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 142

 

이 영화를 97년쯤 봤다. 딱 1년 후,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부터는 홍대에 들락거리기 시작하면서 인디매거진들을 모으고, 펑크/인디밴드들의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그 때 홍대에는 중학생이 찾는 일은 상상도 하기 힘든 때였다. 못해도 고2, 고3은 되어야 했고, 대부분 대학생들이거나 사회에 이제 갓 발을 내딛은 직장인들이었다. 펑크밴드들은 노란 탈색이나 찢어진 청바지뿐만 아니라 빨강, 초록, 파랑, 형형색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스파이크 머리를 하고 있었고, 찡벨트, 오른쪽 뒤춤에는 지갑과 연결된 체인이 있었다. 그 때의 보통 사람들은 그런걸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심지어 무서워서 길을 비켜주기도 했었다. 당시 사람들이 아는 이런 행색의 사람들은 로보캅 같은 북미영화에 출연하는 악당들이었으니까. 처음 학교 친구랑 드럭을 갔었을 때, 친구는 무서워서 집에 도망가버렸고, 나도 무서웠지만 ‘설마 죽지는 않겠지, 트레인스포팅에서도 사람은 안 죽이던데’ 하면서 주먹을 꾹 쥐고 들어갔었다. 하도 어린 녀석이다보니까, 형, 누나들의 보호는 물론이고, 귀여움도 많이 받았었다. 그리고 450페이지 분량의 트레인스포팅 책을 빌려보기도 했었지. 그 때는 리얼플레이어로 음악 한곡 받는데만 40분씩은 걸리던 때였고, 희귀판도 아니고, 라이센스판도 돌려서 듣던 였다. 처음 캘리포니아 드리밍 뮤직비디오를 보고 충격을 크게 받아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었고, 히피라는걸 알게 되고, 프리섹스를 나누는 평화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첫 경험을 꿈꾸며 포르노 웹사이트, 히피 커뮤니티에서 프리섹스 파트너를 구하는 게시판들을 열심히 뒤지다 20:1에 달하는 남녀 비율을 보고서 히피는 실패한 이상주의라 자조했었지. 그리고서 “히피들을 죽이자”는 가사가 담긴 펑크곡들을 열창 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형, 누나들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패밀리 밸류스 투어 ’98’ 테입을 선물로 받고, 람슈타인, 아이스큐브, 림프비즈킷에 빠져서 H.O.T.나 젝스키스 들으며 콜라텍에 다니는 또래친구들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맨날 형, 누나들 틈에 있다보니 친구들이 말하는 것들은 다 한심하고 유치해보였다. 물론 그래봐야 매일같이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스타랑 레인보우6,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같이하는 중학생에 불과했었고. 홍대, 대학로서 형, 누나들과 놀이터 정자, 공연장, 바에서 술, 담배하면서 괜스레 친구들이 유치해보였던 것일 뿐, 나는 그저 중학생에 불과했다. 머틀리크루를 사랑하는 스물네살 누나를 여자로 생각하고 짝사랑하던 중학생. 누나가 손 잡아줄 때마다 나는 누나랑 뭔가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 누나는 사촌동생 손 잡듯 위험한데 빠지지 않게 하려던 것이겠지. 그래도 나는 누나 손을 잡을 때마다 온몸이 찌릿거렸다. 누나가 좋아하는 천상병,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고, 너바나, 그리고 스매싱 펌킨스의 ‘트라이, 트라이, 트라이’를 들으며 슬픈 사랑에 방구석에서 울던 중학생. SH클럽에서 노브레인 100원 공연이 있던 날, 다른 형, 누나들을 따돌리고 둘이 대학로를 걷는데, 누나는 내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한사코 거절했는데, 결국 내가 말하면 더이상 아무 말 않고, 손 잡고 집으로 가기로 했었다. “사랑해, 누나”하고 꼬옥 안았다가 아무 말 없이 손잡고 집에 갔던 밤. 나는 그런 중학생이었다. 누나는 늘 몸이 아파 병원을 다녔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일본에 갈거라 했었는데. 홍대놀이터에서 술에 취한 김포대 학생들이 누나에게 무례를 저지를 때, 제 딴에 남자라고 싸우려들다 두들겨 맞아 병원에 실려 갔을 때. 그 때 엉망이된 내 곁에 있어준 것도 누나뿐이었다. 나는 그런 중학생이었다. 대학생 열다섯명한테 실컷 두들겨 맞아 응급실에 실려가면서도 씩 웃던 나는 그런 중학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트레인스포팅은 옳았다. 나는 아직도 살아있으니까.

