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 139

 

서너달 전, 향수를 선물 받았다. 강한 인상 때문일까 나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난 향수들은 가볍고, 산뜻한 것들을 선호하던 차에 이번에는 따뜻한 향을 갖고 싶었다. 선물받은 향수는 여자향수인데, 평소 좋다 생각하던 향이라 뭔가 마음을 들켰다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평소 파티에서도 게이 친구들이 날 좋아해주는 편이었는데, 어느새부턴가 좋아해주는 친구들이 급격히 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의아스러웠지만, 그 마음을 물을 수는 없는거니까.

일주일 전, 새로운 색의 향수를 구입했다.

그리고 오늘 집을 나오다 선물 받은 향수 광고를 보았다.

그렇게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내가 옆에 두고 싶던 향을 내가 갖어버리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올해의 여자 향수, XXY’

 

ㅡ 2016년 10월 13일, 오후 7시 53분

정어리 –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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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을까, 아주 오래 전에 그려둔 것을 발견했다.

 

요즘 새삼 깨닫고 있다. 헌신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은 실패한 삶, 낙후된 삶이라고.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Killtrack: So many nights, I stated with this. This really kills the evening, makes me like a nocturnal..!)

 

ㅡ 2016년 10월 7일 밤 10시 43분, 토요일 케이터링을 준비하며..

정어리 – 137

방금 짐정리를 마쳤다. 정말 억울해서 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집주인이 뭐라 해도 2년 째 윗층 주인이 허락하지 않아 엄마 집 베란다 누수를 고칠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아랫층이 우리 쪽에서 방수폼과 방수페인트로 해봤지만 물이 새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덕분에 단 두권을 제외한 내 모든 책이 물에 젖었다. 다행히 모든 음반을 찬근이에게 전해준 직후의 일이다. 많은 책들이 있었다. 정말 정말 내가 좋아하던 책들이 있었다. 비싸지만 어렵게 산 디자인 책들과 이상이가 파리로 가기 전 준 책들과 새봄이가 선물해준 책과 다시는 구할 수 없는 절판본들… 너무 너무 아끼기 때문에 이미 본 책이더라도 어렵게 다시 구했던 책들 모두.. 나는 책들과 같은 박스에 있던 모든 것들을 버리기로 했다. 나를 쥐어짜던 폐쇄병동에서의 일기들과 한땀 한땀 수 천바늘 기워입던 옷들까지. 이번주는 정말 굉장하다. 믿기 어려운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괴로웠다. 믿었던 책마저.. 이렇게 되버리다니. 마음은 아프지만 더이상 원망하지 않고 그 분의 뜻이라 여기겠다.

 

ㅡ 2011년 9월 29일 우울한 저녁 6시 31분, 독일로 떠나기 하루 전까지도 비는 한달 내내 그렇게 내렸다. 나를 가볍게 떠나보내려고.

한국문학과 번역

번역가의 한국문학 ‘충격 발언’

 

 

아직도 한국어 표현이 너무 다채로워서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책을 즐기지 않고, 열패감에 자학하는 사람들이라 생각이 든다. 우리가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은 두 연인이 있었던 그 하늘의 색이 아니라 그 하늘 아래서 오갔던 말들과 있었던 일들이지 않은가.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건 ‘노벨상을 타기위한 글’이 아니라 우리를 ‘흔들 수 있는 글’이다.

Nina Simone – Ain’t Got No, I got Life with korean translate

Ain’t got no home, ain’t got no shoes
집도, 신발도 없어요
Ain’t got no money, ain’t got no class
돈도, 지식도 없어요
Ain’t got no skirts, ain’t got no sweaters
치마도, 스웨터도 없어요
Ain’t got no perfume, ain’t got no bed
향수도, 침대도 없어요
Ain’t got no mind
지성도 없어요

Ain’t got no mother, ain’t got no culture
엄마도, 교양도 없어요
Ain’t got no friends, ain’t got no schooling
친구도, 학교도 없어요
Ain’t got no love, ain’t got no name
사랑도, 이름도 없어요
Ain’t got no ticket, ain’t got no token
입장권도, 승차권도 없어요
Ain’t got no God
하나님도 없어요
And what have I got?
그렇다면 난 뭘 가지고 있을까요?

Why am I alive anyway?
난 왜 살아가는 걸까요?

Yeah, what have I got
내겐 무엇이 있을까요?

