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종전에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기사인데, 이제서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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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경험한 베를린의 문화적 다양성과 관용주의에 관해 서술한 글입니다.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표방한 몇몇 분들에게도 공감을 얻지 못하고 소수의견으로 매도됐던 필자의 경험 등이 그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최종 발행이 됐습니다. 앞으로 더 깊은 사유와 토론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이 글의 소재와 주제에 관한 반론과 보론, 비판 기고는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작년부터 연이은 여성혐오 때문인지 분노에 이글거리는 ‘페이스북-혁명가’들이 너무 많아서 오랜만에 우리가 가진 편견, 혹은 시차적 관점에 대해서 가벼운 잡글을 나눠볼까 한다.
한 달 전쯤, 독일 한국 유학생 그룹에서 룸메이트를 구하는 독일인에 대한 분노의 글이 올라왔었다. 룸메이트를 구하는 독일인이 한국인 유학생분께 메일을 보내 왔다. 그 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자신의 이름, 나이 등을 밝혔다.
- 룸메이트에게 월세는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 더불어 잠자리를 같이하는 섹스 파트너가 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는 당연히 그 독일인이 룸메이트 겸 ‘섹스 파트너’를 한국 여성을 대상으로 구했기 때문이다. 이 메일을 읽으신 몇 분께서는 성희롱, 혹은 명예훼손을 거론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본다.
독일에서는 이런 조건으로 동거인을 구하는 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계약 이후가 아닌 계약 이전, 계약 조건에 대해 조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 동거조건일 뿐이다. 더불어 아무런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며, 고소 사유가 될 수가 없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인 주류문화에 익숙하게 살았다면, 이러한 것들을 문화라고 이해하지 않고, 범죄라고 단정 짓기 쉬우리라 생각한다. 왜냐면 한국 사회는 집단의 이해가치에 따른 보편적 정서에 동화되지 않으면, 나쁜 것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국사회는 다양성이 없는 집단주의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서 다양성은 집단주의의 위계질서를 해치는 나쁜 것으로 오인되기 쉽다. (최근에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문제들이 신자유주의 때문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 명제 1. 독일은 성매매가 합법이고, 성노동자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 명제 2. 공개적으로 스윙어클럽, 스와핑클럽, 섹스 혹은 페티쉬 클럽들이 있다.
- 명제 3. 베를린과 함부르크는 유명한 섹스 관광지며, 함부르크는 관광상품엽서에 섹스와 관련된 상품을 판다.
- 명제 4. 함부르크의 점거운동으로 유명한 하펜슈트라쎄 바로 옆에 홍등가가 있고, 독일 안티파들과 함께 권리를 위한 연대 투쟁을 한다.
- 명제 5. 베를린의 번화가인 놀렌도르프플랏쯔에는 나치 때 학살당한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추모비와 게이클럽, 게이호스텔들이 즐비하다. 베를린은 LGBT들의 성지다. LGBT 없는 베를린은 상상하기 힘들다.
- 명제 6. 베를린은 또한 유럽 헤도니스트(hedonist, 쾌락주의자)의 성지다.
2003년 베를린이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을 당시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Berlin ist arm, aber sexy)” 라는 한마디로 베를린을 구한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시장도 게이고, 그 역시 베를린의 그 악명 높은 섹스 프렌들리, 페티쉬 클럽인 벨카인(Berghain)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베를린 시의 공식 관광 프로그램에 퀴어들을 위한 투어리즘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베를린의 자랑인 다문화, 다양성, 관용주의를 이야기하며, 한국 사람들이 베를린의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베를리너의 정신을 느끼길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베를린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을 구석 구석으로 인도하지만, 오픈릴레이션쉽(Open relationship: 자유로운 연애, 다자간 합의된 연애)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벨카인(Berghain)이나 킷캣(Kitkat)같은 곳을 권하지 않는다.
LGBT, 헤도니즘(Hedonism, 쾌락주의)과 오픈릴레이션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공간에 있다면, 서로를 존중하는 암묵적인 약속들이 파괴되어 일차적으로는 해당 공간에서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고, 나아가서는 공간 자체가 갖는 공동체에 균열이 가고,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클럽들은 보안요원들이 방문자 입장을 거부하고 돌려보내는 경우가 클럽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을 훌쩍 넘는다. 대략 벨카인에서 하루에 돌려보내는 관객만 적어도 500명에서 1천 명쯤 될 것이다. 인종차별이 아니냐는 많은 방문자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이것은인종차별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렇다, 테크노 퍼레이드에서 여성을 괴롭힘으로부터 지켜낸 그 유명한 테크노 바이킹도 베를리너다.
