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갤, 미러링, 충격효과, 맹신자

 

최근 좋아하는 라이엇걸 밴드, ‘완벽한 보지’의 곡을 들으며, 몇 마디 적어 본다. 요즘 페미니즘 기사를 준비하면서 메갤의 충격효과, 미러링은 이제 약발이 다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충격효과를 받아야할 사람들에게 그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 여성혐오에 맞서 유대감을 공유할 공동체가 생겼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힘이 될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는 동시에 고립이 되고 있다는 것이기도하다. 우려하던대로 놀이로 전락해버린 메갤의 피해사례들이 거의 모든 커뮤니티에서 투정따위가 되었다. 이들의 트라우마는 미성숙한 방어기제, 어디서든 피해를 받고있다는 생각에 잠기어 구원을 기다리는 퇴행.

 

이제는 오히려 자신조차 잘 모르는 것을 가지고, 아무 것에나 닥치는대로 차별이란 프레임을 씌우는 어설픈 계몽주의를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굳게 믿는 오류가 보인다. 이들의 대화는 전형적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아마츄어리즘. 그 자체만으로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고가, 사회와 선을 긋고, 자학하고, 외롭게 고립시킨다는 점에서 굉장히 위험하다.

 

이들은 ‘정의를 구현한다’는 믿음이 자발적인 맹신자, True Believer가 되도록 이끈다. 또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 지속적으로 신념화를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세계는 외로운 늑대들과 매우 유사한데,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몰아붙인다는 것에 대한 위험을 인지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올바른 것,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 극단으로 치닫게 한다.

 

지젝의 책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에서 역자 한보희는 “‘민주주의’라는 관념으로 ‘비민주적이거나 반민주적인 우중들’을 ‘민주적 시민’으로 훈육하려는 전체주의적 기획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라 했다. 그의 말을 빌려 이들의 계몽주의를 설명하자면, 이런 이들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전체주의’, 기괴한 관념, ‘민주파쇼’라는 지점과 맞닿는다.

요약: 기사 때문에 여러 페미니스트들의 의견을 얻으려면 당연히 메갤 소개를 해줘야하는데, 메갤 이야기만 꺼내면 존나 피로해한다. 한국에는 페미니스트 그룹들이 없냐고 묻는데, 그 사람들이 자기 할 일이 뭔지 알았으면(특히나 문화담론 측면에서) 메갤 같은 현상이 생기지도 않았지, 씨발.

 

 

 

 

+ 포스팅 이하, 추가 댓글 일부

 

메갤이 잘 조직되지 않은건 이해한다고 해도 메갤 안에서 도는 이야기 모두 항상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 하니까요.

 

 

“너는 남자라서 여자의 피해를 모른다”, 이것만 봐도 미성숙한 방어기제, 퇴행이죠. 여자는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라고 결론지어놓고 ‘구원자를 기다리며’ 감정에 호소만 하니 종교의 구조는 다 갖췄습니다. 그러니까, 피해를 고귀한 희생으로보고 여성혐오의 순교자를 찾는거죠. 그런 면에서 굉장히 자학적입니다.

 

 

저는 메갤이 일베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베와 달리 메갤은 뚜렷한 정치적 목표를 가진 공동체거든요. 그런 점에서 비판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하는데, 실제로는 일베에 비해 비판기능이 잘 살아있다고 보기 어려워요.

‘일베보다 나아야한다’라는 전제 자체가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거죠. 그런 점에서 일베미러링이 아니라 대중운동을 해야합니다. 일베를 미러링 하니까, 일베와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우리는 일베랑 달라”라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이라고 봅니다. 애초에 일베랑 비교조차 되지 말아야하는데 말이죠.

남성메갤러가 ‘남성으로서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었다’라는 일종의 신앙간증과 함께 ‘페미니스트 남성을 만나는 방법’ 같은 글에 대한 여성 메갤러의 태도가 ‘착한 페미니스트 남성’의 구원을 바라는 것이죠.

 

 

저 너무 화가나서 그러는데, 말 낮춰서 몇 마디만 더 해볼게요.

혼자 pc한척, 쿨내터지는 소리를 하고 싶어서 안달난 ㅈ같은 허약한 중생은 지가 하고 있는 짓이 인종차별인지도 모르면서 어설픈 계몽주의, 훈장질. 차라리 마빡에 ‘꼬레아’라고 문신을 하고 다니지 그러냐? 무슨 어버이연합 대화하는 줄 알았다. 농담과 진담, 해야할 말과 못할 말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정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믿는 맹신자들. 맥콜에 알코올 섞는다고 그게 맥주 되냐?

윤성호가 그랬다: “이런 사람들이랑 어떻게 혁명을 해!”

