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일베의 딸과 메갈리아의 아들들 via 박가분

꽤 긴 글입니다. 본 링크에서 읽을시에는 댓글도 함께 읽길 권합니다. ㅡ via 박가분

<일베의 딸과 메갈리아의 아들들>

0. 일베의 사상 3쇄를 찍은 기념으로 씁니다.

1. 한국에서 시사적인 문제나 문화에 대한 비평은 넘치지만 지나고 나면 사실 거의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혼자 열심히 노력한다고 바뀌는 구조도 아니다. 예전부터 ‘비평’과 ‘논객’의 무용성에 대해서 인식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비평의 목적은 사건의 일회성에서 반복성과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비평의 형식이 시작되었던 문학작품이든, 혹은 시사적인 사건이든 마찬가지이다. 일회성과 우연성 그리고 정보소음은 현대의 대중사회를 특징짓는 요소이다. 그럴수록 그 배후의 구조와 반복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비평의 역할은 필자 개인의 (과잉된) 자의식과 주관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사건 자체의 참신함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정보소음에 소음을 더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은 참신하다고 생각되는 작품과 사건은 알고 보면 진부한 것들이 많다. 어찌 보면 그 진부함이 새삼스레 참신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비평의 역할이다. 단지 시의성이 지나면 아무도 다시 비평의 대상을 되돌아보지 않을 뿐이다.

2. 대표적인 것이 바로 ‘거리로 나온 일베’ 사건이다. 작년 일베회원 일부가 폭식시위를 전개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조롱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 사건을 통해 알지 못하는 기자들로부터 전화공세를 받아야 했고, 언론지면상에서도 ‘드디어 넷우익이 거리로 나왔다’는 사실에 커다란 의미가 부여되었다. 물론 SNS도 시끄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환기하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큰 의미가 없는, 불모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오히려 폭식투쟁에 나선 ‘일베’에서 바뀐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얼굴을 드러내고 무언가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 새로울 것은 전혀 없다. 공론장에서 누군가가 내세우는 이념과 당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그것을 조롱하는 일베 특유의 행동방식은 여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거기서도 (일본의 재특회나 프랑스의 국민전선처럼) 그들이 내세우는 적극적인 이념이나 강령상의 주장 따위는 없다. 당시 폭식시위가 단지 ‘세월호 사건’이라는 커다란 상징성 때문에 더욱 더 조명을 받은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한국사회에서 당시 세월호 유가족들 하나하나의 이력과 자격을 문제삼는 인터넷 여론공세를 보면서, 이곳에서 진지한 주의주장을 공론장에서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유가족들이 교황 정도는 되어야 말할 자격이 생기는가, 하는 부분이 더 인상적이었다. (교황방한으로 정신승리하는 진보좌파들을 보면서 더욱 그랬다) 그런데 일베가 행한 퍼포만스는 그러한 일상적인 ‘정치혐오’의 차원이 아니라, 그것을 제기하는 ‘미학’적인 방식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말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적었고, 기사화되기에 좋은 멘트도 아니었다.

3. <일베의 사상>에서 누차 반복했듯이, 일베의 멘털리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애국보수’라는 슬로건이나 ‘행동하는 일게이’라는 정치적 자기표상을 동원하는 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유행했던 메갤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그들에 대해서 불만이 있다고 ‘너의 페미니즘은 잘못되었다, 악용하지 말아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마찬가지로 일베라는 커뮤니티 내에서도 애국보수에 대한 내용상의 합의는 의식적인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페미니즘의 언어를 빌리면 n개의 애국보수, 혹은 복수의 애국보수들이 있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사실 은 애국보수 따위는 자신의 메시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일베의 미학은 바로 ‘패러디’의 형식을 통해 타인의 신념과 사상 그리고 생활방식을 조롱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문제제기를 해 보았자, 알다시피 그들에게서 되돌아오는 대답은 ‘그런 조롱어린 퍼포먼스는 진보진영에서도(혹은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많이 하지 않냐’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나도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는 식의 인정투쟁과 결합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최근에 안 것이지만, 자신이 무언가에 분노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하는, 그러한 인정투쟁의 형식은 메갤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4. 이른바 디씨의 메르스 갤러리에서 잘못된 정보(홍콩에서 젊은 여성 보균자들이 보건당국의 권고를 무시하고 감염을 확산시켰다는)와 관련하여 여성혐오 언행이 일고, 이후 정정보도를 통해 역풍이 불자, ‘씹치남’, ‘실좆’, ‘자들자들’이라든가, ‘삼일한’ 등 종래의 여성혐오의 언어들을 그대로 패러디하는 언행들이 만연했다. 혹자는 이것을 기존의 혐오의 언어들을 있는 그대로 전사하고 ‘미러링’하여 그 혐오의 가해자들에게 되돌려주는 획기적인 ‘퍼포먼스’로 평가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메갤에서 시작된 여성혐오의 ‘미러링’의 방식은 애초에 일베에서 시작된 것이다. 일게이들이 자칭하는 ‘애국보수’나 ‘행게이’는 진보진영의 깨시민 담론에 대한 ‘패러디’에 불과하다. 그 슬로건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일베 내에서도 바보취급을 당한다. 한편 메갤과 메갈리아 페이지에서는 ‘혐오범죄에 상처입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조롱을 되돌려주는 멋진 사람(혹은 여성)이 되겠다’는 인상적인 신앙고백과 선언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획기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과거 ‘깨시민’이었다가 일베로 전향하게 된 계기를 토로한 같은 형식의 고해성사와 신앙고백을 검색만 하면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오히려 그 ‘미러링’의 방식은 일베의 미학이기도 했다. 예컨대 일베 유저들이 ‘애국보수’를 자칭하고 ‘행동하는 일게이들’이라고 자평하는 것은 사실,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진보진영의 자기표상에 대한 패러디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는 것 자체가 일베프레임에 넘어가는 것이다. 인터넷 일각의 그 진보적인 위선에 대한 환멸도 환멸이지만, 그 보다는 그러한 위선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겠다’는 결의가 오히려 일베 유저들을 정신적으로 무장시키는 중요하는 기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상처를 입기보다는, 오히려 상처를 주는 쪽이 되겠다는 결의. 그것을 추동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 물론 매겔의 탄생배경은 이해할만하다. 복수의 여신이 그들의 편에 서 있다고 평해도 딱히 반론할 여지는 없다. 게다가 그들의 조롱은 (일부에게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 같아 보이면서도 재미있기까지 하다. 확실히 인터넷은 오래전부터 여성혐오의 진앙지였다. 늦게 잡아도 군가산점제 폐지 이후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몰이해와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그러나 실은 아무 위협도 안되는) 여성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하필 이 시점에 메갤이 등장했느냐이다. 그 열쇠는 일베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그 동안 있었던 여성혐오 일변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일베의 새로운 점은 여성혐오의 언어들을 차라리 (자기들끼리의)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내며 유희했던 데 있다. 그들은 여성에 관한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도 자신의 혐오정서를 지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고작 ‘된장녀’, ‘고추장녀’, ‘스타벅스녀’ 등등 몇 개의 단어들이 유명세를 떨쳤던 2005~2012년의 과거와 달리 일베라는 커뮤니티 단독으로만 여성혐오 언어들의 사전을 따로 만들어도 될 지경이다. (메갤은 그 혐오사전을 여성에게도 호환가능한 번역사전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더 이상 오늘날의 젊은 남성들이 가부장제에 대한 호교론을 설파하면서(내가 남자로서 얼마나 인생을 책임있게 열심히 사는지 어필하면서) 여성혐오를 표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보다는 내가 “일베를 하는 잉여ㅂㅅ이지만”하는 정서가 주류이다. 이렇듯 오늘날의 여성혐오는 가부장제의 현상이 아니며 오히려 가부장제의 일반적인 붕괴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한편 만일 메갤이 어쨌든 이해할만한 현상이라고 말한다면,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똑같은 논리로 일베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 마찬가지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지역에 대한 경멸과 혐오의 언어가 만연했고, 특정인의 블로그 계정등에 몰려가 악플을 다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논객문화에서 자주 반복되어왔던 상대의 지적수준에 대한 경멸과 무시는 매우 고질적이었다. 그러한 것을 침묵 속에서 견디다가 이후에 ‘나는 더 이상 그러한 것으로 상처 입지 않는다’며 더 심각한 위악으로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무장한 집단이 출현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6. 현실에서 젊은 남녀가 처한 권력관계는 그때그때의 장소마다 다르다. 어쨌든 어떤 형태로든 일상에서도 권력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드러나는 권력관계는 현실과 전혀 다르다. 우선 커뮤니티 내의 권력관계를 특징짓는 것은 관리자 혹은 유명닉을 둘러싼 ‘친목질’이다(여초 커뮤니티 한정으로 말하면 여시나 ㅇㄷ의 관리자 친목질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친목질 금지나 닉언급 등의 금지가 적용되기 시작하면 좋을대로 떠드는 분위기가 되고 커뮤니티 내 권력관계는 형해화된다. 단지 분란이나 법적인 시비를 피하기 위해 룰을 제정하는 사람이 있을뿐 그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가시적인은 커뮤니티 간의 권력다툼이라고 할만한 것인데,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내가 (가라타니의 말을 빌려) “부정적인 호수성”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쉽게 말해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원칙이다. 가령 커뮤니티 간에는 거의 영구적 반목과 항쟁의 상태가 존재한다. 홉스의 ‘자연상태’라고 할만한 것이다. 예전에는 없이 못살 것만 같았던 여시와 오유간의 우호관계가 (다소 신뢰하기 힘든 오유회원을 상대로 한 여시회원의 성폭력 사건 폭로 및 잠수사건 이후) 틀어지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그 반목의 계기는 여성혐오나 가부장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되로 주고 말로 되받는다는 것이 인터넷의 유일한 도덕적 현실원칙이다.

