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id Film Club – 4

잘들 계셨나요? 애시드 필름 클럽의 영사기는 아직도 조용히 돌고 있습니다. 너무 오랫만에 적어내려간 영화들 단평들이라 무려 120개가 넘습니다. 처음 본 영화는 -표기, 다시 본 영화는 +표기했습니다.

+ <시간도둑들, Time Bandits>, 1981; 아아.. 테리 길리엄. 흥행에 성공만 하였더라도. 그러나 그의 영화는 항상 옳다.

– <맨홀>, 2014; 공포스럽지도 긴장감도 없는 공포 영화. 차라리 b급 고어로 만들어버렸다면, 한국에서 볼만한 고어물이 나왔다며 b급영화 팬들이 ‘사랑’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 <스펀, Spun>, 2002; 최고. 최고. 최고. 브리트니 머피를 기리며.

– <바빌론 A.D, Babylon A.D.>, 2007; 쓰레기 of 쓰레기. 추워죽겠는데,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어 피시방 가도 이런 느낌보다는 나을 것이다. 양자경은 왜 나왔.. 아니, 이 영화 시나리오, 배우 전부 이해할 수 없다.

+ <데드걸, Deadgirl>, 2008; 내가 이 영화를 왜 두번이나 봤을까. 어쨌거나 마르셀 사이먼로도 00년대 이후, 미국 코메디, 좀비, 공포영화 등에서 보이는 90’s 펑크 세례를 받은 세대.

– <나의 독재자>, 2014; 실화가 아닌데 실화 드립. 영화의도?! 좋은 배우라 알려져있으나 식상한 연기. 어설픈 감성좌파 감독. 사샤 코헨의 독재자로 정화하길 추천함. 배우 류혜영이 가진 캐릭터가 없음.

– <액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 2013; 과거가 현실을 말한다. 현실이 미래가 될 것이다. 우리의 오늘은 어떠한가? 이 영화는 바다 건너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보면서 분통을 터트리다 기어코 울고 말았다.

– <아틀란틱 림, Atlantic Rim>, 2013; 중2스러움과 빠른 진행을 떠나, 일단 심형래의 어린이용 영화 같은 기분도 들어 별 한개를 주었다.

– <스테이크 랜드, Stake Land>, 2010; 좀비물 지겹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도 좋았다. 마지막이 빈 느낌이라 좀 아쉬움.

– <콜로니: 지구 최후의 날, The Colony>, 2013; 평범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 <군사통제구역 팔이공지대>, 2013; 안타까운 박그리나. 감독은 개인의 패기로 영화를 만들지 말 것. 이 영화에는 감독의 강요된 메세지와 패기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물론 신인감독이 가져야할 것도 패기라는 딜레마.

– <악의교전, Lesson of the Evil>, 2012; 패망하는 근래의 일본 영화들은 대개 두 가지로 갈린다. 잔잔한 감동에 집착하거나 극단적인 서사. 이 영화는 그 후자. 그 두가지의 공통점은 보고 나서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 <미생 프리퀄, Incomplete life: Prequel>, 2013; 드라마는 그럭저럭 보았는데, 프리퀄은 텅 비어있다. 잘 짜여진 각본이 지루하기까지 함. 물론 드라마도 뻔해서 중간에 포기함.

– <연가시, Deranged>, 2012; 연가시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 <더 테러 라이브, LIVE>, 2013; 하정우빨로 제작비 건져 만든 영화.

– <공범>, 2013; 쥐여짜는 영화. 이러한 시나리오에서 배우 김갑수의 연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 <관상>, 2013; 인생 덧없음. 너와 나, 어디서 다시 웃으랴.

+ <GP506>, 2007; 뭔가 부족함… 하지만, 한국 공포영화에서의 새로운 시도 세개 준다.

– <해무, 海霧>, 2014; 모두 좋아하는 배우, 하지만 다소 지겨운 전개.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한예리 때문에 별 넷이 된 영화.

+ <천군, Heaven’s Soldiers>, 2005; “박중훈씨 발아.”

– <숨바꼭질>, 2013; 좋은 도시 괴담이 약간 안타까워졌다. 하지만, 썩 괜찮은 공포/스릴러. 헌데 공포는 찾기 어렵다.

– <내비게이션, Navigation>, 2013; 감독 개인의 취미를 영화화 시켰다. 나 중학교 때, 블레어 위치 한번 나오고 계속 아류작들 쏟아졌는데, 드디어 한국판 블레어 위치 아류가 나옴.

– <시간, Time>, 2006; 김기덕이란 이름으로 부당하게 뺏긴 내 시간.

– <서유기: 모험의 시작, Journey to the West: Conquering the Demons>, 2013; 주성치 예순 정도 되면 돌아오려고 감독된 것 같다. 필시 준비중인게 있겠지. 그런데 어쩌지. 사람들은 당신의 빈자리에 염증을 내는데.. 후하게 줬다. 두개 반.

