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 186

 

30 hours of hardcore warrior dance lefts me that my muscle bursts out. First experience, and it hurts bit, BUT I could reach to BEAUTIFUL AND STRONG NIGHT.

Now this muscle burst thing getting bloody darker than this photo. Feeling pain a bit, when I try to stand up and step by step on stairs.. Anyone has advice? Or should I meet a doctor?

 

ㅡ 2017년 7월 26일, 오전 5시 51분

최저임금은 과연 사치품인가

최저임금인상에 반대한다는 글이 계속해서 타임라인에 보인다. 이 글을 읽고도 최저임금을 마치 사치품처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지속적인 수요가 있는 사업장은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해 고용을 보장해야하고, 하청이 아닌 직접고용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하며, 하청사업장에 대한 근로조건은 원청에도 책임을 두어야한다. 최소한의 노동법조차 지킬 수 없는 사업장, 기본권을 보장해서는 운영 될 수 없는 사업장은 반드시 재편, 또는 퇴출 되어야하며, 퇴출된 사업장의 노동자는 생계를 보장받고, 다른 산업에 재투입될 수 있는 교육을 보장 받아야한다.

다시 말해 필수불가결한 수요가 있는 사업임에도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임금및 근로조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에 맞춰 고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최저임금인상 과정에서 자영업, 소규모 사업장의 재편에 대해 정부가 단순히 임금보장에서 그치지 않고, 사업장 컨설팅에 대한 지원을 해주어야한다 본다. 재편 이후에도 가능성이 낮은 사업장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퇴출하되, 다른 산업에 유입될 수 있는 지원을 마련해줘야한다.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에 경고와 페널티를, 페널티를 받고도 지속적으로 편법, 또는 불법이 적발되면 삼진아웃제를 통해 퇴출 시켜야 한다. 노동자만 사용자의 조건에 강제되고, 사용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노동법을 어기는 상황, 이런 불법적인 고용을 하는 사업장은 경제성장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ㅡ 2017년 7월 22일, 오후 5시

 

ㅡㅡ

 

 

원 글:

한 남자가 아파트 난간에 매달려 에어컨 실외기를 들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 아슬아슬하다. 이 남자는 삼성전자서비스의 에어컨 수리기사다. 이렇게 일하다가 한 번은 난간에서 추락했다. 다행히 나무에 걸렸고 허벅지가 깊게 패이도록 찢어졌는데, 사장은 옷값 줄 터이니 수리를 마치고 들어오라고 했다.

남자는
이 사진을
동료들과의 카톡방에 올렸다.
다음 주에
여기에 또 수리하러 갈 건데
유서를 써서 주머니에 넣고 갈 거라고,
죽을 때 죽더라도
삼성이 어떻게 일을 시키는지
조목조목 적어서 남겨놓을 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일하는 남자는
분급이라는 걸 받았다.

월급이나
연봉이 아니라
분급.
이동시간이나
수리 전후 준비시간,
상담시간 등을 모두 빼고
오직 수리하는데 걸린 시간만
칼같이 계산해
남자는 분급으로 225원을 받았다.

성수기가 지나면 한 달에 백만 원 손에 쥐기도 어려웠다. 비수기에 진 빚을 성수기에 번 돈으로 갚는 악순환. 남자는 악착같이 일해야 했다. 추석 명절이나 아내 출산 직전에도 수리콜을 처리하러 갔다. 처갓집에 얹혀살던 남자는 딸이 태어나던 날 “최종범 인생 끝, 최별로 새로 시작”이라면서 마음을 다잡았고, 신혼인 아내와 하나뿐인 딸을 생각하며 견뎠다.

그랬던 회사에 드디어 노조가 만들어졌다. 휴일도 밤도 없이, 건당수수료라는 불안정한 돈을 받고 일해야 했던 처지를 바꿔보자는 서비스 기사들의 뜻이 전국적으로 모였다. 남자는 희망을 가지고 누구보다 노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그 꿈도 잠시, 삼성전자서비스 본사는 노조가 만들어진 지점에서 일감을 빼기 시작했다. 노조가 없거나 약한 다른 지점으로 콜을 돌려버렸다. 노조를 해체하려는 공작이었다. 차츰 남자의 일감이 사라졌다. 일 없는 기사들이 회사 앞 공터에 쭈그려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 일이 늘기 시작했다.

스산한 바람이 불던 10월 말의 어느날. 일년 365일 중에 340일을 일했던 남자가 처음으로 아무 말 없이 결근을 했다. 밤에 나타난 남자는 동료들과 막걸리를 한 잔 했고, 가장 마음에 맞는 동료 기사와 2차로 맥주를 마시러 갔다. 잔을 앞에 두고 남자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노조가 생겼으니 잘 되겠지… 근로 기준법도 지켜지겠지. 그런데 비수기가 이제 시작인데… 눈 오기 전부터 이렇게 힘들어서야… 형들도 일감이 없고…” 남자는 계속 술잔을 붙잡고 울먹였다.

