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ri Alsim님의 메갤에 대한 입장에 대해

1. 인권이란 단어를 꺼낼 필요조차 없다. 혜은씨가 이런 의도적인 집단 린치의 희생양이 될 이유는 없으며, 해당 폭력행위를 중지키 위해서는 전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방법을 더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 더이상 인권의 영역이나 운동의 방향성 문제가 아니라 지금은 집단폭력,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메갤을 페미니즘과 결부해서 이야기 하시는 분들을 나로서는 폭력의 방조자로 볼 수 밖에 없다.

+ ‘200명이나 가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이런 한가한 소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이해도 안되지만, 지금의 가해를 당연한 의사개진으로 보시는 분들께 돌려 드려야할 것은 유감과 함께 법적 처벌뿐이다. 굳이 벌금이 아니라 수갑차고 신체가 구속되는 것을 원하신다면, 그렇게도 해드려야 한다. 2명이 아니라, 무려 200명이 집단 괴롭힘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지금 페미니즘과 메갤 사이의 언어및 행동은 하등 관계가 없다. 이대로 두면, 진짜 누가 수갑차고, 누가 죽어나야 끝나는 비극을 우리는 뉴스 헤드라인을 통해 보게 될 것이다. 이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집단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모두가 이 집단 폭력의 가해에 연루되었거나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걸 지금이라도 상기해야만 한다.

3. “실험은 끝났다”라는 말로도 끝낼 수 없었던 실험, <Die Welle>에서 다뤄진 파시즘 실험을 통해 어떻게 파시즘이 발현하는지는 모두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집단주의, 소속감 따위를 통해 어떻게 파시즘이 발현되고, 범죄까지 이어지는지 내 눈 앞의 현실에서 목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치 못했지만, 지금 그 일이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써클 내부에 있으면, 내부 전체를 볼 수 없다. 되돌릴만큼 여유가 없는 것은 이미 열성적 가담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4. 나는 지난해 9월 초, 덕분에 메갤에서 완전히 관심에서 끊었다. 그리고 이후 11월에는 내가 메갤의 연장선상인 소수자-친화 하부 커뮤니티를 떠났다. 그 이유는 메갤이 전투적으로 싸우지 않아서가 아니었고, 페미니즘의 논리에 부합하지 않아서만도 아니다.

소수자-친화 커뮤니티였지만, 구성원들은 경쟁적으로 pc함을 다루었고, 다들 몸이라도 투신할 것처럼 신앙간증이 이어졌다. 운동과도 전혀 관계없는 친목 위주의 집단주의였고, 이 소속감이 가져다 주는 힘에 큰 힘을 입고, 구성원들을 커뮤니티 내부에서 하나의 목소리만이 가능해졌다. ‘내부에서의 인정투쟁’을 위해 커뮤니티 밖, 특정 다수를 향해 레이블링 하기 시작했다.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친 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주류 의견이 일정하게 고정-형성되고, 의견을 주고 받는 대화란게 사라졌다. 파시즘은 이렇게 소리 없이 시작된다.

5. 기본적으로 나는 이런 것을 운동으로 볼 수가 없다. 적어도 나는 마치 우월성을 자랑하듯이 세상의 모든 여성혐오 사례를 경쟁적으로 찾아 누가 더 페미니스트인지 겨루는 것이 미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의 적들을 제거하기 위한 전투보다는 여성 권리의 당위성을 이해하는 동조자들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쟁과 운동은 다르기 때문이다. 운동을 정화, 사상-문화적 전투라고 보았던 중국의 문화혁명이 초래한 결말이 기억하면, 우리가 할 일은 당연한 너무도 분명해진다.

6. 지금 메갤에는 학습이나 자정및 조직능력이 없고, 행동과 적만이 존재한다. 베를린에도 노동절만 되면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운동과 시위의 간극을 이해하지 못한 10대 청소년들이 경찰과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는 곳에 난입해 투석전을 하고, 화염병을 던지고, 은행 유리창을 깨면서 ‘혁명’을 외치며 자랑스러워 한다. 이들은 왜 충돌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물리적 투쟁에만 집중할 수록 손쉽게 우리가 왜 싸우는지를 잊을 수 있다.