– <드래곤볼 에볼루션, Dragonball Evolution>, 2009; 내가 드래곤볼을 즐기지 않는 이유.

– <무림여대생, My Mighty Princess>*, 2008; 시대를 풍미했던 복고열풍..

+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라스트 머더, I know You Did Last Summer- Final Part>, 2000; 어떻게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걸 좋아할까 싶으면, 그 반대로 어떻게 사람들은 내가 싫어하는걸 좋아할까 하는 의문이 있다. 이 영화는 후자.

– <창수, Tumbleweed>, 2013; 임창정이 그저 그런 배우로 느껴지는 이유. 맨날 똑같은 캐릭터만 연기한다. 과도한 감정이입. 나르시시즘.

+ <기사 윌리엄, A Knight’s Tale>, 2001; 우리 모두 도망을 생각해보자 You got mud on yo’ face, You big disgrace. Kickin’ your can all over the place…

–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2010; 애런 소킨 개씹혐. 이런 영웅 전기를 만들다니… 존나 실망.

– <아고라, Agora>, 2009; 우린 안 될거야… 왜냐면 인간은 우리 스스로가 낳은 유산을 스스로 파괴하는 존재들이니까.

– <그린치, How The Grinch Stole Christmas>*, 2000; 미국 성인 동화.

– <남쪽으로 튀어, South Bound>, 2012; 오올. 임순례 다시 봄. 원작은 일본.

– <폼페이: 최후의 날, Pompeii>, 2014; 제발 좀…

– <패닉 버튼, Panic Button>, 2011; 그러니까 왜 이 영화를 만든건데?

– <더 바바둑, The Babadook>, 2014; 어른들을 위한 공포 동화, 연기가 썩 좋았다. 특히나 아들 사뮤엘 역의 노아 와이즈만, 샤이닝이 오버랩되었다. 앞으로의 연기가 기대된다. 다소 아쉬운 결말이지만, 별 세개 반.

– <해결사>, 2010; 미생의 오상식 차장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봤다. 이 때의 연기 스타일도 비슷하긴 한데, 뭔가 부족한 느낌. 역시 감독의 능력. 어쨌든 이 영화는 이도 저도 아닌 영화.

+ <저주받은 도시, John Carpenter’s Village Of The Damned>, 1995; 별 다섯개, 완전 좋아하는 영화. 권력이란 무엇일까, 어린이들이 어른들을 훈육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위치 시킴을 통해 우리는 우리 안의 폭력을 마주할 수 있다.

– <나는 중식이다, I Am Joongsik>, 2014; 정중식,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 <누드, Nude>, 2010; 미히로의 이야기, 우리는 성노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그들을 배척하기만 해야하는가? 영화는 많은걸 담지 못해 아쉬웠지만, 우리 모두 생각해봐야할 것이라 생각한다.

– <죽지않아, Oldmen Never Die>, 2013; 독립영화에서 드물게 괜찮은 시나리오인데, 연기, 연출이 좀 부족해서 아쉽다. 진행이 다소 느린 감. 아쉽다. 아쉽다. 그래도 추천함.

– <빅 픽처, The Big Picture>, 2010; 소유에 대한 질문들.

– <국회의원 아가씨, Gal-Congress Woman>, 2012; 사토미 유리아… 의도가 어떻게 되었건 일본은 av 배우들 쉽게 써다가 영화 만들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시나리오도 연출, 연기, 완성도 모든 면에서 붙여줄 코멘트가 없다.

+ <SLC 펑크!, SLC Punk>, 1998; 결말을 흐지부지 너무 간단하게 내려 아쉬운 영화.

– <스시 걸, Sushi Girl>, 2012; 북미 중2병 환자들의 아시아 판타지로 만들어진 영화. 그래도 세개 줄게ㅇㅇ?

–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 2007; 소유가 우리에게 물질적 번영 이외에 가져다 주는 것.

– <트와일라잇, Twilight>, 2008; 도대체 왜 유행했는지 모르겠다. 80년대 틴에이지물보다 촌스러운 2008년 틴에이지물.

– <인크레더블, The Incredibles>, 2004; 보다 잠에 든다.

– <아이, 로봇, I, Robot>, 2004; 윌 스미스는 일부러 이런 SF/ 디스토피아만 찾는건가? 왜 최근작 모두에서 따뜻한 영웅행세 하려고만 하지?

– <월드워Z, World War Z>, 2013; 뻔한 스토리에 시간이 아까운 영화.

– <퍼시픽 림, Pacific Rim>, 2013; 비쥬얼 말고 아무 것도 없다.

– <끝까지 간다, A Hard Day>, 2013; 이선균 이건 잘못 간 것 같아..