베를린의 클럽 문화
1.
이곳은 클럽이 아니라 테크노사원 벨카인이다. 벨카인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4시 반이 좀 넘어서였는데 200여 명 이상이 줄을 서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 둘 보였고, 아시아 사람은 대개 일본이나 홍콩 사람이었다. 그 한국 사람들은 너풀거리는 옷을 실로 매어 물감을 들인 옷을 입고, 홍대에 자주 드나들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미안하게도 나는 이 사람들을 보자마자 들어갈 수 없다고 확신했고, 그 예상은 맞았다.
1-1.
물갈이로 악명이 높은 클럽, 벨카인. 대체 어떻게 들어가야 한다는 말인가? 비EU는 물론 EU시민들로부터까지 인종차별 오해를 사고 있는 베르그하인과 어바웃 블랭크 등의 클럽 입장 및 내부 정책,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갈망토록 만드는 이 빌어먹을 것에 대해 그리고 클럽 내부 규칙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해볼까 한다.
- 아마도 한국어 사용자에게 열광 받을만한 친절한 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신이 이 가이드를 가지고서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누구도 탓할 수 없고, 들어가서도 벨카인을 온전히 이해해야만 한다.
나는 거의 매주 가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주 만나 친해진 친구들이 있고, 누가 자주 오는지, 가끔 한국 관광객이 와서 적응하지 못하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알고 있지만, 어떻게 즐기는지는 완벽하게 글로 서술할 수 없다. 혹여라도 당신이 베를린서 나와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또 다른 날이 되겠지.
a) 술 취하지 말 것.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당히 흥을 돋우는 정도는 좋다. 하지만 벨카인은 당신이 없어도 충분히 잘 돌아간다.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술 취한 당신이 망쳐 놓을 분위기는 사양한다.
b) 너무 많은 약은 안돼.
a)와 같은 이야기다. 당신이 약에 취해 분위기를 타지 못할 것이라면 당신이 얼마나 잘 나가는 사람인지 그런 것은 관계없다. 그냥 사양한다. 에고이스트는 집에 돌아가 당신의 빈 잔이나 채워라.
당신이 당황하거나 두리번거리거나 흥분에 도취해 있다면, 보안요원들은 약에 취한 당신의 동공을 주시할 것이다. 아무리 벨카인이 섹스, 마약, 술로 물든 곳이라고 하더라도 열린 공간에서 약을 하는 일은 공개적으로 “나를 쫒아내 주세요”라고 하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은 속인주의 법을 통용하는 국가이므로 독일에서 약을 했을지라도 한국에 돌아가면 엄연히 범법행위이다.
c) 4명 이상은 안 돼.
사실 3명도 너무 많다. 당신이 LGBT이고, 섹스에 대해 개방되고 우호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 ‘어떤’ 특혜가 따르겠지만, 여성-남성 조합이 좋다. 혹은 남성, 여성, 여성 정도의 3인 조합은 괜찮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친구들끼리 클러빙을 할 생각이라면 다른 클럽을 알아봐라. (들여보내 줄 일도 없겠지만, 제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꺼져줘) 한국인은 물론 모든 국가의 클러버들에게 다소 낯설거나 불쾌할 수 있는 정책이지만, 베를린 몇 클럽들이 고수하는 이 정책은 매우 타당한 이유가 있다.
생각해보자. 여럿이 입장한다면, 그들끼리 한구석에서 쑥덕거릴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무리 지어 놀게 된다. 그럼 자유로운 대화 같은 것은 애초에 사라진다. 그런 친목을 즐기는 관객들은 오히려 클럽 분위기를 망친다. 낯선 이와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말라.
d) 지나치게 알려 하지 마라.
안의 분위기가 어떤지 묻지 마라. 이러한 무례한 행동이 클럽의 분위기를 망친다. 상대를 평가하려 하지 마라.
e) 사진 촬영은 안 돼.
베를린의 몇몇 클럽들과 마찬가지로 벨카인 내의 사진 촬영은 금물이다. 입장 시 당신의 카메라 핸드폰에 스티커를 붙인다. 발각 시 강제 퇴장된다. 경고는 없다. 그래도 당신이 항변하며 정황을 남기겠다고 찍으려고 한다면, 당신의 카메라 렌즈는 이미 부서져있을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클럽은 사적소유 재산이고, 그 클럽 내부에 몇몇 규칙이 있다. 이에 법적 하자는 없다. 그래 보상받는다고 해도 당신이 얻을 것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사실과 몇 주 후에 수리받는 스마트폰 정도? 카메라는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가져오지 마라. 반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f) LGBT.
