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상 충돌’ 한국 – 미국 관점에서 1992 로스 앤젤레스 폭동

https://www.youtube.com/watch?v=_FkZEStvIEo&feature=youtu.be

<Clash of COLORs – LA RIOTS OF 1992> speak and subtitle – korean / english

 

 

I recommend this documentary, if you interesting about LA RIOTS of 1992 between korean american and black american. Also this docu shown us few things.
1. Power battle between police and city government.
2. What yellow journalism did in that time.
3. Between Korean american and Black american, there was no racial hate.
4. What could be happen when government and police are failed?
 

13:35 ㅡ Leo Estrada as Demographer said: “It’s also important to realize, that koreans coming from Korea don’t think it themselves at minorities. Really grown up all their lives in the as part of a majority so the topic the other concept is any even sensible. When come United States you learn after a while that there’s with majority whose minority groups people color committees a color ethnic racial categories. The Koreans were just koreans they didn’t see themselves as part of that other larger group both minorities”

 

Indeed, I feel. Very important point of most Korean mentality. They never thought about living multiethnic society in their life. They learned about racial discrimination and multiethnic society from conservative public education. So when Koreans did racial discrimination, most of them can’t recognize. You know that some hollywood movies exaggerating sensational presentation and taking suggestive remarks for develop a dramatic scene. But part of Koreans learned about racial discrimination like an amusement from hollywood movies.
How happened like this in South Korea, NOT! North Korea? Actually, most Koreans couldn’t travel to another country before 1989. South Korean government made a level for a law as ‘Overseas country travel Liberalization Law’ from 1981. Then 1989, that law passed totally for all people. But still poor people (include most young generation) can’t dream a travel oversea country.
Who could able to travel to another country before 1989?
There is 3 standards for qualification.
1. Workers (Their bank account had under control by South Korean government.
2. People related their family in another country.
3. Only middle upper or upper class and high public official could have their private travel.
Because of how abled to all this all happened, that korea was under military dictatorship very long time.

 

만약 한국계 미국인과 아프리칸 미국인 사이에 벌어졌던 1992년 LA 폭동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추천한다. 또한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에게 몇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 경찰과 시 정부의 권력다툼.
둘째, 돈에 눈이 멀어 사실을 왜곡하고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은 언론들.
셋째, 한국계 미국인과 아프리칸 미국인 사이에는 인종 혐오가 없었다는 것.
넷째, 정부와 경찰이 좆같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13분 35초 ㅡ 인구통계학자, 리오 에스트라다가 말하길: “한국 이민자들 스스로가 자신들 스스로 소수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시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봤을 뿐 자신들이 소수민족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대다수의 일부로 살아왔기 때문에 소수라는 그 개념조차 없습니다.”

많은 한국인에게 해당되는 중요한 이야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다인종 사회에서 사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러한 한국 사람들은 인종차별과 다인종 사회에 대해 배운것은 보수적인 성향의 공교육이 전부였다. 그래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하였더라도, 대다수의 그들은 그것을 인지할 수 없다. 모두 알겠지만, 몇몇 할리우드 영화들은 극적인 전개를 위하여 과장해 선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외설적인 말들을 사용한다. 하지만, 어떤 한국 사람들은 그 할리우드 영화들로부터 인종차별에 대해 오락처럼 체득한다.
어떻게 북한도 아니고 남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사실은 1989년까지 거의 모든 한국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할 수 없었다. 한국정부는 1981년부터 단계적으로 ‘해외여행자유화’ 법을 시작했고, 1989년에 이르러서야 모든 사람을 위한 법이 완전히 제정되었다.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을 포함한)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해외여행을 꿈도 꿀 수 없다.
그럼 1989년 이전에는 누가 여행할 수 있었단 말인가?
여행이 가능했던 사람들은 오로지 다음과 같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노동자들 (물론 그들의 은행 계좌는 한국 정부 관리 하에 있었다.
둘째, 외국에 가족이 거주하는 사람.
셋째, 적어도 중상위계급이나 상류층 그리고 고위공직자.
이러한 일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이 수 십년간 군사독재자의 밑에 있었기 때문이다.

외화, 데이빗 린치의 ‘트윈 픽스’ 한국 방영을 둘러싸고

<트윈 픽스, Twin Peaks> 관련 정보를 찾다가 재미있는 정보를 발견했다. 트윈 픽스가 한국으로 수입되 방영되기 전에는 한겨례, 경향이 왜 트윈 픽스 같은 예술 작품을 방영하지 않냐며 프로그램 편성을 비판했고, KBS2에 의해 트윈 픽스가 방영되자 한겨례, 경향 신문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간통, 친족살해, 근친상간 등을 소재로한 트윈 픽스는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비판을 했었다. 반면 매일 경제와 동아일보 등만이 드디어 미국의 젊은 영화 감독 데이빗 린치의 화제작 트윈 픽스가 방영된다며 기사를 써내렸다는 사실. 빨갱이는 이래서 안된다. 홍대 학생회장이었던 한아름이도 지금쯤이면 망가졌겠지?

