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하위문화

2년 전에 쓴 글이지만, 오늘 읽어도 대개는 유효합니다. 다시 정리해서 기사로 만들고 싶었지만, 깅밍주 도랏나ㅡ 서퍼(surfer)들이 파도에서 떨어져 다시 다음 파도에 기어오르고, 보더(boarder)들이 다시 널판지에 올라 바퀴를 굴리고, 소음민원신고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보란듯이 다시 쿵쾅거리는 음악에 몸을 맡긴는 레이버들처럼,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고 윽박지르며 무대를 구르는 펑크들처럼 지내느라 바빴습니다. 다들 잘 지내시나요?

 

 

 

최근 한국에서 연속되는 페미니즘 이슈들을 보면서 남/녀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독일, 스웨덴 친구들이다.

0. 그러던 중 1) 80년대부터 90년대 하위문화가 어떻게 페미니즘을 지원했고, 2) 펑크, 하드코어라는 하위문화가 어떻게 문화정치운동으로 번져가며 3) 밴드 L7, Bikini Kill, The Julie Ruin, Le Tigire 등의 ‘Riot Girrrl’ 밴드들의 탄생과 4) 영화 <Tank Girl> 등의 전방위 문화적 운동이 불을 지폈으며, 5) 이후 어떻게 펑크, 하드코어의 지지를 받으며 ‘Riot Girrrl’ 무브먼트가 탄생했는지 6) 그것이 어떻게 오늘 Femen과 Pussy Riot까지 이어졌는지 전혀 모르는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보면서 한숨이 밀려왔다. 이들은 대중운동을 한다면서도 문화담론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하고 있지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아직도 100년 전 페미니즘 담론으로 여성을 피해자의 구도로 두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Hate speech와 Sexism 사이의 경계도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0-1. 한국 운동권의 경향 자체가 말로는 인터네셔널 연대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사실은 북미와 유럽의 서구 세계를 동경하는 수준에 머물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둘 간의 교류조차 없기 때문에 한국의 운동권들이 서구 활동가들을 만나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거나 유럽에서의 운동 경향을 실제로 파악하고 있지도 못하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진보정당 당원 유학생들이 “오오.. 유럽의 복지제도…”하면서 찬양하고 있는걸 보면 정말 화가나서 미칠지경이다.

0-2. 페미니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저열하기 짝이 없는 송민호의 랩을 보면 “내가 널 따먹을거야” 수준의 섹시즘, 그러니까 상대가 원치 않는데도 성적 대상화와 스테레오 타입으로 성 역할(Gender Roles)을 고착 시키는 무례함 혹은 편견과 차별적 시선이라고 볼 수 있는데, Hate Speech랑 연결 시키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사실 송민호의 랩은 조금 더 자극적이다는 면을 예외로 두면,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서 보여진 것과 다를바 없는 섹시즘일 뿐이다. 난 싸이 강남스타일도 같은 이유에서 정말 싫어한다. 내 주위의 독일 친구들도 가사 내용을 알려주니 다시는 강남스타일을 부르거나, 춤을 추지 않게 되었다.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나는 사나이 낮에는 너만큼 따사로운 사나이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 버리는 사나이 그런 사나이”
ㅡ 강남스타일의 가사 中

0-3. 섹시즘과 헤이트 스피치는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르다. 또한 섹시즘과 성적 농담 또한 다르다. 이들에게 동일한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것이 그 성격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두고 이름 속에 담긴 뜻이 믿기지 않는다며, “만약 내가 너와 섹스를 했으면, “난 어젯밤 민주주의와 잠자리를 갖었어”라고 할 수 있는거지?” 하고 까르르 웃는 내 주변의 독일, 스웨덴 등의 유럽 여성 페미니스트 친구들은 모두 날 성희롱 한 것이므로 나는 이 페미니스트 친구들에게 성희롱에 대한 공개 사과를 요구 해야하는 것일까?

