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는 서울이 되기 위하여

참조기사: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는 뉴욕

 

지난 10년 간의 서울을 돌이켜보자면, 결국 이 책은 한국에서 ‘담론(재)생산자’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소비될 수 밖에 없다. 서울에서 ‘Abc no rio’ 같은 움직임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빌어먹는’ 운동과 권위주의, 교조주의에 의해 새로운 시도들이 무참히 부서졌다.

인디팝이나 펑크 밴드 몇개 듣는 ‘문화/예술/철학 담론(재)생산자’들이 모든 걸 망쳐놨다. 냉정하게 보자면 많은 이들이 펑크의 공격적인 면을 논하면서 동시에 음악산업을 하고자 했고, 펑크 애티튜드를 논하면서 한거라곤, 고작 “Support your local scene”을 외치며 머천다이즈 몇개 판 것 밖에 없다. 그들이 머천다이즈 팔아서 생긴 돈으로 뭐했겠나.. 고작 술 몇 잔 더 마시고, 안주 조금 더 먹은 것 뿐이 없다.

가난하지만, 구걸하는 거지처럼 굴어선 안 된다. 마땅히 받아야할 것을 내놓으라고 해야한다. 내놓지 않으면 따귀라도 때리고, 주먹으로 부러진 코를 볼 기세로 달려 들어야한다. 우리는 좀도둑이나 길거리 강도가 아니고, 길 위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홍대가 망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주체의식이 사라진 상황에서 마녀사냥처럼 ‘무엇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그루피 몰아내기는 그런 면에서 제 손에 망치질 마냥 어리석었다. 홍대 씬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할 수 없었던 것은 단지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주체의식이 결여되면서 결속력이 사라졌다. 나는 그 날들의 ‘담론(재)생산자’들이 아직도 원망스럽지만, 그 날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잊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수 밖에 없고, 다시 시작하는 친구들이 있다.

서퍼(surfer)들이 파도에서 떨어져 다시 다음 파도에 오르고, 보더(boarder)들이 다시 널판지에 오르고, 소음민원신고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보란듯이 다시 윽박지르며 무대를 구르는 펑크들처럼, 다시 시작하면 된다.

프랑크푸르트 블록큐피 논평

기사: S.P.O.N. – Im Zweifel links: Gewalt gegen Gewalt

 

<프랑크푸르트 블록큐피 논평>

“시위대의 폭력은 만장일치로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는 체제의 폭력을 무시하고 있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위대의 폭력은 경멸하면서, 왜 우리는 체제의 폭력은 허용하는 것일까.

We unanimously condemn the the violence of the demonstrators. But we ignore the violence of the system. During we contempt the violence of demonstrators that happens on streets, why we accept the violence of the system?” ㅡ Jakob Augstein, Spiegel
(기사: S.P.O.N. – Im Zweifel links: Gewalt gegen Gewalt)

 

유럽중앙은행이 내놓은 긴축안에 90여개의 독일조직들이 연대하는 Blockupy(블록쿠피)가 거센 항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날 17,000여명의 시위대와 10,000여명의 경찰간에 격렬한 물리적 충돌이 있었습니다. 2001년에 이미 비폭력투쟁 노선을 선언했지만, 체제의 폭력을더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였습니다. 또한 높은 청년실업으로 무너져가는 스페인과 긴축안으로 고통받는 그리스는 혼자가 아니라며 독일 사람들이 연대를 표명하며, 유럽중앙은행의 긴축안에 분노를, 독일정부에게 이 사태의 해결의지를 보내라 압박을 했습니다.

기민하고 이기는 법 아는 정당은 새누리당이 유일

기사링크: “기민하고 이기는 법 아는 정당은 새누리당이 유일”

 

전적으로 동의 한다. 새정치는 말할 것도 없이 한국 진보정당들까지 모든 좌파들이 망했다. 앞으로 나아가기는 커녕 본인들이 서 있는 곳조차 모른다고나 할까. 정당에 한번도 가입해본 적 없는 아나키스트로서 한국의 진보정당들에 줄곧 연대를 해왔지만, 독일 친구 중 하나가 동/서독, 남/북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 시키고자 내게 조언을 구할 때, 나는 바로 새누리당 정치인들을 만나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보라 했다.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런 사업을 추진할 능력이 새누리당말고 있던가? 물론 이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곡해하는 ㅇㅁ없는 새끼들이 있겠지.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이런 새끼들은 물론 다수의 진보주의자들까지 싸그리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유일한 정당은 새누리당뿐이다.