 

ㅡ 2012년 8월 1일

상영회 리뷰: Against Me 와 Party Weirdo 에 관한 다큐 2편

어제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하우스 프로젝트 Scherer8라는 곳에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다. 그동안 다른 독일 친구들이 이 곳에 꼭 가보라고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별로 내키지 않아서 꺼리고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아니 이게 대체 뭐지! 들어서자마자 뭔가 아늑하고 가족 같은 느낌. 이 곳 친구들은 다큐 상영회가 끝나고 먼저 다가와서 친숙하게 말을 걸어주었고, 대화들도 재미있었다. 술을 더 마셔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3차 연립 방정식으로 계산하기도 했는데, 나는 독일어도 버거운데다가 수학을 그다지 잘 하지 못하므로 지켜보기만 했다.
어제 두 개의 다큐를 보았다. 하나는 Aganst Me!가 이미 성공 가도를 달리려고 할 때의 2004년 투어 다큐(Against Me! – We’re Never Going Home / http://www.youtube.com/watch?v=WXyi1QkmZY8). 이 다큐는 Against Me!라는 아나코 포크 펑크 밴드가 Fat Wreck Chords에 사인함과 동시에 얼마나 스타덤에 오르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이 다큐는 그걸 의도한게 아니었지만, 투어 중간 뉴욕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여자들이 다짜고짜 Against Me!에게 키스를 해달라고 조르고, 그걸 거절하자. 그저 키스만 해준다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분들이 그런 것들을 잘 보여준다. 지금의 나는 Against Me!에게 정이 좀 떨어져버렸다. 그들이 단지 돈을 벌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튜브를 뒤져보니 이 다큐가 4파트로 나뉘어져 업로드 되어있다. 그런데 시1발 첫번째 파트는 독일의 저작권 단체 GEMA가 블록 시켜버렸네? 하지만 독일에 거주하지 않는 대원들은 문제 없이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자막은 없지만, 못 알아먹을 정도의 영어 구사는 나오지 않는다. 보면서 그냥 주변 인물들의 Against Me!에 대한 인터뷰는 너무 똥1꼬를 잘 빨아서 민망한 것들이 좀 느껴질지 모른다.
그리고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밴드 Party Weirdo가 폴란드-리투아니아 투어에 대한 다큐(http://www.youtube.com/watch?v=mpqA9UJH-Cs)를 봤다. 처음에 아일랜드 억양이 좀 섞인 나래이션이 폴란드 말인줄 알았다. 뭐, 적응을 하니 그런데로 볼만.. 이 밴드는 80년대 식 Darkwave와 Postpunk가 적당히 섞인 음악이었는데, 공연 중간 중간 자신들의 ‘젖가슴’과 ‘보1지’를 가리키는 것이 뭔가를 풍자하는 듯 했다. 가사는 도무지 들을 수가 없었지만, 그 퍼포먼스가 이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고는 표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큐를 통해 동의할 것이다. 유튜브에는 트레일러만 있어서 뭔가 좀 아쉽다는 것이 흠인데..
아무튼 이 곳에 이제 자주 갈 것 같은 예감. ‘사랑스러운 분노’가 애칭인 여자 사람을 만나서가 아니라, 마르쿠스, 토스텐을 비롯한 이 곳에 거주하는 친구들 덕분에.

영화 단평: The Party

https://www.youtube.com/watch?v=PfWvWRqrAig

68년 미국서 개봉한 영화 <The Party>를 봤다. 음악이 무려 Henry Mancini.. 여기서 대원들은 어느정도 감을 잡았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보면서 영화 <Borat>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심 추천 영자막이라는게 아쉬운데 그다지 어려운 영어는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이 미국 주류 영화계 파티에 초대 받은 인도 출신 단역 배우거든. 보면서 보랏과는 좀 다른 쫄깃한 느낌을 받았음. 영화 개봉 당시 미국 분위기 때문인지 (좀 개념 없지만 존1나 긍정 마인드의) 히피가 된 상류층의 자식들이 후반부에서 열을 올렸다. 전형적인 ‘러브 인 코메디’ 룰도 따라 주인공은 여자도 얻고 아무 책임도 안지는 부분은 좀 안습.. 뭐 시대가 시대니까..

 

한글 자막을 만들고 싶은데, 시간이 따라주질 않네.

