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일요일 저녁.

 

온몸이 찌뿌둥하던 찰나에 p가 사우나를 하자고 했다. 크, ‘일요 사우나’! 사우나가 종종 그리웠는데, p가 숲 속에 지어놓은 핀란드식 사우나 덕분에 무엇인가를 그리워 할 일이 하나 줄었다.
핀란드식 사우나. 매번 이야기 하지만, 오븐에 물을 뿌릴 때 마다 피어오르는 증기가 피부에 닿을 때는 피로에 지쳐 죽어있던 신경들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작은 사우나 안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며, 피부 위로 송글송글 맺힌 땀들이 흘러내리며, 지난 며칠 간의 피로도 그렇게 사라진다. 어두운 숲 속에서 달 빛에 실루엣으로 비치는 남, 녀들의 모습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포기 할 수 없게 만든다. 사우나를 하고 잠시 풀 밭에 누워 가슴과 어깨 위로 피어오르는 열기 사이로 숲을 바라다보면,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숲을 보는 것만 같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풀 밭에 누워 보름달에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들을 바라보면, ‘문명의 이기’ 라는 말이 실재함을 다시 상기 시키게 한다. 담장 너머 여우들이 서성이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 수풀 사이로 부딪히는 바람 소리들을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것들은 예술에서 만날 수가 없다.

 

본래는 어제도 평소처럼 7시에 가기로 하였는데,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겨울에도 숲 속에서 사우나를 즐길 수 있도록, 일종의 월풀인 Jacuzzi 를 만드는 계획을 이야기 하기 위해 서두르기로 했다. 도착하고나니 숲 속, 농장 콜렉티브에는 아이들이 놀 시설을 만들기 위해 사우나를 해체해서 30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사우나를 옮기는 계획이 있었다. 그렇게 4명이 시작한 이 일은 중간 중간 합류한 다른 친구들이 함께 하였다. 오븐이나 여러 장비들, 산더미 같이 쌓인 나무들을 나르는 것은 순조롭게 진행 되었지만, 사우나 웨건을 인력을 끄는 일은 예상 밖의 난점을 맞았다. 목표 지점을 5m 남겨둔 채 바퀴 한쪽이 웅덩이에 빠진 것. 결국 5t의 무게를 들 수 있는 유압펌프를 사용해 동시에 사방에서 끌고 밀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아. 1시간이면 완료할 것 같았던 이 일은 3시간이나 지속 되었고, 완료한 이후엔 이미 대부분의 친구들은 지쳐버려 사우나를 포기한채 돌아갔다.

 

그러나 나와 p, k는 거기에 남아 3시간 가량의 사우나를 즐겼다. 평소보다 친구들이 적었기 때문에 70~ 80도를 유지하는 사우나 안은 온도가 떨어지지 않아 더욱 후끈했고, 측백나무 향으로 가득한 사우나에 k가 가져온 유칼립투스 오일로 지난 며칠 비염 증세는 말끔히 사라졌다. 아마 어젯 밤부터 유칼립투스와의 사랑앓이를 시작한 듯, 그 향은 잊혀지지 않는다.
친구들은 한국에 사우나 문화가 널리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남녀가 함께 하지 않는 다는 것과 남녀가 서로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없이 서길 꺼려한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암묵적으로는 성을 파고 사는 일을 흔하게 벌어지지만, 공개적으로는 성을 적극적으로 숨기고 수치스러워 하는 문화. 어쩌면 p와 k가 놀란 것은 이제는 일본에서도 사라져가는 혼욕 문화가 서구에는 아직도 흔한 일상처럼 알려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이야기를 이어가다보니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게 되었는데, 여성의 노출이라던가 성차별, 그리고 어제 친구들과 이야기 했던 결혼이라는 계약제도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다. 한국의 주류 페미니즘이 여성의 주체성보다는 수동적으로 권리를 쟁취하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는데, 한국의 가부장적인 제도가 지금은 사라져가는 과거 유럽의 가족 구조에서 발견된다는 것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소득이 적고, 또한 결혼 이후에는 대부분 남성이 소득을 위한 노동을 하며, 여성이 전적으로 가사 노동을 한다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독일의 경우는 2차 대전 직후부터는 그러한 문화가 사라져가기 시작했는데, 이에는 육체노동에 있어서도 여성들이 나서며, 여성의 주체성을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 위치 시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도 결혼제도라는 것이 여성의 주체의식을 소극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지금 독일의 성평등을 향한 움직임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들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한국의 남성연대에 대해 이야기 꺼냈고,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자로서의 k나 남자로서의 p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하지만 1대 1 교제에 대한 강박과 자기구속, 남성 권력의 여성 구속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보수적인 한국에서는 놀랄만한 일이 아니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터키와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거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한국 사회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일방적인 폭력을 가하고, 남편이 아내의 사회적 활동을 제약하는 것이 흔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상기해보면 이해가 더욱 쉽다. 환경과 교육을 생각해보면, 한국의 진보 안에서도 남성들은 자신들의 권력적인 위치를 쉽게 포기할 수 없으며, 여성들도 여성의 주체성보다는 단지 막연한 해방에만 초점을 두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실제 해방이 주어진다고 하여도 그 해방감이 오히려 자신의 무력함으로, 다시 주체성을 상실하도록 만들어진다. 한국 운동권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쉬쉬하는 문화도 상당부분 여기서 기인하고, 영향 받은 것이다. 때문에 남성연대가 느끼는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일베의 공개적인 여성 혐오는 조금도 새롭지 않다.

 

분단을 겪고 있고, 공산주의로 시작해 독재로 전락한 북한과 자본주의를 적극 수용한 남한 사회에 대해 분단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독일의 관심은 굉장히 높다. 때문에 남한에서 다루는 한반도 정치보다 독일에서 다루는 한반도의 정치 관점이 더 다양하기도 하다. 때문에 지금 김정은을 둘러싼 무성한 루머. 한달 가량 미디어에 나타나지 않는 김정은과 북한의 권력 3인이 남한테 방문한 것이 쿠데타라던가 어떤 변화의 가능성에 있지 않을까에 대해 친구들은 한국사람으로서 어떻게 읽히는지를 물었다. 나는 “아직은 아무 것도 단정 내릴 수 없다.” 고 이야기를 열었다. 하지만, 지금 남한을 방문한 실세들 중 특히나 최룡해는 굉장히 잔인한 인물이기 때문에 내 관점에서는 적어도 서유럽 자본주의를 즐기며 성장했던 김정은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이 통일에 더 가까울거라 이야기 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내게서 유칼립투스 향이 났다. 바람을 타고, 풀잎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거실에 앉아 조용히 차를 한잔 마시고 잠에 들었다.

 

ㅡ 2014년 10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