이들이 외치는 ‘혁명’에 의해 운동과 시위는 오락거리로 전락한다.

7. 다시 메갤로 돌아와서 정말 메갤 때문에 누가 죽어나가야 메갤과 페미니즘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는걸 마침내 인정할텐가. 페미니즘에 대한 스스로의 학습도, 조직도 없는 메갤에는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길 거부하며, 페미니즘의 레토릭을 이용해 자신들을 권력화하는 맹신자들만 남았을 뿐이다. 지금은 파시즘의 혐의까지 함께 우리 모두 목도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실험은 끝났다”라는 말이 왜 필요한지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할까?

+ 별개로 Woori Alsim님께서 ‘유사과학’에 불과한 ‘피해자중심주의’를 실제 이론처럼 서술하시는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피해자중심주의’, 유사과학에 불과하다. 대체 어느 나라의 사법부가, 대체 어느 페미니즘 이론에서 이런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한단 말인가?

오히려 한국에서만 있는 ‘피해자중심주의’ 때문에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이 몇 년에 걸쳐 무죄가 증명 되었음에도 죽음에 이른 사건들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렇다, 피해의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지만, 가해는 이렇게도 쉽게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이들은 대체 이런 ‘명예살인’과 다를바 없는 이런 ‘유사과학’을 왜 인권 운동에 가져오는 것일까. 인권운동을 와해 시키시려는 의도가 있는 것일까, 혹은 이 종교에서 구원을 바라보고 계신 것일까.

++ 명예훼손, 모욕죄를 별개로 이 일에서 처벌 가능한 법령은 다음과 같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범죄의 예방과 제지)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 1항: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제 1항, 제 41호 (장난전화 등):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전화·문자메시지·편지·전자우편·전자문서 등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괴롭힌 사람
제 1항, 제 42호 (지속적 괴롭힘):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

제 2항: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제 2항, 제 3조 (업무방해): 못된 장난 등으로 다른 사람, 단체 또는 공무수행 중인 자의 업무를 방해한 사람
제 2항, 제 4조 (교사ㆍ방조): 제3조의 죄를 짓도록 시키거나 도와준 사람은 죄를 지은 사람에 준하여 벌한다.

 

 

 