그날 늦은 밤, 아내에게 남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저런 말을 시켰다. 그러면서 종이에 119에 신고하라고 적어서 같은 집에 있던 친오빠에게 서둘러 건넸다. 별이를 바꿔달라던 남자는 아이의 숨소리만 듣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위치추적이 된 곳으로 아내와 친오빠가 급하게 달려갔지만 남자는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까지 연락이 끊겼던 남편은 – 고향 근처의 나무 아래에서 싸늘하게 식은 몸으로 발견되었다. 남자의 허벅지에는 난간에서 떨어졌을 때 찢어진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서른네 살, 갓 태어난 딸을 둔 신혼의 남자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이 죽음을 우리는 자살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가해자가 정밀하게 감춰진 타살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생각은 자유지만 마치 같은 살인범이 거리를 배회하는 것처럼 비슷한 죽음이 또다시 일어났다. 먼저 죽었던 남자와 나이도 서른넷으로 같았고 죽음의 장소도 자신들이 수리 갈 때 몰고다니던 낡은 차 안이었다. 삼성전자의 서비스 기사가 또 한 번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일하던 센터 역시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일감이 다른 곳으로 빼돌려지고 있었다.

두 번째 죽은 남자가 받은 마지막 월급은 41만원이었다.

작년부터 이런 죽음들을 전하는 기사를 보면서는 울컥하는 눈물을 삼킬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답답한 마음을 풀어준 하나의 소식이 들려왔다. 최종범씨의 딸 별이의 돌잔치 소식이었다. 딸의 첫 돌도 못 보고 아빠가 떠났지만, 그의 뜻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별이의 돌잔치를 열어준 것이다. 쓸쓸하게 떠난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려는 사람들이 돌잔치 장소를 가득 채웠다. 엄마뿐만 아니라 모여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보면서 감동받고 눈물지었던 자리였다.

그 돌잔치는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었다. 죽은 사람에 대한 부채감을 가슴에 무겁게 담아놓던 사람들이 연대의 손길을 겹겹이 포개어 내놓은 자리였다. 뜻있는 변호사들이 평생 법률 지원을 약속했고, 한 출판사에서는 평생 별이에게 책을 무료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어느 지역의 여성농민회에서는 별이 가족에게 평생 유기농 쌀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쌍용차 해고자 가족들이 잔치 장소를 섭외하고 음식을 만들었으며, 쌍용차 해고자들은 직접 나서서 돌상과 떡을 냈다. 이윤 추구에 눈이 멀어 자사 노동자들의 죽음도 모른척하는 삼성 같은 더러운 자본이 있는 이 사회에는, 여전히 인간성을 지키고 서로를 보듬어주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버티고 있다

최종범, 염호석. 두 분의 노동자가 죽고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싸웠으며, 결정적으로 전국 천여 명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 모여 노숙 농성을 한 결과로, 삼성은 반 걸음쯤 움직여 양보를 했다. 삼성이 변칙적인 방법으로나마 노조를 인정하고 협의를 하기로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게 세상은 깨어있는 사람들의 실천에 의해, 그리고 먼저 떠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잊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움직여간다.

누군가 죽어야 비로소 바뀌는 사회라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하는 내각의 모습을 보면 세월호가 가라앉으며 수백 명이 죽었던 일도 이미 그들의 기억 속에는 사라지고 없는 것 같다. 죽어야 바뀐다는 것도 지독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죽어도 모른 척 밀고가는 권력을 보는 것은 더 섬뜩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일상에서 밀려들어오는 걱정과 불안, 현란한 자극의 홍수에 맞서 그 먼저 간 사람들의 이름을 잃지 않기 위해 내 어지러운 내면과 싸워야 한다.

지난 주말 청계광장에 가니 기억을 놓지 않으려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있었다. 아무 언론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지만 누군가들은 그렇게 자신의 양심에 따라 분투하고 있다. 죽은 이들이 묻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 죽음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썼다.

“별이 아빠는 별이를 버린 게 아니라 별이에게 좋은 세상을 주기 위해 선택한 것”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수리기사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종범 씨의 딸 별이가 첫돌을 맞았다.

최종범열사 대책위원회와 삼성전자서비스노조는 13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신수동 예수회센터에서 별이의 돌잔치를 열었다. 이날 돌잔치는 최종범씨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무거운 슬픔보다 별이의 첫돌을 축하하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열렸다.

돌잔치에는 아빠의 동료들을 비롯한 하객 200여명이 참석해 별이의 돌을 축하했다.

최씨의 부인이자 별이의 엄마인 이미희(30)씨는 농성장에 참가한지 10여일 만에 별이를 처음 만났다. 돌잔치가 진행되는 동안 이씨는 별이를 품에 안고 한시도 눈에서 떼지 못했다. 별이도 이씨 품에서 이씨의 얼굴을 만지며 즐겁게 웃었다.

색동옷을 입은 별이는 많은 하객과 몰려든 취재진의 카메라 셔터 세례에 놀란 듯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돌잔치에서는 별이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영상에서 최씨는 막 태어난 별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또 최씨와 이씨 사이에서 해맑게 웃는 별이의 모습도 영상에 비쳤다.

이어 축하 노래공연들이 이어지자 별이는 공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하고 박자에 맞춰 손뼉도 치며 까르르 웃기도 했다. 즐거워하는 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과 하객들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 수 있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게”

최종범씨와 함께 천안센터에서 일했던 동료들은 “별이의 아빠가 되어주겠다”고 자처했다. 별이를 축하하기 위해 공연에 나선 최씨의 동료들은 고깔모자에 반짝거리는 망토를 입고, 노래를 부르고 편지를 읽었다. 이들은 공연을 위해 걸친 망토 아래에 삼성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최씨가 생전 즐겨 불렀다는 ‘나는 나비’를 동료가 부르자 이씨는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눈물을 흘렸다. 이씨의 품에 안긴 별이는 엄마의 눈물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은 표정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듯 옹알거리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하며 즐거워했다. 이 모습에 하객들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있었다.

