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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 박’, ‘Senorita’ 논란을 둘러싸고, 엉터리 여성단체, 넷페미?!, 특히나 자기가 뭘 받아쓰는지도 모르는 멍텅구리 언론들을 보다 못해 바로 잡아야할 것들 중 한가지만 정리하겠다. (어차피 편집논지를 미리 정해놓고, 그 방향에 맞춰 레토릭만 정해주길 바라거나 메갤, 워마드, 페미당당, 여성신문 등에 대한 내 기사를 반려하는 매체들이 너무 많아 기고할 이유도 사실 모르겠다)
‘Miss’와 ‘Mrs’의 문제는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니라 ‘Sexism’의 문제다. ‘여성혐오’*는 법적 기준에 준해 제제가 가능한 것이고, ‘Sexism’은 우리가 ‘지양’해야할 표현으로 윤리적인 기준에 준한다. 또한 우리가 ‘지양’해야할 태도로 ‘Gender Role**’과 ‘Patriachy, 가부장제’와 같은 것들이 있다.
*여성혐오: Women hate, 또는 Misogyny로 사용되는데, 나는 Misogyny같은 단어가 본질을 순화하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하여 Women Hate의 표기를 지향한다.
**성역할: 성별이나 젠더에 따라 사회적으로 그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고정관념, 편견을 말한다.
여성혐오는 사회적 배제, 성차별, 적개심, 남성중심주의, 남성특권, 가부장제, 여성폄훼, 여성에 대한 폭력, 성적대상화 등을 폭넓게 말하며, 고의로 여성을 공격, 또는 폄하할 목적을 갖고 있다.
섹시즘은 영어권에서 ‘Gender discrimination’으로도 불리기도하며, 한국어로 성차별로 번역되지만, ‘Sex’와 ‘Gender’는 다른 뜻이며, ‘성차별’이란 번역어는 오역, 또는 본래의 말을 분명치 않게 만드는 번역어다. 하지만 번역어가 정확한 뜻을 전달할 수 없음이 분명함에도 섹시즘을 한국어로 번역을 수행할 단어가 아직 없다. 때문에 ‘성차별’이란 번역어보다는 대체할 번역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섹시즘’으로 표기함이 옳다.
섹시즘은 보통 고정관념과 전통적인 성역할을 말한다. 이를테면 여자니까 신체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육체노동 대신 가사노동을 전담해야한다거나 여자기 때문에 운전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는 등, 고의로 여성을 공격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편견은 여성이 남성과 같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활동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박탈한다. 때문에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스웨덴에서는 초등학교 교사들의 교육지침서에서 이렇게 기준을 정하고 있다.
“학교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기회를 갖도록 장려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 여성과 남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을 방해할 책임이 있다”
다시 논쟁으로 돌아오자면,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Miss 박’, ‘Senorita’는 여성혐오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섹시즘의 문제이다.
이를 두고 2009년 초, 유럽연합에서는 이러한 표현들이 편견을 만들어내므로 공식석상에서 금지하고, ‘성중립적인’ 언어를 지향하도록 법안(링크 참조)을 냈다. 물론 보수정당들에서는 성중립적인 표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영어의 침식’이라던가 ‘납세자의 세금 낭비’라 묘사했지만, 법안이 나온만큼 공식석상에서는 이에 따라야 한다. (물론 강제되어 처벌하는 법안은 아니다)
‘Miss 박’, ‘Senorita’의 문제는 여성혐오가 아님에도 여성과 관련된 모든 사안에 ‘혐오’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마치 청소년의 흡연을 마약범죄로 몰아가는 것처럼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또한 많은 이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신호등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신호위반이라고 하지, 교통범죄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여성단체들과 넷페미?!, 그리고 언론들이 이를 바로 잡아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혼란을 불식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이 ‘Gender Equality, 성평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함께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하길 바란다. 또한 법적으로 강제되진 않더라도 섹시즘, 젠더 롤과 같은 성적 편견들은 남녀 모두가 주체가 되는 성평등을 위해서 지양해야한다.
+ 제 담벼락 글은 ‘친구의 친구’까지만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공유하기를 하셔도 제 포스팅이 함께 공유되지 않습니다. 제 글을 공유하시려거든 귀찮더라도 전문을 복사해가세요. 출처를 밝히면 저에게 뭔가 좋을 것 같지만, 사실 제게 아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습니다. 때문에 밝히고 싶지 않다 싶으시면, 안 밝히고 공유하셔도 문제 없습니다.
++ 다짜고짜 한남충이라고 하시는 분이 있어서 잠깐 더 이어보겠습니다.
저는 베를린서 페미니즘 관련 포럼, 이벤트와 여성보호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를 드리면서 근거로 법적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기사를 줘도 글자를 못 읽으면 답이 없습니다.
나위님도 또 한국식 특수성을 인정하라며 60년 전, 2세대 페미니즘에서 등장한 성분리주의, 남성을 적으로 규정하는 극단주의 페미니즘을 가져오시나요?
맨스플레인이니 뭐니 하시기 전에 기본적인 정의정도는 알고 와서 이야기 하시죠. 그리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국제페미니즘포럼에 참석하셔서 직접 발제 하시죠. 왜 페이스북, 트위터의 한국어 사용자들끼리 몰려다니면서 개인들을 린치하시나요. 그거 집단주의 폭력이란거 아시나요?