사실 이 부분은 크게 말할 것이 없다. LGBT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당장 베를린을 떠나는 것이 좋다. 베를린이 어떤 도시냐고? LGBT 시위해봐야 백여 명 단위밖에 안 온다. 드레스덴이었다면 천 단위의 시위대가 있었을 것이다. 베를린은 그런 도시다. 전 베를린 시장도 게이였으며, 베를린은 게이들의 성지다.
또한, 베를린의 게이들은 여성스럽고 허약한 것이 아니라 근육질에 경제적으로도 약자가 아니다. LGBT 없는 베를린은 상상하기 힘들다. 따라서 게이인 경우 입장이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자동적으로 입장이 허용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베르그하인 관객의 10~20%는 건장한 근육질의 대머리 게이들이다. 이들은 언더웨어만 입거나, 상반신을 탈의하고 노는 편인데, 나보다 약간 크니까, 185cm에서 2m가량 되는 근육질 대머리들이 몰려다닌다. 정신없이 놀다 이들 가운데 갇힌(?!) 적이 있는데, 힘이 세더라. 힘이 세다. 그것만 알아두자.
g) 건강한 마인드.
이들은 멋진 사람들을 원한다. 열린 마음, 그러니까 외모로 상대를 평가하는 행동은 물론, 발언하면 들어간다 하여도 온전히 살아남기 어렵다.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아냥거리며, 건방진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아무것도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없다. 입구에서부터 센척을 하는 친구들은 벨카인의 보안요원들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조심히 집에 들어가세요.”
“Pass auf, wenn du nach Hause gehst.”
h) 나이?
나이 같은 것은 상관없다. 당신의 마음이 중요할 뿐. 독일에서 크라프트베어크 이외에도 수많은 일렉트로닉, 테크노뮤지션들은 80년 대부터 활동해왔다.
베를린에서는 하다못해 동네 호프집에 준하는 크나이페(Kenipe, 동네 선술집), 게다가 40~ 50대 아저씨, 아줌마들이 가는 곳에서도 크라프트베어크나 큐어, 모터헤드를 들으며 춤을 추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i) 뒷돈은 안돼.
당신이 조금 더 수월하게 들어가기 위해 보안요원에게 돈을 주려고 했다간 당신은 영원히 벨카인에 들어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사람이라면 예의를 갖춰라, 지폐 몇 장 말고.
j) 스탬프 복사.
혹시 지난번에 사용했던 스탬프를 보여준다든가 이미 입장한 친구로부터 팔을 맞대 스탬프를 복사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모험은 포기하는 것이 좋다. 영구 입장 불가가 될 수 있다.
k) 피크 시간.
베를린의 클럽들은 일반적으로 새벽 2시부터 5시 사이가 가장 피크 시간이다. 따라서 이 시간을 피하는 것이 좋다. 벨카인과 마찬가지로 밤새, 아침, 낮까지 하는 클럽들은 오전 5시~ 오전 8시가 입장이 수월하며, 음악 또한 보장할 수 있다. 또한, 벨카인은 토요일 밤 12시부터 월요일 점심 12시까지 쉬지 않는다.
하드코어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Hardcore will never die.
l) 섹스.
베를린에는 둥켈라움(Dunkel Raum: 어두운 방) 이라고 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화장실에서의 섹스는 물론, 어둡지만, 열려있는 좁은 박스에서 섹스를 한다. 그것이 베를린의 문화.
종종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하면, 베르그하인, 킷캣 등의 클럽에서는 그 자리에서 옷을 벗고 춤을 추며 서로를 끌어안기도 한다. 게다가 벨카인을 비롯한 몇 유명 클럽들은 악명 높은 섹스 파티를 하는 곳이다.
게이, 레즈비언은 물론 헤도니스트들의 파티다. 당신의 연인과 다자간 연애가 아니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누군가 당신의 연인에게 키스할 때, 질투를 느낀다면, 다른 클럽을 추천한다.
물론 섹스를 거절할 수는 있다. 하지만 거절하는 것도 당신의 능력이다. 불쾌하다는 듯이, 불편하다는 듯이 거절하면, 모두 당신과 미소 짓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낯선 이와의 키스를 두려워한다면,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거절하면 다시 시도 하지 않는다.