이 영화를 보면서 딱히 이유도 없이 세상에 분노를 했다. 고작 중학생이 ‘이 빌어먹을 세상을 끝내버리고 싶다’고 매일 같이 낙서를 했다. 책으로 읽었을 때는 또 다른걸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영화가 곧 다시 나온다고 한다. 처음 봤을 때는 열세살이었는데, 이제는 서른 두살. 하하, 많은 일들이 있었지.

예고편을 보니 트레인스포팅은 이번에도 오늘의 젊은이들, 시대를 기록하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처음 봤을 때처럼 새롭지 않은 것들이겠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는 영화.

방금 전 유학생 네트워크에서의 일에 대한 감상을 남기고 싶은데: 멍청한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무례한 것은 그렇지 못하다. 전자는 극복이 가능한 편이지만, 후자는 대게 그러지 못하기 때문.

 

ㅡ 2016년 11월 3일, 오후 3시 9분

돌아온 전여옥, 그리고 이것은 국가인가

 

 

이 사람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인터뷰를 꼭 보길 바란다. 이 사람이 무엇을 보고 느꼈을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한나라당에서 박근혜를 보좌하면서 봐온 세계는 아마 최근 개봉된 영화 <아수라>와 같은 살아있는 지옥 아니었을까.

박근혜에 대한 폭로로 신상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전여옥,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같은 일을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후회하지 않고 다시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전여옥이 언급한 몇가지들. 최순실, 친박, 지하정치, 위안부 문제, 대북-통일관, 국가관, 대통령관, 언론, 종편에 패널로 참석하는 지식인보다 상식을 믿을 것, 정치인에 대해서 엄격해야할 것, 금수저들이 이제 국회의원을 하는 세습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야해야하는 이유, 야당이 아니라 박근혜를 찍을 수 밖에 없었던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가 누차 강조하는 이 나라의 아이들과 세월호.

또한 박종진이 여러차례 ‘사람들이 원하면 정치하겠냐’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지는데, 자신은 할 수 있는걸 다했고, 기력도 없고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며, 한 아이의 엄마로 살고 싶다고 한다. 그것도 전여옥이 한나라당으로부터 버림 받으면서 자신의 아이가 정상적인 학업은 커녕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무너졌고, 그 아이의 꿈이 이제는 직업교육을 받으며, 카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꿈인 아이의 엄마. 이전의 정치적 꿈들이 탐욕에 가득한 자들에 의해 스러졌지만, 그 꿈만은 꼭 현실이 되길 바란다.

지금 벌어지는 미증유의 사태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서 지키고 있던 최소한의 근대성조차 무너져버렸다는 것이며, 대한민국 헌법이 계승하고 있는 임시정부-의회정치, 그 이전의 국가인 대한제국-전제군주제 시대로 회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 대한제국이 성립까지 독립협회와 수구파는 정부 형태 문제로 갈등하였는데, 독립협회는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데 수구파는 전제군주제를 주장했다. 독립협회는 민중 대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어 백성의 참정권을 주장했고 국회의 설치로 국민 대표자를 뽑자고 요구했으나 수구파와 위정척사파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참정권 주장과 국회 설치 주장을 반역으로 규정했다. 독립협회가 입헌군주제를 계속 추진하여 1898년(광무 2년) 11월 중추원 관제 개편을 공포하자 수구파는 이에 익명서 사건을 명분 삼아 경무청과 친위대를 동원해 독립협회 간부들을 체포하고 만민공동회를 탄압하였으며 조병식을 중심으로 수구파 행정부를 수립. 이에 독립협회 절파(折破)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 판단한 일본이 수구파 행정부에 가담하여 독립협회의 운동을 탄압하게끔 권고, 고종이 이를 받아들여 곧이어 보부상들이 주축이 된 단체인 황국협회는 만민공동회를 강제로 해산, 독립협회는 1898년(광무 2년) 12월 해산되고 만민공동회도 1899년 12월 이후 불법화되었다. ㅡ 권력을 민중과 나누지 않고, 독점하려다 나라를 팔아먹은 고종)

성노동자들은 윤리의식을 갖추지 못한 피해자들인가?

