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ka – End of the world (from Skeeter Davis) korean translate

[vimeo 22639221 w=500 h=281]

 

 

Skeeter Davis로 알려진 Mary Frances Penick은 컨트리음악과 팝음악을 넘나드는 싱어로서 The Davis Sister로 1940년대 후반, 10대의 나이로 데뷔했다. Tammy Wynette와 Dolly Parton(펑크 밴드 Disorder의 펑크커버)과 함께 비상한 컨트리/팝 가수로 뉴욕 타임스, Robert Palmer에 의해 소개되며 컨트리 음악계의 메인 스타덤에 처음으로 등극하는 첫 여성 싱어들 중 하나였다.

The Davis Sisters에서 ‘I forgot more than you’ll ever know’를 발표하며 활동한지 얼마 안된 53년 8월 이튿날의 차사고로 Betty Jack Davis가 죽고, Skeeter Davis는 심각한 부상을 얻는다.
활동을 그만두려 했지만, Betty Jack의 언니 Georgia와 함께 56년 다시 듀오로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흥행에 실패를 했으며, 95년 공개된 Skeeter의 일기에서는 “Georgia는 좋은 싱어였으나, (Betty Jack과)같을 순 없었다.”라고 밝혔다.

56년 Skeeter는 은퇴를 발표하고, 결혼하며 Georgia와의 듀엣을 끝냈으나, 58년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한다. 솔로로서 다시 성과를 낸다. Arthur Kent와 Sylvia Dee가 그녀의 아버지 죽음으로부터의 비통함을 곡 ‘ The end of the world’로 그려낸다. 그리고, 62년 네쉬빌의 the RCA Studio에서 Chet Atkins의 프로듀싱과 Floyd Cramer의 피쳐링으로 녹음을 끝내고, 62년 12월 발매와 동시에, 63년 3월까지 빌보드 Hot 100차트에서 2위, Easy listening 부분에서 1위, Rhythm and Blues 차트에서 4위, Hot Coutry 2위, 또한 빌보드의 4개 차트 중 10위, 단기간에 오른 세번째 곡으로 기록된다.

이후 The Carpenters가 75년 커버했으며, 90년 Sonia가 데뷔앨범에서 커버한다.

나는 여기서 베를린 베이스로 Yeah Yeah Yeahs의 런던 무대에 함께 서는 등 급성장하고 있는 Anika의 커버버젼을 소개하고자 한다.

 

 

The End Of The World

세상의 끝

 

 

Why does the sun go on shining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Cause you don’t love me any more

태양은 왜 저렇게 계속 빛나는 걸까
파도는 해변으로 왜 밀려드는 걸까
그대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은 끝나 버렸다는 것을 저들은 모르게..

 

Why do the birds go on singing
Why do the stars glow abov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It ended when I lost your love

왜 저 새들은 계속 노래 부르는 걸까
왜 저 별들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걸까
내가 그대의 사랑을 잃어 버렸을 때
이 세상은 끝나 버렸다는 것을 저들은 모르게..

 

I wake up in the morning and I wonder
Why everything’s the same as it was
I can’t understand
No I can’t understand
How life goes on the way it does

아침에 일어나 모든 일들이
예전과 다름이 없음에 놀랄 뿐이야
이해할 수 없어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어떻게 똑같은 방법으로 삶이 계속될 수 있는 걸까

 

Why does my heart go on beating
Why do these eyes of mine cry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It ended when you said goodbye

내 가슴은 왜 계속 뛰는 걸까
왜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올까
그대가 안녕이라고 말했을 때
이 세상은 끝나 버렸다는 것을 저들은 모르게..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Qgcy-V6YIuI?rel=0]

정어리 – 59

Holding the time that not to fall in sleep,
holding dream that not to miss dream from wake up.

 

ㅡ 13. March, 2015. Last 10 years

 

 

시간을 붙잡으려 잠 들지 않고,
꿈을 놓치지 않으려 잠에서 깨지 않았다네.

 

 

ㅡ 2015년 3월 13일, 지난 10년

Charles Bukowski – Working Out

반 고흐가 그의 귀를 잘라
창녀에게
주자
그녀는 그것을 극도로 매쓰거워하며
저 멀리
내던져버렸어.
반, 매춘부들은 귀를 원하지
않아
그녀들은 돈을
원해.
내 추측엔 그것이 바로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페인터였는가에 대한
이유일거야: 당신은
이해할 수 없었어
많은
다른 것들을.