6-1. 무엇보다 인터넷은 그 자체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아즈마 히로키)로서 타인의 신상을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에 대해 말했듯이 “망각을 모르는”, 그러면서도 “시간적 논리적 관계도 모르는” 공간이다. 인터넷에서도 타인의 신상을 털때 그 전후관계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이것은 이미 프로이트가 무의식과 꿈에 대해 진단을 내린 바이다. 인터넷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의식이 꿈에서 그렇듯이) 타인에 대한 “공격충동”의 무궁무진한 ‘내용상’의 소재를 제공하는 보고이다. 그리고 ‘형식상’으로 인터넷의 관계망은 패러디에 무한한 영감을 부여하는 곳이다. 예컨대 일베의 방약무인한 혐오언어는 그대로 스스로에게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일베의 언어를 미러링하며 당사자에게 되돌려주었던 최초의 방식은 과거 2012년에 일어났던 ‘일베대첩’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일베가 여러 커뮤니티에서 조롱글(일명 어그로)을 일삼은 것이 공분을 사서 여러 커뮤니티가 연합해서 일베의 ‘산업화’를 비꼰 ‘농업화’ 글로 일베 게시판을 도배하며 테러를 가한 바 있었다. 그때에는 일반인들에게 일베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다. 타인의 사상을 제멋대로 “응축하고 전치”해서(프로이트) 패러디에서 미러링하는, 그러한 무의식적인 방식은 커뮤니티 간 분쟁에서 자주 쓰였던 방식이고 메갤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6-2. 일베대첩과 같은 일회성 사건과 달리 메갤이 새로워 보이는 것은 무의식에서 출발한 혐오정서가 일베와 유사하게 ‘애국보수’와 짝을 이루는 ‘여성주의’의 이념으로, 다시 말해서 “현실원칙(프로이트)”으로 스스로를 차츰 무장하기 시작한 데 있다. 그러나 일베와 마찬가지로 이념의 정당성은 그 내용상의 허술함을 가리지는 못한다. 가령 ‘김치녀 프레임’이 여성을 창녀와 성녀의 이분법처럼 ‘개념녀’와 ‘김치녀’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일방의 잣대라고 비평하는 인상적인 게시글을 보았지만, 실은 그러한 (보통 여성과 다르고 깨어 있다는) ‘개념녀’ 프레임은 ‘삼국카페’ 등의 여초커뮤니티에서 오히려 만연했던 것이고, 그것이 ‘나꼼수 비키니’ 논란을 낳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미안하지만 메갤 신드롬에 숟가락을 얹었던 일부 페미니스트들 생각과 달리 일베에서의 김치녀 프레임은 (과거 가부장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지적이고 도덕적이고 규범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김치녀에 대응되는 개념녀라는 칭찬 같은 것은 애초에 일베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그녀들에게 열녀문을 하사하면서 개념녀의 모범을 사회규범으로 정착시키려는 노력 같은 것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일베어서 본질적인 것은 ‘규범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사상을 공격하는 데서 얻는 ‘재미’이다. 사실여부와 별개로 재미있고 상대를 성공적으로 패러디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일베의 사상=미학이다. 메갤도 일베의 사상=미학을 미러링 하는데서 성립되었다. 따라서 이렇게 말해 보자. 넷상의 ‘여성혐오’는 결코 결코 현실의 규범적인 가부장적인 권력관계 같은 것이 아니다. 재미만 있다면 다른 혐오코드에 의해 얼마든지 역전당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이처럼 인터넷에는 현실의 젠더와 지역 그리고 계급에 입각한 일방의 권력관계는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러한 현실의 권력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실질적인 임금차별을 당하고, 유리천장을 겪는 것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터넷 상의 논란은 오히려 현실의 권력관계에서 눈을 돌리고 여흥을 즐기게 하는 좋은 맥거핀일 따름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7. 인터넷 커뮤니티 간에 존재하는 이 ‘부정적 호수성’이라는 기제는, 특히 커뮤니티 내 친목질과 결합되면서 어떻게 일상에서 하지 않을 짓을 하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또한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인터넷이 부정적인 의미에서 평등한 공간(일베왈, 너도 나도 똑같은 ㅂㅅ다)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지름길임을 납득하게 할 수 있다. 특히 매겔의 주된 유입경로인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일부의 인식과 달리 여시는 오히려 메갤의 유입경로가 아니라 그 영향에 감화받은 쪽이라고 보는 것이 낫다)의 담화와 관계망, 그리고 “페페페” 내에서 있었던 그들끼리의 분란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이제는 어느 정도 시들해진) 메갤 신드롬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리라 생각한다. 일베를 과거의 정사갤과 촛불시위에 대한 반동 그리고 그 내부의 반목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는 여성주의자들의 교훈대로 페미들이 동질적인 집단이라고 가정하지 않듯이(오오 여성주의는 복수의 n개의 여성주의로 존재한다! 마치 Thousands of Marxism들이 존재하듯이!), 일베, 남성 섹슈얼러티, 여성혐오가 결코 동질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간주할 따름이다. 하지만 여성주의는 일반적으로 자신에 대해 요구하는 예민함을 타인에 대해 발휘하는 데는 인색한 것으로 보인다.

8. 결론으로 건너뛰자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국처럼 누군가가 분노와 혐오에 취약한 사회일수록, 그 탈출구를 박탈당한 채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발산할 기회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그 방식의 새로움을 찾고 지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차라리 해당 커뮤니티에서 일상적으로 댓글을 달면서 노는 것이 정신적으로 더 유익하다고 하겠다.

우선 차분하고 이성적인 반론글에 감사드립니다. 요새는 메갈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하면 죄다 씹치남이 되어버리더라고요(웃음). 각설하고. 데이터 부분에 대한 지적은 확실히 뼈아픕니다. 저도 각종 커뮤니티 폐인질을 하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습득한 것을 기반으로 대충 졸글을 썼습니다.

제가 필력이 모잘라서, 본문을 좀 더 부연하자면 제가 말하고 싶었던 핵심은 ‘메갈이 옳다, 틀리다’도 아니고, ‘혹은 일베와 동급이다’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물론 결국은 동급이라고 생각하지만요. 또 역으로 ‘그래서 동급이어서 뭐 어떻다는 건가, 둘 다 따지자면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하는 심정도 있습니다. 근데 그건 지금은 중요한 건 아닙니다.

제가 저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핵심은 ‘미러링’이란 그다지 참신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대의 화법을 비꼬고 패러디하고 사안마다 진영을 나눠서 병림픽을 벌이고 다수의 관객들이 팝콘을 먹으면서 그것을 즐기는, 그런 통상의 커뮤니티 문화가 미러링의 기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어느 순간 폭주하기도 하고요. 메갈은 그러한 커뮤니티 문화의 일반적인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일종의 사회신드롬이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그것이 신드롬화된 데에는 커뮤니티 외부의 요소(이 사회의 불평등한 성문화 등등)를 간과할 수 없고, 그 부분을 제가 축소해서 다룬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메갈도 기본적으로 커뮤니티 문화의 동학에 입각해서 바라봐야 쓸데 없는 환상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오히려 일베에 참신함이 있다면 커뮤니티의 일반적 병림픽 문화와 조롱 등에 정치적 대의를 가미한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가 <일베의 사상>에서 주장했듯이) 일종의 ‘인터넷 미학’일뿐, 사실 거기에는 어떠한 진지한 주의 주장 내용도 없습니다. 애국보수라고 해도 도대체 그게 뭔지 알 수도 없고 정작 일베충들도 그것을 진지하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메갈도 마찬가지로 생각합니다. 메갈이 내세우는 여성주의는 일종의 ‘미학’일뿐입니다. 결국 자신의 (물론 지금까지는 공공연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공격적인 성적 판타지와 평소의 증오의 대상에 대한 발화를 쏟아내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묘한 공동체감, 일체감이 있지요. 메갈=일베 이런 등식을 내세우기보다는 저는 오히려 일베가 형성한 일종의 인터넷 문화지형이라고 해야 할까요. 메갈=일베 라기보다는 메갈은 그런 지형 속에서 나타난 포스트-일베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메이즈둠님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 관해서 이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글에서 겨냥하는 대상은 님께서 말씀하시는 “일베라는 방패 뒤에 숨어 여성 혐오를 소비하는” 그런 형편없는 인간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한 질문은 “그렇다면 메갈의 남혐 미러링”이 님께서 말씀하신 도촬과 강간 데이트 폭력과 강간 염산뿌리기 증오발언 등을 없애냐, 이 사회를 보다 성평등한 곳으로 만드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답변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 메갈의 공식입장처럼 일종의 충격요법으로써 유효하다.