송곳의 구고신이 그랬듯이 나는 사람들의 ‘무임승차’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가는 차에 혼자 들이박고, 차에 치였다며 자해공갈 하진 말아야지. 사상이 백화점 쇼윈도에 반짝이는 구두처럼, 시계처럼 소비되다 못해 요즘에는 모두가 인권운동가가 되라고 강요하는 시대다. 그러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불안감에 사람들 모두를 도착증자로 몰고간다. 그게 빌어먹는 이 시대의 정신이다.

메갤과 페미니즘,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https://www.youtube.com/watch?v=qKqzL6tYGjw

 

1. ‘미안하지만 나는 남자 페미니스트는 없다고 생각한다’ ㅡ http://www.megalian.com/free/301393
2. ‘여자친구 얘네도 로리타 컨셉 쩌는거 같다’ ㅡ http://www.megalian.com/free/278923

 

x. 이야기 하기에 앞서 음악은 동성애, 트랜스젠더, 페미니즘 함께 정치적인 음악을 하는 스웨덴의 일렉트로닉 그룹 ‘The Knife’의 곡, ‘Pass This On’. (짷 좋읗!)

 

x. 메갤이 여성의 권리, 페미니즘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이유가 위 두 링크에서 보여진다. 내 경험이 모든 메갤이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메갤하는 사람 중에’ 페미니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 하는 사람은 내 주위에선 몇 분 외에 본 적이 없다. 도리어 페미니즘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페미니즘의 가고자하는 방향을 한국의 특수성이라는 이유로 페미니즘의 가치를 뭉개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꾸 메갤의 일부가 메갤을 대표하는게 아니라는데, 이 놀라울정도의 추천수와 반대수를 확인해보시길. 페미니즘 기사를 쓰려고 유럽 페미니스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메갤을 (빼놓고, 오늘 한국의 페미니즘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로 피로해하며 메갤 말고 한국에 페미니즘 운동은 없냐고 묻는다.

 

한국에 페미니즘 운동? 있지, 있다. 그런데 나는 좀 난처한 답을 갖고 있다. 그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했으면 메갤 현상까지 생기지도 않았을거고, 여성혐오도 분명 줄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종종 피로해하지만, 꾸준히 기사는 (내 자비로) 함께 준비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메갤과 같은 현상이 폭발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는 이 곳 친구들도 이해하고 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했어야 여성혐오가 줄었을거라 말하냐고? 일일히 다 열거하기 어렵지만, 아주 기본적인 몇가지만 이야기 해볼까? 그 사람들이 문화담론을 무시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했어야 하는 일들.
1. 여성운동 이야기만 꺼내면, 여성부 이야기를 꺼내는 한심한 사람들에게 여성부의 문제는 여성이 아니라, 빌어먹을 관료주의이고.   2. 여성이 로리 스타일로 입건, 헐벗건 성폭력 자체가 범죄이지, 로리라던가의 개인의 성적 취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물론 페도필리아에 대한 입장은 여기서 논할 가치조차 없다).   3. 섹시즘은 성차별이 될 수 있지만, 성폭력과 같은 범죄가 아니라는 것.   4. 여성이 보호 받아야할, 여성을 약자화 시키는 것에 반대해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것.   5.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주체가 되는 운동.   6. 젠더롤에 반대.   7. 여성과 남성, 동일노동, 동일 임금. 임금격차와 노동환경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할 것.   8. ‘착한 남성’이 주는 선물, 구원을 기대하지 말고, 우리가 함께 혐오에 대항해 싸워가야할 것.   9. 모든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극단적 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범죄에 대해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할 것.   10. 여성이던 남성이던 성적 욕구가 천박하다거나 죄의시 되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11. 성매매에 대해 비판적이더라도 성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해야할 것.   12. 자기성결정권.   13. 여성을 특정해 일어나는 범죄로 인해 여성전용시설을 만들 것이 아니라,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및 관련 행정, 사법부를 압박해 헌법이 보장하는 것과 같이 모든이가 어디에서건 안전할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해야한다, 당장!   + 페미니즘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보장과 대우를 목표로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우대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이 되어야한다. 헌법에 다 적혀있는거다, 혐오론자 쌖끼들아!

 

적고 보니까, 이건 한국 페미니즘 운동만의 문제는 아니다. 진보운동 전체가 문화담론을 옆 동네에서 유행하는 로컬인디밴드 정도라고 생각하는듯.

 

x. 요약: 미친놈들이랑 싸우기위해 나까지 미친짓하면, 우리가 왜 미친놈들이랑 싸우는거지? IS가 무고한 사람들에게 테러를 한다고해서 이슬람 전체를 비난하고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되잖아. 혐오론자는 분명 많지만, 아직 혐오가 뭔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에게 혐오론자라 라벨링 하기 전에 어떤 행동이 혐오인지 이야기 해주자. 그리고 함께 혐오에 맞서자.

