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관계, 룸메이트

분노에 이글거리는 ‘페이스북-혁명가’들이 너무 많아서 오랜만에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 혹은 시차적 관점에 대해서 가벼운 잡글을 적어볼까 한다.

얼마 전, 독일 유학생 그룹에 룸메이트를 구하는 독일인에 대한 분노의 글이 올라왔다. 이유인 즉, 룸메이트를 구하는 독일인이 한국인 유학생분께 메일을 보내왔는데 그 메일 내용은 대략, 자신의 이름, 나이 등을 소개하고, 한국인 유학생분이 월세는 부담하지 않되, 잠자리를 같이하는 그의 섹스 파트너가 되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몇 분들은 성희롱, 혹은 명예훼손을 이야기 하셨는데, 실제로 독일에서는 이런 일들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일이고, 법적으로도 아무 하자가 없다. 계약 이전에 이야기를 했으니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 동거조건일 뿐이고, 아무런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소 사유조차 될 수가 없다.

한국사회에서 보편적인, 그리고 주류문화에 익숙하게 살았다면, 이러한 것들을 문화라고 이해하지 않고, 범죄라고 단정짓기 쉬우리라 생각한다. 왜냐면 한국사회는 집단의 이해가치에 따른 보편적 정서에 동화되지 않으면, 나쁜 것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국사회는 다양성이 없는 집단주의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서 다양성은 집단주의의 위계질서를 해치는 나쁜 것으로 오인되기 쉽다. (최근에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문제들이 신자유주의 때문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독일에는 공개적으로 스윙어클럽, 스와핑클럽, 섹스 혹은 페티쉬 클럽들이 있다. 베를린에서는 특히나 더더욱 흔하게 볼 수 있다. 베를린이나 함부르크는 유명한 섹스 관광지이기도 한데, 이런 조건으로 동거자를 찾는 남녀가 많다. 유럽 헤도니스트들의 성지라고 불리우는 베를린에서는 아주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라는 말로 베를린을 경제난으로부터 구한 그 유명한 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도 게이였고, 그는 베를린의 그 악명 높은 섹스 프렌들리, 페티쉬 클럽인 벨카인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때문에 나는 오픈릴레이션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벨카인이나 킷캣같은 곳을 권하지 않는다. 헤도니즘과 오픈릴레이션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공간에 있다면, 서로를 존중하는 암묵적인 약속들이 파괴되어 공간 자체가 무너질 수 있고, 나아가서는 해당 공간에서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클럽들은 도어에서 세큐리티들이 거절해서 돌려보내는 경우가 클럽마다 하루에도 수백명씩 된다. 거짓말 안보태고, 벨카인에서 하루에 돌려보내는 관객만 적어도 500명은 될거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클럽들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공간 자체가 가져오는 안락함, 그리고 그 말없는 약속들이 지켜지기 때문이고, 무례한 관객이나 투어리스트들이 없기 때문이다. 베를린 클럽에 간다면서 가장 멍청한 놈들은 섹스프렌들리 클럽이라고 해서 섹스만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이런 곳을 찾으면, 섹스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와서는 춤도 추지 않고, 그저 등대처럼 두리번거리며 섹스 상대만 찾는 사람들이다. (사진 찍는 놈들은 말할 것도 없이 무조건 쫒겨난다)

그런 곳이 베를린이다. 테크노의 도시, 베를린의 클럽에서 진짜 즐긴다는 것은 그러한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다. 모든 클럽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베를린의 악명 높은 유명 클럽들은 이러한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다른 도시의 클럽들과 차별된 베를린 클럽의 가치를 표상하기도 한다.

아시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인데, 서구문화 전반으로 신문지면상이나 온라인데이트 상에서 단기, 장기, 데이트 상대를 구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다. 혹여 어학원을 다닌다면, 어학원 선생에게 물어봐도 같은 답을 받을 것이다. 이런 문화는 한국에서 돈을 주고 성을 거래하는 것처럼 절대 이상한게 아닐뿐 아니라, 취향이 맞는 사람들 간의 합의된 건전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 유명한 줄리안 어샌지도 오케이큐피트 같은 웹사이트에서 자신을 ‘위험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할정도. 이런 웹사이트들은 자신의 정치성도 반영하는데, 베를린을 예로 들자면, 그 특성상 성적 기호에 대해서 이를테면 판섹슈얼, 바이섹슈얼, 오픈릴레이션쉽이라던가, 채식, 혹은 페미니즘과 같은 정치적 조건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만나는 일들이 흔하게 벌어진다.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길 거부하면서도 페미니스트 남성만을 찾겠다는 메갤의 그 이율배반적인 글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돌아와 정리해보자면, 룸메를 구할 때, 자기와 기호, 취향, 라이프 스타일 등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독일에 와서 룸메를 구하기 위해 인터뷰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학업이라던가 삶의 태도라던가 자기와 성향이 맞는 사람을 찾는게 일반적이다. 아니 함께 사는데 서로 자주 마주치지 않길 원하는 사람도 드물게 있지만, 일단 룸메이트라는 정서가 함께 살아가며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동반자적 관계를 의미하고, 따라서 같이 자주 식사하고, 같이 놀러다니고, 이런 것들이 일반적이다. 이런 것들을 싫어하는 사람을 비사교적이라고도 하기도 하지만, 반사회적 a-social로 보기도 한다. 관심사에 대해서 서로 이해가 맞아야하기 때문에 독일인, 혹은 유럽 사람들과 룸메이트가 되기는 한국인들에게 쉬운 일은 아닐 수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 룸메이트를 구하면, 이게 얼마나 힘들고 까다로운지 알게 될 것이다. (룸메이트 하나 구하는데 10명 인터뷰는 흔한 일이다. 그들 조건과 마음에 들어야 가능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룸메가 되는 일도 드물지만, 집 하나 구하려고 이런 수고를 해야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해당 유학생의 이야기 같은 일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해야할까. 매우 간단하다. 메일 받고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답을 안하던가 그냥 거절하면 된다. 그 분께서는 처음이라서 놀라셨을거라는 생각한다만, 너무 기분 나빠 말았으면 좋겠다. 지구는 둥글고 나와 다른 사람들도 많다. 그 중에서 자신과 맞는 누군가를 찾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큰 기쁨중 하나 아닐까 싶다.

좋은 친구를 찾고, 진탕 마시며, “널 너무 찾아다녔어!”라고 말하는게 진짜 재미지! (내가 사는 하우스는 방이 스무개가 넘는 각자의 방에서 서로 다른 친구들이 살아가고, 매주 회의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회의를 한다)

나의 관점이나 누군가의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때로 유효한 결론과 거리가 먼 곳으로 귀결된다. 내가 어떤 곳에 서있냐에 따라 나무 그림자 방향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영상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8ecLZtPssQ
베를린의 디제이 Adana Twins가 The Doors의 ‘People are strange’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 ‘Strange’.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베를린의 아주 유명한 테크노 그랜드파 두분 중 한 분, 올해 67세의 Bernhard Enste. 아주 와일드한 파티를 즐기시는데, 진짜 왠만한 젊은 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매력 터짐 때문에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으시다. 실제로 만나보면 왜 그런지 단번에 이해하게 됨!

 

 

ㅡ 2016년 6월 6일

정어리 – 51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낄 때, 낯선이가 된다. 거울로 다가서 당신의 얼굴을 보라. 당신은 단지 그들이 낯설다고하여 누군가를 혐오할 수 없다. 낯선이가 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거울이 대답한다, 당신이 무언갈 알고 싶을 때.

ㅡ 2015년 2월 13일, 지난 며칠 간, 한바탕 소동을 겪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