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o the Scene, 2 – 펑크에는 좌우가 없다

어느 새인가 한국의 펑크/하드코어 씬에서 좌파, 우파 편이 갈린다는 논쟁이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채우기 시작했다. 딱 잘라서 이야기 하면, 펑크/하드코어에 본질적으로 우파란 것은 존재 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파 펑크/하드코어’ 라는 이런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는 대체 누가 왜 만들어 분란을 일으키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펑크/하드코어가 애국주의자라는 것도 황당한 이야기일 뿐이다. 극악무도한 무정부주의자나 빨갱이들이 펑크/하드코어를 통해 선전, 선동을 하고 있으며, 자신은 애국하는 건전한 우파 펑크라 누가 자신을 소개 한다면, 그건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펑크 밴드들이 빨갱이이며, 그 빨갱이들을 사랑하는 우파라며 고백하는 모순 속에 빠지게 된다. 이번 글은 펑크의 정치적 스펙트럼에 대해서 간단하게 다뤄봤다.

‘Well, the oppressors are trying to keep me down
압제자는 나를 짓누르려 하고
Trying to drive me underground
나를 지하로 몰아가고
And they think that they have got the battle won
그들은 전투에서 이겼다고 생각하고
I say forgive them Lord, they know not what they’ve done
난 주님께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얘기했고, 그들은 그들이 하는 짓을 모른다고’
– Jimmy Cliff 의 ‘The harder they come’ 중에서

스킨헤드 운동에 불을 지폈던 Jimmy Pursey는 본인의 밴드 Sham69의 스킨헤드 팬들이 인종문제로 싸움을 일으키자 무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Dead Kennedys 는 마초이즘과 민족주의, 인종주의를 부추기며, 어린 친구들을 유혹하는 밴드들에게 개소리를 집어 치우라며, 그들의 마지막 앨범 ‘Bed time for democracy’ 에서 ‘Chickenshit Conformist’ 를 통해 신랄하게 씬을 비판하며 해체 이후, 보컬 Jello Biafra 남미로 떠나 남미의 씬을 일구었다. 그라인드 코어를 이끄는 Napalm Death 는 반자본주의를 외치며, 아예 ‘우리는 음악 산업의 적이다’라 노래부르기도 했으며, 지금도 유럽에서 아나키스트들, 공산주의자들이 대거 모이는 공연들을 만들고 있다. 랜시드는 지미 클리프의 압제 억눌리는 빈민의 심정을 노래한 ‘the harder they come’을 커버했으며, 랜시드의 멤버 라스 프리데릭슨은 그의 서브 밴드 Lars Frederiksen and The Bastards 에서 영국의 민중 가수이자 국민 포크 가수인 Billy Bragg의 ‘To have and to have not’ 을 자신의 심정을 더해 커버했다.

‘well if you look the part well then you’ll get the job
가만히 분석해보면 직장을 구할수도 있을꺼야
in last year’s trousers and your old school shoes
작년에 입던 바지랑 작년에 있었던 일들.. 학교다닐때 신던 신발같은걸 분석해보면..
the truth is son it’s a buyer’s market
솔직히 현재 경제는 소비자를 위주로 돌아가고 있어
they can afford to pick and choose
그들은 상품을 선택하기 위해서 돈을 쓰지
just because you’re better than me doesn’t mean i’m lazy
네가 나보다 낫다고 해서 내가 게으름뱅이가 아니듯이
just because i dress like this doesn’t mean i’m a communist.
내가 이렇게 입었다고해서 내가 공산주의자라는 걸 의미하진 않아
well the factory’s are closing and the army’s full
그래 공장들은 문을 닫고 있고 직장이 없는 사람들은
다들 군에 입대하고 있지
i don’t know what I’m going to do
근데 난 뭘할지 아직도 모르겠어
but I’ve come to see in the land of the free
하지만 난 자유의 땅에 서기위해 여기에 왔고
there’s only room or a dozen few
우리가 설 곳은 이젠 거의 없어
just because you’re better than me doesn’t mean i’m lazy.
네가 나보다 낫다고 해서 내가 게으름뱅이는 아니지
just because you’re going forwards doesn’t mean i’m going backwards.
네가 한 걸음 나갔다고 해서 내가 뒤쳐진건 아니라구’
– Billy Bragg 의 ‘To have and to have not’

