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지적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일단 배제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안 바뀔거다. 반성의 기회도 주어야겠지만, 그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성주의, 페미니즘 밴드의 등장이다.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담긴 음악이 생기기 전까지는 “들었어? 그 밴드 멤버가 데이트 폭력을 했대”, “그 밴드는 여성혐오 밴드야” 수준의 이야기만 공허하게 맴돌거다.
지금 이 밴드들에 문제제기 하는 사람들 중 Riot Grrrl이나 페미니즘,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밴드나 음악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감히 추측컨데 열에 하나정도 밖에 없을거라 생각한다. 왜냐면 빌어먹을 한국 음악씬의 유구한 전통이 정치와 음악을 떼어놓기였기 때문이다. 간간히 이주노동자, 새만금, 대추리 등의 이슈에 연대 공연을 하던 밴드, ‘익스플로드’는 이른바 진보정당 사람들에게 의해 제대로 들려지지도 않은채 음악이 시끄러워 폭력적으로 들린다며, 곡의 의도와 관계없이 배재 됐었다. ‘데들리 태권도 보이’가 마초이즘을 사정없이 비꼬은 가사도 도리어 여성혐오라며 배제 되었다. 기준은 그들의 취향이었고, 이러한 마이너 음악들은 너무 정치적이라는 이유거나, 너무 마이너한 익스트림 음악이란 이유로 오래 전에 배제 되었다. 실제로 연대를 꿈꾸던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진보정당들의 마이너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제스쳐를 통해 포지션을 취하고 싶을 뿐, 실제로는 그런 스탠스가 아니라는 것. 평등한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지, 실제로 평등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일례로 진보정당 내에도 새누리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파벌, 계급, 학벌주의가 있다.
아무튼 한국에도 2000년대 초중반 두어 밴드가 Riot Grrrl을 바라보고 있었긴 했다. 결국 그와는 거리가 생기거나 소리 없이 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아나코, 크러스트 펑크 씬을 이야기 하자면, 북미에서나 유럽에서는 여성중심의 아나코, 크러스트 펑크 페스티발이 있다. 아나코, 크러스트 펑크 페스티발이 아니더라도 여성중심의-, 성소수자 중심의 연대 이벤트, 파티들이 곧잘 열린다. 성별에 구애 받지 않고, 이성애자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다.
그럼 당장 이런 파티를 열기만 하면, 만사해결 되는 일 일까? 아니, 그 전에 주체적이고, 조직화된, 학습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페이스북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여혐들을 패주겠어’ 하는 마음만으로는 현실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앞선 사람들 이외에 또 어떤 누군가가 여성혐오를 저질렀다고. 그럼 또 다시 그 사람을 배제 시키는 것에서 만족 해야하는 걸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여성혐오에 “안돼!”라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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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누군가를 배제 시키는 일이란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다. 중학교 때, 도덕 교과서의 모순을 이야기하자 선생님은 나에게 발언권을 뺏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 뒤에 서있게 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좀처럼 발언을 하거나 발표할 기회를 갖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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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기야 했지만, 이를테면 나는 선거 전 새누리당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여성범죄, 청년실업 문제에 관한 위원회를 당사자들과 함께 만들고, 관련 법안 입법을 약속한다면, 더민주당이나 국민의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을 선택하지 않고, 새누리당에 표를 던지겠다고. 나는 이것이 정치라고 본다. 좌파정당들은 대개 공약 실현 의지만 있지,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런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보다 여당에게 요구를 하고, 여당을 바꾸는 일이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정치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려면 더민주당의 지금과 같은 좌파 이름표를 단 우파 스탠스를 보이는 삽질이 필요하다. 어차피 둘다 국회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표를 구걸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정당들이므로 새누리당에게 딜을 해볼 수 있지않나. 물론 한국 거대여/야당들은 선거철에만 장사를 하는 정당들이란 변수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