최씨의 동료들은 “천안의 아빠 동료들이 이제부터 모두 별이 아빠가 되기로 했습니다. 에어컨을 세상에서 제일 잘 고치는 아빠, 요리를 제일 잘 하는 아빠, 노래를 제일 잘 부르는 아빠, 모든 아빠들이 오늘 별이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기기 위해 모였습니다”라며 “(별이)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며 어느 곳에 있든 우리 아빠들의 사랑이 늘 함께 하며 너를 지키고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짜 아빠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는지 설명해 줄 수 있도록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 놓을게”라며 “차별 없이 열심히 일한 사람이 대접받는 정정당당한 사회 만들어 놓을게. 그리고 아빠 사랑이 부족하지 않았던 예쁘고 씩씩한 딸이 되도록 도와줄게”라고 다짐했다.

돌잡이 순서가 되자 별이에게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는 별이 앞에 실타래, 붓과 벼루, 마패, 그리고 다양한 재능을 의미하는 ‘오색방지’가 놓였다. 별이가 물건들을 훑어보다 단번에 붓을 집자 하객들은 박수를 치며 축하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천주교 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은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를 가라는 뜻이 아니라 지식과 지혜를 쌓아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 서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라며 덕담을 전했다.

“별이 아빠는 별이를 버린 게 아니라 별이에게 좋은 세상을 주기 위해 선택한 것”

이날 돌잔치에는 많은 시민사회 단체에서 덕담과 선물을 별이에게 전했다.

백기완 소장은 “할애비 이야기를 들어봐라”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백 소장은 “애비가 자기 노동의 결과를 찾으려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며 “별이가 어서 커서 애비의 노동의 결과를 찾는 데 앞장서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나서 별모양이 달린 목걸이를 별이에게 선물했다. 별이는 선물 받은 목걸이를 손에 꼭 쥐고 웃어 보였다.

권영국 변호사는 “별이의 돌잔치를 하는 날이지만 노동권이 침해되는 현실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가지고 모였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 자리는 별이 아버지처럼 부당한 탄압에 또 노동자가 쓰러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아울러 “별이 어머니에게도 위로가 되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별이의 새로운 시작인 첫돌을 축하하는 행복한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축하했다.

오종렬 상임의장은 “돌잔치면 즐거운 자리여야 하는데 매우 막막한 심정”이라며 “별이가 잘 자라 행복해지려면 노동자들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동 화백은 별이와 이씨의 크로키를 즉석에서 그려 주기도 했다.

엄마 이씨는 “모든 분들이 별이의 아빠가 되어 줘서 감사하다. 남편도 하늘에서 기쁘게 보고 있을 것 같다”며 “많은 응원에 저도 용기와 힘을 내겠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길벗한의사회는 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의료지원을, 녹색병원은 별이의 10년간 무료진료권을,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은 유기농 야채와 곡식 무료지원을 약속하는 등 별이를 축하하는 선물을 각계에서 보내왔다

P.S
삼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추가하면
국산 백색 가전 가격에는
10% 전후의
AS 처리비가 구매할 때부터 포함되어 있지요
그런데
실제 AS 센터로는 3.5%만 지급이 되고
나머지는 지들이, 대기업 원청이 먹어버립니다
그러니
당연히 원청 기업이 매를맞아야죠

(송호용님 댓글 공유했음)

그리고

하나
한나래님 댓글 입니다

서비스 센터 직원들의 고충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고객평가를 항상 10점만점에 10점을 부탁드린다고 할때마다 왜저러나 싶었는데 고객평가가 8점만되도 본사에서 전화오고 월급도 깍인다고 합니다.
건수계산도 50건, 100건, 200건 이상 추가지급 준다고 정해놓고 198건이면 돈안주려 더이상 콜을 안준다고도 합니다. 참 어이없죠.

아이돌학교라는 기만

이게 학교냐

 

‘학교’라는 단어는 기만에 불과하다. 성적이 뒤쳐졌다고 퇴학?! 시켜버리는 곳을 어떻게 학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생존’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영화<배틀로얄>이 떠올랐다. <배틀로얄>은 픽션이지만, ‘아이돌 학교’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아이돌 학교’는 아이들이 아이돌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철저히 어른들의 게임에 아이들을 밀어넣은 것에 불과하다.

 

ㅡ 2017년 7월 22일, 오전 8시 22분

정어리 – 184

 

In general, I do not celebrate birthday.
I know who loves me a lot, and who doesn’t care about me. So nobody requires to say me “Happy birthday”. Because it seems just formality of human being. On my birthday, I’d like to spend time like yesterday as I have always been beautiful and strong. No fucking pointless event.

But this year was so special that I never expected. There was dancers, there was friends, and I WISHED A LOT YOU WERE tHERE.