“미소지니와 섹시즘 마음대로 정의하고 맨스플레인을 하는 어떤 전형적인 패턴의 글 잘 봤습니다…” 따위의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본인 주장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 주장함과 동시에 페미니즘 이론에서, 그리고 법률적으로 어떤 근거가 있는지를 말씀하셔야죠.
페미니즘의 이름을 참칭하면서 본인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페미니즘과 아무 하등관계가 없습니다. 적어도 기본적인 대화 방법은 아셨으면 좋겠는데.. 뭐, 본인께서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도 모르시는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합니다.
+++ 어떻게 Women hate/Misogyny, Sexism/Gender Discrimination, Sex/Gender 구분을 하나도 못 하고, 모든걸 ‘여성혐오’ 하나로 퉁치면서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까?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여성보호주의야말로 마초이즘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다는걸 알고 계세요? 페이스북에 “나 페미니스트야” 이 한마디 쓰고, 여성보호주의적 관점만 내비치면 아무나 다 페미니스트 된다고 생각하세요?
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힘들게 투쟁해 얻은 결과, 당신이 얼마든지 누려도 좋지만, 당신 외롭다고 다른 사람들이 힘들게 얻은 투쟁의 이름을 당신의 개인적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가져다 사용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강나위씨, 결국 절 차단했군요. 자신의 주장을 온전히 펼칠 자신도 없는 이런 멘탈로 무슨 여성혐오를 넘어서 대중운동을 하겠다는건지.. 서로 다른 의견을 들을 마음도 없이 어떻게 그 벽을 허문다고 합니까.. 안타깝습니다.
+ 별개로 비박계이더라도 박근혜 정권을 만드는데 주도하고, 기여한 새누리당 주요위원들은 사죄한다는데 그래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들의 정치생명은 여기서 끝나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생명을 끊는 칼날은 누군가 그들에게 겨눈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과거가 스스로에게 겨눈 것이다.
++
조금 쉬었다가 이제 다시 생각해봅니다. 저는 메갤 자체가 나쁜 집단이다 라고 규정하고 싶은게 아닙니다. 메갤 내의 모든 행동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때문에 오타쿠마냥 낄낄거리며 메갤/워마드의 잘못들을 수집하고 싶지도, 더 엄격한 잣대로 심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1. 남성에게 적대적인 페미나치 선언문이나 2. 반여성주의적인 주장, 그리고 지금과 같이 3. 상식 밖의 주장들에 대한 비판이 다른 집단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와 같이 꾸준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정주의로 특정그룹의 불관용적인 행동들을 용인하지 않고, 지금까지 자유와 평등에 대해 갖고 있던 우리의 관점이 최소한의 일관성을 잃지 않길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저 또한 변하며, 더 나은 것을 위해 언제든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한 이 세 문제들이 페미니즘의 가치와 희석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되고 혼란스럽게 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박근혜의 가치와 저의 가치는 극명히 대립되지만, 이들의 박근혜 지지를 할 권리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이들 스스로 박근혜가 자신들의 계급성과 정체성을 대변하고, 이에 부합한다고 생각되면 얼마든지 지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모든 행동에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페미니즘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너무나도 다릅니다.
”개인, 여성, 박근혜’의 권리를 위해 페미니즘의 연대’가 아닌 ‘페미니즘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를 한다’는 논리는 제게 다음과 같은 문제와 정답으로 보여 안타까울 뿐입니다.
Q. 한국인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
1. 코끼리를 토막내 냉장고에 넣는다.
2.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갈 때까지 굿을 한다.
3. 일본을 공격한다.
ㅡ 정답은 3.
+++ 저는 제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하기도 하고, 제가 생각하는 대중과 실제 대중이 맞는지 알고 싶어서 이곳 저곳에 익명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맹목적인 박사모가 있듯이.. 저속한 표현을 사용해 박사모를 비난하는 아재들도 있습니다.. 물론 두 부류다 안 마주치는게 정신건강에 이로운 것 같긴 합니다.
++++ 종종 아프신 분들이 열린 공간에서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아?”라 외치면서 여기 저기 머리를 쿵쿵거리고, 병을 깨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면 더 아파진다고 이야기 할 뿐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모든 아픈이들을 찾아다닐 수는 없죠.