Concert Review: Broken Bones

친구 밴드 보러 왔다가 브로큰 본스를 보고 있다. 아니 실은 지금 어제 마신 술똥을 싸며, 브로큰 본스 라이브를 듣고 있다. 영국에서의 브로큰 본스를 헐리우드 영화배우로 치면 호아킨 피닉스급은 될거다. 십대 때 막연히 좋아해 듣던 브로큰 본스…. 아.. 술똥이 내 인생을 방해하는구나. 이런 개똥 같은 일이…

ㅡ 2013년 5월 2일

운동 소개: Fuck For Forest

Fuck For Forest 라는 자연주의 아나키즘 운동이 베를린을 시작으로 유럽과 남미로 퍼져가고 있는데, 섹스를 통해 자연운동을 하자는 그룹임. 2004년 베를린 아나키스트 정기 회의에서 이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나체로 발표를 해서 섹시즘이 아니냐며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는데 사태는 진정되고, 계속해서 섹스 이벤트를 만들어서 기부 받은 돈으로 여러 에코 마을 설립에 지원했다고 함. 한번은 베를린 동물원에 갇혀 있는 북극곰을 해방시키자며 베를리날레(베를린 영화제)에서 나체 시위및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는데 이를 쫒아내려던 베를리날레 측에서 경찰을 불렀고, 연행 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무슨 퍼포먼스였는지 설명하자 바로 풀려나면서 계속해서 공공장소의 나체 시위및 퍼포먼스를 할 수 있었다고 함. 나도 읽어 보는 중인데, 영상과 활동가들 사진도 있음. 회원 가입을 하면 섹스 영상들과 사진들을 더 볼 수 있다는데, 그냥 나는 12유로를 아끼려 합니다.

Concert Review: Cress

 

나 어제 cress 봤당ㅠ 할아버지들이 나이 들어 가지고 무릎이 아파가 무대에 혼자 올라가지도 못하고, 드럼도 없어 컴퓨터로 찍어 왔는데, 첫 곡 시작할 때 공연장이 가득 찬 것과 달리 다들 놀래서 “헐 cress 이리 늙었나?” 했거든. 근데 음악 시작 되고서 금새 애들이 cress의 가사를 따라 부르며 난리였다. 나는 몸이 아파서 공연장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cress만 보고 나와서 보컬이랑 이야기 함. 옆에 새멤버 소개시켜주며 내게 와줘서 고맙다고 함. cress.. 아는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crass와 비견 되기도 하는 아나키스트들로서 백인들의 문명이 다른 문화들을 파괴했으며, 우리 인간들이 지구를 겁탈하고, 진보라는 이름으로 문화 유산을 파괴하며, 마약과 술에 의존하고, 환상에 젖어 총기와 같은 폭력을 옹호하고, 차별을 용인하고 있다고 말하는 밴드임.. cress는 원래부터 인터넷 상에 홈페이지도 없고, 사진도 잘 안 찍는 밴드라… 직접 만나 이야기 했던게 더 특별했음…

 

ㅡ 2013년 9월 13일

영화 단평: Herr Lehmann

 

아주 짧은 리뷰: Herr Lehmann

 

89년 책 원작. 독일 통일 전후로 독일의 예술 운동이 큰 변화를 겪었는데, 베를린의 하위 문화와 예술 운동의 방점이 되는 영화이다. 서울로 치면 90년 대와 2k 사이의 마포구, 80년대의 종로 쯤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지역에서 촬영되었다. 거의 모든 삶들과 예술들은 가난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스스로 위로하고, 자위하며 사는 데는 별 의미가 없다. 아무도 너의 빈곤한 가슴과 주머니 그리고 세계를 바꾸어주지 않을 것이다. 네가 해야하는 일, 그러나 네가 해야만 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마라. 그 사람이 네 일을 대신 하면, 네가 편하고 다른 사람이 힘들거라고? 아니, 네가 할 일을 다른 사람이 하게 되면, 너는 할 일이 잃게되고, 다시 방황하게 될테니까.

 

 

이 영화 꼭 번역해서 공유하겠다.

지나간 하우스 파티 알림

2013년 12월 6일, 금요일에 우리 Bödi9 에서 하우스 파티한다.

 

초대 받은 인원만 올 수 있기 때문에 Stressfaktor 에는 공개하지 않는 비공개 파티. 이유는 마지막 하우스 파티를 했을 때 Stressfaktor에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말도 안 되는 숫자의 인원이 하우스를 방문에 집의 복도는 물론, 계단에까지 쪼그려 앉아 술 마시고, 춤추며, ㅍㅍㅅㅅ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심각한 수준의 소음에 경찰이 여러번 출동했으나 어떻게 막을 수 없었다고. 더구나 약물을 사랑하시는 몇 분들이 문제가 되어 이번 하우스 파티에서는 하드드럭은 강력히 금지된다. 물론 이러한 공지가 없어도 Bödi9의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주사가 발견되는 것을 우리 모두 반대하고 있다. 약물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다른 스쾃 네트워크 등을 통해 방문하는 우리 게스트들 중에서는 5세 가량의 귀여운 아기들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강아지나 고양이의 경우에도 예방 접종을 하지 않았을 경우, 출입이 금지 되기도 한다. 이 밖에 인종차별, 망명자는 물론이거니와 더이상의 교제를 중단하고 싶어하는 남녀, 그리고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대상들은 특별히 하우스 거주자 네트워크를 통해 출입 금지 리스트를 갖고 있다. 하우스 출입문 비밀번호는 지난 몇 달전 게스트들로 불거진 문제 이후, 하우스를 자주 찾는 친구들에게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