1. 아무튼 이러한 인식의 부재는 다음과 같은 일들의 불이해로 이어진다. 실제 유럽에서는 펑크-아나키스트들과 안티파들이 Femen과 Pussy Riot에 대해 지지를 하지만, 방법론에서 이견이 있음을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전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말이다. 아마 Pussy Riot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한국어로는 처음 서술 되는 것일텐데, 실제로 Pussy Riot의 경우는 러시아 내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도 Pussy RIot의 멤버 중 한명이 ‘아방가르드 아트’를 위시로한 퍼포먼스에 대한 이견들이 있다. (그들에게 연대를 안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이견이 갈리는 퍼포먼스 두가지 중 한가지가 슈퍼마켓에서 냉장통닭을 자신의 보지에 집어넣는 것을 촬영하며 나오다가 슈퍼마켓 점원에게 절도를 근거로 붙잡히면서 여성주의 구호를 외치는 행위와 러시아 정교회가 예전에 비해 성소수자나 여성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던 분위기에 정교회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퍼포먼스로 오히려 적대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며 다른 활동가들도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내게 전해준 당사자는 러시아 아나키스트 씬 내의 갈등이 외부로 나가 운동의 결속력이 약화되는걸 걱정하면서도 Pussy Riot의 방법론에는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2. 지금의 상황은 데이비드 트렌드가 언급한 ‘Leftist Economics, 좌파 경제주의’를 상기시킨다. 좌파들은 오직 경제적 관점으로만 계급에 몰두하는 자세로 대중운동에 임하면서 범-개혁,·진보 진영 내부에서조차 충돌을 유발하는 것과 같다.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운동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는 범-좌파는 물론이고 진보진영에서조차 만연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데이비드 트렌드는 좌파들이 오직 경제적 관점에서 계급 투쟁에 몰두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불만을 표출했는데, “트렌드는 좌파들의 그런 경향이 좌파를 많은 잠재적 동맹자들로부터 고립시켜왔을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미디어라는 영역을 좌파운동의 중요한 전장(戰場) 중 하나라고 보는 시각을 평가절하해왔다”며 비판했다.

3. 또한 데이비드 트렌드는 본인의 저서 <문화민주주의: 정치, 미디어, 뉴테크놀로지>에서 “‘정치를 경제학이라고 협소하게 정의함으로써 급진주의자들은 공영방송, 예술 기금, 심지어 학교 교과서를 둘러싼 전투에서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쥐도록 방기해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왜 지금까지 좌파가 문화전쟁뿐만 아니라 미국의 정치를 둘러싼 광범위한 투쟁에서 패배해왔던가를 설명해주는 주된 이유가 된다. 정치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 이미지, 저술활동 등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정보의 권력은 AT&T와 펜타곤에 고스란히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매스미디어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좌파 특히 학계에 있는 좌파들이 ‘주류적’ 관심사와 완전히 동떨어져있다는 일반의 인식은 기세 좋게 확산되어갔다.” 즉, 보수주의자들은 대중과의 호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4. 최근까지도 유리 로뜨만의 <문화와 폭발>를 복기하고 있는 내게 지금의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 심지어 15년간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어 제 2의 100인 회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만큼 한국의 진보세력은 대중운동을 하면서도 문화의 흐름을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동시에 문화를 절대적으로 평가하며 교조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PC(Political Correct, 정치적 올바름)와 Anti-PC에 대한 논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나친 PC 도착증이 유럽 운동을 얼마나 분열시켰는지는 다음에 다루겠다)

5.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서구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동경 어린 시선’은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예를 들어 저항적인 록음악 중, 펑크, 하드코어 둘다 음악에 있어 어느정도 남성성이 있음은 막연히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특히나 페미니즘, 라이엇걸 무브먼트는 펑크라는 ‘삶의 태도’, ‘직접행동’으로서 라이엇걸 페스트, 걸프론트밴드 페스트 등은 물론 많은 여성주의 워크샵, 그리고 바이크메신저라는 하위문화와 결합하여 LGBT 운동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특히나 아니키즘을 기본 사상으로 하는 아나코/크러스트 펑크와 그라인드코어라는 하위 문화가 말이다.

5-1. 이는 80년대 말, 90년 대 초부터 L7, Bikini Kill, Le Tigre 등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으며, 대중문화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페미니스트로서 이 역사적인 사건들을 모르고 운동한다는 것은 사실 나로서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6. 이 하위문화가 가져다주는 변화의 증거는 바로 이슬람 펑크 ‘Taqwacore’를 보면 알 수 있다. ‘Taqwacore’ 씬내에서는 무슬림 내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반대해 여성들이 펑크, 하드코어 공연장에서 히잡을 벗어던지고, 남녀가 함께 슬램을 하며, 남성 펑크들이 이 여성들의 권리를 지원한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책 들고 무슬림들에게 남녀 평등의 중요성을 설교하는 식의 계몽주의를 넘어서서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되는 훨씬 강력한 하위문화운동이 되었다. 미국이 아랍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알카에다를 잡겠다며, 빌어먹을 폭탄을 아랍에 떨어트릴수록 그 빌어먹을 자유와 평화를 거부하고, 여성차별을 당연시 하던 문화가 자발적으로 여성차별을 반대하는 문화로 발전한 것이다.