모 페미니즘 페이지 관리자가 성노동자 전체를 피해자로 약자 프레임화 시키기에 이 세계에는 엄연히 자발적인 성노동자와 성산업노동자조합들이 있고, 베를린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하는 포르노 영화제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다. 때문에 성노동자 전부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이 부당하다 항의하였으나 페이지 관리자는 성노동자들의 의사와 관계 없이 모두 피해자로 규정하고, 동정하고, 죄의식을 강요하며, 정상적인 윤리 속에서 직업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모욕및 폄훼, 낙인찍기를 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인간의 기본권인 자기성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였는데도 ‘구조적 폭력’이라며 성에 관련된 모든 것을 일반화 시키고 모두 피해자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자발적으로 성노동을 택한 노동자들의 권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주장이다.

독일은 성노동을 인정하고, 국가에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그들의 권리를 지키려고 하고 있으며, 좌파당을 제외한 SPD, 해적당, 녹색당와 같은 좌파정당 등은 성노동을 인정하고, 성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위원회를 만들어 연대투쟁을 하고 있으며, 독일의 안티파도 이들에 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다는 몇 단체들이 실제 고의로 통계를 누락및 편집하거나, 성노동자의 요구를 편향적으로 다루어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을 도출시켜놓고, 이후에 과정을 짜맞추는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민주주의, 인권을 이야기 한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뭐, 최순실을 옹위하면서 민주주의를 말하는 천하의
개x년놈새끼들이 청와대와 국회에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슈피겔이 왜곡보도한 사건인데, 결론을 도출해놓고 과정과 통계를 짜맞춰가는 이 기사의 여러 심각한 문제들 속에서 믿기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바로 슈피겔이 성노동자이자 성노동자 권리 활동가인 카르멘을 인터뷰하면서 인터뷰이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을 편향적으로 편집해 보도하고, 카르멘이 밝히길 거부했던 사적인 영역들을 부정적으로 드러냈다.

“독일판 슈피겔에는 베를린 출신의 성노동자 카르멘의 프로필도 실려 있다. 카르멘은 독일 해적당 소속의 성노동자 권리 활동가인 동시에 성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카르멘은 슈피겔 지의 기자와 인터뷰하기 전 나누었던 이메일을 인용하며 반박문을 내놓았다. 카르멘에 의하면 슈피겔에 실린 프로필에서는 사전에 동의한 바와 달리 그녀의 “성매매 정책, 성노동자 권리운동, 성노동자 차별에 대한 생각” 등의 주제들을 주변적으로만 다루고 있었다. 카르멘이 인터뷰에 동의한 것은 “성매매에 대한 편견 아닌 논의를 시작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이 직업에 대한 통찰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으나, 슈피겔에 실린 프로필의 80퍼센트는 카르멘의 외모와 그녀의 서비스 웹사이트에 대한 정형화된 묘사만을 다루었다.”

번역 기사 전문을 읽어보다 보면 이런 주장을 통해 성노동자의 권리를 묵살하는 단체들과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도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이들을 페미니스트라거나 권리활동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페미니즘을 떠나 한 개인의 권리, 자기성결정권을 자신들의 성적기호대로 강탈하고 있다. 타인의 기본권을 강탈하는 동시에 여성권리를 위한다는 그들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이렇게 타인의 권리를 부정하는 태도들은 어떤 단체들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좌파 운동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데, 주로 ‘약자화’, ‘동정하기’, ‘죄의식 강요’, ‘비정상적이라며 존재를 부정’, ‘낙인찍기’ 같은 방법들을 통해 당사자들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있다.

