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갤, 그리고 pc도착증

 

오케이큐피트를 보다가, 또 페이스북에서 일어나는 pc, 메갤에 대한 논쟁을 보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해서는 내가 6년 전, 베를린에 처음 와서 활동가들, 펑크들과 만났을 때부터 주로 다루던 이야기인데, 그 필요성, 중요성, 당위성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독일, 스웨덴 등, 국가를 막론하고, 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pc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경쟁적으로 다가서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한 용어는 없지만, 나는 베를린서 이에 대해 처음 논의하던 때부터 일종의 ‘자위’, ‘pc도착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 젊은 친구들을 설명하곤 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독일 안티파 시위에서도 보인다. 10대~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이 시위에서 계획된 시위들을 무시하고, “경찰, 이 돼지, 나치, 파시스트놈들 다 죽여버린다”면서 거꾸로 솓는 젊은 피를 주체하지 못한 채, 정의감에 불타 투석전, 화염병을 던진다. 물론, 투석전과 화염병이 전략상 필요할 때도 있지만, 이 어린 친구들은 그걸 놀이문화로 소비한다. 이들을 단순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꾸준히 싸워온 친구들도 아니며, 이제 연대한지 고작 1~ 2년 뿐이 안 되어, 운동의 역사는 물론, 방향도 이해하지 못한채 ‘보수주의자들만 없으면 세상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라고 단순하게 믿는 친구들이다.

시위에서만이 아니다, 평소에도 ‘반자본주의’와 ‘혁명’이라는 단어를 수시로 언급하는 이들의 방에는 제 3세계 국가의 아동들을 착취해 수익을 올리는 다국적 기업들의 제품들이 때묻지 않은 채있고, 그 중 몇은 나이키 신발을 쓰레기통에 넣는 것으로 혁명에 가까워졌다고 착각하기 일쑤, 또한 부모님을 마치 ‘보수, 괴물, 꼴통’으로 그려넣기도 일쑤다. ‘나이키 대신 반스(Vans)를’ 소비하는 것을 지적한 Joseph Heath와 Andrew Potter가 <The Rebel Sell: Why the Culture Can’t be Jammed>에서 밝힌 반문화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레토릭으로 소비된다.

이에 독일 안티파는 일찍이 “War starts here” Camp 등을 통해 시위에서 투석전, 화염병을 던지는 것 이상으로 나 스스로부터 바뀌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왔다. 하위문화 등을 통해 문화담론을 통해서도 저항적인 삶들을 소개해왔다. (한국의 많은 좌파들이 막연히 기성제품-대중문화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점에서 부족하다) 그리고, 운동이 하위문화와 만났던 뜨거운 80년대 이후, 90년의 3세대 페미니즘과 함께 대중문화에서도 운동의 두각을 드러냈으며, 더 많은 지지자들과 연대를 하게 되었다.

다시 ‘메갤 이후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분’들, 마치 ‘외로이 세상을 변혁 시키고 있다’며 정의감에 불타 계신 분들의 문제로 돌아와서 생각해보자.

지금의 메갤이 그다지 새로운 일도 아닌 것은 2008년 여시, 밀덕, 그리고 진중권-진보신당 등등 여러 주체가 급격히 관심 받으며, 확산된 촛불집회에서 전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 거론된 주체보다 더 큰 곳에서 “독재타도, 이명박은 하야하라”를 외친 ‘꼬꼬마’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처음은 마치 대한민국이 뒤집혀, 혁명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하지만, 다들 기억하듯, 2008년의 그 일은 차후에 일베의 시발점이 되었다.

본인들께서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청년활동가’라고 믿는데, 내 눈에는 ‘인권감수성’ 같은 수사에 경도된 감성적이신 분들일 뿐이다. 이 분들의 레토릭은 노인층의 보수성 운운하다 대선 빠이빠이한 정동영이나 며칠 전의 문재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히 새누리당 때려부수고, 여혐종자들 때리면, 대한민국에 좌파가 집권하고, 여혐이 사라질거라고 믿는 존~~~나 단순한 친구들. 그게 그렇게 간단했으면, 왜 세상이 이모양, 이꼬라지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온라인에서 세월호 리본을 달고, 프랑스 국기를 걸고, 무지개 프로필을 장식하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소개하고, 여혐에 반대한다며, 남성을 조롱하는 농담들, 짤방들을 올리고 낄낄거리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니 조심해라,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여성의 말에 ‘우선적으로’ 귀기울여라라고 말하는 것, 그저 ‘반자본주의’, ‘혁명’이란 단어를 외치는 것만으로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너무 나이브한 것은 아닐까?
당신 부모 세대, 68세대만 하더라도 싸이키델릭 음악에, 애시드, 대마를 피우며,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며, 나체로 뒹굴고, 시위에서 경찰들에게 꽃을 건내주었고, 때로는 연행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는지, 그런데도 왜 이 세상은 이모양인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안 될까.

오케이큐피트, 그 데이트 웹사이트를 왜 연관짓냐고? 나는 이 데이트 웹사이트를 종종 이용하는 편인데, 그 중의 어떤 사람들이 요즘의 어떤 사람들과 정확히 겹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오케이큐피트에서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에 거주하며, 사회불평등 이슈에 관심을 두고 있고, ‘베를리너를 희망하는 미국인’이라고 밝히는 것과 ‘메갤 이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르는 사람’들이 놀랄만치 같은 레토릭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Christian Lander가 <Stuff white people like>에서 말한 ‘도덕적이고 진보적인 백인으로 이해되고 싶어 그러한 백인 문화를 소비하는 백인’과 ‘도덕적이고 진보적이며, 보수적인 한국 문화를 비판할 줄 아는 이성적인 한국인’으로 인정받는 것, 그 둘 모두 그 좁은 세계에서만의 도덕성을 확보해 쿨해지고 싶어하는 힙스터이기 때문이다. 이 들의 바람은 힙스터, 그 자체로 현실세계에서 그 이미지로 소비되길 바라는 것이지, 실제 변혁이 아니기 때문.