(2) 메갈은 오히려 혐오를 확대재생산할 뿐이다. 정치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

하지만 제가 잠정적으로 택한 답변은 세번째 (3) 애초에 메갈을 그런 여성주의적 고민을 하는 주체로 상정할 필요가 없다. 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메갈에 여성주의나 운동적인 의의를 부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우병 시위를 겪은 이후의 젊은이들은 이미 냉소적 주체들입니다. 메갈의 기본적인 입장은 ‘왜 지금까지 여혐에는 침묵하면서 이제 와서 선생질’이냐는 냉소주의입니다. 그런데 그게 일베를 포함한 젊은세대의 화법인 것 같습니다. 절대 바뀌지 않아요. 따라서 그들이 공유하는 문화가 애초에 운동일 필요도 없고 그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철이 지난 이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메갈이 ‘잘못되었다’, ‘또 다른 일베이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메갈은 그저 새로운 파자마 파티식 여성 커뮤니티 문화의 일종이라고 생각할뿐입니다. 거기에 이념을 부여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그저 한국에 결핍된 또래 공동체 문화를 대체하는 현상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결국 어떤 결핍의 증상에 불과한 것에,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하고, 커뮤니티부심을 형성하는 것인데. 바로 그런 과정이 일베를 낳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커뮤니티부심은 정신건강에 해롭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사회문제의 증상을 치료책이나 해법으로 오인하기는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님께서 지적하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하고 저도 조금 더 저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지적하신 메갈 페이스북 페이지는 제가 봐도 메갈 저장소와 결이 다르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그 둘이 (정신분석에 거칠게 비유하자면)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조야하게 말하면, 의식은 자신의 무의식을 때로는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듯이 말입니다.

제임스 메러디스, 흑인민권운동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최근의 페미니즘 논쟁을 지켜보면서 나는 흑인민권운동을 떠올렸다. 그 가운데 제임스 메러디스가 떠올랐다. 법원에서 판결이 나더라도 집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결국 연방병력까지 투입한 케네디 정부, 미국은 이런 사건들을 통해 국가의 변혁을 이루어냈다. 차별받는 흑인들을 바라본 ‘착한 백인’들이 그저 가져다 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메러디스가 어떻게 투쟁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언급이야기를 소개해본다.

옥스퍼드의 미시시피 대학및 미 남부의 여러 교육시설들은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차별정책을 철폐해야만 했다. 1962년, 기나긴 법정 투쟁 끝에 연방법원은 미시시피 대학교가 퇴역 공군인 James Meredith, 제임스 메러디스의 입학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실제로는 인종차별적이었던 보수주의자들로 이루어진, 시민위원회의 주도로 판결 집행에 대한 반대 운동이 벌어졌다.

케네디의 당선을 위해 애썼던 로스 바넷 주지사는 초기 케네디의 편에 섰으나 자신이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자, 남부의 차별금지정책에 반발해 1954년 미시시피 인디애놀라에서 처음 발족된 인종차별적인 시민단체, ‘시민위원회’의 손을 들고, 차별정책폐지를 거부했다. 이후 로스 바넷 주지사는 9월 13일 TV에 출연을 필두로 공공연히 법원이 명령한 차별 폐지를 거부하고, 이에 들고 일어날 것을 선동했다. “인종차별을 철폐하느니 주립대학의 문을 죄다 닫아버리겠다”고 선언했다. 로스 바넷 주지사와 존 케네디 대통령, 존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오랜 시간동안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연방정부가 개입해 강제로 법원 판결을 집행하기로 결정한다.

집행관의 호위를 받으며 메러디스가 옥스퍼드에 등교하려 하자, 라디오에서 연신 KKK, 백인우월주의 발언을 떠들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물리적 반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어버이 연합외 몇 개 극우단체의 스멜이 난다) 메러디스가 입학 등록을 하기 하루 전, 9월 29일, 연방 법원 집행관이 대학 교정에 진입해 본관을 포위했다. 2,500명 정도의 인종차별주의적 시민단체들은 결국 폭동으로 사태를 몰고 갔는데, 연방정부 집행관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을 사용하지만, 시위대들은 곧 바로 총을 쏘며 연방정부 집행관들을 공격했다.

 

결국 같은 날, 로스 바넷 주지사가 메러디스의 입학을 막으면서, 주정부군을 철수 시키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시위대를 선동하자, 존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이자 법무부 장관인 로버트 케네디의 결단 아래, 연방 정부가 개입, 연방군이 투입되어 강제로 법원 판결을 집행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 투입된 연방군만 2만 명에 이르는 병력이었고, 1만 1,000명의 주 방위군이 옥스퍼드로 재투입되었다. 시위대 중 300명이 체포되었다. 시위가 진압된 뒤에도 메러디스는 학업을 결심해, 등교하는 내내 살해 협박을 당하면서도 연방 법원 집행관과 군인, 총인원 300명의 보호를 받으며 결국 정치학 학사를 따냈다.

 

이후 2년 동안, 아프리칸 미국인 학생들이 차례로 대학에 입학하여, 1963년 6월, 클리브 맥도웰은 법률 학교에 등록하고, 그는 메러디스의 룸메이트가 되었다. 메러디스가 수업을 마친 7월 이후, 연방 보안관은 학교를 떠났다. 클리브 맥도웰은 자신의 안전에 대한 우려로, 호신용 무기 소지 권한을 요청하지만 거부당했다. 어쨌거나 맥도웰 또한, 법학 학사를 따고, 미시시피주에서 민권 변호사와 국선 변호사가되었다. 결국 맥도웰은 19세 백인 청년의 총에 맞고 1997년에 죽고 만다.

 

1963년의 맥도웰 입학 당시와 달리, 1964년 클리블랜드 도널드 주니어는 연방 정부의 보호 명령과 함께 대학에 입학하여, 1966년 역사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1978년, 동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한 이후 흑인 역사, 문화사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자가 되었다.

 

메러디스는 정치과학에 초점을 두고 학업에 열중해, 장학금을 받고 나이지리아의 대학 수업에 참여하다 1965년 돌아와 콜럼비아 대학에서 학업을 마친다. 1966년부터 메러디스가 시작한 민권투쟁행진은 15000회가 넘는 민권투쟁행진으로 이어졌고, 미시시피 주 역사사 최고의 민권행진이 되었다. 이는 흑인들의 유권자 등록운동으로도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메러디스는 1967년 공화당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민권운동을 하는 정치인의 삶을 살게 된다. 표를 의식한 공화당이 메러디스를 민주당에 뺏기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2002년, 미시시피 대학은 메러디스의 입학 4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열었고, 그의 가슴이 조각되어 캠퍼스 명예의 전당에 설치되었다. 당시 메러디스는 “인권의 개념보다 나에게 모욕적인 것은 없었다. 오히려 이 인권이 나와 같은 흑인들을 영원한 2등 시민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유인 즉, 메러디스는 스스로를 “전쟁에 참전한다는 마음이었다”라며, “자신의 목표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는 것인데, 미정부의 군사력에 의해 강제로 보장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2년, 미시시피 대학은 역사적인 입학 50주년을 기념해 예술, 강의, 강연, 세미나 등으로 확대해 행사를 치뤘다. 같은 해, 메러디스는 하버드 교육 대학원’에서 교육에 영향을 준 인물로 선정되었다.

Freundeskreis – Esperanto feat. Deborah with korean translate

독일의 전설적인 힙합그룹, Freundekreis의 곡, 에스페란토입니다.
여러 언어가 섞여 번역이 꽤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석이 많습니다. 하단을 참고하세요.