당신은 Sham69, Dead Kennedys, Napalm Death, Rancid 같은 밴드들을 빨갱이라고 할텐가? 이 밴드들 이외에도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펑크/하드코어 밴드들의 가사를 읽어보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해왔다면, 우파인 펑크/하드코어 밴드는 없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 고 있을 것이다. 네오 나치가 아니고서야 어느 밴드가 자신이 ‘우파 펑크/하드코어’ 밴드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펑크가 어떻게 애국주의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정치적 입장을 피력하는데는 다들 완곡하던 직접적인 표현법에 차이가 있지만, 세계 어디에도 우파 펑크/하드코어 밴드라고 주장하는 밴드는 없다. 그것이 네오나치나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비정상적인 극우 세력이 아니라면 말이다.

 

‘When the thugs form bands, look who gets record deals
From New York metal labels looking to scam
Who sign the most racist queerbashing bands they can
To make a buck revving kids up for war
폭력배들이 밴드를 만들 때, 뉴욕 메틀 레이블이 사기를 치며 누군가 음반 계약을 따낸다. 누군가 더 극렬한 인종차별주의적 퀴어밴드 괴롭히기 밴드에 사인을 하고, 그들은 (자신들만의) 전쟁을 위해 아이들에게서 돈을 만들어 낸다’
– Dead Kennedys 의 ‘Chickenshit conformist’ 중에서

 

지난 북유럽에서 네오나치들이 일부 블랙메탈 씬을 더럽혔던 것에 대해서조차 이미 청산되었고, 청산 하고 있는지 오래다. 유럽에서 우파 성향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펑크/하드코어/크러스트/그라인드/블랙/데스 메탈 밴드들이 공연장의 무대에 설 수도 없으며, 관객으로 입장 조차 안되고 쫒겨난다. 그것이 유럽 씬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때문에 그런 밴드나 관객들은 도시 먼 외곽에 네오 나치들이 모여 살며, 자신들만이 가는 공연장이나 바를 만들고 있고, 이것조차 유럽의 차별 금지법에 의해 엄격히 규제 받고 있다. 관용정신을 강조하는 유럽에서조차 불관용에 대한 관용은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Napalm Death의 ‘빨갱이여 영원하라’ 라이브

펑크에서 좌우를 논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면, 펑크는 기본적으로 아나키즘이나 좌에서 시작된 음악이고, 그렇게 역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참 간단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글이 더 길어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느낌 마저 든다. 앞으로도 연재될 이야기들에서도 재차 다루게 될 것이니 이번 글은 여기서 마무리 짓겠다.

 

누구라도 우파 펑크/하드코어 밴드를 찾는다면 반박해도 좋다. 하지만, 그 밴드가 네오나치나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극우 세력과 관련이 없어야 한다는 근거도 필수이겠지. 한가지 덧붙이자면, 일본의 SS(Samurai Spirit) 스킨헤드들은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극우 세력이다.

 

글의 마지막은 캐나다 출신의 크러스트/블랙 메탈의 여제라 불리는
dödsängel 의 wolven hatred 로 마무리 짓겠다.
 dödsängel 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 익스트림 밴드로서, 보컬/기타/베이스/드럼을 모두 맡고 있는 트리쉬가 10대 시절 크러스트로 시작해 크러스트/블랙메탈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밴드이다. 트리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물학을 전공, 멀리 북유럽의 노르웨이로 넘어가 이주한 후 이 프로젝트 밴드 를 만들었다. 이후 생물학 연구를 위해 북유럽의 최대의 고원지대인 하당에르빗다의 깊숙한 숲을 홀로 들어갔었으며, 2010년까지는 활동을 계속 해나갔으나 지금도 활동하는지 아니면 밴드를 그만둔 것인지는 알려져있지 않다. 트리쉬, 그녀는 유명해지기 시작하자 이를 회의하게 된 것인지 은둔하게 된 것으로 짐작되며, 이후에 그녀에 관한 온라인 상의 정보들도 하나둘씩 지워지고 있다.