 

ㅡ 2017년 7월 19일, 오후 10시 56분

밀려난 산업의 노동자, 그리고 차세대 산업, 함께 운명하는 공동체

 

1900년대 초반에 자동차들이 대거 등장하자 유럽에서는 마차 마부, 말똥치우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들이 대거 들고 일어나 택시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또 당대 지식인들은 유럽을 단 며칠내로 여행할 수 있는 기차의 속도를 창 밖 풍경이 뒤로 지나가는 것을 보며 이 속도가 정신병을 가져올 수 있다고 염려 하기도 하였다.

사진관이라는 산업이 사장되는 것에 사실에 나는 적극 동의한다. 그 때문에 정부가 단지 연금보험, 의료보험, 실업보험, 산재보험, 수발보험을 중심으로하는 복지를 확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장되는 산업, 기술의 진보에서 뒤쳐진의 노동자가 다음 세대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웨덴 말뫼의 조선소 코쿰스의 크레인들이 단 1달러에 한국에 팔렸고, 그 운송비용은 220억이었다. 당시 스웨덴 국영방송은 장송곡을 틀면서 ‘말뫼의 눈물’이라는 방송을 내보냈는데, 실제로 말뫼의 노동자들 대부분이 코쿰스에서 일하였고, 때문에 코쿰스의 매각은 도시 전체로 경기침체를 가져왔고, 파산한 산업도시는 마치 죽은 사회를 연상케했다. 이후 조선업 연명을 위해 투입하던 돈을 과감하게 신재생에너지와 정보기술(IT), 바이오 등 차세대 산업에 투입하였다.

말뫼 시는 코쿰스의 노동자들에게 강도 높은 실업급여를 지급하면서 새로운 산업의 노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재교육에 투자를 했다. 이후 말뫼는 다시 활기를 찾으면서 스웨덴에서 가장 유명한 인디음악의 도시가 되었다.

코쿰스의 매각과 맞물린 경제침체는 스웨덴의 보수정당이 강세를 보이게 하면서 흔히들 알고 있는 사민주의-복지국가, 시쳇말로 초좌파 국가의 면모답지않게 신자유주의를 적극 수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스웨덴은 신자유주의를 단지 수용하는 것에서 그치지않고, 밀려난 산업의 노동자에게 강력한 실업급여는 물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다시 이들을 재교육해 산업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교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교육청의 교사 지침서에서도 이에 대한 서술이 있을정도. 단, 이 보수정당의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에 대한 비판 또한 매우 거세다.

기술적 진보와 함께 사회의 구조도 첨예한 속도로 변화한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다. 어떤 산업이 사장되면서 이들이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하면 그에 따라 시장의 소비 또한 위축되기 마련이다.

98년 IMF 당시, 한국 사회는 해고되어 갈 길을 잃은 수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자가 42퍼센트나 폭증하였고,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자살자가 많은 시대를 맞이했다. 2003년 이후로 자살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사회 그 자체가 마치 살인기계와 다름 없어져 버린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의 가치에 따라 국가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후퇴한 산업의 노동자들이 공멸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성해야한다. 노동자가 소외된 사회는 결국 시장의 소비심리도 함께 위축되어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ㅡ 2017년 7월 15일, 오후 8시

페미니즘, 하위문화

2년 전에 쓴 글이지만, 오늘 읽어도 대개는 유효합니다. 다시 정리해서 기사로 만들고 싶었지만, 깅밍주 도랏나ㅡ 서퍼(surfer)들이 파도에서 떨어져 다시 다음 파도에 기어오르고, 보더(boarder)들이 다시 널판지에 올라 바퀴를 굴리고, 소음민원신고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보란듯이 다시 쿵쾅거리는 음악에 몸을 맡긴는 레이버들처럼,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고 윽박지르며 무대를 구르는 펑크들처럼 지내느라 바빴습니다. 다들 잘 지내시나요?

 

 

 

최근 한국에서 연속되는 페미니즘 이슈들을 보면서 남/녀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독일, 스웨덴 친구들이다.

0. 그러던 중 1) 80년대부터 90년대 하위문화가 어떻게 페미니즘을 지원했고, 2) 펑크, 하드코어라는 하위문화가 어떻게 문화정치운동으로 번져가며 3) 밴드 L7, Bikini Kill, The Julie Ruin, Le Tigire 등의 ‘Riot Girrrl’ 밴드들의 탄생과 4) 영화 <Tank Girl> 등의 전방위 문화적 운동이 불을 지폈으며, 5) 이후 어떻게 펑크, 하드코어의 지지를 받으며 ‘Riot Girrrl’ 무브먼트가 탄생했는지 6) 그것이 어떻게 오늘 Femen과 Pussy Riot까지 이어졌는지 전혀 모르는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보면서 한숨이 밀려왔다. 이들은 대중운동을 한다면서도 문화담론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하고 있지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아직도 100년 전 페미니즘 담론으로 여성을 피해자의 구도로 두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Hate speech와 Sexism 사이의 경계도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0-1. 한국 운동권의 경향 자체가 말로는 인터네셔널 연대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사실은 북미와 유럽의 서구 세계를 동경하는 수준에 머물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둘 간의 교류조차 없기 때문에 한국의 운동권들이 서구 활동가들을 만나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거나 유럽에서의 운동 경향을 실제로 파악하고 있지도 못하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진보정당 당원 유학생들이 “오오.. 유럽의 복지제도…”하면서 찬양하고 있는걸 보면 정말 화가나서 미칠지경이다.