– <금병매 2, The Forbidden Legend: Sex & Chopstics 2>, 2009; 기괴한 영어제목, 하야카와 세리나 때문에 봤다.

– <금병매, The Forbidden Legend: Sex & Chopstics>, 2008; 기괴한 영어제목, 하야카와 세리나 때문에 봤다.

– <스팟걸 – 교수와 여제자>, 2012; 어슬프다, 모든 것이 어설프다.

– <디스 에인트 아바타 XXX, This Ain’t Avatar XXX>, 2010;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 그냥 웃었다ㅋㅋㅋㅋㅋㅋㅋ 여자친구랑 봐라. 그 날 따귀 맞을 수 있따!

+ <시대정신 2, Zeitgeist: Addendum>, 2008; 시대정신에 담긴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과하다.

– <스티브 잡스 : 미래를 읽는 천재, Steve Jobs: IGenius>, 2011; 별 한개, ㅈ같은 락스타 빠는 이야기.

+ <루즈 체인지, 911 – Loose Change 2nd Edition>, 2006;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고, 문제제기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저너머를 모르며, 이 문제제기가 진상조사를 가능케 했다.

– <반드시 크게 들을 것 2 : WILD DAYS, Turn It up to Eleven 2 : WILD DAYS>, 2012; 다큐를 만들 때는 신중해야한다. 음악과 관계 없는 것이다.

– <하얀 정글, White Jungle>, 2011; 의료는 공공인가, 아니면 자본의 축적 수단인가.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 Sogyumo Acacia Band’s Story>, 2009; 그저 팬들을 위한 립서비스일뿐, 다큐라고 보기 어렵다.

– <사이에서, Between>, 2006; 한, 무속신앙의 흥미로움.

– <브라보! 재즈 라이프, Bravo! Jazz Life>, 2010; 크 류복성 형님 때문에 보았다.

+ <경계도시, The Border City>, 2002;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 그리고 송두율. 자유란 무엇인가.

– <쇼킹재팬: 색의 나라, YOYOCHU in the Land of the Rising Sex>, 2010; 존나 ㅇㅁ없는 영어제목, 왜 본지 모르겠다. 어떤 결말이 있을지 알면서도.

– <2000-2001서태지밴드라이브콘서트 태지의 화, 2000-2001 Seotaiji Band Live Concert Taujis Word>, 2012; 그저 웃음만ㅋㅋㅋㅋㅋ

+ <인사이드 딥 스로트, Inside Deep Throat>, 2005; 자유, 윤리, 범죄, 그 사이의 것들.

+ <당신과 나의 전쟁, The War Waged by You and I>, 2010; “당신과 나의 전쟁”

+ <오바마 속임수, The Obama Deception: The Mask Comes Off>, 2009; 아프간 철군을 약속한 오바마, 노벨평화상 수여. 이후 3만의 추가파병. 오바마가 약속한 것들 중 대체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한다.

+ <저 달이 차기 전에>, 2009;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은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 <쇼킹 아시아 3, Shocking Asia III: After Dark>, 1995;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걸 본지 모르겠다.

+ <라디오헤드 라이브 인 프라하, Radiohead Live in Praha>, 2010; 한국을 떠나던 루프트한자 비행기에서 이 dvd를 보았다.

– <체코 드림, Czech Dream>, 2004; 와 정말 힘들게 본 다큐.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실망하고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다큐는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어떻게 자발적 노예로 만들어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마리아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 Marina Abramovic: The Artist Is Present>, 2011; 시간이란 무엇일까. 너와 나도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될까? 말없이 눈물을 흘리게 될까?

– <아임 스틸 히어, I’m still here>, 2010; 호아킨 피닉스 이 미친놈ㅋㅋㅋ

– <유쾌한 해골, Le Squelette joyeux>, 1898; 1898년의 영화를 느낄 수 있는데, 필요한 시간. 단 1분.

– <그레이 가든즈, Grey Gardens>, 1975; 시간 안에 갇힌 사람들.

+ <유스 위드아웃 유스, Youth Without Youth>, 2007; 프란시스 코폴라를 좋아하는 이유.

– <카트>, 2014; 오늘날 노동자란 얼굴없이 기능만 남아 마치 무인자판기와 같은 것이 되었다. 자본은 당신에게 끊임없이 소비자의 권리를 이야기함으로써 당신 또한 노동자라는 사실을 잊도록 한다.

+ <이층의 악당>, 2010; 이층과 악당같은 코메디 영화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설픈 억지 웃음과 감동을 유발하는 러브 코메디나 난데없는 섹스코메디는 지겹다.

– <신의 전사, God’s slave>, 2013; 뒤틀린 역사, 시드니에서 IS 인질극 소식과 함께 관람. 영화요소, 영화에 담긴 메세지, 그 무엇으로도 나는 좋은 평을 줄 수 없다.