정치 스펙트럼을 떠나 진영논리나 편견, 계급간 차별이 존재해 좌절을 느끼는 곳은 사실 새누리당이 아니라 좌파정당들이란 점에서 새누리당의 역량이 더욱 확대된다. 실제로 나는 한국 좌파정당 어디에서도 급진성을 찾아볼 수가 없어 정당 지지가 진보결집이니 하는 단어들이 쏟아진 지금, 회의감만 든다. 한국의 좌파는 누구의 이름일까? 국제시장을 둘러싸고 한국 보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을 보면서 나는 급진성을 잃어버린 한국 좌파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이른바 좌파 정부의 끝자락부터 지난 10년 간 우파정당은 계속 이미지 탈피를 시도해왔는데, 좌파정당들은 같은 이미지에 매몰되서 누구도 새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새정치’ 같은 단어를 사용했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이 우파정당에 더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파를 세련됨으로, 좌파를 낡은 것으로 각인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내가 여기서 감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급진성이라고 규정해도 될까.

 

1. 제가 부도덕의 소산이로거서니 ‘ㅇㅁ’는 ‘애미’가 아닙니다, 여러분 ‘ㅇㅁ’는 ‘의미’입니다.

2. 새정치가 새누리당과 합당해주는게 한국 정치사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거라 생각해 수 년전부터 두 당간의 합당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왠지 오늘은 멀리 베를린서나마 합당 염원 자작술을 들어야겠군요.

3. 결이 같은 노동당, 정의당 합당은 필수라고 보지만, 진보결집 같은 말로 진보운동에 변화가 생길거라 보진 않습니다. 진보당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다만 분명한건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투쟁하는 것은 어제와 같은 패배를 맛보는 것이겠죠. 그런 맥락에서 저는 노동당, 정의당, 진보당, 모두 과거에 머무르는 느낌이 듭니다. 이 글에서 제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그 부분에 있습니다. 대중이 받아들이는 정당의 이미지는 새누리당이 훨씬 세련된 이미지로 변신에 성공했다는 것이고, 진보정당들은 좋게 말하면 식자, 나쁘게 말하면 고집스런 먹물정당의 이미지에서 탈피를 못, 아니 탈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죠. (종전의 ‘패션좌파’도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기야 했겠지만, 결국 선민의식이라는 힐난에서는 피해나갈 수 없는 같은 것이었죠)

독일인 20% 혁명을 원해

매사를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독일인이라지만 개혁으로는 삶의 조건들을 개선할 수 없기에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무려 20%가 됩니다.

1)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빈곤을 양산하고 무력충돌로 이어진다. 37%
2) 깊이 뿌리박힌 외국인혐오증을 일상생활 중에 독일 어디서든 볼 수 있다. 48%
3) 독일의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뜻이 반영되지 않아 진정한 민주주의라 볼 수 없다. 61%
4) 개혁만으로는 삶의 조건들이 개선될 수 없기에 우리는 혁명이 필요하다. 20%
5)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이전에 잘못 시행되어서 그렇지 정말 좋은 생각이다. 42% (구 서독지역: 37%, 구 동독지역: 59%)
6) 모든 사람의 사회적 평등이 개인의 자유보다 더 중요하다. 42%

평범한 독일인의 생각들. 독일 최대 우파정당이자 집권여당인 기독민주당과 우파 선봉장 메르켈이 한국에 간다면? 새정치민주연합보다 좌클릭이라 평가받고, 빨갱이로 마녀사냥 당할듯.. 반면 독일 좌파들은 메르켈이 유럽의 사채업자라며 맹비판할 것이다.

별개로 패전 직후, 우파 정당, 기독민주당의 슬로건이 반자본주의였다는 점은 한국인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지난 대선 ‘경제민주화’가 이슈였을 당시, 제 1여당, 야당 모두 한심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경제민주화를 이루자 소리 높였던 진보진영 지식인들, 특히나 독일에서 유학하기까지 한 진중권 같은 사람에게 실망하고, 정체성을 의심했던 이유가 그것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현대 사회의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경제민주주의라는 이상한 말을 통해 사회의 기본 가치인 민주주의를 희석시켰다. 많은 국민들이 히틀러의 경제민주주의 정책에 눈이 멀어 경제를 부르 짖을 때, 히틀러는 국민들에게 조금 더 속력을 내어 경제 성장을 이룬 뒤, 민주주의를 이룩하자고 외쳤다. 그것이 실제 의미하는 것은 독재와 인종차별, 전쟁을 반대하는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을 싸그리 숙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하여금 패전 직후의 기독민주당이 히틀러가 ‘경제민주주의’라는 정책으로 독일 사회를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지점에 대해 반성하고 반자본주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게 되었다.

이쯤에서라도 ‘경제민주화’를 지지한 진보 지식인들은 반성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당시에 독일에서 유학하는 한국 석박사생들이 아무 목소리를 내지 않기에 나는 매우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연구자가 아닌 나도 아는 이런 끔찍한 일들을 방조하는건지 정말 모르는건지 이 사람들이 대체 대학 책상 앞에 앉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손에 먹물 잔뜩 묻혀 학술용어나 남발하는 이들이 과연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게는 엘리트주의자, 교조주의자들로 밖에 안보인다.