 

 

Van Gogh cut off his ear
gave it to a
prostitute
who flung it away in
extreme
disgust.
Van, whores don’t want
ears
they want
money.
I guess that’s why you were
such a great
painter: you
didn’t understand
much
else.

정어리 – 58

스스로 위로하고, 자위하며 사는 데는 별 의미가 없다. 아무도 네 빈곤한 가슴과 주머니 그리고 세계를 바꾸어주지 않을 것이다. 네가 해야하는 일, 하지만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일. 그러나 네가 해야만 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마라. 그 이가 네 일을 대신 하면, 그 이가 네 대신 힘겨워질거라고? 아니, 네가 할 일을 다른 사람이 하게 되면, 너는 할 일이 잃게되고, 다시 방황하게 될테니까.

 

ㅡ 2014년 11월 17일, 오전 11시 반, 잠을 미루다가

정어리 – 57

질질 짠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닌데, 안달 복달한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닌데.. 따귀를 덜 맞아서인가.. 앞뒤없는 전철. 꽉막힌 세대. 빈틈없이 다문 입술. 낭만이라고는 사라져라. 달달함이여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춰라. 90년대의 막막함이여 나쁜 기운이라도 좋다니 눈을 감고 뛰어라. 절망이여 내가 너를 기억할 수 있도록 굳게 닫아다오. 나를 설레게 했던 그 서먹함에 웃지못할 아픔들이여. 콧잔등을 시큰하게.. 상기된 얼굴을 바알갛게 달아오르게 했던 길거리의 배회하는 청춘들이여. 말없는 소소함이여. 내 굳이 네 이름을 부른다하여 달라질게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결같이 네 이름을 부른다. “날마다 새롭게 잃어버린 아침의 냉랭함이여..”
애잔한 땅에 술을 따른다.

 

ㅡ 2009년 12월 5일, 이른 새벽, 반쯤 채워진 마지막 잔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사는 방법 2005