다시 문제의 페이지 문제로 넘어와서 이야기 하자면, 대개 이런 관점들은 이미 사장되거나 폐기된 1950~ 60년대의 2세대 페미니즘에서 극단적인 소규모 그룹들의 텍스트가 성엄숙주의와 보수주의를 만나면서 발생한다. 또한 이 관점들은 마초이즘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는데, 이들은 ‘여성의 약자화’ 시켜 ‘여성보호주의’에 입각해 프레임을 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보호주의에 대해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입법심의관’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 보호에 대한 사고는 기실 헌법으로부터 출발한다. 1987년 헌법은 한편으로 양성평등을 이야기하면서도 여성 보호도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주의 시각은 2008년 현재 분화된 여성의 모습과 충돌하면서 혼란만을 야기시키고 있다.

해부학적 성차는 모성 기능이나 근육의 힘을 사용해야 하는 특별한 상황에서만 차이를 드러낼 뿐이며, 사회계층적으로도 여성들의 분리가 가시화되고 있고, 이에 따라 여성 집단은 정치적으로도 분화하고 있다. 때문에 헌법적 여성 보호론에 전제된 단일한 상황에 놓인 ‘여성’은 없으며, 이 단일한 여성에 대한 보호 역시 매우 불분명한 규범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여성정책의 내용이 여성 보호를 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 성평등을 통합시키고자 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여성 보호주의’ 시각의 정책지원에 길들어 있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모순이자 도전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ㅡ 차인순, <여성정책 정체성을 되묻는다>,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36028

한국 사회는 약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대개 고개를 끄덕이는 편이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 문제를 두고, 극단적인 대립을 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젠더에 관한 사회적 인식의 정체’로부터 시작된다.

오늘 한국 여성의 위치는 81년 정무장관(제2)실(현 여성가족부), 83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여성의전화, 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와 한국여성민우회, 88년 여성신문, 99년 한국여성재단 등이 여성을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골짜로 보수주의와 결탁한 2세대의 ‘반포르노 페미니즘’ 패러다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보호주의적 시각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젠더에 대한 인식을 가져오지 못했고, 때문에 실질적 평등의 보장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성평등 담론에 ‘역차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위시로 ‘남녀대결구도’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서구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방아쇠가 된 3세대 페미니즘을 필두로 성에서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을 주체로 하는 패러다임으로 발전했다)

한국은 지난 2015년 12월 22일을 기해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을 골짜로 하여 여성보호주의적인 시각을 벗어나는 <양성평등기본법>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 법은 대한민국헌법에서 보장하고자 하는 양성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젠더에 대한 인식을 가져올 것을 기대하고 있으나, 실제 효력을 갖추는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전반적인 사회적 교육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법은 충분히 논의가 되지 않고, 만들어져 논란이 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자기성결정권이라는 기본권을 통해 성노동이나 성적기호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피해자’라는 단어로 함축정의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을 ‘약자화 시키기’, ‘피해자로 동정하기’, ‘죄의식을 강요하기’, ‘정상적인 윤리의 직업이 아니라며 존재를 부정하기’, ‘낙인찍기’ 같은 방법들을 통해 당사자들에게 수치심을 느끼는 것들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토로하고자 했던 말이 생각보다 길어졌기 때문에 여기서 끝내겠다.

모두의 말이 맞다. 페미니즘에는 여러 결의 운동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영화의 제목처럼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는 마라. 우리 누구에게도 어떤 성적 기호가 더 옳은 것인지 판결을 내릴 자격은 없다.

벨카인 화장실들 중 한 소변기 옆, 매주 일요일 남자의 소변을 맞기위해 슬픈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아있는 남자친구가 생각난다. 우리는 오랜 기간동안 얼굴을 마주하였지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새부턴가 서로에게 미소지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나는 소변에는 성적충동이나 취미가 없어 다신 키스하는 일은 없을테지만, 나는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그 친구가 좋다.

+ 저는 메갤러, 워마드, 자유주의 페이지 등으로부터 신상털이를 당하다 지쳐 이러한 포스팅을 할 때에 링크를 꼭 삽입합니다. 그러면 공유하셔도 포스팅 본문은 제외하고, 링크만 옮겨가게 되지요. 공유를 하고 싶으신 분들은 귀찮더라도 글 본문을 복사해서 붙여넣어주세요.