 

 

 

+ 정희진 선생님 칼럼입니다. 함께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링크: 남성 페미니스트

민중총궐기, 폭력시위, 국가의 의무, 체제의 폭력, 그리고 헌법

 

이번 민중총궐기를 두고서 폭력시위라 비난하는 분들에게 왜 국가가 의무를 다하지 않고, 도리어 위헌, 폭력을 일삼는 것은 용인하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헌법 일부를 정리함과 동시에 올 ECB의 긴축안에 항의하던 시위 논평을 소개합니다. 링크된 영상은 ECB의 긴축안에 항의하던 2만명의 블록큐피 시위대입니다.

 

 

<프랑크푸르트 블록큐피 논평>

 

“시위대의 폭력은 만장일치로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는 체제의 폭력을 무시하고 있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위대의 폭력은 경멸하면서, 왜 우리는 체제의 폭력은 허용하는 것일까.

We unanimously condemn the the violence of the demonstrators. But we ignore the violence of the system. During we contempt the violence of demonstrators that happens on streets, why we accept the violence of the system?” ㅡ Jakob Augstein, Spiegel
(기사: S.P.O.N. – Im Zweifel links: Gewalt gegen Gewalt)

 

유럽중앙은행이 내놓은 긴축안에 90여개의 독일조직들이 연대하는 Blockupy(블록쿠피)가 거센 항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날 17,000여명의 시위대와 10,000여명의 경찰간에 격렬한 물리적 충돌이 있었습니다. 2001년에 이미 비폭력투쟁 노선을 선언했지만, 체제의 폭력을더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였습니다. 또한 높은 청년실업으로 무너져가는 스페인과 긴축안으로 고통받는 그리스는 혼자가 아니라며 독일 사람들이 연대를 표명하며, 유럽중앙은행의 긴축안에 분노를, 독일정부에게 이 사태의 해결의지를 보내라 압박을 했습니다.

 

 

<민중총궐기, 폭력시위, 국가의 의무, 체제의 폭력, 그리고 헌법>

 

 

민주주의국가 최상위법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헌법가치보다 중요한 사법, 민법, 형법은 없음.

 

시위대 요구안및 이번 시위 정리.

 

1. 헌법 제 4조 이행; 대북적대정책폐지
–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2. 헌법 제 5조 이행; 일본자위군 한국본토 상륙허가 철회, 사이버사 부정선거 재수사및 처벌
①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②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3. 헌법 제 7조 이행; 국정원, 선관위의 범죄가 밝혀진 이상 이에 대한 재수사및 관련자 처벌
①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②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4. 헌법 제 8조 이행; 통진당은 국가내란선동만 유죄였으며, 내란음모사실은 가능성조차 없어 무죄였다. 독일도 공산당을 해체했으나, 정부가 사과하고, 명예를 복권시키며 재창당했다.
①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②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③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
④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5. 헌법 제 11조 이행; 국정원, 사이버사 부정선거및 정재계 인사 비리 관련자 처벌, 세월호 관련자 처벌.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6. 헌법 제 12조 이행; 시위자 체포시 경찰이 준수하여야 할 사항 (경찰직무법까지 하면, 경찰의 이번 체포들은 더 엄격히 다뤄져야함)
③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7. 헌법 제 13조 이행; 세월호 참가자 연좌제식 처벌
①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

 

8. 헌법 제 17조 이행; 경찰과 국정원의 불법 사찰과 도감청, 카카오톡 감시.
–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9. 헌법 제 18조 이행; 카카오톡 감시.
–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10. 헌법 제 19조 이행; 2015년 유엔 제네바 총회의 권고안을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자, 양심수를 석방하고 사회대체복무를 신설한다.
–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11. 헌법 제 21조 이행; 집회시위권 보장, 집회시위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인데도 경찰이 위헌을 저지르고 있으며, 정부가 개입해 방송에 검열을 가하고 있음. 심지어 조선일보를 받아쓴 일본 산케이 지국장을 고소하여 징역을 때림(국가가 단순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인의 신체를 구속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④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12. 헌법 제 22조 이행; 칼 맑스의 <Das Kapital> 등은 연구서적으로 어디서나 읽히는데도 대학생들이 <Das Kapital>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 됨. 또한 헌법이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사회주의, 공산주의학문을 연구하는 학문 연구하는 자, 심지어 북한체제를 풍자하는 작업을 내놓는 예술가들을 구속함.
①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13. 헌법 제 27조 이행; 증거인멸및 도주의 우려가 없는 인권활동가들을 장기간 구속수사하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배함.
③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④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14. 헌법 제 28조 이행; 제대로 보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
– 형사피의자 또는 형사피고인으로서 구금되었던 자가 법률이 정하는 불기소처분을 받거나 무죄판결을 받은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에 정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15. 헌법 제 29조 이행; 공무원및 공직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피해를 보상 받지 못함.
①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