Nobody can take away?
누구도 뺏을 수 없는 나만의 것이
Got my hair, got my head
내겐 머리카락이, 머리가 있어요
Got my brains, got my ears
내겐 머리가가, 귀가 있어요
Got my eyes, got my nose
내겐 눈이, 코가 있어요
Got my mouth, I got my smile
내겐 입이, 미소가 있어요

I got my tongue, got my chin
내겐 혀가, 턱이 있어요
Got my neck, got my boobs
내겐 목이, 가슴이 있어요
Got my heart, got my soul
내겐 심장이, 영혼이 있어요
Got my back, I got my sex
내겐 등이, 성별이 있어요

I got my arms, got my hands
내겐 팔이, 손이 있어요
Got my fingers, got my legs
내겐 손가락이, 다리가 있어요
Got my feet, got my toes
내겐 발이, 발가락이 있어요
Got my liver, got my blood
내겐 간이, 피가 있어요
I got life
내겐 삶이 있어요
I got my freedom
나만의 자유가 있어요
I got the life
내겐 삶이 있어요
I got the life
내겐 삶이 있어요

And I’m gonna keep it
꼭 지킬 거예요
I got the life
내겐 삶이 있어요
And nobody’s gonna take it away
그 누구도 뺏을 수 없어요
I got the life
내겐 삶이 있어요

애도, 백남기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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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카타르시스의 방화범의 기도로 그 애석한 죽음을 추도 할 것이다. 아무도 당신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구원은 우리 스스로부터 온다.

This is what happened when you call the cop. Government killing people. We withnessing the violence of system. We withnessing our freedom and rights sunken to darkness. This is how we living with wrong system.

We need to read Jakob Augstein’s sentences about Demo against ECB again.

“시위대의 폭력은 만장일치로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는 체제의 폭력을 무시하고 있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위대의 폭력은 경멸하면서, 왜 우리는 체제의 폭력은 허용하는 것일까.
We unanimously condemn the the violence of the demonstrators. But we ignore the violence of the system. During we contempt the violence of demonstrators that happens on streets, why we accept the violence of the system?” ㅡ Jakob Augstein, Spiegel
(기사: S.P.O.N. – Im Zweifel links: Gewalt gegen Gewalt)

Peter Bjorn And John – Young Folks with korean translate

 

 

if i told you things i did before
내가 예전에 했던 일을 당신께 말하거나
told you how i used to be
내가 어떻게 해왔는지 당신께 말한다면
would you go along with someone like me
당신은 나와 같은 사람과 함께 갈 수 있겠어요?
if you knew my story word for word
당신이 여러 말들로 내 얘기를 알게 되고
had all of my history
내 지난 날 모두를 알게되면
would you go along with someone like me
당신은 나와 같은 사람과 함께 가줄 수 있겠어요?

 

i did before and had my share
난 예전에 그랬었고, 많은 내 몫을 가졌었죠
it didn’t lead nowhere
이건 어디도 이끌어주지 못했죠
i would go along with someone like you
내가 당신과 함께 가도 괜찮겠어요?
it doesn’t matter what you did
당신이 어땠는지는 상관 없어요
who you were hanging with
당신이 누구와 어울렸었는지도
we could stick around and see this night through
우린 기다릴 수 있고, 이 밤 내내 지켜볼 수 있는걸요

 

and we don’t care about the young folks
우린 젊은 사람들을 염려하지 않아요
talkin’ bout the young style
젊은 스타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요
and we don’t care about the old folks
우린 나이 많은 사람도 걱정하지 않죠
talkin’ ’bout the old style too
늙은 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요
and we don’t care about our own faults
우린 우리 자신의 주변 사람도 걱정하지 않죠
talkin’ ’bout our own style
우리 자신의 스타일을 얘기하는 것으로요
all we care about is talking
우리가 신경쓰는 모든 것은 이야기..
talking only me and you
오직 나와 당신에 대해서 얘기 해요

 

usually when things has gone this far
보통 어떤 것이 그렇게 멀리 있다면
people tend to disappear
사람들은 두려워 하는 경향이 있죠
now it won’t surprise me unless you do
지금 그것은 나에게 전혀 놀랍지 안아요 당신도 그럴 필요가없죠
i can tell there’s something goin’ on
난 거기에 뭔가 있다고 얘기 할 수 있어요
hours seems to disappear
시간은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이죠
everyone is leaving i’m still with you
모두가 떠나겠지만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거예요

 

it doesn’t matter what we do
우리가 뭘 하든 그건 상관없어요
where we are going to
우리가 어딜 가든지..
we can stick around and see this night through
우린 기다릴 수 있고, 이 밤 내내 지켜볼 수 있는걸요

 

and we don’t care about the young folks
그리고 우리는 젊은 사람들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죠
talkin’ bout the young style
젊은 스타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요
and we don’t care about the old folks
우린 나이 많은 사람도 걱정하지 않죠
talkin’ ’bout the old style too
늙은 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요

 

and we don’t care about our own faults
우린 우리 자신의 주변 사람도 걱정하지 않죠
talkin’ ’bout our own style
우리 자신의 스타일을 얘기하는 것으로요
all we care about is talking
우리가 신경쓰는 모든 것은 이야기..
talking only me and you
오직 나와 당신에 대해서 얘기 해요

 

talkin’ bout the young style
젊은 스타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요
and we don’t care about the old folks
우린 나이 많은 사람도 걱정하지 않죠
talkin’ ’bout the old style too
늙은 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요
and we don’t care about our own faults
우린 우리 자신의 주변 사람도 걱정하지 않죠
talkin’ ’bout our own style
우리 자신의 스타일을 얘기하는 것으로요
all we care about is talking
우리가 신경쓰는 모든 것은 이야기..
talking only me and you [X3]
오직 나와 당신에 대해서 얘기 해요

메갤, 워마드, 그리고 그들의 반여성주의

르몽드 기사: <21세기 페미니즘의 바람직한 방향은?>, 사회민주주의센터 부대표 겸 사회연대네트워크 공동대표 이영희
(하단에 전문 있음)

 

“메갤과 워마드야 말로 대표적인 반여성주의 넷커뮤니티 중 하나이다.”