사람들이 사는 방법

(그래서 내가 사람들을 싫어하고, 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술 쳐마시면서 담배가 해롭다고 이야기 하기.
삼겹살 쳐먹으면서 한국 음식의 건강함, 세계화를 이야기 하기.
에너지 드링크 빨면서, “마약은 안돼”라고 이야기 하기.
사랑과 평화를 외치면서 “그래도 한국엔 군대가 필요하지”라고 이야기 하기.
인종차별에 반대하지만, 백인에 대한 동경심을 갖기.
학연지연에 반대하지만, 첫 만남에서 전공이 무엇인지 묻기.
군대 내 폭력을 경험하고도, 그래도 남자라면 군대 갖다오라고 이야기 하기.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적은 임금으로 차별을 받는데도 데이트 비용은 똑같이 내기.
여자니까 힘든 일은 남자한테 전적으로 맡기기.
해보지도 않고, 해본 것처럼 이야기 하기.
본인의 경험이 모든 이의 경험처럼 이야기 하기.
존중 받고 싶어하면서 타인을 하대 하기.
본인 연애사도 개판이면서 타인의 섹스에 간섭하기.
낯선이와의 키스도 두려워하면서 저 너머 어딘가 나의 님이 있다고 착각하기.
내 친구 아들, 딸내미는 자유로운 예술가, 하지만 내 자식은 안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예술은 좋아하지만, 예술가는 가난해서 싫어요.
음악을 좋아해 음반을 수집하지만, 공연장은 안가기.
건강하게만 자라달래서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혼자 공부하려니 망나니 취급하기.
나이란 대체 무엇인가, 기껏해봐야 밥 더 쳐먹고, 똥 쳐싼거 말고 더 있는가, 그래서 말 놓고 편하게 지내자 했는데, 왜 날 인격적으로 짓밟는거지?
나이 쳐먹었으면, 그만큼 경험도 있어 아랫 사람들 챙겨줄 아량이 있어야 하는데, 지가 좀 해봤다고 아랫 사람들 애기 취급하기.
먼저 나섰으면, 뒤 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한 길도 만들어줘야 하는데, 혼자서만 걸으려고 하기.
나치는 나쁘지만, 이주노동자도 나쁘다고?
성차별은 반대하지만, 김치년은 나쁘다고?
페미니즘 이야기하는데, 왜 자꾸 여성부 이야기 하냐, 여성부 문제는 관료주의라고!
여성부 때문에 페미니즘이 문제라면, 한국이 이 모양, 이 꼴인건 한국 남성들이 죄다 쓰레기라서 그런거냐?
게임중독이 문제라는데, 설만 되면 이유없이 윷부터 던지자고 한국인들은 멘탈이 무너진건가?! 사물놀이는 싸이코패스 범죄자들의 아우팅?!
이미 민주주의 사회에 살면서 ‘경제민주화’로 민주주의 희석시키기.
하고 싶은걸 하라더니 이제는 할 줄 아는걸 하라고?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공교육 12년에, 영어를 수 년을 배웠건만 자막부터 찾는 영어고자 아닌가.
가족처럼 일하자더니 가축처럼 일 시키고, 가좆처럼 대하네.
삼성에 반대해서 아이폰을 쓴다는 사장놈아, 애들 최저임금은 지켜주냐?
386 사장놈아, 세상을 바꾸자면서 노동절에 가게는 꾸준히 열지?
학연지연에 반대한다면서 출신학교와 학번을 밝히지 않는다는 의미는 그래도 너도 대학물 좀 먹었다고 자랑하는게냐?
너만 눈 두개 있나? 나도 눈 두개 있다. 대학 안 가도 책 읽으니, 너 혼자 책 읽었다고 생각마.
나도 너 이기기 싫다, 피곤해. 제발 이겨 먹으려고 하지 좀 마라.
스테레오 타입 싫다면서, 스테레오 타입 제일 좋아하는 놈들.
네가 싫어하는건 나도 싫어하는거야. 내가 싫어하는거 너 안줄테니 너도 좀 제발..
미안하다, 고맙다 이 소리가 그렇게도 어렵나?
니가 나보다 몇살을 더 쳐먹었건, 초면에는 존대를 하는게 한국예절이에요.
네 놈이 나보다 좀 잘한다고 내가 게으르다는 의미는 아니야.
고용 문제, 재벌과 정치인들의 정경유착이 문제라고 성화를 낸다고, 내가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시위에 가서 “이렇게는 못 살겠다, 같이 잘 살아보자!”하고 고함치고, 난장을 피운다고 해서 빨갱이가 되는게 아니란 말이다. 이렇게 하라고 민주주의, 헌법이 있는건데, 왜 자꾸 나보고 북으로 가라고 하니? 북에 가야하는건 민주사회를 부정하는 네 놈이란 말이다.
정치인 개새끼들아, 너네는 공법인이고, 나는 자연인인 국민으로, 너네는 명예의 주체가 될 수 없고, 국민을 보호해야할 의무만 있다고, 씨발놈들아. 명예훼손으로 고소 자체가 안된다고! 헌법 부정하지 말라고!
파업 자체가 노동자의 권리인데,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건 대체 무슨 소리냐?!
세계화 이야기하면서, 왜 UN에서 내놓은 인권선언문은 무시하는거냐?
나는 취향같은거 존중 안한다, 니 취향 나한테 강요하지마. 나도 내 취향이 너한테 어울릴거라고 생각 안해. 니 갈길 너가 가고, 나 갈길 내가 가자.
망치가 못을 때리기도 하지만, 맥주 따게도 되거든?
나는 자전거 타이어 교체 레버로 타이어 여는 것보다 맥주 병을 더 많이 열어봤다.
책장에 책 많다고 책 많이 읽었나, 나는 책 3번은 읽어야 그래도 읽었다라고 말하는데.
영화도 최소 3번 보려 노력하고, 좋아하는 영화는 스무번도 넘게 본다. 볼 때마다 다르고, 굉장하다고!
한시간 일했으면, 5분은 쉬게 해주라. 내가 기계냐?!
추가 근무 했으면, 당연히 야근 수당 줘야지, 그럴 때는 계산을 잘 해야하는거라고.
나랑 다르다고 낯선 사람이라 부르며, 밀어내지 마라. 나도 나랑 다른 너가 낯설다고.
낯설면 어때, 키스 한번해봐. 그리고 또 한번해봐. 벌써 그만큼 가까워졌다.