 

Freundeskreis ’99
mit Esperanto international verständlich, yeah, yeah
국제적으로 이해되는 에스페란토, 예- 예-

 

Wir besetzen Botschaften in totgesagten Wortschätzen
우리는 죽은 어휘라고 선언된 것으로 대사관들을 점거한다
Esperanto hält Einzug in bundesdeutschen Vorstädten
에스페란토는 서독의 교외 지역에 정착했고,
Und Freundeskreis wird zu Amikaro
프로인데크라이스는 아미카로*에 이른다
Der tupac Amaru des Stuttgarter Barrios
슈튜트가르 스페인 구역의 투팍아마루운동*이다

 

Unser Lingo ist der Ausdruck dieses Schmelztiegels
우리의 언어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기 위한 시련의 표현이다
Wir bringen euch Hip-Hop Sound in dem sich die Welt spiegelt
우리는 세계를 반영한 힙합 사운드를 당신에게 가져다준다
Weil wir den Blick bewahrten und wir selbst blieben
왜냐면 우리 통찰력을 보존하고, 또한 우리 스스로 머물기 때문이다
Das ist für die heads die raps aus 0711 lieben
이것은 0711*(슈튜트가르트)로부터 온 랩을 위해서다

 

Miliano mondano mit der mischpoke
가족과 함께 밀라노의 세속화된 사회
Don philippo und frico dem discjockey
DJ 돈 필리포와 프리코
Die philosophie streetpoetrie
철학적인 길거리의 시들
‘ne lingua franca für alle linken und einwanderer
모든 좌파들과 이민자들을 위한 링구아 플랑카*

 

Wir schreiben ’99 heut’ is rap universell
우리는 ’99년 오늘’ 전세계적인 랩을 적어내려간다
A&r’s sehn aus wie B-Boys die kultur zerschellt am geld
비보이 문화와 같은 아트앤 레파토리들은 돈 위에서 산산조각나는 것처럼 보인다
Die mediale definition von hip-hop is ne farce
힙합의 깊숙한 정의는 광대극이 아니다
Wir tun was wir immer taten nur der kontext is im arsch
우리는 오로지 빌어먹을 문맥 안에서 우리가 늘 해온 것들을 한다

 

Ich krieg Kopfschmerzen von zuviel Popkonserven
나는 너무 많은 팝콘서빙*으로 두통을 겪고 있다
Doch FK lässt sich nicht in diesen Topf werfen
하지만 우리 프로인데크라이스는 이 냄비 속으로 던져일 수 없다
Es gibt nichts was uns zügeln kann, nichts was uns hält
무엇도 우릴 막을 수 없으면, 어떤 것도 우릴 붙들 수 없다
Wir spreaden’s über stuttgarts Hügel in die Welt, Esperanto
우리는 세계 속의 슈튜트가르트 언덕에 대해서 전파한다

 

Esperanto, c’est la langue de l’amour
에스페란토, 그 사랑스러운 언어
Tour à tour vient à parler
우리에게 돌아오는 그 말
Esperanto
에스페란토
Et à ce jour l’espoire est né
희망으로 태어난 그 것

 

Esperanto, standpunkt unsresgleichen
에스페란토, 우리와 같은 관점
Von denen die die und nicht nur sich an der Kultur bereichern
그 혼자서만 부유해지려하지 않는 그 것
Ein Synonym für lasst hundert Blumen blühn
백송이의 꽃들을 피워나게 하는 것과 같은 동의어
Hundert schulen in rapcyphers miteinander wetteifern
랩으로된 암호 속의 백 개의 학교에서 서로 겨루는 일

 

Esperanto, antwort auf den kulturellen bankrott
에스페란토, 문화적 파산에 대한 응답
Musik ist weltsprache, keine schnelle geldmache
음악은 세계의 언어, 돈을 재빨리 만들지 않는
Esquchar el lenguache raps belcanto
벨칸토* 같은 언어의 랩을 들어봐
Fiedel dem biz wie castro die erste geige zu seinem letzten tango
카스트로같은 비즈니스의 피델의 첫 바이올린에서 그의 마지막 탱고까지

 

Esperanto, eloquente definition:
에스페란토, 설득력 있는 정의:
Ein schnellerlernter lingo zur verständigung der nation’n
국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이해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언어
Basiert auf romanisch, deutsch, jiddisch, slawisch,
기본적으로 로만어, 독일어, 이디쉬어*, 슬라비쉬,
Kein sprachimperialismus oder privileg des bildungsadels
제국주의적이지 않은 언어거나 숭고한 언어의 특권

 

Esperanto, kein manko wenn ihrs nicht gleich versteht
에스페란토, 당신들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할 때, 결점 없는 언어
Wichtiger ist dass ihr zwischen den Zeilen lest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문장의 중간을 읽을 수 있다는 것
Euch unser style beseelt fühlt was mein input ist
내 조언 따위를 너희들과 우리들의 스타일에 영감을 주는 것.
Ich sei lyricist internationaler linguist
나는 작사가였고, 국제언어 여러가지에 능통한 사람

 

Miliano soulguerillo
밀라노, 영혼의 게릴라
Der texterpartisane der letzte mohikaner
텍스트의 파르티잔, 마지막 남은 모히칸족
Am mikro, amigos, estaj representanto
아주 작은 것으로, 친구여, 대표자
Fk amikaro motto esperanto.
우리 프로인데크라이스, 아미카로, 모토는 에스페란토

 

Esperanto, c’est la langue de l’amour
에스페란토, 그 사랑스러운 언어
Tour à tour vient à parler
우리에게 돌아오는 그 말
Esperanto
에스페란토
Et à ce jour l’espoire est né
희망으로 태어난 그 것

 

Pour tous les gens de tous pays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Pour tous les gens qui sont ici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Esperanto neuf neuf
에스페란토 99
Les temps vient changer avec ce son neuf
이 새로운 것과 변혁을 일으킬 때가 다가왔다

 

Et si tu aimes ce son là
만약 네가 이 사운드를 사랑한다면,
Amikaro et déborah c’est qu’un debut
아미카로와 데보라*
Tu peut conter la dessu, tu peux conter là-dessus
그것은 시작일뿐, 당신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Nous on croit en esperanto
우리는 에스페란토를 믿고 있다
* 아미카로: 아미카로는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자원 봉사 단체로, “Amikaro” 에스페란토이며, 독일어로 “Freundekreis”, “친구들 모임”을 의미한다. 소외된 지역 사회의 참여 기회 확대와 사회 정의를 증진, 파트너 국가에서 일자리 창출및 교육 훈련, 파트너 국가 뿐만 아니라 사우스 티롤에서 시민참여, 건강증진, 서로의 문화를 학습하는 조직이다.
* 투팍 아마루 운동: 1983년 페루의 노동 운동가 출신인 빅토르 플리이어가 창설하였다. 투팍 아마루(Tupac Amaru)란 1780년 에스파냐 식민 통치에 대항한 무장 폭동을 주도하다 처형된 호세 가브리엘의 가명이다. 청년들을 혁명 전사로 양성하여 정부 요인 암살, 외국 기업인 납치 및 암살 등 전형적인 도시 게릴라 활동을 펼쳤다. 최근 핵심 간부들이 차례로 사살되거나 투옥되고, 알베르토 후지모리 정부의 소탕 작전이 강화되면서 1995년부터 본거지를 볼리비아로 옮겨 활동하고 있다.

레닌주의를 신봉하고 쿠바의 카스트로 혁명 운동을 추종하는 이들의 목표는 부패한 정부를 전복시켜 노동자·농민이 통치하는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창설 당시 대원의 숫자가 1,000여 명이 넘었으나 지도자를 비롯한 대원들의 투옥 이후 세력이 위축되자 현재는 페루 중심 지역의 정글 지대로 잠입한 상태이다.

1992년 일본계인 후지모리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이후 강경한 테러 진압 정책에 대항, 1996년 12월 17일 세계 최대의 외교관 인질 납치 사건으로 기록된 페루 주재 일본 대사관 점거 사건을 벌였다. 게릴라 30여 명이 일본 대사 관 정문을 무혈 진입하는데 성공, 파티장으로 접근하여 한국 이원형 대사를 비롯한 페루 각료 3명 등 40여 명의 주요인사를 인질로 억류하였다. 석방 조건은 형무소에 투옥되어 있는 MRTA 지도자와 동료 게릴라 5,000명의 석방과 몸값 지불이었다.

1997년 4월 23일 오후 4시 6분 후지모리 대통령은 페루 특공대원 150여 명을 전두지휘하여 인질 구출작전에 성공, 인질 71명을 구출하였고 인질 1명, 게릴라 14명이 사살되면서 이 사건은 발생 126일만에 막을 내렸다.
* 0711: 슈튜트가르트의 슬랭
* 링구아 프랑카: 혼종(混種) 언어(어원적으로는 Frankish Language에서 옴). 프랑스어, 스페인어, 그리스어, 터키어가 이탈리아어와 섞인 언어.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 무역상들이 쓰던 언어. 여기서 어떤 언어든 다른 나라 말과 혼합된 언어를 일컫는다. 이런 의미에서 그 언어는 어느 한쪽 사람의 모국어이거나 또는 제3의 언어이거나 상관이 없다. 좁은 뜻에서는 어느 한쪽의 모국어도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양쪽 국어가 혼합되고, 문법이 간략한 언어를 말한다. 이 언어를 피진어(pidgin)라고도 하며, 피진잉글리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링구아프랑카라는 명칭은, 십자군시대에 레반트지방에서 사용되던 프로방스어를 중심으로 한 공통어에서 유래한다. 식민지시대 이후 세계 각지에서 많이 생겼다.
* 팝콘서빙: 음악가들이 음악에 전념하지 못하고, 라디오와 티비에 들락거리는 것을 비판하는 슬랭
* FK: 텔레비젼 카메라
* 벨칸토: 매끄럽고 부드러운 창법을 중시하던 19세기 오페라 스타일
* 이디시어: 원래 중앙 및 동부 유럽에서 쓰이던 유대인 언어
* 데보라: (Deborah)는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제 4의 판관으로

Grauzone – Ich lieb Sie with korean translate

 

Ich lebte hinter Gitterstäben,
나는 바 뒤편에 살았어요,
dann kam sie, ich begann zu leben.
그녀가 오고나서부터 나는 살아가기 시작했죠.
ich träumte in der Dunkelheit,
나는 어두운 곳에서 꿈을 꾸었고,
auch von diesem Übel hat sie mich befreit.
또한 이 악으로부터 그들이 나를 자유롭게 했죠.