만약 실제 변혁을 바란다면, 그 소비하는 이미지에 대한 재고가 진작에 있었겠지. 오직 주어진, 한정된 미디어 소비를 통해 “Sex, Drug, and Rock’n Roll”를 외치는 록스타 워너비는 향유자가 아니라, 소비자일뿐이다.

아무튼, 나는 1월, 50 Weapons의 마지막 공연과 Siouxsie & The Banshees를 만나러 갈 것이라네. 그리고 혹여라도 오케이큐피트에서 날 만나면, 가볍게 말을 걸어줘.

메갤, 워마드 그리고 아웃팅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범죄

지금 워마드의 아웃팅 프로젝트는 인격살해를 모의하는 범죄에 불과하고, 이에 참여는 하지 않지만, 이들의 방관하는 메갤러들 모두, 이 범죄의 공모자나 마찬가지다.

이 일의 심각성을 느끼게 된 것은 dx3에서 ‘성소수자를 때리며, 분열된, 혹은 붕괴된 매갤이 할 수 있는 일’의 글에 게이를 아웃팅 시키는 일이 정당하다는 논지의 반론이 다긴 댓글 때문이다. 이 사람의 논조는 마치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자신의 테러를 성전으로 포장하는 것과 꼭 닮아있다.

게이를 아웃팅 시키겠다는 이 프로젝트는 2세대 페미니즘 중반, 80년대에 페미니즘이 모든 약자와의 연대를 외치며, 녹색운동, 성소수자, 반전운동과 합류했던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째서 메갤과 관련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페미니즘 투쟁사를 거스르려하는지 왜 반여성주의적인 아이디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또한 투쟁에 대한 이해 없이, 아무 맥락 없이 아무때고 pc함에 도착증적으로, 경쟁적으로 다가서는 행동에 가슴을 칠 뿐이다.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100년 전, 맑시스트-페미니즘 선전물에 도취된 것 같은, 이러한 소영웅주의는 레닌이 꺼냈던 ‘좌익소아병’마저 떠오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대체 이들이 어떠한 자격으로 타인을 심판하겠다는걸까. 대체 무슨 권위로, 권력으로 타인의 인격살해를 도모하시겠는걸까? 그러고도 이들이 여성의 권리를 외칠 수 있다는 말인가? 메갤 이후 너도 나도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사람들이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길 거부하면서, 여성의 권력화를 통해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말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런 이들이 자신들의 가해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 필요한대로 페미니즘의 언어를 가져다 쓰지만, 그것은 결코, 결코 페미니즘이 아니다.

물론 이들에게는 나의 우려와 의견에 철저하게 반대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인격을 살해하고, 인생을 파멸로 몰고가는 심판할 권리가 없다.

아웃팅은 증오범죄로 미국 연방법원(http://goo.gl/PWjYFm)은 물론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에서 범죄로 다루어지고 있다. 대체 어느 페미니즘 운동가가 어떤 논리로 아우팅을 운동으로 규정한단 말인가.

한국에서는 법이 다르다고 할텐가? 한국에서도 타인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유포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http://goo.gl/XRfF61 / http://goo.gl/3kvOkh)에 위배되는 중대한 범죄다. 지금 아웃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조만간 경찰서에서 수갑차고 선처를 구하실 것이다. 개인정보유포는 알권리와 하등 관계가 없는 범죄일뿐이기 때문이다. 2015년에 폭스파이어가 재현된다는 사실이 슬프다고 해야할까. 우리의 갈 길은 얼마나 먼 것일까.

x.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행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9조(비밀 등의 보호)[1]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에 의하여 처리·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침해·도용 또는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49조의2(속이는 행위에 의한 개인정보의 수집금지 등) ①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속이는 행위로 다른 사람의 정보를 수집하거나 다른 사람이 정보를 제공하도록 유인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제1항을 위반한 사실을 발견하면 즉시 방송통신위원회나 한국인터넷진흥원에 신고하여야 한다.
③ 방송통신위원회나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제2항에 따른 신고를 받거나 제1항을 위반한 사실을 알게 되면 다음 각 호의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위반 사실에 관한 정보의 수집·전파
2. 유사 피해에 대한 예보·경보
3.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접속경로의 차단요청 등 피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긴급조치

제71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제22조제1항(제67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위반하여 이용자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개인정보를 수집한 자
2. 제23조제1항(제67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위반하여 이용자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개인의 권리·이익이나 사생활을 뚜렷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를 수집한 자
3. 제24조, 제24조의2제1항 및 제2항 또는 제26조제3항(제67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위반하여 개인정보를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한 자 및 그 사정을 알면서도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
4. 제25조제1항(제67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위반하여 이용자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개인정보 취급위탁을 한 자
5. 제28조의2제1항(제67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위반하여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훼손·침해 또는 누설한 자
6. 제28조의2제2항을 위반하여 그 개인정보가 누설된 사정을 알면서도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
7. 제30조제5항(제30조제7항, 제31조제3항 및 제67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위반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고 개인정보를 제공하거나 이용한 자
8. 제31조제1항(제67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위반하여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만 14세 미만인 아동의 개인정보를 수집한 자
9. 제48조제2항을 위반하여 악성프로그램을 전달 또는 유포한 자
10. 제48조제3항을 위반하여 정보통신망에 장애가 발생하게 한 자
11. 제49조를 위반하여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침해·도용 또는 누설한 자

dx3는 사상의 자유를 갖지만, 약자에게 가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과 차별에 동의하지 않는다. ‘야내가메퇘지’가 남긴 댓글의 아이피는 내가 갖고 있지만, 그 정보를 전제로 신고한다거나 불법적인 추적을 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나로서는 이러한 ‘계획적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다.

날더러 ‘구태 페미니즘’이니 말같지도 않은 악담을 하는데, 당신이 ‘구태 페미니즘’이 무슨 뜻인지는 알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비웃는 그 페미니즘 투쟁의 역사를 통해 많은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여성에게는 투표권조차 주어지지 않는 2등 시민에 불과했다. 조금도 고민 해보지 않았으니, 지금 고작 반년 간의 메갤 가지고 성취감에 도취되어 무엇이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들, 당신들이야 말로 여성권리의 적들이다.