메갤, 페미니즘 질의응답

 

 

평소 사람들을 응원하고, 돕는 글을 쓰시는 분의 글을 잘 읽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답변을 쓰다보니까 메세지로 쓰기에는 생각보다 길어 양해를 구하고, 그 내용을 포스팅 합니다.

Q. 안녕하세요, 포스팅하신거 보고 궁금한 점이 있어 개인적으로 쪽지드려요. 오늘 올리신 글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해서 안전한 섹스 가이드는 물론이고, 항문섹스, 결박-구속법들을 가르치고 퍼포밍 하고있다.’는 부분을 언급하시면서 메갈리아측에서 이런 점을 미소지니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메갈에서 이런 것들을 왜 미소지니라고 하는건가요?

A. 안녕하세요. 지금 메갤에서는 성적인 것들을 여성혐오로 규정짓고 있고, 나아가서는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라며 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의 대결구도, 여성의 약자화 프레임을 깨고 동등한 주체로써 권리를 행사하려는 것과 정반대되는 것이죠.

Q. 그리고 민주씨 Berghain과 베를린 성적개방에 대한 글은 저도 읽었었는데요, 그 글을 읽고 ‘한남충’이란 단어가 어떤 이유로 나오게 되는지 좀 잘 이해가 안가네요.

A. 베를린이란 도시가 LGBT의 성지이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유럽 성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한데요.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라는 말로 재정난을 타개해낸 베를린의 전-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역시도 게이이자, Berghain의 열렬한 팬이였습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베를린을 유럽 BDSM의 중심 도시로 선포하려고 했었을 정도죠. 그런 베를린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라고만 보는데, 베를린은 문란한 것이 아니라 숨기지 않고, 공개적이며, 젠더간 평등을 중시하는 도시거든요. 그렇다보니 오해하는 사람들 일부는 베를린 클럽만 가면 무조건 섹스할 수 있을거라 잘못된 상상을 하거나, 베를린 클럽에서는 성추행이 빈번하다는 오해를 하고들 있죠. 그런 맥락에서 메갤의 젠더 스탠스는 이미 남성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저를 적대시하고, 제가 한국 남성이기 때문에 더더욱 한남충이라고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메갤은 언제나 서구 남성과 한국 남성을 비교하면서 서구 남성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구원의 기다림은 페미니즘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여성을 약자화 시키고, 보호 대상으로 만드려는 마초이즘에 근거합니다. 때문에 메갤의 젠더스탠스는 페미니즘이라기보다 성에 대해 적대적이며,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학습당한 마초이즘에 기대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다시 말해, 김치남/백인남성 프레임으로 백인남성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은 실제로 구원받을 수 없는 일 일뿐만 아니라 삼호쥬얼리호를 납치, 석해균 선장에게 총격을 가해 무기징역과 13~ 15년의 징역을 판결 받은 해적들이 한국 귀화를 희망하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Q.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담론을 사회에 끌어온 메갈리아라는 단체를 높이 샀었는데 최근 행보를 보면 여성해방이 아닌 또 다른 프레임들을 여성에게 씌우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여성이 인간으로 대우받기 이전 성적 소비의 대상이 되는 이유나 여성이 차별받는 이유를 여성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 같아 더 불편하기도 했구요.

A. 저도 차별받는 여성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메갤의 시작에 적극적 지지를 하였지만, 이내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첫번째로 미러링이란 전략은 단기적으로 충격효과를 주는 것이지, 장기적인 전략이 아닙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가면 갈 수록 그 속에 동화가 되어버립니다. 이를테면 여성혐오자들에게 거울효과를 주는 것을 넘어서서 메갤 내부에서 서로에게 거울효과를 하고 있다보니, 그 거울은 이제 효과가 아니라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된거죠.

