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답잖은 영화 리뷰.
혼자 술잔을 홀짝이며, 영화를 보는 일은 너무 좋다. 먹먹함에 콧등이 시큰 거릴 때 혼자가 되어야만 마음껏 그 순간을 누릴 수 있으니까. 물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면서도 여전히 그것들에 의구심을 갖는다. 애써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여기저기에 감상을 남겨두기엔 난 충분히 긍정적 사고의 배신을 맛보았고, 나는 불온한 회의론자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된다. 통속적이긴 해도, 그런 감상은 짧으니까.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어제 친구들과의 밤마실 역시 좋았다. 낯선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낯설게 무엇인가를 대할 수 없다면, 그처럼 비통한게 또 있을까.
그런 느낌을 이어 보자면 나는 영화 ‘The Way We Were’, 1973. 응, 그래 이 영화를 보고 꽤나 찔끔거렸다. 물론 Barbra Streisand 때문에라도 다시 볼 이유가 충분했다. 의도와 상관없이 요즘 다시 보고 있는 고전들 중 썩 괜찮은 느낌. 극 중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학생운동을 하는 반전주의자. 아니 한술 더 떠, 프랑코 왕정의 폭거를 비난하고 소비에트를 열렬히 지지하다 못해.. 집 안에 레닌의 초상화를 걸어둘 정도의 혁명적 공산주의자. (물론 이 영화는 할리우드가 타겟이기 때문에 좀 물렁한 표현들이 있지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인기 때문인지 이 영화에서도 흥행을 위해 애정전선이 한 부분을 자리 하는데, 이 부분이 다른 로맨스 영화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해군장교이자 반정치적인 남자친구를 예술의 세계로 끌어내는데 힘을 주는 것과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안일한 삶을 선택하지 않고, 매카시즘이 미국을 강타하는 시대 속에서도 늘 힘겨운 투쟁 속에 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냥 포기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자친구와의 갈등. 이 것이 이 영화의 엔딩을 빛내 주는 중요한 요소인데, 사회변혁을 위한 운동과 사랑 사이에서 결국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우연찮은 재회. 남자친구는 결국 상업 예술 작가로서 다른 여자를 만나 안락한 삶을 추구하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끝까지 운동 속에 남아 혼자가 되었다. 여러분 끝까지 혁명을 추구하면 이렇게 됩니다. 나도 그런가 봅니다. 우왕ㅋ 이런 식의 끝맺음은 그리 나쁘지 않지. 어쨋거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재해석하는 duck sauce의 노래 하나: http://www.youtube.com/watch?v=9M55_JuOrZc
잡스러운 기억을 뒤로하고, ‘Murmur Of The Heart’, 1971. 이건 시바ㅋ 욕을 안 할 수가 없게 근친상간까지 담고 있으면서도 뭔가 선정적이라던가 더러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작품이다. 그리고 ‘Passion Play’, 2011. 고전이 아니지만, 미키 루크를 좋아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그의 노년 연기에 감탄. 이 사람이 청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기 전, 중년 시절 그렇게 마음 고생을 하고 방황하지 않았다면 이런 연기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Jim Jarmusch의 ‘Coffee and Cigarettes’, 2003. 이 영화도 고전은 아니네?ㅋㅋ 아무튼 나는 사실 흑백 필름을 굉장히 싫어했다. 고전적이라기보다 상투적인 느낌이라.. 그래서 사실 이 영화가 나왔을 때도 굉장히 싫어했다. 어디 구석에 쳐박아 둔채 보지 않다가.. 다시 본 느낌이란… 뭐 이런 연출이 유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Tom Waits와 Iggy Pop의 겉도는 대화는 그냥 좋았다. 왜냐면 내가 그 둘을 이유없이 좋아하니까.
ㅡ 2013년 1월 19일
뒤로 재껴놨던 30~ 50년대 영화들도 다시 보는데, 예상 그대로 였지만 다시 봐두면 좋다는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