 

Oh, ich lieb sie,
오, 당신을 사랑해요,
Oh-oh-ohah, ich lieb sie!
오-오-오아, 당신을 사랑해요!
Oh-oh-ohah, ich lieb sie!
오-오-오아, 당신을 사랑해요!
Oh-oh-oh, ah, ich lieb nur sie,
오-오-오아, 난 당신을 사랑할 뿐이고,
nur sie, nur dich!
단지 당신을, 단지 너만을!

 

Ich lebte hinter Masken,
나는 가면 뒤에 살았어요,
sie hat sie mir zerrissen,
그것이 날 염세적으로 만들었고,
das war sehr nett von ihr,
그건 그녀로부터의 크나큰 친절이었어요,
mein ganzes Herz schenkte ich nur ihr.
나는 내 가슴 속의 모드 마음을 그녀에게 주었죠.

 

Oh, ich lieb sie,
오, 당신을 사랑해요,
Oh-oh-ohah, ich lieb sie!
오-오-오아, 당신을 사랑해요!
Oh-oh-ohah, ich lieb sie!
오-오-오아, 당신을 사랑해요!
Oh-oh-oh, ah, ich lieb nur sie,
오-오-오아, 난 당신을 사랑할 뿐이고,
nur sie, nur dich!
단지 당신을, 단지 너만을!

 

 

Dann sagte sie ein Wort
그녀는 단 한마디를 나기고,
und schon war sie fort.
이미 떠났어요.
ich stürzte und ich fiel
나는 파멸되고, 파멸을 느꼈고,
und ich schrie:
나는 소리쳤죠:
ich begreif das nie,
납득 할 수 없다고,
ich begreif das nie
난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Ich lieb sie)…
(난 그녀를 사랑해요) …
Komm gib mir deine Hand
이리와, 내게 손을 내밀어 주세요
Wir gehen zusammen ins Wunderland
우리 원더랜드에 같이 가는거에요
Da gibt es nur Honigbäume und Marmelade
그 곳엔 단지 꿀나무와 말메이드 잼만이 있을거에요
Komm gib mir deine Hand
이리와, 내게 손을 내밀어 주세요

메갈리아4 페이지 답변에 대한 답변

메갈리아 4페이지의 답변: 링크

 

 

메갈리아4 휴, 제가 댓글을 두어개 달면, 저를 향한 댓글 열 몇개가 달리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던 찰나에 댓글 감사합니다. 성적 대상화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국정교과서에서 핵심은 한국극우가 일본극우에게 지령을 받아 충성을 하거나 무릎을 꿇는게 아니라, 한국극우가 자신이 저지르거나 가담한 과오를 국론 통합이란 명목하에 단일화 하여 덮는게 핵심입니다. 현재 나오는 기사들 대부분이 그 지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여성의 남성에 대한 블로우잡만으로 성적 대상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헤테로섹슈얼의 작가가 남성새마을이 여성일본제국주의에 커닐링거스하는 포즈를 취했어야 올바른 정치적 풍자였나요?

 

1950년 대 당시 미국사회는 백인과 흑인의 구분이 뚜렷하여, 버스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벤치 같은 공공시설물의 이용조차 백인과 흑인의 전용칸이 따로 존재했습니다. 흑인들을 백인으로부터 격리하기 위해서 말이죠. 1955년 12월,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버스 안의 흑인칸이 만석이되어 백인 전용 칸에 앉을 때, 버스 기사는 그녀에게 ‘흑백 인종분리법’ 의거해, 흑인 전용 칸으로 옮겨가라고 합니다. 이 사건이 민권운동의 시작이 됩니다.

 

말콤X 당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블랙파워운동 내부에서도 흑인들의 백인들, 다시말해 무고한, 다시말해 흑인차별에 가담하지도 않은 불특정 대상의 백인들을 향한 일부 블랙파워들의 테러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그 맥락을 제외하시고 제 역사적 이해가 부족하다고 하시면, 제가 무슨 말을 드려야 할까요?

 

여성전용공간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한 메갈리아4에 깊은 유감을 느낍니다. 다시 이야기 드리자면, 여성전용공간은 헌법과 인권선언문에 명시된 “누구나 어디에서나 안전할 자유” 역설적으로 제약하고, 여성들은 ‘여성전용’공간에서만 안전할 자유가 있음을 말합니다. 또한 범죄자들에게 범죄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저희가 아무리 주차장에서 여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말라고 운동을 해도 그러한 운동이 효과가 보일때 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이 시간 내에서 잠재적 피해자들의 안전을 보장을 할 수 있는 노력은 필요하고 그러한 최소한의 노력이 여성주차장 같은 결과들 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매우 이상한 답변입니다. 지금 메갤에서 경찰서나 관할관청을 상대로 안전권보장에 대한 요구를 하고 있나요? 전용공간은 아니지만, 경찰은 이미 요청하는 여성들에 한하여 안심귀가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주차장내 치안 시설 확충및 기준 강화를 요구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여성전용시설을 요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는 역차별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고, 역차별을 떠나 여성이 전용공간이 아닌 곳에서 안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언하는 꼴이 됩니다.

 

이는 헌법이나 인권선언문은 물론이고, 페미니즘의 이론에서도 매우 동떨어진 논리며, 내재된 기제는 마초이즘과 젠더롤에서 “여성은 약하고, 피해자다. 보호의 대상이다”와 같은 논리가 됩니다. 또한 이는 3세대 페미니즘의 기폭제였던 Riot Grrrl 무브먼트의 선언문에서도 선언된 “BECAUSE we are angry at a society that tells us Girl = Dumb, Girl = Bad, Girl = Weak. 왜냐하면,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소녀는 멍청하고, 소녀는 질이 떨어지며, 소녀는 약하다’ 라고 규정하는 편견에 맞서 사회에 분노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를 완전히 뒤집는 행동입니다. 오히려 반여성주의적인 요구라는 말입니다. 2세대, 3세대 페미니즘 투쟁사만 보셔도 ‘여성전용’이라는 이것을 넘으려고 얼마나 많은 투쟁들이 있었는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특수성을 이야기하신다면, 결국 그 논리는 아랍여성은 아랍의 문화적 특수성으로 아랍여성은 서구여성, 혹은 아시아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기본권을 보장받는, 이를테면 아랍남성에 의한 아랍여성의 구타가 온당하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같은 말로, 한국여성은 서구여성보다 상대적으로 제약된 기본권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하는 셈입니다.

 

한국에서의 여성혐오, 여성차별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고착화된 사회의 병폐입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하지만, 오늘에도 심각한 사회의 한 축입니다. 이것을 현상으로 접근하여 투쟁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1871년 보불전쟁 이후부터 2차대전까지의 1세대 페미니즘 투쟁사를 통해 실질적으로 여권신장이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독일에서는 바이마르에서 남녀임금에 대해 동일임금, 동일노동 시도가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의회에서 여성참정권이 통과되었습니다. 2차대전 직후의 2세대 페미니즘부터는 여성도 남성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한 이들이 학생운동과 68혁명과 만나면서 실질적인 현대국가의 여성권리신장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70년대에는 차별을 조장하는 단체, 정치인들에 대한 테러그룹까지 결성되었습니다. 3세대 페미니즘, 80년대부터는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와 녹색정치운동이 연대하고,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면서 그리고, 3세대 페미니즘의 기폭제라고 할 수 있는 Riot Grrrl 무브먼트가 91년 선언되면서 전방위로 오늘 날의 여권신장이 이루어졌습니다.

 

약 150년 간의 이야기를 다 아시리라 생각함에도 다시 이야기 드리는 이유는 메갤에서 여성혐오사례뿐만 아니라 학습과 조직운동을 해야한다 이야기 드린 겁니다. 심각한 성차별이 뿌리 깊은 한국에서 페미니즘운동이 시작된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부의 외국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면서도 앞선 페미니즘 투쟁사에 대해서는 한국만의 특수성이라 페미니즘 일반론에서 다뤄지는 투쟁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착한 남성’이 여성에게 선물하는 배려나 동정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이것은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흑인들이 차별을 받으면서도 미국사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동시에 ‘착한 백인’들이 주는 배려나 동정이 아닌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은 차별금지법을 이끌어내고, 참정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도 일어나는 흑인에 대한 차별에 대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메갤이 지금 theory와 praxis 간의 괴리라고 하는 것은 페미니즘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투쟁은 쉬워보이는 것을 하는게 아니라, 원래 주어지지 않았지만 당연히 받아야할 것들을 싸워서 쟁취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메갤의 포스팅에서 전체 남성에 대해 일반화 시켜 만드는 사례들이 보입니다. 또한 여성전용이라던가의 논리는 여성을 약자화 시키고 페미니즘을 무력화 시키는 대표적인 젠더롤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나 자기반성이 없다면, 메갤을 누가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Riot Grrrl 선언문에서도 다루어졌듯이 우리는 언제나 비판적 지지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하여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거 아닐까요.