2014년

”맙소사. 어젯밤 TV에서 섹스 피스톨스 봤어?”하고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나는 일하러 가기 위해 플랫폼에 서 있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섹스 피스톨스가 머릿기사를 장식한 신문을 보고 있었습니다. 신문에는 ‘TV에서 퍽(fuck)이라고 하다!’라고 쓰여 있었죠. 마치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라도 일어난 듯이 말입니다. 대단한 아침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사람들 혈압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 1976년 12월 2일 엘비스 코스텔로의 회상(나중에는 펑크 뮤지션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컴퓨터 엔지니어였다)
이 인터뷰에서 인터뷰이 엘비스 코스텔로는 76년 12월의 무뢰배들의 무례한 행동에 감화된 듯 해보인다. 그리고 이후로 마치 혁명이라도 일어난듯 해보인다. 그게 혁명이었는지 무의미한 시간이었는지는 각자 다른 해석을 두고 있겠고, 혁명의 본질에 대한 의미는 뒤로 미뤄둔채 이 인터뷰는 2014년의 우리들도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동시에 14년에는 할 수 있는게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76년 12월 이후로 사람들은 더욱 가열차게 벗고, 토하고, 뱉고, 싸고, 빨며, 핥고, 걷어차다 던지고, 부스고, 넣고, 빼고, 먹고, 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허버트의 곡선에 근거한 피크 오일처럼 우리가 할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말 하고 싶다. 그 이유에 대한 근거는 비오는 금요일 밤의 디오니소스가 되길 자청하는 나를 두고 여기서 생략하여 이후에 다루겠다. XDXD

Terrorgruppe – Destroy the Krauts with korean translate

 

Destroy The Krauts
독일 놈들을 때려부수자!

 

Wagner, Bach und Karaian
바그너, 바흐 그리고 카라얀 (독일 나치들이 사랑한, 또는 나치에 부역한 클래식의 대명사들)
Fahrvergnügen, Autobahn
운전의 즐거움, 아우토반
Volkswagen, Mercedes Benz,
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
Rammstein, Heino, Skorpions,
람슈타인, 하이노, 스콜피온스, (하이노는 독일의 유명한 포크싱어)
Hofbräühaus, Oktoberfest,
맥주양조장, 옥토버페스트,
Deutschland, Deutschland very best
도이췰란트, 도이췰란트
Heidelberg, Gemütlichkeit,
하이델베르그, 아늑함,
but many Ausländerfeindlichkeit,
하지만 외국인 증오,

 

Destroy the Krauts
독일 놈들을 때려부수자!

 

Weizenbier, Wurst und Kraut
밀맥주, 부어스트와 크라우트!
Heidi, Ingrid, Edeltraut
하이디, 잉그리드, 에델트라우트
Siegfried, Werner, Hans und Rolf
지크프리드, 베르너, 한스와 롤프
ohhhh I forgot Adolf
오 내가 아돌프 히틀러를 잊었군!
Wirtschaftswunder, deutsche Bank,
경제 발전의 기적, 도이췌 방크,
Rheinmetall und Leotank,
순수한 금속과 레오탱크, (독일의 우수한 철강 자원이 유명합니다)
Bundeswehr und BGS
독일 연방 방위군과 연방 국경수비대
Gestapo, Wehrmacht und SS
게슈타포, 국방력과 나치친위대

 

I don’t know the name for it (영어)
무엇을 위한 이름들인지 모르겠어
I just call it stupid shit (영어)
난 그걸 멍청한 똥덩어리라 부르지
ich nix wissen wie das heisse (독일어)
무엇을 위한 이름들인지 모르겠어
ich es nennen, grosse scheisse (독일어)
난 그걸 멍청한 똥덩어리라 부르지

Fidlar – The Punks Are Finally Taking Acid with korean translate

[youtube=://www.youtube.com/watch?v=OfXOZl38Slk&w=560&h=315]
이 곡은 번역하면 맛이 안 살 것 같아서 안하려고 했지만,
그런게 어딨음? 닥치고 그냥 함ㅇㅇ
 .
 ㅡ
 .
Well you’re still alive
여- 너 아직도 살아 있고마
And I am too
나도 살아있음ㅇㅇ
I can’t get myself out of you
아무래도 난 너 때문에 스스로를 추스릴 수가 없네
.
Well I’ll just get high
여- 나 존나 날아갈것 같네
And you will too
너도 그리 될거여
I can’t get myself out of you
아무래도 난 너 때문에 스스로를 추스릴 수가 없네

[vimeo 116922948 w=640 h=360]

FIDLAR – IF IT MAKES YOU HAPPY (ft. Cheryl Kro) from FIDLAR on Vimeo.