이들이 지금 ‘계획적 범죄’를 모의하고 있다는 심각한 사실을 인지하길 바란다. 범죄를 계획하고, 모의했다면, 그 때부터는 우발적 범죄에 대한 정상참작의 여지는 조금도 주어지지 않고, 오히려 중범죄로서 가중처벌 된다.

베를린 교통공사(BVG)의 커머셜 광고

 

베를린 교통공사(BVG)의 커머셜 광고.

한국의 친구들이 믿을지 모르겠지만, 말타는 장면만 빼놓고, 모두 베를린 지하철에서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일들이다. 한국 공공기관들의 문화정책이 후지다느니 뭐니 하는데, 베를린을 예로 들 것 같으면, 공공기관보다 굉장한 시민들이 있다.

훌리건들이 하도 극성을 부리니, 베를린 시는 전철내 흡연, 금연, 취식 금지법을 만들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퇴근 길에 맥주 하나에 피로를 달래며, 주말에는 왁자지껄 샴페인을, 맥주를, 와인을, 독주 섞인 싸구려 음료를 들고, 처음 보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방긋 웃는다. 평일 아침에도 불구하고 밤새 질펀하게 놀다 약에, 술에 흠뻑 젖은 얼굴로 집으로 향하는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라는 말을 남긴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전 시장도 헤도니스트의 성지라 불리우는 베르그하인을 찾던 파티피플, 게이이다. 또한 가끔 난데없는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이나 잦은 고장으로 인한 운전중지의 불편에도 역무원들에게 고함치거나 불평하지 않고, 다른 대체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있다. 내가 들은 비밀스런 소식에 의하면 1월 초에는 베를린의 젊은이들이 난데 없이 하의를 벗고, 지하철을 탈 계획을 세우고 있기도 하다.

물론 밝은 모습만 있는 것들이 아니다. 지하철에는 매일 같은 곡을 부르는 가난한 젊은이들이 있고, 지하철 역사에는 코가 시큰거릴 정도의 대마 냄새와 오줌지린내를 풍기는 노숙자, 지나치게 취해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들, 사지가 멀쩡하고 나라에서 생활보조금을 받는데도 구걸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정처없이 떠도는 집시들이 있다. 또 지하철 요금을 내지 않으려고 티켓을 사지 않거나, 복제하다 걸려서 벌금신세, 경찰에게까지 불려가는 처량한 신세들이 있다.

우리 모두가 알지만 좀처럼 말하지 않는 삶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 아니라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겹기까지 하다.

공공 선, 상호부조.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것. 위험에 놓인 사람들을 보고 인상을 찡그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 그런 가치가 베를린이나 서울에도, 또 다른 도시에도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낙원 꿈꾸기를 끝내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

Killer Mike의 버니 샌더스 지지 연설 with korean translate

https://www.youtube.com/watch?v=Kywpo-XmFYg

 

번역이 좀 늦었습니다. 잠시 피곤에 젖어 잠에 들던 중 친구가 이 영상을 플레이 하면서 완전히 피로가 사라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곧 누군가 한국어 번역을 올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직 아무도 하지 않았더군요. 제가 조금더 서두를걸 그랬다는 생각과 함께 지금이나마 나누어 봅니다.

 

랩퍼 킬러 마이크의 버니 샌더스 지지연설, 저는 미국시민이 아니며, 그 곳에서 멀리 떨어진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국인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연설에 깊은 감명을 받으며, 버니 샌더스가 대통령이기 되길 바랍니다. 미국인들이 그와 함께 역사를 바꾸어나가길 바랍니다, 힐러리가 아니라 말이죠.

 

 

I am… I am honored to be here.
나는… 나는 영광스럽게도 이 곳에 자리했습니다.
Oh, I am truly, truly honored to be here.
오, 나는 진정으로, 진정으로 영광스럽게도 이 곳에 자리했습니다.
I am from Atlanta, Georgia,  and I say that proudly.
나는 애틀란타, 죠지아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말합니다.
I repeat, I am from Atlanta, Georgia,  and I say that proudly.
내가 다시 말합니다, 나는 애틀란타, 죠지아에서 왔으며, 그리고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말합니다.
If you’re… if you’re from Atlanta, Georgia you may be familiar with a young man who grew up not far from here.
His name was Martin King.
만약 당신이… 만약 당신이 애틀란타, 죠지아에서 왔다면, 당신은 이 곳과 멀지않은 곳에서 자랐던 젊은 청년을 아주 잘 알 것입니다.
Now, now I know this is the part where usually it’s a black minister in front of you, and usually you get all warm and cozy inside, and usually you hear about ‘I Have a Dream’ and us holding hands and going for ice cream.
지금, 지금 나는 당신 앞에 있는 어느 흑인 목사가 늘상 어디선가 하던 일의 일 부분이며, 그리고 당신을 따뜻하게, 안쪽에 머물수 있게 했던 것과 ‘나는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를 들으며, 아이스크림을 사러 우리의 손을 잡고 가는 사람에 대하여 당신이 평소 들어왔을 것이란 것을 압니다.
That’s not why I’m here today.
그것은 내가 오늘 여기에 있는 이유가 아닙니다.

