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갤, 페미니즘 질의응답

 

 

평소 사람들을 응원하고, 돕는 글을 쓰시는 분의 글을 잘 읽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답변을 쓰다보니까 메세지로 쓰기에는 생각보다 길어 양해를 구하고, 그 내용을 포스팅 합니다.

Q. 안녕하세요, 포스팅하신거 보고 궁금한 점이 있어 개인적으로 쪽지드려요. 오늘 올리신 글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해서 안전한 섹스 가이드는 물론이고, 항문섹스, 결박-구속법들을 가르치고 퍼포밍 하고있다.’는 부분을 언급하시면서 메갈리아측에서 이런 점을 미소지니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메갈에서 이런 것들을 왜 미소지니라고 하는건가요?

A. 안녕하세요. 지금 메갤에서는 성적인 것들을 여성혐오로 규정짓고 있고, 나아가서는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라며 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의 대결구도, 여성의 약자화 프레임을 깨고 동등한 주체로써 권리를 행사하려는 것과 정반대되는 것이죠.

Q. 그리고 민주씨 Berghain과 베를린 성적개방에 대한 글은 저도 읽었었는데요, 그 글을 읽고 ‘한남충’이란 단어가 어떤 이유로 나오게 되는지 좀 잘 이해가 안가네요.

A. 베를린이란 도시가 LGBT의 성지이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유럽 성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한데요.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라는 말로 재정난을 타개해낸 베를린의 전-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역시도 게이이자, Berghain의 열렬한 팬이였습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베를린을 유럽 BDSM의 중심 도시로 선포하려고 했었을 정도죠. 그런 베를린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라고만 보는데, 베를린은 문란한 것이 아니라 숨기지 않고, 공개적이며, 젠더간 평등을 중시하는 도시거든요. 그렇다보니 오해하는 사람들 일부는 베를린 클럽만 가면 무조건 섹스할 수 있을거라 잘못된 상상을 하거나, 베를린 클럽에서는 성추행이 빈번하다는 오해를 하고들 있죠. 그런 맥락에서 메갤의 젠더 스탠스는 이미 남성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저를 적대시하고, 제가 한국 남성이기 때문에 더더욱 한남충이라고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메갤은 언제나 서구 남성과 한국 남성을 비교하면서 서구 남성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구원의 기다림은 페미니즘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여성을 약자화 시키고, 보호 대상으로 만드려는 마초이즘에 근거합니다. 때문에 메갤의 젠더스탠스는 페미니즘이라기보다 성에 대해 적대적이며,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학습당한 마초이즘에 기대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다시 말해, 김치남/백인남성 프레임으로 백인남성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은 실제로 구원받을 수 없는 일 일뿐만 아니라 삼호쥬얼리호를 납치, 석해균 선장에게 총격을 가해 무기징역과 13~ 15년의 징역을 판결 받은 해적들이 한국 귀화를 희망하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Q.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담론을 사회에 끌어온 메갈리아라는 단체를 높이 샀었는데 최근 행보를 보면 여성해방이 아닌 또 다른 프레임들을 여성에게 씌우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여성이 인간으로 대우받기 이전 성적 소비의 대상이 되는 이유나 여성이 차별받는 이유를 여성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 같아 더 불편하기도 했구요.

A. 저도 차별받는 여성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메갤의 시작에 적극적 지지를 하였지만, 이내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첫번째로 미러링이란 전략은 단기적으로 충격효과를 주는 것이지, 장기적인 전략이 아닙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가면 갈 수록 그 속에 동화가 되어버립니다. 이를테면 여성혐오자들에게 거울효과를 주는 것을 넘어서서 메갤 내부에서 서로에게 거울효과를 하고 있다보니, 그 거울은 이제 효과가 아니라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된거죠.

