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물론 ㅆㅅㅌㅊ 단어사용은 미러링인거 다들 아시겠죠? ^^ 사실 아이유가 한국에서 독보적인 미소녀이자 음악가라고 생각하는건 맞아요.” @durimimi
아이유-장기하 커플에 매질을 한 정두리, 그리고 메갤에 관련해 정리해봤습니다.
나는 애초에 젖은잡지부터 일본의 낡은 것을 그대로 모사한 촌스러운 것이라 했다. 정두리씨가 조금도 페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그는 남성팬과 페미들 사이에서 묘한 접점을 두고 소비되길 바랐다. 그런 그를 페미로 여겼던 사람들이 멍청한 것일뿐.
하지만, 미러링이라느니 이따위 변명은 그런 그를 더 낡고, 촌스러운 것으로 스스로를 소환한다.
메갤 이후에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청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왜 메갤이 스스로 학습하고, 조직해야하는지 이런 기회를 통해 스스로의 위치를 파악이라도 해야할 것이다. ‘무조건 여성을 보호만 하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엉터리 페미니스트들이 너무 많다.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면서 스스로를 젠더롤에 끼워 맞추는 멍청이들 또한 너무 많다.
권리는 누가 선물처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왜 주지 않냐고 불평, 불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권리의 주체로 두어 쟁취해낼 때 갖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두리, 혹은 메갤의 어떤 이들은 페미니즘 운동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미국에서 민권운동, 흑인인권운동을 하던 이들이 그랬다. 그들은 ‘착한 백인’들이 그들의 권리를 선물처럼 가져다주길 원하지도 않았고, 불평, 불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권리의 주체로 두어 쟁취해나갔다. 이들이 원한 것은 착한 백인들의 호의나 배려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든 갖고 있는 기본권리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1950년 대 당시 미국사회는 백인과 흑인의 구분이 뚜렷하여, 버스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벤치 같은 공공시설물의 이용조차 백인과 흑인의 전용칸이 따로 존재했다. 1955년 12월,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버스 안의 흑인칸이 만석이되어 백인 전용 칸에 앉아 있었다. 버스 기사는 그녀에게 흑인 전용 칸으로 옮겨가라고 하였으나 흑인 전용칸은 만석이었기에 그녀는 옮겨갈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흑백 인종분리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1964년 미국의회는 인종주의 성향의 남부 출신 보수우파 상원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권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교육,주택, 접객업소, 직장등에서 흑인차별을 금하는 것이었다. 민권운동가들은 투표권에 주목했고 1964년 6월 미시시피 자유여름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에는 무려 천여명의 백인 대학생들이 흑인의 유권자 등록을 돕기 위해 미시시피로 내려왔다.
1965년에 이르서야 연방 투표권법이 통과되었다. 존슨 대통령의 법 서명식에 마틴 루터 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 법의 주요 골자는 미국 수정 헌법 제15조에 반향하여 이 법안은 주와 지방 정부로부터 선거 자격을 한정하거나, 투표에 필요한 요건, 표준, 관행, 또는 절차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시킨 법안으로 인종이나 얼굴색 때문에 미국의 시민의 권리로 선거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정하거나, 줄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 법의 중요한 집행 수단으로는 역사적으로 흑인 참정권을 방해했던 주들이나 군들이 선거법이나 정책을 변경하려 할 경우 연방 법무부나 연방법원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게 되었다.
메갤을 긍정적으로 봐오다 결국 돌아서게 되었다. ‘페미니스트 남자를 만나는 방법‘이란 글 때문이다. 이 글은 마치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착한 백인을 만나는 방법’과 같은 글과 다를바 없어 무척 화가 났다.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대한 풍자나 조롱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 글은 진심으로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착한 백인을 만나는 방법’과 다를 바가 없다.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조건에 부합하면서 더더욱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글쓴이가 비열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풍자가 아닌 이상, 이 글의 구조는 젠더롤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쓴이는 무어라 변명할텐가? 우리는 “우리는 단지 가련한 피해자이기 때문이에요.”라고 스스로를 약자화 시킬텐가? 페미니스트 남성의 보호를 받고 싶어하는 여성으로? 아마 글쓴이는 스스로를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기고 있겠지. 이 글이 페미니즘이 가려는 길을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한가지만 묻고 싶다.
“남의 섹스, 남의 연애사에 관심 좀 끄고 사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 나무위키 ‘흑인인권운동’ 참조
ㅡ
+ 함께 읽기를 권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