서북청년단은 네오나치 그룹같은 것을 원해

서북 청년단

 

서북청년단은 이제 대놓고 네오나치가 되자고 말한다.

‘서북청년단, Seobuk-choeungnyundan, Westnorth-youth association’ organized ca. 70 years ago in Seoul, South Korea. They terrorized and killed people with name of anti-communism. It was similar ‘Hitlerjugend’, but this group wasn’t government organize. Also some right-wing politicians supported them. However it was just totally crime and very shameful history in South Korea. 2 years later, they dissolved and part of them joined another right-wing groups.

Today, they trying to reorganize this group again. Read this what they saying now.
Lee Chang-woo, executive vice-president of 서북청년단 saying: “These days are very similar ‘After Korean War’ as 70 years ago. People feeling so much anxiety. So I thought we need radical group for figure out this social problem. IN GERMANY, THEY HAVE EXTREME RIGHT GROUP as ‘NEO-NAZI’. Both of USA and Japan, also they have. These groups assume the helm, part of government for the nation. In this moment, South korea has right group, but not extreme right group. This group what I mean, work without law and government power for the nation. (*This meaning about terror, kidnap, torture and lynch.) All developed countries have extreme right group. For that reason, their countries are all safety.”

What the fuck happening in South Korea. Even they have a ‘Commander’ like a paramilitary organization for action. Few months ago, they started action at the square against Ferry Sewol Victims. And 2 weeks ago, they tried to rebuild ceremony at Seoul Public Youth Center. A public official who allowed their using Youth Center, didn’t know what they want to do in Youth Center. When official knew what they want to do, canceled reservation of using Youth Center by 서북청년단. But 서북청년단 tried to keep rebuild ceremony, and public official beaten up by 서북청년단.

tragedy – the ending fight with korean translate

TRAGEDY – Can We Call This Life [FULL EP]
>01. The Ending Fight 0:00
02. The Waiting 2:46
03. Life? 5:05

This is the end of the last days of mourning
이것은 애도 최후의 날, 마지막이야.
One more sad song will be sung
한번 더 슬픈 노래가 불러질 것이지.
The only children of the lost generation
잃어버린 세대의 유일한 어린이들은
Are restless and angry and armed
쉼 없이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무장해.

We’ve watched our loved ones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 봤어.
Lose all life and passion
모든 삶과 열정을 잃어 버렸지.
Another lifetime is spent chasing
또 다른 생애는 무언갈 쫒는데 시간을 보내 버리는 것이야.
The prospect of hope and salvation
희망과 구원의 가능성.
Wondering where all the early years went
모든 어린 나날들은 어디로 갔는가 생각해..

We won’t be sold to our sellers
우리는 판매자 따위에게 팔리길 원치 않아.
One more sad song will be sung
한번 더 슬픈 노래가 불러질 것이지.
This chant of anger will ring out like sirens
분노의 이 성가는 사이렌처럼 울려퍼질거야.
Until the last neck of the last boss is hung
마지막 지배자의 마지막 목을 매달아 둘 때까지..

The end of the ruling classes
지배 계급의 마지막.
The end of sleepless nights
잠 못 드는 밤의 끝.
The end of taking orders
명령 이행의 끝.
The end of wasted lives
버려진 삶들의 끝.
the end… the ending fight
끝… 마지막 싸움.

 

정어리 – 45

“낙후된 삶”

 

