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 67

2014년 10월 23일, 그리고 2015년 5월 29일. 23일의 나는 너를 몰랐고, 29일의 나는 너를 알고 싶다. 23일은 혼자서 바 테이블 구석에 앉아 친구들의 조잘거림을 지켜보며 다가올 숙취들을 기다렸고, 29일 오늘은 차갑게 식은 백열등 너머 어둡고도 하얀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창가, 벌어진 커튼 사이로 햇살이 고개를 내미는데, 나는 자꾸만 콧잔등이 시큰거려,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커다란 쿠션에 얼굴을 부비적거린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으련만, 그 달콤함을 잊을 수가 없어 아무래도 나는 너 때문에 나 스스로를 추스릴 수가 없네. 코에서 입술로 흐르는 무엇인가를 손등으로 훔치고나니, 손등 위로 붉은 피가 orchid처럼 보였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너를 훔치고 말거야.” 숨소리가 듣고 싶다. 떨리는 손을 갖고 싶다. 내가 이렇게 좋아도 되는걸까? 그래도 되는걸까?

 

ㅡ 2015년 5월 29일, 오후 4시 반

 

“누군가에게 한없이 빛나 눈부신 이 곳이, 누군가에게는 눈조차 뜰 수 없는 지옥이겠지.”

정어리 – 66

맥주, 보드카, 위스키, 페피.. 숙취와 함께 일어나
낯설게, 내 방을 낯설게 두리번 거리니
간밤에 친구가 들어보라며 손 등에 적어준 ‘Der Traum ist aus’ 가 있어.
부스스한 머리로 조용히 노래를 듣는다.
우린 뜨거웠지, 뜨거웠고, 내일도 뜨거울 것이라네.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ㅡ 2014년 10월 23일, 오후 3시 반

정어리 – 64

줄곧 손을 내밀겠다 생각하며 지냈다. 그것이 배려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되려 경솔했다는 것을 콧잔등이 시큰거리도록 알게 되었다. 오늘 아침 이후로는 손을 내밀겠다 묻지 않도록 걸을 것이다. 손을 잡고 안도 할 수 있도록.

“…당신의 눈길에 나는 피어납니다 / 봄이 첫 장미를 신비롭고 능숙하게 한 잎 한 잎 깨워내듯 / 당신은 닫혀진 나를 깨웁니다 / 당신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마음속 깊이 느낄 수는 있죠. 장미보다 깊은 눈빛의 음성 / 빗방울보다 작은 손이여.” ㅡ E.E. 커밍스

 

ㅡ 2015년 5월 5일, 오후 2시..

독일의 Hartz IV에 관하여

며칠을 좀처럼 쉬지 않고 움직였기 때문에 리서치만 조금 하다 자야지 했다가 결국 밤을 새버렸다. 게다가 모든 경우라고 할 수 없지만, 독일 유학생들이 쓰는 독일사회와 생활에 관한 블로깅, 또는 리포트를 읽다보면 정신건강에 상당히 해로운데, 깜박하고 방금 또 읽어버렸다. (나는 ‘베리’라는 웹사이트를 다소 격하게 ‘유학생들의 무덤’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아무튼 나는 베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음악을 하나 들을까 했더니 Fehlfarben의 녹음버젼이 죄다 지워지고 없다. 그래서 이런 조촐한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5g98vGm0cj4)와 하단에서 가사를 소개할까 한다. 좋은 노래다. 40년도 넘게 활동하는.

 

