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의 첫 날들

 

※ 단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된 3박 4일간의 기록입니다. 글의 내용을 너무 상상하거나 깊이 몰입하게 되면 독일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갖게 될 수 있으니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어려우신 분들은 읽기를 자제하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9월 30일 금요일.

 

수화물 검색대에서 제가 매고 있던 가방에서 노트북, 프로젝터, 10m 전선 2개와 칼, 니퍼, 옷핀, 케이블타이, 군용벨트 등이 나와 가방 엎고 모두 꺼내 조사하고 최종적으로 칼과 니퍼를 폐기하는 걸로 일단락 지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 했습니다! 공항에서조차 옷을 벗고 가방을 엎었습니다! 허리에 뭔가를 숨기는 것으로 오해하던 직원은 벨트가 문제인지 왜 늦게 알았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아무튼 저는 가방을 엎고 옷을 벗ㅇ어!

 

서울 시각 낮 12시 40분. 뮌헨행 Lufthansa 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Scorpions 를 좋아할 것 같은 장발, 근육질, 문신 남성을 비롯해 십 수명의 남성들이 스튜디어스들이 서빙하며 여러 음식, 음료들을 준비하는 곳 점거하다시 피하여 위스키를 거덜내고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아니라 bar에 온듯한 분위기였습니다. 기내 바닥에 앉아서 졸고 있는 애들도 한 두명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새봄은 맨 뒤에서 두번째 자리라 소음에 견딜 수가 없었으나 우리도 위스키 + 독일 맥주 거덜내기에 힘을 보태다 기내에 준비된 Radiohead 의 Kings of Rims Live dvd 를 보고 잠에 들었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뮌헨에 거의 다 다르러 창밖을 보니 작은 산들이 굉장히 많고 형형색색의 논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밀, 보리, 포도등의 농사 때문일거라 생각했습니다. 내리면서 보니 기내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뮌헨 공항에서 베를린 행 비행기 게이트를 확인한 후에 근처 레스토랑에서 햄버거와 에딩거 바이쓰비어를 섭취했습니다. 햄버거 빵이 무슨 바게트 빵인줄 알았습니다. 고기보다 질겼고 고기는 큰 삼겹살 같았습니다. 잠이 올 쯤 뮌헨에서 베를린 행 비행기가 출발할 시간이 다 된듯하여 게이트로 향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경직 되어있던 저는 피곤함과 맥주에 쩔어 갑자기 영어 + 독일어가 술술 나오더니 수화물 검색대에서 아무 일 없이 나왔습니다. 게이트에 가보니 우리 둘은 술에 약간 취해 한시간 일찍 도착한 거였더군요. 아무튼 기다리니 2차례 연착 사실을 통보 받았습니다. 원호 동지에게 연락을 취하려니 공중전화 사용법을 모릅니다. 열심히 해볼까 했습니다만 몸은 피곤하고 취해있습니다.

 

뮌헨 시각 밤 10시 25분. 드디어 베를린행 Lufthansa 에 몸을 실었습니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다가 Pan sonic 의 음악을 들으며 슬그머니 잠에 들었습니다. 자는 도중 몸이 굉장히 피로했는지 심한 기침을 하였습니다. 독일인들은 공공장소에서 기침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는데 신경이 쓰였지만 내가 어쩌겠습니까? 정신 차려보니 옆에 독일인이 이제 내려야 한다며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저는 괜히 Entschuldigung 을 연발하고 있었죠. 연착으로 인해 원호 동지가 도착하지 않았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원호 동지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원호 동지가 오는 길에 공항 앞에서 사고가 있어 늦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16시간만에 베를린에 입성했습니다. 지구를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실제 소요시간과 현지 시각과의 차이가 좀 있습니다. 베를린은 현재 서울보다 7시간가량 느립니다. 그러고서 Hermannstrasse 에 있는 원호 동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사람들은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전철역 안에서 담배를 피워댔습니다. 게다가 여기 전철문은 내릴 때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티켓을 검사하는 사람이 돌아다니기는 합니다만, 티켓이 없어도 탈 수는 있습니다. 암묵적으로 부랑자들의 탑승을 허락한다는 느낌이 들어 독일에서의 교통수단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멍청한 생각이란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원호의 집에 도착해 맥주 마시다 새벽 3시쯤 잠에 들었습니다.

 

10월 1일 토요일.

