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피습을 당했다. 끔찍한 테러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경찰은 용의자를 철저히 조사하여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테러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 작년 12월 신은미씨에 대한 일베 회원의 테러에 이은 이번 사건으로 국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허물어진 국가에서 갈등해결의 평화적 공간을 폭력이 잠식하는 양상이다. 테러에 대해서는 불관용이 답이다. 동시에 연이은 테러의 원인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미 대사 피습 사태를 공안몰이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사태재발을 막지 못할 것이며, 갈등의 원인만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2015년 3월 5일
노동당 대변인실
다들 한마디씩 하시니 나는 입을 다무는게 좋을까 했지만 몇 의아한 지점들이 있어 짧게 적어본다.
노동당이 진보를 대표해 김기종에 대해 사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모자란 논평. 나는 항상 진보진영의 이런 편리한 방법, 편리한 접근, 편리한 저항들이 늘 불편하다. 이것으로는 어떠한 벽도 넘을 수 없다. 벽 앞에서 벽이 무너져달라고 기도하는 중생의 모습처럼 보일뿐이다.
물론 진보진영으로서는 김기종 개인의 광기로 몰고가면 책임론에서 질타를 덜 받을 수 있을지 모르더라도, 진보진영 내의 민족주의/탈민족주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에 대해 진보진영 내에서는 모두가 잘 아는 분당/탈당/합당 사건들이 계속 이어졌다. 진보진영 내의 계파간 갈등에 천착해있는 동안 우리는 민족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한번 숙고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또한 김기종씨의 죄를 묻는다고 하더라도 그를 손쉽게 테러리스트로 규정함도 이해할 수가 없다. 21시간 전, 15~ 20여개의 독일의 언론들은 30여개의 기사를 내놓았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대략 40~ 50이 훌쩍 넘는 언론들이 300여개의 기사를 쏟아내놓고 있다. 평소 독일에서 북한 이외에 남한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한 반응이다. 햇수로 4년 째 독일에 살면서 이렇게 남한 관련 뉴스가 긴급히 쏟아져 나온 것은 처음 본다.
하지만, 독일 언론들의 기사에서 주한미국대사와 ‘테러’라는 검색어를 함께 검색하면 아무런 기사도 뜨지 않는다. 한국 현지와 독일 언론들의 온도차를 감안하더라도 독일 언론이 사건의 중요성을 심각히 여기는데도 아무도 테러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미국언론을 검색해보아도 주요 미국언론들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언론들이 김기종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지 않는다. ‘테러’ 혹은 ‘테러리스트’라는 단어와 함께 김기종을 언급하는 기사는 대부분 한국정부의 관계자들이 김기종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인터뷰한 것을 인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기종 스스로가 자신이 한미연합 훈련을 막기 위해 이와 같은 일을 벌인 것이라고 스스로 발언한 것 때문일 뿐이다.
그런데 왜 한국 언론, 심지어 진보정당들까지 나서서 이 것을 테러로 규정하고,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일까? 심지어 前주한미국대사들도 이 사건이 한국과 미국의 외교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인터뷰가 나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이구 저희가 잘못 했습니다. 미국은 우리의 영원한 우방입니다.”
나는 미국 정부가 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정책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주한미국대사가 피습을 당해야할 이유를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미안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25센티미터의 과도로 마크 리퍼트 대사에게 습격하기 전까지 아무런 제지를 못했던 보안 담당자의 문제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왜 25센티미터의 칼을 과도로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보통 주방에서 사용되는 칼은 칼날의 길이만 이야기한다. 또한 칼날이 25센티미터라면 과도라고 보기 어렵다. 칼날이 25센티미터라면 일반인도 사시미 칼정도는 알아볼테니 식도 혹은 육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설사 손잡이 길이까지 총합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25센티미터는 과도라고 하기엔 제법 길다.
그래서 왜 칼날의 길이에 대해서 이야기 하냐고? 칼날이 25센티미터라면 단순히 숨기기 어려울 것이고, 칼길이 총합이 25센티미터라도 속에 품는다면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왜 보안요원이나 경찰들이 전혀 몰랐는지 나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김기종이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평가는 차후 행적들과 연관해 이뤄지겠지만, 내 관점에선 김기종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하기엔 턱없이 부족해보인다. 아니 좀 유치하고 지나치다 싶은 축구광팬, 본인이 응원하는 팀의 전세가 기울자 축구장으로 난입하여 상대선수를 넘어트리다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광팬정도가 어울려보인다. 테러라고 하려면 테러 이후의 테러범에 대해 지지하는 단체가 하나 정도는 나와야하지 않는가? 지지는 커녕 오히려 김기종이 속해있던 단체들은 우리와는 관계 없는 일이라며, 모두 그를 신속히 제명시켜버렸다.
“어이구 저희가 잘못 했습니다. 미국은 우리의 영원한 우방입니다.”
피습을 가한 것은 대한민국 모두가 아니라 어떤 단체도 뒤에 등지고 있지 않은 김기종 개인인데, 대한민국 전체가 마치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비는 것 같은 모습에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노동당의 이번 논평에서 나는 여당, 정부기관들의 보수인사들이 사고를 칠 때 마다 손쉽게 잘라내고(제명하고)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연상된다. 또한 먼저 지레 겁먹고 공안몰이의 기회로 삼지 말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도 진보진영의 컴플렉스를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적어도 이 사건을 계기로 진보 진영내의 계파는 물론이고, 좌우를 뛰어넘어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이 이뤄지길 바란다. 참고로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07년부터 한국에게 ‘단일 민족국가’ 같은 이미지를 극복해야한다고 권고하며, 그러한 ‘사실 왜곡’이 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의 주요인이 된다고 직접 지적하였다.
* 기사는 구글 뉴스 검색을 기준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