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ube=://www.youtube.com/watch?v=6L_dqi1ye4U&w=420&h=315]
한달이 좀 넘었을까, 마지막 전화 이후로 단 한번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 후에는 줄곧 꾹꾹 눌러가며 술을 마셨다.
종종 어여쁜 이들이 내 곁에 앉아 사랑을 느끼는 것 같다 속삭였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빈잔을 만지작 거렸다.
외로웠고, 혼자 있고 싶진 않은데 그런 감정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내게 그리고 그 어여쁜 이들에게나 실례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서운한 표정 짓지 말아요, 그대.
그러던 어제, 친구 p가 내게 베를린 근교에 직접 만든 사우나에 가자고 했다.
핀란드식 사우나.
어여쁜 친구들 i와 c, m을 만났다.
세 친구 모두 여성용 자전거가 아닌 로드바이크를 능수능란하게 탔다.
자전거 페달을 한번더 밟을 때 마다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 둘 사라졌고,
별들이 가까워졌고, 풀벌레 소리가 났다.
우리는 그렇게 교외로 빠져나갔다.
꽤 달린 후에 어느 울타리 안 쪽으로 들어갔다.
숲 길을 따라 조금 걸었고,
작은 오두막.
나무땔감들을 하나둘 모아 히터에 불을 지피고서
작은 초 몇개에 둘러 앉아 싸구려 맥주 한병에 담소를 나눌 때쯤,
멀리서 친구 l이 보였고, 그가 내 옆으로 왔을 때
반가운 마음에 부등켜 안고, 풀밭을 뒹굴었다.
두 친구는 대마를 피웠고, 나는 그리 즐기지 않기 때문에 사양했다.
그러던 중 맥주병은 바닥을 보였고,
나는 가방 속 깊숙히 넣어둔 보드카를 꺼냈다.
꽤 쌀쌀한 날씨에 보드카는 얼굴들을 붉게 물들였다.
한 친구가 바들바들 떨 때쯤,
한 친구가 밤 하늘을 가리키고, 유성이라며 소리칠 때쯤,
p는 사우나가 충분히 덥혀졌다고 말했고,
우리 모두 벗고 사우나 안으로 들어갔다.
사우나 안에는 열기가 가득했고,
편백나무 향과
작은 창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달빛이 가득했다.
달빛에 비치는 맨살의 실루엣들과 우리는 작은 담소를 이어나갔다.
프랑스는 어떻고, 스웨덴, 핀란드, 독일, 한국, 영국..
그러한 각자의 나라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과
그리고 지난 여행 이야기들과
스쳐지나간 시간들.
비처럼 땀이 쏟아져 내렸고 밖으로 나오니 아까의 그 쌀쌀한 바람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시원한 바람이 몸을 스쳤다. 그리고 풀잎들을 스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벌레들이 노래했고, 촛불들이 일렁였다.
보드카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맨살의 우리들은 서로의 행복한 미소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너차례 사우나를 즐기면서 조용한 담소를 나눴고,
우리는 더 취하기 전에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사우나를 식히기 위해 문을 활짝 열고,
뜨거운 살결들도 식히기 위해 시원한 물을 끼얹고, 몸을 털어냈다.
약간 취한 그 느낌이 좋아,
맨발로, 맨살로 걷다가 무엇인가 화끈거려 달빛에 비춰보니 쐐기풀이었다.
집으로 페달질 하는 길은 더욱 시원했다.
헤어지는 길 위에서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ㅡ 2014년 8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