Woori Alsim 님 글 전문

<인권을 이야기하는 분들의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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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아래 언급한 그룹의 대표분들과 상의해서 수정한 내용입니다.
특히 학교에 전화통화했다는 부분 등에 대해서, 그룹 대표들과 상의하여 문장을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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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청소년들과 상담하는 일을 많이 합니다.
요즘 제가 가장 관심 있는 일은
성폭행 당한 청소년의 고소를 돕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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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으로 도움 받은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중 한 사람이 홍혜은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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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제가 페친이라는 이유로
실제로는 친분이 없음에도
자문을 구했을 때 이 일을 많이 도와주었고,
지금도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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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늘 이 일 때문에 연락할 일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황당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본인이 다니는 학교에 본인에게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학교와 학과장에게
전화를 해서 학교에서 찾아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
도대체 그분들이 어떤 피해를 어떻게 입었기에
그분들이 그렇게 까지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제가 이해하는 것은 홍혜은님이 쓴 글 중에
자신의 페이스북 개인타임라인에 쓴
‘소수자 인권을 무시하는 인권운동을
인권운동이라 할 수 있는지’를 문제제기하는 글 때문이었습니다.
.
이는 메갈리아 출신의 페미니스트라는 분들이
여성혐오를 일삼는 남성들과 댓글로 토론하던 중
남성들을 옹호하는 여성들에게 외모지적을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
그런데 이 글에서
메갈리아라는 사이트가 최근 활성화가 되지 않는 것을
“메갈은 죽었다”고 말하거나
“(소수자 인권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
이 발언으로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크게 두 가지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
1. 메갈리아와 인터넷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들에게
‘메갈은 죽었다’는 말과
‘소수자 인권을 무시하는 사람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라는 말 때문에 상처를 입혔다.
.
2. 메갈리아에서 파생된 어떤 그룹이 여성혐오를 하는
남성들에게 홍혜은씨의 글을 본 남성들이
공격의 도구로 사용하여
커뮤니티 상황이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에
홍혜은이 피해를 사과해야한다.
.
저는 개인적으로 홍혜은님이 평소에
남을 가르치는 듯한 말투로
자신의 신념에 대한 글을 많이 써오셨기 때문에
기분이 나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에 있어
소수자 인권을 이야기 무시하는 것은
인권운동이 아니라는 말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개인타임라인에 올린
개인의 의견이 사과해야하는 피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또한 어떤 남성들이 공격해서
본인들 커뮤니티의 상황이
안 좋아졌다면 공격을 한 남성들의 문제인 것이지
왜 홍혜은님의 글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이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
저는 그분들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그러나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생각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그 이후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페이스북에서 어떤 비밀그룹을 만들어
홍혜은님을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본인들의 상처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
그 비밀그룹은 홍혜은과 대화를 위한
그룹이라고 써 놓았지만,
이 사안을 보는 자신과 다른 관점의 글이 올라오면
1분에 10~20개씩 비아냥과 악성댓글이 올라왔습니다.
저도 어떤 분에게 초대되어
그 비밀그룹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
그 그룹에는 홍혜은님에게 사과를 요구하셨던 분들 중심으로 모아져서
현재는 200명의 넘는 인원이 그 그룹에 있습니다.
그중에는 홍헤은님에게 악감정을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나와 의견이 다른 분들을 대하는 모습은
대화를 하려는 분들의 모습이 아닌,
사이버 집단린치나 다름없었습니다.
(이 분 그룹에 속한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었고 특정인 분들이 주도한 것이었습니다.)
.
그 곳에서 어떠한 의견을 남길 수 있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그리고 연일 악성댓글과 메시지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고,
지하철에서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에게 욕을 하는 것 같고,
페이스북을 여는 것이 두렵다고 합니다.
하루하루가 죽고 싶다고 합니다.
.
그리고 얼마 전 이 상황과
본인이 생각하는 사건의 전말을 자신의 타임라인에 올리고,
자신에게 요구하는 사과가 무엇인지
공동의 입장문을 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피해가 무엇이고 어떤 사과를 요구하는지를
뚜렷하게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그 글마저도 비아냥과 악성댓글로 도배되었고,
거기에 해당 글은 어느 분의 페이스북 신고로 인해 지워져
정황설명을 위한 사진들을 모은 사진첩만 남게 되었습니다.
.
‘왜 글을 지웠냐’는 사람들의 말에
홍혜은님의 동생 분은
‘언니가 글을 지운 적이 없고,
누군가 신고한 것 같다.
언니가 다시 입장문을 올리고 싶지만
페이스북을 켜는 것이 두려워서 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동생 분에게도
악성댓글과 조롱이 쏟아졌습니다.
.
심지어, 홍혜은님이 다니는 학교에도 전화를 해서
본인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전화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홍혜은이 자신들에게 피해를 입혔으니
책임지라는 말을 학교에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저는 전화를 건 분(들)은 해당 그룹에 속한 사람일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구요.
홍혜은 씨는 내일 이 일로 인해 학교에 가야한다고 합니다.
.
그 분들 모두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피해 사실은 명확하고, 그 분들 중에 일부가 그러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 사건을 보면서 저는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제기하시는 분들, 학교에 전화까지 거신 분들은
‘페미니즘’이라는 성평등 인권운동을 이야기하신다는 분들입니다.
인권을 이야기한다는 좋은 분들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한 개인을 파멸하려고 한다는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
저는 자신의 피해를 주장하시면서
동시에 사이버폭력을 휘두르는 분들을 보면서
서울대 성폭력 대책위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
서울대 성폭력 대책위 사건은
서울대에 다니던 어떤 이가
‘담배를 피며 이별을 통보한 것이 성폭력’이라고
말하며 성폭력 피해로 이를 학내에 고소했으나
이는 성폭력이 아니라 개인사적인 문제임을 밝히며
제소를 기각한 학생회장에게
피해자 중심주의를 이야기 하며 주변인들과
‘당신은 명예남성이고 2차 가해자야’라고 외치며
학생회장에 대한 언어폭력을 계속하여
학생회장이 자진사퇴한 사건입니다.
https://we.snu.ac.kr/index.php
.
청소년의 성폭력사건을 도와주면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는
피해자중심주의는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피해사실 등이 분명하지 않은 사항에서
자신의 피해만을 주장하고 상대방을
가해자로 낙인찍는 피해자 절대주의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과연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개인의 일상을 파괴하는
인권운동이 유효한지 궁금합니다.
.
심적으로 충분히 고통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을 낙인찍고 파괴하는 방법이 아닌,
중재자와 함께 생각의 차이를 이야기를 해보시고
실질적인 보상을 논의해 보셨으면 합니다.
.
아무쪼록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메갈리아에 대한 작가 낢의 대처

