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줄곧 한국은 록음악의 불모지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이제는 페스티발이 많아지다 못해 대기업들 마저 뛰어들어 우후죽순으로 락페스티발이 늘어났다. 하지만 한국의 음악 씬에서 다양성이란 아직은 너무나도 먼 이야기이다. 한국 펑크/하드코어 씬은 탄생을 이제는 거의 20년 쯤으로 어림잡을 수 있을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 이것을 어딘가에 씬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망설여진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시장이라는 이유도 존재하겠지만, 클럽을 운영하는 사람, 밴드, 관객, 그루피, 헤비리스너, 그리고 평론가들을 둘러싼 문화들에 결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클럽은 밴드에게 페이를 주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고, 밴드가 공연 기획부터 홍보까지 도맡아 클럽을 먹여살리는 일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밴드는 계속해서 자립하기 어려운 환경이 반복되는 틀 안에서 밴드 마다의 독자적인 개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하며, 다양성이 사라지고 이도 저도 아닌 모습으로 변형 되어갔고, 차츰 그 시작할 때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 관객은 공연에 올 때만 펑크로 변하는 이른바 주말 펑크 같은 것이 되가고 있었고, 속된 말로 어느 정도 이 바닥을 구르면 사회로 돌아가 직장인이 되어 자신이 사랑했던 이 바닥의 기억들을 어린 날의 치기처럼 취급하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뭉갰다. 이런 흐름 속에 그루피라는 것은 언제 한번 제대로 생겨보기도 전에 poser, 포저라는 비판을 받으며 씬이 커질 다른 가능성을 차단시키는 요인이었다. 평론가들 마저도 대부분 20년 내내 섹스 피스톨스, 클래쉬, 댐드, 블랙 플랙, 데드 케네디스, 미스핏츠, 그린데이, 오프 스프링, 랜시드, 노에프엑스, 에이브릴 라빈 등을 순으로 열거하며, 펑크는 이것일 뿐이라고 단순하게 절하시켰다. 그게 고의적인 직무유기였던지 아니면, 고의가 아니라 자신의 무지와 무관심을 감추고 싶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대개 잘 쓰여진 블로거들의 포스트보다 못한 평론들이 줄을 이었다. 그래서 이 글을 생각했고, 몇 년이나 길게 생각했던 그 이야기를 이제 시작 해보려한다.
글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알린다. 나는 단지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한 첨언들을 달아, 이야기가 다소 매끄럽지 않음을 감수하면서라도 적어도 펑크를 접해봤지만 접한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하려 한다.
첫 이야기로는 독일의 Frei.WIld 라는 밴드의 이야기를 통해 음악과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보려 한다.
하지만, Frei.Wild 가 이전에 전혀 의심을 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신념 따위를 강조하는 밴드들은 대개 우파-민족주의 성향이거나, 마초 밴드라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유럽의 네오나치들이나 일본의 재특회들은 자신들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려는 저항적인 투쟁가, 레지스탕스, 애국 투사, 영웅적인 이미지를 자신에게 부여한다. 때문에 타 인종에 대한 차별과 폭력, 테러 등으로 경찰에게 연행되거나 유죄가 인정되어 중형으로 교도소에 사는 것, 더더욱이 출동한 경찰특공대와의 총격전에서 죽기라도 하면 영웅이 되어 죽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애국 보수를 자처하는 어버이 연합이나 일베와도 매우 닮아있다.
신념은 나치가 강조했던 것들 중 하나인데, 2차 대전 이후 지도자와 같은 단어처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졌는데 아직도 몇 펑크/하드코어 밴드들이 쓴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면서도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펑크/하드코어는 스포츠나 게임, 패션과 이슈 등과 같은 것이 아니고, 삶을 마주하는 태도로서 태어났기에 그간의 저항적인 록음악들과는 분명히 차별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다시 Frei.Wild 이야기로 넘어가 이들은 이들의 모호한 가사로 보수적 감성을 정치적으로 선동하고, 대부분 우파 팬들이이라는 이유로 극우 세력을 지지하는 밴드로 간혹 의심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Frei.Wild 이야기로 가기 전에 몇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음악은 정치적 올바름과 관계없이 듣기에 좋기만 하면 된다고?
그들의 사상은 관심없지만, 네오 나치들이 음악만큼은 잘 만들어서 가끔 들으면 스트레스가 풀려서 괜찮다고?