I’m not here  to talk about benevolent politician who are gonna come and save the day for you.
나는 당신을 구하기 위해온 어떤 자애로운 정치인에 대해 말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I’m not here  to talk about a dream that we think is unattainable, so we settle for less.
나는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꿈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작은것에 안주하자고 말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I’m not here  to talk about a Utopian society, where everyone is forgiven and no one has to pay for past debts.
나는 모두가 용서받고, 아무도 지난 빚에 대해 댓가를 치루지 않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사회에 대해 말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I’m talking about… what I’m talking about today, is the Martin King post-the Washington March, Martin King present (?) the War on Poverty, Martin King against the War Machine that uses YOUR sons and YOUR nephews to go to other lands and murder.
내가 말하려는 것은, 내가 말하는 것은 오늘, 마틴킹의 후기 워싱톤 행진, 마틴 킹이 말하던 현재의 가난과의 전쟁,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조카들을 다른 나라로 보내 사용하려는 전쟁광들에게 반대한 마틴 킹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I’m talking about… a Revolutionary.
나는 혁명적인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I have no time  in my short forty years on this Earth to relive the Reagan years.
나는 내 짧은 40년의 생애 동안 이 지구에 Reagan 대통령을 되살릴 시간이 없습니다.
I have no time,  I have… I have no, no desire to see us elect our own Margaret Thatcher.
나는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나는 없습니다, 나는 미국의 마가렛 대처(힐러리를 비꼬는)를 선출할 마음이 없습니다.
I am here as a proponent for a political Revolution that says Healthcare is a RIGHT of every citizen.
나는 건강보험이 모든 시민의 권리라고 말하는 정치적 혁명을 위한 제안자로서 여기에 있습니다.
I’m HERE, because working class and poor people deserve a chance at economic freedom. And yes, if you work 40 hours a week you should not be in poverty.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동 계급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의 기회를 마땅히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맞습니다, 만약 당신이 1주일에 40시간을 일한다면, 당신은 가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That’s why I’m here.
그것이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입니다.
I didn’t come here to lolly gag, cause I rap, this could be y’all last time seeing me, caused I got tours to go, I got jets to fly on and I ain’t Lie-on.
나는 랩을 하므로 여기에 빈둥거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니며, 내가 제트비행기를 타고, 투어에 오르기위해 당신들 모두가 나를 보는 마지막 시간일 것이며,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But while I’m here, I have to tell you, that in my heart of hearts… In my heart of hearts, I truly believe that Senator Bernie Sanders is the right man to lead this country.
하지만 내가 여기 있는동안, 나는 당신에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에 대해 말해야겠습니다. 내 마음 속 깊이, 나는 버니샌더스 상원의원이 이 나라를 이끌 올바른 사람이라고 진정으로 믿고 있습니다.
And I believe it because he…  I believe it, because HE, unlike any other candidate, said, “I would like to restore the Voting Rights Act.”
그리고 내가 그것을 믿는 이유는, 그는…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나는 연방 투표권법을 이전처럼 회복시키고 싶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HE, unlike any other candidate, said, “I wish to end this illegal War on Drugs, that disproportionally targets minorities and poor.”
그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나는 소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불균형한 타겟으로 삼은 불법적인 마약과의 전쟁을 종식시키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Unlike any other candidate IN MY LIFE, he says that Education should be free for EVERY citizen of this country.
내 인생의 다른 후보들과 달리, 그는 이 나라에서 모든 시민들이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한다고 말합니다.
Now, now I only have a few minutes, but as I read the Atlanta Journal & Constitution’s comments about me speaking tonight, one jumped out at me and it broke my heart.
지금, 지금 나는 몇 분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Atlanta Journal & Constitution(미 동남부 최대 신문사)가 오늘 밤 나의 연설에 대해 펄쩍뛰며,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읽고 싶습니다.
It says, “I don’t listen to rap and I will no longer be listening to Bernie Sanders.”
Atlanta Journal & Constitution가 말하길, “나는 랩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버니 샌더스를 더이상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And I just want to say that, whoever wrote that, before I was a rapper, I was a son of Atlanta.
그리고, 나는 누군가 내가 랩퍼였으며, 애틀란타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기 바랍니다.
Before I ever wrote one rhyming word on paper, before that, I was a black man in America.
내가 종이 위에 라임을 써내리기 전에, 내가 미국에서 흑인이기 전에.
And… and before I ever learned how to dance a G, I gave a damn about American politics.
그리고… 내가 어떻게 G 댄스를 추는지 배우기 전에, 나는 미국 정치에 빌어먹을 것들을 주었습니다.
I gave a damn about the people of America, and I took to the streets and I advocated.
나는 미국의 사람들에게 염병할 것들을 주었고, 나는 길을 선택했고, 나는 지지했습니다.
So… I know I’m preaching to the choir tonight.
그리고 나는 오늘밤 합창단에게 설교했다는 것을 압니다.
I know that there are not a lot of voices of dissension out there.
나는 거기에 반대의 목소리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I know I’m preaching to the choir, but I’m here to tell you — stay encouraged, stay invigorated, stay bold, stay confronting bullshit at every turn.
나는 합창단에게 설교했다는 것을 압니다만, 나는 여기에 당신에게 말하기 위해 있습니다 — 격려하십시요, 활기를 북돋우십시요, 용감하게 서서, 모두에게 닥쳐오는 빌어먹을 것들에 맞서십시요.
Make sure that wherever you go… make sure that wherever you go, you take the name, the ideas, the philosophy and the ideology of Bernie Sanders there.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확실히 하십시요…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확실히 하십시요, 이름과 아이디어와 철학, 버니 샌더스의 사상이 있는 그곳으로.
And you make sure when you leave they are on fire, because they have Felt the Burn!
그리고, 당신이 떠날 때, 그들이 불길에 휩싸였다는 것을 확실히 하십시요, 왜냐하면 그들이 불타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I have… I have a line from one of my raps and I’m gonna get out of your way.
나는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내 랩들 중 하나로부터 온 문장 한개를 가지고 있고, 당신 앞에서 치워내려고 합니다.
I have said in many a rap I don’t trust a church or the government, a Democrat,  Republican, a Pope or a Bishop or those other men.
나는 많은 것들을 랩을 통해서 이야기 했왔습니다. 나는 교회나 정부, 민주당원, 공화당원, 교황이나 주교, 또는 그런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But after spending five hours tonight, after spending five hours with someone who has spent the last 50 years radically fighting for your Rights and mine?
하지만, 오늘 밤 이 다섯시간이 지난 후에, 다섯시간이 지난 후에, 다음 50년 동안 당신과 나의 권리를 위해 급진적으로 싸워줄 누군가와 함께.
I can tell you that I am very proud tonight to announce the next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Senator Bernie Sanders!
나는 오늘 밤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가 미연방의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발표함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당신에게 말 할 수 있습니다.
Everyone give him a round of applause!
모두들 그에게 박수를!