0-2. 페미니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저열하기 짝이 없는 송민호의 랩을 보면 “내가 널 따먹을거야” 수준의 섹시즘, 그러니까 상대가 원치 않는데도 성적 대상화와 스테레오 타입으로 성 역할(Gender Roles)을 고착 시키는 무례함 혹은 편견과 차별적 시선이라고 볼 수 있는데, Hate Speech랑 연결 시키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사실 송민호의 랩은 조금 더 자극적이다는 면을 예외로 두면,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서 보여진 것과 다를바 없는 섹시즘일 뿐이다. 난 싸이 강남스타일도 같은 이유에서 정말 싫어한다. 내 주위의 독일 친구들도 가사 내용을 알려주니 다시는 강남스타일을 부르거나, 춤을 추지 않게 되었다.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나는 사나이 낮에는 너만큼 따사로운 사나이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 버리는 사나이 그런 사나이”
ㅡ 강남스타일의 가사 中

0-3. 섹시즘과 헤이트 스피치는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르다. 또한 섹시즘과 성적 농담 또한 다르다. 이들에게 동일한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것이 그 성격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두고 이름 속에 담긴 뜻이 믿기지 않는다며, “만약 내가 너와 섹스를 했으면, “난 어젯밤 민주주의와 잠자리를 갖었어”라고 할 수 있는거지?” 하고 까르르 웃는 내 주변의 독일, 스웨덴 등의 유럽 여성 페미니스트 친구들은 모두 날 성희롱 한 것이므로 나는 이 페미니스트 친구들에게 성희롱에 대한 공개 사과를 요구 해야하는 것일까?

1. 아무튼 이러한 인식의 부재는 다음과 같은 일들의 불이해로 이어진다. 실제 유럽에서는 펑크-아나키스트들과 안티파들이 Femen과 Pussy Riot에 대해 지지를 하지만, 방법론에서 이견이 있음을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전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말이다. 아마 Pussy Riot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한국어로는 처음 서술 되는 것일텐데, 실제로 Pussy Riot의 경우는 러시아 내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도 Pussy RIot의 멤버 중 한명이 ‘아방가르드 아트’를 위시로한 퍼포먼스에 대한 이견들이 있다. (그들에게 연대를 안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이견이 갈리는 퍼포먼스 두가지 중 한가지가 슈퍼마켓에서 냉장통닭을 자신의 보지에 집어넣는 것을 촬영하며 나오다가 슈퍼마켓 점원에게 절도를 근거로 붙잡히면서 여성주의 구호를 외치는 행위와 러시아 정교회가 예전에 비해 성소수자나 여성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던 분위기에 정교회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퍼포먼스로 오히려 적대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며 다른 활동가들도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내게 전해준 당사자는 러시아 아나키스트 씬 내의 갈등이 외부로 나가 운동의 결속력이 약화되는걸 걱정하면서도 Pussy Riot의 방법론에는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2. 지금의 상황은 데이비드 트렌드가 언급한 ‘Leftist Economics, 좌파 경제주의’를 상기시킨다. 좌파들은 오직 경제적 관점으로만 계급에 몰두하는 자세로 대중운동에 임하면서 범-개혁,·진보 진영 내부에서조차 충돌을 유발하는 것과 같다.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운동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는 범-좌파는 물론이고 진보진영에서조차 만연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데이비드 트렌드는 좌파들이 오직 경제적 관점에서 계급 투쟁에 몰두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불만을 표출했는데, “트렌드는 좌파들의 그런 경향이 좌파를 많은 잠재적 동맹자들로부터 고립시켜왔을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미디어라는 영역을 좌파운동의 중요한 전장(戰場) 중 하나라고 보는 시각을 평가절하해왔다”며 비판했다.

3. 또한 데이비드 트렌드는 본인의 저서 <문화민주주의: 정치, 미디어, 뉴테크놀로지>에서 “‘정치를 경제학이라고 협소하게 정의함으로써 급진주의자들은 공영방송, 예술 기금, 심지어 학교 교과서를 둘러싼 전투에서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쥐도록 방기해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왜 지금까지 좌파가 문화전쟁뿐만 아니라 미국의 정치를 둘러싼 광범위한 투쟁에서 패배해왔던가를 설명해주는 주된 이유가 된다. 정치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 이미지, 저술활동 등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정보의 권력은 AT&T와 펜타곤에 고스란히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매스미디어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좌파 특히 학계에 있는 좌파들이 ‘주류적’ 관심사와 완전히 동떨어져있다는 일반의 인식은 기세 좋게 확산되어갔다.” 즉, 보수주의자들은 대중과의 호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4. 최근까지도 유리 로뜨만의 <문화와 폭발>를 복기하고 있는 내게 지금의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 심지어 15년간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어 제 2의 100인 회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만큼 한국의 진보세력은 대중운동을 하면서도 문화의 흐름을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동시에 문화를 절대적으로 평가하며 교조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PC(Political Correct, 정치적 올바름)와 Anti-PC에 대한 논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나친 PC 도착증이 유럽 운동을 얼마나 분열시켰는지는 다음에 다루겠다)

5.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서구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동경 어린 시선’은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예를 들어 저항적인 록음악 중, 펑크, 하드코어 둘다 음악에 있어 어느정도 남성성이 있음은 막연히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특히나 페미니즘, 라이엇걸 무브먼트는 펑크라는 ‘삶의 태도’, ‘직접행동’으로서 라이엇걸 페스트, 걸프론트밴드 페스트 등은 물론 많은 여성주의 워크샵, 그리고 바이크메신저라는 하위문화와 결합하여 LGBT 운동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특히나 아니키즘을 기본 사상으로 하는 아나코/크러스트 펑크와 그라인드코어라는 하위 문화가 말이다.