..라는 말을 먼저 꺼내야만 하겠다. 르몽드에 기고하신 사회민주주의센터 부대표 겸 사회연대네트워크 공동대표 이영희님의 글. 그간 기사화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메갤과 워마드의 문제가 무엇인지 쉽게 정리해주셨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메갈리안들이 여성운동단체이며, 페미니즘의 새물결을 만든다고 옹호하는 논자들은 둘 중 하나다(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메갈리아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페미니즘의 보편적 이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마 이들은 평소 페미니스트로 자처하는 어설픈 진보주의자들일 것으로 짐작된다.” ㅡ 본문 중

“여성학자 정희진의 “메갈리아에게 고마워하라, 메갈리아가 새로운 물결을 만든다”(한겨레신문 7월 30일자), 박경신 교수의 “혐오는 우리의 소중한 자유다, 메갈리아 이제 눈치들 보지 마시라”(경향신문 8월1일자)는 아주 위험하며, 또한 무책임한 발언이다. 한국의 여성운동을 후퇴시킴과 동시에 페미니즘의 변질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 있어 우려스럽기 짝이 없는 글이다.” ㅡ 본문 중

정확한 지적과 깊이 동감하며, 나는 메갤과 워마드의 반여성주의적 레토릭에 대해, 그리고 왜 우리가 비판을 해야하는지 ‘방향 잃은 분노’와 ‘배제의 정치’를 들고, 보론기사를 내놓을 것이다. 막연히 여성을 옹호하면 된다는, 보호주의식의 논리가 분명히 페미니즘에 정면으로 반대되고 있는데도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약자화 시키는 얼치기 넷페미니스트들에게 나는 페미니즘의 언어로 물을 것이다. 이들의 소영웅주의, 그리고 이러한 비논리적 반여성주의로 여성에게 접근하는 남성들이 소셜 네트워크에서 재미를 보는 동안 여성들이 또 다시 약자화 되고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와 관련해 지난 베를린의 릴레이션쉽, 벨카인 등의 기사에 치졸한 비난을 가했던 분들께도 베를린 시의 입장과 독일 언론이 다루는 베를린을 함께 다룰 기사도 내놓을 것이다. 약간 미리 꺼내자면, 베를린은 이미 유럽의 성적 자유주의의 수도로 인정받고 있으며, 때문에 Love Parade(백만명이 넘는 사람이 참가하고, 도심 속에서 수백, 수천명이 거리에서 테크노 음악과 함께 섹스를 한다. 정말 한다)와 Fuck Parade가 탄생했을 정도고,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라는 말을 남긴 전-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는 BDSM의 도시로 선언하려고 했을 정도이다. 멍청이들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나보고 베를린에 온지 얼마 안된 유학준비생이 아니냐고 조롱하질 않나(실제로 나는 베를린서 예술/문화 관련 이벤트 기획을 하고 있고, 유학준비생들을 다각도로 돕고 있다), 날더러 아는 척 하지 말라 편리하게 비난을 하시던데, 실은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마치 해본 것처럼 궤변을 토해내질 않나. 이런 류의 얼치기들은 약간의 대화 속에서 바닥이 한번에 보이는데.. 왜 다들 무슨 낯짝으로 아는 척들을 하시는지.. 자꾸 걷는 길에 본인들 깡통을 들이내미시는데,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으니 이제는 깡통 차는 소리 좀 시끄러워도 걷어차는 수 밖에.

페미니즘 관련, 억지 부리는 메갤과 워마드의 영어권 넷페미들에게 본인들의 주장을 영어로 페미니즘 포럼에 가서 발제하라니 그래도 염치는 남아있는지 다들 입을 싹 닫고, 모른척하고 나를 차단하거나 도망쳤다. 페이스북 본인 담벼락에 잡담하는 것이 고작이면서, 페미니스트 활동가라면서 남의 사생활 캐고, 심지어 소설에 가까운 수준의 없는 말을 지어내 나를 비난하길래 당사자랑 이야기 해보겠냐니까 도망친 멍청한 스노비스트도 한명 있었지? 앤드류라고. 도망치길 잘하셨어요. 맨날 자기가 상류층의 어떤 사람이라고, 자기는 평등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고작 페이스북질 하는 것 밖에 없으면서 아나키스트라고 나불거리셨는데..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 모욕죄, 세가지로 재판에 세워드릴 수 있었는데.. 뭐 저는 도망가는 사람을 따라가면서 때리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손가락으로 약자를 위한 연대투쟁을 한다면서 실제로는 본인의 인정투쟁에 절규하는 안타까운 사람.