 

16. 헌법 제 31조 이행; 역사교과서에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고 헌법이 밝힘에도 국가가 개입해 국정교과서를 만드려고함. 국가의 평생교육 진흥의무를 져버리고, 사립재단들과 공조하여, 대학생들에게 과중한 교육비를 부담시킴.
④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⑤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17. 헌법 제 33조 이행; 노조 설립권, 노동자의 기본 3권 보장해야하나 재계, 기업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들고 있음.
①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②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18, 헌법 제 36조 이행; 현재 정부는 LGBT, 성소수자의 자기성결정권과 혼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 또한 미혼모가 자립할 수 있는 정책을 지원하지 않으며,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국민을 뒤로 하고 고소득자들만을 위한 사립병원, 사보험들을 준비하는 정책을 만들고 있음.
①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②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③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19. 헌법 제 37조 이행; 앞의 헌법들을 이행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행하지 않거나, 도리어 헌법을 위배하며, 공공을 위해 일부 법률로 제한하더라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음에도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하며 협박을 일삼고 있음.
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20. 헌법 제 38조 이행; 부, 처, 장관 등의 공직 후보자 탈세에도 제대로된 처벌은 커녕 오히려 기용하고 있음.
–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

 

21. 헌법 제 123조 이행; 농어민및 중소기업, 지역간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할 의무가 있음에도 FTA와 TPP 등의 무역조약으로 이들의 업과 생계를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고, 오직 다국적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수립함.
① 국가는 농업 및 어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하여 농·어촌종합개발과 그 지원등 필요한 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②국가는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
⑤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

 

 

이상, 헌법 전문에 의거해 지금 현정부가 헌법을 위배하고 있는 사항이다. 헌법은 민주주의 국가의 최상위법, 국가의 근간으로, 형법, 민법, 사법보다 높은 권한을 갖는다. 이를 지키지 않고서는 민주주의 국가도 없다.

 

헌법 부정 세력이 누구인가 따져, 그들을 처벌해야한다. 마음 같아서는 헌법 부정세력 모두, 그들이 원하는 시위 없는 국가 부카니스탄의 아오지탄광으로 보내주고 싶다.

한국이라는 국가, 조성진, 그리고 오늘의 영웅주의

바다가 4면

 

타임라인을 보니, 뉴스들을 훑어보니 국제쇼팽콩쿠르에서 조성진씨가 ‘한국인 최초’ 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고 한다. 클래식 언급 한번 없던 사람들이 이제는 온통 클래식을 이야기 하길래 무슨 소란인고 싶어 위키를 뒤져보니 지금까지 상은 폴란드와 소비에트(러시아)가 상을 휩쓸었더라. 사람들은 또다른 박지성과 김연아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 축구와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다. 사람들은 이제 피아노를 외치고 있다.

며칠 전 2002년 한일 월드컵 거리 응원 영상을 보았다. 사람들은 즐거워하며 환호를 질렀지만, 당시 그런 사람들에게 질려버렸던 나, 그리고 오늘은 그런 사람들이 측은하면서도 두렵게 느껴진다. 집단 광끼는 소리없이 일상을 삼키지만, 정작 우리의 삶을 휘두르는 정치는 날로 듣기 어려울 정도의 작은 소음을 낼 뿐이다. TV를 켜면 모두 즐거워하고, 떠오르는 미디어에선 모두 최근의 요리 이슈에 몰두하고, 우리의 삶을 휘두르는 정치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언제나 나의 최고 관심사 중 하나로 주방을 두고 있지만, 우리의 주방은 언제나 미디어에 실려있는 요리들 같지 못 하다. 우리의 식탁은 대개는 시간에 쫒겨서,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천정부지로 치솟는 월세와 물가로, 허나 너무나 작은 화분 탓에 성장을 멈추고, 생기를 잃은 꽃을 닮아가는 우리의 임금처럼.. 우리의 식탁은 대개는 빈곤하다. 왜 우리가 인스턴트를 즐겨 찾게 되고, 엄마의 밥을 그리워하는지, 왜 유학생들이 파스타나 스테이크가 아닌 그저 물에 말은 누룽지 밥에 신김치를 그리워하는지.. 우리는 말하지 않았고, 말할 곳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 “잘 지내냐, 밥은 먹고 다니냐”는 어머니의 안부전화가 반갑지 않다.

제 3제국 집권 당시, 히틀러는 스포츠를 활성화 시켰다. 국민의 관심을 정치가 아니라 스포츠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박정희는 “체력은 국력”이라며 씨름을, 전두환은 야구에 모든 이들의 눈을 주목 시켰다. 88올림픽을 보면서 우리는 굴렁쇠 좀 굴려봤고, 영문도 모른채 또래 남자애들과 태권도장을 다니고, 여자애들은 피아노, 바이올린 학원을 다녔다. 장영주의 첼로를 모두 숨죽여봤고, 부모님들은 우리를 또다른 황영조, 이봉주, 박세리로, 박찬호로, 박지성으로, 박태환으로, 장미란으로, 김연아로 혹은 활이나 탁구라켓을 우리 손에 쥐여주고 싶어했다.

