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최근 이슈, 통속적인 이슈에 대해 포스팅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박원순 시장의 시민인권헌장 논란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 해볼까 한다.
시민인권헌장 제정위원회의 일부가 빠져나갔지만, 3분의 2이상, 과반수의 표결을 얻어 채택을 결정했음에도 박원순 시장은 시민인권헌장을 채택하지 않았고, 이것이 다수의 동의를 통해 무엇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읽는다면 다수가 동의하면 소수가 무조건 따라야한다는 논리가 동시에 성립되므로, 다수가 결정했다는 논리만으로 무엇인가를 추진하는 것은 이후에 다수에 의한 소수에 대한 차별의 소지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정책을 결정해야하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지점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함께 사는 사회인지, 어떤 것이 차별인지, 그 함의에 대한 논의를 선행해야만 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다수의 결정만으로 소수에게 가해져왔던 구조적 폭력들로부터 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헌장은 법적구속력이 조금도 없는 ‘시민헌장’ 일뿐이고, 채택된다 하더라도 차별에 대한 법적분쟁에 있어 고작 참고사항이 될 뿐, 아무런 강제력이 없는 내용이다. 때문에 정치인 박원순에게, 민선시장 이후 서울시장의 자리가 대권에 미치는 큰 영향을 고려할 때, 과반수의 동의를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헌장을 통해 보수세력의 역풍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만약 이 헌장을 채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DDP와 세빛둥둥섬(세개의 빛나는 섬이라고 쓰고, 稅빚이라고 읽는다), 무상급식 문제로 고꾸라진 오세훈 전 시장의 케이스를 볼 때, 박원순 시장은 언제든 역풍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 헌장의 채택은 이후 어떤 파급을 갖게 될까?
저열한 의미에서의 ‘정치공학’ 적으로 읽더라도 박원순이 이 헌장을 채택하지 않고 시장 자리를 확고히 하는 것이 결코 비판만할 수 없는 이 상황은 현재 야당에 그 뒤를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새정치 고자들은 듣고 있나?)
‘차별을 금지해낼 사회적 근간을 만들 헌장에 제동을 걸었다’ 는 식의 주장과 함께 합당성을 논하려면, ‘시민인권헌장’ 이 아닌 ‘차별금지법’ 을 추진하며 주장해야 옳다. 차별에 반대해 인권을 도모할 윤리 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법적인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안으로 법적구속력이 있는 준수조항을 만들 때, ‘합의’ 의 명분은 더욱 명백해진다.
우리는 물거품이된 이 시민인권헌장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회의장에서 빠져나간 일부를 제외하고도 회의장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3분의 2 이상의 과반수로 反차별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의지를 확인하였다. 이것은 추후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나아갈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명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목사들 앞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나 역시 유감이다만, 시장으로서 꼭 동성애 지지 발언을 해야할 의무가 없다. 최근 몇 년 뉴욕 시의 시장을 비롯해 미국의 공직자들이 동성애 지지를 공식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기사화 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 있다. 또한 박원순은 실제로 호모포비아는 커녕 신촌 LGBT 퍼레이드와 성미산 LGBT 영화제를 시 차원에서 지원했다는 이유만으로 보수 단체들의 맹비난을 받기도 했으며, 한국 주요 정치인 중에 유일하게 동성결혼 지지 발언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 박원순 시장을 향한 사람들의 비난이 지나쳐 보인다. 화가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이렇게 된 원인은 박원순 시장이 아니라 회의 자체를 깽판치러 간 보수 기독 단체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비판 해야하는 것 아닐까? 지금 보면 그 깽판 친 보수 기독 단체보다 박원순 시장이 더 까이고 있는걸 보니 뭐가 잘못되도 확실히 잘못된 기분이 드는건 정말 나뿐이란 말인가?
박원순이 시민인권헌장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박원순이 지지자를 잃었을거라는 생각은 대체 무슨 근거로 하는 주장인지 되묻고 싶다. 박원순 지지자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봐야 누구한테 갈까?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긴 있을까?
한국에서 좌파라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짧아? 그거..?