블록쿠피(Blockupy)의 ECB 항의 시위

Guten morgen Frankfurt 🙂
오늘 아침 11시 유럽의 중요경제인사 100여명이 참석하는 유럽중앙은행(ECB) 새청사 개관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오늘 새벽부터 독일의 아나키스트 블랙블록 블록쿠피(Blockupy)의 주도하에 ECB의 유럽 긴축 정책에 항의하며 경찰서의 유리창들이 깨지고, 경찰차가 불타기 시작했으며, 투석전 또한 시작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평화로운 길거리 점거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들은 ECB 개관식에 초대받지 않은 아나키스트들이 새청사를 점거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으나 지금 39개의 유럽국가들에서 최소 만여명이 연대해 힘을 합할 예정이다.
누가 세상을 더 나은 세계로 바꾸는 방법론을 보편화 시키고 일률적으로 만드는지 되묻고 싶진 않다. 내게는 나의 방법론이 있고, 당신에게는 당신의 방법론이 있을 뿐이다. 이 방법론을 경쟁적으로 비교할 필요 또한 없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스스로 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혼자 할 수 없다면 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당신 혼자 세계를 바꾸고자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볼 수 있는 시야, 그리고 마주해왔던 곳들 밖에 더 큰 세계가 있다. 또한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세계가 있다.

 

 

활동가들이 블록큐피 시위쯤 하여 프랑크푸르트의 스카이퍼-타워에 올라가 자본주의가 죽었다는 플랭카드를 걸었다. 2001년 베를린 시위에서 비폭력 시위를 하자는 이후로 많이 많은 폭력 시위가 자발적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유로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자본가들이 스스로 반성은 커녕 오히려 긴축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본가들을 보면서, 이제 폭력 없이는 답도 없다고 폭력 불사하는 시위를 하겠다고, 이 시위와 함께 고지하는 것이다.

 

아직도 자본주의가 죽었느니 마느니 한다고 하실 분들이 계신텐데, 앞으로는 지난 14년간 비폭력 투쟁을 지향해왔던 것처럼 하지 않고, 폭력투쟁을 불사하여 대답을 얻겠다라고 하는 것이다. 지난 15년간 유로화 통합과 월스트리트, 유럽 금융위기 이후로 이야기들이 쏟아졌고, 이제 금융카르텔 행동들을 더이상 지켜 보고만 있지 않겠다 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그리스에 대한 연대를 뜻하기도 한다.

한식 세계화

기사링크: [김성윤의 맛 세상] 韓食은 건강식이어야만 할까

 

베를린서 유럽 사람들을 상대로 그냥 단지 좋아서, 혹은 케이터링이나 부페 등을 통해 고급 한식을 요리를 하기도 하고, 키친 클래스를 가끔 하고 있으며, 완전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저렴하게 정기적으로 한식을 요리하기 때문에 흥미로운 기사이며, 또 납득하기 어려운 기사. 적어도 한식이 건강식이라고 밀어 붙이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식이 ‘상대적으로’ 건강에 나쁘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데에도 공감하기 어렵다.

일단 유럽에서도 쌀밥을 먹긴하지만, 유럽에서의 쌀밥은 사이드디쉬 개념. 다들 잘 알다시피 독일의 경우는 감자가 주식이고, 감자 두개 칼로리면 쌀밥 한공기 칼로리랑 같기 때문에 쌀밥 한공기 칼로리가 어떠느니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냥 사이드디쉬로 건조하게 먹던 것을 보다 질게, 많은 양을 먹어야 하니 독일인들이 낯설어할 뿐이다. 이게 아니라면 일식집 가서 야끼니꾸 정식이나 규동 먹는 서구인들은 대체 뭐라고 설명할텐가?
아무튼 독일은 감자 음식이 많은데, 짭쪼름한 슬라이스 프라잉이거나 그냥 찐감자, 찐감자를 으깨 소스를 올려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리 없어도 소금이라도 뿌린다. 게다가 주메뉴는 주로 고기인데, 한국 사람이 밥한공기 먹을 때, 여기서는 고기를 한공기 먹는다. (독일에서 소고기 값이 한국 에서 돼지고기 값보다 훨씬 싸다)
그리고 수시로 식사에 빵을 곁들이고, 종종은 아침에, 그리고 점심식사에도 맥주 한잔 곁들이기도 할 정도. 맥주가 아니더라도 못해도 탄산음료 한잔 정도는 마셔야한다. 독일인들의 탄산음료 사랑은 실로 엄청나다.

게다가 대식, 굉장한 대식을 한다. 얼마나 많이 먹냐고?
개인마다의 차이가 있을테니 패스트푸드를 통해 설명하자면, 베를린의 유명한 터키식 치킨 체인점의 기본 메뉴가 5유로(6200원)에 프라이드치킨 10조각 + 라바쉬 빵(터키식 난) + 감자튀김이 나온다. 나도 많이 먹는 편인데, 처음 베를린 왔을 때는 이 메뉴를 절반 밖에 못 먹었다. 현재는 라바쉬 빵은 돌려주고, 치킨만 어떻게든 먹고, 감자튀김은 남기는 정도인데, 그리고 사람들은 보통 여기에 탄산 음료수를 추가한다. 이걸 보통 여자나 열살 정도의 어린아이들도 혼자 다 먹어치운다. 성인인 경우에는 여기에 햄버거와 치킨너겟을 추가로 주문하는데, 칼로리를 계산하는게 무의미 할 정도의 이런 음식에 샐러드 시켜 먹는 사람 하나 찾기 어렵다.