화가 났던 글은 대개 자신이 모르는걸 아는 척하는 글인데, 특히나 복지제도에 해당하는 Hartz IV, 기초생활보조금(Sozialgeld), 빈민구제(Sozialhilfe), 자녀수당금(Kindergeld), 거주보조비(Wohngeld) 따위들 말이다. 실제 연금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12년 전 시작했을 때 반발했던 이유들과 같이 지금 연금생활자들은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이른바 Hartz IV에 기대어 살아가는 430여만명의 실업보험 수급자 중 3/4 이상이 안정적인 직업을 찾지 못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심지어 직업사회라던가 추가적인 교육을 받을 전망조차 없어 20개월 이상 장기적, 혹은 평생 연금생활에 의지해야할지 모른다고 한다. 죽지만 않을 정도의 아주 적은 돈을 받고, 길거리에서 빈병을 줍는 사람들 말이다. Job Center 같은 경우도 말할 것도 없다. 직업을 주겠다면서 하루종일 일 시키고, 단 1유로를 ‘임금+연금’ 형태로 지급한다. 게다가 그 일들은 미래를 바꿀 수 없는 청소부라던가 마트 캐셔같은 단순 노동이 전부. 죽을 때까지 정부의 보조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체제가 공고해졌다는 것이다. 누구나 가끔 실직의 위기가 찾아오곤 한다. 그렇게 되면 실직급여와 생활보조금을 타려고할텐데, 그 기준이 너무 높다. 그럼 계속 일을 찾는동안 모아 놓았던 저축부터 시작해 가족의 보험금까지 모조리 해약하고 다 쓰게 만든 다음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 때, 기초생활보조금을 준다. 이렇게 하르츠 IV 생활자가 한번 되면 다시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럼 잡센터의 미래 없는 낮은 수준의 직업들만 전전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독일 인구의 5퍼센트나 된다. 그래서 지금 하르츠 IV 생활자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쟁취할 것이라고 외치고 있고, ‘Hartz FEAR’ 라고 웃지 못할 농담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제발 한국 유학생들은 자기가 겪어보지 못한 독일의 결들에 대해서 멋대로 이야기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제로 독일 하르츠 IV 연금생활자들은 시위를 하고, 더이상 미래가 없다는 절박감에 자살과 잡센터 직원을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단 말이다.
독일, 프랑스 대학 시스템 이야기 하면서 유학 부추기는 멍청이(특히나 딴지일보에 글쓴 쓰레기 같은 놈)들은 제발 남의 인생 책임져줄 자신 없으면, 그저 학비 없다는 이유로 유럽으로 유학 가라는 소리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포기하고 돌아가는지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리인가. 나는 가끔 유학상담을 한다. 때문에 이 곳에서 1~ 2년 준비 하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친구들 중 많은 수가 귀국 이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볼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든다..

Fehlfarben의 Paul ist tot 가사

Ich schau mich um und seh’ nur Ruinen,
내 주위를 둘러보니 오로지 파멸 밖에 없구나
vielleicht liegt es daran, daß mir irgendetwas fehlt.
아마도 내게 뭔가 결여 되어있기 때문이겠지
Ich warte darauf, daß du auf mich zukommst,
네가 내 곁으로 오길 기다려
vielleicht merk’ ich dann, daß es auch anders geht.
아마 그러고나면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리겠지

Dann stehst du neben mir und wir flippern zusammen,
네가 곁으로 돌아오면, 핀볼이라도 한게임 할텐데
Paul ist tot, kein Freispiel drin.
파울은 죽었어, 더이상 게임은 없어
Der Fernseher läuft, tot und stumm,
텔레비젼은 숨죽이며, 죽어버렸고,
und ich warte auf die Frage, die Frage Wohin, wohin?
나는 “너 어딜 가니?” 라는 질문을 기다리고 있지

Was ich haben will das krieg’ ich nicht,
내가 갖을 수 없는 것을 원하는 것일까
und was ich kriegen kann, das gefällt mir nicht.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일까
Was ich haben will das krieg’ ich nicht,
내가 갖을 수 없는 것을 원하는 것일까
und was ich kriegen kann, das gefällt mir nicht.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일까

Ich traue mich nicht laut zu denken,
나는 감히 내 생각을 널리 알릴 수가 없어
ich zögere nur und dreh’ mich schnell um.
난 단지 그런 것들이 내 주위를 스쳐가고, 흔들리고 있지
Es ist zu spät, das Glas ist leer.
그건 너무 늦었고, 술잔은 비었어
Du gehst mit dem Kellner, und ich weiß genau warum.
너는 웨이터와 떠나고, 나는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지

Was ich haben will das krieg’ ich nicht,
내가 갖을 수 없는 것을 원하는 것일까
und was ich kriegen kann, das gefällt mir nicht.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일까
Was ich haben will das krieg’ ich nicht,
내가 갖을 수 없는 것을 원하는 것일까
und was ich kriegen kann, das gefällt mir nicht.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일까