7. 환기 시키면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갱스터 랩퍼들은 진짜 총을 들고 다니면서 상점을 털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갱스터 랩퍼들은 랩퍼 송민호가 했던 랩보다 더 심한 비유나 직설화법들을 통해 남성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랩퍼 송민호는 코카인을 하지도 않고, 대마를 피우지도 않는 반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갱스터 랩퍼들은 대마는 물론, 코카인 쯤은 아무렇지도 않게하고, 성매매가 불법임에도 길거리 매춘부들을 사서 마약, 섹스파티 했던 이야기를 자랑처럼 늘어놓는다. 어릴 때 마약 딜러, 혹은 마약 딜리버리 같은 범죄를 저지르다 친구들이 총 맞고 죽은 이야기도 태연스럽한다.

7-1.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락스타 밴드들도 그랬다. 80년대 팝메탈(LA메탈) 밴드 머틀리 크루 같은 수 많은 밴드들의 경우는 실제로 부인들을 뒤 투어버스에 태우고 자신들의 버스에는 그루피들과 매춘부로 가득 채운채 코카인을 흡입하며 “온동네 여자들을 다 따먹겠다” 하면서 전미투어를 돌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열광했다. 그 중에는 실제로 그런 삶을 즐기고 싶지 않지만, 밴드의 저항성을 남성성과 혼합하여 보여주는 캐릭터로 했기 때문에 그런 채 해야했던 밴드들도 있다.

7-2. 그리고 신디 로퍼는 ‘집-공장’의 싸이클을 반복하는 공장 소녀들에게 힘을 불어주며 “소녀들은 단지 좀 놀고 싶은 것뿐”이라고 노래를 했다. 이 노래를 들은 소녀들은 일 끝나고 부모님의 통제를 떠나 밤 늦게 남자들과 질펀하게 놀 기회를 달라고 부르짖었다. 실제로 남자들과 질펀하게 노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녀들의 자신들의 의지로 무엇인가 선택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7-3.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남녀를 막론하고 많은 록스타들이 어떤 문화를 향유했다. 맞다, 시대가 변했다. 오늘은 85년이 아니라, 2015년이다. 하지만 그 밴드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나는 여기서 어떤 성관념의 벽이 우리 사이를 가로 막음을 느낀다.

7-4. 오늘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이 끝난 직후 화장실에서 남들 모르를 질펀펀한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관객은 몇이나 될까? 아니, 로큰롤을 상징하는 손모양을 치켜 세우며 “섹스, 드럭, 로큰롤”을 외치는 한국 락페스티발의 관객들 사이에서 과연 페스티발 캠핑장에서 하룻밤 섹스를 즐기는 관객은 전체의 몇이나 될까.