그래 칼로리, 바쁠 때 먹는 길거리 음식을 생각해보자.
베를린에서 흔히 널린 케밥만 해도 홍대에서 파는 케밥 크기의 두배쯤 되는 것이 3000~ 3500원정도 하는데, 칼로리는 600~ 700칼로리 가량한다. 여기에 콜라나 환타 같은 탄산음료수나 감자튀김을 끼워 먹는다. 보통 1~ 1.5유로(1250원~ 1850원)정도 하는 355ml 콜라의 칼로리가 772 칼로리다. 그럼 케밥을 650칼로리로 잡고, 감자튀김을 제외, 콜라 한캔까지 1372 칼로리가 된다. 거기에 감자튀김이 250칼로리를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좀더 간소한 길거리 음식으로는 커리부어스트가 있겠다. 한국에 떡볶이가 있다면 베를린엔 커리부어스트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기름에 튀긴 소세지 위에 케찹과 커리 가루를 얹어 먹는 것인데, 보통은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다. 케밥보다 배가 안 차기 때문에 음료는 당연히 마시게 된다. 보통 4유로(5000원)쯤 하는 커리부어스트 + 감자튀김의 칼로리만 825칼로리, 음료까지하면, 무려 1547 칼로리. 듣고 있나? 간단히 길에서 때우는 길거리 음식 칼로리가 1547칼로리. 심지어 독일애들은 케찹을 엄청 뿌리는데, 무슨 떡볶이 국물 먹듯이 싹싹 긁어다 먹는다.

삼겹살 먹으러가면 당신은 보통 얼마나 먹을까? 밥 한공기 + 삼겹살 2인분 + 쌈 + 김치(+ 쌈장, 반찬) + 작은 된장찌개 하나만 해도 2300~ 2500칼로리 정도 된다. 소주 한병 640칼로리까지 마시면 얼마나 될지 상상은 해보았나? 3000 칼로리 넘는건 우스운 일이다. 다이어트 중인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삼겹살 먹으러 가면서 일일히 칼로리 계산을 하나?

한국의 돼지족발과 유사한 독일의 슈바이네학세 메뉴(+ 감자요리, 자우어크라우트) 만해도 널리 알려진 음식인데, 보통 2000칼로리를 웃도는 정도이며, 독일식 돈까스라고 할 수 있는 슈니쩰 메뉴(+ 감자요리, 자우어크라우트)는 1500칼로리 정도 된다. 보통 슈니쩰 메뉴를 먹으면 맥주 한잔은 기본.

칼로리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하자. 아무튼 먹는데 칼로리 이야기하지 말자. 요리 자체를 잘 모르는 이들이 칼로리 운운하는걸 보면, 솔직히 요리하는 입장에서 무지해보일 뿐이다.

독일 요리를 보면 짜게 먹는 것은 한국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 일단 요리가 나가면 맛도 안 보고 소금을 막 치는게 독일이다. 한국 유학생들이나 여행객들 모두 처음 독일식 식사를 접하면 뭐가 이렇게 짜냐고 할 정도. 또 달게 먹기는 엄청 달게 먹는다. 짜고 달게 먹는 식문화의 배경은 낮은 기압 때문인데, 때문에 여름에 하늘 보면 하늘이 굉장히 낮고, 겨울 해는 고작 7~ 8시간에 불과한데, 기압도 더 낮아져서 초겨울에는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쉽게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이건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베를린 토박이들도 똑같이 겪는 문제. 하지만, 난생 처음 겪는 아시아 사람의 경우에는 강도가 매우 다르다. 커피를 생활화하고, 짜고 달게 먹지 않으면 이 낮은 기압을 이겨내기 어렵다.

다양한 영양섭취는 어떨까?
독일의 보통 식사는 그릇 한접시에 모두 담겨야 한다. 한국에 비하면, 한번에 섭취할 수 있는 음식들이 다양하지 못하고, 굉장히 단조롭다. 베를린 같은 경우는 반경 200km가 모두 평야에 강에서 잡을만한 어획량도 많지 않아서 수산물 값이 굉장히 비싸다. 때문에 독일에서의 유명한 해산물 음식이 청어절임 같이 장기간 보관 되는 것들이다. 청어를 기름 속에서 짜게 절여두는 그 청어절임 말이다.
청어절임이 어떠냐고? 그로테스크한 비쥬얼도 굉장하지만, 비린내도 상상을 초월한다. 청어절임을 처음 본다면, 당신이 서구인의 음식에서 갖는 환상이 박살날 것이다. 돼지 피로 만드는 블룻부어스트, 돼지 간으로 만드는 레버부어스트, 혹은 돼지간 프라이 같은거 먹어봐라. 음식 같은거 가리지 않는 내가 제일 처음에 힘들어했던 음식이 레버부어스트, 처음 먹을 때의 그 피비린 맛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잘 먹는다. 오히려 좋아한다. 아무튼 한국 음식 비쥬얼이 어떠느니, 냄새가 어떠느니 상대적으로 평가하는거 존나 의미 없다. 말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그런 이유로 베를린에서 한국음식은 영양섭취의 다양성면에서나 여러가지로 건강하다는 인상을 쉽게 받는다.

