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오큐파이 5주기를 맞이하며..

뉴욕타임스 기사: Occupy Wall Street: Where Are They Now? BY ACCRA SHEPP

 

월스트리트 오큐파이 5주기를 맞이하며, 여러 기사들과 그 날들을 잊지 말자는 이벤트, 새로운 조직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 오큐파이는 모두의 바람을 뒤로한채 실패로 끝났고, 모두 끝났다고들 이야기 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실패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 때 주코티 공원에서 자원봉사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오늘 어디에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포토 다이얼로그. 그 사람들 오큐파이가 끝난 이후에도 어디선가 자신만의 혁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기사 읽는데 콧잔등이 시큰거리고, 기운이 난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철저히 망가져 결국 미국 자본주의의 휴양지가 된 쿠바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지만, 쿠바의 음악을 담은 어느 다큐에서 비춰진 길거리 담벼락에 “우리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라고 적힌 것 보고 ‘우리는 정말 완전히 끝나버렸구나’ 하고 그 날은 누구랑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람들의 오늘이 담긴 사진들이..

 

ㅡ 2016년 9월 17일 밤 12시 40분, 같이 갑시다.

지하철 생리녀 사건에 대하여

국민일보 기사: ‘지하철 의자에 생리혈 묻히고 도망간 여자’는 민폐녀인가요?

 

초등학교 교과서만 보더라도 아프거나, 혹은 곤란하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이 여자분께 민폐라는 말을 남긴 남자의 사고야말로 우리가 작별을 고해야할 사회적 병폐다.

기사에 서술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주위에서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정도가 아니라 안정을 취하게 도우며, 구급차가 필요한지 고려하고, 역무원부터 부르는게 정상 아닐까. 베를린의 경우 공익근무요원은 없지만, 플랫폼이나 역사 근처에 역무원들이 대기해있고, 플랫폼에 설치된 긴급인터폰을 통해 바로 상황실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

기사 댓글에서 하혈처럼 보인다는 의견들이 있는데, 하혈이 아니라 생리혈이라도 마찬가지다. 생리혈이 무슨 소변인 것처럼 인식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안타깝다. 생리혈은 소변이 아니고, 생리는 배뇨와 같이 참을 수 있는 신체적 증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설명해주지 않으면, 생리와 배뇨의 차이도 모르는 성인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한국 사회가 한국 성교육 현실을 숨기고 있는가 여실히 알 수 있다)

사건과 별개로 나는 기자가 어떠한 이유로 ‘xx녀’라는 지칭을 써야했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유를 막론하고 ‘xx녀’, ‘xx남’과 같은 지칭은 모두 사라져야만 한다. 불필요한 이러한 수사들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남녀간 성대결만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생리 전 또는 생리 중 쥐어짜는 듯한 양상의 복통이 동반될 수 있고, 그 외에도 편두통, 복부 팽만감, 메스꺼움, 유방 압통 등의 증상이 있을 수 있다.

(…)

생리대에는 패드, 탐폰(tampon)이 있는데, 패드는 속옷에 부착하여 생리혈을 흡수하는 것이고, 탐폰의 경우 질 안으로 삽입하여 생리혈을 흡수하는 것이다. 탐폰을 질 내로 삽입한 후 플라스틱 또는 두꺼운 종이로 되어 있는 외통을 제거한다. 질 외부로 제거용 실이 나와 있어야 제대로 삽입한 것이며, 4~6시간 간격으로 교체해 주어야 질염 등의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 드물게 독성 쇼크 증후군이라는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독성 쇼크 증후군이란 드물지만 치명적인 질환으로 대표적인 원인균은 포도알균이다. 탐폰을 사용하는 경우 성장이 촉진되어 세균으로부터 생성된 독소가 혈류 내로 들어가게 되어 고열 및 두통, 저혈압, 구토 등의 증상이 발생한다. 흔하게 일어나는 부작용은 아니지만 탐폰 사용시 위의 증상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