작가 낢의 공식 입장

 

나는 워마드가 끝이 아닐거라고 이야기를 계속해서 해왔고.. 워마드 이전에도 워마드가 나타날 것을 우려 해왔고…..

 

메갤의 반여성주의를 용인하면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을 뿐이다. 꼭 이런 일이 터져야만 자성의 목소리를 낼건가. 아니 자성도 아니고, 사실은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정도의 발뺌. 뭐, 명예훼손, 모욕죄 이런 수준이 아니라 기어코 누가 정말 이런 집단 폭력에 희생 당하고, 메갤의 누군가가 수갑 차야지만 변화를 해야한다고 말하시려나. 정말 2016년판 폭스파이어라도 찍겠단 말인가.

 

메갤을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고, 메갤이 조금 더 조직화된 운동을 하기 위해 비판을 받아들이고, 자성하고, 학습하고, 조직하자고 하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 실수로 떨어트린 아이스크림을 보고 바닥에 널부러져 우는 아이 같아 안쓰러워 보일 뿐이다.

 

솔직히 메갤 통해서 페미니즘을 접근하게 된 사람이 많은데는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오히려 페미니즘을 곡해하고 편리대로 해석하는 사람이 늘었다.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유아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동시에 마치 정의를 구현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고취시키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에는 측은했지만, 지금은 한심하다. 투쟁에 대한 인식이 조금도 없다. 나의 고충을 들어줄 사람만 찾고, 나를 보다 낫게 대해줄 사람을, 그런 구원자만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내일이 있겠는가? 답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메갤의 반여성주의에 대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일체 비판을 하지 않은 젠더학 연구자 선생님들께 “대체 왜 그러셨어요?” 하고 묻고 싶다..

Great things never came from comfort zones

 

 

메갤 멍청이들이 반여성주의적인 행동을 하면서 꿋꿋이 페미니즘이라고 맹신하는 태도로 살아가면, 평생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을 읽지 않고 교회라는 우상을 숭배하길 떳떳이하며, 약자를 괴롭히고, 호가호인하는 교인이 되거나.. 언젠가 귀와 볼까지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아래로 떨구겠지.

 

모르고 실수하는건 부끄러운게 아니지만, 모르면서 뻔뻔하게 아는 척하는 것은 앞으로 스스로의 알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미안해야하며, 하찮아 보일지 모르는 이 작은 변화를 일구어내기 위해 있었던 수 많은 희생에 미안해야한다.

