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cking hell, in korea who speak out “je suis charlie”, someone of them saying ‘nazism has also freedom of speech’. what can i do with this idiot?
“나도 샤를리다”를 외치는 사람 중에 ‘나치즘’과 같은 범죄를 찬양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는 사람과 마주쳤다. 이런 범죄 옹호자들과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불관용은 관용주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차별에 대해서는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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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짧게나마 이야기 해보겠다.
교황의 의견이 별 의미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상당하겠지만, 얼마 전까지 교황의 행보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교황조차 “샤를리 엡도의 인종차별적 만평을 비판하며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 받아들여지지 않아야 한다” 라고 한 것에 대해서 가벼이 넘기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외면하기가 더 편리하겠지. 샤를리에 대한 비판적 관점 없이 “나도 샤를리다” 를 일단 외치고 보자 했던 사람들은 벙찐 기분까지 들것이다.
내가 테러 직후 말을 아낀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 문제를 단순히 ‘표현의 자유’와 ‘테러’ 간의 구도로 볼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러 직후, 프랑스 언론을 중심으로, 그리고 한국에서는 프랑스의 한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나도 샤를리다”에 대한 기사를 상당량 내보내었다. 나는 단정적으로 샤를리 엡도에게는 무비판적인 접근을 했던 것이 좀 성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여가 지난 지금 유럽에서는 일방적으로 “나도 샤를리다”라고 외칠 수 없다는 반대의견들이 이제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샤를리 엡도 테러 직후, “나도 샤를리다” 라고 구호를 외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은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아흐메드다” (샤를리 테러에서 테러범들이 살해한 무슬림 경관) 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테러 직후, “나도 샤를리다” 를 외친 사람들은 무슬림 경관이었던 아흐메드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럴 기회가 없었던 이유에는 당시 언론들은 희생자 수와 샤를리 엡도와 경관의 죽음만 다뤘을 뿐 그들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테러범들이 누구의 아이들인가 하는 배경에 이야기도 실리지 않았다. 테러범들은 그저 잔악무도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로만 그려졌었는데, 사실 프랑스 사회에서 좌절된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는 이야기들이 이제서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오늘 베를린에서는 샤를리 테러 이후 드레스덴에서 살해 당한 20살 청년 ‘바래이’를 추모하며, 반무슬림 운동을 부추기는 세력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살해당한 ‘바래이’ 이외에 테러 이후 반이슬람 범죄가 못해도 스무건 이상이 된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이런 것들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는 살해당한 청년 ‘바래이’ 대한 기사가 연합뉴스를 통한 단 한건에 불과하다.
“나도 샤를리다” 는 내게 명령처럼 보인다. 아마 이것을 외치는 사람들에게도 시대의 요구이자 시대의 명령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이 명령이 어딘지 불편하다. 네오나치들이 샤를리 엡도 지지자들처럼 “나도 샤를리다”, “표현의 자유!” 하고 외치는 현상에 대해서 제대로 대답하고 있지 못한 부분이 계속 우리 곁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계적으로 “네오나치의 경우는 다르다”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는 충분한 ‘왜’가 따라야한다. 네오나치의 인종차별의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그렇다면 샤를리 엡도는 인종차별의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냐는 질문을 다시 할 수 있겠다.
세계 정상들이 “나도 샤를리다”를 외치면서 행진했다. 사람들은 이 세계정상들의 연대에 환호를 질렀지만, 사실상 이 정상들의 행진은 독일 중심의 유럽 경제체제 논리로 진행 된 것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아래 링크의 사진에서 그들의 위치를 보자면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까지 한다. 또한 가자에서 수천명을 살해한 네타냐후가 무슨 자격으로 “나도 샤를리다”를 외칠 수 있냐는 것이다. “사진보기”
샤를리 엡도가 마이클 잭슨의 부고에 인종차별적 만평을 내고,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아랍의 봄’ 혁명에 대해 조롱했던 만평들이 차별이라는 것들은 이제는 조금 더 명확해 보인다. 샤를리 엡도 창간 멤버조차 말하길, 샤를리 엡도의 차별적 만평 수위가 높다는 이야기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 왔었고, 샤를리 엡도가 모든 종교에 대해 동등히 비판하는 만평을 내보냈다는 것은 유대주의를 비판하는 만평을 그린 만화가를 해고 하기도 하는 등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이미 형평성 논란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 나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마주친다. “무슬림이 원래 미개하고, 야만스럽다”는 말들이 나를 아프게 만든다. 피터 스피어가 자신의 저작 <온 세상 사람들>에서 “우리는 역사에서 배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라고 했던 말이 내 머리 속을 맴돈다.
ㅡ 아직 결론 내리지 않은 글입니다. 제 글은 참고만 하시고, 판단은 각자의 책임입니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