종종 사람들이 내게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한다고 하는데, 나의 관점은 그다지 새로운 관점이 아니다. ‘배제의 정치’와 ‘방향 잃은 분노’를 통해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극한의 대립보다는 (서로 다른 주체가) 공동체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가치, 공동선을 향해 가야한다는 것뿐.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가 오갔던 몇 매체들이 생각난다. 구독자를 얻기 위함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메갤에 대한 비판적 논지가 곤란하다며, 보류나 거절했던 그 매체들. 해당 그 매체들의 논쟁적 소재를 다루는 방법은 언제나 ‘답정너’ 상태, 편집논지가 이미 정해져있고, 그 방향에 맞춰서 레토릭만 새로 정리해줄 기고자를 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런 편집 방식을 맞추어놓은 매체들의 관련 기사들은 끝까지 읽지 않아도 전체적인 기사의 구조가 보인다. 이를테면, 최근 이슈가 되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원인을 바라보기보다 어느 한편을 비난하고, 어느 한편의 손을 드는 식으로 접근해 한편에는 모멸감을, 한편에는 조롱의 당위성을 부여하는데 그친다. 결국 해당 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양측 이해당사자간 극한의 대립구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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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갤과 워마드를 비판하지 말라며, 옹호하던 ‘넷페미니스트’분들은 오늘 어디에 계실까. 워마드까진 아니어도 메갤 내에서 꽤나 네임드로 활동하며, 일종의 완장효과를 누리던 분들은 지금까지의 반여성주의적인 발언들과 본인 스스로의 헛발질들을 어떻게 회고 하실지. 그 분들은 지금까지 남녀대결구도가 아닌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가 모두 주체적인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투쟁해온 페미니즘 역사와 이론마저 부정하고, 마초이즘에 부역하는 여성보호주의를 내세웠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의견과 다르면, 악으로 규정하고 배제하고, 차단하고, 거부해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분들 역시도 한국사회의 보수성과 가부장제에 학습되어 보호주의에 부역하고 계시는 분들이면서도 그것들을 비판하고, 대중운동을 하겠다고 하고 있으셨다. 배제의 정치를 펼치면서 한국사회가 바뀌길 바라는 대중운동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지 생각해보셨을까.
본인들의 주장을 페미니즘 포럼, 학회에서 영어로 발제해달라 하면, 모두 한결같이 대답을 피하거나, 한국적 특수성이 있다며 논지를 돌리셨고, 대개는 불같이 화를 내며 도망가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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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Mr., answer the question.
A: Nah, I’m not gonna answer your question.
’cause you guys have already made up your minds.
I’m an expert in rejection. And I can see it on your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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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답정너’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처음 써봤습니다.
+ 저는 오히려 평화시위에 대한 강요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비폭력 방식만을 강요하는 주장들이 폭력적이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비폭력/직접투쟁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원래 비폭력/직접행동을 하는 활동가들도 폭력투쟁을 불사하겠다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끌어내리지 않습니다.
수 많은 비폭력 직접행동 활동가들이 본인들 스스로는 비폭력 투쟁을 하더라도 타인에게는 자신의 방법을 강요하기는 커녕, 연대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쿠르드 반군에 연대하는 유럽의 좌파들과 비폭력 활동가들을 보세요. 사파티스타의 무장봉기에 지원을 하는 수많은 비폭력 활동가들이 어떻게 연대를 하는지를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결말이 예상되는 물리적 충돌을 피해야하는 것이 맞겠지만, 투쟁 방식에 있어서는 아무도 그 방법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법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경찰이 법을 지키고 있지 않은데, 시위대가 굳이 경찰의 편의를 봐주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백만명이 무엇을 바꾸었는지 한번 보세요. 정부의 태도는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3000명이 화염병을 던지며 청와대로 진격했다고 가정해보세요. 폭력적인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권리의 주체가 될 수가 없고, 오로지 국민을 보호하고, 봉사할 의무만 있는 정부가 헌법을 유린하고, 불법적으로 사적이득을 취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나서서 이 사태를 해결하려하기는 커녕 증거를 인멸하고,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왜 법을 지켜야할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한국 국민은 그런 정부를 향해 저항권으로서 폭력투쟁도 불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정부를 세계 주요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2016년에 국민을 향해 총을 발포하고, 탱크를 서울 한복판에 배치할 수 없습니다.
헌법에 저항권은 명시 되어있지 않지만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같은 맥락에서 저항권이 인정 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위헌심판(97.9.25 97헌가4)에서 저항권을 상세히 규정한 바도 있습니다.
1. 침해의 중대성: 국가권력의 헌법의 개별조항이나 법률에 대한 단순한 위반이 아니라, 민주적, 법치국가적 기본질서나 기본권 체계를 전면 부인 내지 침해하는 경우에만 행사 가능하다.
2. 침해의 명백성: 국가권력의 불법이 객관적으로 명백해야 한다.
저항권이 아니라하더라도 모든 시민에게는 자신의 방법으로 투쟁할 권리가 있습니다. 주류집단이 소수집단의 행동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비폭력을 외치는 분들이 많은데, 어떻게 비폭력의 이름으로 다른 이의 투쟁을 폄훼하는지 모르겠군요.
2015년 프랑크푸르트의 ECB의 긴축안과 신청사 개관식에 맞춰 독일의 9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블록쿠피는 2001년 비폭력투쟁 노선을 뒤엎고, “폭력 없이는 답도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프랑크푸르트의 경찰서를 습격하고, 경찰차를 불태우며, 투석전을 벌였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평화행진도 이어졌죠. 당시에 보수 언론들은 ‘제도 안에서 의견을 조율해야한다’며, 시위대의 폭력성을 맹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슈피겔의 야곱 아우그슈타인은 이러한 논평을 남깁니다.
“시위대의 폭력은 만장일치로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는 체제의 폭력을 무시하고 있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위대의 폭력은 경멸하면서, 왜 우리는 체제의 폭력은 허용하는 것일까.”
+ 참고로 2001년 블록쿠피가 비폭력 노선을 선언했지만, 2007년 25만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등록금 반대’ 운동에서는 경찰차 전소, 투석전, 대학 총장실 점거는 물론 철도 점거까지 광범위하게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이외에도 노동절에는 투석전과 화염병들이 으레 등장했음에도 독일 경찰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집행을 해야하기 때문에 물리적 충돌을 되도록이면 피하고, 살수차를 제한적으로 사용했죠. ECB의 긴축안 때문에 작년 베를린의 도이치방크들이 공격을 받고, 결국 몇 지점을 폐지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도이치방크는 공격한 시위대에 유감을 표명하긴 했지만, 시위대를 발본색출해서 책임을 묻겠다는 식의 대처는 하지 않았습니다.