다 떠나서 베르그하인은 섹스에 대해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클럽이므로 종종 우발적으로 낯선 이가 당신의 가슴이나 성기를 만지는 일이 있다. 특히나 서구 남성들은 동양 여성에 대한 성적 판타지가 크다. 고분고분하며, 복종하는 그런 판타지 말이다. 여성들은 이를 유념해두는 것이 좋다.
m) 드레스 코드.
드레스 코드는 아주 중요하다. 몇 가지 단어들을 나열해 본다.
- 펑크
- 사이버펑크
- 크러스트
- BDSM
- 구속복
- 비키니
- 수영복
- 속옷
- 젖이 드러나는 옷
- 몸이 드러나는 옷
- 가죽
- 라텍스
- 개목걸이
- 부츠
- 오컬트
- 아방가르드
- 모피
- 상반신탈의
- 하의 속옷 외 전신탈의
- 검은색
- 약간의 네온컬러
- 찢어진 스타킹
- 망사
- 편한운동화
- 문신
- 피어싱
- 닭머리
- 독특한 헤어컷
- 스카프
- 중절모
- 털모자
- 비유행성 패션 등
이 단어들을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캐릭터가 분명할 것. 유행을 따르지 말 것. 따라서 브랜드 로고가 커다랗게 박힌 옷이나 정장, 구두 등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
n) 언어.
베를린의 몇 유명한 클럽들은 젠트리피케이션(Getrification: 낙후된 지역이 고급화되는 현상) 현상이 가속화됨에 따라 이에 연대하고 항의하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을 환영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종차별이 아니다.
당신이 운이 좋다면, 벨카인에 들어갈 능력이 되는 좋은 로컬 친구가 있을 것이고, 함께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이러한 클럽들은 예의상 포기하는 게 좋다. 현지인이라고 하여도 언어가 잘되지 않는다면, 혹은 이러한 로컬 클럽들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면, 아주 좋은 생각은 아니다.
심지어 다른 도시에서 베를린의 테크노를 즐기러 왔다가 입장이 거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당신 거주지가 베를린이라고 해서 로컬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유념해야 한다. 인종차별할 필요 없다. 베를린에서는 아무도 당신을 차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차별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관광객일 것이다.
o) 입장이 불가능해질 때.
친구가 안에 있다고 호소하지 말자. 구질구질한 인상으로 다시는 못 들어가게 될 수 있다. 낙심하지도 말자. 가까이 Tresor, Watergate, Ritter Butzke, Club Weekend 등 입장이 무난하면서도 재미있는 클럽들이 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그리고 또 나쁜 의미에서 그 클럽들과 벨카인은 비교될 수 없다.
- 안에서의 인연이 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클럽을 나서게 되면 되도록 클럽 안의 일을 모두 잊는 것이 좋다. 베를린에서는 클럽에서 연락처를 주거나 받는 일이 흔하지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대답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당신과 섹스를 몇 차례 했다는 것이 당신과 사귀고 싶어라는 뜻도 아니다. 그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났다간 다치는 건 당신뿐이다. 스스로 상처받지 말라. 규칙이란 것은 자신이 자신을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하는 약속일 뿐,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클럽들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공간 자체가 가져오는 안락함, 그리고 그 말 없는 약속들이 잘 지켜지기 때문이고, 무례한 관객이나 관광객들이 없기 때문이다.
베를린 클럽에 간다면서 가장 멍청한 놈들은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클럽이라고 해서 섹스만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이런 곳을 찾으면, 섹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와서는 춤도 추지 않고, 그저 등대처럼 두리번거리며 섹스 상대만 찾는 사람들이다. (사진 찍는 놈들은 말할 것도 없이 무조건 쫓겨난다/)
그런 곳이 베를린이다. 테크노의 도시, 베를린의 클럽에서 진짜 즐긴다는 것은 그러한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다. 모든 클럽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베를린의 악명 높은, 그리고 가장 핫한 클럽들은 이러한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다른 도시의 클럽들과 차별된 베를린 클럽의 가치를 표상하기도 한다.
아시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 서구 문화 전반으로 신문 지면상이나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단기, 장기, 데이트 상대를 구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혹여 어학원을 다닌다면, 어학원 선생에게 물어봐도 같은 답을 받을 것이다.