큰일 날 소리. 단언컨데 유럽에서는 절대 용인 받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북유럽의 노르웨이에서 유럽의 NSBM, 네오 나찌들의 블랙메탈을 이끌던 Burzum의 바르그 비켄네스가 중형으로 유죄를 선고 받고, 감옥 생활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유럽에서 맹위를 떨칠 것 같던 NSBM은 마치 사회를 등지고 방 구석에 쳐박힌 히키코모리들이 게임상에서 아이템을 뺐겼다며 현피를 신청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유아적인 발상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지금 유럽에서 RABM(Red and Anarchist Black Metal)이 일어서는데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극우 네오나치들의 유아적인 발상과 중2병 말이다. 아무튼 크러스트 펑크는 블랙메탈의 교류가 커지면서 80년대 말부터 블락켄드 크러스트, Blackened Crust 에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는 80년대 중반부터 Discharge류의 크러스트와 데스메탈이 만나 시동이 걸린 그라인드 코어와 함께 성장했다. 때문에 이전과 달리 종종 크러스트/그라인드 밴드들과 블랙/데스 메탈 밴드들이 함께 공연하며 씬을 공유하는 일이 많아졌다. 스웨디쉬 크러스트/그라인드 밴드들이 독보적인 활동을 보인건 80년대 말부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비켄네스의 살인 이후에는 정말로 북유럽의 씬은 정리되기 시작했다. 때문에 지금도 크러스트들이 블랙/데스 공연장에 가거나, 블랙/데스 메탈 팬들이 크러스트/그라인드 공연에서 자주 보인다. 유럽에서 가장 그 정신을 잘 지키고 있는, Obscene Extreme Festival 이 바로 그 살아있는 증거이다. 네오 나치들은 대부분의 공연장 무대에 설 수도 없고, 사회적인 비판은 물론이거니와 관련해 문제를 일으킬 시에 법적 처벌을 받는다. 나치 옹호는 정치적 올바름을 넘어서서 지난 차별과 폭력, 살인, 학살로 물든 중범죄 그 자체, 이상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반기를 든 펑크에 있어 이러한 일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유럽 어느 공연장에서 그리고 바에서 스크류 드라이버와 같은 인종차별적이고 극우적인, 네오 나치들이 찬양하는 류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그 곳은 단연 네오 나치들의 공간 뿐일 것이다.
“Wir haben immer gesagt, dass wir das Land hier von Herzen lieben/ Balsam für die Seele, wie wir euch damit provozieren/ Ihr seid dumm, dumm und naiv/ Wenn ihr denkt, Heimatliebe = Politik/ Dumm geboren” – aus “Das Land der Vollidioten”
“우리는 언제나 말해왔어, 우리 마음 속으로부터 이 땅을 사랑한다고 / 우리가 너희를 울리는 영혼의 안식처 / 너희들은 멍청해, 멍청하고 너무 순진해 / 너희가 향토애(우리의 땅에 대한 사랑)을 생각할 때는 정치야 / 멍청하게 태어났어” – Frei.Wild 의 노래 ‘멍청이들의 땅’ 중에서
가사만 봐도 극우, 네오나치의 냄새가 난다. 한국에도 이런 류의 노래로 극우,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몇 펑크/하드코어 밴드가 있다는 것을 가사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다.
왜 2001년에 결성된 Frei.Wild 가 2013년, 독일의 With Full Force라는 큰 락페스티발을 앞두고, 보이콧 대상이 된 것일까? 더군다나 그 보이콧의 주체가 단지 좌파 계열의 정치적 단체 뿐만이 아니라 펑크/하드코어 씬은 물론, 청년 문화 그룹들(Jugendkultur-verein),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의 주요 록 음악 매거진에서 보이콧을 선언하게 된 것일까? 그들은 독일어로 단결된 유럽을 위한 투쟁의 노래를 부르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에는 최소 3만명 이상이 찾는 With Full Force 페스티발 2013년의 라인업이 굉장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와중에 참가하기로 한 Frei.Wild 를 나치 씬 전문 르포타쥬 기자 토마스 쿠반의 폭로가 기폭제였다. 그들이 자주 네오나치를 찬양하는 공연에 참가해왔는데, 이것이 단순히 루머가 아니라 완연히 나치를 옹호함을 보여왔다는 것. 그 폭로 이후로 곤란해지자 보컬 필립 부르거는 이는 본인만의 입장이며, 자신의 인터뷰 내용이 100퍼센트 밴드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Kurz gesagt, ich dulde keine Kritik/ An diesem heiligen Land, das unsre Heimat ist/ Drum holt tief Luft und schreit es hinaus/ Heimatland, wir geben dich niemals auf” – aus “Südtirol”
“짧게 말해, 나는 비평이 없는걸 참았어/ 이 신성한 나라에, 우리의 고향에 대해서/ 그것에 관해 깊은 공허함과 밖으로 외쳤지/ 모국(고국), 우리는 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어” – Frei.Wild의 노래 ‘남쪽 티롤’ 중에서
독일에서는 조국, Vaterland 이란 단어는 나치로 보일 오해의 소지가 큰 단어다. 이 곡 역시 화자가 청중에게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명백히 민족주의, 인종차별, 우익록밴드, 우익 포퓰리즘, 네오나치를 옹호및 찬양하는 그들의 범죄를 사람들은 남의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보이콧 선언은 점차 늘어났고, 급기야 WFF에 참가 하는 밴드는 물론, 후원하는 기업들 특히나 독일 내에서 주요 록음악 매거진 중 하나인 VISIONS에서 공식적으로 WFF 후원을 취소하고, 보이콧을 선언했다. 여러 유명한 음악 잡지와 후원사들, 단체, 씬들이 보이콧을 선언했지만, VISIONS의 후원 철회및 보이콧 선언은 확실히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VISIONS 하나에 그치지 않고, 여러 주요 후원사들이 연이어 후원 취소와 보이콧을 선언했다.