5-1. 이는 80년대 말, 90년 대 초부터 L7, Bikini Kill, Le Tigre 등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으며, 대중문화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페미니스트로서 이 역사적인 사건들을 모르고 운동한다는 것은 사실 나로서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6. 이 하위문화가 가져다주는 변화의 증거는 바로 이슬람 펑크 ‘Taqwacore’를 보면 알 수 있다. ‘Taqwacore’ 씬내에서는 무슬림 내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반대해 여성들이 펑크, 하드코어 공연장에서 히잡을 벗어던지고, 남녀가 함께 슬램을 하며, 남성 펑크들이 이 여성들의 권리를 지원한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책 들고 무슬림들에게 남녀 평등의 중요성을 설교하는 식의 계몽주의를 넘어서서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되는 훨씬 강력한 하위문화운동이 되었다. 미국이 아랍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알카에다를 잡겠다며, 빌어먹을 폭탄을 아랍에 떨어트릴수록 그 빌어먹을 자유와 평화를 거부하고, 여성차별을 당연시 하던 문화가 자발적으로 여성차별을 반대하는 문화로 발전한 것이다.

7. 환기 시키면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갱스터 랩퍼들은 진짜 총을 들고 다니면서 상점을 털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갱스터 랩퍼들은 랩퍼 송민호가 했던 랩보다 더 심한 비유나 직설화법들을 통해 남성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랩퍼 송민호는 코카인을 하지도 않고, 대마를 피우지도 않는 반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갱스터 랩퍼들은 대마는 물론, 코카인 쯤은 아무렇지도 않게하고, 성매매가 불법임에도 길거리 매춘부들을 사서 마약, 섹스파티 했던 이야기를 자랑처럼 늘어놓는다. 어릴 때 마약 딜러, 혹은 마약 딜리버리 같은 범죄를 저지르다 친구들이 총 맞고 죽은 이야기도 태연스럽한다.

7-1.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락스타 밴드들도 그랬다. 80년대 팝메탈(LA메탈) 밴드 머틀리 크루 같은 수 많은 밴드들의 경우는 실제로 부인들을 뒤 투어버스에 태우고 자신들의 버스에는 그루피들과 매춘부로 가득 채운채 코카인을 흡입하며 “온동네 여자들을 다 따먹겠다” 하면서 전미투어를 돌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열광했다. 그 중에는 실제로 그런 삶을 즐기고 싶지 않지만, 밴드의 저항성을 남성성과 혼합하여 보여주는 캐릭터로 했기 때문에 그런 채 해야했던 밴드들도 있다.

7-2. 그리고 신디 로퍼는 ‘집-공장’의 싸이클을 반복하는 공장 소녀들에게 힘을 불어주며 “소녀들은 단지 좀 놀고 싶은 것뿐”이라고 노래를 했다. 이 노래를 들은 소녀들은 일 끝나고 부모님의 통제를 떠나 밤 늦게 남자들과 질펀하게 놀 기회를 달라고 부르짖었다. 실제로 남자들과 질펀하게 노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녀들의 자신들의 의지로 무엇인가 선택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7-3.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남녀를 막론하고 많은 록스타들이 어떤 문화를 향유했다. 맞다, 시대가 변했다. 오늘은 85년이 아니라, 2015년이다. 하지만 그 밴드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나는 여기서 어떤 성관념의 벽이 우리 사이를 가로 막음을 느낀다.

7-4. 오늘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이 끝난 직후 화장실에서 남들 모르를 질펀펀한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관객은 몇이나 될까? 아니, 로큰롤을 상징하는 손모양을 치켜 세우며 “섹스, 드럭, 로큰롤”을 외치는 한국 락페스티발의 관객들 사이에서 과연 페스티발 캠핑장에서 하룻밤 섹스를 즐기는 관객은 전체의 몇이나 될까.