세월호 유족들이 보상금을 노린다고? 그럼 너도 가족 하나 잃어봐, 그럼 내가 너한테도 보상금 주자고 같이 외칠게.
누가 너보고 정의의 사도가 되라고 한 적 없어, 잘못된건 잘못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이나 하지마.
당장 뒤지고 싶은게 아니면, 제발 정치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지마.
네가 편의점에서 끼니를 떼우던지, 레스토랑을 가던지 그거 다 네 주머니에서 나오고, 네 임금의 문제고, 그래서 노동, 정치가 중요한거라고.
버니니를 한병 마실지, 맥주 페트를 하나 마실지, 그것도 정치라니까?
네가 디스를 피우는지, 말보로를 피우는지, 담배를 말아피우는지 그것도 다 정치에요.
나도 한때는 굴렁쇠 좀 굴리면서 꿈나무 소리 들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어딘가 쳐박혀서 존나 일만 하고 있더라. 이제는 그거 그만 하려고.
나 힘들다고 하는데, 누가 더 힘들다 하지 좀 마. 그 사람이 나보다 더 힘들다고 해서, 내가 안 힘든게 아니거든?
너네 대학만 가면 자유로워질거라 믿었지? 그거 다 뻥이야. 너 지금 알바몬, 잡코리아 뒤져가며 한숨이나 푹푹 쉬겠지. 다 니네 부모님들 때문이야.
자기가 못한걸 대체 왜 자식한테 시키려고 하는거야?
그러니까 죽기 전에 존나 후회하지.
어차피 뭘 하던 후회는 한다. 되도록이면 내가 선택한걸 해서 후회하는게 낫지. 내가 니 탓 안해도 되고 얼마나 좋냐.
헤어지면 힘든거지, 그렇다고 다신 안 볼 사람처럼 욕 하지마라. 그래도 잠시나마 행복하지 않았더냐.
원망하다보니 내가 더 지치는 것 같더라. 내가 미안하다!
귀찮고 피곤하다고 집 안에 쳐박혀 있지 말고, 친구, 가족 손 잡고 나가서 봄꽃놀이라도 해라. 이거 아무리 많이 하려 해봐야 100번도 못하고 뒈진다.
좋아하는 일을 하자! 돈이 안되면 어떠냐,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 밥먹고 살자고 하게 되면, 그 때부터 좋아하는 일이 귀찮은 일이 되더라.
어떤 음악이 더 우월하고 좋다고 하지 좀 마, 그냥 우린 어딘가 잘못된, 망가진 사람들이고, 그 음악들은 다 좋은거야.
술 좋아하다보니, 어느 때부턴가 술 마시며 숙취를 기다리게 되더라. 그리고 너도.
구원의 시대는 끝났어. 구원을 기다리지마. 구원의 방법론을 설파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죽음을 애도 하는 것 뿐이야. 너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너뿐!
등록금 반값으로 깎아 달라고 하지마, 너가 거지냐? 교육은 서비스 업이 아니라, 그 사회의 미래라고. 가서 등록금 없애자고 이야기 해! 우리가 이 사회를 책임질 세대라고. 그리고 우리 뒤에 따라오는 녀석들 우리를 책임질거라고!
내가 편리해지면, 그만큼 누군가 노력을 하거나 불편해지는거야. 혼자만 편해지려 하지마.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새끼들아, 너네는 아마도 왕정시대로 돌아가야할 것 같다.
200~ 300년 전, 유럽에서도 민주주의 하자고 말만 꺼내도 다 잡아다가 감옥에 쳐넣고, 정신병원에 쳐넣고, 고문하고, 사형을 시켰단다. 그런데도 같이 좀 잘 살아보자고 사람들이 외쳐서 오늘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진거야. 그러니까, 시위가 시끄럽다고, 교통체증을 만든다고 불평하지마. 저 사람들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드려고 하는거니까.
네 좌절감이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좌절감이 네 미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실수한게 아니야, 그 순간 네가 깨달은거야.
관객이 예술품을 관람하는 시대에서 예술품이 관객을 관람하는 시대가 왔구나.
우리한테는 더이상 첫번째 생일도, 첫번째 키스도, 첫번째 섹스도 오지 않을거야. 그래서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제약하는 것들.
과거를 추억하지 말자. 과거를 가져오는 일은 결국 현실을 부정하고, 슬픔 속에 살아가는 것 밖에 없더라. 우리는 어제보다 즐거운 오늘을, 오늘보다 즐거운 내일을 맞이하자.
헐벗은 패션보다, 헐벗은 철학이 싫고, 마음의 빈곤함이 싫더라. 그래서 너는 나를 미워해도 된다.
공산주의가 타인에게 지나친 친절을 베푸는 행위, 혹은 타인을 위해 노동하는 삶이라는 새끼들은 대체 뭐냐?
나님이 너님한테 딱히 강제로 뺏거나 부당하게 이득을 챙길만큼 너님이 가진게 있어요?
거품처럼 네 사업이 사라져 나이 오십에 편의점 알바 해봐야 정신 차리겠지.
너님들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너님들은 스스로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지독한 환경 속에 방치하고 계시는거죠.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홀로 길거리에서 무언갈 토해내는 사람이 되볼게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통속적이긴 해도 꽤 짧았으니까, 뭐.