반찬을 곁들이는 문화는 여전히 서구인에겐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미 완전히 대중화된 일식문화만 보더라도 밥을 중심으로 하는게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한식의 문제점은 영양학적이 아니라 어떻게 현지에 낯설지 않게 존재감을 알리고, 정착 시키냐는것이다. 이런 선례는 중국과 일본이 잘 만들어왔다.

외국인들이 쌀밥을 안 찾는건 그들의 주식이 아니라 낯설어서 일뿐이지 알려주면 다들 잘 먹는다. 저가의 중식당에는 차이나 누들 말고도, 대부분 볶음밥이나 밥 위에 얹은 고기 요리들이 주를 이루는데 독일인들 모두 좋아하고 잘 먹는다. 뭐 좀 구석진 도시에 살면 중국 음식조차 접해보지 않아서 모를 수 있겠지만, 쌀밥을 이해 못한다는 외국인은 만나기 어렵다.
독일의 경우는 감자가 주식인데, 빵과 소세지, 커피로 대신하는 아침식사를 제외하고 매끼니마다 거의 항상 먹는 감자프라이와 찐감자, 찐 감자를 으깨서 만든 감자요리 등등 보면 한국 사람은 거부감 안 갖을까?

쌀밥이 문제라는 주장은 독일 친구들이 초밥과 김밥을 만들 때, 독일 쌀에 비해 5~ 6배 이상 비싼 ‘스시라이스’를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과 같은 문제다. 일본 상인들이 ‘스시라이스’를 내놓으며 초밥을 하려면 이걸 사야 한다는 것처럼 만들었는데, 사실 우유와 함께 만드는 독일의 ‘밀시라이스’가 우리가 먹는 쌀 자포니카와 다를게 없기 때문에 굳이 스시라이스를 살 필요가 없다. 500g에 45센트 밖에 안 하는 밀시라이스로 초밥을 만들되, 밥을 할 때 물 조절을 잘 하면 아무 문제 없다. 내가 늘 유럽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바로 이 것이기도 하다. 비싼 ‘스시라이스’를 꼭 살 필요가 없다고.

최근 3~ 4년간 베를린에서는 한식이 굉장히 힙한 이미지에서 부상하고 있다. 아시아 음식 못 먹는걸 촌스러운걸로 생각하는 베를린의 분위기가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한식을 요리하는 내 관점에서는 레스토랑들의 태도가 굉장히 문제라고 본다.

문제가 뭐냐고? 독일 사람들 입 맛에 맞춘다면서 배추 김치를 하나도 안 맵고, 달게 만든다던가, 마늘 냄새 난다며, 마늘을 잘 안 쓴다던가, 김치 찌개에 김치는 거의 없고 양파만 둥둥 떠다닌다던가.. 오징어 덮밥이라고 해놓고, 쌀밥 위에 오징어포를 올려놓고, 7~ 8000원씩 받아 쳐먹는다던가,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먹고 있는데, 먹는 방법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던가… 이런 문제가 셀 수도 없이 많다. 이런 문제들은 식당 오너들의 태도와 무지, 그리고 멘탈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마늘냄새에 대한 오해를 하나 풀어보자면, 마늘은 생마늘로 먹으면 입에서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문제는 다음날 체취에서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익혀 먹으면 전혀 상관 없다. 스페인 음식 같은 경우는 볶음밥을 오븐에서 한번 더 푹 익히는 빠에야 같은 요리에선 마늘을 까지도 않고 그냥 통채로 박아 넣고 먹는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그런데 스페인이나 이탈리아가 한국 음식보다 마늘을 두세배 이상 많이 넣는데도 마늘 냄새가 나니 마니 하는 것은 생마늘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김치는 생마늘을 갈아 넣으니 체취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 수 없기야 한데, 사실 스페인의 샐러드 드레싱 보면 마늘을 다량 갈아서 만드는 드레싱이 있을정도고, 김치 먹는 외국인이 늘어남에 따라 보관시에 나는 냄새만 조심하면 된다. 혹 걱정된다면, 버터우유 같은걸 신경써서 섭취하면 소화를 돕고, 장운동을 촉진 시키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중요한 약속에서 정 걱정되면 샤워를 하고, 향수를 뿌리던가.

