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재현행위

요즘 베를린에서는 포르노 영화제가 한창인데,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해서 안전한 섹스 가이드는 물론이고, 항문섹스, 결박-구속법들을 가르치고 퍼포밍 하고 있다. 메갤러들이 보면, 여혐이라 입에 거품물겠지다만.. 베를린서는 이미 페티쉬, 섹스 페미니스트 포럼과 파티도 다수 열리고 있다. (너무 재미잏다!)

예전에 벨카인, 베를린 릴레이션쉽 가이드를 썼던 나에게 베를린 당도한지 6개월도 안된, 베딩 기숙사 사는 머가리 빻은 한남충이라고 부르짖던 못 되쳐먹은 예술가, 기획자, (메갤 이후 등장한) 넷페미니스트, 유학준비생 년놈들. 당신들이야말로 그렇게 반여성주의와 배제의 정치를 페미니즘이라고 포장해 팔아먹더니.. 잘 먹고 다니냐 묻고 싶다. 밥은 먹고 다니냐?

페미니스트를 참칭하는 유교 탈레반.. 당신들 덕에 꽤나 상처입고, 글쓰기를 그만 두었는데, 반여성주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다시 쓰기로 했다. 페티쉬-섹스파티 놀러다니는게 뭐가 죄라고. 아래는 당신들이 좋아하는 버틀러의 이야기인데, 읽지 않는 것 같아서 옮겨온다. 부디 당신들은 듣지도 않는 밴드 패치, 티셔츠를 사방에 덕지 덕지 붙여놓고,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록키드로 살아가지 않길.

“매키넌은 혐오 발언으로서 포르노그래피의 법적 규제를 요구해 왔다. 포르노 논쟁에서 반포르노 진영의 선봉이었던 그녀에게 동성애, BDSM과 같은 급진적 성애는 혐오를 단지 재현한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다. 그녀는 포르노그래피는 여성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성의 평등권을 억압한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매키넌은 표현 산업의 자유보다는 여성의 평등권이 더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버틀러가 보기에 포르노 재현이 곧 포르노 실천은 아니다. 흑인 갱스터랩이 도시 범죄와 여성 비하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처벌을 요구하게 되면, 갱스터랩의 재현은 곧 행위가 되어버린다. 여성 혐오적인 노래 가사에 분노하면서 법적인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 보수적인 페미니스트의 입장이지만, 버틀러가 보기에 이런 주장은 성적 보수주의와 페미니즘이 공모함으로써, 인종 차별을 희석시키고, 국가의 검열과 처벌을 강화시키는 데 일조하도록 만든다. 특히 미국에서 혐오 발언은 인종적 상처의 결과는 축소시키고 성적인 상처의 영역은 가능한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버틀러는 지적한다. 갱스터랩에 재현된 여성 혐오 발언에 대한 단속은 인종 차별로 전이되고, 성차별 단속이라는 이름하에 인종 차별은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매키넌은 포르노그래피가 일종의 혐오 발언이며, 그것이 세계를 포르노적인 장소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포르노 세계에서의 현실과 그것에 대한 경험 사이에 아무런 간극이 없는 것처럼 주장함으로써 포르노를 보는 것만으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본다면 포르노의 시각적 재현은 자신이 묘사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신적 수행문과 유사한 효력을 가진다.

하지만 포르노의 시각적 재현에 여성의 행위가 언제나 종속되는 것은 아니다. 포르노적인 재현에 여성들이 희생자로서 복종하는 것만도 아니다. 포르노가 여성에게 신적인 발언 내적 행위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버틀러는 비판한다. 그런 포르노적 명령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불가능한 수행성이다.

매키넌에게서 보다시피 진보 세력은 혐오 발언의 대상자들을 순전히 희생자로 규정해 왔다. 버틀러가 보기에 희생자 담론은 진보주의자들의 명분과 실천에 편리하고 손쉬운 전략에 불과하다. 희생자 담론은 혐오 발언 주체를 절대적인 지배의 입장에 세우고 타자를 무기력한 수동적 존재로 만든다. 그렇다면, 주권적 주체의 권력에 복종하는 타자가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가?

버틀러가 그토록 주권적 주체의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버틀러는 주권적 주체되기의 실패에서 저항의 틈새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주체는 결코 주권적 주체가 될 수 없으므로 타자를 자기 의도에 완전히 종속시킬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어떤 혐오 발언도 상대를 완벽하게 복종시키는 데 실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군대에서의 동성애와 관련해서도 재현이 곧 행위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동성애 재현이 곧 동성애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동성애자가 주권적 주체라고 한다면, ‘난 동성애자’라고 선언하는 순간 동성애 행위를 마법적으로 전염시키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동성애자들이 그처럼 마법적인 힘을 과연 갖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