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암 촘스키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낸 편지

노암 촘스키 교수가 제주도의 평화를 위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ㅡ 이하 번역문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님,
당신도 알다시피 1948년부터 1949년 사이에 제주도에서는 약 4만명의 주민들이 미국의 임시 군사정부 통제 하의 한국 군대에 의해 학살되었습니다. 학살이 남긴 것은 50% 이상의 거주지들이 파괴된 것이며, 4만명의 생존자들은 일본으로 망명을 떠났으며, 생존자와 자손 등의 가족들은 비극적인 외상과 외상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70년 후, 비극적인 폭력의 역사는 다시 제주도에서 반복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2015년 1월 31일, 3000명의 해군 거주건물 공사장 앞에서 24시간 평화 시위를 벌이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1000명 이상의 용역들과 경찰이 한국군이 지원하는 강제적 행정대집행이 예상됩니다. 우리는 정중하게 당신이 한국의 군대와 경찰이 강정 마을에 계획된 공격을 중지 할 것을 요청합니다. 당신은 사회적 합의, 인권 존중, 그리고 정의의 정책에 따라 국가를 이끌어 갈 것이라며 당신의 전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철권정치로부터 떠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당신이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인도주의에 기초하여 1월 31일에 강정 마을에 계획된 공격을 중지해주시길.
경의를 표하며,
ㅡ 노암 촘스키

 

ㅡ 이하 원문 ㅡ

 

‪#‎Breaking‬ ‪#‎Noam_Chomsky‬ via ‪#‎Simone_Chun‬

 

[Chomsky appeals for peace in ‪#‎Jeju‬ Island]
Honorable President Park Geun-hye:
As you know, between 1948 and 1949, approximately, 40,000 residents in Jeju Island were massacred by South Korean army which was at the time under the control of the U.S. Interim Military Government. The massacre left more than 50 percent of homes in Jeju Island destroyed, 40,000 residents seeking refugee in Japan, and survivors, descendants, family members with tragic memories and trauma. More than 70 years later, the tragic and violent history seems to repeat in Jeju Island.
I have learned that on January 31, 2015, more than 1000 scabs and police force supported by the Korean army are expected to forcefully disband villagers and activists who have been engaging in a peaceful 24-hour protest in front of the construction site of the new housing for 3000 navy personnel. We respectfully request that you stop the planned attack on Gangjeong villagers by the Korean army and police. You had promised a departure from the iron-fisted policies of your predecessor, declaring your intention to lead the nation based on a policy of social consensus, respect for human rights, and justice. We hope that you keep your promise.
Please stop the planned attack on Gangejong villagers on January 31st based on humanitarian grounds.
Respectfully,
Noam Chomsky

Desire – If I can’t hold you with korean translate

https://www.youtube.com/watch?v=v1FuMLGRnP0

 

I lay awake all night long
난 밤새 깨어있는 채로 누워있었지
I lay awake all night long
밤새 잠들지 않은 채로 누워있었어
Yesterday is so far away
어제는 너무 멀어졌지
I think of things we’ll never do
우리가 절대 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어
It keeps me up all night long
그건 밤새 날 지켜줬지

 

I lay awake all night long
난 밤새 깨어있는 채로 누워있었지
I lay awake all night long
밤새 잠들지 않은 채로 누워있었어
Yesterday is so far away
어제는 너무 멀어졌지
I think of things we’ll never do
우리가 절대 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어
It keeps me up all night long
그건 밤새 날 지켜줬지

 

I spend my time all alone now
이제 나는 내 모든 시간을 혼자 보내
I spend my time all alone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지
I try to call you on the phone
네게 전화하려 해봤어
Even though you won’t be home
너가 집에 있기 싫어하던 때도
I spend my time all alone
나는 혼자 시간을 보냈지

 

I can’t dream about you if I can’t hold you tonight
오늘밤 네가 널 갖을 수 없다면, 난 널 꿈꿀 수 없을거야
I can’t dream about you if I can’t hold you tonight
오늘밤 너와 함께 할 수 없다면, 널 꿈꿀 수 없을거야
I can’t hold you tonight
그리고 난 오늘 밤 너와 함께 할 수 없네
I can’t hold you tonight
오늘밤 널 갖을 수 없네

 