아무튼 한식은 이제 조금 분위기를 타고 유명해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내게 김치 담그는 레시피를 물어보는 친구들이나 요리를 부탁하는 친구들이 한둘이 아닌 것으로 내가 체감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레스토랑의 앞서 말한 문제점들은 매우 중요한 기점이 된다. 한식을 먹으러온 독일인들은 독일과 다른 식문화, 한식 그 자체를 먹으러 온거지 자기들 입맛에 맞추어 변형된걸 먹으러 온게 아니기 때문. 역으로 생각해보라, 이 사람들이 베를린에서 먹어본 한식에 반해 한국을 방문해 한국음식을 먹을 때, 자신이 베를린에서 먹은 음식이 변형된 한국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에서 얼마나 실망하고, 배신감 느낄지, 그리고 얼마나 한국음식을 이질적이고 낯설어할지 말이다. 제발 생각을 해보라.

한식은 다양하다. 매운 맛만 강조하지 않아도 가능한 음식들이 많은데 유독 한국의 맛이라고 하면 매운맛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는거다. 나 또한 매운 것을 좋아하지만, 매운 맛이 한국 맛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매운 것을 못 먹는 서구인에게 김치를 강요하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 문화에서 김치를 빼놓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한번만 다시 생각해보자. 김치도 한가지 종류가 아닌걸 모두가 안다. 때문에 나는 오이무침이나 상추겉절이, 무채나물 같은 것을 배추 김치를 대신해서 내놓는데, 이렇게만 내놔도 매운걸 못 먹는 친구들도 잘 먹는다. 오히려 더 달라하고, 요리를 먹으러 왔다가 레시피를 배워가기도 한다.
디저트, 저도 처음에는 난감했다만, 케잌 대신에 약간의 꿀을 올린 화전을 내놔도 되고, 과편을 내놔도 된다. 여기서 비싼 소주 대신, 보드카를 살짝 섞어 화채를 내놔도 좋은거다.

내가 요새 고민하는 것은 한국 음식의 패스트푸드화. 일단 보통의 한식은 조리시간이 오래 걸려서 먹는 사람이 기다리기 힘들어 한다. 보통 유럽 요리들은 주문 5~ 8분 이내에 나오는데, 한식은 precooking을 해놨더라도 보통 15~ 20분이나 걸린다. 또 들고 다니면서 먹기가 어렵다. 때문에 김밥도 생각하고 있지만, 여기서 재료를 구하는 단가를 생각하면 그것도 쉽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참고로 한식레스토랑에서 김밥 한줄 7~ 8유로(8800원~ 10000원)에 판다. 그래서 나는 절대 안 사먹는다. 가격이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일식당에서 초밥을 파는 것과 비교해보면 김밥 한줄이 7~ 8유로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 생각한 것이 밀전병으로 케밥처럼 불고기를 감싸 내놓는 따위의 방법인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한식의 패스트푸드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컵밥도 생각해봤는데, 그건 독일 정서에 별로 맞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한식을 변형시키지 않고도 외국인들이 좋아할 한식은 많다. 단지 지금까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낯설음을 덜어줄 방법을 생각하면 된다. 나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에서 영어로 한식을 설명해야 했는데, 말로만 한식의 세계화를 부르짖고 뻘짓하는 정부가 정말 한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레시피는 둘째치고, 한식의 제대로된 영어이름을 찾기도 굉장히 어려웠고, 설명하긴 더더욱 어려웠다. 빌어먹을 관료주의의 때문이겠지. 이걸 극복하고 싶다면 현장에서 뛰는 요리사들과 서구-한국 문화를 동시에 잘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기만 해도 되는데, 왜 안하는 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이야기 하다보니 상당히 길어졌다. 내 고민과 노하우를 일부 소개하기도 했지만, 못한 이야기가 훨씬 많다. 일부는 내가 지금 진행중이기 때문에 공개하기 어렵다. 뭐가 되었건 적어도 한식에 대해 한국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외교부 새끼들은 나한테 상을 줘라.

IQ와 음주문화

기사링크: 스웨덴 연구소 “IQ 낮을수록 술 과하게 마신다”

 

IQ가 낮을수록 술을 과하게 마신다고? 영원한 술애호가로서 한낮의 숙취를 즐기는 이로서 취무룩하게 만드는 기사다.

그러려니하고 넘기려고 보니 기분이 영.. 취무룩해서 IQ가 높을수록 술 마실 확률이 높다는 논문을 소개하는 기사들을 찾아봤다. 내가 오늘 친구 생일파티에서 만취하기로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1.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지능이 낮은 사람들에 비해) 진보주의자와 무신론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또한 아침형 인간보다는 야행성 인간이 될 가능성이 더 많으며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성악보다는 순수 기악을 즐겨 들으며 술·담배와 심지어 마약을 사용할 가능성이 더 많다. 과음을 하고 취할 가능성 또한 더 높다. 그리고 지능이 높은 사람들, 특히 지능이 높은 여성들은 지능이 낮은 사람들보다 평생 동안 자식을 적게 갖거나 갖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ㅡ http://www.munhwa.com/news/view.html…