 

저는 메갤이 아직도 페미니즘 운동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68이후, 독일에서 전설적인 좌파, 아나코 밴드이자 국민밴드가 된 Ton Steine Scherben의 노래 Der Traum Ist Aus는 경찰들과 대치하는 바리케이트 최전선 앞에서 많은 젊은이들의 목청을 통해 소리 높여 불리어졌습니다.

 

“꿈은 끝나고 말았네. 꿈은 끝나고 말았어. 하지만 그 꿈이 확실해질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것이라네. 하지만 그 꿈이 확실해질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것이야.”

 

꿈을 현실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 꿈은 영원히 갖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말테니까요.

 

말이 길었습니다. 성의있는 답변 감사하고, 앞으로도 서명이라던가 혐오게시글에 대한 신고 같은 포스팅은 함께 하는 것이 더 실력행사에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한혜연 제 글을 읽고, 링크를 보내주신건가요? 판단이고 자시고, 글을 읽고 대답해야 기본적으로 대화가 될거 아닙니까.

 

Jiyeon Woo 완충지대라는 말 흥미로운데요.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이란 아이디어에 역행하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그런데 여성전용은 여성주의에 반하는 아이디어고, 여성주의가 그동안 오랫동안 철폐하려고 해온 것입니다. 이를 테면 “난 남자니까 축구를 할테니, 넌 여자니까 응원을 해.” 같은 것 말입니다.

 

저는 할당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독일의 경우는 아직 여성의 사회진출이 남성에 비해 어려워 여성할당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 같은 경우는 정부에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많이 일하고 있어 시행하고 있지 않기도 합니다. 제가 함께 일하는 쪽에서는 굳이 정확한 인원을 5:5로 맞추지는 않지만, 새로운 인원이 들어올 때, 균형을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여자가, 가끔은 남자가 더 많기도 하죠.

 

저도 댓글 중 일부를 보고 부아가 치밀었고, 작가의 허술한 답변에 실망을 했습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 비판은 모르겠지만, 블로우잡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처럼 다루는 것은 여성주의와 상관없고, 오히려 성에 있어 여성을 하대하는 원인이 되죠.

 

독일은 포르노 박람회가 있고, 매춘부들이 보험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위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섹시즘에 있어서도 통일된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에 천하다 말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노동자로서 기본적으로 누릴 권리를 말합니다. 구강성교는 ‘남자 아랫 것들’ 이란 인식은 지금 지연씨께서도 갖고 계신 것 같군요.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당당히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라고 가르쳐야하는게 올바른 성인식 아닌가요?

 

미러링은 안된다고 이야기 한 적 없습니다. 하지만, 미러링이 전술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와 부작용에 대해서 생각도 안해보고, “미러링이 전술이다”라고 택하시면 저는 대체 페미니즘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는건가 의문이 생깁니다.

 

한국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뒤쳐지니, 한국의 여성은 페미니즘이 말하는 기본권을 부분적으로 제약 받아도 되나요? 그게 한국여성은 서구여성만큼 존중 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과 뭐가 다르죠?

 

제 글을 잘 안 읽어보신 것 같은데, 저는 우범지역에 치안강화, 이를테면 cctv나 안전요원 추가 배치를 요구해야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미 요구하는 여성들에 한해 안심귀가서비스를 경찰이 하고 있고, 때문에 치안을 확대시켜달라고 해야지, 여성전용 시설을 만들어서, 마치 그 외 시설에서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덜 안전해도 된다는 관념을 심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페미니즘의 기본 아이디어인데 대체 몇번째 반복해서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cctv 반대를 한적도 없는데, 글을 다시 한번 읽고 답변 주시면 좋겠습니다.

 

문화에 따라 맞춰야 한다는 말은 아프리카 소녀들은 전통에 따라 강제로 할례를 하고, 이슬람여성은 이슬람남성에게 맞아도 된다고 하는 것이며, 이슬람여성이 자동차 운전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씨를 갖을 수 없었지만, 여성은 더욱이 이름조차 가질 수 없었습니다. 문화적 차이가 크니 지금에 만족해야 하나요? 오히려 헌법과 인권선언문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보장해달라 해야 합니다. 지금 이슬람의 여성작가들이 페미니즘이란 화두로 어떤 작업을 하는지 아시나요? 이슬람여성을 조금이라도 배려하자는게 아니라, 이슬람여성에게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달라 접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원에 접근하면 위험한 상황이 될지도 모르는데, 기본권은 단계별로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보장받아야하는 기본권리니까요.

 

한국은 아직 미개해서 한국여성의 기본권은 단계적으로 보장 받아야한다고 말씀하시면서 페미니즘을 동시에 요구하는게 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런 생각이 인종차별적이란 생각까진 안 해보셨나요?

 

싸워서 쟁취하지 않는 이에게 갑자기 그걸 선물처럼 주어지는 권리는 없습니다. 페미니즘 투쟁사 뿐만 아니라 흑인들의 민권 운동이 그랬구요.

 

긴 답변 감사합니다만, 제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답변 주셨으면 합니다. 메갤에 제가 댓글 두세개를 적으면, 절더러 여혐이라며 열개의 공격적인 댓글이 달리는데, 최소한 댓글을 읽고 답변을 주시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저는 베를린에서 페미니스트로써 활동할 뿐이지, 모든 질문에 24시간 대기해서 대답을 하는 상담원 같은게 아닙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저는 이제 제 일을 하러 가야겠습니다.

정어리 – 91

“나는 진실되니 아무 말 말고, 믿고, 지지 해달라”는 식의 ‘감정에 호소하는 아마츄어리즘’은 체제가 휘두르는 폭력과 다를 바 없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게도 진실된 동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가려내는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이 갈등이 어디서 시작되는 지를 바라보고 이야기 해야한다.

 

 

ㅡ 2015년 10월 14일 이른 새벽, 폭력에 대하여..

메갤저장소의 역사적 오류, 그리고 전쟁과 페미니즘

 

메르스 갤러리가 스스로 학습하고 조직해야한다고 이야기 했던 이유가 여기 또 있다.

 

 

문제의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글: 링크

EBS 이다지 강사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

Posted by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on 2015년 10월 12일 월요일

 

이 강사의 내용은 조금도 헛소리 아니다. 굉장히 역사적인 사실이고, 현재에도 페미니스트들이 여성권리를 위해 포기하지 않는 내용이다. 이것은 군수산업과 궤를 같이하는 내용 또한 아니다. 당신이 만약 유럽 페미니스트 친구가 있고, 세계 페미니즘 투쟁사, 아니 그 중 유럽 페미니즘 투쟁에 대한 관련 역사사실부터 찾아본다면 저 강사를 비난할 수 없다. 내가 거주하는 독일에서는 여성이 먼저 자원입대하고, 육체노동으로 하는 산업분야에 진출해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요구한게 사실이다. 한번 확인 해보지도 않고, 유럽에서 혹은 서구에서 굉장히 차별적인 발언으로 간주되고 문제 될거라고? 지금 역사 책 안 들여다보고 사실 왜곡하는게 메갤의 이 포스팅인데. 페미니즘 역사 깡그리 무시하고, 여성은 보호 받을 권리만 있다고 외치면, 누가 한국의 페미니즘을 지원할까?

 

당신이 만약 반전주의자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며, 남성들의 강제징병에 의한 병역복무를 반대한다면, 여성들이 입대하지 않고도 권리를 보장 받아야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들의 강제징병은 찬성하거나 방관하면서도 여성들은 병역복무할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반전뿐만 아니라 노동의 영역에서도 직업의 귀천없이 독일의 여성들처럼 굴뚝청소부, 배관공, 전기공 등이 되길 거부하질 않거나, 오히려 권리를 주장했다면 모를까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이유에서 권리가 아니라 특권을 보장 받고자 하는 것은 페미니즘에 역행하는 논리적 오류이다. 참고로 여성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육체적 차이가 아닌 이상, 유럽의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이 육체적 노동을 한다.
* 참고로 나는 겨울 난로에 땔, 우드블럭 10톤을 지하에 넣을 때, 여자친구들에게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가 여성을 약자화 시키지 말라며 오히려 여자친구들에게 핀잔을 들었다. 가장 화냈던 친구는 키가 160도 안 되는 작은 체구임에도 늘 항상 스스로 동기부여를 잘하며,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는 친구이다.

 

+ 추가: 문제의 짤방에서 경계해야하는 것은 ‘여성이 지금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어 권리를 누리지 못 하는 것’과 같이 곡해되어 여성혐오 논리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를 올바로 잡아야 한다. 여성이 군대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실 전투비효율로 하여금 여성을 차별하는 한국 남성과 국방부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 <리버타리아스, Libertarias>, 1996의 한 장면.
“왜 우리들이 싸우길 원하는가!”