I lay awake all night long
난 밤새 깨어있는 채로 누워있었지
I lay awake all night long
밤새 잠들지 않은 채로 누워있었어
I’ve traveled a thousand miles
나는 수천 마일을 여행했고
And seen a thousand shores
수 천의 해안가들을 보았지
I ask myself…
난 내 스스로에게 물었어

 

I can’t dream about you if I can’t hold you tonight
오늘밤 네가 널 갖을 수 없다면, 난 널 꿈꿀 수 없을거야
I can’t dream about you if I can’t hold you tonight
오늘밤 너와 함께 할 수 없다면, 널 꿈꿀 수 없을거야
I can’t hold you tonight
그리고 난 오늘 밤 너와 함께 할 수 없네
I can’t hold you tonight
오늘밤 널 갖을 수 없네
I can’t hold you tonight
그리고 난 오늘 밤 너와 함께 할 수 없네
I can’t hold you tonight
오늘밤 널 갖을 수 없네

 

I lay awake all night long
난 밤새 깨어있는 채로 누워있었지
I lay awake all night long
밤새 잠들지 않은 채로 누워있었어
Yesterday is so far away
어제는 너무 멀어졌지
I think of things we’ll never do
우리가 절대 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어
It keeps me up all night long
그건 밤새 날 지켜줬지

 

I [?] put a flower on your grave
난 네 무덤 위에 꽃 한송이를 놓았네
I [?] put a flower on your grave
네 무덤 위에 꽃 한송이를 두었지
We both know that you’re not dead
네가 죽지 않았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지
But sometimes it hurts so bad
하지만 가끔 그건 너무 아파
I just don’t know what to do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I can’t dream about you if I can’t hold you tonight
오늘밤 네가 널 갖을 수 없다면, 난 널 꿈꿀 수 없을거야
I can’t dream about you if I can’t hold you tonight
오늘밤 너와 함께 할 수 없다면, 널 꿈꿀 수 없을거야
I can’t hold you tonight
그리고 난 오늘 밤 너와 함께 할 수 없네
I can’t hold you tonight
오늘밤 널 갖을 수 없네

dx3: 짧은 소회

안녕하세요, dx3를 만들어가면서 들었던 짧은 소회를 나눠볼까 합니다.

 

dx3와 유사한 다른 페이스북 페이지나 온라인 매거진이 있는데, dx3는 문화, 예술, 정치, 철학 전반을 다루기도하지만 아무래도 펑크와 아나키즘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보니 다른 매체들과는 차별성이 있나 봅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 아니라 dx3 모델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구독하는 非한국어권 친구들이 있기 종종 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dx3는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단 275개의 아주 작은 매체입니다. 가끔은 10만이 넘는 포스팅뷰와 수 백의 좋아요, 수 십의 공유를 기록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수십~ 수백에 만족하는 페이지이기도 합니다.

 

처음 dx3를 만들 때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지금은 저 혼자 글을 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dx3는 ‘위치의식’과 ‘방향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완전 비영리를 추구하고자 광고는 커녕 기부도 받지 않기 때문에 기고자에게 아무런 페이를 주지 못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그와 동시에 짧은 글이 파급력을 갖는 SNS 시대에 (페이 없이) 긴글 쓰기는 다소 부담이 컸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저 또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만, 언제부턴가 기록이, 일종의 아카이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습니다. 하지만 ‘나는 게으른게 아니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야’라는 핑계로 지금의 dx3 만드는 일을 수 년 동안 미뤄왔습니다. 그렇게 예전의 일들이 잊혀지고, 지워지고 있었고, ‘아직은 이르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살다가는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겠구나, 똑같은 아침의 햇살을 맞이하고, 똑같은 꿈을 염원하며 그렇게 모든 것들을, 나를 방치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혼자라는 것에 개의치 않고, 일단 꾸준히 뭔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본래는 미로 같은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을 번외로 사람들이 읽기 좋은 글쓰기는 여전히 쉬운 것이 아닙니다만, 감사하게도 제가 보는 시각이 괜찮다고 여기셨는지, 대여섯 매체들과 기고 이야기가 오갔었습니다. 미안스럽게도 반년을 넘게 확답을 드리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제가 확답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단지 페이나 저작권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 매체에 글을 내려면 더 큰 책임감도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매체의 성향과 제 글이 맞는가 였고, 또한 읽는 사람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꾸준히 하는 일이었지요.