2. 핀란드에서 3000쌍의 쌍둥이를 연구한 바에 따르면 어릴때 빨리 말을 시작한 아이가 커서 술을 많이 마시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합니다. 언어 능력은 사회적 지능과 직결되고, 사회적으로 활발한 사람은 술자리에 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지요. “뛰어난 언어적 능력은 또래 사이에 거부당할 가능성을 낮춰주죠. 청소년기에 인기많은 아이는 보통 술을 마시게 됩니다.” 먼저 말문을 띄는 아이는 중고등학교에서 대학과정에 이르기까지 공부를 잘할 가능성도 높은데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배우려는 욕심은 더 큰 자극을 찾으려는 성향과도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ㅡ http://newspeppermint.com/2013/12/08/intelligence-drinking/

관련 논문들을 소개하는 기사들을 읽다보니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있다. 유럽에서 스웨덴은 70년대부터 유명한 알콜 규제국(보통 맥주가 2.8% 알콜, 개비쌈)이며, 핀란드는 유명한 보드카 소비국이라는 것..

유로 통화, 그리스

기사링크: [팩트체크] ‘복지 과잉’ 논란..한국, 그리스처럼 될까?

 

아나키스트들, 특히나 유럽 아나키스트들은 유럽 주류 좌파들이 유로통화에 동의한 것과 달리 유로 통합 통화에 대해 굉장히 반대를 했었다. 그래서 아나키스트들의 말이 맞았다고 세계 정치인들이 아나키스트들의 이야기를 들을까? 아니, 그럴리 없다. 그럴 수 있게 만드는건 바로 나이고, 당신이다.

아나키즘은 당신의 권력을 가져가지 않는다.
아나키즘은 권력을 모두 나누고자 한다.
모두 나눈다고? 그럼 아나키즘은 커뮤니즘인가?
– 아니, 아나키즘은 당신 생각보다 단순하고, 폭력적이지 않다. 차별에 반대할 뿐이다. 그리고 폭력에 가담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유로 통합 통화에 반대했던 것도 가시적으로 차별을 낳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반대 했던 것이다. 당신이 두려워했던 아나키즘은 당신이 차별 받지 않길 원할 뿐이었다. 그 모든 화염병이.

그럼 아나키즘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 다시 말하건데, 차별에 반대하는 것뿐이다. 모든 종류의 차별에 대해. 계급간, 인종간, 성별간.. 모든 종류의 차별에 대해. 그것이 바로 아나키즘이 말하는 것이다. 당신이, 혹은 누군가 폭력을 짓밣히는 걸 보고도 침묵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아나키즘은 ‘동굴 속에 들어가 살라’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런 것들을 ‘명령’할 수 있는 아나키스트조차, 단 한명도 없다.

주한미국대사 마크 리퍼트 피습, 노동당 논평

오늘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피습을 당했다. 끔찍한 테러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경찰은 용의자를 철저히 조사하여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테러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 작년 12월 신은미씨에 대한 일베 회원의 테러에 이은 이번 사건으로 국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허물어진 국가에서 갈등해결의 평화적 공간을 폭력이 잠식하는 양상이다. 테러에 대해서는 불관용이 답이다. 동시에 연이은 테러의 원인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미 대사 피습 사태를 공안몰이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사태재발을 막지 못할 것이며, 갈등의 원인만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2015년 3월 5일
노동당 대변인실

 

 

 

다들 한마디씩 하시니 나는 입을 다무는게 좋을까 했지만 몇 의아한 지점들이 있어 짧게 적어본다.

노동당이 진보를 대표해 김기종에 대해 사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모자란 논평. 나는 항상 진보진영의 이런 편리한 방법, 편리한 접근, 편리한 저항들이 늘 불편하다. 이것으로는 어떠한 벽도 넘을 수 없다. 벽 앞에서 벽이 무너져달라고 기도하는 중생의 모습처럼 보일뿐이다.

물론 진보진영으로서는 김기종 개인의 광기로 몰고가면 책임론에서 질타를 덜 받을 수 있을지 모르더라도, 진보진영 내의 민족주의/탈민족주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에 대해 진보진영 내에서는 모두가 잘 아는 분당/탈당/합당 사건들이 계속 이어졌다. 진보진영 내의 계파간 갈등에 천착해있는 동안 우리는 민족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한번 숙고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또한 김기종씨의 죄를 묻는다고 하더라도 그를 손쉽게 테러리스트로 규정함도 이해할 수가 없다. 21시간 전, 15~ 20여개의 독일의 언론들은 30여개의 기사를 내놓았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대략 40~ 50이 훌쩍 넘는 언론들이 300여개의 기사를 쏟아내놓고 있다. 평소 독일에서 북한 이외에 남한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한 반응이다. 햇수로 4년 째 독일에 살면서 이렇게 남한 관련 뉴스가 긴급히 쏟아져 나온 것은 처음 본다.
하지만, 독일 언론들의 기사에서 주한미국대사와 ‘테러’라는 검색어를 함께 검색하면 아무런 기사도 뜨지 않는다. 한국 현지와 독일 언론들의 온도차를 감안하더라도 독일 언론이 사건의 중요성을 심각히 여기는데도 아무도 테러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미국언론을 검색해보아도 주요 미국언론들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언론들이 김기종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지 않는다. ‘테러’ 혹은 ‘테러리스트’라는 단어와 함께 김기종을 언급하는 기사는 대부분 한국정부의 관계자들이 김기종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인터뷰한 것을 인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기종 스스로가 자신이 한미연합 훈련을 막기 위해 이와 같은 일을 벌인 것이라고 스스로 발언한 것 때문일 뿐이다.
그런데 왜 한국 언론, 심지어 진보정당들까지 나서서 이 것을 테러로 규정하고,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일까? 심지어 前주한미국대사들도 이 사건이 한국과 미국의 외교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인터뷰가 나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이구 저희가 잘못 했습니다. 미국은 우리의 영원한 우방입니다.”