Last weekend, Police announced that the number of Demonstrators are only 45,000. But lots of Journals mentioned the number will be 300,000. So people pissed off that Policed announce small number everytime. This weekend, Police announced 450,000, but Journals mentioned over 1,000,000. Actually the number is not important anymore. But I guess more than 1,250,000 people are on the street, and blocked ‘Blue house’, the Head of State out. By the way, this Demonstration scale never happened in Korean history.
멍청이들아, 이번 대선 결과는 백인들의 인종차별주의적 투표가 아니라 경선에서 22개의 주에서 승리하고, 힐러리에게 대선 후보 자리를 내준 버니의 지지자들의 분노, 혹은 민주당 당원들의 배신이다.
힐러리가 아니라 버니였다면,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 ㅡ http://usuncut.com/politics/bernie-sanders-would-have-crushed-trump/
미 대선 결과 (선거인단, 전체 득표)
1992, 빌 클린턴 (370, 4490만표) / 조지 H.W 부시 (168, 3910만표)
1996, 빌 클린턴 (379, 4740만표) / 밥 돌 (159, 3919만표)
2000, 조지 W. 부시 (271, 5045만표) / 앨 고어 (266, 5099만표)
2004, 조지 W. 부시 (286, 6204만표) / 존 케리 (252, 5902만표)
2008, 버락 오바마 (365, 6945만표) / 존 맥케인 (173, 5993만표)
2012, 버락 오바마 (332, 6591만표) / 미트 롬니 (206, 6093만표)
2016, 도널드 트럼프 (306, 5968만표) / 힐러리 클린턴 (232, 5947만표)
– 힐ㄹ리의 패인이 과연 저학력/저소득층 백인일까? 손가락 열개만 가지고 셈해도 민주당에서 빠져나간 표가 얼마나 큰지 보인다. 그에 반해 공화당은 맨날 하던대로 해서 지고, 맨날 하던대로 해서 이겼다. ㅡ 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A%B5%AD_%EB%8C%80%ED%86%B5%EB%A0%B9_%EC%84%A0%EA%B1%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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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인여성 중 52%, 흑인여성 중 5%, 라틴여성 중 27퍼센트가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만약 이게 인종차별주의적 투표라면, 힐러리에게 몰표를 던진 유색인종 여성들은 대체 뭐란 말이지??! ㅡ https://mic.com/articles/158995/more-white-women-voted-for-donald-trump-than-for-hillary-clinton#.OJeCefl0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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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되는거다. 트럼프와의 싸움이 아니라, 외국인/여성/성소수자 혐오로 가득찬 트럼프 지지자들과의 싸움말이다. 앞으로의 문제는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트럼프가 아니라 트럼프의 지지자들인데도, 모든게 트럼프 때문이라는 말은 제발 그만. 트럼프가 당선되었다고해서 그들의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거나 합법적이지 않다. 트럼프가 당선 되었다고 미국이, 세계가 곧 망할 것처럼, 혹은 급변할 것처럼 말하는 것이야 말로 그들의 혐오발언과 폭력, 차별에 당위성을 주는 일.
+ 저는 지금 벌어지는 인종범죄/테러들이 평소보다 폭발한 감이 있겠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며칠, 몇주 뒤면, 경찰차 뒷자석에 앉아 수갑 차고 있겠죠.
때문에 지금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이 트럼프가 아니라 그 지지자들이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트럼프는 법을 준수할 의무와 그 도덕적 책임이 더 큰 자리에 서게 되고, 의회와 정보당국, 군사령부들이 그가 망나니 짓을 하지 못하도록 제어할 것이기 때문이죠. 한국에서 철군하겠다는 그의 막장연설도 의회의 비준과 군사령부의 동의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고, 보호무역에 관해서도 관세를 올릴 수는 있겠지만, 미국의 다국적기업 카르텔에 부딪혀 한계를 드러낼 겁니다.
아마도 지금 제일 힘든 상황을 겪는건 비자 문제로 유학생들일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경제, 군사적으로 동맹국이기 때문에 심각한 수준의 제제가 가해질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공화당내 반트럼프 기류 때문에라도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행사하기 위해 자신의 공약들을 하나 둘, 취소할 것도 예상되기 때문에 지금 가장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라 그의 지지자들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당선이 정말 이 세계의 종말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결코 아니라 생각한다. 미국은 단일중앙정부의 한국과 달리 각 50개의 주정부가 고유의 입법, 행정, 사법, 그리고 방위를 자치하는 연방국가다. 게다가 5년 단임제로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갖는 한국과 달리 4년 중임제이며, 국회는 상하원으로 이루어진 양원제. 따라서 미국은 대통령 단독으로 단기간내에 모든걸 뒤집을 수 없다. 얼마전 오바마 케어로 진통이 있었던 미국정부가 셧다운까지 갔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트럼프가 백악관서 왠만큼 과적과속차량으로 졸음운전하고 다녀도 어느정도의 안정장치는 작동할거라는걸 알 수 있다.