2015, 캐나다 내각

오 캐나다…….이런 내각이:
건강부 장관은 의사.
운수송부 장관은 우주비행사.
국방부 장관은 시크교 베테랑.
청년부 장관은 45세 이하.
농업부 장관은 전직 농부.
공공안전및 긴급대책부 장관은 정찰병.
혁신, 과학, 경제발전부장관은 경제분석가.
재정부 장관은 성공한 사업가.
법무부 장관은 검사이자 국가리더.
체육, 장애부 장관은 시각장애 올림픽 선수.
해양수산및 해안경비부 장관은 이누이트.
과학의학지리부 장관은 PhD, 박사.
 
이 타이틀들과 포함해, 이민, 시민, 난민부 장관은 이민전문 비평가.
과학자들이며, 내각의 50%는 여자.

성소수자를 때리며, 분열된, 혹은 붕괴된 매갤이 할 수 있는 일

몇 달 내내 매갤을 비판적 지지한다며, 꾸준히 보아왔다. 그리고 많은 분들과 대립을 했는데, 그 분들 중 일부는 의견이 다르더라도 지속적으로 여성권리를 도모하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로 했으나 대부분의 분들은 ‘여성은 약자,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깨지 못하면서 대화가 단절 되었고, 나는 어느새 맨스플레이너가 되었고, 가해자가 되었다. 메갈리안 현상 이후에 너도 나도 페미니스트를 선언하며, 페미니즘은 실제로 쿨하게 소비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없이 ‘여성의 권력화’와 ‘여성권리신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고, 심지어 ‘나는 가해자 남성입니다’ 라는 식의 엉터리 페미니즘 신앙간증이 유행이 되기도 했다. 정희진 선생님 말씀처럼 이러한 이야기들은 오히려 페미니즘의 독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메갤의 입장은 앞으로 메갤이 페미니즘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혹은 인터넷 놀이문화중 하나가 되는지에 대한 마지노선이 될 것이다. 이것이 정리되지 못하면 메갤 자체가 내부에서 붕괴되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남자는 모두 적이다”,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같은 글들이 수 백개의 메념을 받고, 반대가 없는걸 보면, 이미 붕괴가 시작된 것 같긴 하다.
* 3세대 페미니즘에 대한 주요 비판이 2세대 페미니즘이 ‘여성만의 운동’이 되어버린 것을 반복되지 않도록 남성, 여성,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등 모든 성을 아울러 연대의 운동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성약자화’라는 관점에서 메갤은 2세대 페미니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지만, 3세대 페미니즘에는 완벽하게 반대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이 자기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른체 ‘쟁의 없이 구원을 구하고 있을 뿐’이니까.. (…)

 

물론 메갤의 문제는 실제로 페미니스트가 되기는 절대 원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위치가 개선되기 바라는 여성의 이율배반성에 대한 비판은 내부에서 조금도 언급할 수 없다는 점이다. 메갤은 남성우월주의를 비판하면서 정작 본인의 이율배반성은 성찰하지 않는 여성을 향한 분노을 무조건 여혐, 또는 반여성주의라며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성소수자 혐오 문제에서 약자와의 연대를 끊은건 게이 남성들이 아니라, 메갤 여성 유저들이다. 내가 메갤이 서둘러 학습, 조직운동을 해야한다고 이야기를 꺼낸지 몇 달은 되었지만, 소라넷, 여성차별 광고근절과 같은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사실 메갤에서 여성이 주체가되는 운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는 동안 내가 비판하고, 예상했던 일은 조만간 정리할 글에서 드러나겠지만, 어림잡아 생각해보더라도 거의 다 일어난거 같다.

 

이게 끝이면 좋겠지만, 아직 일어날 일이 남았다는걸 아직 모르시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지금 제일 멘붕인건은 메갤이후 너도나도 페미니스트 선언하고, 미러링을 무한 지지한 사람들이 아니라, 젠더학 연구하시는 분들일 것이다. 가슴 아파하시겠지만, 진작에 고민했어야하는 부분을 ‘피해자-여성’ 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용인했기 때문이다.

 

메갤이 여기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방법은 내 생각에 딱 두가지 밖에 없어 보인다.
1. 메갤에서 구심점이 되는 분들이 구제할 문화담론으로 학습, 조직운동, 자기비판 그리고 여성이 주체가 되는 운동으로 간다.
2. 구심점이 되는 분들이 지금의 메갤을 떠나, 이름조차 버리고, 지금까지의 문제를 모두 비판적으로 연대기를 정리해 운동과 맞닿게 하는 것이다.

 

1과 2에서 비판이 꼭 필요한 이유는 메갤이 ‘피해자-여성’ 이라는 것을 전제로 모든 것을 무비판 적으로 용인하면서 반페미니즘의 가치(여성권리신장이 아닌, 여성의 권력화)가 메갤의 주요 여론이 되는데도 자정작용을 전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비판적으로 연대기를 정리해 운동과 맞닿게 하라는 이야기는 메갤이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메갤을 특정 목적을 가진 ‘정치결사체’로 보면서 메갤에 비판적 지지를 하였는데, 나의 비판에 메갤은 페미니즘 운동이 아니라며 메갤의 모든 행동을 옹호하시며, 메갤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으신 분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과 2,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현 상황을 타계할 문화담론을 짜내지 못하면, 방법이 없어보인다. 비판에 대한 수용및 자기 비판은 필수이다. (비판적 지지는 3세대 페미니즘의 기폭제였던 ‘폭동소녀 선언문’에서 강조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메갤의 방향성을 만드는 것이다. 오랫동안 이야기 해왔지만, 메갤은 페미니즘이 그렇게 오랫동안 싸워왔던 ‘여성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방향성이 없어 그저 인터넷 놀이문화로 전락하기 쉽고, 문화담론도 짜기 어렵다.

