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간 나는 무얼했나.
수요일은 밤새 친구들과 이야기로 보내고, 목요일은 zk/u에서 잠시 있다 돌아오려했지만 길어진 이야기로 밤을 보내고, 금요일은 스탭들, 작가들, 요정들과 함께 먹을 요리를 하고 밤을 지샜다. 토요일은 super flu를 보러 ipse에 갔다가, 일본 친구들과 함께 urban spree에서 아침까지 달렸다. 일요일엔 쉬려고 했지만, 인터뷰 계획이랑 몇가지 밀린 일 정리를 마치고선 저녁에는 월요일에 볼 변호사와 할 이야기를 정리를 해야했는데, 그러다보니 밤이 훌쩍 가버렸다. 부랴부랴 눈비비고 아침 일찍 변호사를 만났다. 2년 반 동안 마음 졸였던 일이 결국 나의 잘못이 아님을 증명 받았다. 날아갈듯 기뻤는지 막 어지럽고, 눈물이 핑 돌면서 헛구역질이 나왔다. 실은 목요일부터 매일 두번씩 코피를 흘린다. 눈이 좀 붓지만, 두통은 별로 심하지 않아 심각한 빈혈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변호사가 정리해준 것들을 훑어보고, 저녁 늦게 urban spree에서 sun worship의 공연을 보기로 했는데, 피꺼솟 소식을 들었다. 일을 하나 바로 잡아 놓아 안도를 하면, 또 다른 사람이 일을 뒤집어서 가져온다. 공연 관람 도중 갑자기 앞이 캄캄해지고 다리 힘이 풀리는게 이렇게 하직 하는 줄 알았다. 집에 빨리 돌아오고 싶었는데, schokoladen에서 뮤직비지니스를 맡고 있는 친구와의 이야기가 길어져 1시에 겨우 들어왔다. 내일 저녁 회의까지는 쉬고 싶은데, 아침까지 정리할 일, 그리고 낮에 미팅이 또 하나 있다. 요 며칠 새 밥을 두배로 먹는다. 분명 배가 부른데도 허전하다. 강남역에서 먹던 탄탄멘이 너무 먹고 싶어 또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혼자 밥 먹기 싫다고 울기는 부끄러워서인지 또 케밥을 사러 간다. 그렇게 말하겠지, “Einmal Döner zu mitnehmen, bi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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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 없이 돈으로 묶인 유럽에 분노” 유럽의 지식인 프리 라이젠이 ‘유로존 탈퇴’를 무기로 그리스를 위협한 독일을 어찌 보는지 궁금했다. 그보다 1년 앞서 에라스무스상을 받은 위르겐 하버마스가 최근 “독일 정부가 반세기 동안 쌓은 신뢰를 하룻밤에 탕진한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매우 분노하고 부끄럽습니다. 유럽이라는 정체성이 오직 돈으로만 묶인 것 같고, 진정한 연대(solidarity)는 없이 기술관료, 회계장부 관리자만 남은 것 같습니다. 사회·문화적 측면을 넘어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하나의) 유럽이 존재하지 않는 듯해요.” 동시대 유럽에 대한 날선 지적이다.
동시대 예술 혹은 ‘컨템퍼러리 아트’에 대한 생각은 뭘까? “오늘날의 사람들이 오늘날의 언어로 오늘날의 관객을 위해 현재 만드는 예술입니다. 우리 동시대 세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컨템포러리 예술입니다.” 동시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컨템퍼러리 예술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 “비판할 수 있는 용기가 정말 중요” 좀더 근본적으로 공연예술에 대한 생각은 어떤 걸까? “공연예술은 공연이 시작하는 순간 발생해 공연이 끝나는 순간 사라져 사람들의 머리나 가슴 속에만 남습니다. 소유할 수 없는 덧없음(ephemerality) 때문에 공연예술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연극과 같은 공연예술은 ‘돈을 벌 수 없는 예술’이다. “돈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예술은 사회와 인간 행동방식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합니다. 사회의 아픈 곳이나 제기능을 못하는 부분을 콕콕 찍어 지적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기금을 주는 정치가,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 힘을 가진 언론, 동료들을 만족시키려다 보면, 또 지금 후원자나 미래의 후원자를 만족시키려다 보면 살롱예술처럼 재미없는 예술이 되고 맙니다. 강하고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나약하고 잘 안되는 것을 보여주는 예술이지요.” 그는 “인간의 나약함(fragility)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게 예술가의 임무”라고 했다.
기사 읽기: “동시대 세계에 비전 제시하는 게 컨템포러리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