그리고 몇 년째, 청년실업이 문제라고 한다. 우리 가운데 몇몇은 또다른 황영조, 이봉주, 박세리나 박찬호, 박지성, 박태환, 장미란, 혹은 김연아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MTV는 북미 젊은이들에게 누구나 락스타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주었다. 하지만 이젠 우리 모두가 락스타가 될 수 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또다른 박지성과 김연아가 필요한 걸까?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일본이 싫다고 하면서도 백년 전, 일본이 생각하고 말하던 ‘탈아입구’에 목을 매고 있다. ‘한강의 기적’ 같은 서사와 ‘세계 속의 한국’ 같은 판타지 속에서 살고 있다. 자기의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우리는 못 나지 않았어!” 하고 외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철저히 타인의 욕망을 충족하려 하지만, 타인들의 욕망은 이 한국 사람들이 욕망하는 바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하야하라” 외쳤던 이명박 대통령 이전에는 바다가 3면이었지만, 이명박 이후 바다가 4면이 된 한국은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람들은 여전히 감동실화나 기적 같은 것으로 포장된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고, 구원자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구원은 없다. 아무도 이들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에서의 낙태법

x. 내년부터 유치원생에게도 안보, 반공교육하겠다는 정부와 국방부도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겠다는 기사를 보고 뒷목을 잡으며 “그만해 미x놈들아!”를 육성으로 외치던 찰나에 낙태에 관한 게시글을 보다가 조금 적어봅니다. (..는 베를린의 흔한 설명충)
x. 링크된 음악을 들으면, 결핍이 당신의 도파민을 막습?? 아니, 당신의 도파민의 결핍을 막고, 항암제 역할을 합니다. (손을 잡아요)
 
x. 독일의 경우는 통일 직후, 독일에서 벌어진 2년 간의 낙태 논쟁은 사실상 동독을 흡수한 서독의 법을 계승하느냐, 아니면 옛동독법을 인정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비롯해 극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이전 서독에서는 낙태를 ‘생명에 대한 범죄’로 규정했고, 동독에서는 임신 12주까지는 무제한으로 낙태를 허용했었고, 이를 두고 여성운동에서는 이 문제에 한해서는 동독의 진보적 유산을 지키자라는 결의 아래 서독의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깨어놓겠다고 총력전을 펼쳤고, “태아의 생명보호를 최우선으로 어떤 낙태도 허용할 수 없다”는 극보수 가톨릭 세력은 ‘아일랜드식 낙태 완전 금지법’을 목표로 총력전을 펼쳤습니다.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정당은 물론이거니와 이념, 그리고 남성과 여성 국회의원의 극심한 분열을 겪다, 완전 낙태자유를 목표로한 여성운동의 주장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합의 과정에서 서독의 사민당이 동독의 낙태법이 여성의 인권을 더욱 보장한다고 힘을 실으며, 낙태를 범죄시 하던 분위기를 뒤집고, 1995년 10월부터 “4일간의 숙려기간을 거친후 증명서 발급을 통해 임신 3개월 이내의 낙태가 허용된다”는 골짜의 낙태법이 발효 됩니다. 물론 지금 한국의 법처럼 임부가 원치 않는 강간, 준강간 등의 임신을 할 경우 낙태는 보장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x. 이후 독일에서는 2002년 7월 2일부터 기존의 보수적인 규정을 개정한 새로운 낙태규정이 발효 되는데, 이 또한 ‘임신중절에 대한 기한규정(Fristen-lösung)’을 따르고 있습니다. 낙태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쓰여진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베를린리포트: http://berlinreport.com/bbs/board.php?bo_table=lifeqna&wr_id=1062&page=1132)
 
1. 임신 12주안에 낙태는 일반적으로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2. 임신12주 이후에도 임신여성이 중대한 육체적 손상이나 중대한 영적 곤경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낙태는 처벌대상이 아니다.
– 이로써 임신12주 이후의 낙태도 더이상 감정소견서가 필요하지 않다. 낙태의사가 있는 여성은 그녀가 “중대한 영적인 곤경과 위험”에 놓여 있음을 확신하는 낙태시술의사를 찾아내는 것으로 족하다. “중대한 영적인 곤경”(“schwere seelische Notlage”)이란 법적으로 볼때 사실상 얼마든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고무줄같은 개념(“Gummibegriff”)으로서 이로서 낙태의사가 있는 여성은 어떤 경우에도 어쨌든 낙태를 관철할 수 있다. 낙태여성과 의사간에 쿵짜쿵 짜고치는 고도리를 해도 이를 감독하는 법적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늦장 낙태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사실상 낙태가 가능한 것이다.
 
