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 145

 

Yes, EPHEMERALITY. I would to breath last quietly in the sunny underground lawn. It seems to go very quietly. Everything is fleeting, EPHEMERALITY. Then just be a handful of soil. (to be flower, that flower eaten by cousin’s goat)

덧없음, 단명. 햇볕 살며시 드는 나무 밑 잔디밭에서 조용히 숨지고 싶다. 아주 평온하게 갈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잠깐동안의, 덧없음. 한 줌의 흙이 되서 꽃으로 태어나야지. (그리고 그 꽃, 방금 전 이웃 염소가 먹었답니다)

 

ㅡ 2016년 11월 23일, 오전 1시 22분

정어리 – 144

suddenly, i can see that here is too many honorary americans. yes, trump shit. but this world never gonna the end, even trump elected! kay, i will have couple of beer at the bar, then have kiss with someone.. because of him!

내 타임라인에 명예 미국인들이 너무 많다ㅇㅇ 트럼프 ㅈ같은거 아는데 이 세계 안 끝났다고 잉간들아! 알겟다, 나 오늘 바에서 맥주 좀 마시고, 트럼프 쌖끼 때문에 슬픈 누군가랑 키스할게! 연대으ㅣ 힘을 보여주마!

 

ㅡ 2016년 11월 9일, 오후 1시 13분

정어리 – 142

 

이 영화를 97년쯤 봤다. 딱 1년 후,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부터는 홍대에 들락거리기 시작하면서 인디매거진들을 모으고, 펑크/인디밴드들의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그 때 홍대에는 중학생이 찾는 일은 상상도 하기 힘든 때였다. 못해도 고2, 고3은 되어야 했고, 대부분 대학생들이거나 사회에 이제 갓 발을 내딛은 직장인들이었다. 펑크밴드들은 노란 탈색이나 찢어진 청바지뿐만 아니라 빨강, 초록, 파랑, 형형색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스파이크 머리를 하고 있었고, 찡벨트, 오른쪽 뒤춤에는 지갑과 연결된 체인이 있었다. 그 때의 보통 사람들은 그런걸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심지어 무서워서 길을 비켜주기도 했었다. 당시 사람들이 아는 이런 행색의 사람들은 로보캅 같은 북미영화에 출연하는 악당들이었으니까. 처음 학교 친구랑 드럭을 갔었을 때, 친구는 무서워서 집에 도망가버렸고, 나도 무서웠지만 ‘설마 죽지는 않겠지, 트레인스포팅에서도 사람은 안 죽이던데’ 하면서 주먹을 꾹 쥐고 들어갔었다. 하도 어린 녀석이다보니까, 형, 누나들의 보호는 물론이고, 귀여움도 많이 받았었다. 그리고 450페이지 분량의 트레인스포팅 책을 빌려보기도 했었지. 그 때는 리얼플레이어로 음악 한곡 받는데만 40분씩은 걸리던 때였고, 희귀판도 아니고, 라이센스판도 돌려서 듣던 였다. 처음 캘리포니아 드리밍 뮤직비디오를 보고 충격을 크게 받아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었고, 히피라는걸 알게 되고, 프리섹스를 나누는 평화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첫 경험을 꿈꾸며 포르노 웹사이트, 히피 커뮤니티에서 프리섹스 파트너를 구하는 게시판들을 열심히 뒤지다 20:1에 달하는 남녀 비율을 보고서 히피는 실패한 이상주의라 자조했었지. 그리고서 “히피들을 죽이자”는 가사가 담긴 펑크곡들을 열창 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형, 누나들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패밀리 밸류스 투어 ’98’ 테입을 선물로 받고, 람슈타인, 아이스큐브, 림프비즈킷에 빠져서 H.O.T.나 젝스키스 들으며 콜라텍에 다니는 또래친구들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맨날 형, 누나들 틈에 있다보니 친구들이 말하는 것들은 다 한심하고 유치해보였다. 물론 그래봐야 매일같이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스타랑 레인보우6,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같이하는 중학생에 불과했었고. 홍대, 대학로서 형, 누나들과 놀이터 정자, 공연장, 바에서 술, 담배하면서 괜스레 친구들이 유치해보였던 것일 뿐, 나는 그저 중학생에 불과했다. 머틀리크루를 사랑하는 스물네살 누나를 여자로 생각하고 짝사랑하던 중학생. 누나가 손 잡아줄 때마다 나는 누나랑 뭔가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 누나는 사촌동생 손 잡듯 위험한데 빠지지 않게 하려던 것이겠지. 그래도 나는 누나 손을 잡을 때마다 온몸이 찌릿거렸다. 누나가 좋아하는 천상병,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고, 너바나, 그리고 스매싱 펌킨스의 ‘트라이, 트라이, 트라이’를 들으며 슬픈 사랑에 방구석에서 울던 중학생. SH클럽에서 노브레인 100원 공연이 있던 날, 다른 형, 누나들을 따돌리고 둘이 대학로를 걷는데, 누나는 내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한사코 거절했는데, 결국 내가 말하면 더이상 아무 말 않고, 손 잡고 집으로 가기로 했었다. “사랑해, 누나”하고 꼬옥 안았다가 아무 말 없이 손잡고 집에 갔던 밤. 나는 그런 중학생이었다. 누나는 늘 몸이 아파 병원을 다녔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일본에 갈거라 했었는데. 홍대놀이터에서 술에 취한 김포대 학생들이 누나에게 무례를 저지를 때, 제 딴에 남자라고 싸우려들다 두들겨 맞아 병원에 실려 갔을 때. 그 때 엉망이된 내 곁에 있어준 것도 누나뿐이었다. 나는 그런 중학생이었다. 대학생 열다섯명한테 실컷 두들겨 맞아 응급실에 실려가면서도 씩 웃던 나는 그런 중학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트레인스포팅은 옳았다. 나는 아직도 살아있으니까.