며칠을 집 밖서 지내다 어제 집에 돌아왔다. 씻지도 않은채 그대로 잠을 청했는데, 옆에서의 옹알거림 때문에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렵사리 병원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병원에서는 평소보다 부쩍 더 늘어난 환자들로 나는 1시간 가량 기다려 주치의를 만나러 진료실에 들어갔다. 주치의는 진료실에 들어선 나를 보자마자 화난 말투로 “민주씨, 다시 입원 하는게 좋겠어요.” 라며 입원 수속 관련 이야기들을 꺼냈다. 안 그래도 힘이 들었는데, 어머니 가게 소송 문제 때문에 다시 병원에 들어갈 여력이 안된다고 대꾸하니 내 얼굴을 보고 한숨을 푹 쉬더니 “왜 이렇게 병원에 오질 않느냐” 라고 물었다. 나는 잃어버린 소책자 한권에 대한 이야기로 대답을 했다. 누가 빌려간지 도통 기억할 수 없다하니 날 위로하려 했다. 주치의의 일상적인 공감시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그 위로를 나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진료 받기로 약속했던 날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가 아버지 제사 였는데, 계속 무거웠다” 며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지난주 토요일에 갑작스런 이모부의 부고에 혼자 있을 수가 없어 선생님 보러 왔다” 이야기 했다. 오랜만에 주치의와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나니 마음이 편했다.
“병원 오는 길의 웅성거림, 그것이 힘들다” 이야기 하였다. 마지막 처방에선 아빌리파이와 수면유도제, 혈압약, 항간질제 따위들을 받았는데, 두달 넘도록 병원을 찾지 않아 힘들테니 아빌리파이 대신 리스페달로 바꾸고, 다른 약들도 줄였다가 다시 시작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경제적 여력이 되는지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내게 물었다. 나는 일 할 수가 없다. 한참 일해야할 나이의 스물 다섯의 청년에게 약을 처방해주며 주치의의 당부였다. 그 당부를 듣던 때의 어머니 표정,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과 꽉 깨문 입술은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다. 주치의는 내가 장애인 등록이 되고나면면 보조금도 나오고 한결 편해질거라 말했었다.
주치의는 꼬질꼬질한 내 손을 가리켰다. 어디서 온 녀석인지 1주일 넘게 오른손 검지 손가락에 박힌채로 있던 가시가 있었다. 빼내보려고 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긴 가시는 빠지지 않았다. 주치의는 진찰비와 약값을 정산하고, 1층 가정의학과에서 치료 받으라며 걱정해주었다.
진찰비, 약값 정산. 다행히도 지난 여름 주치의가 난치성 질환자로 등록해주어 진료비 2000원에 일주일치 약값 1300원만 내어도 되었다. 가정의학과의 간호사는 낯익은 얼굴이라 했더니 내가 입원했을 때 종종 보았던 얼굴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약을 받아 돌아오니 어린 아이가 변 조절을 못해 힘들어 한다며, 먼저 진료하게 하자길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또 1시간을 기다렸다. 간호사는 내게 무척 미안해 했다. 나를 잊고서 다른 업무들을 보러 갔다 오는 길에 1시간째 기다리던 날 본것이다. 일주일간 쓰렸던 검지는 매쓰로 살을 째 4cm나 되는 가시를 빼냈다. 간호사는 어떻게 이렇게 긴 가시가 박혔는지 물었지만, 나도 알 수 없었다. 약간의 통증이 남아있긴 했지만, 손을 움켜쥐었다 펼쳤다를 반복하며 한결 편해진 손을 바라보았다.

 

집에 오는 길, 문뜩 오래전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 어머니는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 했다고 울부짖으며 말했던 것이 이해 되기 시작했다. 그 말이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가슴에 비수처럼 남아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나를 속이지 않으려 했던 것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렇게 사랑하셨다.

 

ㅡ 2009년 10월 21일 밤 23시 31분.

Seoul Mayor Park Won-soon wants same-sex marriage in Korea as first in Asia with korean translate

LEE JIN-MAN/AP FILE PHOTO - Park Won-soon, the mayor of Seoul, South Korea, hopes his country is the first in Asia to legalize same-sex marriage.
  • LEE JIN-MAN/AP FILE PHOTO
  • Park Won-soon, the mayor of Seoul, South Korea, hopes his country is the first in Asia to legalize same-sex marriage.

서울 시장 박원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동성결혼 합법화를 원한다
죠엘 P. 엔가디오

2014년 10월 12일 기사
(실제로 박원순 시장은 9월 25일부터 2일간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였다)

 

 

한국, 서울의 게이퍼레이드는 지난 여름 수 백명의 기독교 시위대가 길거리에 누워 차단되었습니다. 한국의 인구 3분의 1정도인 기독교인들은 게이가 되는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1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 라는 테마의 퍼레이드에 참가 했고, ‘구글 코리아’ 가 부분적으로 후원했습니다.