3. 동법에 따르면 낙태의사가 있는 여성은 서류상으로 자신의 “곤경”을 유효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곤경은 일방적으로 선언되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곤경이 진짜인지를 검토하는 과정은 없다. 그러므로 이 “곤경”의 서류화는 알리비를 만들어내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에 다름 아니다.
 
4. 판단력이 없는(nicht Urteilsvermögen) 여성은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를 테면 만 16세 이하의 미성년자)
– 낙태반대자들은 이로써 동법이 16세이하의 소녀가 부모의 의지와 상관없이 혹은 부모에게 사실을 통보함이 없이 낙태를 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비판.
 
5. 개정된 의료보험관련규정 – 1994년 3월 18일 발효된 의료보험법은 다음과 같이 개정된다. 위법이 아닌 낙태의 경우 의무간병의료보험(die obligatorische Krankenpflegeversicherung)이 비용을 떠맏는다.
– 낙태반대자들은 이로써 동법이 모든 시민들이 낙태를 반대하건 찬성하건간에 상관없이 의료보험금고를 통해 낙태를 재정적으로 후원할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고 비판.
 
6. 위의 전제규정을 어기고 낙태를 하거나 낙태를 도운 자는 최고5년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7. 임신한 여성의 동의없이 낙태를 강제하거나 도운 자는 10년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8. 정확한 통계 산출을 위해 허가된 보건당국에 낙태를 신고해야 하며 이때 해당여성의 익명성과 의사의 직업비밀은 보장된다.
 
또한 이 법안은 월 수입이 900유로 이내인 경우 보험회사에서 수술 비용을 전액 부담해 주며, 임신 7주 이내는 약물로 중절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전신 마취를 한 뒤에 수술을 하게 됩니다.
 
x. 관련 판례로서는 2007년, 독일법원은 낙태를 반대하는 선동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55세의 루터교 목사에 대한 구속을 결정하는 판결이 있습니다. 요하네스 렐레 목사는 독일의 에를랑겐 법원으로부터 1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는데,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죽이는 낙태행위를 2차 대전 당시, 나찌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대학살, 즉 홀로코스트에 비유하는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을 한 것이 유죄의 이유이며, 낙태에 대한 그의 견해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낙태에 반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낙태에 대해 편파적 인신공격을 하면 유죄의 사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는 전에도 낙태론자들을 ‘전문 킬러’에 비유했다가 8개월 간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기도 하며, “법원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뱃속의 아이를 아직은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본다”며 법원을 모욕한 전력이 있습니다. 2004년부터 독일의 또 다른 법원은 “낙태 클리닉을 운영하는 병원들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여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생명을 살해하는 곳”이라고 주장한 생명운동가(낙태반대론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는데, 귄터 안넨이라는 생명운동가(낙태반대론자)는 지난 2005년 법원으로부터 50일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선고의 이유 역시, “낙태술은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의료 기술”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며, 당시 그는 “의롭지 않은(Unjust)”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는 이미 있는 합법적인 일들을 불법인(Illegal)과 동의어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처럼 선동했지만, 현행법상 낙태는 불법이 아니므로 그는 허위사실을 주장했다는 것이 유죄의 주요 근거였습니다.

세르게이 네차예프 – 혁명가의 교리문답, 1869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흔히 바쿠닌이 작성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바쿠닌이 편집했을 가능성은 크지만, 그 글은 바쿠닌의 사상과는 동떨어져 있다. 네차예프는 〈혁명가의 교리문답〉에서 혁명이란 모든 것에 우선하는 목적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것은 철저하게 행동적이며 철학적이지 않다. 일반적으로 혁명가는 민중들로 하여금 스스로 조직을 결성하도록 촉진하고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교리문답에서 나타나는 관점은 이와 다르다. 혁명가는 혁명에 필요한 움직임을 불러일으키고 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며 억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민중은 혁명의 결과가 아니라 수단이며,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할 뿐이다. 〈혁명가의 교리문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에 대한 혁명가의 자세

 