 

나는 이것들이 유일한 답일거라 생각한다. 늦어질수록 대중운동으로서의 그 가능성은 낮아지고, 2015년판 ‘여성의 전화’가 될뿐이다. 여성의 전화가 성폭력 피해여성을 구제하는데는 매우 큰 역할을 했지만, 여성의 전화활동들 다수가 여성의 피해에만 한정되어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권리가 특별히 신장된 것은 아니다. 여성들만 모아놓고, 여성주의를 외칠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 무성애와 헤도니스트, 그 모두를 아우르는 ‘젠더의 평등’ 관점이 되지 않는다면, 여성의 권리는 아직도 멀어보인다.

 

* 3세대 페미니즘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2세대 페미니즘의 막바지, 80년대 초반부터 이미 페미니즘은 전쟁반대, 인종차별반대, 시민의 권리, 녹색운동, 성소수자들과 함께 약자와의 연대를 시작해왔다.

청년진보논객 데이트폭력에 부쳐..

아마 내가 이 이슈에 대해 내 의견을 피력코자하는 일은 처음일 것이다. 곧 지금까지의 메갤리안, 페미니즘의 이슈와 함께 총 정리해서 어느 곳에 글을 싣게되는데, 그 중 청년진보논객의 이슈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번 글에서 나는 ‘한국과 같이 다양성이 없는 사회가 소수자를 대하는 일’을 이야기 하면서 “그러한 일은 집단주의 문화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일로는 가치비판을 하는 개인에 대한 집단의 인격살인이다. 이런 일들은 작은 사회일수록 더욱 심각해지는데, 운동가, 좌파, 혹은 진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는 더욱 작기 때문에 마이너 집단 안에서의 린치는 보다 강도가 높다. 집단 내의 공공 선을 반영하는 규율이 권력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그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 했다.

그와 동시에 이번 데이트폭력 폭로는 굉장히 위험한 수준까지 갔다. 폭로자가 피해자로서 보호받을 권리가 지켜져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사건과 아무 하등 관계없는 사생활을 아무렇지도 않게 공공에게 알리는 폭력을 행사한 점이나, 폭로내용이 사실로 밝혀지지도 않았음에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깬 것과 경찰과 검찰도 할 수 없는 ‘피의사실공표’를 하였다는 사실이다.

혐의 사실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피해로 인해 기어코 혐의당사자들이 폭로당사자와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피의사실 유포자에 대해 고소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안타깝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조차 개인 사생활까지 폭로한 폭로당사자가 고소 취하를 요구하는 것은 폭로 내용이 사실이라면 요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명백하다. 물론 허위사실에 현혹된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책임질 수 없는 말, 특히나 이번처럼 최소한의 확인절차도 거치지 않고, 개인에 대해 집단의 린치, 인격살인이 이루어진 경우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The Feminists – SWEET LITTLE GIRL official pop music video

 

x. The Feminists – SWEET LITTLE GIRL official pop music video!

사랑하는 친구들이자, 베를린의 언더그라운드 씬을 뒤흔들고 있는 ‘The Feminists’의 팝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뭔갈 찍는데 함께 하겠냐는 케서방의 말에 “안 될거 없지 뭐..”라고 했다가 며칠 뒤, 자던 중 얼떨결에 촬영에 합류했다. 꽤 긴 시간동안 촬영한 것 같은데, 편집하고 보니 다 잘리고 남은건 거의 없지만, 잠에 덜 깬채 맥주를 털어넣으며 유쾌하게 촬영했다. (찾지는 마라..)
영상에서는 한 친구가 빠졌지만, ‘The Feminists’는 Iggy Pop이 여장을 한채, “I’m not ashamed to dress ‘Like a woman’. Because I don’t think it’s shameful to be a woman. 나는 여자처럼 입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면 여자가 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며 ‘FCKH8(혐오ㅈ까)’의 ‘혐오에 반대하는 Gay, Str8(게이, 이성애자) 평등 캠페인’에서 말할 때처럼 여장을 한 여섯 사나이. (최근 베를린 주요 음악 매거진중 한 곳에서는 Iggy pop의 새 앨범 리뷰보다 The Feminists의 새 앨범에 무려 8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중요하게 다루기도 했다)

쓰라린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올 여름 서울-베를린 도시교류 페스티발에서 꼭 데려가려고 했던 밴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은 아직 이르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이번 메갈리안 현상을 보더라도 영화, 음악 등을 위시로한 여성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영향은 앞으로 급속도로 커질 것이고, 더불어 한국의 문화, 예술씬의 다양성도 보다 넓어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문화담론을 타고, 정치운동이 벌어지게 될 것을 기대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아니라, 꿈꾸어왔던 일들을 현실로 바꾸는 일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잠시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일시적일 뿐, 반드시 오게될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삶을 위시로한 문화, 예술, 정치, 철학, 사상의 가치를 욕망하는 것이 어떠한 위험, 이를테면 경제위기의 요인의 보다 크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페미니스츠는 당신이 베를린에 방문할 때, 꼭 놓치지 말아야하는 밴드!

영화 리뷰, Gaspar Noé의 LOVE

 

내용을 스토리, 비쥬얼, 음악 모두 스포일링 하고 싶지않은 영화라 엉터리 리뷰지만, 그래도 나누어 봅니다.

 

 

x. Gaspar Noé의 <LOVE>
(독일 트레일러: https://www.youtube.com/watch?v=PrgGTQNOB6Q)

며칠 전, 논란이 되고 있는 가스파 노에의 영화 <LOVE>를 보았다. 자랑할게 좀 있다면, 한국에서는 절대 상영될 수 없는 수준의 영화. 왜냐면 2시간 20분 내내 대부분이 섹스 씬인데, 실제 정사이며, 성기의 디테일이 굉장히 살아있다. 한국은 물론, 북미 정서로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운, 유럽에서나 이해가될 수준. 한국에서 개봉한다면 19금은 물론이거니와 모조리 삭제되어 1시간 정도 밖에 상영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독일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 처음으로 본 3D영화였는데, 빌어먹을 3D안경이 작아서 보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자막이 없는 독어 더빙이었는데, 섹스 씬이 하도 많아서일까, 아니면 대화가 쉬워서일까, 90퍼센트 이상 무리 없이 이해가 가능했다.