나는 미국 정부가 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정책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주한미국대사가 피습을 당해야할 이유를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미안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25센티미터의 과도로 마크 리퍼트 대사에게 습격하기 전까지 아무런 제지를 못했던 보안 담당자의 문제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왜 25센티미터의 칼을 과도로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보통 주방에서 사용되는 칼은 칼날의 길이만 이야기한다. 또한 칼날이 25센티미터라면 과도라고 보기 어렵다. 칼날이 25센티미터라면 일반인도 사시미 칼정도는 알아볼테니 식도 혹은 육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설사 손잡이 길이까지 총합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25센티미터는 과도라고 하기엔 제법 길다.
그래서 왜 칼날의 길이에 대해서 이야기 하냐고? 칼날이 25센티미터라면 단순히 숨기기 어려울 것이고, 칼길이 총합이 25센티미터라도 속에 품는다면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왜 보안요원이나 경찰들이 전혀 몰랐는지 나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김기종이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평가는 차후 행적들과 연관해 이뤄지겠지만, 내 관점에선 김기종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하기엔 턱없이 부족해보인다. 아니 좀 유치하고 지나치다 싶은 축구광팬, 본인이 응원하는 팀의 전세가 기울자 축구장으로 난입하여 상대선수를 넘어트리다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광팬정도가 어울려보인다. 테러라고 하려면 테러 이후의 테러범에 대해 지지하는 단체가 하나 정도는 나와야하지 않는가? 지지는 커녕 오히려 김기종이 속해있던 단체들은 우리와는 관계 없는 일이라며, 모두 그를 신속히 제명시켜버렸다.

“어이구 저희가 잘못 했습니다. 미국은 우리의 영원한 우방입니다.”

피습을 가한 것은 대한민국 모두가 아니라 어떤 단체도 뒤에 등지고 있지 않은 김기종 개인인데, 대한민국 전체가 마치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비는 것 같은 모습에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노동당의 이번 논평에서 나는 여당, 정부기관들의 보수인사들이 사고를 칠 때 마다 손쉽게 잘라내고(제명하고)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연상된다. 또한 먼저 지레 겁먹고 공안몰이의 기회로 삼지 말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도 진보진영의 컴플렉스를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적어도 이 사건을 계기로 진보 진영내의 계파는 물론이고, 좌우를 뛰어넘어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이 이뤄지길 바란다. 참고로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07년부터 한국에게 ‘단일 민족국가’ 같은 이미지를 극복해야한다고 권고하며, 그러한 ‘사실 왜곡’이 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의 주요인이 된다고 직접 지적하였다.

* 기사는 구글 뉴스 검색을 기준으로 하였다.

Review: Film ‘대공습, Into the white’

 

<대공습, Into the white>

 

2차대전, 눈 덮힌 노르웨이에 추락한 영국, 독일의 군인들이 한 오두막에서 생존 투쟁 하는 영화입니다. 실화 영화들이 대개 눈물을 쥐여짜는데 초점을 두는 반면, Into the white는 그렇지 않아 보기 편했습니다. 보통 전쟁물에서 한쪽을 지나치게 깎아내리려는 시도들이 자주 보이는데, 그렇지도 않아 좋았습니다. 스포가 생길 수 있으니 영화 내용은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별 네개 주었습니다. 다른건 몰라도 일률적으로 한 언어, 주로 영어로 만들어지는 전쟁영화와 달리, 노르웨이, 영국, 독일 각국의 언어로 연기를 했고, 독일 군인들이 영어를 쓸 때는 뎅글리시(한국의 콩글리시와 같은) 엑센트가 잘 묻어나서 더욱 몰입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어는 모르지만, 영어와 독일어가 따로 분리되서 잘 들려서 보는 재미가 쏠쏠.. 그런데 한국어 제목을 왜 이 따위로 지었는지는 조금도 공감할 수가 없.. 한국 배급사 개새끼야.

 

전쟁 영화를 챙겨보시는 분이라면 권하고 싶은 영화고, 전쟁 영화를 즐기지 않는 분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하지만, 2차대전에 참전한 영국과 독일 군인들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새로운 시각을 알 수도 있습니다. 트레일러는 형편 없다고 욕이 자자하지만, 영화를 링크할 수가 없어 이렇게..

 

 

/2014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