둘째로 3세대 페미니즘, 그러니까 80년대부터 페미니즘은 성소수자, 녹색운동, 하위문화 등과 함께 약자화의 연대를 외치기 시작하면서 동력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2세대 페미니즘의 극단적인 그룹에서 남성을 적대화하고 남성과 여성을 분리시키면서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서 한발 더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죠. 그렇게해서 페미니즘과 펑크록의 Do it yourself가 만나 L7, Bikini Kill과 같은 페미니즘 펑크 밴드들이 등장하고, Bikini Kill의 Cathleen Hanna가 Riot Grrrl Manifesto를 선언합니다. 이 선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비판적 지지’입니다. 어떠한 비판적 지지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언으로 여기고 해나가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메갤은.. 메갤에 대한 비판을 여성혐오로 규정합니다. 여성은 약자니까, 약자의 말이 옳다면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같은 엉터리 논리를 소환합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이론으로 받아들여본 적도 없거니와 50- 60년대 경찰학 연구 프로젝트에서 고려되었다가 비과학성이 입증되면서 사장된 주장입니다. 여성보호주의를 외치는 한국의 페미니스트?! 들만이 ‘피해자 중심주의’같은 유사과학을 주장하고 있죠.

셋째로 저는 여성혐오에 맞서 젠더 폭력에 억눌린 자아와 욕망을 분출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우리에게는 더 많은 썅년(Bitch)들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당한 권리들이 방향 잃은 분노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젠더 폭력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마저도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여성이 받는 젠더 폭력과는 다르지만 한국의 남성들은 청년기에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2년간 신체가 구속되어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약하기 때문에’라는 명목으로 남성들만 보내어져 24시간 노동및 대기 상태로 시급 273원 가량(병장 기준)을 댓가로 받고 있습니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의 피해자들보다 현저히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죠.

가부장제가 출산으로 인한 해고와 여성임금차별의 원인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남성 역시 가부장제로 인해 가족 부양의 의무가 생기며, 오래된 논란, 혼수와 데이트 비용과 같은 논쟁을 유발합니다. 이런 불균형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모두의 권리를 제약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뿐이지, 가부장제는 반드시 사라져야할 ‘봉건적인 현대사회의 유물(Feudalistic contemporary relic)’입니다.

오늘의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이 대립하고, 대결할 것이 아니라 젠더간 불균형과 차별을 넘어 평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Q. 여성의 로리타 의상 관련 소녀느낌이 나는 옷을 입는 여성들에 대한 메갈리아의 마녀사냥 얘기를 듣고 개인적으로 이 단체의 정체성에 조금 회의를 느끼고 있었어요. 저는 인간의 성적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페미니즘에서 꽤나 중요한 테마라고 생각하는데 얼마 전에 메갈리아나 극단주의 페미니즘 진영에서 동성애 관련 차별 발언을 했다고 하여 이 단체가 그저 타인을 혐오하고 사회의 또다른 소수를 무시하며 자위하는 단체인지, 진정한 여성해방을 원하는 단체인지 조금 구별이 안가기 시작했어요. 지나가다 궁금해서 쪽지드렸는데 혹시 불편하심 그냥 무시하셔도 괜찮아요 ^^;

A. 저 또한 설리, 구하라, 그리고 로타 사진 작가에 대한 비판에 유감을 금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은 그 자신의 이름으로 누구에게도 ‘자기성결정권’이란 기본권리를 침해하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젠더간 평등 문제를 떠나 어떻게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지 참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제가 이전에 적은 글이 있는데, 그 글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링크: https://goo.gl/GglNfl

링크는 ‘Sonic Youth, 쏘닉 유스’의 ‘Kim Gorden, 킴 고든’이 ‘Bikini Kill, 비키니 킬’, ‘Le Tigre, 르 띠거’, ‘The Jullie Ruin, 더 줄리 루인’의 리드 싱어 ‘Cathleen Hanna, 캐서린 한나’에게 헌정하기 위해 ‘RIOT GRRRL MANIFESTO, 폭동 소녀 선언문’을 낭독하는 비디오입니다.

The Riot Grrrl Movement는 1990년대 초반 워싱턴 주의 밴드 비키니 킬과 리드 싱어 캐서린 한나로부터 시작 되었고, 이는 3세대 페미니즘의 방아쇠가 됩니다. 이 선언문은 1991년 ‘the BIKINI KILL ZINE 2’에 실려 발표 되었습니다.

페미니즘, 재현행위

요즘 베를린에서는 포르노 영화제가 한창인데,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해서 안전한 섹스 가이드는 물론이고, 항문섹스, 결박-구속법들을 가르치고 퍼포밍 하고 있다. 메갤러들이 보면, 여혐이라 입에 거품물겠지다만.. 베를린서는 이미 페티쉬, 섹스 페미니스트 포럼과 파티도 다수 열리고 있다. (너무 재미잏다!)