7-5. 우드스탁, 글래스톤베리 등등의 ‘사랑, 평화, 섹스, 마약’ 그런 기호가 가득한 락페스티발을 동경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조금도 그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현실에서 이들은 차라리 ‘록음악에 반대하는 기독 부모협회’ 피켓을 들고 다니는 쪽에 가까운 사람들처럼 법을 잘 지키고 살 것이다. 우리는 마릴린 맨슨이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여성형 유방을 달고 나와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환호를 한다. 그 피가 가짜 피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마릴린 맨슨이 피칠갑이 아니라, 스님이나 목사님 같은 행색으로 목탁을 두들기며, 찬송가를 부르며, “이웃을 사랑하세요”, “친구에게 상처주지 마세요”, “반정부 운동은 나빠요, 주님의 힘으로 이겨냅시다~” 했다면, 우리는 아마 지금 마릴린 맨슨의 이름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8. 7의 이야기는 잊어도 좋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운동이 문화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계급적 갈등이나 차별에만 포커스를 둘 경우, 범-개혁, 진보 진영 내부에서조차 사람들 간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어떤 사람들은 아마 지금쯤 사회당의 덕후위원회를 잊지않고, 떠올릴 것이다) 저항문화 진영의 밴드들이 남근주의적 마초맨 기질을 갖고 있다거나 청소년이 밴드를 하는 이유엔 ‘남자다움’이라는 동기가 내재돼있다고 보는 관점은 그런 충돌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 시사한다. 이에서 그치지 않고, 인종, 지역, 성별 등을 위시로한 문제와도 충돌할 것이다. 나아가서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필요성조차 잃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항 문화 자체가 갖는 역동성과 남성성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다.
사람마다 다른 투쟁방법을 갖고 있겠지만, 나는 집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시켜주세요’ 하고 다소곳이 앉아 홀로 기도하는 것보다 나는 길거리에서 더 소리높여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 관피아, 범죄자들을 처벌하라!” 라고 하는 것이 유효한 저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9. 레니 브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너무 길어지겠지만, 잠시해볼까 한다. 레니 브루스는 음담패설하고, 미정부 욕을 공공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시작한 사실상 첫 스탠딩 코메디언이었다. 이 때문에 FBI는 그의 모든 공연을 쫒아다니며 F-word와 C-word를 빌미로 음란공연죄라며 수갑을 채웠다. 실제로 그는 자지, 보지를 수시로 내뱉는 걸판진 코메디언이었다.
그렇게 말할 자유를 잃어버린 그의 말년은 불후했다. 코메디언인 그는 문학이나 신문이 아닌 법전을 말년 내내 끼고 살았고, 그는 승리를 보지 못한채 외롭게 죽어버렸다. 그러나 사후 2002년, 미 대법원은 그가 없었다면 미국의 건국이념인 자유, 그 중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제약 받았을거라면서 그에게 사후승소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9-1. 대표적인 미국 스탠딩 코메디언 루이ck, 죠지칼린, 빌 힉스, 크리스 락은 물론이고, 여성 페미니스트 코메디언 레나 던햄, 사라 실버만이 지금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며 발언할 수 있는 이유가 레니브루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라 실버만 같은 여성 코메디언이 코난 오브라이언 쇼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해 자신의 가랑이 사이 위에 보지를 상징하는 입모양 사진을 올려두고 코난을 곤란하게 하는 코메디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레니 브루스가 없었다면, 여성 코메디언이 자신의 가랑이 사이의 상징적이기만 한 가짜보지 퍼포먼스를 했다는 이유로 감옥 신세를 졌을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사라 실버만은 SNL에서 상반신 탈의하는 단막극을 선보인바 있다.
(Sarah Silverman’s Dirty Smartphone Hack – CONAN on TBS *자막있음: https://www.youtube.com/watch?v=YwE8LBREwEM)

10. 랩퍼 송민호의 랩이 굉장히 저열하기야 하지만, 그것을 있느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는 곧 호러펑크, 싸이코빌리, 고어-, 포르노그라인드코어, 블랙-, 데쓰메탈 뮤지션들은 다 강간범에 연쇄살인후 시체강간하는 사람들이고, 림프비즈킷이랑 콘 류의 얼터너티브 메탈 밴드들은 다 포주라고 말하는것과 다를바 없다. 실제로 얼터너티브 메탈은, 누 메탈로 불리기도 하면, Pimp rock(포주 락)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흠, 판단은 당신에게 맡기겠다.

10-1. 다만 유엔 산하 인권재판소에서는 이미 “표현의 자유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무해 또는 무관심하다고 생각되는 정보와 사상뿐 아니라, 해롭거나 충격적이거나 불안케 하는 정보와 사상에 대하여도 효력이 있다”라고 판결 내린바 있다. 특정 상황에 맞도록 편의상 제약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란게 아니란 것이다.

10-2. 하지만 미국은, 유럽은 선진국이니까 알아서 잘 조절할 수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줘도 되지만, 한국인은 아직 표현의 자유를 다룰만큼 국민성이 성숙하지 못하므로 차별을 줘야 한다는 것은 마치 박정희를 떠올리게 하고, 리콴유를 떠올리게 한다.
“외국은 모르겠지만, 한국은 아직 이른 문화야.” 라는 식은 조금도 이해하기어렵다. 한국은 표현의 자유도 보장 받기 아직 이르고, 민주주의도 보장 받기 아직 이르다는 것과 동의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으로는 10년 뒤의 한국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닫. 우리 한국인에게는 갱스터랩도, 호러펑크도, 그라인드코어도, 블랙메탈도 이르고, 그래서 그런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훨씬 소수인 lgbt의 권리 보장은 더욱이 아~~~~~~~ 주 이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서구에서도 보면 그런 인디음악, 하위 문화들이 페미니즘, lgbt 운동을 격렬하게 지지하며 지금의 위치로서는 기폭제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하건데, 송민호의 랩는 내 귀에는 너무 지루하고, 가사 또한 저열, 조악하다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11. 얼마 전에도 했던 이야기다. 남녀간 권력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앞선 선례들을 보면 여성을 피해자 프레임에서 권리의 주체로 놓으려는 수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여성이 피해자가 아니다” 라는 말이 아니다. “여성은 약자가 아니며, 동등한 권리의 주체다 ” 라는 인식을 여성과 남성 모두가 가져야 한다는 겁이다. 여성을 피해자 프레임에만 가두면 결국 여성은 스스로를 약자 의식을 갖게 됨은 물론, 남성도 여성을 약자,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여성이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생긴다.