 

작은 변화.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조차 민주주의는 불법이었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신병원과 감옥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사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독일에서 사민주의가 등장한 것도 고작 150년, 모든 남성의 참정권은 고작 1차대전, 여성도 참정권을 갖게되는 오늘의 민주주의 체제는 2차대전과 68혁명을 지나면서 가능해졌다. 이 작은 변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고, 아직도 이 작은 변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이름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시 메갤러들의 반여성주의적인 인식과 여성주의 문제로 돌아와서.. 여성을 위한 안전구역, 이른바 ‘핑크존’은 헌법이 보장하는 ‘누구나 어디에서든 안전할 권리’를 위배하고, 역설적으로 ‘여성은 특정 시설물, 구역에서만 안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위계폭력에서 발생하는 차별은 물론이고, 모든 폭력은 피해자의 부주의나 피해자가 약해서가 아니라 가해자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인데, 여성을 위한 안전구역은 마치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이 당연하다)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나는 대중교통 내의 노약자석을 반대한다. 노인들의 실버잡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노인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노인들이 약자로서 보호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안전망과 사회구성원들의 보편적인 인식으로 어디서나 안전하고 배려받을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지, ‘강제된 도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덕의 무게. 도덕은 법과 같이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매너없는 사람을 감옥에 쳐넣을 수 없듯이, 여성에 대해 편견을 갖고있는 사람을 감옥에 쳐넣을 수 없으며, 오직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만을 감옥에 쳐넣을 수 있다. 도덕은 타의로 선택하는 행동이 아니라 하지않을 수도 있는데, 자의로 선택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고 한다. 도덕을 강제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자율성과 자유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 된다.

캐서린 한나에 대한 다큐를 보다

캐서린 한나에 대한 다큐를 보면서 상기되는 사람들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공주 페미니스트’들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저항하려면, 보호받아야만 하는 예쁜 공주, 하우스 와이프 같은 여성이 되길 스스로 거부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 그 같은 편견들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학교가 가기 싫어 가출하는 10대만도 못하기 때문에 별로 들어줄 가치조차 없다.

 

하위문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거야 얼마든 이해할 수 있지만, 서구의 페미니즘과 아시아의 페미니즘은 다르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애들은 정신차리라고 사력을 다해 따귀 한대를 때려주고 싶다. 그러는 동시에 김치남/백인남성 프레임으로 백인남성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은 실제로 구원받을 수 없는 일 일뿐만 아니라 삼호쥬얼리호를 납치, 석해균 선장에게 총격을 가해 무기징역과 13~ 15년의 징역을 판결 받은 해적들이 한국 귀화를 희망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만약 아랍 여성들이 한국의 여성인권만으로도 만족한다며, 한국 귀화, 혹은 난민신청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백인남성의 구원을 기다리는 한국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페미니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한국에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의 한국남자를 김치남으로 규정하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김치남/백인남성의 프레임으로 백인남성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을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2등시민으로 규정받길 거부하고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2등시민으로 규정하는 것이며, ‘페미니스트 남성을 만나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즘과 관련 없을 뿐더러 오히려 반여성주의로 악용될 수까지 있다.

 

이렇게 친절하게 이야기 해줘도 이해가 안된다는 년/놈들은 당신들이 구원을 바라는 서구남성-페미니스트들에게 “김치남이 이래서 저래서 백인남성과만 교제하고 싶다”면서 동시에 “내가 페미니스트다”라고 주장해보라 권하고 싶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 이따위 주장을 할리가 없겠지만, 백인남성에게 구원을 구하는 행동이 지금의 주장과 하등 다를게 하나 없다.

 

+ 흥미로운 사실은 캐서린 한나와 비스티 보이스의 아담 호로비츠가 결혼한 사이며, 아담은 종종 공식 석상에서 한나가 하는 라이엇 걸 무브먼트를 언급한다는 것이다. 아담의 비스티 보이스가 어떤 그룹인지, 캐서린의 비키니 킬, 줄리 루인, 르 티거가 어떤 그룹인지 안다면, 문화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힘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알 수 밖에 없다. 이걸 모르는, 혹은 무시하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의 중요성’, ‘사랑과 평화’ 따위에 대해서는 나는 조금도 신뢰할 수 없다.