 

아무튼 하우스에서는 펑크, 아일리쉬, 아방가르드, 포크 등의 공연과 2 스테이지로 나뉘어 drum n bass, psy/goa, digital hardcore 등의 테크노 파티, chill out room에서는 말 그대로 chill out 디제잉과 어두운 조명 등이 준비 되고, 판토마임 공연, VOKÜ, lounge 음악과 술 마시는 곳, 펑크/하드코어 음악이 들려지는 바 등이 열릴 계획이고, 이번에는 특별히 Dunkel Raum, Dark Room을 만들어 ㅍㅍㅅㅅ할 수 있는 곳까지 준비한다는 예정이다. 당연히 “콘돔은 개인이 알아서 구비, 그럴 능력이 안되면 하지마” 라는 모토. 나는 이 날 베간 버거를 만든다. 도난 사고에 대비해 방들은 따로 격리 시키는 형태로.

 

ㅡ 1년에 단 한번 있는 2013년 파티에 대한 소개글이었습니다. 2014년 파티는 며칠 뒤에 정해질 것 같습니다.

Party Review: Antifa techno-party, very underground scene

몇 주전 동베를린 외곽 고속국도 근처 숲 속 폐공장에서 있었던 공연 이후에 어제 또 다른 파티에 다녀왔다.

 

개인적으로는 베를린에서의 첫 psy/goa 파티였는데, 밤 12시에 출발해 북베를린 외곽지역 역에서 내려 국도를 따라 30분 정도 걸어 숲 속에 있던 공동체/클럽. 깜짝 놀란 것이 정말 아무 것도 없이 가로등만 덩그러니 있는 깡촌 같은 곳에 밤 1시에 수 백명이 걷고 걸어 도착한 곳이라는 것과 이 곳에 들어가니 정말 말도 안되는 규모의 클럽이 존재했고, 어림잡아 200명~ 300명쯤 되는 인원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안티파/아나키스트들이 공유하는 커뮤니티이고, 안에서는 두 개의 커다란 스테이지, 바, 옷 맡기는 곳, 대형 난로 오븐 등이 있었다. 입장료는 7유로로 나에겐 꽤나 비싼 편이었지만, 사실 베를린에서 보통 클럽 입장료가 10유로~ 20유로 사이기 때문에 그리 비싼 편이 아니었고, 나는 하우스 친구들과 같이 갔는데 한 친구가 우리 모두 게스트로 넣어주었기 때문에 좋았다.

 

그리고 안에는 베간들이 기부금을 통해 간단히 식사 할 수 있는 빵과 과일, 야채, 페이스트 등이 있었고, psy/goa 파티 또한 뜨거웠다. 그냥 이런 말도 안되는 곳에 이런게 있다는게 신기할 뿐이었고, 이 곳에 있던 다른 독일 애들도 어떻게 여기 왔냐며 다들 신기해했다.

 

아, 크러스트들도 몇 보였는데 아무래도 psy/goa 파티다 보니까 자신감 넘치는 여성분들께서 비키니를 입고 춤을 추거나, 서로를 쭉쭉 빨고, 핥으며, 부비는 광경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남ㅂㄹㅇㅇ/독일 차도녀ㅂㅂ 커플 친구가 있는데, 이 ㅂㄹㅇㅇ이 다른 아일랜드 출신 여성을 만나 정신줄을 놓고, 둘이 사라져서 항상 차가운 도시여자 스타일을 유지하고 술을 잘 마시지 않던 여성 동무 ㅂㅂ가 술에 잔뜩 취해 나를 끌어안고, “아까 ㅂㄹㅇㅇ이 아까 다른 아일랜드 여자를 만났다며, 반가워서 이야기 좀 한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 지금은 둘이 아예 없어졌어! 나는 이게 뭔지 알아.. 나 어떻게 해!”라며 나를 부여잡고 하소연을 했다. ㅂㄹㅇㅇ은 완전히 봉인 해제되서 난리였고, 같은 날 술 봉인 해제 되었던 ㅋㅂ의 여자친구 ㄴㄹ도 완전히 봉인 해제 되어 내게 칵테일을 붓고, 비틀거렸다. 나는 알았다며 계속해서 빵 쳐묵 쳐묵..

 

뜨거운 밤이었다.

 

ㅡ 2013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