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 124

 

 

머리가 터질듯이 들이키고, 허공을 움켜쥐고, 고요를 외치고, 이내 평온을 찾다 다시 “대체 왜..!” 라 반문하기. 그리고선 다시 비워진 잔을 채워넣고, 비워내고, 또 다시 채워넣고, 비워내고. 이번에는 넘치도록 채워 잔을 움켜진 손등을 타고 술이 흘러, 팔꿈치로 흘러, 새카만 옷을 적시고, 들이키고, 소매로 입술을 훔치고. 이내 끄덕끄덕 무엇이라도 알겠다는듯 얕으막히 잔을 채우고, 들이키고. 하지만 결국엔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염두해둔 일들이 모두 자리를 찾아가는데, 왜 나는 이렇게 허전한 걸까.

그 화난 목소리가 좋았었나보다. 빨리 손전화 사라 하시던데, 일을 놓치고서 간신히 맥주 들이킬 돈만 달랑 움켜쥐고, 텅빈 주머니로 걷다보니, 길가에 놓인 맥주병을 서성이는 벌이된 마냥 좋아서 집에 돌아갈 수가 없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퀘퀘한 방에 쳐박힌 자전거를 바라보며, 혼자 마시던 어느 저녁의 글을 가만히 다시 읽어본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만들고, 자전거 타고 호수로, 따사로운 햇살과 흠뻑 젖은 머리칼로 와인을 들고서 노을을 옆에 끼고 집 근처 철도 위 다리로. 손을 꼭 잡은 채 돌아와, 푹 꺼진 카우치로 돌아와, 몸을 포개고선 수 없이 보았던 영화 <조찬클럽>. 창 밖으로 쌀쌀한 바람이 보이고, 별이 들려온다. 두 눈을 감고, 일렁이는 초를 흠향하고, 마른 물 비릿내를 맛본다.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맛본다. 너는 벌써 풀벌레 소리를 내고 있다. 소나기 한번 쏟아지면 바랄게 없으련만.”

마치 병이라도 난 사람처럼, 고장난 사람처럼, 부러진 것 같은 때.

방에 틀어박혀 글을 읽는 것이 좋다고, 되도록이면 시일수록 좋다며, 모두가 좋아함에도 아직 번역 시집 한권 출간된 적 없는 부코우스키를 생각하며, 한국어로 옮기던 때를 생각했다. 그래, 그 때처럼 싸구려 와인 한병에 거짓말 같은 밤 하루, 그리고 아침의 냉랭한 목소리로 “꿈 같았다”하면 될 줄 알았다.

이른 아침 바닥이 푹 꺼질듯 한숨을 쉬고서, 다- 여섯시간동안 시들을 읽고, 마지막으로 <Nobody, but you>를 읽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누구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누구에게도, 그 어떠한 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일전에 어두웠던 밤을 보내고, 옮겨두었던 그 시를 다시 가져와야지.

맥주 마실 돈이 떨어져가니 한글로 옮겨둔 부코우스키의 글이 마음에 드시면, 시큰거리게 취할 수 있도록 소일거리를 주시거나, 맥주를 사주세요. 하지만 손전화는 아직 갖고 싶지 않네요.

Charles Bukowski – Alone with everybody
모두와 함께 혼자가 되는 것

살가죽이 뼈를 덮고
사람들은 마음을
거기에 둬
종종 영혼조차도,

그리고 여자들이 벽에
꽃병을 던져 깨고

남자들은 역시 너무 많이
마시고

아무도 그것을 찾지 못하지만

계속 바라보아
침대 안밖으로 기어오르는
것을.
살가죽이 덮어
뼈를 그리고 그
살가죽은 보다
더 많이
찾아

기회가 전혀
없어:
우리 모두 덫에 걸렸어
기묘한
운명으로.

아무도 그것을 찾지 못해.

도시가 버려진 것들로 가득해

폐품처리장들이 가득해

정신병원들이 가득해

병원들이 가득해

묘지들이 가득해

가득하지 않은 것들이
없어.

그래, Skeeter Davis의 The End Of The World를 베를린의 목소리, Anika로부터 듣고 싶어졌다.

Anika – The End Of The World

Why does the sun go on shining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Cause you don’t love me any more
태양은 왜 저렇게 계속 빛나는 걸까
파도는 해변으로 왜 밀려드는 걸까
그대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은 끝나 버렸다는 것을 저들은 모르게..

Why do the birds go on singing
Why do the stars glow abov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It ended when I lost your love
왜 저 새들은 계속 노래 부르는 걸까
왜 저 별들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걸까
내가 그대의 사랑을 잃어 버렸을 때
이 세상은 끝나 버렸다는 것을 저들은 모르게..

I wake up in the morning and I wonder
Why everything’s the same as it was
I can’t understand
No I can’t understand
How life goes on the way it does
아침에 일어나 모든 일들이
예전과 다름이 없음에 놀랄 뿐이야
이해할 수 없어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어떻게 똑같은 방법으로 삶이 계속될 수 있는 걸까

Why does my heart go on beating
Why do these eyes of mine cry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It ended when you said goodbye
내 가슴은 왜 계속 뛰는 걸까
왜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올까
그대가 안녕이라고 말했을 때
이 세상은 끝나 버렸다는 것을 저들은 모르게..

 

 

 

ㅡ 2016년 7월 29일 오후 2시 20분, 시큰거리게 취할 수 있도록 소일거리를 주시거나, 맥주를 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