예전에 벨카인, 베를린 릴레이션쉽 가이드를 썼던 나에게 베를린 당도한지 6개월도 안된, 베딩 기숙사 사는 머가리 빻은 한남충이라고 부르짖던 못 되쳐먹은 예술가, 기획자, (메갤 이후 등장한) 넷페미니스트, 유학준비생 년놈들. 당신들이야말로 그렇게 반여성주의와 배제의 정치를 페미니즘이라고 포장해 팔아먹더니.. 잘 먹고 다니냐 묻고 싶다. 밥은 먹고 다니냐?

페미니스트를 참칭하는 유교 탈레반.. 당신들 덕에 꽤나 상처입고, 글쓰기를 그만 두었는데, 반여성주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다시 쓰기로 했다. 페티쉬-섹스파티 놀러다니는게 뭐가 죄라고. 아래는 당신들이 좋아하는 버틀러의 이야기인데, 읽지 않는 것 같아서 옮겨온다. 부디 당신들은 듣지도 않는 밴드 패치, 티셔츠를 사방에 덕지 덕지 붙여놓고,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록키드로 살아가지 않길.

“매키넌은 혐오 발언으로서 포르노그래피의 법적 규제를 요구해 왔다. 포르노 논쟁에서 반포르노 진영의 선봉이었던 그녀에게 동성애, BDSM과 같은 급진적 성애는 혐오를 단지 재현한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다. 그녀는 포르노그래피는 여성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성의 평등권을 억압한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매키넌은 표현 산업의 자유보다는 여성의 평등권이 더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버틀러가 보기에 포르노 재현이 곧 포르노 실천은 아니다. 흑인 갱스터랩이 도시 범죄와 여성 비하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처벌을 요구하게 되면, 갱스터랩의 재현은 곧 행위가 되어버린다. 여성 혐오적인 노래 가사에 분노하면서 법적인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 보수적인 페미니스트의 입장이지만, 버틀러가 보기에 이런 주장은 성적 보수주의와 페미니즘이 공모함으로써, 인종 차별을 희석시키고, 국가의 검열과 처벌을 강화시키는 데 일조하도록 만든다. 특히 미국에서 혐오 발언은 인종적 상처의 결과는 축소시키고 성적인 상처의 영역은 가능한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버틀러는 지적한다. 갱스터랩에 재현된 여성 혐오 발언에 대한 단속은 인종 차별로 전이되고, 성차별 단속이라는 이름하에 인종 차별은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매키넌은 포르노그래피가 일종의 혐오 발언이며, 그것이 세계를 포르노적인 장소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포르노 세계에서의 현실과 그것에 대한 경험 사이에 아무런 간극이 없는 것처럼 주장함으로써 포르노를 보는 것만으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본다면 포르노의 시각적 재현은 자신이 묘사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신적 수행문과 유사한 효력을 가진다.

하지만 포르노의 시각적 재현에 여성의 행위가 언제나 종속되는 것은 아니다. 포르노적인 재현에 여성들이 희생자로서 복종하는 것만도 아니다. 포르노가 여성에게 신적인 발언 내적 행위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버틀러는 비판한다. 그런 포르노적 명령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불가능한 수행성이다.

매키넌에게서 보다시피 진보 세력은 혐오 발언의 대상자들을 순전히 희생자로 규정해 왔다. 버틀러가 보기에 희생자 담론은 진보주의자들의 명분과 실천에 편리하고 손쉬운 전략에 불과하다. 희생자 담론은 혐오 발언 주체를 절대적인 지배의 입장에 세우고 타자를 무기력한 수동적 존재로 만든다. 그렇다면, 주권적 주체의 권력에 복종하는 타자가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가?

버틀러가 그토록 주권적 주체의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버틀러는 주권적 주체되기의 실패에서 저항의 틈새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주체는 결코 주권적 주체가 될 수 없으므로 타자를 자기 의도에 완전히 종속시킬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어떤 혐오 발언도 상대를 완벽하게 복종시키는 데 실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군대에서의 동성애와 관련해서도 재현이 곧 행위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동성애 재현이 곧 동성애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동성애자가 주권적 주체라고 한다면, ‘난 동성애자’라고 선언하는 순간 동성애 행위를 마법적으로 전염시키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동성애자들이 그처럼 마법적인 힘을 과연 갖고 있는가?”