 

그나마 이제는 좀 정리가 된 듯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독일 친구와 함께 PEGIDA, 네오나치 그리고 독일 안티파, 아나키즘 운동에 대해서 기획 기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습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PEGIDA 같은 경우는 기사 하나 혹은 두개로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만, 네오나치와 안티파, 아나키즘에 관한 내용들은 60여년에 해당하는 방대한 이야기들이라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또한 독일의 정치지형과 운동에 대해서 모르는 이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써가야하는데, 생각해보니 하나를 소개하기 위해서 두개, 세개의 글을 써야하는 상황이 예상되면서 굉장히 난감했습니다. 아니, 이 문제는 여전히 난감합니다. 이를테면 안티파나 아나키즘을 극좌 운동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안티파나 아나키즘은 극좌 운동이 아닙니다. 독일 역사에서 극좌 운동이라면 ‘적군파’가 되겠죠. 어디까지 세세하게 설명을 해야하는지, 이미 아시는 것들을 또 다시 적어내려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것들이요. 아무튼 이러한 문제로 연재 기사가 혹은 아카이브 형식으로 공개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고민하며 미룰 수 만은 없는 일이라 일단 기사의 뼈대는 잡았습니다. 물론 이 것에 대해서도 같이 기사 쓰는 친구와 회의를 해봐야 하고, 곧 베를린의 주류 안티파 그룹중 하나와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계속 수정해나가야겠죠.

 

아마 이 기획 연재 기사는 dx3에서 처음으로, 아니 한국 내 매체에서는 처음으로 다루는 독일의 정치, 문화, 역사, 운동에 대한 것이 될 것입니다. 몇 분들께 미리 방향을 이야기 드렸더니 몇 매체에 발행하는 것은 어떨까하고 소개해주셨는데, 아마 dx3는 물론이고, 그 매체들 중 하나에 연재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미 이야기를 나누었던 다른 매체에 계신 분들께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해야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획 연재에 대한 것일뿐이지, 앞으로 모든 dx3의 글들이 특정 매체에만 동시기고 되지는 않을 것이고, 새로운 글에서는 사안과 방향 등이 맞는 매체와 그 때, 그 때 달리해서 기고할 생각입니다.

 

별 것도 아닌데 이야기가 길었죠? 제가 원래 쓸데없는 생각이 좀 많습니다. 저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에게는 종종 피곤한 사람이죠. 독일의 PEGIDA, 네오나치, 그리고 안티파와 아나키즘에 대한 이번 기사는 물론이고 평소 궁금했던 것들, 소개 되었으면 하는 것 등등 여러 질문들을 주시면 참고해 더 좋은 글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dx3는 자발적 참여를 통한 새로운 기고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용이나 형식에 구애 받지 않으셔도 되며, 더욱이 dx3는 노르웨이 소재의 아나키스트들의 서버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인신매매, 무기밀매, 강간, 살해 모의 같은 것들이 아니라면 어떤 내용의 기고던지 반기고 있습니다.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가 유해사이트로 지정하지만 않는다면, 부당한 수사나 압력을 받지 않고 기고 하실 수 있으나 원하신다면 익명 혹은 또 다른 필명으로 기고하실 수 있습니다. 기고 내용과 형식은 자유입니다. 칼럼이나 리뷰도 좋고, 시나 수필, 소설 등이 되어도 좋으며 비디오나 그림과 같은 작업, 혹은 라이프 해킹, diy 레시피 같은 것도 좋습니다. 모두 좋은 주말 되시길 바라며.. 언제 스카이프로 함께 술잔을 들며 대 연회를 합시다! 이 (존나) 쓸데 없는 소회는 여기서 끝//// ㅡ http://dx3.a-revolt.org/

Desire – Don’t call with korean translate

You’re gone
넌 가버렸고,
And babe that’s a good thing
자기야 그건 좋은 일이야
I’m still here
난 여전히 여기 있고,
And looking for something
뭔갈 찾고 있지
To come along, to come along
나를 따르는, 그런 것들
I know, I know
나도 알아, 나도 알아
We both say the same things
우리 둘다 같은 것을 말했었지
I don’t care, I don’t care
난 신경 안써, 개의치 않아
About winning
이기는 것에 대해서
So don’t call, don’t call
그러니 연락하지마, 연락하지마
To talk about nothing
아무 것도 말할게 없다면

 