11-1. 피해를 토로하는게 정치적 주체의 행동이 아니란 말이 아니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여성이 능동적인 권리의 주체, 가령 위에서 뉴욕의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하고 있는 토플리스 운동이라던가 노브라 운동 같은 여성 스스로의 운동이 생기지 않으면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11-2. 때문에 여성을 피해자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15년 전과 같은 길을 밟겠다는 것이다. 제2의 100인회를 만들자는 것도 사실 아무 의미 없다. 15년 동안 여성이 피해자의 프레임 이외에 능동적인 권리의 주체가 한번도 되본 적도 되려고 해본 적도 없기 때문. 여성이 피해자 프레임에 갇힐수록 여성은 자연스럽게 ‘보호받아야할 대상’이 되고, 이는 마초이즘의 지지하는 한 축이 되기까지 한다.

11-3. 뉴욕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펑크, 아나키스트, LGBT, 바이크 메신저와 같은 하위문화의 지원을 받아 공공장소에서 토플리스 책읽기를 하는 운동을 벌인지 5년이 지났고, 이제는 단지 하위문화의 전유물이 아니라 할만큼 지지세력이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바로 얼마 전부터 여성들이 노브라 운동을 하는 등의 여성이 권리의 주체가 되는 행동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 한국의 페미니즘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생각해볼 때, 피해사실을 폭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여성이 차별 받지 않는 것이 사회의 기본 토대로서 작동하려면 여성이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만큼 페미니즘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여성은 보호받아야할 약자로서 규정 되지 말아야한다. (이 글에서 너무 반복해 이야기해 지겨울 수 있겠다)

11-4.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피해자 프레임에 갇히고,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일은 서구 문명에서 일어나는 여권신장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동경으로 귀결된다. 또한 이는 페미니스트들 간의 연대 또한 약화 시킬 뿐이다. 살해 당할지 모르는 위협을 무릅쓰고, 히잡을 벗고, 상의를 탈의하고 가슴을 드러내며, 여성의 권리를 외치는 아랍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을 보라. 한국 여성들이 너무 많은 폭력을 입고 있기에 피해자로서만 이해 받으려하고,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되길 두려워한다면 여성들이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여성을 동정하는 남성들에게 수동적인 보호를 받을 뿐이다. 마치 밖은 위험하다는 주인의 염려와 함께 산책시 목걸이가 걸리고, 집 안에서만, 휴지를 찢고, 밥 그릇을 엎어가며 집 안을 어지를 자유를 갖게되는 새끼 강아지처럼 말이다.

00. 원래는 짧게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 이야기 하려다 의도찮게 횡~설~~~수~설~~~~~~ 길게 써버렸다. 조만간 베를린 페미니즘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곁들여 다시 작성하는……. 내가 이 구역의 A-Social이다~~~~ 이 글은 퍼가지 말라~ 이 구역의 A-Social 김민주가 다시 쓸 것이다~~~~~ 그럼 나는 오마샤리프 선생에게 안녕을 고하며, <닥터 지바고>를 보러간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 영상 링크는 영화 <Tank Girl>의 유명한 모래 샤워씬이다. 포티쉐드의 음악. 원한다면 영화를 공유하겠다. 페미니즘에 관심 있다면, 꼭, 꼭 봐야하는 영화! Pussy Riot을 위한 컴필, This is what feminism sounds like! 컴필도 다 보내줄 수 있음!

 

ㅡ 2015년 7월 14일 작성됨

정어리 – 183

 

“Moth”

The flies came into my room by the opened window.
Tada, tadada, the sound of flying moth to crash glass, that desperately crave to get out of my room.
The same thing as today, I am.

ㅡ With the grass bugs in my room rushing into the window fiercely.

“나방”

열린 창으로 들어온 녀석들.
나가고 싶어 닫힌 유리를 마주하고 타다, 타다다.
꼭 오늘의 나와 같은.

ㅡ 맹렬히 창으로 돌진하는 내 방 안의 풀벌레들.

 

ㅡ 2017년 7월 13일, 오후 2시 1분

정어리 – 182

형제, 자매, 텅멍구리 여러분. 미래를 걱정하여 정작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자신을 후회한들, 오늘 지금 이 순간을 포기하여 내일만 바라본다한들 그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 무엇을 탓한다고 내일 그 무엇인가 달라지겠습니까.

 

ㅡ 2017년 7월 14일, 오전 5시 11분, 무엇하랴-

정어리 – 181

H A M B U R G A N D T O D A Y

“To-morrow for the young the poets exploding like bombs, The walks by the lake, the weeks of perfect communion; To-morrow the bicycle races. Through the suburbs on summer evenings. But to-day the struggle.” ㅡ ‘Spain’ by Wystan Hugh Auden, 1937

“내일은 젊은이들을 위하여 시인들의 열정이 폭탄처럼 폭발하고, 호숫가를 걷고, 몇 주 동안 완전한 친교를 나눈다. 내일은 여름날 저녁에 교외를 통과하는 자전거 경주를 한다. 하지만 오늘은 투쟁” ㅡ 위스턴 휴 오든의 ‘스페인’, 1937년

 

ㅡ 2017년 7월 9일, 오전 12시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