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대한 논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지금의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지방인 알자스에 사는 프란츠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어 수업에 지각을 한다. 혼이라도 나지 않을까 하고 조바심에 교실을 들어서는데, 선생님도 평소와는 달랐고, 교실 뒤 쪽으로는 프랑스어 책을 보는 마을 주민, 어른들이 있었다. 어리둥절한 프란츠에게 선생님은 “오늘이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이다”라고 말한다. 이유인 즉, 알자스 지방이 프로이센(지금의 독일)과 분쟁중인데, 1871년 당시 프랑스가 패배해 독일이 알자스를 점령하였고, 더이상 알자스에서 프랑스어를 쓰지 못 하도록 법이 제정되어 마지막 수업이 된 것이다. 결국 프로이센군의 나팔이 울리는 12시에 선생님은 ‘프랑스 만세!’라고 칠판에 쓰고 교실을 나가며 소설이 끝난다.

이 소설은 한국사람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나라와 말, 이름, 전통 등을 규제 당한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항간에서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한국어 버젼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내용은 대략, 일제 강점기 시절 한글 수업에 들어가니깐, 선생님이 오늘이 마지막 한글 수업이라고 한다. 뒤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개화기 국어학자 주시경 같은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며, 아름다운 한글을 잃어버림에 대해 비통히 운다. 일본이 조선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이제 한글을 쓰지 말라고 했던 것이고, 선생님은 ‘조선 만세!’라고 쓰고 교실을 나가버린다.

설움이 담긴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논란거리가 있다.

사실 알자스 지방은 원래 독일 영토였다는 것. 알자스-로렌지방은 독일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독일의 영토였는데, 프랑스가 그걸 잠시 뺏었다가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해서 내줘야 했던 영토였다. 게다가 ‘마지막 수업’, ‘별’등을 통해 서정작가로 알려진 알퐁스 도데는 사실 왕당파에 내놓으라는 지독한 우파중 한명이다.

알자스어에 대해 알아보면 좀 더 세밀하게 역사적 배경을 유추할 수 있다.
알자스어는 프랑스의 북동부 알자스(Alsace)지방에서 사용되는 프랑스의 지역 방언중 하나로서, 그러나 알자스가 지금의 프랑스 영토로 자리 잡은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이고, 지리적으로는 알자스 동쪽에 흐르고 있는 라인강만 건너면 독일이 나온다.

알자스어는 프랑스어로는 ‘알자시앙(Alsacien)’, 알자스어로는 ‘엘제시슈(Elsässisch)’라고 불리는데, 알자스어는 프랑스의 영토의 방언으로 구분하고 있다지만, 이름에서 보이는 것처럼 프랑스어보다는 독일어에 훨씬 가깝다. 아니, 실제로 독일어의 방언이라고 볼 수 있다. 알자스어는 프랑스에서 프랑스어 다음으로 두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방언으로 알려져 있는데, 언어학상으로는 프랑스어와는 관련이 없고, 고지독일어(haut-allemand, Hochdeutsch)에 속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재 독일어와는 차이점이 있는데;

1. Génitif(속격)에 차이가 있다.
– 독일어의 des(남성 및 중성 속격), der(여성 및 복수 속격)에 해당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2. 어느 독일 방언 구사자도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 방언을 구사한다.
– 수 세기 전부터 프랑스와 독일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알자스 지방은 독일의 여러 방언을 쓰는 지역과 상대적으로 소통이 적었다. 이 때문에 현재의 독일어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는 중세 독일 어휘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3. 많은 프랑스 어휘를 차용하였다.
– 독일 또한 상당수의 프랑스 어휘를 차용하였으나, 알자스는 여러 차례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었고, 현재는 완전히 프랑스의 영토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현재의 독일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프랑스어의 영향을 받았다.

* 프랑스어-독일어-알자스어 비교

 

또한,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동부에 있는 슈바벤 지방에서 사용되는 방언보다 서부에 있는 슈바르츠발트 (검은숲)를 포함한 바덴 지역에 속하는 스위스에서 사용되는 방언에 가깝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 하는 근거들로는 실제로 스위스와의 왕래가 잦은 편이고, 스위스에 거주하는 한인 또는 유학생들이 알자스 지방과 언어에 대해 문화적인 접근 차원에서 유사함을 언급하는 사례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알자스가 프랑스어를 적극 받아들이던 또다른 계기가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의 반독(反獨) 감정으로 오랫동안 알자스는 초등교육 단계에서 독일어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 뿐 만아니라 프랑스어 교육이 강화되고, 알자스 지역 내에서 유통되는 신문의 초등학생용 지면과 어린이와 젊은 층을 겨냥한 출판물에서는 오직 프랑스어만 사용되는 등 공공 장소에서 독일어와 알자스어의 배타 풍조가 이어졌다.