“Nichts als Richter/ Nichts als Henker/ Keine Gnade und im Zweifel nicht für dich/ Heut gibt es den Stempel, keinen Stern mehr” – aus “Wir reiten in den Untergang”
“판사가 아니고서 / 사형집행자가 아니고서 / 무자비와 널 위한 의심이 아닌 / 오늘 거기에는 스탬프가 찍혀있고, 더이상 별이(유대인의 별) 없다” – Frei.Wild 의 ‘우리는 파멸로 달리고 있다’ 중에서
사실 WFF는 이 폭로 이후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을 분노하고 운동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졌는데, 폭로가 터진 직후 온라인 상에서 시작된 개인들의 보이콧 선언 WFF는 사과는 커녕 “마녀사냥을 하지 말자” 며, 보이콧 선언에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이후에 보이콧이 가속화 되자, “이미 스케쥴이 만들어져있어 취소할 수 없다”는 이유로 관객들에게 이해를 당부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보이콧이 봇물처럼 터져나왔고, 매년 최소 3만명 이상이 찾는 유럽의 주요 록페스티발 중 하나인 WFF의 예매된 티켓이 연이어 취소되기 시작했다. 이런 큰 규모의 록페스티발이 무너지는 순간이 눈 앞에 다가왔다.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여러 도시의 음악 씬과 펑크/하드코어 씬들에서 이에 대해 온-오프라인으로 성토를 더 해나갔고, 결국 WFF는 사실을 인정하듯 Frei.Wild 의 공연을 취소하고, “어떠한 형태든 민족주의, 인종차별, 우익록밴드, 우익 포퓰리즘, 네오나치와 함께 하지 않을 것” 임을 약속하는 공개 사과의 글을 올렸다.
음악은 인간의 슬픔을, 아픔을, 자유를, 희망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행동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이용 되어왔다. 음악은 사람을 움직인다. 이 것은 음악을 통해 자유로워지되, 불관용에 대해서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음악이 민족주의, 인종차별, 성차별, 우익 포퓰리즘, 네오나치, 백인우월주의, 호모포비아를 옹호하거나 찬양을 한다면 이것은 더이상 음악이 아니라 반인륜적인 범죄인 것이다. 적어도 사회의 부조리함이 반복되는 것에 복종하지 않으며, 동참하지 않고, 거부하고, 맞서 싸워 저항하거나 또는 도주하려 했던 펑크/하드코어라면 이런 일에 침묵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게임을 하는 것 혹은 좋은 기록을 세우기 위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태도를 간직하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려한다면 더더욱 이러한 움직임에 단호하게 “더이상은 안된다” 고 말해야한다.
나는 누가 펑크를 만들었는지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학교나 사회, 또는 직장 등의 권위적인 억압에 억눌린다하더라도 펑크/하드코어라면, 무엇이 옳지 않은지에 대해 입을 열고, 부조리에 대항해 저항의 주먹을 쥘 수 있어야 할 것이다.
x. 후기
– 글 쓰는게 이렇게 귀찮다니. 정말 정말 귀찮은데, 크롬에 이미 관련 여러 개의 탭을 띄워놨기 때문에 이 몇 창을 닫고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서는 얼른 포스트를 작성하고, 탭을 끄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계속 여러가지를 주제로 연재할 ‘In to the Scene’ 의 첫번째는, 최소 3만명 이상의 관객이 몰리는 유럽의 유명한 록페스티발 With Full Force, 2013에서 Frei.Wild 라는 밴드가 공연한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보이콧을 선언하고, 결국 취소된 이야기 전말을 다뤘다. 시간을 내어 더 잘 쓰고 싶었지만, 저 망할 탭들을 끄고 싶은데,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에는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아 급하게 작성된 것. 이해 부탁바라며, 대신 혹여나 등장할 질문 만큼은 성실히 답할 것을 약속하겠다. 그리고 귀찮아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Frei.Wild의 뮤직비디오나 음악은 링크하지 않았다. 한마디 더 하자면, 우파 펑크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한국에서 자꾸 어떤 사람들이 우파 펑크를 자부하는데, 애국이라던가 민족주의를 이야기 하며 스스로를 우파라 말하는 펑크는 나치 외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