– <가디언스, Guardians>, 2012; 헐리웃이라는 옷을 입은 독일 블록버스터. 틸 슈바이거가 딸, 루나에게 선물한 영화 수업. 영화는 조금 빨랐지만, 루나에게는 안전한 수업. 기대 하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다.

– <PM 11:14, 11:14>, 2003; 오랜만에 보는 얼굴, 패트릭 스웨이지. 영화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들 때문에 일어나는 체인 리액션을 보여준다. 그런데 어쩌지 ost로는 매꿔지지 않는 어딘가 부족한 이 느낌은.

+ <망각의 삶, Living In Obilvion>, 1995; 아아, 인생이여! 우리들의 영원한 판타지여! 내 인생, 내 뜻대로 되는 것 하나 없네. 그 구차하고, 비루한 인생 누가 마다할 수 있으랴.

– <명량, ROARING CURRENTS>, 2014; 애국주의에 기반한 조악한 영화. 이 영화에서 결국 민중은 애국주의를 위한 절임 반찬에 불과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 Non-fiction Diary>, 2013; 학살자는 사면을, 생계에 길거리로 내몰린 이의 처절한 발악은 사형을 당했다. 다음엔 누가 거리로, 누가 당신을 폭도라 매도하고, 서슬퍼런 사형대로 내몰지. 우리 중 아무도 모른다.

– <두 아내, Two wives>, 2013; ㅅㅂ영화 스틸컷만 보고도 코메디 영화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몽타주, Montage>, 2012; 살인의 추억 이후로 나온 흔한 추리극. 엄정화가 아깝다고 할까, 이런 영화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추리극이 아니라 만들다만 신파극.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Nowhere To Hide>, 1999; 박중훈의 영화 중에 가장 좋은 영화일 것이다. 박중훈이 코메디에 어울리는 것은 스스로 내몰았기 때문이고, 이제는 그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몰락을 보며 안타까움.

– <새 폴더>, 2014; 감히 흉내내기 어려운 저급함이다. 시나리오, 연출, 연기 모든 면에서 한결같이 이런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 <마담 뺑덕>, 2014; 흔한 시나리오, 조금도 흥분 되지 않는 섹스신. 머리 아픈 관계.

– <디 인터뷰, The Interview>, 2014; 작정하고, 영화를 해부 해보려고 했으나 쓰레기 영화라서 포기함. 북한을 다루는데 정치가 빠진 통속적인 할리우드 영화. 섹스, 더러운 농담, 어설픈 북한 연기. 미국식 자유주의가 바라보는 북한의 모습 괜찮아. 하지만, 몇몇 불쾌한 인종차별 유머.

– <풋루즈, Footlose>, 2011; 원작이랑 다시 비교해봐야징!

– <빅매치>, 2014; 이성민 연기를 더 보고 싶다.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 시간은 잘 가더라.

– <우리는 형제입니다>, 2014; 둘다 좋은 배우. 연기야 괜찮지만, 2000년대 중반에나 유행할 법한 코메디물.

– <들개, Tinker Ticker>, 2013; 어딘가 늘어지는 느낌. 그래서 어쩌자는건지 결론도 없다.

– <HAAN 한길수, HAAN>, 2005; 역사 속에 묻힌 사람, 영화는 별로.

– <데드 존 오브 저스티스, The Rule Of Law>, 2012; 그럴싸한 시나리오로 반전을 많이 넣은 b급 음모론 영화. 영화로선 허세, 그 자체. 중2병 영화,

– <스트레인저 인사이드, The Stranger Within>, 2013; 정신분석은 본인 스스로와 자기 주변인물에게 할 수 없다. 분석가의 욕망이 치료 방향이 되기 때문. 좀 느린 전개 말고는 볼만한 영화.

– <방독피, Anti Gas Skin>, 2010; 사회를 영화 내부로 끌고온 시도는 좋았지만, 예술 영화를 지향하는 뻔한 구성. 영화에 개입하는 컬트적 요소가 잘 베어있지 않아 보는 내내 지루함. 별 한개반. 나는 왜 김곡/김선 감독에게 호평을 주는지 이해를 못하겠음. 허세 밖에 안 느껴짐.

– <더 게스트, The Guest>, 2014; 고딕, 포스트펑크, 콜드/다크웨이브, 신스팝으로 무장한 영화. 마지막의 허무한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영화. 80’s, 90’s 언더그라운더들이 드디어 주류로 올라오는게 확실한듯.

– <사채꾼 우시지마 극장판, Ushijima the Loan Shark>, 2012; 만화를 그럴싸하게 재미있게 봄.

– <사채꾼 우시지마 극장판 파트2, Ushijima Kun Part 2>, 2014; 만화를 보고 극장판 pt1을 보고, pt2를 보았다. 더이상 볼 일 없을 것.

