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 4페이지의 답변: 링크
메갈리아4 휴, 제가 댓글을 두어개 달면, 저를 향한 댓글 열 몇개가 달리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던 찰나에 댓글 감사합니다. 성적 대상화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국정교과서에서 핵심은 한국극우가 일본극우에게 지령을 받아 충성을 하거나 무릎을 꿇는게 아니라, 한국극우가 자신이 저지르거나 가담한 과오를 국론 통합이란 명목하에 단일화 하여 덮는게 핵심입니다. 현재 나오는 기사들 대부분이 그 지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여성의 남성에 대한 블로우잡만으로 성적 대상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헤테로섹슈얼의 작가가 남성새마을이 여성일본제국주의에 커닐링거스하는 포즈를 취했어야 올바른 정치적 풍자였나요?
1950년 대 당시 미국사회는 백인과 흑인의 구분이 뚜렷하여, 버스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벤치 같은 공공시설물의 이용조차 백인과 흑인의 전용칸이 따로 존재했습니다. 흑인들을 백인으로부터 격리하기 위해서 말이죠. 1955년 12월,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버스 안의 흑인칸이 만석이되어 백인 전용 칸에 앉을 때, 버스 기사는 그녀에게 ‘흑백 인종분리법’ 의거해, 흑인 전용 칸으로 옮겨가라고 합니다. 이 사건이 민권운동의 시작이 됩니다.
말콤X 당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블랙파워운동 내부에서도 흑인들의 백인들, 다시말해 무고한, 다시말해 흑인차별에 가담하지도 않은 불특정 대상의 백인들을 향한 일부 블랙파워들의 테러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그 맥락을 제외하시고 제 역사적 이해가 부족하다고 하시면, 제가 무슨 말을 드려야 할까요?
여성전용공간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한 메갈리아4에 깊은 유감을 느낍니다. 다시 이야기 드리자면, 여성전용공간은 헌법과 인권선언문에 명시된 “누구나 어디에서나 안전할 자유” 역설적으로 제약하고, 여성들은 ‘여성전용’공간에서만 안전할 자유가 있음을 말합니다. 또한 범죄자들에게 범죄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저희가 아무리 주차장에서 여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말라고 운동을 해도 그러한 운동이 효과가 보일때 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이 시간 내에서 잠재적 피해자들의 안전을 보장을 할 수 있는 노력은 필요하고 그러한 최소한의 노력이 여성주차장 같은 결과들 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매우 이상한 답변입니다. 지금 메갤에서 경찰서나 관할관청을 상대로 안전권보장에 대한 요구를 하고 있나요? 전용공간은 아니지만, 경찰은 이미 요청하는 여성들에 한하여 안심귀가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주차장내 치안 시설 확충및 기준 강화를 요구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여성전용시설을 요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는 역차별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고, 역차별을 떠나 여성이 전용공간이 아닌 곳에서 안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언하는 꼴이 됩니다.
이는 헌법이나 인권선언문은 물론이고, 페미니즘의 이론에서도 매우 동떨어진 논리며, 내재된 기제는 마초이즘과 젠더롤에서 “여성은 약하고, 피해자다. 보호의 대상이다”와 같은 논리가 됩니다. 또한 이는 3세대 페미니즘의 기폭제였던 Riot Grrrl 무브먼트의 선언문에서도 선언된 “BECAUSE we are angry at a society that tells us Girl = Dumb, Girl = Bad, Girl = Weak. 왜냐하면,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소녀는 멍청하고, 소녀는 질이 떨어지며, 소녀는 약하다’ 라고 규정하는 편견에 맞서 사회에 분노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를 완전히 뒤집는 행동입니다. 오히려 반여성주의적인 요구라는 말입니다. 2세대, 3세대 페미니즘 투쟁사만 보셔도 ‘여성전용’이라는 이것을 넘으려고 얼마나 많은 투쟁들이 있었는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특수성을 이야기하신다면, 결국 그 논리는 아랍여성은 아랍의 문화적 특수성으로 아랍여성은 서구여성, 혹은 아시아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기본권을 보장받는, 이를테면 아랍남성에 의한 아랍여성의 구타가 온당하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같은 말로, 한국여성은 서구여성보다 상대적으로 제약된 기본권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하는 셈입니다.