1999년, 지역 언어를 중시하고, 지역 문화를 배척하는 문화 풍조에 비판과 함께 이른바 ‘조스팽 개혁’은 유치원과 초등 교육 단계에서 독일어 교육을 하게 되었지만, 그 이전의 흔적도 있고 지금도 세대가 내려가는 만큼 알자스어을 모국어로 하지 않고,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경향이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 지도
 위 지도에서 알자스와 로렌이 얼마만큼 벨기에와 독일과 가까운지 알 수 있다. 참고로, 로렌 지방과 맞닿아있는 벨기에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독일어를 함께 사용하는 국가이다.

또한 알자스 지역의 와인은 특이하게도 프랑스식 라벨 표기와 다르게 Riesling(리즐링) 또는 Gewurztraminer(게부어츠라미너) 등의 독일식 품종 라벨 표기를 한다. 와인의 풍미, 깊이 또한 품종 때문인지 독일 와인의 풍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강한 느낌의 바디감과 드라이한 맛을 갖고 있어 독일 와인의 장점을 가지면서도 프랑스 와인의 표현을 잘 보여주는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독일의 화이트 와인에 물을 섞어 마시는 Weinscholle(바인숄레)와 비교하며 마시는 것이 와인 팬층에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와 달리 민족(Nation)의 개념에서 다른 관점이 있다.
유럽에서 발생한 민족의 개념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30년 전쟁과 시대적 상황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한데, 30년 전쟁은 유럽의 변방인 보헤미아 왕국의 왕위계승 분쟁에서 시작 됐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인 팔츠 백작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다툼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강대국인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배후 조작및 북유럽의 강호 스웨덴의 개입 등으로 전쟁은 30여년에 걸친 국제전으로 발전한다. 30년 전쟁 이전 까지는 중세시대 귀족들 간의 소규모 전투나 국제전이라고 해도 소규모의 국지전 외에는 없었다. 그 이유인 즉, 민족 개념이 존재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주들은 자신 바로 위에 있는 왕과 무시 못할 권력층인 종교인들에게 잘 보이면 되었기 때문에 군주들간의 소규모 전쟁만이 있었다.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서 절대왕정이 수립됨과 동시에 지방 분권적인 체제에서 중앙집권적인 통합국가들이 등장하면서 민족의 개념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왕권이 강화되고, 비로소 30년 전쟁이라는 거대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근대 유럽사에서 30년 전쟁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전쟁을 통해서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유럽의 기본 틀이 잡혔기 때문이다.
30년 전쟁은 1618년에 시작해 1648년에 끝남과 동시에 프랑스가 협정을 맺으면서 알자스-로렌을 뚝 떼어간다.
또한 프랑스가 18세기 경, 독일의 민족 개념을 흔들어 놓으면서 독일이 분란에 쌓이는 동안 프랑스가 민족의 개념을 먼저 정립했다. 물론 독일과 이탈리아도 민족의 개념이 생기면서 영토를 하나된 국가로 통일 할 수가 있었다. 프랑스가 독일보다 민족 개념을 쟁취하는 그 증거로는 1879년에 있었던 프랑스의 혁명,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 쓰였던 암구호가 ‘민족’이었다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본인의 독어와 영어로 불어 사이트를 통해 확인 해보려 했던 시도는 무의미 하게도 바스티유에 있는 포커 사이트 암호를 묻는 결과만 잔뜩 찾게 되었다)
보불전쟁은 1871년에 끝난다. 영토 점유기간을 보면, 224년 동안 프랑스가 점유했던 셈이고, 그 사이의 알자스-로렌 지방 사람들은 프랑스에서 있었던 혁명과 독일의 민족개념에 저항했던 프랑스 국민들과 함께 하며 스스로 본인들이 ‘프랑스인’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고.
결국 이 이야기는 독일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독일이 분열된 틈을 타 영토를 갈취한 프랑스는 당연히 침략자이지만,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수 세기 간 걸쳐던 복잡한 역사를 배제하고, 알자스-로렌 지방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독일로 반환 되어야 할 영토이겠다. 하지만 정작 알자스-로렌인들은 근대와 현대를 거쳐오며 자신들이 프랑스인으로 살고 있다.

참조;
Franz의 <The Triumph of freedom> 중 ‘[알자스어] 프랑스어 알자스어에 대해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_hofbauer&logNo=140191364854
한국어 위키피디아의 알자스어 페이지
– http://ko.wikipedia.org/wiki/%EC%95%8C%EC%9E%90%EC%8A%A4%EC%96%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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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관련 기사들을 읽다가 작성하게된 게시글인데, 작성하는데는 서너 시간 이상 걸린 반면에 노력에 비해 읽기 편한 글 같진 않네요. 어쨌든, 감기 조심하세요. 새해 정초부터 감기로 고생.. 작년에는 편도선 염증까지 여덟번이나 걸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