  1. 혁명가는 죄인이다. 그에게는 사적 이해도, 개인적인 일도, 사사로운 감정이나 집착도, 사유재산도, 심지어 이름조차 없다. 그는 모든 관심과 생각과 열정을 혁명에 바쳐야 한다.
  2. 혁명가는 공적 질서나 문명사회, 그리고 모든 법과 관습과 일상적인 삶의 조건과 도덕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하며, 이를 말만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그는 문명사회의 무자비한 적이다. 그가 이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 사회를 파괴하기 위해서이다.
  3. 혁명가는 모든 교조주의를 경멸해야 한다. 그는 평화를 위한 과학을 포기하고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한다. 그가 아는 과학이라고는 파괴를 위한 것뿐이다. 기계공학, 물리학, 의학을 공부하고, 밤낮으로 인간, 인간의 특성과 상황, 인간 사회 내에 존재하는 모든 계급의 사회질서를 연구하는 것도 모두 파괴를 위해서이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이다. 그것은 이 비열한 질서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4. 혁명가는 여론을 경멸해야 한다. 그는 기성의 도덕에 숨어 있는 모든 의도와 그것을 드러내는 모든 방식을 경멸하고 증오한다. 그는 혁명의 승리에 기여하는 도덕만을 인정하며, 그의 시각에서 혁명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부도덕하다.
  5. 혁명가는 죄인이다. 그는 국가와 사회를 대표하는 모든 것에 대해 냉혹해져야 하며, 그가 사회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민을 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회와 혁명가 사이에 화해란 가능하지 않다. 오로지 갈등만이 공개적으로든 비공개적으로든 끊이지 않고 일어날 뿐이다. 둘중 어느 한 쪽의 죽음만이 둘 사이의 갈등을 끝낼 수 있다. 혁명가는 매일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는 견뎌낼 수 있을 때까지 고문에 익숙해져야 한다.
  6. 혁명가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만큼 남에게도 엄격해야 한다. 그는 가족애, 우정, 사랑, 감사, 명예와 같이 나약한 감정을 혁명가다운 냉철한 열정 하나로 억눌러야 한다. 그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나 위안은 혁명의 성공에서 온다. 그는 언제나 가치없는 파괴라는 단 한 가지의 생각과 목표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목표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스스로를 희생할 준비를 하고 또 방해가 되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없애버릴 수 있어야 한다.
  7. 진정한 혁명가라면 낭만, 감수성, 격한 감정, 충동, 심지어는 사적인 증오심과 원한까지도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혁명적 열정이 그가 가진 제2의 본성이긴 하지만, 그것은 가장 냉철한 계산에 의거한 것이어야 한다. 그는 개인적인 관심사가 어디로 향해 있는지가 아니라 혁명의 이해에 부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언제 어디에서나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동지들에 대한 혁명가의 자세

 

  1. 혁명가는 자신처럼 투철한 혁명적 활동을 보여주는 자만을 아끼고 친구로 삼을 수 있다. 우정과 헌신을 비롯해서 동지들에 대한 다른 의무가 갖는 비중은 그것들이 파괴적 혁명을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2. 혁명가들 사이의 연대가 중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혁명 행동의 모든 힘은 연대에서 나오단. 저마다 혁명에 대한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는 혁며아 동지들은 가능한 한 모든 중요한 사항을 다같이 토론하고 모두의 의견을 따르는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만 계획을 실해엥 옮길 때만큼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파괴 행동에 힘해야 하며, 과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 다른 동지들의 조언이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3. 모든 동지는 제 2·3의 계층에 속하는, 즉 비공식적으로만 혁명단의 일원인 혁명가들을 가까이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는 그들을 자신에게 할당된 혁명 자금의 일부로 여겨야 한다. 이 자금은 경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혁명가는 가장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혁명가 자신 역시 혁명의 대의를 이루기 위한 자금으로 이용되어야 하는데, 단 이 자금의 사용은 모든 내부 구성원의 동의를 거친 것이어야 한다.
  4. 한 동지가 불행에 처해 있고 그를 도울 것인가 말 것이가를 결정해야 할 때, 혁명가는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혁명의 대의에 이익이 되는 것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때 혁명가는 한편으로 그 동지가 얼마나 쓸모 있는 존재인지, 다른 한편으로 그 동지를 돕기 위해서는 다른 혁명가들이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해야 하는지를 고려해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사회에 대한 혁명가의 자세

 