내가 아마 미국인이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는 아마도 트럼프를 선택했을 것 같다. 트럼프가 언급한 NAFTA, 한미FTA 재고, TPP반대와 같은 보호무역주의, 주한미군철군, 혹은 주둔유지비 100퍼센트 부담과 같은 비개입주의는 미국의 저소득층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아프간 철군을 내걸고 노벨평화상을 받자마자 3만명을 추가 파병했던 것과 달리 트럼프는 왜 그 곳에서 미군들이 피를 흘려야하는지를 역설하기도 했다. 또한 나는 최근 들어 한미 FTA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한미FTA는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을 뿐, 한국이 국제시장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한칠레FTA와 달리 한미FTA로 인해 한국이 손해보기는 커녕, 한국은 미국에 더 많은 수출을 하고 있었고, 미국은 한국으로의 수출이 현저히 줄었고, 트럼프가 이를 지적하며 한미FTA폐기, 혹은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인으로서의 트럼프 당선은 앞서 말한 방위, 무역, 단 두가지만 하더라도 재앙 수준에 가깝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버니 샌더스와 트럼프가 별 차이가 없다. 나도 버니를 좋아했지만, 한국 좌파들이 버니를 무슨 메시아처럼 생각하는데.. 버니나 트럼프나 한국에 이로울건 그다지 없다)
이번 선거의 문제는 민주당 내부에 있다. 트럼프의 인종차별, 성소수자/여성혐오나 부패는 말할 것도 없지만, 힐러리의 스캔들은 닉슨의 워터게이트를 뛰어넘는 극단을 보여주었다. 이를테면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갖고 있는 혐의처럼 힐러리도 국가1급기밀 누출 혐의가 있고(해결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국적 기업들과 정경유착 혐의가 있었으며, 민주당 내에에서 버니와의 경선에서의 부정한 개입 또한 있으며.. 잘 알려진 것처럼 힐러리의 부패 사실을 폭로한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샌지에게 드론을 띄울지 재고했다는 것. 이런데도 박근혜는 하야해야하지만, 힐러리는 당선되야만 한다고 악을 쓴다면, 이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않는 주장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미국 저소득층에게 트럼프는 힐러리보다 정직했기 때문이다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따르면, 힐러리는 IS를 지원한 혐의마저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미국인에게 철없고, 무례한 동네 부자형과 지역유지들과 뒷거래하는 정치마피아 힐러리와의 대결이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 버니의 지지자들은 힐러리의 부정경선, 국제자본과의 결탁및 부패를 두고, 맹비난을 했고,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선거인단 확보에 큰 격차로 졌으며, 그리고 양원중 한곳도 다수당을 얻지 못한 민주당은 앞선 언론들의 대선예측과 달리 결국 민주당 당원들에게서 마저 심판을 받은 셈이 된다.
재차 말하지만, 트럼프는 단번에 미국과 세계를 뒤집을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 민주당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트럼프를 뽑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저학력, 저소득층의 백인으로 폄훼할 것이 아니라 버니와 힐러리가 아닌 새로운 정치모델을 제시해 다음 대통령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한국이 야당들이 박근혜-최순실, 두 인물이 만들어낸 전대미문의 사태에서 얇팍한 계산을 하기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이 아닌 박근혜를 뽑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잊지말아야 한다는 것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런 일 가지고 이민을 고려한다는 사람들은 닥치고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 입 다물고 있으면, 그래도 이성적인 사람이라 믿게 되는데, 이들이 입만 열면 내 자신을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 이런 일 가지고 이민 간다는 새끼들 치고 이민 가서 제대로 정착하기는 커녕, 이민을 시도하는 사람도 거의 본 일이 없다.
++ 트럼프의 당선은 분명 우리에게 여러 환경적 요소들의 변화들을 통해서 간접적 영향을 줄 것이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 되었다고 내가 뜻하던 일을 그만 둘까? 네버.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그 상(민)놈이 싫어서라도 더 열심히 하면 열심히 했지, 그만 두는 일은 없을거다.
+++ 참 이상하다, 그치? 트럼프 같은 동네 양아치형도 싫지만, 조폭 끼고 완장질하는 옆집 누나도 싫고, 그렇다고 마음씨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나이 먹은 삼촌을 멋있다고 해줄 수는 없잖아.
++++ 공유는 글 전문을 복사해서 가져가시면 됩니다. 링크 때문에 전문이 같이 공유되지 않거든요. 일부러 그렇게 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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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는 권력자가 피권력자에게 동정이나 배려를 베풀기 위해 권력을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피권력자가 권력자로부터 권력을 쟁취하면서 성장해왔습니다.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던 동네 깡패나 왕이 갑자기 하느님께 계시받거나 약 쳐먹고, 갑자기 착하게 굴던게 아니었어요. 왕에게 화염병과 폭탄을 던지고, 죽창을 찌르고, 단두대로 끌고가 처형을 하면서 민주주의가 시작됐죠. 오늘 날의 화염병과 폭탄, 죽창, 단두대는 어떤 것인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할 일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 하이고 타임라인이 온통 초상집이네. 세상 안 끝났다고~~ 트럼프 4년 동안 할 수 있는거 얼마 없다고~~~~ 야이 명예 미국인들아~~~~~~~~~~~~~~~ 안 끝났다고~~~~~~~
— 사실 여러분들이 좌절하는 동안 독일의 신좌파들은 힐러리랑 트럼프를 동일시 봤습니다. 해당 매거진은 68혁명 이전, 그 주역 울리히 마인호프가 4년간 편집장으로 있었던 매거진이기도 합니다. 바더-마인호프 그룹이 쇠퇴함에 따라 70년대 말부터 신좌파 성향으로 바뀌어나갔죠. 물론 급진성은 아직도 어느정도..