++ 90년대 초반 비키니 킬과 비스티 보이스는 언더그라운드를 강타한 마이너들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가 들어서면서 이들은 더이상 마이너가 아니라 한 시대의 가치로 자리 잡고, 다른 문화와 사상, 사고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정어리 – 95

“내가 모든 일을 나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소망컨데 나는 당신의 절망을 머금고 살아가는 일을 하고 싶소. 나의 소망이 당신의 절망보다 조그마한 것이 비통하오.. 하지만, 약속하오. 우리가 꿈꾸어왔던 이 모든 일들이 단지 하룻밤의 꿈으로 끝나지 않게 하겠다고. 나는 여기 약속하오.”

“If I can make all things to my own things, I hope and I would to filled your despair in my life. So grieving, because my hope is smaller than your despair. But I promise. The dream what we had, I will not make it just like a midnight summer’s dream. I promise here.”

 

ㅡ 2016년 3월 19일, 길을 걷다 양귀비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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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ta Lane, Blixa Bargeld – How long have we known each other?

[su_youtube_advanced url=”https://www.youtube.com/watch?v=6ygUPMG1TpA”]

 

Anita lane, Blixa Bargeld: How long have we known each other now?
Anita lane, Blixa Bargeld: 지금 우리 서로 안지 얼마나 되었을까?
Anita lane: Five, ten years
Anita lane: 5년, 아마도 10년쯤..
A, B: And I guess we’ve changed
A, B: 내 생각엔 우린 변했을거야
A, B: And we’d run into each other in the subterranean world
A, B: 그리고 우리는 이 지하 세계에서 서로에게로 도망쳤었지

*본 버젼에서 생략

With the extras in their fright wigs and fins
공포스런 가발들과 지느러미들 속에서 특별한 것들과 함께
On their way from funkhole to dugout
참호에서 대피호로 그들의 길 위에서
And one night would keel into another
그리고 하룻밤은 다른 곳으로 전복될거야
And there would never seem to be a day
그리고 그곳은 절대 하루 안에 될리 없겠지

And hey you used to say
그리고 네가 종종 하던 말,
You were polishing up
네가 다듬어 빛을 내던 때
On your survival tactics (techniques)
네 생존 전략들(기술들)
For the end of the world
이 세계의 마지막 날을 위해
And you, you used to dig your beak
그리고 너, 너는 네 부리로 땅을 팠었지
Into my ear saying: “nothing”
내 귓가로 말하길: “아무 것도 아냐”
Like a secret
비밀처럼

How long have we known each other now?
지금 우리 서로 안지 얼마나 되었을까?
Fifteen, twenty years maybe
15년, 20년쯤, 아마도..
And certainly we’ve changed
그리고 우리는 분명 변했지
And we’d run into each other in the subterranean world
그리고 우리는 이 지하 세계 속에서 서로에게로 도망쳤었어

 

Blixa Bargeld: And before I knew you or before we met
Blixa Bargeld: 그리고 내가 널 알기 전에, 혹은 우리가 만나기 전에
Anita lane: Oh yes, way before then I was itching in the cradle
Anita lane: 오 그래, 내가 요람 속에서 갈망하기 그 이전에 말야
A: Making my way toward the slime pits
A: 질척거리는 석탄갱으로 가는 내 길을 만들던 중에
A: And the sludge traps
A: 그리고 진흙탕 덫에
A: Looking for love
A: 사랑을 찾으러
B: And the bushy brats turned out from The western burgs
B: 그리고 웨스턴 버그에서 온 철없던 녀석이 돌아섰었지
B: Minced in the powdermills
B: 화약 공장에서 곱게 갈린 채로
B: Noctambulating around nowheresville
B: 잠결에 어디론가 서성거리고
A: And some were so desperate to sleep
A: 그리고 몇몇은 될대로 되라며 잠을 청했지
B: The only retreat was the sad dormitory
B: 은거처라곤 오로지 슬픈 기숙사뿐이었지
A: Yes, one would go for a rest
A: 그래, 쉬러 가고 싶어
B: (or a test?)
B: (혹은 확인하러?)
A: Yes
A: 그래
B: Where we met we?
B: 우리가 어디서 만났더라?

