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 50

최근들어 하고 싶은 말들이 조잘조잘 참도 많았는데, 오늘 저녁 감자국에 오이무침으로 친구들과 단촐한 식사를 하고나서 나는 그 이야기들을 가슴 속 서랍에 넣어두었다. 배달된 맥주 20짝, 지하 맥주창고에 옮기는 것을 도와주고 나서 맥주 들지 않겠냐는 말에 나는 손사레질을 쳤다. “고맙지만, 그건 금요일 저녁으로 미뤄둘게.” 입가심으로 올리브 몇개를 집어든 손가락을 핥아가며 쉰 번째 정어리를 썼다.

 

 

그는 일주일 전까지만해도 이 거리에서 유명한 아편 중독자였다. 단지 아편을 달고 살기 때문에 그가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아편중독자들과 달리 아편을 통해 세계를 풀어놓았다. 그 세계는 유달리 빛나 보였고,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아편을 그만두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더욱 괴로워했다. 대개 앎이라는 것은 모든이가 찬양하는 것이지만, 그들보다 더 알고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보이는 이에게는 앎이란 것이 거부할 수도, 마냥 끌어 안을 수도 없이 괴로운 것이다. 그랬던 그의 모든 것은 일주일 전까지의 일일뿐이다.

 

그는 늘 아편을 그만두고 싶어했다.
아편을 내려놓고, 다른 세계를 보고 싶어했다.
그렇게 그는 이제 아편중독자에 헤로인중독자까지 되었다.

 

 

ㅡ 2015년 1월 17일, 새벽 Frida와 Neukölln의 Warthestraße를 걸으며

 

 

1200년 초중반 베를린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베를린은 지금의 슈프레 강을 사이에 두고, 프리드리히 샤인의 4분의 1정도 되는 지역과 노이쾰른의 4분의 1정도 되는 지역을 Berlin과 Cölln이란 이름으로 양분된 도시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8800정도의 거주민과 1100개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슈프레강을 끼고 성이 이 두 지역구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곽은 오늘 그 자리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