(이런 매거진들이 제가 사는 집 화장실 마다 구비되어 있어서 변비 걸리기 딱 좋은..)
http://www.konkret-magazin.de/hefte/id-2016/heft-112016.html
—- AfD를 걱정하시는 분들, AfD와 트럼프는 차이가 좀 있습니다. AfD가 커지는건 경계해야하지만, 독일은 이미 차별금지법 같은 관련 법들이 엄격히 적용되고 있고, AfD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 엄격한 잣대로 쟤게 될거에요. NPD를 정당으로 인정해준 이유도 법의 영역으로 끌어내 처벌 가능한건 처벌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그래도 집권당은 CDU고, CDU도 출산률 저하 때문에 더 많은 이민자를 받으려고 하고 있고, 미국 대선 영향 별로 안 클거라 생각합니다.
브렉시트 지지하던 지역 주민 복지가 오히려 삭감될거라고 했는데, 지금은 국회비준 없으면 통과 안된다고 합니다.
결국 민주주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들이 있어서 극우정당이 조금 커지는 것보다 문제는 좌파정당들이 이에 대한 인식은 커녕 뭘 해야하는지 아무 것도 모른다는겁니다. 때문에 나는 극우들의 약진이 아니라 좌파들의 현실을 못 바라보기 때문에 다가오는 실패라고 봅니다.
극우정당, 정치인 찍는 사람들을 멍청이 취급해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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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기주의, 트럼프가 불러온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미국은 언제나 그런 국가였고, 지금은 그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세계인들은 언제나 미국을 천박한 자본주의, 이 국가는 돈 앞에서 양심도, 도덕도, 철학도 없다고 조롱을 해왔었죠. 그 조롱들이 합당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말이죠.
2. 말씀하신 ‘나와 내 가족 = 나랑 같은 인종 외는 다 무시하고, 내려다봐도 된다는 것’은 이기주의가 아니라 그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겁니다. homophobia와 같은 phobia의 기제를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딱히 위협이 되지도 않는데, 자신이 공격받고 있다고 생각해서 필요 이상으로 방어적으로 나오는거죠.
그런 면에서 저학력/저소득층 백인 사회는 지속적으로 사회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공포가 이렇게 표출된거라고 할 수 있죠. 지금 투표 통계중 확실한 것중 하나가 대도시일수록 민주당, 그 밖으로 공화당인데, 이것만 보더라도 힐러리가 업고 있는 언론들이 도시 노동자들과 함께 1차, 2차 산업노동자를 밖으로 배제 시켰는지를 알 수 있어요. 상대적으로 도시노동자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는데, 그에 상응하는 활동을 하기 어려운 1차, 2차 산업노동자들은 저항할 수 있는 힘도 없이 악에 연대하는 세력이라고 치부받게 되죠. 대도시, 도시노동자들이 소비할 것들을 제조하면서 그 제조과정이 올바르지 않다고 비난을 받는 노동자들이 느낄 분노가 올바르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지젝이 “정치적 올바름은 편견과 인종차별을 영속시키기 위한 장치다. 차별을 진정으로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자기훈육(self discipline)이다”가 이해 될 수 있습니다. http://qz.com/398723/slavoj-zizek-thinks-political-correctness-is-exactly-what-perpetuates-prejudice-and-racism/
3. 학교에서 그런 이메일을 보냈다는 것은 저는 옳은 판단 같지 않습니다. 학교야말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프랑스에 있었던 테러들을 보세요. 그들은 테러를 당하고도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도망칠 것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테러리스트들을 비판하고, 불인정하고, 길거리로 나와 추모를 했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것은 대중이 공포에 떨고, 이 공포에 프랑스 정부가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죠. 트럼프를 테러리스트라고 볼 수는 없지만, 트럼프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미국 의회정치가 끝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행위나 다름 없습니다. 오히려 의회에서든, 직장에서든, 거리에서든 어디에서나 그의 당선이 우리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우리의 의견을 관철시키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죠.
+ 저는 별개로 이번 선거가 주류에서 배제된 자들의 분노의 심판이었다고 생각해요. 저학력/저소득층을 비난해서는 이 문제를 아무 것도 풀 수 없습니다. 그들이 왜 이런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때부터 진정한 재앙이 시작되는 것이죠.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트럼프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는데, 폴 그루그먼을 비롯해서 민주당 인사들, 언론들을 보니까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저학력/저소득층을 비난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유아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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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의 범죄 사실들을 이해 못하는 분들이 있어서 링크 하나 할게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타당치 않은 전쟁을 일으킨 그 범죄사실 근거들은 모두 힐러리 이메일에서 밝혀진 것들입니다.