한국에서의 여성혐오, 여성차별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고착화된 사회의 병폐입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하지만, 오늘에도 심각한 사회의 한 축입니다. 이것을 현상으로 접근하여 투쟁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1871년 보불전쟁 이후부터 2차대전까지의 1세대 페미니즘 투쟁사를 통해 실질적으로 여권신장이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독일에서는 바이마르에서 남녀임금에 대해 동일임금, 동일노동 시도가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의회에서 여성참정권이 통과되었습니다. 2차대전 직후의 2세대 페미니즘부터는 여성도 남성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한 이들이 학생운동과 68혁명과 만나면서 실질적인 현대국가의 여성권리신장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70년대에는 차별을 조장하는 단체, 정치인들에 대한 테러그룹까지 결성되었습니다. 3세대 페미니즘, 80년대부터는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와 녹색정치운동이 연대하고,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면서 그리고, 3세대 페미니즘의 기폭제라고 할 수 있는 Riot Grrrl 무브먼트가 91년 선언되면서 전방위로 오늘 날의 여권신장이 이루어졌습니다.
약 150년 간의 이야기를 다 아시리라 생각함에도 다시 이야기 드리는 이유는 메갤에서 여성혐오사례뿐만 아니라 학습과 조직운동을 해야한다 이야기 드린 겁니다. 심각한 성차별이 뿌리 깊은 한국에서 페미니즘운동이 시작된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부의 외국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면서도 앞선 페미니즘 투쟁사에 대해서는 한국만의 특수성이라 페미니즘 일반론에서 다뤄지는 투쟁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착한 남성’이 여성에게 선물하는 배려나 동정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이것은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흑인들이 차별을 받으면서도 미국사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동시에 ‘착한 백인’들이 주는 배려나 동정이 아닌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은 차별금지법을 이끌어내고, 참정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도 일어나는 흑인에 대한 차별에 대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메갤이 지금 theory와 praxis 간의 괴리라고 하는 것은 페미니즘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투쟁은 쉬워보이는 것을 하는게 아니라, 원래 주어지지 않았지만 당연히 받아야할 것들을 싸워서 쟁취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메갤의 포스팅에서 전체 남성에 대해 일반화 시켜 만드는 사례들이 보입니다. 또한 여성전용이라던가의 논리는 여성을 약자화 시키고 페미니즘을 무력화 시키는 대표적인 젠더롤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나 자기반성이 없다면, 메갤을 누가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Riot Grrrl 선언문에서도 다루어졌듯이 우리는 언제나 비판적 지지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하여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거 아닐까요.
저는 메갤이 아직도 페미니즘 운동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68이후, 독일에서 전설적인 좌파, 아나코 밴드이자 국민밴드가 된 Ton Steine Scherben의 노래 Der Traum Ist Aus는 경찰들과 대치하는 바리케이트 최전선 앞에서 많은 젊은이들의 목청을 통해 소리 높여 불리어졌습니다.
“꿈은 끝나고 말았네. 꿈은 끝나고 말았어. 하지만 그 꿈이 확실해질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것이라네. 하지만 그 꿈이 확실해질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것이야.”
꿈을 현실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 꿈은 영원히 갖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말테니까요.
말이 길었습니다. 성의있는 답변 감사하고, 앞으로도 서명이라던가 혐오게시글에 대한 신고 같은 포스팅은 함께 하는 것이 더 실력행사에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한혜연 제 글을 읽고, 링크를 보내주신건가요? 판단이고 자시고, 글을 읽고 대답해야 기본적으로 대화가 될거 아닙니까.
Jiyeon Woo 완충지대라는 말 흥미로운데요.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이란 아이디어에 역행하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그런데 여성전용은 여성주의에 반하는 아이디어고, 여성주의가 그동안 오랫동안 철폐하려고 해온 것입니다. 이를 테면 “난 남자니까 축구를 할테니, 넌 여자니까 응원을 해.” 같은 것 말입니다.