– <시선, God’s Eye View>, 2013; 시도는 좋았지만, 감독의 역출력 부족. 마음만 갖고 영화를 만들면 안되는 이유.

– <씨 오브 데스, Sea of Death>, 2009; 보는데 계속 잠들어서 이틀이나 걸림. 어설픈 연출과 시나리오가 널 잠재우리.

– <도마 안중근, Doma Ahn Joong Keun>, 2004; 오, 제길 감독이 서세원인걸 알아야만 했다. 안중근 분의 유오성 비쥬얼에 웃음부터 시작해서 모든 씬이 조악하고, 중2병으로 무장하다 못해 약간 키치의 느낌이 들 정도.

– <레디액션! 폭력영화, Ready Action! Violence Movies>, 2013; 이런 감독들에게 메가폰을 주지 마라. 예술이란 이름으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말하지 마라.

– <엔드 오브 디 어스, Afflicted (aka Ends of the Earth)>, 2015; 미국에서 밖에 만들 수 없는 영화. 그리고 평범한 초인영화.

– <더 콜러, The Caller>, 2010;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른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시선. 이제 이 소재는 너무 흔하기 때문에 더이상 이런 영화들이 나오기 힘들 것 같다.

–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Michael Kohlhaas>, 2013; 정의에 관한 영화. 실패한 민란에 관한 영화. 다른 건 몰라도 매즈 미켈슨 팬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영화. 존나 감동.

– <더 헌터, The Hunter>, 2011; 사람만 없다면 이 행성은 평화로울거야. 사람만 없다면.

– <상의원>, 2014; 진실 혹은 거짓, 거짓!

– <라그나로크, Ragnarok>, 2013; b급 판타지.

– <생생활활>, 2011; 성적 개방이란 메세지는 이해하겠는데, 정작 화면에 보이는건 그저 원조교제 하고 싶은 아저씨의 욕구. 박철수 감독은 영화적 재능이 없어 뵈는데 누가 자꾸 돈을 대주는지 모르겠다.

– <후궁 : 제왕의 첩, The Concubine>, 2012; 진실 혹은 거짓, 거짓! 꽤나 괜찮은 거짓. 마지막에 남는 건 조여젖, 아니 조여정뿐! 하하! 최고의 스포일러다 마지막에 남는 건 조여젖뿐!

– <외계인들>, 2014; 시작부터 클리쉐, 연출력이 떨어짐. 보다 그만 둠.

– <킬 포 미, Kill For Me>, 2013; 반전이야 그럴싸하더라도 그냥 아무 느낌 없는 흔해빠진 싸이코물.

– <야관문: 욕망의 꽃, Door to the Night>, 2013; 평범한 복수.

– <맨 프럼 어스, The Man From Earth>, 2007; 잘 짜여진 시나리오.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펼치는 영화, 고전 영화를 사랑한 현대 영화.

– <악인은 너무 많다, Too Many Villains>, 2011; 한국 독립 영화의 한계. 배우가 좋으면 뭐하냐, 연출력과 시나리오가 개판인데.

Exhibition Review: Bartleby, Jason Honea, Modern Shamanism

Saturday 24th January // 19:30 // THE SHITTY LISTENER live + KRAPOOLA MANOSLIGERAS at Bartleby & Co.

 

어제 노이쾰른의 작은 서점 Bartleby에서 Jason Honea의 퍼포먼스를 봤다. 그는 엊그제 마흔 일곱살 생일 선물로 Circle jerks 티셔츠를 받았다며,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얼큰히 취한 그는 여러차례 자신의 벨이 어디로 사라졌냐며 관객들 앞에서 자기 친구들을 향해 호통을 쳤었는데, 결국 벨을 찾지 못해 키체인으로 종소리를 대체했다.

 

제이슨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출신이고, 80년 대 펑크 씬을 향유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살던 동네에는 온갖 갱들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아시안 갱, 치노 갱, 러시안 갱, 아일리쉬 갱… 그런데 이 빌어먹을 갱들은 하나 같이 ‘화이트 스키니 어메리칸’을 싫어한다는 것. 제이슨의 친구들은 줄곧 이 갱들에게 얻어터지기 일쑤였고, 그 중 몇몇은 그 갱들의 총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그는 “대체 우리는 어딜 향해 가야 하는걸까?” 하고 물었다. 키체인을 흔들기 시작했고, 스케잇 펑크 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또 가슴을 세차게 치며, 자그마한 원 모양으로 서점 내부를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한을 달래기 위해 주술을 외는 ‘모던 샤머니스트’ 처럼 보였다. 물론 아무도 그를 샤머니스트라고 보지 않았고, 그는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은 헐렁한 청바지를 입은 마흔 일곱살의 펑크였다. 조금은 외로워 보였던 그는 그 빌어먹을 캘리포니아가 그립다고 하였다. 디아스포라, 우리 모두 유목민이며 또 난민이다.