So many times
그래서 많은 시간
I waited for you
난 널 기다렸어
I figured it out
내가 해결하려고,
And now we’re through
그래서 지금 우린 끝장나고 말았지
I wont give up, I wont give in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 아무 것도
I know, I know
나도 알아
We both say the same things
우리 둘 모두 같은 것들을 말하지
I don’t care, I don’t care
난 신경 안써, 개의치 않아
About winning
이기는 것에 대해서
So don’t call, don’t call
그러니 연락하지마, 연락마
To talk about nothing
아무 것도 할 말이 없다면

 

You’re gone
넌 떠났어
And babe that’s a good thing
자기야, 그건 좋은 일이야
I’ve spent my days working for something
나는 뭔갈 하느라 내 인생을 보냈지
We don’t give up, we don’t give in
우린 포기하지 않아, 우린 아무 것도
I know, I know
나도 알아, 나도 알아
We both say the same things
우리 모두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I don’t care, I don’t care
신경 안써, 개의치 않아
About winning
이기는 것에 대해서
So don’t call, don’t call
그러니 연락마, 연락마
To talk about nothing
아무 것도 할 말이 없다면

Molly Nilsson – Punks in paradise with korean translate

 

We’re gonna have a party
우리는 파티 하러 갈거야
That never starts and never ends
시작도 끝도 없는 파티
Inviting all the broken party
모두를 초대할거야
All our foes and our friends
모든 우리의 원수들과 친구들을
Say …. showed?but not to play
말해봐 …. 보였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았는걸
Loose them again
다시 느슨한 관계가 되어
Too much fun will kill you It’s true
너무 재미있는 것들은 널 죽이게 될거야, 그건 진실이야
I’ll know one day when we’re dead ….
나도 언제 우리가 죽을 것이란걸 알아
Punks in paradise instead
낙원에서의 펑크들 대신에

 

Too much fun will kill you It’s true
너무 재미있는 일들이 널 죽이고 말거야, 그건 사실이야
But too much boredom too (2x)
하지만 너무 재미없는 일들도 널 죽이고 말겠지

 

My friend he says love is lethal
내 친구가 말하길 사랑은 너무 치명적이래
And he should know
그리고 그가 그걸 알아야만 한대
It … our lives and then it goes
그 … 우리의 삶들과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과
Spent too many nights …your bed
너무 많은 밤들을 네 침대 위에서 보냈어
And even if the next you cry
다음에 네가 울게 되더라도
I know
나도 알아
it’ll always be punks in paradise
펑크들은 항상 낙원 속에 있을거야

 

Too much fun will kill you It’s true
너무 재미있는 일들이 널 죽이고 말거야, 그건 사실이야
But too much boredom too
하지만 너무 재미없는 일들도 널 죽이고 말겠지

정어리 – 50

최근들어 하고 싶은 말들이 조잘조잘 참도 많았는데, 오늘 저녁 감자국에 오이무침으로 친구들과 단촐한 식사를 하고나서 나는 그 이야기들을 가슴 속 서랍에 넣어두었다. 배달된 맥주 20짝, 지하 맥주창고에 옮기는 것을 도와주고 나서 맥주 들지 않겠냐는 말에 나는 손사레질을 쳤다. “고맙지만, 그건 금요일 저녁으로 미뤄둘게.” 입가심으로 올리브 몇개를 집어든 손가락을 핥아가며 쉰 번째 정어리를 썼다.

 

 

그는 일주일 전까지만해도 이 거리에서 유명한 아편 중독자였다. 단지 아편을 달고 살기 때문에 그가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아편중독자들과 달리 아편을 통해 세계를 풀어놓았다. 그 세계는 유달리 빛나 보였고,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아편을 그만두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더욱 괴로워했다. 대개 앎이라는 것은 모든이가 찬양하는 것이지만, 그들보다 더 알고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보이는 이에게는 앎이란 것이 거부할 수도, 마냥 끌어 안을 수도 없이 괴로운 것이다. 그랬던 그의 모든 것은 일주일 전까지의 일일뿐이다.

 

그는 늘 아편을 그만두고 싶어했다.
아편을 내려놓고, 다른 세계를 보고 싶어했다.
그렇게 그는 이제 아편중독자에 헤로인중독자까지 되었다.