요즘 귓가를 맴도는 곡들

ㅡ House
Fjaak – Das Programm
ㅡ Irlish Drinking Song
ㅡ Berlin
ㅡ Relax und Müde

 

ㅡ Recently loving so much humming this:

Partisan – The hardest thing to do with korean translate

 

Yeah, it’s hardest thing to do.
 
 
영화 <Partisan, 소년 파르티잔>: 우리는 모두 실패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실패하지. 그러니 만들어진 이 세계의 틈을 깨고 나가, 거기에 새로운 세계가 있어.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와 함께 침몰하는 사랑하는 것들에게 운명이라 위로하려 들테지. 주어진 운명 속에 순응하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가 서로의 안녕을 묻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ㅡ Partisan – The hardest thing to do (Cover) – https://youtu.be/7y60h66K0nE
Partisan – The haredest thing to do (Song with Story: 0:00 부터 스토리, 5:12 부터 음악, 8:02 부터 음악 직후 스토리) – https://youtu.be/jurWmQSTq6A
Tony Primo and Nixxie (Original song) – https://youtu.be/Cj7bWsG8-Cw
 
(Boy)
Once
끝났어
this game of love is done
너와 나의 사랑의 게임
You’ll float in like an angel
천사처럼 떠다니지 말고
Come down from up on high
이 아래로 내려와
 
Hold on to me and watch
날 붙잡고 잘 봐
You’ll see the lights descending
빛이 내려오는게 보일테니
A story neverending
끝나지 않는 이야기
The changing of a tide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듯
 
(Girl)
This trap Iaid for you
널 위해 만든 이 덫
Was big enough for two
둘이 들어가기에 충분했어
Sometimes to tell the truth
때론 진실을 말하는게
Is the hardest thing to do
가장 힘든 일 같아
 
Is the hardest thing to do
가장 힘든 일 같아
 
 
(Girl)
Hush
쉿!
I think it’s best you hold your tongue
내 생각엔 네가 아무 말 않는게 좋겠어
Our star’s in the accending
우리 별이 떠오르고 있어
At least until it’s light
날 밝을 때까진 떠 있겠지
 
/ (Boy)
/ This trap Iaid for you
/ 널 위해 만든 이 덫
/ Was big enough for two
/ 둘이 들어가기에 충분했어
/ Sometimes to tell the truth
/ 때론 진실을 말하는게
/ Is the hardest thing to do
/ 가장 힘든 일 같아
 
/ Is the hardest thing to do
/ 가장 힘든 일 같아
(* 원곡에서는 소년 파트가 한번 더 있음)
 
(Girl / Boy)
This trap Iaid for you / In different shades of blue
널 위해 놓은 덫 / 다양한 빛깔의 우울함
Was big enough for two / In different shades of blue
둘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 다양한 빛깔의 우울함
Sometimes to tell the truth / Just watch the evening news
때론 진실을 말하는게 / 저녁 뉴스를 봐
Is the hardest thing to do / It’s closing in on you
가장 힘든 일 같아 / 점점 숨통을 조여와
 
(Girl / Boy)
Is the hardest thing to do / Is the hardest thing to do
가장 힘든 일 같아 / 가장 힘든 일 같아
 
(Both)
Is the hardest thing to do
가장 힘든 일 같아
 
 
(Both)
Now everytime we walk 
우리 같이 걸을 때면
Just hold my hand
그냥 내 손을 잡아
Hold my hand
내 손을 잡아
 
(Girl / Boy)
Yeah everytime we walk / Yeah everytime we walk
우리 같이 걸을 때면 / 우리 같이 걸을 때면
Just hold my hand / Just hold my hand
그냥 내 손을 잡아 / 그냥 내 손을 잡아
Hold my hand / Hold my hand
내 손을 잡아 / 내 손을 잡아
Hold my hand / Hold my hand
내 손을 잡아 / 내 손을 잡아
 
(Both)
Hold my hand
내 손을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