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이유에서든 우리는 테러에 동의할 수 없고, 희생자들에게는 매우 유감이다. 하지만, 약자를 희화화하고, 낄낄거리며, 차별적인 태도를 취했던 그것들이 이 사건의 배경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한다.
또한 일련에서 떠도는 유령같은 언어 ‘유럽의 이슬람화’는 사실 네오나치들이 뒤에서 선동하고 있는 것으로서 극우들과 함께 ‘유럽의 이슬람화’라는 언어를 통해 정치적으로 무딘 사람들에게 공포를 전파하고 있다. 특정 의도를 갖고 이슬람에 관련된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내며, 이러한 것들을 이슈화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독일 보수 우파의 선봉장이라는 메르켈 총리마저도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한다는 ‘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 PEGIDA’ 이라는 이름의 단체가 벌이는 일각의 인종차별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포하기까지 한 상태이다.
독일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 상당수가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그들의 불안한 위치 때문에 독일인으로 구성된 ‘PEGIDA’의 말을 그대로 믿고, 그들이 단지 독일을 걱정하는 독일인의 건전한 모임인줄로 오해하는 일이 생기고 있는데, PEGIDA는 네오나치의 일부라고 해도 모자를만큼 운동 자체부터 네오나치들이 뒤에서 조직한 것이다. PEGIDA가 스스로 자신들은 나치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의도된 기만 전술에 불과한 것이다.
‘유럽의 이슬람화’라는 실체없는 언어가 무엇인지 한번만 생각해보자.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 중 한가지인 ‘부르카착용금지법’. 부르카 같은 것은 이슬람의 전통문화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 해본적 있는가? 자발적으로 벗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강제하여 부르카를 착용하면 고발조치 당하고, 부당한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내고, 감옥에 가야한다면 말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유럽 국가에 거주권을 갖고, 일을 하며, 세금을 내고, 가족과 함께 시민으로서 살고 있는데, 갑자기 ‘유럽의 한국화’가 걱정된다면서 김치 먹는 것을 문제 삼고, 명절에 제사 지내는 것을 이성을 잃은 사이비 종교에 빗대며, 한국의 오랜 전통문화중 하나인 단군신화에 대해 잡신 취급하는 만평을 내놓는다면, 이런 식으로 한국 관련 허위사실과 부정적인 내용들을 비약해서 유포한다면 당신은 이것을 무엇이라고 규정할텐가?
‘유럽의 이슬람화’라는 언어 자체가 가져오는 이슈가 바로 그러한 네오나치들이 조장하는 증오에 불과하며, 인종 차별 그 자체일뿐이다.
‘부르카착용금지법’ 이외에도 유럽에는 무슬림들에 대한 종교탄압이 계속해서 있었다. 수 십명을 학살한 브레이빅이 자신의 선언서 ‘유럽독립선언문’에서 밝힌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유럽에서 네오나치들은 무슬림과 어울려지낸다는 이유만으로도 유럽원주민들을 납치해 린치하고 숲에 버리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 전혀 고려치 않고, 지금의 테러 자체만으로 이슬람 종교 자체가 문제라는 식으로 몰고가는 것이 네오나치들이 원하는 것이다. 반대로 앞으로 다가올 평범한 무슬림에 대한 차별적 시선들이 이 평범한 무슬림들을 부당함에 빠트리고, 이로 인해 극단주의자가 되도록 것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네오나치들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해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고 전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왜 무슬림들이 유럽에서 살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거기에는 여러 복잡한 정치적, 역사적 배경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일단 독일의 경우를 소개하겠다.
독일의 인구 10분의 1이 터키계인 이유로서 2차대전 당시 히틀러를 피해 독일인들이 터키로 망명을 떠났고, 터키가 그 독일인들을 도왔다. 종전 이후에는 독일인 교수들이 이스탄불에 영구거주하는 등 터키의 대학에서 학문을 나눌 정도로 교류가 많았기도 했다. 또한 지금은 터키의 사회주의자들이 터키 정부의 정치탄압을 피해 독일로 넘어오고 있다.
그보다 터키인들이 독일에 정착하게 된 중요한 역사적 배경으로는 2차대전 패전 이후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독일 경제 부흥기에 ‘Gastarbeiter’라는 이름으로 해외 노동력 수입을 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가 독일로 파견된 것과도 관련 있는 것이다. 1960년대~ 1970년대에 엄청난 숫자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독일에 유입되었고, 그중 인접국이면서도 값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었던 터키 노동자가 집중적으로 유입되었다. 1973년의 오일쇼크로 독일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모집을 정지했으나 터키인 이주자들은 노동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독일을 떠나지 않았고, 정착을 선택했다. 특히나 이민 3세대에서 4세대로 넘어가고 있는 현 터키 이민자들의 사고방식은 점차 독일에 젖어가고 있으며,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더 이상 터키인과 독일인의 구별이 무의미한 정도로 그 과정이 진행되었다.