이영희 선생님께서도 거론하셨지만, 여성혐오를 위해 조롱조로 사용되는 ‘페미나치’, 거기다 한술 더 떼 ‘페미나치 선언문’은 이들이 역사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유럽에서는 농담으로라도 나치를 희화화의 소재로 삼지 않는다. 수 백만의 인종적, 성적, 신체장애, 사회적 약자들을 노예로 만들고, 학살한 나치 찬양은 그야말로 중범죄며, 어디서든 현행범 체포가 가능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이런 이들이 어떻게 약자를 위한 운동을 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이들의 행동이 어떻게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는가?

 

아래의 글은 르몽드에서는 일부만 공개되었지만, 사회민주주의센터에서 연대의 목적으로 공개된 전문이다.

ㅡ 르몽드: 21세기 페미니즘의 바람직한 방향은?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6322 / 사회사회민주주의센터: 뭐, 메갈리안이 페미니스트라고? 21세기 페미니즘의 바람직한 방향은? http://cafe466.daum.net/_c21_/bbs_read?grpid=1RK8A&fldid=HCWg&contentval=0002d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163&regdt=20160904155520 ㅡ

“뭐, 메갈리안이 페미니스트라고?

나는 진보로 분류되는 정당의 여성분과위에서 수년 간 활동했고, 이른바 메이저 여성단체들과 노동계급 여성단체와의 교류에도 참여했다. 다양한 성향을 지닌 여성단체들 간의 연합행사, 토론회, 여성정책 관련 연구모임 등에 관여하는 가운데,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어떻게 어디서 전파됐고,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앞에서 고민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 담론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도 않고,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가진 여성 활동가도 드물며, 주요 여성단체들은 상층부 여성들이 정치권 혹은 다른 부문의 주류로 이동하는 발판으로 활용되는 양상이다. 나는 국내 페미니즘에 관해 감히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린다. 페미니즘운동이 활발했던 90년대에 여전히 머무른 채로,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과 새로운 세대출현을 간과하고 과거의 모호한 여성해방적 개념, 가부장제구조 타파라는 관성에 젖어 있다고 말이다.

최악의 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본질

한국에서 이처럼 페미니즘이 좌표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메갈리아 사태’를 만났다. 나는 메갈리아를 ‘최악의 넷 커뮤니티’로 규정하겠다. 메갈리아는 2015년 8월, “여성혐오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남성혐오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웹사이트다. 메갈리아의 시초는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가 발병하자, 국내 최대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내에 만들어진 메르스 갤러리로 볼 수 있다. 메르스의 최초 감염자가 남성으로 판명되자, 일부 여성들이 남성혐오를 과격하게 드러내며 디시인사이드 측과 마찰을 빚었다. 그러다가 따로 떨어져 나와 만든 웹사이트가 ‘메갈리아’다.
메갈리아의 목적이 남성혐오임은 분명하다. 메갈리아식 용어로 한국 남성을 벌레에 비유하는 ‘한남충’의 번식탈락이 목표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15년 10월 메갈리아 회원 한 명이 장애인 비하, 성소수자(게이)강제 아웃팅을 하면서 엄청난 비난 속에 주목을 받았다. 나도 이 때부터 메갈리아 사이트에 관심을 가지게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메갈리아 운영진과 회원들은 극한 남성혐오 카페 ‘워마드’를 개설했다. 메갈리아 사이트와 워마드 카페는 각기 남성혐오를 인터넷 일탈 놀이문화 차원으로 만들었다.

메갈리아 사이트는 이후 페이스북에서 메갈리아 그룹을 만들었고, 현재 ‘메갈리아4’를 운영 중이다. 메갈리아4라는 명칭은 메갈리아1,2,3이 가계정 문제, 남성혐오 프로필 사진이 문제가 돼 페이스북 측의 운영방침으로 폐쇄됐기 때문에, 네 번째로 메갈리아 그룹을 개설한 데서 비롯된다. 메갈리아 회원과 워마드 회원은 거의 교집합 상태다. 최초의 남성혐오 사이트 메갈리아는 작년 연말부터 사실상 사이트 운영이 중단됐으나 메갈리아 운영진과 회원 대부분이 워마드 사이트로 옮겨 활동하고 있어 이들을 가리켜 통칭 ‘메갈리안’이라고 부른다.

메갈리아 사태로 확산된 사건의 발단은 게임 기업 ‘넥슨’에서 새로운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를 만들었으며,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맡았던 김자연씨가 티셔츠를 입고 SNS상에 올린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인쇄된 티셔츠다. 단순히 티셔츠 판매가 문제가 아니다. 티셔츠의 공동판매자가 메갈리아와 워마드라는 데 엄청난 공분과 파장을 일으켰던 것이다. 더구나 티셔츠 판매 수익금의 사용처에 대해 “메갈리아 활동 중 법적 분쟁에 휘말린 이를 위한 것”이라고 명시돼 있어 공분과 파장이 확장됐다.
남성혐오, 아동 성희롱 문제 등 메갈리안들이 일으킨 문제는 이미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었기에, 티셔츠 판매로 촉발된 사태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여기서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핵심은 메갈리안들이 남성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페미니즘의 도용인 셈이다. 이때부터 많은 이들이 현혹되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여성혐오(여혐), 남성혐오(남혐)가 극단혐오(극혐)로 치닫고 있다.