새로운 기술과 사회 변혁, 전통주의 사이의 대결은 인구 1천만의 도시에서 둘로 나뉘어 대결했습니다. 퍼레이드를 허가, 승인 폐지를 번복하고 다시 허가를 내주는 과정에 양 측은 서로 시공무원에게 압력을 가했습니다.

이 퍼레이드는 자유주의 성향의 박원순 서울 시장의 정치적 복원력을 검증하는 단계였습니다. 선거시즌이었고, 박원순 시장은 反동성애혐오 캠페인을 시내버스와 옥외광고판에 게시하도록 허가했다는 점에서 동성애혐오의 수사로 상대편 보수 도전자에게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재선에 성공하였고, 이제는 2017년에 있을 최고 경쟁자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테크 리더’ 와 서울의 스타트업을 위해 벤쳐 자본 투자자를 찾으러 왔을 때, 그의 직원이 날 인터뷰에 초대했습니다.

박 시장은 인권변호사로 경력을 쌓았고, 즉시 내 배경인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에 대해 물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사회-정의 쟁점들과 LGBT 인권부터 이주, 이민에 이르는 범위의 일들을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ACLU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가 가능한 다음 대통령으로서 한국인 LGBT를 위해 인권을 얼마나 많이 이끌어낼 수 있을지 날 궁금하게 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동성애자의 권리에 동의합니다” 라고 박 시장이 말했다. “하지만 개신교회들은 한국에서 너무도 강력합니다. 그건 정치인에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동성애자를 포함하는 인권의 보편적 개념을 확장 시키는 활동가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들이 사람들을 설득하면, 정치인들은 따를 것입니다. 지금 그 과정에 있습니다.”

나는 대만 의회가 동성 결혼 합법화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대만이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최초의 아시아 국가가 되면 어떨지 물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나는 한국이 가장 먼저하길 희망한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에서 많은 동성애 커플들이 이미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지만, 나는 한국의 헌법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다른 해석이 그 무엇을 추구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그의 발언으로 하여금 ACLU의 수수께끼가 상기되었습니다: 어떻게 반대되는 신념을 가진 사람을 헌법 상의 권리로 보호하는지. 동성결혼을 죄라고 하는 종교를 허용하면서 동성 커플을 결혼 시키는 것은 진정한 자유 사회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비주류로 간주되는 그룹의 권리에 대해서는?

한국은 아직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권리에 대한 국제적 합의에 반하여, 강제징병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기소하고, 감옥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박 시장은 그것을 바꾸고 싶어합니다.

박 시장은 “여호와의 증인들을 위한 대체복무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겁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박 시장이 지속적으로 얼마나 많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인권을 지켜내려고 하는지 감명 받았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신입생으로서 민주화 집회에서 체포된 이후 학교에서 제적당한 그의 경험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박 시장은 주거, 교통, 지속가능성의 새로운 도시 문제를 해결하려하고 있습니다. 그는 “창조 경제”와 “공유 도시” 사업에 대한 기술 산업의 지원을 받기 위해, 그리고 동시에 포용과 시위 방법의 변화를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박시장은 “서울에는 많은 갈등과 투쟁들, 시위들이 있습니다. 혁신들은 이익집단의 저항을 받아 손상을 입고 후퇴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가끔은 내 오래된 친구가 날 반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에 직면하여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당신이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는 토론의 과정이고, 왜 변혁이 좋은지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원본기사: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의 죠엘 P. 엔가디오 기사

그리스, 아덴에서 아나키스트 니코스 로마노스에 연대 시위 – 2

https://www.youtube.com/watch?v=bRwg9E9ARPA

 

며칠 전, 그리스에서 아나키스트 니코스 로마노스에 대한 연대-단식투쟁과 연대- 평화시위에 대해 이야기 드렸습니다. 어제도 그런 대규모 시위와 행진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하려하면서 시위 현장은 겉잡을 수 없이 폭력적인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경찰들은 무방비 상태로 묶여 연행 중인 시민들을 가격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 영상입니다.

에릭 가르너와 마이크 브라운, 미국 공권력 남용에 대한 폭발

에릭 가르너를 죽음으로 이끈 경찰의 불기소 처분이 이뤄지자, 미국 전역에서 지금 벌어지는 시위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어떤 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에릭 가르너의 죽음은 바다 건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공권력에 희생되는 모든 개인,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또한 마이크 브라운에 대한 경찰의 살해혐의 역시 불기소 처분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