합한다면, 이 프로젝트가 의도한 차별과 아주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설마 이 프로젝트 진행자가 ‘피해자 중심주의’같은 비논리적인 유사과학을 가져오진 않겠지. 개인적인 견해로는 사례들의 서술 능력이 인터넷의 ‘카더라 통신’과 같거나 그보다 못해서 실망인데, 차별에 대한 아카이브및 프로젝트를 만들기 전에 어떤 프로토콜이 있는지가 있긴한가 의심스러울 정도. 한국인 유학생, 여행객들의 국어 수준이 이정도란 말인가.

 

 

ㅡ 2016년 8월 22일 오후 7시 3분, 독일 한인유학생들의 인지능력과 서술능력에 참담함을 느낀다

정어리 – 127

영화 <개벽>에서 해월 최시형 역을 맡은 이덕화가 밥상을 걷어차고, 도망하던 것들이 생각난다. 푸른 봄에도, 뜨거운 여름을 지나, 무르 익은 가을 낙옆들, 그리고 새카맣게 눈 덮인 산중을 그토록 뛰어다녔건만, 해월은 끝내 체포되었고, 서울로 압송되어 모두가 지켜 보는 가운데 교수형을 당하였다. 이 끝을 알면서도 도망말고는 할 수 있는 정직함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함께 도망하자 하였을 때, 고립된 이로 불리우는 불명예도 마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당신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라 외치기 위해.

가끔은 내가 틀렸길 간절히 바라본다. 정말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해월, 해월. 해월, 나 당신의 길을 바라보고 있소. 언제든 교수형 당하여도 슬피 울지 않으려고.

 

ㅡ 2016년 8월 14일 오후 9시 12분, 스스로의 구원..

다자연애자들이 질리도록 듣는 15가지 말들

번역기사 링크: 다자연애자들이 질리도록 듣는 15가지 말들

 

놀라울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모두 다 여기 있다. 다자간 연애는 바람 피우는게 아닙니다. 아무나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와 섹스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개인으로써 존중 받으려 하면서도, 왜 내가 당신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ㅡ 2016년 8월 11일

정어리 – 126

wasser-tor-am-ostkreuz

foto über Wassertower am Ostkreuz

 

Hey, the Junkie of Civilization just back with new phone number now. Please drop some messages and your contract to me.

 

ㅡ 2016년 8월 10일 오후 7시 20분, 돌아왔습니다, 더럽고 뜨거운 생사의 경전 한페이지를 넘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