이런 혐오성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혐오성 용어의 시초는 2006년 유행어였던 ‘된장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명품을 좋아하는 허영기 많은 여성을 비꼬는 일종의 풍자적 신조어였다. 그러자 즉각 ‘된장남’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이런 양성간의 풍자와 조롱이 점점 극단화되면서, 남혐, 여혐을 뜻하는 저급한 용어들이 마구잡이로 양산됐고 사회적 병리현상의 일부로 떠올랐다.
정치적 극우 성향의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여혐’에 대항하고자, 메갈리아가 선택한 방식은 일명 ‘미러링’. 받은 대로 되돌려준다는 방식이다. 하지만 메갈리아의 미러링의 대상은 일베에 그치지 않는다. 메갈리안들은 한국 남성 전체를 향해 극단적 혐오를 쏟아내고 있다. 메갈리안들이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도저히 말로도 글로도 옮길 수 없는 수준이다. 그만큼 극혐은 이미 비정상적인 상태다.

메갈리안들에게 전가의 보도가 된 ‘미러링(Mirroring)’은, 원래 심리를 알아보기 위한 과학자들의 초기실험을 일컫는 용어다. 미러링, 즉 거울작용은 감정의 동조현상으로 몇 사람이 모여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면 감정의 일치 현상과 유사한 생리적 반응을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메갈리안들은 미러링의 본래 의미도 변질시켰다. 그들은 그들이 받았던 혐오를 미러링을 통해 일베나 여성 혐오자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메갈리안들끼리 미러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러링은 집단의 결속력이 클수록 서로의 기분과 감정, 마음속 깊이 간직한 생각 등을 공유하는 정도가 커진다. 문제는 메갈리안들이 극혐의 감정 동조를 서로에게 하는데 있다. 메갈리안들은 미러링의 원래 의미는 물론, 페미니즘의 보편적 이론마저 변질시켰다.
메갈리아 사태가 벌어지자 일단의 진보 지식인, 진보성향의 언론매체들 대부분이 메갈리아를 옹호하며 ‘페미니즘 전사’라는 영광스런 호칭과 함께 금관을 바쳤다. 메갈리안들이 가장 많은 워마드는 사이트에 다음과 같이 성격을 명확히 하고 있다.
“워마드는 여성운동단체가 아니다. 워마드는 남성혐오, 여성우월 사이트다. 워마드는 99%의 남혐과 1% 염산으로 이뤄져있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페미니즘인가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메갈리안들이 여성운동단체이며, 페미니즘의 새물결을 만든다고 옹호하는 논자들은 둘 중 하나다(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메갈리아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페미니즘의 보편적 이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마 이들은 평소 페미니스트로 자처하는 어설픈 진보주의자들일 것으로 짐작된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칼럼 ‘나도 메갈리안이다’(매일신문 2016년 7월 27일자)를 필두로, 여성학자 정희진은 “메갈리아는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항한 유일한 당사자”(한겨레 2016년 7월 30일자)라며 메갈리아 옹호의 글을 남겼다. 그리고 JTBC의 손석희 앵커도 메인 뉴스에서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멘트를 날리며 논쟁에 가세했다. 시사인은 메갈리아 특집호를 마련해, 메갈리아인들을 남성의 폭력이 난무하는 이 야만의 시대에 투쟁하는 숭고한 페미니즘의 전사로 한껏 떠받들다시피했다.
진보성향의 논객과 언론들이 연이어 메갈리아 옹호에 편중된 기사를 내보낸 반면,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글은 자제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진보성향을 지닌 대형 커뮤니티 유저들이 오래전부터 메갈리아의 극단적 남혐과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되는 반응이어서 그 이유와 배경이 궁금해진다.

우리가 명확히 알아야 할 점은 메갈리안들의 남혐이 일베로만 국한된 게 아니라, 한국 남성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메갈리안 사이트를 모니터링해보면 일베를 혐오하는 글의 비중은 의외로 낮다. 그 대신 일반적인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용어인 ‘한남충’을 비롯해, 일명 ‘메갈 용어사전’의 100개 남짓한 용어들의 극혐 표현 수위는 일베조차 울고 갈 수준이다. 메갈리안들의 한남충 대상은 부친, 남자 형제도 포함된다.