저는 할당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독일의 경우는 아직 여성의 사회진출이 남성에 비해 어려워 여성할당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 같은 경우는 정부에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많이 일하고 있어 시행하고 있지 않기도 합니다. 제가 함께 일하는 쪽에서는 굳이 정확한 인원을 5:5로 맞추지는 않지만, 새로운 인원이 들어올 때, 균형을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여자가, 가끔은 남자가 더 많기도 하죠.
저도 댓글 중 일부를 보고 부아가 치밀었고, 작가의 허술한 답변에 실망을 했습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 비판은 모르겠지만, 블로우잡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처럼 다루는 것은 여성주의와 상관없고, 오히려 성에 있어 여성을 하대하는 원인이 되죠.
독일은 포르노 박람회가 있고, 매춘부들이 보험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위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섹시즘에 있어서도 통일된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에 천하다 말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노동자로서 기본적으로 누릴 권리를 말합니다. 구강성교는 ‘남자 아랫 것들’ 이란 인식은 지금 지연씨께서도 갖고 계신 것 같군요.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당당히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라고 가르쳐야하는게 올바른 성인식 아닌가요?
미러링은 안된다고 이야기 한 적 없습니다. 하지만, 미러링이 전술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와 부작용에 대해서 생각도 안해보고, “미러링이 전술이다”라고 택하시면 저는 대체 페미니즘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는건가 의문이 생깁니다.
한국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뒤쳐지니, 한국의 여성은 페미니즘이 말하는 기본권을 부분적으로 제약 받아도 되나요? 그게 한국여성은 서구여성만큼 존중 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과 뭐가 다르죠?
제 글을 잘 안 읽어보신 것 같은데, 저는 우범지역에 치안강화, 이를테면 cctv나 안전요원 추가 배치를 요구해야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미 요구하는 여성들에 한해 안심귀가서비스를 경찰이 하고 있고, 때문에 치안을 확대시켜달라고 해야지, 여성전용 시설을 만들어서, 마치 그 외 시설에서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덜 안전해도 된다는 관념을 심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페미니즘의 기본 아이디어인데 대체 몇번째 반복해서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cctv 반대를 한적도 없는데, 글을 다시 한번 읽고 답변 주시면 좋겠습니다.
문화에 따라 맞춰야 한다는 말은 아프리카 소녀들은 전통에 따라 강제로 할례를 하고, 이슬람여성은 이슬람남성에게 맞아도 된다고 하는 것이며, 이슬람여성이 자동차 운전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씨를 갖을 수 없었지만, 여성은 더욱이 이름조차 가질 수 없었습니다. 문화적 차이가 크니 지금에 만족해야 하나요? 오히려 헌법과 인권선언문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보장해달라 해야 합니다. 지금 이슬람의 여성작가들이 페미니즘이란 화두로 어떤 작업을 하는지 아시나요? 이슬람여성을 조금이라도 배려하자는게 아니라, 이슬람여성에게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달라 접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원에 접근하면 위험한 상황이 될지도 모르는데, 기본권은 단계별로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보장받아야하는 기본권리니까요.
한국은 아직 미개해서 한국여성의 기본권은 단계적으로 보장 받아야한다고 말씀하시면서 페미니즘을 동시에 요구하는게 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런 생각이 인종차별적이란 생각까진 안 해보셨나요?
싸워서 쟁취하지 않는 이에게 갑자기 그걸 선물처럼 주어지는 권리는 없습니다. 페미니즘 투쟁사 뿐만 아니라 흑인들의 민권 운동이 그랬구요.
긴 답변 감사합니다만, 제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답변 주셨으면 합니다. 메갤에 제가 댓글 두세개를 적으면, 절더러 여혐이라며 열개의 공격적인 댓글이 달리는데, 최소한 댓글을 읽고 답변을 주시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저는 베를린에서 페미니스트로써 활동할 뿐이지, 모든 질문에 24시간 대기해서 대답을 하는 상담원 같은게 아닙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저는 이제 제 일을 하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