Ich will nicht was ich seh’,
내가 본 것들을 원하지 않아
ich will was ich erträume,
난 내 꿈에 있는 것들을 원해
ich bin mir nicht sicher,
분명치는 않지만,
ob ich mit dir nicht etwas versäume.
너와 함께라면, 나는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을텐데

Was ich haben will das krieg’ ich nicht,
내가 갖을 수 없는 것을 원하는 것일까
und was ich kriegen kann, das gefällt mir nicht.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일까
Was ich haben will das krieg’ ich nicht,
내가 갖을 수 없는 것을 원하는 것일까
und was ich kriegen kann, das gefällt mir nicht.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일까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는 서울이 되기 위하여

참조기사: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는 뉴욕

 

지난 10년 간의 서울을 돌이켜보자면, 결국 이 책은 한국에서 ‘담론(재)생산자’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소비될 수 밖에 없다. 서울에서 ‘Abc no rio’ 같은 움직임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빌어먹는’ 운동과 권위주의, 교조주의에 의해 새로운 시도들이 무참히 부서졌다.

인디팝이나 펑크 밴드 몇개 듣는 ‘문화/예술/철학 담론(재)생산자’들이 모든 걸 망쳐놨다. 냉정하게 보자면 많은 이들이 펑크의 공격적인 면을 논하면서 동시에 음악산업을 하고자 했고, 펑크 애티튜드를 논하면서 한거라곤, 고작 “Support your local scene”을 외치며 머천다이즈 몇개 판 것 밖에 없다. 그들이 머천다이즈 팔아서 생긴 돈으로 뭐했겠나.. 고작 술 몇 잔 더 마시고, 안주 조금 더 먹은 것 뿐이 없다.

가난하지만, 구걸하는 거지처럼 굴어선 안 된다. 마땅히 받아야할 것을 내놓으라고 해야한다. 내놓지 않으면 따귀라도 때리고, 주먹으로 부러진 코를 볼 기세로 달려 들어야한다. 우리는 좀도둑이나 길거리 강도가 아니고, 길 위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홍대가 망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주체의식이 사라진 상황에서 마녀사냥처럼 ‘무엇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그루피 몰아내기는 그런 면에서 제 손에 망치질 마냥 어리석었다. 홍대 씬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할 수 없었던 것은 단지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주체의식이 결여되면서 결속력이 사라졌다. 나는 그 날들의 ‘담론(재)생산자’들이 아직도 원망스럽지만, 그 날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잊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수 밖에 없고, 다시 시작하는 친구들이 있다.

서퍼(surfer)들이 파도에서 떨어져 다시 다음 파도에 오르고, 보더(boarder)들이 다시 널판지에 오르고, 소음민원신고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보란듯이 다시 윽박지르며 무대를 구르는 펑크들처럼, 다시 시작하면 된다.

정어리 – 63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호수에서, 달이 저너머로 지나고 해가 뜰 때까지. 노란, 연녹, 하늘, 분홍, 자주 그리고 에메랄드 빛의 물고기들과 눈부신 비늘을 맞대고, 같이 호흡했다.

 

ㅡ 2015년 5월 18일, ZK/U, Moabit, Berlin.

정어리 – 62

“나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이야! 알겠어? 니하오, 곤니찌와 하지마!” 라면서 역정내는 한국인들이 있는가 하면, “너 몽골사람이니?” 할 때, “어, 나 몽골사람!” 하면서 밥 한공기, 엑스트라 서비스로 더 받는, 나같은 한국 사람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나와 한잔 더 부딪히며 시간을 나누려 할테니. 나는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 베트남, 몽골.. 사람이 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왜 자신의 손을 잡아주지 않느냐 하는 사람보다,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좋다.

 

 

ㅡ 2015년 5월 20일, 한국인이 되고 싶어하는 한국인이 역정내는 것을 바라보다..

Charles Bukowski – True with korean translate

‘로르카’의 최고 대사 하나
는,
“몸부림, 언제나
몸부림…”
이것을 생각해, 네가
한마리의
바퀴벌레를 죽일 때나
면도기를 들어
면도할 때,
혹은 아침에 일어날

태양을 마주하기
위해

 

one of Lorca’s best lines
is,
“agony, always
agony …”
think of this when you
kill a
cockroach or
pick up a razor to
shave
or awaken in the morning
to
face the
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