이 영화를 보면서 딱히 이유도 없이 세상에 분노를 했다. 고작 중학생이 ‘이 빌어먹을 세상을 끝내버리고 싶다’고 매일 같이 낙서를 했다. 책으로 읽었을 때는 또 다른걸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영화가 곧 다시 나온다고 한다. 처음 봤을 때는 열세살이었는데, 이제는 서른 두살. 하하, 많은 일들이 있었지.

예고편을 보니 트레인스포팅은 이번에도 오늘의 젊은이들, 시대를 기록하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처음 봤을 때처럼 새롭지 않은 것들이겠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는 영화.

방금 전 유학생 네트워크에서의 일에 대한 감상을 남기고 싶은데: 멍청한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무례한 것은 그렇지 못하다. 전자는 극복이 가능한 편이지만, 후자는 대게 그러지 못하기 때문.

 

ㅡ 2016년 11월 3일, 오후 3시 9분

정어리 – 139

 

서너달 전, 향수를 선물 받았다. 강한 인상 때문일까 나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난 향수들은 가볍고, 산뜻한 것들을 선호하던 차에 이번에는 따뜻한 향을 갖고 싶었다. 선물받은 향수는 여자향수인데, 평소 좋다 생각하던 향이라 뭔가 마음을 들켰다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평소 파티에서도 게이 친구들이 날 좋아해주는 편이었는데, 어느새부턴가 좋아해주는 친구들이 급격히 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의아스러웠지만, 그 마음을 물을 수는 없는거니까.

일주일 전, 새로운 색의 향수를 구입했다.

그리고 오늘 집을 나오다 선물 받은 향수 광고를 보았다.

그렇게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내가 옆에 두고 싶던 향을 내가 갖어버리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올해의 여자 향수, XXY’

 

ㅡ 2016년 10월 13일, 오후 7시 53분

정어리 –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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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을까, 아주 오래 전에 그려둔 것을 발견했다.

 

요즘 새삼 깨닫고 있다. 헌신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은 실패한 삶, 낙후된 삶이라고.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Killtrack: So many nights, I stated with this. This really kills the evening, makes me like a nocturnal..!)

 

ㅡ 2016년 10월 7일 밤 10시 43분, 토요일 케이터링을 준비하며..

정어리 – 137

방금 짐정리를 마쳤다. 정말 억울해서 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집주인이 뭐라 해도 2년 째 윗층 주인이 허락하지 않아 엄마 집 베란다 누수를 고칠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아랫층이 우리 쪽에서 방수폼과 방수페인트로 해봤지만 물이 새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덕분에 단 두권을 제외한 내 모든 책이 물에 젖었다. 다행히 모든 음반을 찬근이에게 전해준 직후의 일이다. 많은 책들이 있었다. 정말 정말 내가 좋아하던 책들이 있었다. 비싸지만 어렵게 산 디자인 책들과 이상이가 파리로 가기 전 준 책들과 새봄이가 선물해준 책과 다시는 구할 수 없는 절판본들… 너무 너무 아끼기 때문에 이미 본 책이더라도 어렵게 다시 구했던 책들 모두.. 나는 책들과 같은 박스에 있던 모든 것들을 버리기로 했다. 나를 쥐어짜던 폐쇄병동에서의 일기들과 한땀 한땀 수 천바늘 기워입던 옷들까지. 이번주는 정말 굉장하다. 믿기 어려운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괴로웠다. 믿었던 책마저.. 이렇게 되버리다니. 마음은 아프지만 더이상 원망하지 않고 그 분의 뜻이라 여기겠다.

 

ㅡ 2011년 9월 29일 우울한 저녁 6시 31분, 독일로 떠나기 하루 전까지도 비는 한달 내내 그렇게 내렸다. 나를 가볍게 떠나보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