 

A, B: How long have we known each other now?
A, B: 지금 우리 서로 안지 얼마나 되었을까?
A: Up to thirty years I guess
A: 내 생각엔 적어도 30년은 될거야
A, B: And maybe we have changed
A, B: 그리고 아마도 우린 변했겠지
A, B: And didn’t we see each other in the subterranean world?
A, B: 그리고 이 지하 세계에서 우리 서로 본 적이 없던가?

 

A: And you, did you already have your hear dress?
A: 그리고 너, 그리고 너 이미 네 머리를 한거야?
B: Hmm, yes, I think so.
B: 응,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A: I used to dress up like a girl
A: 나는 소녀처럼 입었었지
A: And how did you ever make it back home?
A: 그리고서는 어떻게 집에 돌아갔니?
B: I’d leave a trail of pearls
B: 나는 진주같은 흔적들을 남겼었어
B: Did you ever see a doctor – or a priest?
B: 너 의사는 본적 있니? 아니면 목사는?
A: Oh yeah – a priest
A: 오, 물론이지, 목사를 봤어
A: Do you remember the guy with the sign
A: 너 그 사내의 사인을 기억하니?
A: “The end is nigh”?
A: “거의 끝인것처럼”?
B: That was me (do you remember what was written on the back?)
B: 그건 나였어, 너는 등 뒤에 뭐가 적혀있었는지 기억하니?
A: No
A: 아니
B: Me, neither
B: 나도 역시 아냐

 

B: And do you rememer the guy with a boxfull of wind?
B: 그리고 너 바람 가득찬 그 남자를 기억하니?
A: I know
A: 나도 알아
B: Or maybe it was a cassette
B: 아니면 그건 카세트였을거야
B: I think that was me too
B: 내 생각엔 그건 역시 나였을거야
A: I don’t really
A: 난 정말 모르겠어
B: I don’t know either – right there?
B: 나도 모르겠어, 아니면 그게 나였나?
B: Right there
B: 그 자리에

 

A, B: How long have we known each other now?
A, B: 지금 우리 서로 안지 얼마나 되었을까?
A: Fifty years?
A: 50년 쯤?
B: I’ve never seen you in my life!
B: 난 내 생에 널 절대 만난 적 없어!
A, B: How long have we known each other now?
A, B: 지금 우리 서로 안지 얼마나 되었을까?
A: Seventy years?
A: 70년 쯤?
B: I don’t believe you
B: 난 널 안 믿어
A, B: How long have we known each other now?
A, B: 지금 우리 서로 안지 얼마나 되었을까?
A: O, hundred years!
A: 오, 백년 쯤!
A, B: And I hope we’ve changed
A, B: 그리고 난 우리가 변했길 희망해
A, B: And we’ve never seen each other in the subterranean life
A, B: 그리고 우리는 이 지하세계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었어

독일에서 유학시 밥솥 문제

밥솥에 대한 질문이 계속 올라와서 케이터링, 워크샵, 그리고 키친클래스를 종종하는 입장에서 간략히 정보를 공유할까해요. 독일에서만 6년을 했습니다..

1. 냄비밥
물론 냄비밥 맛있습니다. 하지만 가스불이 아니라면 숙련자들도 조절하기 어려워서 종종 태워먹거나 설익게 되요. 그리고 가스불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요리와 같이 하다보면 바닥 긁는 일이 왕왕 생깁니다.

2. 독일전기밥솥
독일 전기밥솥을 2년가량 써봤는데, 잘 알려진 Tristar 제품은 보이는 크기와 달리 500그람까지는 밥이 되는편이지만, 그 이상의 양을 하면, 위에는 설익고, 아래는 누룽지 비슷하게 됩니다. 이유는 독일전기밥솥은 아무래도 밀시라이스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죠. 사용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욱 심해지는데, 바닥 부분은 누룽지라고 말하긴 애매모호하지만, 집에서 우리가 먹기엔 그런대로 괜찮아요. 물론 유럽 사람들 중에 누룽지를 아는 사람이 간혹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레스토랑에서는 절대 서빙 불가능해요.