이 밖에도 여러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들이 있는데, 이 사실들을 모두 재껴놓고 지금 ‘유럽의 이슬람화’가 문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론인 혹은 예술가들이 종교에 대한 풍자를 하는 것은 문제의 지점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비하로서 타문화를 배척하고 차별하는 수단이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단지 비하와 차별, 배척 이외에도 유럽의 네오나치들이 무슬림들을 테러하고, 살해하여 희생된 사람들이 수 백명이 넘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유럽에서의 이슬람 극단주의는 이슬람 자체만의 문제로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러한 이유들로 하여금 독일의 대표적인 보수 우파인 메르켈 총리마저 ‘유럽의 이슬람화’라는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인종차별적 요소들을 엄단하겠다고 공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 PEGIDA가 하는 말을 다시 상기해보자.
그들은 ‘유럽의 이슬람화’로부터 유럽을 구해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유럽의 이슬람화’는 실재하는 것이 침략적인 형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유럽 사회의 한 모습일 뿐이다.
PEGIDA는 자신들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망명자를 더이상 받을 수 없다면서 망명자 추방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 나토군을 통해 아랍과 아프리카 정치에 개입해 전쟁을 일으키고, 폭격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선, 되돌아가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망명자들의 삶을 모른척 하는 것은 침략을 정당화 하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정당하게 국적을 취득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슬람 사람들이 그들 고유의 문화를 영위 하는 것을 위협으로 여기고, 비아냥 거리는 것이 비하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들이 당신에게 무슬림이 되길, 정상적인 포교이상의 강권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현재 유럽의 다문화 정책은 유럽의 우파들이 고안한 것으로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맞물려 고급 외국인 인력만을 받아들여 자국 하층계급과 타국의 하층계급 모두를 차별하는 정책이라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브레이빅의 학살극 이후로는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때문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중심으로 만들어진 다문화 정책을 수정하고, ‘동화주의(Assimilation)’가 아닌 사회통합(Intergration)’의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PEGIDA와 네오나치를 비롯해 외국인을 주로 혐오하는 주계층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빈곤을 겪고 있는 계층인데, 네오나치들은 이들에게 외국인들이 자국인들의 일자리와 자국인 여자들을 뺏아가고, 문화를 무너트리고 있다고 선동하고 있다.
재작년 베를린에서는 네오나치 정당 NPD가 이슬람 비하 상영회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자 제 1 보수여당인 CDU가 나서서 ‘인종차별’과 ‘종교박해’를 근거로 상영회금지가처분신청을 했고, 이에 제 1 좌파 야당인 사민당(SPD)가 상영회 내용이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표현의 자유 그 자체는 존중 되어야 한다며 상영금지가처분신청 취소를 요구했다. 뭐랄까, 한국에서는 좀처럼 상상도 할 수 없는 묘한 그림이었다.
다시 테러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테러에 희생당한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게는 어떠한 말로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를정도로 비극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사건의 전부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다른 기사들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풍자전문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는 신간에서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화 수 컷이 실린다고 미리 밝혔다. 표지에는 ‘앵투샤블(iNTOUCHABLES, 건드릴 수 없는)이란 제목으로 프랑스 영화에 빗대어 무슬림과 정통 유대교도가 “비웃지 말라”고 말하는 컷을 표지로 발행했다. 신성비판에 불관용적인 두 종교를 두고서 말이다. 스테판 샤르보니에 편집장은 “충격을 받고 싶은 이들에게 충격을 줄 것” 이라며, 이 만화가 무슬림을 자극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의도된 것이라 말했다. 또한 이를 두고 ‘언론의 자유’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샤를리 엡도는 수 차례에 걸쳐 자극적인 삽화를 넣어 발행했다.
프랑스 최고 이슬람 성직자인 달릴 부바퀘르는 400만 신도에게 자중을 호소하면서도 “이슬람권에서 고조된 분노를 확대시킬 수 있다” 고 샤를리 엡도 측에 경고 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염두해 이슬람권 20여개국 재외공관에 이슬람 예배일 21일 하루 휴업을 지시하였고, 같은 날 예정된 전국의 모든 무슬림 시위를 불허했다. 하지만 잡지 발간은 방관했다. 장 마르크 애로 총리는 “프랑스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면서도 “다만 만화로 권리를 침해받은 개인들이 법원에 제소하는 것은 가능하다”라며 모호하게 나마 샤를리 엡도가 무슬림에 차별적 풍자를 했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결국 프랑스 최고 이슬람 성직자 달릴 부바퀘르의 의도와 달리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인해 이 문제는 PEGIDA와 결부되어 악재가 될거라는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중들 사이에서 경계해야할 이슬람 극단주의와 이슬라모포비아의 간극이 모호해질 것이기 때문에, 불행히도 PEGIDA는 더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크게는 이 문제가 앞으로 유럽의 10년을 뒤흔들어놓게 될 것이라는 분석들도 있다.
어떤 의도에서든 이번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다. 왜인지는 지금 일어난 테러의 잔혹함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모두 설명할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희생자들과 희생자들의 가족들에게 삼가조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는 유약함에 절망하는 것일뿐일까? 이 잔혹한 테러는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