둘째로 3세대 페미니즘, 그러니까 80년대부터 페미니즘은 성소수자, 녹색운동, 하위문화 등과 함께 약자화의 연대를 외치기 시작하면서 동력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2세대 페미니즘의 극단적인 그룹에서 남성을 적대화하고 남성과 여성을 분리시키면서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서 한발 더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죠. 그렇게해서 페미니즘과 펑크록의 Do it yourself가 만나 L7, Bikini Kill과 같은 페미니즘 펑크 밴드들이 등장하고, Bikini Kill의 Cathleen Hanna가 Riot Grrrl Manifesto를 선언합니다. 이 선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비판적 지지’입니다. 어떠한 비판적 지지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언으로 여기고 해나가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메갤은.. 메갤에 대한 비판을 여성혐오로 규정합니다. 여성은 약자니까, 약자의 말이 옳다면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같은 엉터리 논리를 소환합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이론으로 받아들여본 적도 없거니와 50- 60년대 경찰학 연구 프로젝트에서 고려되었다가 비과학성이 입증되면서 사장된 주장입니다. 여성보호주의를 외치는 한국의 페미니스트?! 들만이 ‘피해자 중심주의’같은 유사과학을 주장하고 있죠.

셋째로 저는 여성혐오에 맞서 젠더 폭력에 억눌린 자아와 욕망을 분출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우리에게는 더 많은 썅년(Bitch)들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당한 권리들이 방향 잃은 분노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젠더 폭력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마저도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여성이 받는 젠더 폭력과는 다르지만 한국의 남성들은 청년기에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2년간 신체가 구속되어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약하기 때문에’라는 명목으로 남성들만 보내어져 24시간 노동및 대기 상태로 시급 273원 가량(병장 기준)을 댓가로 받고 있습니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의 피해자들보다 현저히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죠.

가부장제가 출산으로 인한 해고와 여성임금차별의 원인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남성 역시 가부장제로 인해 가족 부양의 의무가 생기며, 오래된 논란, 혼수와 데이트 비용과 같은 논쟁을 유발합니다. 이런 불균형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모두의 권리를 제약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뿐이지, 가부장제는 반드시 사라져야할 ‘봉건적인 현대사회의 유물(Feudalistic contemporary relic)’입니다.

오늘의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이 대립하고, 대결할 것이 아니라 젠더간 불균형과 차별을 넘어 평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Q. 여성의 로리타 의상 관련 소녀느낌이 나는 옷을 입는 여성들에 대한 메갈리아의 마녀사냥 얘기를 듣고 개인적으로 이 단체의 정체성에 조금 회의를 느끼고 있었어요. 저는 인간의 성적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페미니즘에서 꽤나 중요한 테마라고 생각하는데 얼마 전에 메갈리아나 극단주의 페미니즘 진영에서 동성애 관련 차별 발언을 했다고 하여 이 단체가 그저 타인을 혐오하고 사회의 또다른 소수를 무시하며 자위하는 단체인지, 진정한 여성해방을 원하는 단체인지 조금 구별이 안가기 시작했어요. 지나가다 궁금해서 쪽지드렸는데 혹시 불편하심 그냥 무시하셔도 괜찮아요 ^^;

A. 저 또한 설리, 구하라, 그리고 로타 사진 작가에 대한 비판에 유감을 금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은 그 자신의 이름으로 누구에게도 ‘자기성결정권’이란 기본권리를 침해하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젠더간 평등 문제를 떠나 어떻게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지 참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제가 이전에 적은 글이 있는데, 그 글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링크: https://goo.gl/GglNfl

링크는 ‘Sonic Youth, 쏘닉 유스’의 ‘Kim Gorden, 킴 고든’이 ‘Bikini Kill, 비키니 킬’, ‘Le Tigre, 르 띠거’, ‘The Jullie Ruin, 더 줄리 루인’의 리드 싱어 ‘Cathleen Hanna, 캐서린 한나’에게 헌정하기 위해 ‘RIOT GRRRL MANIFESTO, 폭동 소녀 선언문’을 낭독하는 비디오입니다.

The Riot Grrrl Movement는 1990년대 초반 워싱턴 주의 밴드 비키니 킬과 리드 싱어 캐서린 한나로부터 시작 되었고, 이는 3세대 페미니즘의 방아쇠가 됩니다. 이 선언문은 1991년 ‘the BIKINI KILL ZINE 2’에 실려 발표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