이 사람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인터뷰를 꼭 보길 바란다. 이 사람이 무엇을 보고 느꼈을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한나라당에서 박근혜를 보좌하면서 봐온 세계는 아마 최근 개봉된 영화 <아수라>와 같은 살아있는 지옥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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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에 대한 폭로로 신상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전여옥,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같은 일을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후회하지 않고 다시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전여옥이 언급한 몇가지들. 최순실, 친박, 지하정치, 위안부 문제, 대북-통일관, 국가관, 대통령관, 언론, 종편에 패널로 참석하는 지식인보다 상식을 믿을 것, 정치인에 대해서 엄격해야할 것, 금수저들이 이제 국회의원을 하는 세습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야해야하는 이유, 야당이 아니라 박근혜를 찍을 수 밖에 없었던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가 누차 강조하는 이 나라의 아이들과 세월호.
또한 박종진이 여러차례 ‘사람들이 원하면 정치하겠냐’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지는데, 자신은 할 수 있는걸 다했고, 기력도 없고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며, 한 아이의 엄마로 살고 싶다고 한다. 그것도 전여옥이 한나라당으로부터 버림 받으면서 자신의 아이가 정상적인 학업은 커녕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무너졌고, 그 아이의 꿈이 이제는 직업교육을 받으며, 카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꿈인 아이의 엄마. 이전의 정치적 꿈들이 탐욕에 가득한 자들에 의해 스러졌지만, 그 꿈만은 꼭 현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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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벌어지는 미증유의 사태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서 지키고 있던 최소한의 근대성조차 무너져버렸다는 것이며, 대한민국 헌법이 계승하고 있는 임시정부-의회정치, 그 이전의 국가인 대한제국-전제군주제 시대로 회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 대한제국이 성립까지 독립협회와 수구파는 정부 형태 문제로 갈등하였는데, 독립협회는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데 수구파는 전제군주제를 주장했다. 독립협회는 민중 대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어 백성의 참정권을 주장했고 국회의 설치로 국민 대표자를 뽑자고 요구했으나 수구파와 위정척사파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참정권 주장과 국회 설치 주장을 반역으로 규정했다. 독립협회가 입헌군주제를 계속 추진하여 1898년(광무 2년) 11월 중추원 관제 개편을 공포하자 수구파는 이에 익명서 사건을 명분 삼아 경무청과 친위대를 동원해 독립협회 간부들을 체포하고 만민공동회를 탄압하였으며 조병식을 중심으로 수구파 행정부를 수립. 이에 독립협회 절파(折破)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 판단한 일본이 수구파 행정부에 가담하여 독립협회의 운동을 탄압하게끔 권고, 고종이 이를 받아들여 곧이어 보부상들이 주축이 된 단체인 황국협회는 만민공동회를 강제로 해산, 독립협회는 1898년(광무 2년) 12월 해산되고 만민공동회도 1899년 12월 이후 불법화되었다. ㅡ 권력을 민중과 나누지 않고, 독점하려다 나라를 팔아먹은 고종)
모 페미니즘 페이지 관리자가 성노동자 전체를 피해자로 약자 프레임화 시키기에 이 세계에는 엄연히 자발적인 성노동자와 성산업노동자조합들이 있고, 베를린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하는 포르노 영화제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다. 때문에 성노동자 전부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이 부당하다 항의하였으나 페이지 관리자는 성노동자들의 의사와 관계 없이 모두 피해자로 규정하고, 동정하고, 죄의식을 강요하며, 정상적인 윤리 속에서 직업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모욕및 폄훼, 낙인찍기를 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인간의 기본권인 자기성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였는데도 ‘구조적 폭력’이라며 성에 관련된 모든 것을 일반화 시키고 모두 피해자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자발적으로 성노동을 택한 노동자들의 권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주장이다.
독일은 성노동을 인정하고, 국가에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그들의 권리를 지키려고 하고 있으며, 좌파당을 제외한 SPD, 해적당, 녹색당와 같은 좌파정당 등은 성노동을 인정하고, 성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위원회를 만들어 연대투쟁을 하고 있으며, 독일의 안티파도 이들에 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다는 몇 단체들이 실제 고의로 통계를 누락및 편집하거나, 성노동자의 요구를 편향적으로 다루어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을 도출시켜놓고, 이후에 과정을 짜맞추는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민주주의, 인권을 이야기 한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뭐, 최순실을 옹위하면서 민주주의를 말하는 천하의
개x년놈새끼들이 청와대와 국회에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슈피겔이 왜곡보도한 사건인데, 결론을 도출해놓고 과정과 통계를 짜맞춰가는 이 기사의 여러 심각한 문제들 속에서 믿기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바로 슈피겔이 성노동자이자 성노동자 권리 활동가인 카르멘을 인터뷰하면서 인터뷰이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을 편향적으로 편집해 보도하고, 카르멘이 밝히길 거부했던 사적인 영역들을 부정적으로 드러냈다.
“독일판 슈피겔에는 베를린 출신의 성노동자 카르멘의 프로필도 실려 있다. 카르멘은 독일 해적당 소속의 성노동자 권리 활동가인 동시에 성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카르멘은 슈피겔 지의 기자와 인터뷰하기 전 나누었던 이메일을 인용하며 반박문을 내놓았다. 카르멘에 의하면 슈피겔에 실린 프로필에서는 사전에 동의한 바와 달리 그녀의 “성매매 정책, 성노동자 권리운동, 성노동자 차별에 대한 생각” 등의 주제들을 주변적으로만 다루고 있었다. 카르멘이 인터뷰에 동의한 것은 “성매매에 대한 편견 아닌 논의를 시작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이 직업에 대한 통찰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으나, 슈피겔에 실린 프로필의 80퍼센트는 카르멘의 외모와 그녀의 서비스 웹사이트에 대한 정형화된 묘사만을 다루었다.”