 

방금 자다 일어난 듯한 헝클어진 머리에도 반짝거렸던 그와 한잔 하고 싶었지만, 그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 차 트렁크를 부여잡고, 토하고 있었다. 기회가 있다면 언제 한잔 할 수 있겠지.

 

 

 

An american artist Jason Honea’s performance was over there, and celebrated his 47th Birthday with few wine bottles.
 
He started talk from his birthday gift ‘Circle Jerks’ t-shirt. He was very drunken, and yelled to audience more than 10 times about his Bell, even though no one understood what’s mean the Bell in this moment. So he used his key chain instead of the Bell.
 
He raised up in San Francisco, California, enjoyed well 80’s punk scene. In his town, there was so many different gangsters. Asian gang, Chino gang, Russian gang, Irlish gang.. btw all the gangs hate ‘white skinny american guy’. So often, he and his friends beaten up by all of them, some friends died by gun shot. And he asked to audience: “Where should we go?” Then he shook his key chain like a Bell, and sung tone of Skate punk, and beat his Chest. He did that, while he walked round in the Bartleby. Yes, in that moment we could understand why he looked for the Bell.
 
I was very impressed. For me.. all that performance seems like a ritual by ‘Modern Shamanist’ for comfort sorrows. Of course, no one thought he is a Shaman. He was just 47 years old punk, who wore big old jean. He missed so much “God damn California”. Kinda nomad, cultural refugee and diaspora.
 
This time was first moment on me, to think what is Shamanism. Few month later-, May day, when we hang out to Göli with Mattias.. that time I thought ‘Urban Shamanism’. Thousand people in the park without ruling, and Mattias tried help unknown guy, I impressed whole thing.
 
However when this performance finished, he ran out to the street. His hands holding a car trunk, and puking several times.

샤를리 엡도, 표현의 자유

fucking hell, in korea who speak out “je suis charlie”, someone of them saying ‘nazism has also freedom of speech’. what can i do with this idiot?

 

“나도 샤를리다”를 외치는 사람 중에 ‘나치즘’과 같은 범죄를 찬양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는 사람과 마주쳤다. 이런 범죄 옹호자들과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불관용은 관용주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차별에 대해서는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

 

 

지난 글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짧게나마 이야기 해보겠다.

 

교황의 의견이 별 의미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상당하겠지만, 얼마 전까지 교황의 행보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교황조차 “샤를리 엡도의 인종차별적 만평을 비판하며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 받아들여지지 않아야 한다” 라고 한 것에 대해서 가벼이 넘기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외면하기가 더 편리하겠지. 샤를리에 대한 비판적 관점 없이 “나도 샤를리다” 를 일단 외치고 보자 했던 사람들은 벙찐 기분까지 들것이다.

 

내가 테러 직후 말을 아낀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 문제를 단순히 ‘표현의 자유’와 ‘테러’ 간의 구도로 볼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러 직후, 프랑스 언론을 중심으로, 그리고 한국에서는 프랑스의 한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나도 샤를리다”에 대한 기사를 상당량 내보내었다. 나는 단정적으로 샤를리 엡도에게는 무비판적인 접근을 했던 것이 좀 성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여가 지난 지금 유럽에서는 일방적으로 “나도 샤를리다”라고 외칠 수 없다는 반대의견들이 이제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샤를리 엡도 테러 직후, “나도 샤를리다” 라고 구호를 외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은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아흐메드다” (샤를리 테러에서 테러범들이 살해한 무슬림 경관) 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테러 직후, “나도 샤를리다” 를 외친 사람들은 무슬림 경관이었던 아흐메드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럴 기회가 없었던 이유에는 당시 언론들은 희생자 수와 샤를리 엡도와 경관의 죽음만 다뤘을 뿐 그들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테러범들이 누구의 아이들인가 하는 배경에 이야기도 실리지 않았다. 테러범들은 그저 잔악무도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로만 그려졌었는데, 사실 프랑스 사회에서 좌절된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는 이야기들이 이제서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오늘 베를린에서는 샤를리 테러 이후 드레스덴에서 살해 당한 20살 청년 ‘바래이’를 추모하며, 반무슬림 운동을 부추기는 세력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살해당한 ‘바래이’ 이외에 테러 이후 반이슬람 범죄가 못해도 스무건 이상이 된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이런 것들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는 살해당한 청년 ‘바래이’ 대한 기사가 연합뉴스를 통한 단 한건에 불과하다.