 

그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해, 내가 손을 내밀어드릴게.

 

love and piss, 아멘..

 

 

ㅡ 2015년 4월 5일, 울적한 하늘이 미소짓게 하는 날..

정어리 – 56

 

aaaaaa

2008년 두번째 입원 당시, 나는 수면뇌파검사를 했었다.

 

결과는 참으로 혹독했다. 일상적으로 정상수치 2~ 3배 이상의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과다분비되고 있었고, 이따금씩 급격한 분비부족으로 극도의 우울증을 겪는다는 것이었다. 급격히 분비 부족이 일어나면, 손이 떨리기 시작하는 것부터 다양한 증상들이 느껴지는데, 적절한 치료 없이 혼자 견디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주치의는 나의 습관적 음주와 흡연이 도파민, 세로토닌의 급격한 부족으로부터의 보호본능이라는 것. 덕분에 당시 나는 스물넷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혈압 194, 고혈압 2기를 기록했다.

 

또한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일상적인 과다분비는 깊은 수면을 방해하면서 얕은 수면만 가능하게 만들었다. 보통 30분에서 1시간이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깊은 수면에 빠지지만, 나는 15분 정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10분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한다는 것. 얕은 수면만이 문제가 아니기도 했다. 내 수면 장애는 굉장히 심각한 편이었는데, 병원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일주일 총 수면량이 평균 10~ 15시간 밖에 안돼, 상당히 예민해있었고, 집중력도 떨어져 여러 사람들을 곤란케 했다. 이런 나를 끝까지 놓치 않아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때문에 호흡기, 소화기 과열증상이 있고, 예민한 상태였다. 겨울에도 몸이 뜨거운 편인 것도 다 이 때문이었는데, 어머니께서는 남자는 몸이 뜨겁고, 여자는 몸이 차야 겨울에 여자들이 안긴다며 좋은 것이라고 하셨지만, 사실은 그렇게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 음주, 흡연, 수면장애, 호흡기와 소화기의 과열증상에 결국 만성적 역류성 식도염과 끝내 천식과 편도선염을 고루고루 얻게 되었다. 주님, 뭐 이런걸 다… 하지만 4년 전, 베를린으로 건너오면서 천식과 편도선염은 결국 작별했다. 어떻게 없어진건지는 몰라도 베를린 고마워.

 