메갈리안들의 강령과도 같은 ‘페미나치 선언문’은 그 내용을 도저히 글로 옮길 수 없을 정도로 극도로 저속한 표현으로, 그들은 공공연히 페미나치 성향을 드러낸다. ‘페미나치 선언문’은 그들에게 강령이다. 페미니즘과 나치즘이 만나 ‘페미나치’가 됐다. 히틀러는 페미니즘을 억압한 인물 아니던가?
유럽에서 나치는 처단해야할 단죄의 대상이다. 나치가 저지른 죄악에 대해 역사를 바로 잡는 데는 시효가 없다. 나치 패망 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프랑스는 나치협력자 약 10만 명 이상을 단죄의 심판대에 올렸다. 독일은 현재도 당시 나치협력자를 찾아내 단죄한다. 2011년 5월에도 수용소 경비원을 찾아내 법의 심판대에 보냈다. 반세기가 넘어도 나치가 저지른 죄악에 대한 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럽에서 나치즘을 표방하거나, ‘나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거나, 행동으로 나타내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 없다. 그럼에도 명색이 진보성향의 인사들은 메갈리아를 옹호하고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메갈리아에게 고마워하라, 메갈리아가 새로운 물결을 만든다”(한겨레신문 7월 30일자), 박경신 교수의 “혐오는 우리의 소중한 자유다, 메갈리아 이제 눈치들 보지 마시라”(경향신문 8월1일자)는 아주 위험하며, 또한 무책임한 발언이다. 한국의 여성운동을 후퇴시킴과 동시에 페미니즘의 변질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 있어 우려스럽기 짝이 없는 글이다.

우리 사회가 진일보하려면 메갈리아식의 극혐은 지탄받아야 한다. 일베가 비난받듯, 메갈리아도 비난받아야 한다. 메갈리아가 일베의 혐오에 미러링으로 되돌려줬다 해서, 진보진영이 메갈리안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나아가 부추김은 전적으로 옳지 못하다. 스웨덴은 모범적인 성평등 성취국가다. 이는 사회 전체에 “국가는 국민의 집, 사회는 가족”이라는 사회통합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남성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과 남성이 함께 연대해서 싸워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여성과 남성이 분리되고, 남성과 남성이 분리되고, 여성과 여성이 분리된다면 사회의 기본 틀인 연대의 정신이 무너지는 것이다. 내가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의 새물결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대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페미니즘이라는 말인가? //

21세기 페미니즘의 바람직한 방향은?

서구 페미니즘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 단일한 이론체계는 없으며, 그 정의를 규정하기란 어렵다. 18세기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여성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 요구로부터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60년~1970년대 들어 폭발적인 여성운동 전개와 함께 페미니즘의 다양한 실천이 이루어졌다.