번역 기사 전문을 읽어보다 보면 이런 주장을 통해 성노동자의 권리를 묵살하는 단체들과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도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이들을 페미니스트라거나 권리활동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페미니즘을 떠나 한 개인의 권리, 자기성결정권을 자신들의 성적기호대로 강탈하고 있다. 타인의 기본권을 강탈하는 동시에 여성권리를 위한다는 그들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이렇게 타인의 권리를 부정하는 태도들은 어떤 단체들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좌파 운동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데, 주로 ‘약자화’, ‘동정하기’, ‘죄의식 강요’, ‘비정상적이라며 존재를 부정’, ‘낙인찍기’ 같은 방법들을 통해 당사자들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있다.
다시 문제의 페이지 문제로 넘어와서 이야기 하자면, 대개 이런 관점들은 이미 사장되거나 폐기된 1950~ 60년대의 2세대 페미니즘에서 극단적인 소규모 그룹들의 텍스트가 성엄숙주의와 보수주의를 만나면서 발생한다. 또한 이 관점들은 마초이즘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는데, 이들은 ‘여성의 약자화’ 시켜 ‘여성보호주의’에 입각해 프레임을 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보호주의에 대해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입법심의관’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 보호에 대한 사고는 기실 헌법으로부터 출발한다. 1987년 헌법은 한편으로 양성평등을 이야기하면서도 여성 보호도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주의 시각은 2008년 현재 분화된 여성의 모습과 충돌하면서 혼란만을 야기시키고 있다.
해부학적 성차는 모성 기능이나 근육의 힘을 사용해야 하는 특별한 상황에서만 차이를 드러낼 뿐이며, 사회계층적으로도 여성들의 분리가 가시화되고 있고, 이에 따라 여성 집단은 정치적으로도 분화하고 있다. 때문에 헌법적 여성 보호론에 전제된 단일한 상황에 놓인 ‘여성’은 없으며, 이 단일한 여성에 대한 보호 역시 매우 불분명한 규범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여성정책의 내용이 여성 보호를 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 성평등을 통합시키고자 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여성 보호주의’ 시각의 정책지원에 길들어 있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모순이자 도전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ㅡ 차인순, <여성정책 정체성을 되묻는다>,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36028
한국 사회는 약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대개 고개를 끄덕이는 편이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 문제를 두고, 극단적인 대립을 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젠더에 관한 사회적 인식의 정체’로부터 시작된다.
오늘 한국 여성의 위치는 81년 정무장관(제2)실(현 여성가족부), 83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여성의전화, 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와 한국여성민우회, 88년 여성신문, 99년 한국여성재단 등이 여성을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골짜로 보수주의와 결탁한 2세대의 ‘반포르노 페미니즘’ 패러다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보호주의적 시각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젠더에 대한 인식을 가져오지 못했고, 때문에 실질적 평등의 보장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성평등 담론에 ‘역차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위시로 ‘남녀대결구도’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서구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방아쇠가 된 3세대 페미니즘을 필두로 성에서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을 주체로 하는 패러다임으로 발전했다)
한국은 지난 2015년 12월 22일을 기해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을 골짜로 하여 여성보호주의적인 시각을 벗어나는 <양성평등기본법>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 법은 대한민국헌법에서 보장하고자 하는 양성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젠더에 대한 인식을 가져올 것을 기대하고 있으나, 실제 효력을 갖추는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전반적인 사회적 교육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법은 충분히 논의가 되지 않고, 만들어져 논란이 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자기성결정권이라는 기본권을 통해 성노동이나 성적기호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피해자’라는 단어로 함축정의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을 ‘약자화 시키기’, ‘피해자로 동정하기’, ‘죄의식을 강요하기’, ‘정상적인 윤리의 직업이 아니라며 존재를 부정하기’, ‘낙인찍기’ 같은 방법들을 통해 당사자들에게 수치심을 느끼는 것들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토로하고자 했던 말이 생각보다 길어졌기 때문에 여기서 끝내겠다.
모두의 말이 맞다. 페미니즘에는 여러 결의 운동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영화의 제목처럼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는 마라. 우리 누구에게도 어떤 성적 기호가 더 옳은 것인지 판결을 내릴 자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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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카인 화장실들 중 한 소변기 옆, 매주 일요일 남자의 소변을 맞기위해 슬픈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아있는 남자친구가 생각난다. 우리는 오랜 기간동안 얼굴을 마주하였지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새부턴가 서로에게 미소지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나는 소변에는 성적충동이나 취미가 없어 다신 키스하는 일은 없을테지만, 나는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그 친구가 좋다.
+ 저는 메갤러, 워마드, 자유주의 페이지 등으로부터 신상털이를 당하다 지쳐 이러한 포스팅을 할 때에 링크를 꼭 삽입합니다. 그러면 공유하셔도 포스팅 본문은 제외하고, 링크만 옮겨가게 되지요. 공유를 하고 싶으신 분들은 귀찮더라도 글 본문을 복사해서 붙여넣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