여러 약들을 전전하다 나는 결국 일본 오츠카 제약이 도파민, 세로토닌 조절제로 새로 개발한 아빌리파이를 처방 받았다. 보통 니코틴을 비롯해 코카인, 암페타민 류의 마약이 도파민 재흡수를 억제해 도파민 과다 분비를 일으켜 흥분상태로 만들고, 동기유발, 즐거움, 재강화, 각성, 운동 등의 뇌의 보상시스템과 관련있다. 음식, 섹스, 약물과 자극으로 보상의 경험에서 비롯되는데 이 부분은 나의 공부와 작업, 성향, 위치와 방향 의식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도파민은 전두엽에서 뇌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오는 정보의 흐름을 조절한다. 따라서 과다분비는 정보의 양을 넓힐 수 있고, 부족은 주의집중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뇌에 있어 도파민 장애는 신경인지기능, 특히, 기억, 주의, 문제해결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도파민, 세로토닌, 엔돌핀, 아드레날린.. 이 것들이 다 무엇일까? 쉽게 말해, 음식을 먹을 때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물질은 엔돌핀이라는 물질이다. 그런데 우리 행동을 자극해 손으로 음식을 집어 입에 넣게 만드는 물질은 도파민이다. 또한 도파민은 ‘감동의 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꽃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지적 희열에 잠길 때, 반짝이는 별을 보며 미래를 꿈꿀 때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끔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쏟아내곤 한다. 하지만 너무 과잉 분비되면 환각이나 망상 때문에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반대로 세로토닌은 집중력을 만들어내며, 고통에 둔감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자신을 몰아붙이기 쉽다. 자신이 이런 상태임을 자각했을 때는 이미 심각한 상태에 이른 경우가 많은데, 내가 처음 자각 했을 때는 모든게 엉망진창이었따. 또한 세로토닌 과다분비는 스스로를 억누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음악을 듣고, 움직여 에너지를 분산하는 것이 좋다.

 

2006년 경, 어머니가 선물이라며 스케일링을 하자고 하셨고, 나는 저녁 영화 티켓을 준비했었다. 의사선생은 스케일링을 해주면서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근접단면촬영을 해보면, 치아가 미세하게 갈려있는 것이 확인된다며 어머니께 나를 신경정신과에 데려갈 것을 권유했다. 어머니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의사를 나무라셨는데, 의사선생은 이 상태는 스트레스로 수면중 이를 가는 것이라며, 잠을 잘 자지 못해 힘들었을거라고 했다. 사실 그 때는 이미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단계였고, 약이 잘 들지 않는 상태라 주치의가 약 용량을 올리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사진은 2008년 초, 입원 전)

 

ㅡ 2015년 4월 6일, 그 날이 생각나더라.

정어리 – 55

bunnies_eats_grass

Fuck, Jesus Christ. Why he died today? I didn’t buy foods yet for this weekend! Okay, enjoy this easter with bunnies! I’ll make empty all beer in Berlin!

 

ㅡ 2015년 4월 3일 부활절

정어리 – 54

월요일.

 

아침 일찍 맞춰놓은 알람은 월요일이 아니라 일요일로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요새 짧게 두세번씩 자는 통에 늦지 않게 일어날 수 있었다.

 

12시 반에 슈필테마트 인근의 아파트로부터 가구들을 나르는 일을 돕는 대신 스탠드형 램프를 받기로 처자 e와 약속. 하지만 그 아늑함을 선사할 램프는 누군가 차지해버려 처자 e가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래도 돕겠다 나섰다. 슈필테막트 역은 약간의 비가 섞인 강한 돌풍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해서보니 생각보다 할 일은 많지 않았다. 닥치는대로 일을 했던 지난 10년을 생각하면 가구 분리해서 트럭에 싣는 일이야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자 e는 아무런 댓가 없이 도와주는 나에게 무엇이라도 주려고 했는데, 생각찮게 고급 커튼과 식기들, 서랍장 두 개를 얻을 수 있었다. 트럭에는 운전자를 포함해 세명 밖에 탈 수 없었고, 케서방은 자전거를 타고 왔기에 우리는 라우짓쩌슈트라쎄에서 만나기로 했다.

 