 

“나도 샤를리다” 는 내게 명령처럼 보인다. 아마 이것을 외치는 사람들에게도 시대의 요구이자 시대의 명령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이 명령이 어딘지 불편하다. 네오나치들이 샤를리 엡도 지지자들처럼 “나도 샤를리다”, “표현의 자유!” 하고 외치는 현상에 대해서 제대로 대답하고 있지 못한 부분이 계속 우리 곁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계적으로 “네오나치의 경우는 다르다”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는 충분한 ‘왜’가 따라야한다. 네오나치의 인종차별의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그렇다면 샤를리 엡도는 인종차별의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냐는 질문을 다시 할 수 있겠다.

 

세계 정상들이 “나도 샤를리다”를 외치면서 행진했다. 사람들은 이 세계정상들의 연대에 환호를 질렀지만, 사실상 이 정상들의 행진은 독일 중심의 유럽 경제체제 논리로 진행 된 것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아래 링크의 사진에서 그들의 위치를 보자면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까지 한다. 또한 가자에서 수천명을 살해한 네타냐후가 무슨 자격으로 “나도 샤를리다”를 외칠 수 있냐는 것이다. “사진보기

 

샤를리 엡도가 마이클 잭슨의 부고에 인종차별적 만평을 내고,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아랍의 봄’ 혁명에 대해 조롱했던 만평들이 차별이라는 것들은 이제는 조금 더 명확해 보인다. 샤를리 엡도 창간 멤버조차 말하길, 샤를리 엡도의 차별적 만평 수위가 높다는 이야기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 왔었고, 샤를리 엡도가 모든 종교에 대해 동등히 비판하는 만평을 내보냈다는 것은 유대주의를 비판하는 만평을 그린 만화가를 해고 하기도 하는 등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이미 형평성 논란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 나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마주친다. “무슬림이 원래 미개하고, 야만스럽다”는 말들이 나를 아프게 만든다. 피터 스피어가 자신의 저작 <온 세상 사람들>에서 “우리는 역사에서 배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라고 했던 말이 내 머리 속을 맴돈다.

 

ㅡ 아직 결론 내리지 않은 글입니다. 제 글은 참고만 하시고, 판단은 각자의 책임입니다. ㅡ

 

 

쌍용자동차, 마힌드라, 이효리, 노동운동

 

 

나는 이 사진에서 참담함이 보인다. 마치 노예가 주인에게 온정을, 자비를 호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한국 운동의 비참한 현실을 생각했다. 마힌드라가 초국적기업이기에 ‘인도의 가치와 온정을 보여달라’가 가져오는 아이러니 또한 존재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트윗은 내게 불편하다. 과연 인도인에게 무엇인가 호소하기 위해 굳이 요가 사진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이효리가 노동자들에게 연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도의 순수함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유럽에서 非아시아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내게 “North or South?”라는 질문을 늘 던져왔다. 이 질문이 지겨워질즈음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한참 모든 이의 귓가를 맴돌았다. 덕분에 나는 “South”라는 대답을 함과 동시에 “Wow, Gangnam style!”이라는 말을 항상 들어야 했다.

 

이효리의 트윗 이야기 하다 말고 갑자기 풀어놓는 나의 경험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해도 된다. 이에 대해 ‘무엇이 옳다 그르다’라며 정의 내리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고이즈미에 대한 한 일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스파게티! 마카로니! 소피아 로렌!(スパゲティ、マカロニ、ソフィア・ローレン!)

 

2005년, 미국, 조지아 주, 씨-아일랜드에서 개최된 제 30회 G8 회담에 참가한 고이즈미 총리는 6월 9일 기념 촬영 당시, 이탈리아 수상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게 “스파게티! 마카로니! 소피아 로렌!”이라고 외치는 기행을 벌였다고 한다.

 

이에 베를루스코니는 기가 막혀했고, 기자단으로부터는 “Shame on You! (부끄러운줄 알아라)”라는 항의까지 나왔는데, 고이즈미 그는 이에 대해 “땡큐! (サンキュ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한 非한국인들이 강남스타일을 소비하는 지점과 非인도인들이 요가를 소비하는 지점은 정말로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타 문화를 배척하지 않는다’라는 도덕적 우월의식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유행에 뒤지지 않는 쿨한 소비재이기 때문.

 

‘유스 오브 투데이’의 보컬이 뉴욕에서 요가 마스터를 하고 있는 것도 북미 백인 중산층의 가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 본의가 어땠든 말이다. 베를린도 뉴욕과 같은 분위기인데, 베를린에서는 ㅡ 백인 중산층의 가치만이 철저히 투영된 ㅡ Weinmeisterstr. 같이 힙스터들이 판치는 곳들에서 인도 이미지를 심어 광고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미로 “Fuck Yoga”라 그래피티 하는 운동이 생겼을 정도. 솔직히 내게는 그 이상으로 요가 자체가 쿨하다는 느낌이 없다. 서구 관점에서의 오리엔탈리즘 중 하나일뿐. 요가가 건강한 신체를 갖게 하는 것이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2015년 1월, 지금 요가가 소비되는 지점은 거기에 있다.