쓰리썸으로 시작하는 초반부의 섹스 씬들, 그리고 특히나 세 남녀의 혀가 닿는 씬은 굉장히 좋았는데, 뒤로 가면서 늘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갈수록 섹스 씬들이 지루해진다.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면서 내용 전개는 단조로워서 영상미와 음악에만 치중한.. 아쉬운 느낌.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ㅇㅇ화 섹스 씬들이 고루하므로 나는 섹스 씬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인데, LOVE의 초반부의 섹스 씬은 결코 상업 포르노처럼 같은 저렴한 느낌이 아니면서 동시에 포르노보다 훨씬 디테일있고, 자극적이다. 지금까지 본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섹스 씬이랄까. 헤도니스트에게 추천하는 영화.

며칠 전, 논란이 되고 있는 가스파 노에의 영화 <LOVE>를 보았다. 자랑할게 좀 있다면, 한국에서는 절대 상영될 수 없는 수준의 영화. 왜냐면 2시간 20분 내내 대부분이 섹스 씬인데, 실제 정사이며, 성기의 디테일이 굉장히 살아있다. 한국은 물론, 북미 정서로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운, 유럽에서나 이해가될 수준. 한국에서 개봉한다면 19금은 물론이거니와 모조리 삭제되어 1시간 정도 밖에 상영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독일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 처음으로 본 3D영화였는데, 빌어먹을 3D안경이 작아서 보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자막이 없는 독어 더빙이었는데, 섹스 씬이 하도 많아서일까, 아니면 대화가 쉬워서일까, 90퍼센트 이상 무리 없이 이해가 가능했다.

쓰리썸으로 시작하는 초반부의 섹스 씬들, 그리고 특히나 세 남녀의 혀가 닿는 씬은 굉장히 좋았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단조로운 전개의 느낌과 함께하는 섹스 씬들, 때문에 영상미와 음악이 이를 커버.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ㅇㅇ화 섹스 씬들이 고루하므로 나는 섹스 씬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인데, LOVE의 섹스 씬, 특히나 초반부의 섹스 씬은 상업 포르노의 저렴함은 찾아볼 수 없고, 동시에 포르노 보다 더 디테일하며, 자극적이다. 막판 전개의 지리멸렬함에 아쉽지만, 헤도니스트들에게 추천하는 영화.

확증편향, 다양성, 소수자, 시위, 좌파, 문화담론, 마이페스트

x. 확증편향

한국에서는 사람의 한 단면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어떤 면과 대치되면, 그 사람의 모든 면을 적대시한다. 갈등을 통해 서로 다름을 인식하고 공존의 방법을 찾기보다 파괴해버리는데 능하다. 누구나 작은 부조리를 갖을 수 있고, 그 부조리의 주체는 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부조리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다. 그러는 순간 자신 또한 부조리의 주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x. 한국과 같이 다양성이 없는 사회가 소수자를 대하는 일.

그러한 일은 집단주의 문화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일로는 가치비판을 하는 개인에 대한 집단의 인격살인이다. 이런 일들은 작은 사회일수록 더욱 심각해지는데, 운동가, 좌파, 혹은 진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는 더욱 작기 때문에 마이너 집단 안에서의 린치는 보다 강도가 높다. 집단 내의 공공 선을 반영하는 규율이 권력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그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비단 정치로 하여금 박근혜 대통령에게 성적인 모욕과 이쟈스민 의원에게 인종차별적 모욕을 쏟아내는 좌파 아재들 뿐만 아니라 바로 며칠 전의 메갤 내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다름을 인정하자고 수시로 말하는 좌파 커뮤니티들에서조차 수시로 행해지는 일이다.

한국사회와 같이 다양성이 없는 곳에서 마이너, 펑크로 살아가면, 외모, 취향, 정치성향은 물론 반집단주의적 삶의 태도 등의 이유로 하여금 집단주의의 폭력과 차별은 일상적으로 만나게 된다. 반면 독일에 와서 가장 편한 것은 교수라던가 관공서를 찾는다고해서 나의 정체성을 숨길 필요가 다는 것, 아니 심지어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에 대해 존중을 받기까지도.

x. 메갤의 성소수자 때리기.

짧게 잘라 이야기 하자면, 지금까지의 엉터리같은 일들을 차치하더라도 이번과 같은 메갤의 성소수자에 대한 조롱을 보면, 미국의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트랜스젠더들의 여자화장실 사용을 반대할 것이 뻔하다. 페미니즘이 80년대 들어 녹색운동, 성소수자운동과 함께 약자와 연대한 것을 모조리 부정하고, ‘권리투쟁’이 아닌 본인들의 ‘권력투쟁’이 되고 있다. 그것이 종전에 메갤에서 심심찮게 보였던, 남성페미니스트 부정, 남성혐오 등과 맥락을 같이한다.

x. 시위, 좌파 문화 담론.

며칠 전, 시위 문화를 꼬집는 목소리가 나왔다. 누구는 동의했고, 누구는 힐난하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투쟁방식이 경직되고, 오래된건 사실이다. 독일처럼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을 이야기 해보자하면, 독일 시위대가 브레히트 작사, 한스 아이슬러 노래의 ‘Der heimliche Aufmarsch’ 같은걸 부르지 않은지는 오래됐다. (가사및 비디오:http://goo.gl/KGaThQ)

지금 독일의 시위들은 투석전과 화염병도 등장하지만, 한편에서는 테크노, 힙합, 펑크, 포크 등의 음악이 울려퍼지며 행진하기도 한다. 반면에 한국의 좌파운동이 아직도 오래된 텍스트, 경직된 구호에 집착하는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오늘, ‘민중’이란 말이 딱딱하고, 후지게 들리는 것도, 우리에게는 민중 말고는 다른 이름으로 각자를 호명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철의 노동자, 민중의 노래, 비정규직철폐가, 농민가 등등을 좋아한다고 해서 지금 젊은이들이 ‘오직 민중가요’만을 시위에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의 취향과 관계 없이 후지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민중 부르짖으면서도 화염병이나 벽돌을 던지지 못하는데, 또 다시 독일을 이야기 해볼까하면, 종종 경찰차를 불태우기도하고, 2009년 등록금 투쟁에서는 25만명의 대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철도조차 점거를 했다. 노동절에는 으레 은행유리창도 까부수는데, 그러면서도 바로 근처에서는 펑크, 힙합 공연 등과 테크노 등이 펼쳐진다.

