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범의 기도

 

x.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읽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최신글보기’ 이고, 또다른 하나는 ‘인기소식’ 을 중심으로 읽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미고지 사용자 심리조작 실험 소식을 듣고나서 ‘최신글보기’ 로만 읽기를 몇달 해본 결과, 평소 타임라인에 잘 뜨지 않던 내용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페이스북에서 다른 사람의 타임라인을 읽는 시간이 적어졌다. 그만큼 ‘좋아요’ 수도 줄었고, 온라인에서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시간이 줄었다. 한국과 베를린의 시간차는 7시간이기 때문에 내가 주로 사용하는 시간은 한국의 이른 새벽이거나 아침 혹은 점심시간이다. 더욱이 더이상 핸드폰 쓰기를 거부하고 있는 지금에서는 페이스북에서 대화가 더 줄어들었고, 혼자 생각하거나 글을 읽는 시간이 늘었다. 사실 ‘좋아요’ 수는 사실 내 담벼락에선 별 의미 없다. 그런게 필요했으면 내 담벼락을 전체공개로 했을 것이고, 더욱이 내 글을 공유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의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dx3 페이지를 굴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읽고 생각하길 바랐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는지는 확실히 알 필요가 있어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상당히 제약된 조건에서 해야한다. 제약이 있다고 해서 그만두어야 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제약됨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x. 월요일, 카타르시스와의 만남은 아직도 강렬하다. 친구들로부터 좋은 메세지도 받았고, 비를 맞으며 달리는 자전거가 바닥에 나뒹굴며 턱이 찢어졌다. 친구들 여럿이 내 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내 턱을 들춰보고선 “고 하스피탈! 프리스, 스티취-아웃!” 을 외치던 녀석들도 제풀에 지쳤는지 연신 안아주기만 한다. 내가 볼 땐 병원은 확실히 과해보인다. 다시 카타르시스, 그 짧은 만남 속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분명히 말하기 어려워도 나는 뚜렸히 보였다. 그들의 노래 ‘방화범의 기도문’ 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고, 그들이 CrimethInc를 통해서 이야기 하는 만큼 나는 내 위치에서 해나갈 것이다. 언젠가 또 만나겠지. 기약 없는 만남을 기대하는건 고독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만남을 값지게 하기 위해서는 그 고독함이 필요하다. ‘방화범의 기도문’ 가사가 aus-rotten 쌍따귀 날릴 정도로 긴 옥중서신 같은 것이라 며칠 이따 번역을 완성하겠다. 번역은 개판이지만, 가사는 기대해도 좋다.

x. 월요일 이후, 계속해서 우베 볼의 영화들을 보았다. 이 빌어먹을 세계에 염증을 느끼며, 맞닿아있다는 생각들이 지금 내가 있는 곳 이 밖에도 어디선가 계속 되고 있음은 확신했다. 비록 우베 볼의 표현방식에는 석연찮음이 남으면서도 지금하고 있는 작업에 한층 확신이 더 해졌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할 것은 이것을 통용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폭력’. 그 두 글자를 어떤 것은 ‘필요한’, 어떤 것은 ‘기피해야할 대상’으로 이분법을 다시 읽어볼 것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이화를 더디게 한다. 어떤 행위가 폭력인지 다시 되짚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지금은 다시 화염병을 던져야 할 때. 그 화염병은 우리의 사유와 향유.” 라고 줄곧 이야기 해왔지만, 과연 사유와 향유만이 화염병이어야 하는지 또 다른 화염병들은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한다.  폭발을 가능케 하는 것은 폭발을 유도할 무엇이나 폭발의 이유가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자유를 요구하는 행위는 자유가 아니듯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본주의, 계급주의 혹은 학벌주의나 집단주의 등의 폐해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이유는 자유로울 줄 몰라서가 아니라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 는 스스로의 강박과 죄의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더욱 빠르고, 쉽게 문화를 뿌려놓음으로서 그 강박을 가중화 시킨다. 너무도 쉽게 앤디 워홀과 스티브 잡스를 만나고, 너무도 쉽게 50명의 좆같은 빈혈증 스타들을 만나, 너무도 쉽게 성공담을 듣는다. 그리고 그것을 답습하지 않으면 안될 강박증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들의 두 손 위에 담겨있는 것은 이 세계의 피와 먼지들뿐인 것이다. 이들은 멍청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두 손 위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잘 인지하면서도 그럴수록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 강박으로 스스로를 밀어넣는다.

x. “내일은 젊은이들을 위하여 시인들의 열정이 폭탄처럼 폭발하고, 호숫가를 걷고, 몇 주 동안 완전한 친교를 나눈다. 내일은 여름날 저녁에 교외를 통과하는 자전거 경주를 한다. 하지만 오늘은 투쟁” ㅡ 위스턴 휴 오든의 ‘스페인’ 中, 1937년

“To-morrow for the young the poets exploding like bombs, The walks by the lake, the weeks of perfect communion; To-morrow the bicycle races Through the suburbs on summer evenings. But to-day the struggle.” ㅡ ‘Spain’ by Wystan Hugh Auden,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