해당 영화의 한글 위키페이지나 한국 웹에서 소개된 바 없는 점이 아쉽지만 해당 위키(https://en.wikipedia.org/wiki/Libertarias)를 보면, 스페인 내전은 아나키스트들만의 투쟁이 아니었고, 군사파시즘에 저항하고, 여성권리를 위한 것이었다. 또한 3만명이 넘는 여성노동자 그룹, ‘자유여성’이 이 전쟁, 혹은 투쟁에 전면적으로 참전, 혹은 참여하였다.

 

더군다나 스페인 내전 역사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저 강사를 비난할 수 없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남성 아나키스트들은 “신체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 여성 아나키스트들을 후방에 배치하자”고 하자, 여성 아나키스트들이 자신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파시스트 프랑코군과 싸우기 위해 전장에 나섰는데, 겁장이 남성 아나키스트들은 자지를 떼고 후방에 가라”고 외친다. 그리고 이 여성 아나키스트들은 모두의 권리를 위해 함께 최전선에서 같이 싸우다 전사한다.

 

당신이 만약 반전주의자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며, 남성들의 강제징병에 의한 병역복무를 반대한다면, 여성들이 입대하지 않고도 권리를 보장 받아야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들의 강제징병은 찬성하거나 방관하면서도 여성들은 병역복무할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한국의 징병제는 널리 알려진대로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 성은 의무에서는 자유로워지고, 권리만을 요구하며, 특정 성만이 어떤 의무를 책임질 수 는 없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주장은 권리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특권이기 때문이다.

 

1871년부터 ‘자유, 박애, 평등’을 내걸고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의 프랑스 제 3공화국, 그리고 프랑스의 페미니스트들 대부분은 반전주의자가 아니었고, 참전을 기피하기는 커녕 남성들과 함께 참전하며, 동등한 권리를 외쳤다. 이로인해 1919년 여성의 참정권이 의회를 처음으로 통과하지만, 실제 여성권리 향상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고, 2차대전이 끝나가면서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기 시작했다.

 

독일의 경우 전쟁에서 패전하면서 안타깝게도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이 다시 명확히 되는 불운한 시기를 맞았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여성도 남성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한 독일 패전 직후 세대들은 60년대에 드러서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학생운동과 함께 모멘텀을 회복했다. 70년대 들어서는 낙태합법화, 피임 등을 주장하며 페미니스트들의 테러조직을 결성하기도 했으며, 80년대는 독일의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 태동기와 80년대 디스코 씬의 LGBT들과 함께 연대를 했다. 그리고 90년초 통독 이후 독일은 동성혼을 사실상 합법화 시키며 여성의 권리는 물론, 성소수자들의 권리까지를 법적으로 보장했다. 특히나 80년대 독일의 페미니스트들은 당시 체르노빌 사고 이후, 더욱 격렬해진 유럽의 녹색운동과 만나 연대 투쟁을 했다. 유럽의 페미니스트들은 계속 투쟁해왔으며, 또한 노동자, 환경, 교육 등 다양한 이슈에 연대투쟁 해왔다. 30~ 40년 전, 점거운동이 격렬히 일어났던 함부르크의 하펜슈트라쎄에는 독일의 좌파운동조직인 안티파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 바로 같은 동네에 함부르크의 명물인 성매매촌이 있으며, 독일의 좌파와 페미니스트, 성노동자들은 서로의 권리를 위해 연대하는 관계이다. 참고로 함부르크는 중산층 좌파의 도시로서 항구도시로서의 무역 이외에도 섹스관광이 도시의 주요 산업이기도 하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숱한 전쟁들과 함께 어떻게 페미니즘이 성장했는지를 보면, 거의 모두 좌파-노동운동과 전쟁에 남녀가 함께 참전하면서 성장했다. 이에 대한 책과 논문들은 너무 많아서 구글링을 살짝만 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 것이 1세대 페미니즘 운동과 결을 같이하고 있으며, 또한 68혁명 이후를 기점으로 유럽에서 오늘날 민주사회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국가의 모습과 함께 여성참정권, 여성인권이 향상 되었다. 이것이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이다. 마지막으로 3세대 페미니즘 운동이 80년부터 시작되어 아나키즘 같은 급진사상과 펑크와 코믹, 비상업영화 등의 하위문화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3세대 페미니즘 운동이 퍼져나갔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3세대 페미니즘 운동으로서, 주디스 버틀러와 같은 페미니즘, 퀴어, 성담론 학자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요즘 메갤에서 뿌려지는 이상한 것들을 보면 누가 대체 페미니즘 역사를 뒤트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페미니즘을 뒤집고, “여성은 약하다”라며 젠더롤을 하면서 어떻게 여권신장을 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에 국외 페미니스트 단체들과 연결되어 대화를 나누며 연대를 하는 곳이 있긴 한지 궁금하다. 이러니까 국제연대 투쟁에서 한국은 맨날 바보 취급 받는 것 같기도 한 좌괴감 마저든다. 평소 여성운동, 좌파운동하신다는 분들이 어떻게 기본적인 투쟁사마저도 왜곡해서 읽고, 오히려 투쟁사를 거꾸로 돌리는 일을 한단 말인가? 이들의 반지성주의나 패거리주의, 소영웅주의에 질려버릴 것 같다.

 

링크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아나키스트들을 다룬 영화 리버타리아스다. 간단한 영어자막이 있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씬이다. 여성 아나키스트들이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지 말라며 남성 아나키스트들에게 큰 소리를 높였던 그것 말이다.

 

한국에서 자칭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사람들 유럽와서 페미니즘 운동하는 활동가들이랑 만나서 조금만이라도 대화해보면 다 멘붕빠지고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과 별개로 익명이니까, 책임의 주체가 없다는 식의 말 돌리기는 일베랑 메갤을 같은 급으로 만드는 것 뿐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조직화해서 여성인권에 대해 소리 높여야 연대도 강화될 것인데, 본인들도 이해는 커녕, 이미 활자화된 페미니즘 투쟁 기본이론 마저도 이해 못하고 ‘보호만 하면’ 여성권리가 신장 될거라고 생각하니 화가 난다. 이젠 메갤 정 떨어지는게 아니라, 이들 때문에 여성권리가 제약 받을까 화가 나는 마음을 짧게나마 적어보았다.

 

“나는 진실되니 아무 말 말고, 믿고, 지지 해달라”는 식의 ‘감정에 호소하는 아마츄어리즘’은 체제가 휘두르는 폭력과 다를 바 없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게도 진실된 동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가려내는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이 갈등이 어디서 시작되는 지를 바라보고 이야기 해야한다.

 

지금 매겔에게 우리 모두의 평등과 권리를 위해 스스로 학습하고, 조직하자고 하는 것이 왜 어려운 일이고 금기가 되어야 하는 일일까. 모두가 평등과 권리를 보장 받아야한다며, 페미니즘에 연대하려는 이들의 손을 내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다시 한번 말하건데, 본인은 페미니스트이며, “아몰랑~”이라던가 ‘김치녀’ 같은 단어로 여성을 혐오로서 조롱하는 멍청이들에 조금도 동의 하지 않는다. 어디 숨어서 여성혐오를 흩뿌리며, 서구세계를 동경 하는데, 그와 같은 여성혐오는 서구세계에서 그나마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

+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한 글이지, 여성혐오에 동의하는 글이 아닙니다. 해당 포스팅에서 여성을 혐오하고, 비하하는 댓글들이 보이는데, 그런 여성혐오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dx3 페이지는 페미니즘에 연대합니다.

정두리, 아이유-장기하 커플에 대한 매질에 붙여

 

아 물론 ㅆㅅㅌㅊ 단어사용은 미러링인거 다들 아시겠죠? ^^ 사실 아이유가 한국에서 독보적인 미소녀이자 음악가라고 생각하는건 맞아요.@durimimi

 

아이유-장기하 커플에 매질을 한 정두리, 그리고 메갤에 관련해 정리해봤습니다.

 

나는 애초에 젖은잡지부터 일본의 낡은 것을 그대로 모사한 촌스러운 것이라 했다. 정두리씨가 조금도 페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그는 남성팬과 페미들 사이에서 묘한 접점을 두고 소비되길 바랐다. 그런 그를 페미로 여겼던 사람들이 멍청한 것일뿐.

 

하지만, 미러링이라느니 이따위 변명은 그런 그를 더 낡고, 촌스러운 것으로 스스로를 소환한다.

 

메갤 이후에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청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왜 메갤이 스스로 학습하고, 조직해야하는지 이런 기회를 통해 스스로의 위치를 파악이라도 해야할 것이다. ‘무조건 여성을 보호만 하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엉터리 페미니스트들이 너무 많다.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면서 스스로를 젠더롤에 끼워 맞추는 멍청이들 또한 너무 많다.