정어리 – 135

사실 최근 보류해온 페미니즘 관련 기사들 모두 준비 되었는데, 망설이고 있다.. 왜 망설이는지야 나조차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지점은 메갤과 워마드의 레토릭이 의도를 막론하고, 정확히 반여성주의적이란 것과 이들이 벗어야한다는 그 빌어먹을 코르셋, 비판을 아끼지 않는 핀업걸은 오늘 페미니즘의 레토릭으로 재전유되어 페미니스트들과 작가들에게 여성을 주체로 하는 작업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신체, 성기를 통해 주체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 (제발 본인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시기 전에는 구글링 한번이라도 하세요. 왜 본인도 모르는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인 것 마냥 거짓말을 합니까?)

여성혐오에 맞서기 위해 더 많은 썅년(bitch)들이 필요한 것은 응당 사실이나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배제의 정치를 펼치며,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호명하는 이들에게는 유감이지만, 부탁컨데 “본인께서 하시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하셨으면 좋겠다” 이야기 드리고 싶다. 성숙하지 못한 유아적 태도가 정당한 요구마저 보채기(pestering or nagging)로 전락토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기사가 나가고 나면, 누구는 낄낄거리고, 누구는 멘붕에 빠지거나 내게 방향 잃은 분노를 쏟아낼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협업하지 않고, 관계를 바라보지 않으며, 분열만을 초래하는 배제의 정치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비단 페미니즘뿐 아니라 모든 정치/문화운동에서.

 

 

ㅡ 2016년 9월 15일 오전 11시 23분, 배제의 정치, 방향 잃은 분노로는 아무 것도 없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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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리 – 134

“얼마나 기다렸나 지금 이순간을 고대하면서
낮엔 그리움이 밤엔 외로움이 가슴 가득히 있었네
다지나 버린 고통들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
이젠 그대와 나 어느 누구라도 갈라 놓을수는 없어
슬피울던 새 들도 웃음으로 우리 사랑축하해주네
무정하게 보였던 저달님도 밝은 미소를 주네
난 이제부터 영원까지 오직 그대만을 사랑할 거야
이젠 그대와나 어느 누구라도 갈라 놓을수는 없어” ㅡ 홍세봉 –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왠지 시큰거리는 가사. 친인척들에게 전화할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그 날의 안녕을 물었고, 그 때의 서울은 다들 외환위기로 살아남기 위해 모두들 치열했었다. 길 하나를 두고, 잘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었는데, 없이 살던 내가 외롭지 않게 해주던 친구들도 몇 있었다. 이제는 한 녀석과만 간간히 메세지를 나누고, 기약 없이 만남을 약속하며, 서로의 안녕을 물을 뿐이지만.

+ 주인공 김변호사(김세윤 분)의 실제모델은 홍세봉 변호사로 주제곡인 “이제부터 영원까지”의 작사 작곡도 직접했다고 한다.

 

ㅡ 2016년 9월 10일 오전 8시 29분, 그 때는, 그리고 오늘은..

New Order – Blue Monday with korean translate

 

How does it feel to treat me like you do?
어떤 기분일까? 당신이 하는 것처럼 날 대하면
When you’ve laid your hands upon me and told me who you are
네 손이 나에게 닿을 때 네가 누구인가를 말해주지
I thought I was mistaken, I thought I heard your words
내 실수였다고, 네 말을 들었다고 생각 했어
Tell me how do I feel. Tell me now, how do I feel
내가 어떻게 느껴야 하는 지 말해줘, 말해줘 지금 내가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Those who came before me lived through their vocations
내 앞에 왔던 사람들은 소명을 갖고 살았지
From the past until completion, they’ll turn away no more
과거부터 완성될 때까지 그들은 더 이상 돌아보지 않을 거야
And still I find it so hard to say what I need to say
여전히 난 내가 해야 할 말을 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알아
But I’m quite sure that you’ll tell me just how I should feel today
그러나 내가 오늘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네가 말해줄 거라는 건 알지

