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 137

방금 짐정리를 마쳤다. 정말 억울해서 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집주인이 뭐라 해도 2년 째 윗층 주인이 허락하지 않아 엄마 집 베란다 누수를 고칠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아랫층이 우리 쪽에서 방수폼과 방수페인트로 해봤지만 물이 새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덕분에 단 두권을 제외한 내 모든 책이 물에 젖었다. 다행히 모든 음반을 찬근이에게 전해준 직후의 일이다. 많은 책들이 있었다. 정말 정말 내가 좋아하던 책들이 있었다. 비싸지만 어렵게 산 디자인 책들과 이상이가 파리로 가기 전 준 책들과 새봄이가 선물해준 책과 다시는 구할 수 없는 절판본들… 너무 너무 아끼기 때문에 이미 본 책이더라도 어렵게 다시 구했던 책들 모두.. 나는 책들과 같은 박스에 있던 모든 것들을 버리기로 했다. 나를 쥐어짜던 폐쇄병동에서의 일기들과 한땀 한땀 수 천바늘 기워입던 옷들까지. 이번주는 정말 굉장하다. 믿기 어려운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괴로웠다. 믿었던 책마저.. 이렇게 되버리다니. 마음은 아프지만 더이상 원망하지 않고 그 분의 뜻이라 여기겠다.

 

ㅡ 2011년 9월 29일 우울한 저녁 6시 31분, 독일로 떠나기 하루 전까지도 비는 한달 내내 그렇게 내렸다. 나를 가볍게 떠나보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