 

최근에는 서구 백인 중산층의 문화 중 피클 문화가 김치로 전이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김치 쪼가리 몇개 집어 먹으면서 마치 문화적 우월의식을 느끼는데는 답이 없다. 물론 김치는 맛있고, 친구들과 종종 ‘덤스터 다이빙’한 채소들로 담가 먹고 있다.

샤를리 엡도 테러 이후, 독일의 극우 정당 AfD 선거 최고 후보자의 발언

 

 

샤를리 엡도 테러 이후, 순간 내 귀를 의심하고, 혼미하게 만들었던 독일의 극우 정당 AfD 선거 최고 후보자의 발언. 더 빨리 번역해 올리고 싶었지만,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내 귀를 의심했다. 때문에 나는 AfD 선거 최고 후보자의 발언 의도에 대해 세 차례의 서로 다른 독일 친구로부터 확인 절차를 거쳐 이렇게 알려본다. (영상을 보자마자 바로 번역해 나누고 싶었지만, 지난 28시간 동안 내 귀를 계속 의심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때문에 번역이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영상을 아마 스무번은 본 것 같다.)

 

* 제 독어 번역이 어색하거나 오역이 있다면, 더 정확한 표현을 위해 제게 메세지 주세요. 바로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잠시동안은 dx3 페이지 등을 통해 널리 공유하기보다 제 담벼락에서만 공유하겠습니다. 개인적인 공유는 얼마든지 상관 없지만, 만약 기사에 인용하시려거든 정확한 판단을 위해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담벼락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기사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요.

 

x. AfD 선거 최고 후보자의 발언:
독일어: “Aber ich habe das große Gefuehl schon immer gehabt, dass etwas furchtbares irgendwo bei uns hier, und Paris ist fuer mich wie Hamburg, gehoert zur gleichen Wertegemeinschaft, passieren wird, leider ist es viel frueher passiert, als ich gehofft habe.”
한국어: “저는 어떤 끔찍한 일이 바로 여기 우리 곁에서 어디서나 일어날 것이라는 느낌을 이미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함부르크는 제게는 파리와 비슷하고, 같은 가치공동체에 포함되니까요. 유감스럽게도 이 사건은 제가 희망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일어났습니다.” ㅡ @Sangwon Han 님 번역으로 대체 했습니다.
x. AfD 선거 최고 후보자의 발언이 의미하는 바: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AfD 선거 최고 후보자의 이 발언 이후, 당원들은 박수를 치며 대변인의 발언에 열광적인 반응을 한다.

 

이 발언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함부르크의 AfD 선거 최고 후보자는 선거운동에서 파리의 샤를리 엡도 테러가 ‘이 곳(함부르크)’에서 먼저 일어나길 희망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반무슬림 운동의 동력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이는 AfD의 우익 포퓰리즘이 아주 대담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시에 전술적으로 굉장히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통해 함부르크의 AfD가 함부르크 의회의 의석을 확보하고, 반무슬림 정책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매우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다. 이 영상이 굉장히 위험하고 불쾌한 것은 AfD 당원들이 비인간적인 환호를 지르며 응원하고 있다는 것.

 

샤를리 엡도가 프랑스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나는 조금 더 생각해보기 위해 판단을 유보하겠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이미 우익 포퓰리즘과 인종차별을 선동하는 네오나치가 만나는 지점이 되었고, 그 동력이 되고 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이 인종차별적 극우, 네오나치 운동의 이상향이 되어가고 있다.

 

이 영상은 독일에서도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기 때문에 미처 영상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서로 다른 독일 친구들에게 의중을 묻고 정보를 나누기 위해 보여주었다. 단지 내 감정만으로 이 것을 판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친구들 대부분은 이 영상을 보고나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서너차례 다시 돌려 보고나서는 잠시동안 내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이 인종차별적 운동에 대해 분노 표출은 커녕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한결같이 말했다. “믿을 수 없지만, 너무 위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고.

 

이 포스팅에 대한 최종 판단은 여러분께 맡긴다. 나는 이 포스팅을 읽는 여러분이 스스로 생각해볼 시간을 갖고, 샤를리 엡도의 표현의 자유와 그 빌어먹을 테러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 최근 몇 주간 독일의 네오나치와 안티파의 反나치운동에 대해서 몇몇 베를린 안티파 그룹과의 인터뷰와 기획 기사를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지만, 혼자 하기엔 방대한 내용들과 참고할 한국어 자료도 거의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한 샤를리 엡도 사건 이후로 급변하는 상황에 먼저 귀기울이기 위해, 일단 독일의 네오나치와 안티파의 反나치운동에 대한 인터뷰와 기획 기사는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