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 70

방화범의 기도.

 

월요일, 카타르시스와의 만남은 아직도 강렬하다. 친구들로부터 좋은 메세지도 받았고, 비를 맞으며 달리는 자전거가 바닥에 나뒹굴며 턱이 찢어졌다. 친구들 여럿이 내 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내 턱을 들춰보고선 “고 하스피탈! 프리스, 스티취-아웃!” 을 외치던 녀석들도 제풀에 지쳤는지 연신 안아주기만 한다.
다시 카타르시스, 그 짧은 만남 속에서 나는 뚜렸히 보았다. 나 또한 그들의 노래 ‘방화범의 기도문’ 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고, 그들이 CrimethInc를 통해서 이야기 하는 만큼 나는 내 위치에서 해나갈 것이다. 언젠가 또 만나겠지. 기약 없는 만남을 기대하는건 고독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만남을 값지게 하기 위해서는 그 고독함이 필요하다.

 

ㅡ 2014년 9월 5일. 찢어진 턱, 오후 4시 30분.

 

 

정어리 – 67

2014년 10월 23일, 그리고 2015년 5월 29일. 23일의 나는 너를 몰랐고, 29일의 나는 너를 알고 싶다. 23일은 혼자서 바 테이블 구석에 앉아 친구들의 조잘거림을 지켜보며 다가올 숙취들을 기다렸고, 29일 오늘은 차갑게 식은 백열등 너머 어둡고도 하얀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창가, 벌어진 커튼 사이로 햇살이 고개를 내미는데, 나는 자꾸만 콧잔등이 시큰거려,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커다란 쿠션에 얼굴을 부비적거린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으련만, 그 달콤함을 잊을 수가 없어 아무래도 나는 너 때문에 나 스스로를 추스릴 수가 없네. 코에서 입술로 흐르는 무엇인가를 손등으로 훔치고나니, 손등 위로 붉은 피가 orchid처럼 보였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너를 훔치고 말거야.” 숨소리가 듣고 싶다. 떨리는 손을 갖고 싶다. 내가 이렇게 좋아도 되는걸까? 그래도 되는걸까?

 

ㅡ 2015년 5월 29일, 오후 4시 반

 

“누군가에게 한없이 빛나 눈부신 이 곳이, 누군가에게는 눈조차 뜰 수 없는 지옥이겠지.”

정어리 – 66

맥주, 보드카, 위스키, 페피.. 숙취와 함께 일어나
낯설게, 내 방을 낯설게 두리번 거리니
간밤에 친구가 들어보라며 손 등에 적어준 ‘Der Traum ist aus’ 가 있어.
부스스한 머리로 조용히 노래를 듣는다.
우린 뜨거웠지, 뜨거웠고, 내일도 뜨거울 것이라네.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ㅡ 2014년 10월 23일, 오후 3시 반

정어리 – 64

줄곧 손을 내밀겠다 생각하며 지냈다. 그것이 배려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되려 경솔했다는 것을 콧잔등이 시큰거리도록 알게 되었다. 오늘 아침 이후로는 손을 내밀겠다 묻지 않도록 걸을 것이다. 손을 잡고 안도 할 수 있도록.

“…당신의 눈길에 나는 피어납니다 / 봄이 첫 장미를 신비롭고 능숙하게 한 잎 한 잎 깨워내듯 / 당신은 닫혀진 나를 깨웁니다 / 당신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마음속 깊이 느낄 수는 있죠. 장미보다 깊은 눈빛의 음성 / 빗방울보다 작은 손이여.” ㅡ E.E. 커밍스

 

ㅡ 2015년 5월 5일, 오후 2시..

정어리 – 63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호수에서, 달이 저너머로 지나고 해가 뜰 때까지. 노란, 연녹, 하늘, 분홍, 자주 그리고 에메랄드 빛의 물고기들과 눈부신 비늘을 맞대고, 같이 호흡했다.

 

ㅡ 2015년 5월 18일, ZK/U, Moabit, Berlin.

정어리 – 62

“나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이야! 알겠어? 니하오, 곤니찌와 하지마!” 라면서 역정내는 한국인들이 있는가 하면, “너 몽골사람이니?” 할 때, “어, 나 몽골사람!” 하면서 밥 한공기, 엑스트라 서비스로 더 받는, 나같은 한국 사람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나와 한잔 더 부딪히며 시간을 나누려 할테니. 나는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 베트남, 몽골.. 사람이 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왜 자신의 손을 잡아주지 않느냐 하는 사람보다,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좋다.

 

 

ㅡ 2015년 5월 20일, 한국인이 되고 싶어하는 한국인이 역정내는 것을 바라보다..

정어리 – 61

If i can write my autobiography in the future, I will write only this: “I hate paper, fuck you!”

 

Paper, that eats my life away.

 

 

ㅡ 15. 5. 2015, after work at lately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