7-5. 우드스탁, 글래스톤베리 등등의 ‘사랑, 평화, 섹스, 마약’ 그런 기호가 가득한 락페스티발을 동경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조금도 그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현실에서 이들은 차라리 ‘록음악에 반대하는 기독 부모협회’ 피켓을 들고 다니는 쪽에 가까운 사람들처럼 법을 잘 지키고 살 것이다. 우리는 마릴린 맨슨이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여성형 유방을 달고 나와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환호를 한다. 그 피가 가짜 피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마릴린 맨슨이 피칠갑이 아니라, 스님이나 목사님 같은 행색으로 목탁을 두들기며, 찬송가를 부르며, “이웃을 사랑하세요”, “친구에게 상처주지 마세요”, “반정부 운동은 나빠요, 주님의 힘으로 이겨냅시다~” 했다면, 우리는 아마 지금 마릴린 맨슨의 이름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8. 7의 이야기는 잊어도 좋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운동이 문화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계급적 갈등이나 차별에만 포커스를 둘 경우, 범-개혁, 진보 진영 내부에서조차 사람들 간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어떤 사람들은 아마 지금쯤 사회당의 덕후위원회를 잊지않고, 떠올릴 것이다) 저항문화 진영의 밴드들이 남근주의적 마초맨 기질을 갖고 있다거나 청소년이 밴드를 하는 이유엔 ‘남자다움’이라는 동기가 내재돼있다고 보는 관점은 그런 충돌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 시사한다. 이에서 그치지 않고, 인종, 지역, 성별 등을 위시로한 문제와도 충돌할 것이다. 나아가서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필요성조차 잃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항 문화 자체가 갖는 역동성과 남성성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다.
사람마다 다른 투쟁방법을 갖고 있겠지만, 나는 집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시켜주세요’ 하고 다소곳이 앉아 홀로 기도하는 것보다 나는 길거리에서 더 소리높여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 관피아, 범죄자들을 처벌하라!” 라고 하는 것이 유효한 저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9. 레니 브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너무 길어지겠지만, 잠시해볼까 한다. 레니 브루스는 음담패설하고, 미정부 욕을 공공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시작한 사실상 첫 스탠딩 코메디언이었다. 이 때문에 FBI는 그의 모든 공연을 쫒아다니며 F-word와 C-word를 빌미로 음란공연죄라며 수갑을 채웠다. 실제로 그는 자지, 보지를 수시로 내뱉는 걸판진 코메디언이었다.
그렇게 말할 자유를 잃어버린 그의 말년은 불후했다. 코메디언인 그는 문학이나 신문이 아닌 법전을 말년 내내 끼고 살았고, 그는 승리를 보지 못한채 외롭게 죽어버렸다. 그러나 사후 2002년, 미 대법원은 그가 없었다면 미국의 건국이념인 자유, 그 중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제약 받았을거라면서 그에게 사후승소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9-1. 대표적인 미국 스탠딩 코메디언 루이ck, 죠지칼린, 빌 힉스, 크리스 락은 물론이고, 여성 페미니스트 코메디언 레나 던햄, 사라 실버만이 지금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며 발언할 수 있는 이유가 레니브루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라 실버만 같은 여성 코메디언이 코난 오브라이언 쇼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해 자신의 가랑이 사이 위에 보지를 상징하는 입모양 사진을 올려두고 코난을 곤란하게 하는 코메디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레니 브루스가 없었다면, 여성 코메디언이 자신의 가랑이 사이의 상징적이기만 한 가짜보지 퍼포먼스를 했다는 이유로 감옥 신세를 졌을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사라 실버만은 SNL에서 상반신 탈의하는 단막극을 선보인바 있다.
(Sarah Silverman’s Dirty Smartphone Hack – CONAN on TBS *자막있음: https://www.youtube.com/watch?v=YwE8LBREwEM)

10. 랩퍼 송민호의 랩이 굉장히 저열하기야 하지만, 그것을 있느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는 곧 호러펑크, 싸이코빌리, 고어-, 포르노그라인드코어, 블랙-, 데쓰메탈 뮤지션들은 다 강간범에 연쇄살인후 시체강간하는 사람들이고, 림프비즈킷이랑 콘 류의 얼터너티브 메탈 밴드들은 다 포주라고 말하는것과 다를바 없다. 실제로 얼터너티브 메탈은, 누 메탈로 불리기도 하면, Pimp rock(포주 락)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흠, 판단은 당신에게 맡기겠다.

10-1. 다만 유엔 산하 인권재판소에서는 이미 “표현의 자유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무해 또는 무관심하다고 생각되는 정보와 사상뿐 아니라, 해롭거나 충격적이거나 불안케 하는 정보와 사상에 대하여도 효력이 있다”라고 판결 내린바 있다. 특정 상황에 맞도록 편의상 제약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란게 아니란 것이다.