10분이면 충분히 도착하는 그곳이련만 월요일, 악천후로 길거리는 번잡했고 프린쩬슈트라쎄를 지날 무렵 길에서 미스터리 영화에서 나올 법한 분위기의 10살쯤 됨직한 꼬마 셋을 지나쳤다. 그 꼬마들은 검은 후디를 뒤집어 쓰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스칼릿쩌슈트라쎄에서 코티 방향으로 가던 길 갑자기 모든 차가 정차해있었다. 저 멀리서는 폭스바겐사의 구형 밴이 가로로 길을 막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케서방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괼리에서 쉴레지셰스토어역 방향 스칼릿쩌슈트라쎄 길에서 거리를 청소하는 차량과 사고가 나서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처자 e는 보다 속력을 내기 위해 앞선 차량 운전자에게 “경찰 기다리는 동안에 사진을 찍고, 차를 옆으로 치우자”며, 비를 뚫고 저 너머 밴으로 갔다. 5분가량 지났을까 처자 e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돌아왔다.
무슨 일인가 했냐면, 운전자와 탑승자들은 이 구형 밴을 탈취해 운전을 하다 차량 세대를 들이 받고서 도망 갔다는 것이다. 피해 차량 운전자들도 평소 같으면 사진을 찍고 차후에 신고를 하겠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경찰을 기다려야만 한다고. 아무래도 그 밴의 운전자와 탑승자들은 약을 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의 경우라면 추돌사고, 마약투약은 각기 달리 처벌해 그다지 중한 형벌이 내려지지 않지만, 마약을 투약하고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경우라면 이야기가 아주 달라진다. 경찰이 오길 기다리던 처자 e와 n, 그리고 나는 그 차량사고를 낸 가해자들이 약에 흠뻑 취해 마구 웃으며 도망갔을걸 생각하니 덩달아 웃게되었다. 비디오게임 ‘GTA’가 떠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라우짓쩌슈트라쎄에 도착했고, 케서방은 터덜터덜 걸어와 굉장히 부은 손과 휘어진 휠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일단 바쁘기 때문에 나와 처자 e가 소파를 빨리 내려주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로 했다. 소파를 들고 가보니 이 집은 2년전 여름, 새봄의 새 집을 찾기 위해 방문했던 집이었다. 당시에 집을 열 곳도 넘게 돌아다녔지만,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아무튼 본격적인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케서방을 병원에 데려다 주어야 하는데, 트럭에는 운전자를 포함해 세 명 밖에 탈 수 없었으므로 처자 e가 몰래 짐칸에 웅크려 타기로 했다. 경찰에 들키기라도하면 꽤 무거운 벌금을 내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기로 했다. 케서방은 아픔을 참기가 어려운지 보드카를 연신 들이키며, 평소보다 빠르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길은 미끄러웠고, 갑작스레 끼어든 청소차량을 피하느라 넘어져 청소차량 밑으로 깔렸는데, 미친 운전자가 내리기는 커녕 그대로 수 미터를 끌고 갔고, 청소기계 작동을 멈추지 않아 자동 빗자루가 온몸을 쓸어내었다고. 또한 운전자가 내려서 도와주기는 커녕 그대로 50미터쯤 혼자 가버리더니 돌아와서 연락처를 알려주고 가버렸다고. 어느새 우리는 헤르만슈트라쎄 인근의 병원에 도착했고, 치료 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동하는 동안 다른 차량들의 접촉사고를 두차례 목격 했다.

 

큰 길이었기 때문에 뒤에 타고 있는 처자 e를 내리기 보다는 빨리 다음 목적지인 쉴러 산책길로 향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뿔싸 차를 돌리고 나가는 바데슈트라쎄와 헤르만슈트라쎄의 교차로, 꽉 막힌 길 위에서 우리가 다른 차량의 범퍼를 긁고만 것이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범퍼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으므로 피해차량에게 조금만 뒤로 후진해달라고 했는데, 피해차량이 너무 빠른 속도로 후진하는 바람에 그 뒷차량을 또 들이 받고 말았다. 맙소사.. 일단 차를 옆으로 대고서 합의를 하려 했는데, 피해차량 운전자는 이런 이중 추돌은 처음이라 경찰을 불러야겠다 했다. 때문에 처자 n이 대화를 하는 동안 트럭으로 돌아가 처자 e를 짐칸에서 내리고, 이 사건에서 떨어지기로 했다. 왜냐면 트럭에 탑승자는 분명 둘이었기 때문에..

 

예버 맥주 한병에 한참 근처를 걷다보니 다시 연락이 되어 처자 e와 n을 쉴러프로메나데에서 만났다. 풀이 죽은 처자 n, 그리고 기운이 붓돋으려 꽤나 비싼 초콜렛을 내밀던 처자 e. 아무튼, 처자 e는 페미니스트 콜렉티브에서 살고 있었는데, 짐을 나르기 위해 집에 들어서니 금남의 집에 들어선 것 같이 기분이 묘했다.