이런 문화는 한국에서 돈을 주고 음성적으로 성을 거래하는 것과 달리 취향이 맞는 사람들 간의 합의된 건전한 관계라고 통용된다. 그 유명한 줄리안 어샌지도 데이트 웹사이트 ‘오케이큐피트’에서 자신을 ‘위험한 사람’이라며 스스로 소개하기도 했다.
줄리안 어샌지처럼 이러한 웹사이트들은 단순한 성적 교제만이 아닌 자신의 기호, 철학, 정치성, 주체성, 삶의 태도 등을 반영한다. 베를린을 예로 들자면, 도시 특성상 성적 기호에 대해 범성욕주의(pansexual), 양성애, 다자간 연애라던가, 채식, 혹은 페미니즘과 같은 정치적 조건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만나는 일들이 흔하게 벌어진다.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길 거부하면서도 페미니스트 남성만을 찾겠다는 메갤의 그 이율배반적인 글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돌아와 정리해보자면, 룸메이트를 구할 때, 자신의 기호, 취향, 라이프 스타일 등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독일에서 룸메이트를 구하기 위해 인터뷰해본다면 누구나 익히 알겠지만, 학업, 삶의 태도 등을 목표 지향성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일반적이다.
함께 살면서도 서로 자주 마주치지 않길 원하는 사람도 드물게 있기야 하지만, 일단 룸메이트라는 정서는 함께 살아가며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동반자적 관계를 의미하므로 같이 자주 식사하고, 같이 놀러 다니고, 이러한 것들이 일반적이다.
이런 것들을 싫어하는 사람을 비사교적, 혹은 반사회적(A-Social)으로 보기도 한다. 관심사에 대해 서로 이해가 맞아야 하기 때문에 독일인, 혹은 유럽 사람들과 룸메이트가 되는 일은 한국인들에게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비EU 문화권인 사람들만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일에서 룸메이트를 구해본 사람이라면, 이 일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 일인지, 까다로운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 룸메이트 하나 구하는데 10명 정도의 인터뷰는 정말로 정말로 흔한 일이다. ‘룸메’ 하나 구하려고 인터뷰를 수십 명씩 하고, 같이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클럽을 가는 젊은 친구들도 있다. 그렇게 잘 놀고도 룸메이트가 못 되는 일도 허다할 정도로 그들과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과 룸메이트가 되는 일이 드물지만, 집 하나 구하려고 이런 수고를 해야만 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렇다면, 해당 유학생의 이야기 같은 일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매우 간단하다.메일을 받고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답을 안 하던가 그냥 거절하면 된다.
그분께서는 처음이라 놀라셨을 거라 생각한다만,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지구는 둥글고 나와 다른 사람들도 많다. 그중에서 자신과 맞는 누군가를 찾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큰 기쁨 중 하나 아닐까.
좋은 친구를 찾고, 진탕 마시며, “널 너무 찾아다녔어!”라고 말하는 게 진짜 재미지! 내가 사는 하우스 프로젝트는 어떤 정치적 이상향을 함께하는 공동체지만, 스무 개가 넘는 각자의 방에서 서로 각기 다른 기호,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 함께 살아간다.
누군가 공동체의 독점하지 않고, 수평적이며 능동적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수많은 토론과 회의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 No means No.
이 글은 여성혐오나 여성차별에 동의하는 글이 아닙니다. 누구든 ‘안된다’, 혹은 부정의 의사를 표현했는데도 관계를 이어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폭력입니다.
나의 관점이나 누군가의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때로 유효한 결론과 거리가 먼 곳으로 귀결된다. 내가 어떤 곳에 서 있냐에 따라 나무 그림자 방향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베를린의 디제이 아다나 트윈스(Adana Twins)가 더 도어스(The Doors)의 ‘사람들은 이상해(People are strange)’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 ‘Stranger.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베를린의 아주 유명한 테크노 할아버지 두 분 중 한 분, 올해 68세의 베른하르트 엔스테(Bernhard Enste). 아주 와일드한 언더그라운드 파티를 즐기시는데, 웬만한 젊은 친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매력 터짐 때문에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으시다.
실제로 만나보면 왜 그런지 단번에 이해하게 됨! 최근 미국에서 테크노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우리 동네 할아버지 베른하르트 엔스테를 모시고 싶어서 야단이라고 한다.
이 글 본문 중 독일의 클럽 문화에 관한 서술 부분(특히 ‘벨카인’)은 ‘긱가이드(코리아)’에 필자가 썼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