  1. 새로운 사람을 영입하고자 할 때에는, 그 사람이 자신의 열의를 행동이 아닌 말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는 만큼, 조직 내 구성원들 사이에서 투표를 실시하여 만장일치가 이루어졌을 때에만 그를 받아들여야 한다.
  2. 혁명가는 오직 완전하고도 신속한 파괴라는 목적 하에서만 국가, 계급, 그리고 소위 문명화된 사회 내에 침투해야 한다. 그는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 세계에 대한 미련을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다면,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과의 상황과 관계가 계속 그를 주저하게 만든다면(그 세계의 모든 것이 그에게 가증스러운 것이어야 할진대), 그는 진정한 혁명가라고 볼 수 없다. 그 세계 내의 부모, 친구, 연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관계들 때문에 행동을 주저하게 된다면, 그는 진정한 혁명가라고 할 수 없다.
  3. 혁명가는 가차없는 파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회 한 가운데서 살면서 현실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을 찾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혁명가는 상점, 교회 고급 호텔, 관료 사회, 군대 뿐 아니라 문단, 참모본부, 심지어 겨울궁전까지, 모든 곳에, 모든 계급내에 침투해야 한다.
  4. 이 모든 비열한 사회는 몇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즉시 사형선고를 받는다. 우리는 혁명의 대의 완수를 저해한 정도에 따라 사람들의 등급을 매긴 명단을 작성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일순위를 차지한 첫 번째 부류는 가장 먼제 제거될 것이다.
  5. 명단을 작성할 때 개개인의 과오나 잘못을 저지른 개인에게 민중들이 품게 된 증오심에 연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오나 증오심이 민중의 봉기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잠정적으로 유용할 수 있다. 따라서 혁명의 대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개인의 죽음을 불사하는 한이 있다 해도 이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혁명가 조직에 해가 되는 자라면 그 누구보다도 먼저 그를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의 돌연하고도 비참한 죽음은 정부를 엄청난 공포에 떨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고지식하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물러나게 되면, 마침내 우리는 정부의 권력에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6. 두 번째 부류에서는 잠시나마 우리의 피땀으로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 포함될 것이다. 그들의 무자비한 행위는 결과적으로 민중의 봉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7. 세 번째 부류는 폭정을 행사한 상당수의 고위직 인사들로, 이들은 타고난 조건으로 부, 인맥, 영향력, 권력 등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을 착취하고, 설자리를 빼앗고, 무릎을 꿂게 하고, 노예로 만들어야 하고, 또 그들의 하찮은 비밀을 폭로해야 한다. 그들의 영향력과 인맥, 그리고 그들이 가진 부와 힘은 혁명가 조직에 있어서 귀한 보물이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8. 네 번째 부류는 야심을 품은 정치가들과 모든 종류의 자유주의자를 포함한다. 이들과 결탁하여 이들의 계획에 공모하는 것은 허용된다. 이는 이들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들을 굴복시키고, 이들의 비밀을 알아내고, 결정적으로 이들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이들을 통해 국가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9. 다섯 번째 부류에는 정치적인 모임이나 저작들을 통해 장광설에 여념이 없는 이론가, 음모자, 그리고 혁명가들을 포함한다. 이들을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길들이고, 단호하고도 위험한 선언을 하게끔 부추겨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들 다수에게는 결정적인 실패를, 혁명가들에게는 교육적인 효과를 안겨주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10. 여섯 번째 부류는 여성이다. 이 부류는 아주 중요하며, 세 가지의 하위 부류는 나뉜다. 하나는 연약하고, 어리석고, 영혼이 없는 여성들로 이들은 세 번째와 네 번째 부류의 남성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지만 우리와 한 편이 될 수는 없는 여성들이다. 이들은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관념을 구상하지 못하며, 또 혁명의 대의를 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 여성들은 다섯 번째 부류의 남성들과 같이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강령을 전적으로 따르는 여성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우리 편이요, 우리 혁명단의 정식 회원이요, 우리의 동지이다. 우리는 그들을 아주 소중한 보물처럼 대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 없이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중에 대한 혁명단의 자세

 

  1. 혁명단은 민중, 즉 노동자의 완전한 해방과 행복 외에 그 어떤 다른 목표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행복과 해방이 모든 걸림돌을 일소해버릴 민중 혁명이라는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확신하며, 이를 위해 모든 힘과 모든 자원을 바칠 것이다. 혁명단은 민중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총궐기를 할 수 있도록 부추기기 위해서 민중에게 가해진 고통을 배가시키고 확산시키는 일까지도 불사할 수 있다.
  2. 혁명단이 이해하는 ‘민중 혁명’은 서구 사상만을 따르거나 사유재산·전통·사회질서 혹은 일반적으로 문명이나 도덕이라고 불리는 것들 앞에서 주저하는 운동이 아니다. 이러한 종류의 운동은 이제껏 기존의 정치체제를 전복하는 데 그쳤고, 이는 단지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혁명적이라 불리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민중은 국가를 그 근본부터 파괴하고 러시아의 모든 전통과 계급과 기성 질서까지 제거할 혁명만을 환영할 것이다.
  3. 게다가 혁명단은 민중에게 상부의 하달에 따르는 조직을 강요할 의향이 전혀 없다. 미래의 조직은 분명 민중의 운동과 삶 그 자체로 구성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다음 세대의 몫이다. 우리의 과제는 끔찍하고, 가차없고, 완전하고, 총체적인 파괴이다.
  4. 또한 민중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선 민중들의 행동에 동참해야 한다. 민중은 모스크바 정부가 설립된 이래로 귀족, 관리, 기업가, 상인 등 권력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모든 이에 맞서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항거했다. 이 용감무쌍한 무법자들과 함께 하자.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러시아의 혁명가들이다.
  5. 저지할 수 없는 힘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이 무리들과 통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조직의 과제요, 우리의 음모요, 우리의 목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