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things never came from comfort zones

 

 

메갤 멍청이들이 반여성주의적인 행동을 하면서 꿋꿋이 페미니즘이라고 맹신하는 태도로 살아가면, 평생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을 읽지 않고 교회라는 우상을 숭배하길 떳떳이하며, 약자를 괴롭히고, 호가호인하는 교인이 되거나.. 언젠가 귀와 볼까지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아래로 떨구겠지.

 

모르고 실수하는건 부끄러운게 아니지만, 모르면서 뻔뻔하게 아는 척하는 것은 앞으로 스스로의 알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미안해야하며, 하찮아 보일지 모르는 이 작은 변화를 일구어내기 위해 있었던 수 많은 희생에 미안해야한다.

 

작은 변화.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조차 민주주의는 불법이었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신병원과 감옥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사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독일에서 사민주의가 등장한 것도 고작 150년, 모든 남성의 참정권은 고작 1차대전, 여성도 참정권을 갖게되는 오늘의 민주주의 체제는 2차대전과 68혁명을 지나면서 가능해졌다. 이 작은 변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고, 아직도 이 작은 변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이름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시 메갤러들의 반여성주의적인 인식과 여성주의 문제로 돌아와서.. 여성을 위한 안전구역, 이른바 ‘핑크존’은 헌법이 보장하는 ‘누구나 어디에서든 안전할 권리’를 위배하고, 역설적으로 ‘여성은 특정 시설물, 구역에서만 안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위계폭력에서 발생하는 차별은 물론이고, 모든 폭력은 피해자의 부주의나 피해자가 약해서가 아니라 가해자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인데, 여성을 위한 안전구역은 마치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이 당연하다)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나는 대중교통 내의 노약자석을 반대한다. 노인들의 실버잡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노인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노인들이 약자로서 보호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안전망과 사회구성원들의 보편적인 인식으로 어디서나 안전하고 배려받을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지, ‘강제된 도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덕의 무게. 도덕은 법과 같이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매너없는 사람을 감옥에 쳐넣을 수 없듯이, 여성에 대해 편견을 갖고있는 사람을 감옥에 쳐넣을 수 없으며, 오직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만을 감옥에 쳐넣을 수 있다. 도덕은 타의로 선택하는 행동이 아니라 하지않을 수도 있는데, 자의로 선택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고 한다. 도덕을 강제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자율성과 자유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