 

I see a ship in the harbor. I can and shall obey
항구에 배가 보여, 난 복종할 수 있고 복종해야 해
But if it wasn’t for your misfortune, I’d be a heavenly person today
네가 불행하지 않다면 난 오늘 천국에 있게 될 거야
And I thought I was mistaken and I thought I heard you speak
내 실수였다고, 네가 하는 말을 들었다고 생각 했어
Tell me, how do I feel. Tell me now, how should I feel
말해줘 내가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이제 말해줘, 내가 어떻게 느껴야만 하는지

 

Now I stand here waiting…
지금 여기 서서 기다리고 있어…

 

I thought I told you to leave me when I walked down to the beach
내가 해변으로 걸어 내려갈 때 너에게 날 떠나달라고 말했다고 생각 했어
Tell me how does it feel, when your heart grows cold, grows cold, cold
말해줘 기분이 어떤지, 네 맘이 식으면, 식게 되면, 차가워지면

설리, 구하라, 그리고 로타 사진 작가에 대한 함영준씨의 비판에 대해 유감

함영준: [문화비평] 로타 사진 유감, 순수하다고? 수상하다고!

 

설리, 구하라, 그리고 로타 사진 작가에 대한 함영준씨의 비판에 대해 유감:

멀리 나가신 의견. 페미니즘이 언제부터 ‘자기성결정권, 또는 성적자기결정권, Sexual self-determination’을 불인정했는가 되묻고 싶다. 최소 구글에서 ‘Lorita on feminism’이라도 검색해보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시기엔 너무 바쁘신 듯하다. 페미니즘은 각 노선에 따라 섹시즘에 대한 비판을 하기도 하며, 어떤 노선은 ‘Sex-positive’를 말하기도 한다. 또한 페미니즘은 주체가 자율적으로 발화하는 자기성결정권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나 긍정적으로도 다룬 적이 없다. 개인의 자기성결정권에 타인이 관여하는 그 자체가 페미니즘의 가치에 반하기 때문.

차라리 섹시즘에 대한 비판이었다면, 부분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생겼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비판은 본인들이 누리고 있는 문화적, 예술적 가치에만 면책권을 주는 이율배반이 되지는 않은가? 적어도 자기성결정권을 주체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설리와 구하라에게 압박을 가하진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로타를 비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설리와 구하라에게 ‘관종’이라느니 따위의 모욕을 하고, 사진을 내리게 압박을 가했다. 설리가 자율적으로 주체가 되는 행동을 했음도. (집단 안에서 한 개인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계도적인 폭력에 가깝다)

사실 설리의 티셔츠 사진은 논란거리도 안되지만, 굳이 한국 정서를 고려한다면, 레즈비언 논란이 있었으면 모를까. 존슨즈 베이비 오일 광고 사진에서 서로에게 성적 제스쳐도 아닌, 그저 전방을 함께 쳐다본다는 이유만으로 수동적이라고 단정 내리는 근거는 무엇일까. 게다가 ‘존슨즈 베이비 오일’은 사용자가 거의 여성이고, 광고도 여성을 상대로 하는데. 구글에서 존슨즈 베이비 오일을 7페이지까지 검색해본 결과, 현재 이 논란을 공유하는 페이지들과 단 한개의 남성 중심의 매거진에서 모터바이크에 존슨즈 베이비 오일을 써서 망가트려 곤란했다는 기사를 제외하고, 모두 맘스다이어리, 레이디경향, 82쿡, 여성매거진에서 다루고 있는데도 설리, 구하라, 그리고 로타 작가의 존슨즈 베이비 오일 광고를 로리타와 연관짓는 분들의 성적 취향이 궁금할 정도. 존슨즈 베이비 오일의 이 광고사진은 남성들을 향한 광고도, 제품도 아닌데.