온도를 감지하고 자동으로 보온으로 바꾸는 센서 때문에 여러번 연달아 밥을 하면 설익는 빈도가 더 늘어납니다. 물론 일반 집에서는 손님들 많이 오실 때 말고는 걸 일이 없겠지만요. 가장 문제점은 사용기간이 지날수록 온도조절센서가 간혹 문제가 생기고, 가열하는 퓨즈가 자주 끊어져서 고쳐줘야 한다는건데요. 하도 갈다보니 1유로에 퓨즈 가는 법을 터득했지만, 여간 귀찮은게 아닙니다.. 저는 한번만 더 고쳐서 국 보관용으로 쓸까해요. 또 고장나면.. 그 때는 파괴기념 비디오라도 찍을까 생각 중입니다.

3. 한국밥솥
결국에 깨달은건 한국의 쿠쿠나 쿠첸같은 한국밥솥이에요.

– 전기밥솥은 아마 여기에서도 자취를 해보신 여러분들이 사용해보셨을텐데 자취하는 이들에게 딱 맞지만, 밥이 오래 보관되지 않습니다. 안에서 마르거나 물이 생기고, 깜박 잊고 며칠 집을 비우면, 밥솥 안에 새로운 은하가 만들어져있죠. 완전 밀폐되지 않기 때문인데, 혼자 자취하기에는 1~ 3인용 밥솥만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 압력밥솥, 역시 한국 압력밥솥이 최고입니다. 가스렌지에서 조리하는 압력밥솥은 독일에서도 팔지만, 여기서는 전기압력밥솥에 대해서만 이야기 드릴게요. 일본에서도 괜찮은 제품이 나오지만, 가격대 성능을 생각하면, 최고는 한국제품이라고 생각해요. 일본 사람들도 한국을 여행할 때, 쇼핑하는 것들 중 하나가 압력밥솥이기도 하죠.

– 가격, 여기서 사기에는 터무니 없이 비싸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한국에 주문하자니 세금이 많이 깨지는거 아닐까하고. 결국 저는 12월 말에 한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10인용 최신 쿠쿠를 지릅니다. 친구 오는 편에 포장을 모두 풀어서 중고라며, 세금을 덜 내는 방법을 택했죠. 10인용 최신 쿠쿠를 12만원이 채안되는 가격에 구했습니다. 물론 저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이어서인데, 여러분이 사용하시면, 3~ 4인용만 사셔도 굉장히 편할거라고 생각해요. 가격을 비교해보면, 쿠쿠가 쿠첸보다 비싼데, 후기들보니까 쿠첸이 잔고장이 조금 있다고 하더라구요. 수리하려면 한국에 보내기 번거로워서 저는 그냥 쿠쿠를 질렀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이..

결론. 한번 샀더니 진짜 밥맛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밥하는걸로 스트레스 안 받아요. 몇 달만 사용하신다면 모르겠지만, 그냥 구매하는게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한번은 일본 친구들과 커리 200인분의 케이터링 일을 할 때, 냄비 6개-가스불로 밥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하루 이벤트는 무사히 끝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평소 시간 여유가 있어도 쉐프들에게조차 매일 냄비밥 해먹으려고 하면, 자꾸 케밥이나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 음식에 손이 갑니다. 식비도 더 들고, 건강도 나빠집니다. 결국 기승전-한국압력밥솥이네요.

저도 몇 달 중고를 노렸지만, 살벌한 경쟁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ㅠ 여러분께 도움되는 글이었길 바랍니다. 일하고, 혹은 공부 마치고 집에 와서 혼자 밥 먹는 것도 서러운데, 밥이라도 잘 챙겨먹어야 타지에서 아프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시간이 좀 늦긴 했는데, 다들 맛있는 저녁 식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