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사태를 지켜보며

시사인 기사 포스트: “당장의 위기는 허리띠를 졸라매 극복할 수 있지만 당장 후배들이 기획안을 낼 때 자기검열을 할까봐, 그것이 가장 안타깝다” (고제규 시사IN 편집국장)

 

시사인 사태를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에게는 더 많은 썅년(bitch)들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의 ‘절독운동?!’을 보는 마음도 안타깝지만, 시사인이 과연 반응을 예상하고 쓴 기사 맞긴한가 싶다. 이정도 위기 알고도 강행해놓고, 억울하다고 절독만은 하지말아달라 부탁하는데 수긍할만한 근거가 있을까 싶다. 적어도 시사인은 첨예한 논쟁 속에서 기사를 조금 더 미루더라도 여성혐오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으며, 페미니즘을 말하기 위해 남녀간 대결구도를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양측 의견의 타당함과 별개로 절독에 대한 고제규 편집장의 볼멘소리는 스스로 자격을 박탈했다. 그가 밝혔듯 ‘절독 3선’이란 단어까지 써가며, 예상했음에도 강행했기 때문. 이미 알았다면, 본인들의 논지를 견지하는 기사를 내더라도 다른 각도에서, 이를테면 도발적인 접근만은 자제했어야 하는게 맞다. 그게 ‘언론사 편집장’이 할 일이고.

추측컨대, ‘분노/한남/자들’은 도발을 의도한 것이 맞을 것이다. 이미 ‘절독 3선’까지 고려하면서 상쇄를 하려고 했던 것이 이 라임으로 메갤로부터 구독지원, 소위 ‘화력지원’을 받으려고 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분노를 사는데 성공은 했지만, 화력지원을 받는데는 실패했다. 그것은 시사인이 아직 메갤의 성격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사인이 너무 순수하게?! 혹은 유아적으로 손가락 계산을 했다. 계획한 분노를 사는데 성공은 했으니 자업자득이라 할 수 밖에..

안타깝게도 시사인의 메갤 기획 기사는 일베, 메갤, 워마드나 정의당, 시사인, 그리고 그에 분노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성혐오 프레임에 완벽하게 말려 들어가버렸다. 이 곳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공동선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커녕,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 논쟁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일베는 말할 것도 없고, 평등을 말한다는 범진보진영 내에서조차 메갤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메갤을 반대하는 사람들 간의 ‘배제의 정치’만이 정확히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다루어야겠지만, 시사인이 페미니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자 기사를 썼다기보다는 메갤이란 논쟁적인 현상에 서둘러 기사를 내려다 자신까지 그 현상에 그대로 말려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전자도 쉽진 않겠지만, 후자는 결과가 뻔하다. 후자의 경우, 어느 쪽으로 논지가 흘러가더라도 특정 성향의 구독자만 남게 되는 것은 자명한 것이고, 지금 시사인이 곤란해하는 것 또한 후자를 택했기 때문이다. (메갤을 옹호하거나, 메갤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양측 의견 모두 후자에 해당된다)

이것이 만약 무규칙 격투기라면, 시사인의 문제는 링 위의 경기에 대해 속기를 하고, 기사를 써야할 기자가 난데없이 링 위로 뛰어들어 심판을 자처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여기서 미디어오늘이 신중해져야 하는 일은 시사인이 했던 것처럼 심판이 되려 자처하지 않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이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이 현상에 대해 다양한 필자를 섭외해 논의의 장을 만들고, 차차 논쟁적인 사안의 폭을 좁혀 포커싱 하는 것이다. (현재 말하고 있는 필자들의 글은 계속 반복되어 재생산 되기 일쑤고, 논의 진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양측을 대변하며, 대결구도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건데, 나는 페미니즘이 이 사회의 기본 아이디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썅년(bitch)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특정 계층, 성별,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부당한 일에 항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야한다.

우리는 여성을 전통적인 성역할에 따라 나약한 존재로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해 전통적인 성역할(gender roll)을 방해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는 과거에 매몰되지 않기위해 “우리가 사는 모습이 곧 우리가 바꾸려는 세상의 모습이다” 라는 말과 함께 여성을 남성과 함께 나란히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위치 시키는 상(image)을 그려 제시해야한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썅년(bitch)들이 필요하다”

 

 

ㅡ 2016년 8월 31일 오전 2시 23분, vision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