나는 사실 쥐벽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왜냐면, 쥐벽서가 G20에 대한 조롱을 담고는 있지만, 외모에 대한 비하가 예술로 둔갑되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노무현 시절의 반전 시위의 행진에서 나와 친구들은 스텐실을 하다 제지당했다. 처음에는 사복경찰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더 깜짝 놀란 것은 경찰이 아니라 시위대였다. 순간 욱했는데, 참았다. 그러다가 쥐벽서가 이슈화 되면서 한국의 좌파운동이 얼마나 문화담론과 거리가 먼지 알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자”고 한다. 민중의 노래를 부르면서. 대체 그 민중에는 내가 있을 수 없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에서 여러 시위를 보고, 또 참여하면서 생각을 달리갖게 되었다.

노동절 경찰 폭력에 반대하기 위해 시작된 베를린의 마이페스트(비디오:https://www.youtube.com/watch?v=SaXSJ6xk8Fc)는 공식적으론 십여개의 스테이지이지만, 주변의 운동 거점 지역들이 만드는 자발적인 스테이지까지 합하면 어림잡아 생각해봐도 40~ 50여개는 족히된다. 이런 스테이지들에서는 Fat Wreck Chords 같이 세계적인 레이블의 밴드들이나 디제이들이 와서 무료로 공연을 한다.

물론 놀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이페스트가 투쟁을 가볍게 만든다는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불과 1~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화염병과 투석전이 난무하고, 으레 은행 유리창이 파손되곤 한다. 바로 옆에서 테크노 파티가 벌어지면서, 또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기도 한다. (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I-2CPLZCxDo)

하지만, 마이페스트 이후, 경찰의 진압 방식이 언론에 뭇매를 맞아온게 사실이다. 이러한 문화 이벤트가 경찰폭력진압을 저지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라는건 베를린 시 전체가 증명한다.

10년 전쯤 되었을까, 이런 기획을 친구들과 하고 싶어 이야기중이었는데, 시위를 진중치 못하게 한다고 비난에 휩싸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서울에서 다시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있다.

마이페스트에 동기를 부여한 99년, Atari Teenage Riot이 99년 WTO반대 공연(https://www.youtube.com/watch?v=Y2NY5bGBFKg)을 한 것도 유명하다. 공연 중에 폭력적인 진압이 자행되었으며, 멤버 전원이 연행되었지만, 이후로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다며 언론의 뭇매를 맞고,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진압 방식으로 선회하게 된다. ATR은 이에 그치지 않고, 확장하여 1년에 한번씩 드레스덴에서 있는 네오나치 결집 데모 건너편에서 카운터 데모및 공연을 조직하기도 한다. 네오나치랑 안티파가 뒤엉켜 싸우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이 개입하는데, 결국 네오나치들의 행진을 저지하는데 성공해왔다.

작년 나도 참여했던 시위의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u8ZdYIEx5hs)에서 보이는 것처럼 80여명의 네오나치들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결집하는 것을 경찰이 막지 못했기 때문에 6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고, 영상에는 충돌하는 장면뿐이지만, 사실 이 날 나는 네오나치를 구경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안티파-아나키스트들이 주도해 디제잉 하는 차량들을 중심으로 수 천명의 시민들이 다양하고 폭넓게 참여한 무척 평화로운 카운터 데모였다. 이러한 하위문화들을 통해 수 만명이 모여 저항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젊은 청년 좌파 문화가 없다는 것이 상당히 안타깝다. 모든 주류문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좌파 청년들이 대체로 성상품화된 아이돌 음악을 듣는다는게 나로서는 실망이 크다. 또한 기성패션과 같은 주류문화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으면서 ‘반자본주의’ 같은 구호를 외치고, 다양성을 요구하는 것은 공허하게만 보인다.

노동당 당수 코빈이 당선 직후, 적기가를 불러도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영국엔 공산주의-, 아나키즘을 위시로한 펑크, 하드코어, 테크노 등의 하위문화가 넘치고 넘친다는 것 아닐까.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불과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직된 좌파운동을 한두번 경험한게 아니다. 한번은 The Explode의 곡이 Deadly Taekwondo Boy와 함께 plsong.com에 올랐을 때, 웹사이트 생긴 이래로 유래가 없을 정도의 시끌한 토론 게시판이 생기더니, 펑크음악이 너무 폭력적이라면서 결국 음악은 삭제 되었다. 이게 10년 전쯤 일이다.

하위문화를 위시로한 문화담론이 마치 어린 아이들의 놀이감 정도로 취급되는 것을 보면, 사실 그 문화담론이 없었으면, 브레히트도 없었고, 한스아이슬러도 없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좌파운동이 문화적으로 후지다는데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이건 내가 최도은의 곡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시위에서 전농아저씨들이랑 막걸리 마시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랑은 별개의 이야기다. 물론 지금은 별 미친놈들이 시위에서 술 마시지 말라며, 술병을 강제로 채가기도 하는데.. 그거 다 별개로 후지긴 진짜 후졌다. 명박 산성을 넘겠다는 사람들에게 “비폭력”을 외치면서, 멱살 잡고 강제로 끌어내리는 사람들이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람들이 외치는 다양성은 대체 무얼까?

영화감독, 윤성호가 그랬다. “이런 사람들이랑 어떻게 혁명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