 

 

ㅡ 2015년 1월 17일, 새벽 Frida와 Neukölln의 Warthestraße를 걸으며

 

 

1200년 초중반 베를린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베를린은 지금의 슈프레 강을 사이에 두고, 프리드리히 샤인의 4분의 1정도 되는 지역과 노이쾰른의 4분의 1정도 되는 지역을 Berlin과 Cölln이란 이름으로 양분된 도시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8800정도의 거주민과 1100개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슈프레강을 끼고 성이 이 두 지역구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곽은 오늘 그 자리에 없다.

Event: 1월 31일, 해방촌 빈가게, 아나키스트 모임

해방촌 아나키

1월 31일 서울, 해방촌, 빈가게, 저녁 7시 30분부터 아나키스트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조약골씨는 올해 열릴 에코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하고, 여러분도 참석해 여러 이야기들을 하고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하는 계획들을 이야기 하실 수 있습니다. 공연 또한 준비 되어있으니 참석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평소 아나키즘에 대해 관심만 있었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 망설이며 글만 읽었던 분들께서도 이 기회에 다른 아나키스트들을 만나 아나키즘을 어떻게 삶에서 실천하고 있는지,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함께 이야기 해보면 좋겠습니다.
해방촌 빈가게 주소는 서울시 용산동2가 19번지 1층입니다.

 

Direct action gets satisfaction!

Exhibition Review: Bartleby, Jason Honea, Modern Shamanism

Saturday 24th January // 19:30 // THE SHITTY LISTENER live + KRAPOOLA MANOSLIGERAS at Bartleby & Co.

 

어제 노이쾰른의 작은 서점 Bartleby에서 Jason Honea의 퍼포먼스를 봤다. 그는 엊그제 마흔 일곱살 생일 선물로 Circle jerks 티셔츠를 받았다며,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얼큰히 취한 그는 여러차례 자신의 벨이 어디로 사라졌냐며 관객들 앞에서 자기 친구들을 향해 호통을 쳤었는데, 결국 벨을 찾지 못해 키체인으로 종소리를 대체했다.

 

제이슨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출신이고, 80년 대 펑크 씬을 향유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살던 동네에는 온갖 갱들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아시안 갱, 치노 갱, 러시안 갱, 아일리쉬 갱… 그런데 이 빌어먹을 갱들은 하나 같이 ‘화이트 스키니 어메리칸’을 싫어한다는 것. 제이슨의 친구들은 줄곧 이 갱들에게 얻어터지기 일쑤였고, 그 중 몇몇은 그 갱들의 총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그는 “대체 우리는 어딜 향해 가야 하는걸까?” 하고 물었다. 키체인을 흔들기 시작했고, 스케잇 펑크 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또 가슴을 세차게 치며, 자그마한 원 모양으로 서점 내부를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한을 달래기 위해 주술을 외는 ‘모던 샤머니스트’ 처럼 보였다. 물론 아무도 그를 샤머니스트라고 보지 않았고, 그는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은 헐렁한 청바지를 입은 마흔 일곱살의 펑크였다. 조금은 외로워 보였던 그는 그 빌어먹을 캘리포니아가 그립다고 하였다. 디아스포라, 우리 모두 유목민이며 또 난민이다.

 

방금 자다 일어난 듯한 헝클어진 머리에도 반짝거렸던 그와 한잔 하고 싶었지만, 그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 차 트렁크를 부여잡고, 토하고 있었다. 기회가 있다면 언제 한잔 할 수 있겠지.

 

 

 

An american artist Jason Honea’s performance was over there, and celebrated his 47th Birthday with few wine bottles.
 
He started talk from his birthday gift ‘Circle Jerks’ t-shirt. He was very drunken, and yelled to audience more than 10 times about his Bell, even though no one understood what’s mean the Bell in this moment. So he used his key chain instead of the Bell.
 
He raised up in San Francisco, California, enjoyed well 80’s punk scene. In his town, there was so many different gangsters. Asian gang, Chino gang, Russian gang, Irlish gang.. btw all the gangs hate ‘white skinny american guy’. So often, he and his friends beaten up by all of them, some friends died by gun shot. And he asked to audience: “Where should we go?” Then he shook his key chain like a Bell, and sung tone of Skate punk, and beat his Chest. He did that, while he walked round in the Bartleby. Yes, in that moment we could understand why he looked for the Bell.
 