 

아침 7시. 베를린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서 집주인과의 계약을 서둘러야 했기에 피곤함을 뒤로 한채 일어섰습니다. Berlinerstrasse 에 있는 계약할 집을 향해 갔습니다. 독일인 집주인 할머니는 나와 원호 동지를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었지만 새봄에게는 첫 인사가 “You can not live here” 이라고 말했습니다. 커피와 케잌을 꺼내주시며 집의 주의사항들을 설명 해주었습니다. 그 전 한국인이 잘 씻지 않아 1주일만에 내쫒았다구요. 그러나 할머니가 주신 커피잔과 접시, 포크는 굉장히 더러웠습니다. 가구들은 상당히 투박해보였으나 사용에는 별 무리가 없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세탁은 할 때마다 1Euro 씩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여자친구를 데려오기 전에 미리 주인 할머니에게 알리고서 데려올 것과 무슨 변동 사항이 생기면 방문에 쪽지를 붙이기로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몸이 좋지 않으신지 말하는 것도 좀 힘겹게 느껴졌고, 우유를 따르며 쏟으실 정도 였고 다리도 절고 계셨습니다. 좀 의아스러웠지만 별 개의치 않고 넘겨버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350Euro 에 계약을 하고, 새봄의 집을 계약하러 갔습니다.

 

새봄의 집은 굉장히 가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많은 가족 사진들과 그 전에 살았던 사람들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새봄의 방은 밝은 느낌이었고, 창 밖으로 나무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옷장의 창에는 레이스가 달려있었고, 4개씩이나 되는 스탠드들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집도 크고 굉장히 깔끔했습니다. 밖으로 나와 Vietnam Restaurant 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친후 나는 선불제 Handy 를 구입하고서 원호 동지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나와 새봄은 Markt 를 들러 장을 봤습니다. 일요일은 가게가 열지 않고 월요일엔 통일절이었기 때문에 긴 주말을 보내려면 준비할 것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새봄의 집에 그렇게 짐을 두고 새봄이 씻는 동안 원호 동지에게 7시에 있을 전시에 가자는 약속과 집주인 할머니께 새봄과 집에 갈 것을 SMS 로 보내고 나와 새봄은 다시 Berliner Str. 로 향했습니다.
낮 3시의 충격. Berlin Str.에 도착해 나와 새봄은 처음 Euroqida 라는 Markt 를 들어갔는데 아랍인들을 위한 마트였는지 온갖 향신료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적응이 잘 되지 않아 물 한병만을 들고 나왔습니다. 다시 다른 Markt 를 찾아 새봄을 위한 맥주 몇 병과 불면증이 심해질 때 한잔씩 꺼내 마시고 잠들 위스키 한병, 그리고 소세지, 고기, 야채와 과일, 샴푸, 물 등을 샀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주인 할머니는 새봄에게 나가라고 화를 냈습니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잘못한 느낌이 들어 연신 미안하단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주인 할머니가 계속 화내기에 나는 SMS 를 보냈으니 확인 해달라고 했으나 여전히 화를 내기에 열쇠만 들고 나와야했습니다. 새봄은 할머니에게서 술 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내가 혼자 다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노크를 하고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주인 할머니가 티셔츠 한장만을 입고 반나체로 내 방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 문을 반쯤 닫으며 주인 할머니가 욕실로 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쯤 닫힌 문 사이로 나는 주인 할머니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 하며 내가 사온 음식들을 가져갈 수 있냐고 물었으나 답은 없었습니다.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계속 되는 신음 소리 이후로 “Scheisse”, “Fick da”, “Ich glaube nie” 와 같은 말을 되풀이 해서 들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기다리다 다시 음식을 가져나오겠노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Okay” 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들어가면서 본 할머니는 욕조에서 가로로 넘어져있는 듯 했고 얼굴만이 보였습니다. 저는 굉장히 당황스러웠지만 얼른 몇 가지 음식들을 챙긴채 빠져나왔습니다.

 

나오자 마자 원호 동지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원호 동지는 나에게 너무 걱정 하지 말라며 자신의 집으로 올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원호 동지의 집으로 향하며 새봄이와 저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몇 정거장을 지나쳤었습니다. 그러나 금새 다시 갈피를 잡았습니다. 6시가 살짝 넘은 시각에 원호 동지의 집에 도착 하자마자 저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맥주를 단숨에 두병이나 들이켰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 집에는 침대가 한개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상기시키며 수상한 점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모두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시가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가 약간 넘은 시각. 우리는 전시하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근처에 있는 Schokoladen 이라는 곳에서 포스트 펑크 밴드의 공연이 있다고 하였는데 공연장과 전시장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앰뷸런스가 와 있었습니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한국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오늘의 전시는 중앙대 회화과 ‘김 교만’ 교수님의 전시였습니다. Berlin UDK 를 졸업하신 분과 워싱턴에서 오신 분 등.. 그리고 Yisang Sohn 의 친구 Remi 를 만났습니다. 한국 분들은 저의 이야기를 듣고서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하시며 350Euro 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그 집에서 나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한 독일에서의 생활이 좋아질 수 있도록 격려의 말도 주셨습니다.