페미니즘의 목적은 간략하게 말해 ‘여성의 지위와 권한 강화’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의 사상적 흐름은 일반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물결(waves)이라는 접근법으로 정의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이른바 제 1물결(First Wave)은 19세기 말 무렵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 및 법적 권리 요구의 핵심인 ‘여성참정권 보장’이었다. 여성의 정치적.법적 권한 획득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세계 최초로 여성 투표권을 허용한 나라는 1893년 뉴질랜드이다. 유럽 최초로 핀란드가 1906년, 독일이 1918년이다. 프랑스가 1944년에야 여성 투표권을 허용하였다. 제 2물결은 1960년대 말 청년반란으로 불리는 청년저항운동과 함께 페미니스트 단체들이 대거 출현하면서였다. 이때 ‘여성해방’이라는 의제가 두각을 나타내며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였다. 1970년대 들어서며 급진적인 여성운동으로 발전하여 페미니스트라는 명칭은 이 시기부터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페미니스트운동의 기본적인 개념은 국가, 국가제도, 사회구조를 ‘가부장적 구조’로 분석하여 가부장제 타파를 주요 모토로 하는 저항과 투쟁의 방식이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다. 제2물결은 다양한 의제를 가진 페미니스트 단체들이 급증하는 흐름을 낳았으며,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한 수십 년의 투쟁은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성과를 이루어 낸 사회운동으로 평가한다. 페미니즘은 본질적으로 모순을 가지고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다양한 입장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구체화되었는데 여기에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더 추가하기도 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부르주아 중심의 평등권 페미니즘으로 미국과 북유럽에서 발달하였으며 기존의 젠더 관계에 반발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반대하며, 남녀 간의 권력차이를 중심에 두고 남성권력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투쟁이며 가부장제를 포함한 자본주의 타파 운동이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에 반발하며 가부장제 사회구조, 즉 남성지배 사회와 가부장제 억압에 가장 주목하며 도전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마르크스주의 분석 틀에 기초하여 사회주의혁명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페미니즘의 여러 갈래는 이처럼 복잡하고 각기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으며 비판이 존재한다. ‘여성해방’과 ‘가부장제 타파’는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어디까지인가, 실천 방향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들어가면 딜레마에 봉착한다.
서구의 페미니즘운동은 교육받은 중산층 백인여성이 중심이 되어 이끌었다. 페미니즘의 발상은 백인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으로 부터였다.
그로 인해 페미니즘의 모순점 중 중요한 부분은 ‘여성들간의 계급차이는 간과’되고 있으며, ‘여성이 여성을 착취하는 문제’는 빠져있다. 흑인여성, 소수민족, 이민여성은 백인여성의 억압을 받으며 최하위 노동을 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페미니즘운동에 빈곤층 여성들의 문제는 제외되었다. 현 시기 페미니즘 운동도 빈곤층 여성 문제는 빠져있어 페미니즘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흑인 여성운동가 이브 페슬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백인 여성은 흑인 남성보다 더 흑인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페미니즘 역사는 서구와는 달리 역사가 짧다. 여성참정권 획득은 서구 여성들의 격렬한 투쟁의 결과와 다르게, 1958년 민주적인 법체계 수립과 동시에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페미니즘 담론은 일종의 문화운동 차원에서 대학의 ‘여성학’ 교육을 통해 페미니즘 이론과 페미니스트 활동가가 대부분 양성되었다. 대학 강단 범주에서 생성된 페미니즘은 1970년 대 후반에 최초로 ‘여성학’ 강좌가 개설되었고, 1990년 까지 약 69개 대학에 ‘여성학’이 개설되어, 이때 교육받은 여성 운동가들이 민주화운동과 맞물려 여성운동은 1990년대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그러나 대학의 ‘여성학’은 2000년 대 중반 무렵부터 폐지되기 시작하여, ‘여성학’은 최근 조사에 따르면 별도 학과로 운영되는 여성학과는 없으며, 교양수업으로 여성학이 개설되어 있는 현실을 맞았다. 이는 서구의 페미니즘이 1980년대 이르러 분열되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길을 잃고 담론 생산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침체기를 맞은 현상과도 궤적을 같이한다. 애초 한국의 페미니즘은 대학 강단에서 시작되어, 여성학이 폐지됨과 동시에 젠더 이슈, 페미니즘 담론 생산은 한계에 직면하고 말았다. 2003년 뜨거운 이슈였던 ‘호주제폐지’를 끝으로 더 이상 페미니즘은 지속적인 활동과 공공의 장에서 담론 재생산을 하지 못한 채 거의 죽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물론 압축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시대적 변화에 따라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 법적 권리획득과 성평등 의식은 매우 높아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의 페미니스트 역시 대학 강단에서 배출한 중산층 계급 여성들이 여성단체를 결성하며 페미니즘운동을 이끌었다. 여성운동가들이라 해서 페미니스트라고 불러야할지 사실은 분명하지는 않다.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는 여성운동가가 반드시 페미니스트일까?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니까 당연히 페미니스트로 분류되는가? 본인이 스스로 “나는 페미니스트다” 고 해야 정확한 것은 아닐까? “나는 페미니스트다” 고 밝힌 페미니스트는 어떤 조류의 페미니즘을 중심 철학으로 삼고 있는가? 여성운동가들이 속해있는 여성단체의 성격으로 대략 짐작해야 하는가?
한국의 페미니즘 사상은 1970년대의 미국의 급진적 페미니즘의 영향과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혼재되어있어, 한국의 페미니즘 경향을 정의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현 시기 페미니즘은 양성간의 조화로운 협력관계에 기초한 양성평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구조적 변화에 따라 페미니즘의 강조점도 성평등 사회로 이동하여 제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중점을 둔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최초로 성평등법을 제정한 국가로 노르웨이가 1978년, 스웨덴이 1979년이었다. 이 두 나라의 급진적 페미니즘 운동은 격렬하게 전개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스웨덴 급진 페미니즘의 유명한 슬로건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로 성평등 개념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정책에 영향을 미쳐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한 국가가 되었다. 한국은 1995년에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되었으며, 20 년 만에 ‘양성평등법’으로 전면 개정되어 2015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양성평등법의 골자는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 받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여성근로자 평균 임금이 남성의 6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2015년 기준 ‘세계 성격차 보고서’에 의하면 조사 대상 145개국 중 최하위 수준인 115위를 기록하며 남녀임금격차, 정치권한 분야에서 낙제점은 성평등이 매우 낙후되었음을 말한다. 양성 불평등의 개선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더욱 진전되어야 문제다. 여성의 지위는 강화되어야 하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고 서로 존중하는 세상이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복잡한 현대 사회의 양성 불평등 문제는 보다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남성도 역차별에 항의하는 시대다. 사회구조적으로 현실적이고 차별화된 접근으로 페미니즘이 전개되어야 한다. 예컨대, 한국의 미혼모 실태를 보자. 수많은 미혼모들이 취업, 생계, 양육 문제라는 삼중 사중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한국의 고아 수출은 OECD국가 1위다. 대다수의 여성 임금 근로자들은 일과 가정을 양립한다. 여성 임금 근로자 약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출산휴가 혜택을 받지 못한다. 미국의 경우 선진국 중 유일하게 출산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아, 풀타임 보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주부들이 차라리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돌아가는 비율이 높게 일어나고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아동수당 도입을 주장해 왔다. 스웨덴의 경우 1947년에 16세 이하 모든 아동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해 왔다. 이런 제도는 여성, 남성 상호 이로운 복지정책이다. 빈곤층 여성, 미혼모들이 아동수당을 받는다면 자녀양육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노인 인구 증가로 여성 노년빈곤층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20세기 일련의 저항운동으로 일어난 페미니즘은, 21세기 페미니즘으로 재탄생되어야한다. 더욱 발전된 성평등 문화와 그에 맞는 동등한 가사 분담, 아동수당, 출산휴가 전면 보장, 보육비 경감, 노인복지 확대 등 법적 수단을 통한 제도 개선을 중심에 두고, 모두에게 이로운 성평등 정책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는 페미니즘 운동이어야 한다.