I was very impressed. For me.. all that performance seems like a ritual by ‘Modern Shamanist’ for comfort sorrows. Of course, no one thought he is a Shaman. He was just 47 years old punk, who wore big old jean. He missed so much “God damn California”. Kinda nomad, cultural refugee and diaspora.
 
This time was first moment on me, to think what is Shamanism. Few month later-, May day, when we hang out to Göli with Mattias.. that time I thought ‘Urban Shamanism’. Thousand people in the park without ruling, and Mattias tried help unknown guy, I impressed whole thing.
 
However when this performance finished, he ran out to the street. His hands holding a car trunk, and puking several times.

샤를리 엡도, 표현의 자유

fucking hell, in korea who speak out “je suis charlie”, someone of them saying ‘nazism has also freedom of speech’. what can i do with this idiot?

 

“나도 샤를리다”를 외치는 사람 중에 ‘나치즘’과 같은 범죄를 찬양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는 사람과 마주쳤다. 이런 범죄 옹호자들과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불관용은 관용주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차별에 대해서는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

 

 

지난 글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짧게나마 이야기 해보겠다.

 

교황의 의견이 별 의미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상당하겠지만, 얼마 전까지 교황의 행보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교황조차 “샤를리 엡도의 인종차별적 만평을 비판하며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 받아들여지지 않아야 한다” 라고 한 것에 대해서 가벼이 넘기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외면하기가 더 편리하겠지. 샤를리에 대한 비판적 관점 없이 “나도 샤를리다” 를 일단 외치고 보자 했던 사람들은 벙찐 기분까지 들것이다.

 

내가 테러 직후 말을 아낀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 문제를 단순히 ‘표현의 자유’와 ‘테러’ 간의 구도로 볼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러 직후, 프랑스 언론을 중심으로, 그리고 한국에서는 프랑스의 한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나도 샤를리다”에 대한 기사를 상당량 내보내었다. 나는 단정적으로 샤를리 엡도에게는 무비판적인 접근을 했던 것이 좀 성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여가 지난 지금 유럽에서는 일방적으로 “나도 샤를리다”라고 외칠 수 없다는 반대의견들이 이제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샤를리 엡도 테러 직후, “나도 샤를리다” 라고 구호를 외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은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아흐메드다” (샤를리 테러에서 테러범들이 살해한 무슬림 경관) 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테러 직후, “나도 샤를리다” 를 외친 사람들은 무슬림 경관이었던 아흐메드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럴 기회가 없었던 이유에는 당시 언론들은 희생자 수와 샤를리 엡도와 경관의 죽음만 다뤘을 뿐 그들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테러범들이 누구의 아이들인가 하는 배경에 이야기도 실리지 않았다. 테러범들은 그저 잔악무도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로만 그려졌었는데, 사실 프랑스 사회에서 좌절된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는 이야기들이 이제서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오늘 베를린에서는 샤를리 테러 이후 드레스덴에서 살해 당한 20살 청년 ‘바래이’를 추모하며, 반무슬림 운동을 부추기는 세력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살해당한 ‘바래이’ 이외에 테러 이후 반이슬람 범죄가 못해도 스무건 이상이 된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이런 것들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는 살해당한 청년 ‘바래이’ 대한 기사가 연합뉴스를 통한 단 한건에 불과하다.

 

“나도 샤를리다” 는 내게 명령처럼 보인다. 아마 이것을 외치는 사람들에게도 시대의 요구이자 시대의 명령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이 명령이 어딘지 불편하다. 네오나치들이 샤를리 엡도 지지자들처럼 “나도 샤를리다”, “표현의 자유!” 하고 외치는 현상에 대해서 제대로 대답하고 있지 못한 부분이 계속 우리 곁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계적으로 “네오나치의 경우는 다르다”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는 충분한 ‘왜’가 따라야한다. 네오나치의 인종차별의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그렇다면 샤를리 엡도는 인종차별의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냐는 질문을 다시 할 수 있겠다.