 

권리는 누가 선물처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왜 주지 않냐고 불평, 불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권리의 주체로 두어 쟁취해낼 때 갖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두리, 혹은 메갤의 어떤 이들은 페미니즘 운동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미국에서 민권운동, 흑인인권운동을 하던 이들이 그랬다. 그들은 ‘착한 백인’들이 그들의 권리를 선물처럼 가져다주길 원하지도 않았고, 불평, 불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권리의 주체로 두어 쟁취해나갔다. 이들이 원한 것은 착한 백인들의 호의나 배려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든 갖고 있는 기본권리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1950년 대 당시 미국사회는 백인과 흑인의 구분이 뚜렷하여, 버스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벤치 같은 공공시설물의 이용조차 백인과 흑인의 전용칸이 따로 존재했다. 1955년 12월,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버스 안의 흑인칸이 만석이되어 백인 전용 칸에 앉아 있었다. 버스 기사는 그녀에게 흑인 전용 칸으로 옮겨가라고 하였으나 흑인 전용칸은 만석이었기에 그녀는 옮겨갈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흑백 인종분리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1964년 미국의회는 인종주의 성향의 남부 출신 보수우파 상원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권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교육,주택, 접객업소, 직장등에서 흑인차별을 금하는 것이었다. 민권운동가들은 투표권에 주목했고 1964년 6월 미시시피 자유여름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에는 무려 천여명의 백인 대학생들이 흑인의 유권자 등록을 돕기 위해 미시시피로 내려왔다.

 

1965년에 이르서야 연방 투표권법이 통과되었다. 존슨 대통령의 법 서명식에 마틴 루터 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 법의 주요 골자는 미국 수정 헌법 제15조에 반향하여 이 법안은 주와 지방 정부로부터 선거 자격을 한정하거나, 투표에 필요한 요건, 표준, 관행, 또는 절차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시킨 법안으로 인종이나 얼굴색 때문에 미국의 시민의 권리로 선거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정하거나, 줄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 법의 중요한 집행 수단으로는 역사적으로 흑인 참정권을 방해했던 주들이나 군들이 선거법이나 정책을 변경하려 할 경우 연방 법무부나 연방법원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게 되었다.

 

메갤을 긍정적으로 봐오다 결국 돌아서게 되었다. ‘페미니스트 남자를 만나는 방법‘이란 글 때문이다. 이 글은 마치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착한 백인을 만나는 방법’과 같은 글과 다를바 없어 무척 화가 났다.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대한 풍자나 조롱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 글은 진심으로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착한 백인을 만나는 방법’과 다를 바가 없다.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조건에 부합하면서 더더욱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글쓴이가 비열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풍자가 아닌 이상, 이 글의 구조는 젠더롤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쓴이는 무어라 변명할텐가? 우리는 “우리는 단지 가련한 피해자이기 때문이에요.”라고 스스로를 약자화 시킬텐가? 페미니스트 남성의 보호를 받고 싶어하는 여성으로? 아마 글쓴이는 스스로를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기고 있겠지. 이 글이 페미니즘이 가려는 길을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한가지만 묻고 싶다.
“남의 섹스, 남의 연애사에 관심 좀 끄고 사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 나무위키 ‘흑인인권운동’ 참조

 

+ 함께 읽기를 권하는 글

1: 여성권리: 매갤과 데이트 폭력 사태를 목도하면서

2: 페미니즘 논쟁과 메갤, 디스라이크

페미니즘 논쟁과 메갤, 디스라이크

오늘 아침 읽은 두 글로 하여금 앞으로 메갤과 디스라이크는 구독 대상에서 뒤로 밀쳐지게 될 것이다. 두 매체?! 모두 결과가 뻔히 보이는, 지금까지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진부한 이야기를 반복하기 때문인 요인이 가장 크다.

1. 링크된 메갤의 ‘페미니스트 남자를 만나는 방법
– 읽으면서 본인이 글에 완전히 부합될 때마다 메갤이 더욱 역겨웠다. 일전에 손이상이 ‘메갤은 걸펑크’라는 포스팅을 하였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메갤의 등장을 반겼는데, 이후의 메갤 행동들을 보면서 조금도 걸펑크, 라이엇걸 등은 물론이고, 페미니즘 운동으로서의 꿈도 꾸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결국 일베가 여성이 혐오 대상이 될만한 사례를 수집하고 낄낄대고 여성을 증오하는 것을 미러링해, 메갤은 남성이 혐오 대상이 될만한 사례를 수집하고 낄낄대고 남성을 증오할 뿐이다. 서로를 증오하다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다른 배경을 가진.. 배다른 형제, 자매라고 해야할까.

내가 계속해서 여성이 피해자, 약자 프레임으로 들어가면 안된다고 하였던 이유 중 일부가 여기에 있다. 아무튼 메갤에 몆몇 페미니스트가 있을지 모르지만, 메갤의 행동은 페미니즘과 전혀 상관없다.

또한 본 글쓴이가 정말 페미니스트 남성만을 만나기 위해 페미니스트 남성을 일반화 시키고, 유형화해 도구로 다룬지를 생각해보면, 글쓴이가 정말 페미니스트인지도 의심이 든다. 이 글의 내용은 마치 10대 소녀 잡지에 나오는 전형적인 남성에 대한 판타지, 혹은 젠더롤과 다를 것이 무엇일까 싶다. 혹여라도 반박을 하고 싶다면, 왜 저 글이 성평등을 요구하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이어야하는지 설명을 해달라. 저 글쓴이가 자신이 한국의 스탠다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을 굳히고 있을걸 생각하니 정말 머리 끝까지 화가 난다.

만약 이 글이 여성혐오자들을 비꼬기 위해서 작성되었다 하더라도 여성혐오를 풍자하는 부분이 분명히 드러나야 함에도 여성혐오를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페미니스트 남성(심지어 자신들이 롤을 쥐여준)을 유형화, 혹은 분류해내 교제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명료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 10월 9일 추가: 이 글은 마치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착한 백인을 만나는 방법’과 같은 글과 다를바 없어 무척 화가 났다.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대한 풍자나 조롱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 글은 진심으로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착한 백인을 만나는 방법’과 다를 바가 없다.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조건에 부합하면서 더더욱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글쓴이가 비열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풍자가 아닌 이상, 이 글의 구조는 젠더롤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쓴이는 무어라 변명할텐가? 우리는 “우리는 단지 가련한 피해자이기 때문이에요.”라고 스스로를 약자화 시킬텐가? 페미니스트 남성의 보호를 받고 싶어하는 여성으로? 아마 글쓴이는 스스로를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기고 있겠지. 이 글이 페미니즘이 가려는 길을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2. 디스라이크, 이진호씨의 글 ‘‘군대폭력’ ‘발 끝’에서 쭈뼛 선 ‘머리 끝’까지
– 진호씨는 이 글을 스스로 소개하면서 “첫번째로 기본적인 대우도 받지 못하는 병사들의 처우개선을 주장할 계획이고, 둘째로 솔직히 제대로 갔다오지도 않은 새끼들이, 혹은 안가려고 발악한 것들이 쌉쳐대는 꼬라지에 꽤나 큰 엿같음을 풀고 있었었음’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짧게 정리된다.

병사들의 처우개선이라면, 당연히 숙고 되어야 하는 문제이나 결국 글 내용에서 자신의 병영생활이 이야기 되는, 한국 남성들의 술자리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자신의 병영생활기’가 나열 되었고, ‘어떻게’라는 내용이 결여된채 ‘국방부의 개혁’ 이야기가 나왔다. 이 이야기는 군대 내 폭력사건만 터지면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국방부가 하는 이야기와 꼭 같다. 개혁 디테일을 짜기에 앞서 ‘어떻게’라는 구조적 내용이 전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일본인들은 한국의 징병제도를 노동착취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진호씨의 두번째 이유는 모든 디스라이크의 관점, 적어도 군문제에 대한 디스라이크의 신뢰를 떨어트렸다. 결국 군문제는 현실의 문제, 존엄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여러 매체와 인터넷 공론장에서 다뤄진 감정싸움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최근 두 매체의 글들을 계속 읽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두 글을 통해 더이상 신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읽기를 그만둘 생각은 아니다. 소설 또한,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구조를 갖추고 있듯 모든 이의 서사가 결말에 이르러 마지막장을 만들 때까지는 책을 덮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과로 탓에 계속 빈혈증세, 비강출혈이 반복되고, 심지어 실신 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오히려 쓰고 싶은 글이 억지로 옷을 밀어넣은 여행가방만큼 많다. 그런데 랩탑이 아직도 수리중이니, 머리를 식히면서 뒤로 미루는 수 밖에.
책상 위 한가득 메모만 수북히 쌓여간다.

 

 

ㅡ 이 글은 2015년 9월 4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정어리 – 90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 가서 펑크로 살 수 없다면, 너는 펑크라 불리우는 그따위거 하지마. 너한테는 그런거 필요 없어. 친구들끼고 펑크왕 놀이 하지마. 너 혼자서 할 수 없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거야. 그건 운명을 거스르는 일도 아니고, 그냥 네가 네 자신을 속이며 시간 낭비하는거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시간 낭비하지마.

 

부탁인데, 내가 없는 곳에서 날 비난을 할 때는 지금까지 하던 것보다 좀 더 크게, 최선을 다 해서 날 폄훼 해줘. 그렇게 없는 말을 지어서라도 말이지.

 

ㅡ 2013년 10월 5일, 오후 1시 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