 

전시가 끝날 무렵 우리는 Schokoladen 에서 공연을 볼까 했으나 5Euro 나 하는 입장료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 아래 근처 2Euro 짜리 피자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Remi 의 집으로 향해 매실와인과 맥주를 조금 마시고 공부를 좀 하다 나와 새봄, Remi, 원호 동지는 Herrmann Platz 에 있는 좌파들을 위한 저렴한 주점으로 알려진 Tristeza로 가 1.5Euro의 가장 싼 맥주, Stern 을 마셨습니다. 가게 입구에는 Rumpen 과 proletariat 의 합성어인듯한 Rumpenletaria 로 시작하는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새봄은 피곤해 했고 택시를 나 역시 피곤했기에 택시를 타고 새봄을 집에 바라다 주고 다시 나는 가게로 돌아와 일을 마치고 합류한 원호 동지의 부인인 Eli와 함께 맥주를 마시다 원호 동지의 집에서 새벽 3시가 조금 넘어 잠에 들었습니다.

 

 

10월 2일 일요일.

 

완전한 도망. 오전 10시쯤 늦게 일어나 일단 한국에 연락을 했습니다. 집주인이 나와는 차원이 다른 Alcohol-licker 인데다 옷을 죄다 벗고 나를 덥치려 해 도망쳤다고. 집을 중개해준 곳과는 화요일부터 연락이 되어 조치를 취해줄테니 일단 짐을 가지러 가고 돌발 상황이 생기면 경찰을 대동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연결 상태가 안 좋아 거기까지만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원호 동지가 만들어준 계란 후라이와 빵, 베이컨 그리고 두유를 먹고선 둘이서 Berlin Str. 로 향했습니다.

 

75Euro 짜리 Monatskarte 를 구입하고 카페인 음료를 마셨습니다. 도착해서는 더 두근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 도착한 첫 아침에 한번도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독일인 할머니의 축 늘어진 보지와 뱃살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현관문을 열기 전에 먼저 벨을 눌렀습니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저는 긴장을 해 호흡이 거칠어지니 원호 동지가 제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 말해주었습니다. 문을 열고 “Halo” 를 연신 말해보았으나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제 짐과 장보고 난 것들을 모두 챙겨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제가 현관문을 다시 잠그고 원호 동지가 먼저 내려가는데 긴장을 해서인지 잘 잠기지 않았고 속으로 저는 “원호야! 같이가!”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새봄과 합류하여 원호 동지의 집에 짐을 내려놓고선 근처 벼룩시장으로 향했습니다. 그제서야 조금씩 진정이 되는 듯 했습니다. 그 벼룩시장에는 어디서 주워다 놓은 부서진 것들까지 팔고 있었습니다. 흥미롭게 구경하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서 원호 동지가 추천하는 2.5Euro 짜리 햄버거를 먹었습니다. 고기가 너무 크고 빵은 거의 손잡이 수준이었는데 소스도 없어 맛이 없을 줄 알았다가 한입 먹고서는 굉장히 맛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선 Neuköln의 미술관, 공원으로 가 그리스 출신으로 추정되는 작가의 전시를 보고서 야외 까페에서 맥주 한잔씩을 했습니다. 그제서야 완전히 편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후에 원호 동지의 부인 Eli 와 합류하여 공항이었다가 아주 큰 공원으로 바뀐 곳으로 갔습니다. 아주 커다란 잔디밭에서 공부하다 눕고서 어느 독일사람들이 날리는 연, 글라이더를 보고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아마 굉장히 취했었나 봅니다. 원호 동지가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 했는데 먼저 원호 동지의 집으로 와 잠에 들었습니다.

 

 

10월 3일 월요일.

 

아, 베를린. 아침엔 원호 동지가 대접한 닭고기와 소세지를 먹고서 이른 점심엔 새봄이와 근처에서 케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후 2시 30분. 원호 동지는 일을 하러 나갔고, 원호의 부인 Eli는 내일부터 있을 박사과정 심사를 위해 준비중입니다. 저는 서울에서부터 독일에 도착해 있었던 2박 3일간의 이야기를 늘어 놓았습니다. 큰 일도 겪었지만 독일이 낯설고 무섭고 하진 않습니다. 다만 아직 짐을 풀 곳이 없어 원호 동지의 집에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미안합니다. 아마 원호 동지가 없었다면 나는 그 집에서 어떤 일을 겪었을까요? 글을 끝내기에 앞서 원호 동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다시 하고 싶습니다.

 

 

ㅡ 2011년 10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