 

더이상 지체가 할 수 없어 처자 n의 집으로 바로 향했다. 처자 n의 집에는 케서방이 손가락 뼈가 십자 모양으로 두번 부러졌다며 깁스를 하고 있었다. 짐을 내리고선 우리 모두 나와 케서방이 사는 하우스로 향했다. 이번에도 처자 e는 짐칸에 타야만 했는데, 살살 운전해달라 부탁을..

 

기나긴 하루와 지친 몸으로 하우스에 도착했다. 케서방은 더이상 일을 할 수 없어 쉬기로 했고, 처자 e와 n은 날더러 많이 수고했다며 나도 이제 쉬라 했으나 나는 마지막 목적지까지 함께 하겠다했다. 여자가 남자보다 일을 못한다는게 아니라 남아있는 것들 중, 책장 두개와 옷장 두개가 여자 둘이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처자 e는 내 친절을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을거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것도 맞는 사실이긴하지만, 하지만, 결코 여자 둘이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고, 케서방이 다쳤기 때문이다.

 

마지막 목적지는 2차대전, 나치에게 희생당한 독일인들의 묘지들을 끼고 있는 집이었다. 겉으로는 볼품 없는 집 같지만, 안으로는 정말 근사했다. 내가 살고 싶을 정도. 처자 n은 아까의 사고로 풀이 죽어 트럭을 주차하는 것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대로 두면 당분간은 이 사고가 트라우마가 될 것이기 때문에 나와 처자 e는 n을 독려하며 어려운 난이도의 주차를 도왔다. 그리고선 e가 내게 개를 무서워하냐 물었다. 딱히 무서워하지 않지만, 나는 그 질문의 의미를 몇 초 뒤에 알게 되었다. 집 문을 열자마자 무섭게 짖으며 뛰쳐나온 중형견 두마리. 한마리는 아직 훈련이 덜 되었는지 입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순간 흠칫 놀랬긴 했지만, 오히려 천천히 다가가서 쓰다듬으니 이 녀석들은 낯선 내게 볼을 부비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이 꽤나 장난꾸러기였는지, 이렇게 얌전해지는 것은 처음본다 했다. 짐을 내리면서 처자 e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따라나섰는지 이해가 되었다며 발그란 볼로 미소를 지었다. 짐은 무거웠고, 구식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리는 일은 만만찮았다. 그럴수록 속으로 처자 e를 바라보며 괜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짐을 다 내리고선 식사를 대접 받았는데, 심지어는 이 녀석들이 식사시간 동안 내 발을 배게 삼아 잠들었다. 하우스에 돌아와 해야할 일이 또 남아있었으므로 이 녀석들을 깨워야했는데 어찌나 미안한지…

 

그렇게 길고도 짧은 6시간의 일이 끝났다. 보통은 한달에 모두 일어나기도 힘든 일이 지난 6시간 동안 모두 일어났다. 나는 케서방에게 곡 ‘월요일’을 써야한다 이야기 했다.

 

 

 

ㅡ 2015년 3월 30일 월요일

프랑크푸르트 블록큐피 논평

기사: S.P.O.N. – Im Zweifel links: Gewalt gegen Gewalt

 

<프랑크푸르트 블록큐피 논평>

“시위대의 폭력은 만장일치로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는 체제의 폭력을 무시하고 있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위대의 폭력은 경멸하면서, 왜 우리는 체제의 폭력은 허용하는 것일까.

We unanimously condemn the the violence of the demonstrators. But we ignore the violence of the system. During we contempt the violence of demonstrators that happens on streets, why we accept the violence of the system?” ㅡ Jakob Augstein, Spiegel
(기사: S.P.O.N. – Im Zweifel links: Gewalt gegen Gewalt)

 

유럽중앙은행이 내놓은 긴축안에 90여개의 독일조직들이 연대하는 Blockupy(블록쿠피)가 거센 항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날 17,000여명의 시위대와 10,000여명의 경찰간에 격렬한 물리적 충돌이 있었습니다. 2001년에 이미 비폭력투쟁 노선을 선언했지만, 체제의 폭력을더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였습니다. 또한 높은 청년실업으로 무너져가는 스페인과 긴축안으로 고통받는 그리스는 혼자가 아니라며 독일 사람들이 연대를 표명하며, 유럽중앙은행의 긴축안에 분노를, 독일정부에게 이 사태의 해결의지를 보내라 압박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