메갈리아 사태는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의 한 부분으로 불평등 심화 시대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사회 현상의 한 단면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담론 부재, 성평등 가치에 대한 공공의 장 논의 부족도 페미니즘으로 데코레이션한 메갈리아 사태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메갈리아식 증오와 혐오 방식은 우리 사회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서로 연대하는 정신을 헤친다. 21세기 페미니즘, 증오와 혐오를 멈추고 현실적 문제에 집중하자. //

글·이영희 사회민주주의센터 부대표 겸 사회연대네트워크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10년 가까이 진보정당 당원으로, 주로 여성부문에서 활동했다.

[참고 문헌]
<페미니즘, 무엇이 문제인가>(캐롤린 라마자노글루)
<여성, 권력과 정치>(앤 스티븐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기고한 글입니다.(9월호)”

 

 

 

ㅡ 2016년 9월 10일 오전 7시 35분

퇴행적 좌파, 그리고 페미니즘

방금 전에 기사 하나 보내면서 메갤, 워마드 이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대체 페미니즘이 가고자 하던게 어디였냐고. 페미니스트라면서 메갤, 워마드가 가져오는 1950년대 북미의 과격주의와 반여성주의 레토릭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인지부조화를 보면 가슴이 턱 막힌다. 어떻게 1990년대까지만해도 그러지 않았던 한국의 페미니즘이 앞으로 나아가기는 커녕, 되려 수십년을 뒤로 퇴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를 모른다면, 우리는 오늘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사회가 퇴행한다며 저주하는 당신이야말로 이들을 따라 퇴행하는 것 아닌가. 괴물과 싸우기 위해 괴물이 되어야만 한다면, 우리 자신 스스로가 괴물로써 자멸로 향하는 것 이외에 누구와 어떤 연유로 싸워야한단 말인가.

르몽드에 실린 이영희 선생님의 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한다. 만약 당신이 페미니스트며, 여성은 물론 모든 이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원한다면,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투쟁해서 이루어낸 오늘의 시계를 뒤로 감지는 말아야하지 않겠나.

“주디스 버틀러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그 둘 사이에 감추어진 계약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한다. 즉 ‘노예에 대한 명령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구성된다. 너는 나의 육체이나, 너의 것인 그 육체가 나의 육체라는 것은 내게 알려서는 안 된다’. 따라서 주인의 측면에서 일어나는 부인은 이중적이다. 우선 주인은 자신의 육체를 부정하며, 탈육화된 욕망으로 남고자 하며, 노예가 자신의 육체로 행하기를 강요한다. 둘째, 노예는 마치 주인을 위해서 행하는 자신의 육체적 노동이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활동이라는 듯 주인의 육체로 행동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자율적인 행위자로서 행동해야만 한다.
In her reading of the Hegelian dialectics of Lord and Bondsman, Judith Butler focuses on the hidden contract between the two: “the imperative to the bondsman consists in the following formulation: you be my body for me, but do not let me know that the body that you are is my body”.(2) The disavowal on the part of the Lord is thus double: first, the Lord disavows his own body, he postures as a disembodied desire and compels the bondsman to act as his body; secondly, the bondsman has to disavow that he acts merely as the Lord’s body and act as an autonomous agent, as if the bondsman’s bodily laboring for the lord is not imposed on him but is his autonomous activity.” ㅡ 2004년 2월, Cine21에 실린 슬라보예 지젝 특별기고 [3] – <최초에 아버지와 딸이 있었다> 중에서”

(2) Judith Butler, The Psychic Life of Power,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7, p. 47.

월스트리트 오큐파이 5주기를 맞이하며..

뉴욕타임스 기사: Occupy Wall Street: Where Are They Now? BY ACCRA SHEPP

 

월스트리트 오큐파이 5주기를 맞이하며, 여러 기사들과 그 날들을 잊지 말자는 이벤트, 새로운 조직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 오큐파이는 모두의 바람을 뒤로한채 실패로 끝났고, 모두 끝났다고들 이야기 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실패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 때 주코티 공원에서 자원봉사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오늘 어디에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포토 다이얼로그. 그 사람들 오큐파이가 끝난 이후에도 어디선가 자신만의 혁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기사 읽는데 콧잔등이 시큰거리고, 기운이 난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철저히 망가져 결국 미국 자본주의의 휴양지가 된 쿠바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지만, 쿠바의 음악을 담은 어느 다큐에서 비춰진 길거리 담벼락에 “우리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라고 적힌 것 보고 ‘우리는 정말 완전히 끝나버렸구나’ 하고 그 날은 누구랑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람들의 오늘이 담긴 사진들이..

 

ㅡ 2016년 9월 17일 밤 12시 40분, 같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