10-2. 하지만 미국은, 유럽은 선진국이니까 알아서 잘 조절할 수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줘도 되지만, 한국인은 아직 표현의 자유를 다룰만큼 국민성이 성숙하지 못하므로 차별을 줘야 한다는 것은 마치 박정희를 떠올리게 하고, 리콴유를 떠올리게 한다.
“외국은 모르겠지만, 한국은 아직 이른 문화야.” 라는 식은 조금도 이해하기어렵다. 한국은 표현의 자유도 보장 받기 아직 이르고, 민주주의도 보장 받기 아직 이르다는 것과 동의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으로는 10년 뒤의 한국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닫. 우리 한국인에게는 갱스터랩도, 호러펑크도, 그라인드코어도, 블랙메탈도 이르고, 그래서 그런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훨씬 소수인 lgbt의 권리 보장은 더욱이 아~~~~~~~ 주 이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서구에서도 보면 그런 인디음악, 하위 문화들이 페미니즘, lgbt 운동을 격렬하게 지지하며 지금의 위치로서는 기폭제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하건데, 송민호의 랩는 내 귀에는 너무 지루하고, 가사 또한 저열, 조악하다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11. 얼마 전에도 했던 이야기다. 남녀간 권력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앞선 선례들을 보면 여성을 피해자 프레임에서 권리의 주체로 놓으려는 수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여성이 피해자가 아니다” 라는 말이 아니다. “여성은 약자가 아니며, 동등한 권리의 주체다 ” 라는 인식을 여성과 남성 모두가 가져야 한다는 겁이다. 여성을 피해자 프레임에만 가두면 결국 여성은 스스로를 약자 의식을 갖게 됨은 물론, 남성도 여성을 약자,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여성이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생긴다.

11-1. 피해를 토로하는게 정치적 주체의 행동이 아니란 말이 아니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여성이 능동적인 권리의 주체, 가령 위에서 뉴욕의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하고 있는 토플리스 운동이라던가 노브라 운동 같은 여성 스스로의 운동이 생기지 않으면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11-2. 때문에 여성을 피해자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15년 전과 같은 길을 밟겠다는 것이다. 제2의 100인회를 만들자는 것도 사실 아무 의미 없다. 15년 동안 여성이 피해자의 프레임 이외에 능동적인 권리의 주체가 한번도 되본 적도 되려고 해본 적도 없기 때문. 여성이 피해자 프레임에 갇힐수록 여성은 자연스럽게 ‘보호받아야할 대상’이 되고, 이는 마초이즘의 지지하는 한 축이 되기까지 한다.

11-3. 뉴욕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펑크, 아나키스트, LGBT, 바이크 메신저와 같은 하위문화의 지원을 받아 공공장소에서 토플리스 책읽기를 하는 운동을 벌인지 5년이 지났고, 이제는 단지 하위문화의 전유물이 아니라 할만큼 지지세력이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바로 얼마 전부터 여성들이 노브라 운동을 하는 등의 여성이 권리의 주체가 되는 행동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 한국의 페미니즘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생각해볼 때, 피해사실을 폭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여성이 차별 받지 않는 것이 사회의 기본 토대로서 작동하려면 여성이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만큼 페미니즘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여성은 보호받아야할 약자로서 규정 되지 말아야한다. (이 글에서 너무 반복해 이야기해 지겨울 수 있겠다)

11-4.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피해자 프레임에 갇히고,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일은 서구 문명에서 일어나는 여권신장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동경으로 귀결된다. 또한 이는 페미니스트들 간의 연대 또한 약화 시킬 뿐이다. 살해 당할지 모르는 위협을 무릅쓰고, 히잡을 벗고, 상의를 탈의하고 가슴을 드러내며, 여성의 권리를 외치는 아랍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을 보라. 한국 여성들이 너무 많은 폭력을 입고 있기에 피해자로서만 이해 받으려하고,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되길 두려워한다면 여성들이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여성을 동정하는 남성들에게 수동적인 보호를 받을 뿐이다. 마치 밖은 위험하다는 주인의 염려와 함께 산책시 목걸이가 걸리고, 집 안에서만, 휴지를 찢고, 밥 그릇을 엎어가며 집 안을 어지를 자유를 갖게되는 새끼 강아지처럼 말이다.

00. 원래는 짧게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 이야기 하려다 의도찮게 횡~설~~~수~설~~~~~~ 길게 써버렸다. 조만간 베를린 페미니즘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곁들여 다시 작성하는……. 내가 이 구역의 A-Social이다~~~~ 이 글은 퍼가지 말라~ 이 구역의 A-Social 김민주가 다시 쓸 것이다~~~~~ 그럼 나는 오마샤리프 선생에게 안녕을 고하며, <닥터 지바고>를 보러간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 영상 링크는 영화 <Tank Girl>의 유명한 모래 샤워씬이다. 포티쉐드의 음악. 원한다면 영화를 공유하겠다. 페미니즘에 관심 있다면, 꼭, 꼭 봐야하는 영화! Pussy Riot을 위한 컴필, This is what feminism sounds like! 컴필도 다 보내줄 수 있음!

 

ㅡ 2015년 7월 14일 작성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