정두리씨의 80년대 일본도색잡지 카피판이라고 할 수 있는 ‘젖은잡지’는 되고, 설리와 구하라, 그리고 로타 작가의 존슨즈 베이비 오일 광고는 왜 안된단 말인가? 그 기준은 너무나도 자의적이지 않은가?

페미니즘을 재생산 하고 계시거나 한류에 맞춰 K-Feminism이라도 개척하고 계신 것 같다. 아니면 존슨즈 베이비 오일이 무슨 제품인지 전혀 모르시거나.

존슨즈 베이비 광고들:



뉴욕에서 여성페미니스트들이 공원에서 토플리스 책읽기 모임 한지 벌써 6년이 지났고, 토플리스 프라이드 퍼레이드도 3년차.. 대체 한국은 20세기 초반 신여성이라도 소환하려는걸까: https://www.youtube.com/watch?v=6ZY2e6UYIIg

혹시나 한국에서는 남성들이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하기 때문에 안된다 말씀하시는 분들께 지금 뉴욕에서도 그 지점을 항의하기 위해서 여성들이 토플리스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다. 참고로 뉴욕시의 법에 따르면, 남성은 완전한 상의 탈의가 가능하지만, 여성은 금지되어 있다.

결국엔 이런 관점이야말로 타인의 욕망까지 본인의 기준에 맞춰 검열하려는 편집증, 혹은 모든 것을 성적인 것과 연관 짓는 도착증이다. 소위 말하는 꼰대.

+ 별개로 나는 로타작가의 작업에 큰 흥미를 못 느낀다.

++ 로리타는 곧 소아성애로 이어진다고 하는 주장은 60년대 메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당시, 게이트 이론으로 대마에 대해 엄격히 통제를 주장하던 공화주의자들과 하등 다를바 없다. 게이트 이론은 허구로 밝혀졌고, 2016년 오늘 한국에서는 게이트 이론을 주장하는 ‘넷페미’들이 있다.

+++ 이쯤에서 루쉰의 글을 나누지 않을 수가 없네요. 루쉰이 찬사?!한 중국인들과 꼭 같은 얼굴의 한국인들.

“반팔만 봐도 하얀 윗팔을 상상하고,
곧 나체를 상상하고,
곧 성기를 상상하고,
곧 성교를 상상하고,
곧 난교를 상상하고,
곧 사생아를 상상한다.
중국인의 상상력은 이 분야에서 만큼은 이렇게 약진적이다.”
ㅡ 루쉰, 1927년, <소잡감> 중에서

 

 

ㅡ 2016년 9월 3일 오후 10시 44분, 진보 꼰대들과 음흉한 넷페미들에게 유감.

정어리 – 132

run-though-the-time

저들의 자유가 스스로, 침묵 속으로 행진하여 자취를 감추려하는 것이, 어둠의 바다로 침몰하려는 것이 대체 왜 나의 슬픔이 되는 것일까. 처음 콘체티를 처음 보았을 때, 안녕이라 말하고,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안녕이라 말했던 것과 같은 것일까?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는 안녕.

ㅡ 통신규약, 중략..

아마 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거야. 아무런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내 잘못이야. 나를 원망해다오.

이른 아침 연락을 받자마자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쳐박고 토를 했다. 아무 것도 안 나왔지만, “끄윽, 끄윽-” 거리는 소리가 필요했다.
문이 쿵쿵거리면서 “민주, 알레스 클라?” 라는 누군가의 물음에 “나튀어리쉬, 알레스 클라. 베어 빈 이쉬? 이쉬 빈 슈타케 데모크라티!” 라고 끄윽 거렸다. 헤헤.. 거짓말쟁이. 그 거짓말 다 진짜야.

 

ㅡ 2015년 9월 3일 늦은 10시 6분, 저들의 자유가..

정어리 – 131

새벽 길 위에서 마법의 주문을 발견하였다.

“anjatda il-eoseossda, eut- sha, eut- sha.”

 

ㅡ 2016년 9월 3일 아침 7시 36분, 선글래스, 댄스, 누부신 베를린 선라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