 

세계 정상들이 “나도 샤를리다”를 외치면서 행진했다. 사람들은 이 세계정상들의 연대에 환호를 질렀지만, 사실상 이 정상들의 행진은 독일 중심의 유럽 경제체제 논리로 진행 된 것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아래 링크의 사진에서 그들의 위치를 보자면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까지 한다. 또한 가자에서 수천명을 살해한 네타냐후가 무슨 자격으로 “나도 샤를리다”를 외칠 수 있냐는 것이다. “사진보기

 

샤를리 엡도가 마이클 잭슨의 부고에 인종차별적 만평을 내고,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아랍의 봄’ 혁명에 대해 조롱했던 만평들이 차별이라는 것들은 이제는 조금 더 명확해 보인다. 샤를리 엡도 창간 멤버조차 말하길, 샤를리 엡도의 차별적 만평 수위가 높다는 이야기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 왔었고, 샤를리 엡도가 모든 종교에 대해 동등히 비판하는 만평을 내보냈다는 것은 유대주의를 비판하는 만평을 그린 만화가를 해고 하기도 하는 등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이미 형평성 논란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 나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마주친다. “무슬림이 원래 미개하고, 야만스럽다”는 말들이 나를 아프게 만든다. 피터 스피어가 자신의 저작 <온 세상 사람들>에서 “우리는 역사에서 배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라고 했던 말이 내 머리 속을 맴돈다.

 

ㅡ 아직 결론 내리지 않은 글입니다. 제 글은 참고만 하시고, 판단은 각자의 책임입니다. ㅡ

 

 

쌍용자동차, 마힌드라, 이효리, 노동운동

 

 

나는 이 사진에서 참담함이 보인다. 마치 노예가 주인에게 온정을, 자비를 호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한국 운동의 비참한 현실을 생각했다. 마힌드라가 초국적기업이기에 ‘인도의 가치와 온정을 보여달라’가 가져오는 아이러니 또한 존재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트윗은 내게 불편하다. 과연 인도인에게 무엇인가 호소하기 위해 굳이 요가 사진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이효리가 노동자들에게 연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도의 순수함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유럽에서 非아시아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내게 “North or South?”라는 질문을 늘 던져왔다. 이 질문이 지겨워질즈음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한참 모든 이의 귓가를 맴돌았다. 덕분에 나는 “South”라는 대답을 함과 동시에 “Wow, Gangnam style!”이라는 말을 항상 들어야 했다.

 

이효리의 트윗 이야기 하다 말고 갑자기 풀어놓는 나의 경험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해도 된다. 이에 대해 ‘무엇이 옳다 그르다’라며 정의 내리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고이즈미에 대한 한 일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스파게티! 마카로니! 소피아 로렌!(スパゲティ、マカロニ、ソフィア・ローレン!)

 

2005년, 미국, 조지아 주, 씨-아일랜드에서 개최된 제 30회 G8 회담에 참가한 고이즈미 총리는 6월 9일 기념 촬영 당시, 이탈리아 수상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게 “스파게티! 마카로니! 소피아 로렌!”이라고 외치는 기행을 벌였다고 한다.

 

이에 베를루스코니는 기가 막혀했고, 기자단으로부터는 “Shame on You! (부끄러운줄 알아라)”라는 항의까지 나왔는데, 고이즈미 그는 이에 대해 “땡큐! (サンキュ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한 非한국인들이 강남스타일을 소비하는 지점과 非인도인들이 요가를 소비하는 지점은 정말로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타 문화를 배척하지 않는다’라는 도덕적 우월의식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유행에 뒤지지 않는 쿨한 소비재이기 때문.

 

‘유스 오브 투데이’의 보컬이 뉴욕에서 요가 마스터를 하고 있는 것도 북미 백인 중산층의 가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 본의가 어땠든 말이다. 베를린도 뉴욕과 같은 분위기인데, 베를린에서는 ㅡ 백인 중산층의 가치만이 철저히 투영된 ㅡ Weinmeisterstr. 같이 힙스터들이 판치는 곳들에서 인도 이미지를 심어 광고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미로 “Fuck Yoga”라 그래피티 하는 운동이 생겼을 정도. 솔직히 내게는 그 이상으로 요가 자체가 쿨하다는 느낌이 없다. 서구 관점에서의 오리엔탈리즘 중 하나일뿐. 요가가 건강한 신체를 갖게 하는 것이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2015년 1월, 지금 요가가 소비되는 지점은 거기에 있다.

 

최근에는 서구 백인 중산층의 문화 중 피클 문화가 김치로 전이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김치 쪼가리 몇개 집어 먹으면서 마치 문화적 우월의식을 느끼는데는 답이 없다. 물론 김치는 맛있고, 친구들과 종종 ‘덤스터 다이빙’한 채소들로 담가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